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너의 패턴을 파악했다(Umberto Eco)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추』『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만, 그의 본업은 대학에서 기호학(Semiotics)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가 이언 플레밍이 쓴 007시리즈을 구성하는 "패턴"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꽤 재미있습니다.

진정한 고유의 줄거리는 변화하지 않으며, 신기하게도 완전히 예상된 사건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요약하자면 플레밍의 <모든> 책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본드는 어느 괴물 같은 개인의 공상 과학적인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어느 주어진 장소에 파견되는데, 출신이 불확실하고 어쨌든 영국인이 아닌 그자는 자신의 조직적 또는 생산적 활동을 이용하여 돈을 벌어들일 뿐만 아니라 서방의 적으로 활동한다. 이런 괴물 같은 존재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본드는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를 과거에서 해방시켜 그녀와 에로틱한 관계를 맺는데, 그 관계는 악당에게 붙잡히고 고문당하는 바람에 깨지게 된다. 하지만 본드는 악당을 물리쳐 참혹하게 죽인다. 그리하여 이제 본드는 노고 끝에 여자의 품안에서 휴식을 취하나, 나중에는 결국 그녀를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pp.246-247)


그 불변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A) M이 움직여 본드에게 임무를 부여한다.
B) 악당이 움직여 본드에게 나타난다(경우에 따라서는 대리자 형태로)
C) 본드가 움직여 악당에게 첫 번째 장군을 부른다 - 또는 악당이 본드에게 첫 번째 장군을 부른다.
D) 여자가 움직여 본드에게 나타난다.
E) 본드가 여자를 먹는다. 즉 그녀를 소유하거나 유혹하기 시작한다.
F) 악당이 본드를 사로잡는다(여자와 함께 또는 여자 없이, 또는 여러 순간에).
G) 악당이 본드를 고문한다(여자와 함께 또는 여자 없이).
H) 본드가 악당을 물리친다(그를 죽이거나, 그 대리자를 죽이거나, 그의 죽음에 개입한다).
I) 회복 중의 본드가 여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 그녀를 잃게 된다.

이러한 도식은, 그 모든 요소들이 각 소설 속에 언제나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불변이다. (…) 말의 움직임들이 언제나 동일한 순서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조사대상의 소설 열 편을 자세히 도식화하면 몇몇은 ABCDEFGHI 도식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예를 들어 『닥터 노』). 그러나 종종 다양한 유형의 역전과 반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골드핑거』의 경우가 그러한데 그것은 BCDEACDFGDHEHI 유형의 도식이다. 여기에서는 악당과 두 번의 만남과 두 번의 게임, 여자와 두 번의 유혹과 세 번의 만남, 패배 후 악당의 첫 번째 도주와 이어지는 그의 죽음 등의 반복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007 위기일발』에서는 악당의 무리가 많아지는데, (…) 따라서 이 소설의 아주 복잡한 도식은 BBBBDA(BBC)EFGHGH(I)이다.

Eco, Umberto., Il Superuomo di massa(대중의 슈퍼맨), Bompiani, 1978
(김운찬 역,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열린책들, 1994(2009), pp.240-241)


by sonnet | 2012/01/09 11:28 | 문화 | 트랙백 | 덧글(35)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466426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파리13구 at 2012/01/09 11:34
이런 도식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007팬들이 시리즈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이 이 시리즈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09 13:12
물론입니다. 언제 봐도 편안한!
Commented by imjohnny at 2012/01/09 11:41
헐... 천하의 sonnet 님도 도저히 한 번쯤은 포스팅에 쓰지 않을 수 없는 김성모 짤방의 마력에 서 예외가 아니셨군요 ㅎㄷ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09 13:14
하하. 저라도 뭐 별난 사람도 아닌데요 뭐
Commented by exnoy at 2012/01/09 11:48
깐다고 봐야하나 칭찬이라고 봐야하나(...)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09 13:16
대중문학은 그런 게 특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의 첫번째 글인 「해적 네로의 눈물」에 그런 식으로 설명을.
Commented by ttttt at 2012/01/09 11:55
칭찬이죠. ^^;
Commented by _tmp at 2012/01/09 12:01
저거야 시리즈가 계속되면 (특히 장르물이라면) 뻔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지요.

