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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불꽃 연설
WMD 포기를 놓고 미국-리비아 간 협상이 진행될 때의 이야기.

스티브와 그의 영국인 동료는 9월 초에 트리폴리로 날아갔다. 중동에서는 흔히 그런 것처럼 그 회담은 몇 번이나 연기되었다. 그들은 지중해 한 끝에 있는 호텔에서 기다렸다. 무사 쿠사는 가다피와 만나면 처음 몇 분 동안은 ‘약간 거칠 것’이라고 그들에게 경고했다. (…) 그들은 가다피의 커다란 사무실로 들어갔다. 개인 컴퓨터가 설치된 커다란 책상 양쪽에 커다란 지구의가 하나씩 있었다(스티브는 가다피가 웹을 서핑하면서 외부세계의 진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다피는 값비싼 이탈리아제 로퍼를 신고, 아프리카의 지도가 인쇄된 번쩍거리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방문자들은 짤막한 소개를 한 후 의자에 앉았다. 무사 쿠사는 마치 무슨 일이 닥칠지 알고 있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그의 통역이 종이철을 꺼냈다. 가다피는 즉시 큰 목소리로 서방 측, 특히 미국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서 통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통역은 가다피가 쏟아 내는 아랍어를 따라가느라고 큰 고역을 치렀다.

장광설이 17분 가량 계속되었을 또 마치 그의 폭언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무사 쿠사의 머리가 올라갔다. 가다피는 기운이 소진된 듯 처음으로 잠깐 말을 멈추더니 미소를 짓고 말했다.
반갑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싶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토의 대상이 되었다.

Tenet, George. At the Center of the Storm: My Years at the CIA. 1st ed. HarperCollins, 2007.
(이남규 역. 『폭풍의 한복판에서』. 서울: 조갑제닷컴, 2009. pp.349-350)

즉 앞에 17분간 욕한 것은 저 한 마디를 꺼내기 위한 연막탄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 아마도 대령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자신이 너무 약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다.



하여간 오늘부로 더이상 카다피의 불꽃 연설(!)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니 인류를 위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긴 한데, 카다피가 왜 그런 식으로 떠드는가에 대해선 올 연초에 BBC에서 본 글이 여러가지 힌트를 주는 것 같아 대충 옮겨 보았다.


카다피의 말은 번역 과정에서 어떻게 사라져 버렸는가. (BBC)
Oliver Miles (전 리비아 주재 영국 대사)

이번 주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의 연설은 그에게 대항하는 “마약중독자들”에 대항해 무기를 들 것을 촉구하는 과도한 수사와 극적 연출, 격렬한 호소를 통해 많은 [외부세계] 시청자들에게 그가 미쳤으며 우스꽝스럽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폭파된 정원처럼 보이는 곳에서 텔레비전 생중계된 화요일의 연설은 많은 군중들이 길거리로 나와 새벽까지 음악과 불꽃놀이를 즐기게 만들었다.

웅변술은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더 이상 하원에서 한 번에 여덟 시간씩 떠들지 않는다. 하지만 카다피는 리비아 바깥의 아랍 세계에서조차 고약한 농담 취급을 받고 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아랍어는 풍부하며 강력하다. 기독교인들에게조차 코란의 몇몇 부분은 시적이며 거의 마술적이라고 할 수 있다(마술은 번역과정에서 완전히 날아간다).

또한 아랍어는 아랍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단일 요소이다. 그걸 제외한다면 그들은 너무나 다양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코란에 기초한 교양 아랍어 어법은 문자 그대로 그 누구의 모국어도 아니다. 모든 아랍인들은 현지 방언으로 말한다. 그들이 교육을 받았다면, 특히 전통 교육을 받았다면 말인데, 그들은 정확한 정통 아랍어를 구사하려는 열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과적으로 문법책으로 아랍어를 공부한 외국인에게 흔히 주어지는 평가는 “당신, 아랍어를 나보다 잘 하는 것 같은데.”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카다피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그는 리비아 방언으로 말한다. 그런데 아랍 방언이란 것은 다른 지역에서 온 아랍인들에겐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한번은 아랍정상회담 석상에서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이 교양인 사회에서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로 카다피를 욕했다. [카다피가 압둘라를 암살하려고 사람을 샀다가 걸렸음 - 역주] 아마도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리비아 지도자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카다피는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던 호스니 무바라크에게 압둘라 왕이 뭐라고 말했는지 물어보았다.

무바라크가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마이크는 꺼져 버렸다.

카다피는 또한 당신이 리비아에서 태어나 자라지 않았다면, 거의 이해할 수 없다. 몇 년 전 카다피가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위성 채널로 런던대 동양-아프리카 칼리지(SOAS)에서 연설한 적이 있었다.

그의 해법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함께 사는 이스라틴이라고 불리는 단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모두 거품을 물만한 이야기였다.

전송된 음성상태는 나빴으며, 게다가 통역도 카다피만큼이나 별로였다. 그 결과 90%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 세션의 좌장이 나서서 청중들에게 사과한 다음, 나한테 리비아 지도자가 한 말을 요약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도 나는 그의 이론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을 적당히 요리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국제사회의 이해가 만들어진다.

카다피의 개인적 스타일은 그의 베두인 [유목민] 출신을 느끼게 한다. 베두인족은 말상대만 주어진다면 말할 거리나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다.

그는 한 번에 서너 시간 정도 떠드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지난 40년 동안 그 주위의 누구도 카다피에게 닥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원고 없이 말하며,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르는 순서대로 말한다.

