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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부를 포격하라 - 나의 대자보(?)

붉은 군대에 들어간다면 브뤼셀 폭격을 자원, 이 유럽연합본부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 유럽통합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유럽 정상들이 여기 모여 이렇게 네 돈, 내 돈 하고 서로 따지고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건 물론 반농담삼아 하는 가상의 외침이지만, 실은 한국의 한 저명 인사의 열변을 약간 고쳐 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독일 통일 운동 입장에서 볼 때 당시의 현지 군주들의 반응도 이정도는 불만스러웠을 게 틀림없다.

이런 종류의 정치운동이 대개 그렇지만, 이런 일은 무한한 근성 내지는 꼴통기질이 필요할 때가 많다. 이익을 계산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은 독립운동 같은 건 잘 하지 못한다. 왜냐면 현실의 벽은 높고 손익을 따져보면 회유에 응하는 것이 이익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럽통합운동은 정서적 의지적 기반이 약한 엘리트 위주의 이성적 운동이란 것이 내가 이 운동을 밝게 보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이 운동이 성공하려면 정체성 정치 측면에서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동력이 더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동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역사엔 혁명적인 변화를 거쳐 그런 일이 벌어진 사례가 멏 차례나 있기 때문에 미래에도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짓는 것은 다소 성급한지도 모른다. 일례로 프랑스인의 형성에 대한 연구들은 프랑스 민족의 형성은 상당히 늦으며, 중세에 독자적인 법률과 문화, 전통을 고수하던 랑그독, 툴루스, 생말로 등의 지역을 통합하고, 아비뇽의 교황령, 게르만계가 많은 알세스-로렌, 켈트족의 브르타뉴 등을 흡수하고, 프로방스어, 브르타뉴어, 알사스어 등을 밀어내고 중앙어를 보급하는 거친 과정이 벌어진 것은 근대의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 유럽통합까지 가는 길에 큰 장애가 많고 동력도 부재한 것은 사실이나, 또 반대로 지구상의 그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통합의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랍, 아프리카 어딜 둘러봐도 유럽만큼 체계적으로 통합이 조율되고 준비된 곳은 없다. 최후의 한 요소가 더해졌을 때 나머지 환경이 불비해 실패할 가능성은 낮은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체성을 중심으로 유럽 통합의 열기가 끓어오른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국제사회의 일대 지각변동일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인구 3억 이상이 뭉친 초강대국이 탄생하게 되는 거니까 말이다. 이는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덩치이며, 그러니 이들과 국경을 맞대게 될 러시아쯤 되면 어떻겠는가.
by sonnet | 2011/11/13 14:18 | 정치 | 트랙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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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rca의 雜想 note at 2011/11/13 16:03

제목 : 그리스 관련 경제학적 배경지식 보충 약간.....^..
그리스 재정위기에 대한 재검토 에 트랙백.요즘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국가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블로그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여러가지 경제학적 이야기가 많이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 트랙백을 건 현재시제님의 글과 리플들도 보시면 케인즈도 나오고 '저축의 역설'도 나오고 유동성 공급에 의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물론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많이 알고계......more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11/13 14:36
21세기에 로마 제국이 다시 등장하는 걸 볼 수도 있겠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3 14:40
오스트리아-헝가리나 오스만투르크 같은 다민족 제국들은 정체성 정치의 전형인 민족주의의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버렸으니 새로운 유럽 통합도 그게 걸맞는 새 정체성 없이는 힘들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11/13 14:43
그래서 터키는 안 돼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23
최근의 터키는 시선을 서방에서 동방으로 돌린 듯한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11/13 15:25
하지만 유럽인들 자체가 혈기방장한 신흥국의 이미지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적극성은 부족한 노년의 이미지인지라...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25
럼스펠드가 '늙은 유럽'을 말할 때, 이미지 자체는 잘 포착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11/13 15:28
프랑스 혁명도 부르주아 엘리트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 엘리트들은 명석하지만 꼴통스러운(표현이 이상한가...) 이들이었기에 혁명과 프랑스 민족의 형성이라는 대업을 성취해낼 수 있어다는 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22
프랑스 혁명은 선동이든 뭐든 일단 대중을 동원하는데 성공한 케이스인데, 유럽통합은 국민국가 위에 추가적인 관료기구들을 계속 만들면서 거기서 엘리트들끼리 뜬구름잡는 덕담을 하는 궁정외교로 흐른다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gggg at 2011/11/13 15:34
알사스-로렌 지방이 국민투표로 프랑스를 선택한 건, 갑갑한 독일의 봉건체제 보다는 프랑스 혁명의 대의인 자유, 평등, 형제애에 공감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유럽인들이 하나의 유럽 민족으로 뭉치기 위해, 현대 유럽에서 모든 유럽인들이 공감할 만한 그런 대의가 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22
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그런 강렬한 대의가 없으니까 일이 지지부진한 것이겠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11/11/13 15:50
'유럽통합'은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보면 점점 진행 중인 것 같기도하고 애매합니다. 물론 아프리카 연합이나 아랍연맹 보다야 수백배는 통합이 진전된 모양새이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0:26
음.. 제 생각엔 유럽이 택했던 기능주의적 접근이 어떤 한계에 부딪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 방식은 처음에 별 기반이 없을 때 시작하긴 좋았지만, 오직 그 방식만 계속 확대 반복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통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드러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at 2011/11/13 16: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12
1. 제가 생각하기에 기본적으로 그런 공동체는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우선 적절한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은 대개 '환경도 조성하면 되지'라고 반론하기 쉬운데, 실은 세상일은 인위적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요소에게 상당부분 지배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유럽통합운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군사적으로 힘을 잃고, 소련의 위협에 노출되고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그나마 입지를 강화하려면 자기들끼리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커졌다는 배경이 있었죠.

