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처음 통일되기 전 독일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주도권을 다투던 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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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상황을 더 가속화하기라도 하듯, 소위 ‘위신 투쟁’이라 불리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것은 연방회의 석상에서 오스트리아 측만 담배를 피던 관례를 비스마르크가 깨버린 때문이었다. 비스마르크가 ‘왜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의장에게 직접 불을 청해 담배를 피움으로써 불거진 사건이었다. 그의 선임자이던 로코프는 열렬한 애연가였음에도 그런 전통 아닌 전통을 깨트리지 못했고, 그럴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때마침 군 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비스마르크의 행동은 연방 내 동료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장은 물론 다른 의원들까지 놀라움과 불쾌감을 금치 못하는 기색이었다. 프로이센까지 담배를 피우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다른 국가 대표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심지어 그 일을 각자 본국에 보고하여 자신의 행동 지침을 청할 만큼 예사롭지 않은 ‘국사’로 발전되었다. 결국 각국이 그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가운데 두 강대국만이 반년 가까이 담배를 피우는 형국이었다.
그 이후 바이에른 대사 슈렌크(Karl von Schrenkh)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작센의 노스티츠(Julius Gottlob von Nostitz) 또한 큰 기대를 걸었으나, 내각의 허락을 받아내지 못해 시도조차 못했다. 그러다 하노버 대사 보트머(Bothmer)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노스티츠는 레히베르크-로텐뢰벤(Johann Bernhard von Rechberg-Rothenlöwen, 1806-1899)과 논의한 끝에 자신의 말대로 칼집에서 칼을 빼는 기분으로 그 다음번 회의석상에서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 일로 인한 신경전은 이후 시간이 꽤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 국가의 대표들과 뷔르템베르크와 헤센-다름슈타트의 대표들만이 남게 되었으나, 이들 국가의 명예와 자존심을 감안한다면 ‘거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뷔르템베르크 대표는 그 다음번 모임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절반 정도를 피움으로써 ‘조국을 위해 담배를 피우는 희생자’로서의 전력을 남겼다. 비스마르크에 대한 경쟁의식이 그리 강하지 못했던 헤센-다름슈타트 대사만이 끝까지 금연을 지켰다.
이상의 담배 사건은 한낱 일화에 그치고 말 일은 아니었다. 각국을 대표하는 대사들 사이에서조차 한동안의 신경전 끝에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낼 정도로 그 결과는 비스마르크가 아니면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고, 그 여파도 상상 외로 컸다. 이 담배 사건은 ‘위신 투쟁’인 동시에 그 배후에는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이원주의를 향한 비스마르크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강미현. 『비스마르크 평전 : 비스마르크 또다시 살아나다』. 1st ed. 서울: 에코리브르, 2010. pp.307-308
어릴 때 아동용 전기를 보면서 '배짱의 비스마르크'를 각인시켰던 장면인데, 이번에 좀 더 자세한 묘사를 보니 양대 강국은 그렇다 치고 그 밑에 있던 약소국들의 처신이야말로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