몇 년 전에 카다피의 사촌 중 한 사람과 만나, 리비아 지도자의 연설은 언제나 격렬하며 거의 언제나 반서방 반자본주의적이어서 그가 리비아에 유치하려는 투자노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장관들은 카다피가 자기 정책에 입힌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녀야 했다.

카다피의 사촌은 미소를 짓더니 더 천천히 다시 말해달라고 하면서 그래야 자기 비서가 받아 적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다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그가 남들을 놀래키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점이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가진 연설에서, 그는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연합 관료주의의 아랍 차별에 빠져들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당신들이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리비아를 아프리카에서 탈퇴시켜 유럽에 집어넣을 것이오.”

나는 카다피의 지난 화요일 연설이 필사적이며 애처롭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연설은 그의 지지자들이나 잠재적 지지자들을 향한 것이었으며,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by sonnet | 2011/10/21 11:22 | 정치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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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장쾌 at 2011/10/21 11:31
잘 보았습니다
지금쯤 카다피는 염라대왕 앞에서 자기변호를 하고있겠군요
잘 하려나...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10/21 11:33
이스라틴 이야기도 오랜만에 듣네요. 사실 모든 국가와 인종, 종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한 번 들으면 뒷목 잡고 쓰러질법한 이야기를 기관총 마냥 쏟아냈다는 점에서 범세계적인 빌리언이 되는 것이 실제 그의 목표는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Commented by 쿠라사다改 at 2011/10/21 11:36
뭐랄까, 이런 평가를 보자면 잘도 저런 사람이 42년이나 장기독재를
할 수 있었구나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10/21 16:04
요즘이야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과거 한국의 독재자들 역시 외부의 시선에는 크게 다를 것 없이 평가 받았다는 것(예 : 신경질적으로 재떨이를 던지고 구일본군 코스프레를 하는 괴팍한 사람)을 생각해보면 나름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少雪緣 at 2011/10/21 12:05
유언.txt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11/10/21 12:36
하지만 인류에겐 아직도 UN 최장시간 연설기록의 보유자, 피델 카스트로 옹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 짧게 한다고 한 게 4시간 반이 조금 못 되었죠 아마?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10/21 12:49
정말 예능적인 인간인 듯...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10/21 13:09
여러모로 인류를 웃기게(?) 해준 그의 뒤를 이어 저세상으로 갈 독재자는 누구일 것인지?
Commented by 오그드루 자하드 at 2011/10/21 13:41
새하얗게 불태웠어.....
Commented by 행인1 at 2011/10/21 15:50
카다피 연설이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이로군요. 그런데 다음번 리비아 지도자의 연설실력은 어떨련지...
Commented at 2011/10/21 15: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Clockoon at 2011/10/21 16:26
다른 것보다 인용하신 책의 '조갑제닷컴'이 인상적이군요.
저기는 좋은 책들이 많은데 항상 광고하는 것은..
Commented by 무지렁이 at 2011/10/21 17:27
예능감은 차베스도 괜찮은 것 같던데요 ㅋ
다혈질적인 성격에 과장섞인 화법까지 카다피를 닮은 것 같은...
Commented by causationist at 2011/10/21 17:27
잡스만큼 그의 죽음이 안타깝진 않다 할지라도 동정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살아온 환경이 그러한데 사상이 극단적으로 박힐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해봅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10/21 18:47
이로서 예능감을 갖춘 독재자가 골로 갔군요.
Commented by 지나가던과객 at 2011/10/22 07:25
카다피 주변에 그를 제대로 교육시킬 사람과 자신이 배울 의지만 있었다면, 최소한 저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격화 at 2011/10/22 08:33
결과적으로 문법책으로 아랍어를 공부한 외국인에게 흔히 주어지는 평가는 “당신, 아랍어를 나보다 잘 하는 것 같은데.”라는 것이다.

-> 문법 교육이 없을 때 일어나는 비극이군요.
Commented by Matthias at 2011/10/22 20:48
지난 40년 동안 그 주위의 누구도 카다피에게 닥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는 원고 없이 말하며,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르는 순서대로 말한다.


OTL...
Commented by 무지렁이 at 2011/10/22 21:12
그가 조금만 일찍 후안 까를로스 1세를 만났더라면...
Commented by ttttt at 2011/10/23 02:21
원고없이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하기.. 원래는 연설을 잘 하고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카다피"죠. ^^
PT도 잘하는 사람은 그렇게 버릇들이고 못하는 사람은 열 번씩 연습하고 점검하죠. 잘 하는 사람이 아무 코치도 안 받고 자기도 느끼지 못하면 그게 몇 년 지나면..
Commented by 곤충 at 2011/10/22 21:37
크크크 문제는 저런 카다피가 몇시간동안 연설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카다피는 정말 통역계의 최종보스라고 해도 믿습니다.
뭐... 아랍어야 솔직히 주변 셈계 언어의 통합화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니;;
Commented by D-Liszt at 2011/10/22 21:44
이스라틴이야 기존의 one-state solution의 반복일 뿐일 텐데 주창자가 카다피였다는 데서..
Commented by ;; at 2011/10/23 13:10
그런데, 히틀러도 외무장관세워놓고 다섯 시간동안 호통친 적이 있다는 얘기가..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11/10/23 17:42
"유럽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
북대서양의 쓰나미가 트리폴리까지 몰려오기는 했습니다만.
Commented at 2011/10/29 21: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10/30 16:29
잘 읽었습니다.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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