악당과 여자가 없는 007 시리즈를 생각할 수 없다면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12 23:42
사실 대중문학의 독자가 기대하는 것에 잘 부합하니까 그 정도로 성공했던 것이겠죠. 대중이란 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내칠 때도 무자비하니까요.
Commented by 대공 at 2012/01/09 12:23
사실 그 황금패턴이 재밌는 거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09 13:11
맞습니다. 대중문학이란 게 그런 진부한 재미가 있죠.
Commented by 스누피 at 2012/01/09 13:02
서양 동화에 나타나는 공식이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전에 나타난 가짜 영웅 (본드 이전의 스파이, 009)의 실패
영웅의 출편 (본드)
용 혹은 거인 (악의 집단)
영웅을 도와주는 마법사 (닥터 Q)
공주 (잃어버린 핵물리학자)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09 13:11
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프로프가 그런 접근법의 고전이죠. 전 요즘 장르의 전형성을 다룬 책들에 흥미를 느껴 그런 쪽을 틈틈히 보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Manglobe at 2012/01/09 13:55
본드가 붙잡히는 부분은 지하 세계로의 여정으로까지도 해석이 가능하네요 ㅋㅋㅋ
Commented by ㅠㅇ at 2012/01/09 13:21
필리핀에 유학갔다온 남자들이 보면 좋아할 영화같네요... 어쩔수없이 여자를 잃는다라...
Commented by dunkbear at 2012/01/09 13:24
스토리텔링도 기승전결이라는 큰 법칙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겠죠. (^^)
Commented by 보리차 at 2012/01/09 13:54
하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도 프레임 하나 만들어내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가듯이, 소설가에게도 시도해보지 않은 이야기 틀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건 상당한 비용(시간, 스트레스)이 드는 일이고 그렇게 출시한 신작의 성공 여부에 대한 위험성도 높아질 겁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언 플레밍은 매우 현명한 작법을 구사한 셈이지요.
Commented by 輝明 at 2012/01/09 14:02
트위터에 소개하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물론 소개는 안 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12 23:44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12/01/09 14:17
뻔한 래퍼토리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건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걸 제대로 담고 있어서 그럴지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동아 at 2012/01/09 14:39
적이 나타나야 영웅이 능력을 발현할 기회가 생기고!
애인이 죽어야 새로운 여인을 만날 명분이 생기고!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12/01/09 14:42
이 방식을 이용하면 드라마 줄거리 생성 프로그램도 짤 수 있겠습니다. 줄거리만 짜는 작업이라면 거의 기계적인 수준으로도 가능하겠는데요.
Commented by 그람 at 2012/01/09 15:39
만화나 소설, 드라마, 만화영화도 마찬가지라서 보다보면 어느새 다음 내용에 대사에 행동이 머리속에서 알아서 떠오르게 되더군요. 장르 불문하고 황금률이 존재하긴 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이네스 at 2012/01/09 16:38
저런 빤한 패턴에도 불구하고 몇십년이나 시리즈가 나오는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2/01/09 16:45
007 시리즈의 기-승-전-결이로군요.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본드와 처음에 눈이 맞은 여자는 중간쯤 가서는 죽더군요. 그리고 새로운 여자가 나타나서...
Commented by kuks at 2012/01/09 18:01
007 황금패턴을 가진 사나이?

http://sonnet.egloos.com/4636625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12/01/10 00:04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펑]
Commented by spic at 2012/01/10 12:31
패턴에 정규식이라도 써야할 거 같은 느낌이...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2/01/10 19:15
홈즈도 그렇고 사람들은 이야기 자체의 교묘하고 기기괴괴보다

캐릭터에 열광하는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자이드 at 2012/01/10 22:58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더니...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12/01/12 16:27
잘키운 캐릭터 하나 열스토리 안부럽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2/01/12 23:36
이어 미디어믹스의 전개가...
Commented by Allenait at 2012/01/14 11:51
역시 뻔한 거 갖고도 잘만들면 최고군요
Commented by 기사 at 2012/01/21 16:32
저.....저거!
Commented by Hwoarang at 2012/03/22 13:06
저 만화보고 생각나는데... 슬램덩크에서 정대만과 떡대들이 농구장을 급습했을 때 끝판왕과 싸우던 강백호가 저런 말을 하지요. 니 패턴 다 읽혔다고... 그리고 그 뒤에 끝판왕이 날리는 주먹을 모두 쳐내더니 결국은 실신 시키더라고요.. ㅎㅎ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