그러나 그런 배경이 있나 하면 별로 있는 것 같지 않고, 냉정히 말해서 모든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선 '위대한 정복왕의 등장'같은게 제일 그럴싸하지 않나 싶지만, 그렇게 쓰면 당장 짤릴테니 넘어가고...


2. 유럽통합은 유럽대륙의 Big2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서독의 전략적 제휴를 축으로 보다 작은 나라들을 끌어들인 형태인데, 동아시아에서 그런 식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동아시아에서 거기 비견될 Big2는 중국과 일본인데, 프랑스와 서독이 대략 엇비슷한 크기였던데 비해 동아시아에선 중국이 너무 크고, 또 중국이 주변국에 대해 내세우는 주장도 주변국과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일본 또한 여기에 대해 경계심이 크고요.


3.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동아시아 협력증진 방안에 대해 찬성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런 공동체는 정의상 자연스럽게 '미국을 배제하는' 모임의 성격을 갖게 되어 있고, 그러면 그 안에선 중국이 독보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미국은 APEC처럼 태평양을 강조하면서 내 자리도 있는 그런 모임을 자꾸 가짐으로서 자국이 배제될 가능성을 줄이려고 시도할 것이구요. 따라서 어떤 공동체 방안도 그것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계적인 강대국 세력균형을 교란하지 않는다는 reassurance를 어떻게 제시할지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따라서 제 생각엔 유럽과 반대되는 접근법을 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즉 중일 양대 강국이 한 발짝 물러나서 약소국들이 상황을 주도하게 하고, 이를 추인하고 묻어서 움직임으로서 주변에 강대국 리더십의 위협감을 희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델과 가까운것은 ASEAN+3같은 형식입니다.


썩 만족스럽진 않으나 간단히 의견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sociolib at 2011/11/14 14:08
sonnet/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만, 1번 내용 중 "그런 아이디어"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예 같은 걸로 좀 풀어 말씀해 주실 수 없을까요?
Commented by 질문있어요 at 2011/11/14 19:56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나머지 답은 제 과제인만큼 제가 찾아가야 겠지요 ^^ 정말 감사드려요
Commented by Real at 2011/11/13 16:57
그러나 최근 유로존 위기문제에서의 내부 대응을 본다면,... 과연 유럽합중국의 탄생이 될지는 극히 미지수라고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Real at 2011/11/13 16:57
왠지모르게 글을 읽으니 톰 클랜시의 엔드워(END WAR)의 설정이 생각나는 형태가;;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0:26
현재로서 유럽합중국의 탄생이 회의적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은 다 동의할 겁니다.
Commented by 곤충 at 2011/11/13 19:46
혁명만세! 통일만세! 하면서 돌격하는 근성이 없으니....

현실은 지중해권의 몰락/북해권의 유지로 분단된 유럽....(어디서 많이 보던 스토리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0:27
아아, 나의 신성로마제국이;;
Commented by 무르쉬드 at 2011/11/14 10:56
유럽은 이제 꼴통기질이 강하신 가리발디 같은 양반이 필요할때~
Commented by sonnet at 2011/11/14 11:23
네. 통합을 더 밀고자 한다면요.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11/11/14 14:08
유럽 연합이 각국의 역사 교과서를 고칠 때, '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 대신 '유럽 문명' 을 강조하여 서술하라고 것 역시 '정체성 정치'의 측면에서 새로운 동력을 추가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보통 유럽 연합의 이러한 시도는 '국수주의 / 쇼비니즘을 제거하려는 시도' 로 해석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교육이 '약발' 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요; (휘청)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11/14 18:43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제국령이었던 나라들이 현재는 거의 대부분 제국시절의 가치관과 입장이 박살나고, 역사적 인식 역시 극도로 국수적 민족주의로 돌아선 것을 보면 참 오묘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살생없이 '기능주의적 통합'을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는..
Commented by 보헤미아 at 2011/11/14 21:27
'제국시절의 가치관과 입장'이요? 그 민족들은 제국시절에도 계속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는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11/17 16:10
그런 반란과 '민심'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례가 더 많은 가, 즉 간단히 말해서 제국 시절의 속령들이 제대로된 '민족주의적 인식'을 갖고 반란을 일으켰는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 및 신성로마제국과 소속국 혹은 속령들간의 관계에 대해선 앞으로도 많은 것이 밝혀져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으레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Commented by 보헤미아 at 2011/11/17 23:01
그게 복잡한 문제라서 쉽게 말할 수 없다면 '제국 시절의 가치관'을 쉽게 말할 수 없다고 해야죠. 그리고 같은 식으로 말하자면 한반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일제에 대한 저항이 꼭 제대로 된 민족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일본 이름으로 개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지 않았는가 등을 고려해야 하니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해야 할 겁니다. 물론 단순한 문제는 아니죠. 단순하지 않다는 건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민족주의적 움직임을 보인다고 '일제시대의 가치관'이 박살났다고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1/11/16 16:33
남북통일의 뜻이 아직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한국 지도자들이 여기 모여 이렇게 네 돈, 내 돈 하고 서로 따지고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같은 식으로 북한에 퍼주자는 논리로도 쓰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유럽은 남북한처럼 군사 대치상태가 아니지요. 북한처럼 신용도가 0을 향해 수렴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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