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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지배계층의 청산, 형성, 변신
주말에 『독일 통일과 동독 권력 엘리트 : 동독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일 통일 그리고 권력의 변화』(한독사회학회 편)를 읽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다. 통일이란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을 통에 넣고 주먹구구로 흔드는 거대한 실험 같은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 동독의 지배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띄어 좀 추려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소비에트 점령지역에서는 서독에서처럼 바이마르공화국의 부르주아 사회구조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일어나지 않았다. 동독에서는 사회구조적으로 봤을 때 실제로 혁명이 일어났다. 구 부르주아와 귀족 출신의 기능 엘리트(기업가, 은행가, 군인, 다수의 학자)은 탈나치화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되었다. 또한 1961년까지 서독으로 간 200만 명의 난민 대부분이 부유층이었으므로 상위 계층의 대손실이 초래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구조적 변화 압력이 크게 일어났다. 1940년대와 1950년대 후반부의 사회변동은 동독에서 주장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이탈된 옛 부르주아 계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능 엘리트의 급속한 배치를 의미한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엄청난 교육열망 속에서 새로운 교사, 기술자, 경영자, 고위 행정가, 안전요원, 정치간부들이 양성되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이들 사회주의적 교육상승자들은 대부분 숙련노동자 출신이었다.

교육의 수문을 조기 개방한 것과 책임 있는 직위로의 대량적 상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 독일민주공화국 상층부의 사회적 공간 안에 국가와 당에 충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즉, 사회주의 지배층을 만든 것이다. 이 사회주의 지배층은 세 집단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집단은 권력행정가(지위지향적 환경), 즉 사회주의 법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당과 국가의 간부들이다. 두 번째 집단은 기술분야나 경제학을 전공한 사회주의 산업의 지도자(기술관료적 환경)들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교수나 의사, 그리고 문화창조자 부류가 있다.(인문주의적 환경). 동독 정부는 문화와 교육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공자들에게도 지위상승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사회주의적 지배층은 국가의 지원으로 교육을 통해 지위를 높일 수 있었던 사람들로 구성되었는데,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은 주로 194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의 기간에 동독 상층부에 폭넓게 자리 잡았다.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고 하는 이러한 사회주의 지배층 내에는 소련 스타일의 모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일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기능 엘리트들이 포함된다.(pp.172-173)


이처럼 구 지배층에 대한 광범위한 숙청은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편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수혜 집단의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효과는 1회적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신분상승한 신세력, 즉 사회주의 지배층이 그대로 기득권화되면서 계층이동이 도로 어려워지게 된다.

1960년대 중반 사회주의적 교육혁명이 끝난 후 사회주의 지배층은 자체적으로 충원되었고, 독일민주공화국 후반기에는 마치 연판(Bleiplatte)처럼 전통적 생활세계를 뒤덮었다. 이로 인해 대량적 지위상승이 봉쇄되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이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현저히 감소했다.(pp.174-175)


이 책의 또 다른 필자인 얀 빌고스도 비슷한 평가를 한다.

설립단계 세대. 예컨대 1925~1940년 사이에 태어난 하층계급 출신의 사람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에 대한 감사함에 의해 확고했다. 그에 반해 1980년대 후반 서비스 계급에 속한 자들은 ‘늙은’ 사람들에 의해 계급 상승의 통로가 막혀버렸다는 좌절감에 의해 충성심을 잃어버렸다.(p.93)


보다 구체적인 사례들도 있다.

국가안전부는 인구비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밀경찰이다. 이들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서도 세 종류의 경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1) 하위 관료들은 지속적으로 승진 병목, 혹은 적체 현상을 경험했다.
(2) 고위 간부급들의 고령화가 가속화되었다.
(3) 신규인원은 대개 세습이나 연결망을 통해 자체적으로 충당되었다.

1989년 전체직원 현황에 따르면 기밀요원 50% 이상은 친척 중 최소 한 명이 국가안전부 소속인 것으로 파악되었다.(pp.37-38)


이는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을 괴롭힌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인데, 그들은 끝내 만족스러운 해법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유일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 훨씬 일원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다원적 엘리트 집단 간의 경쟁에 기대는 식의 해법을 취하기 어려웠다.

물론 실험적인 해법이 전혀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한 가지 해법은 주기적으로 기성 엘리트 집단을 숙청하고 계속 밑에서 (덜 오염된) 「신생세력」을 뽑아 그 자리에 꽂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해법에 집착한 대표적인 인물은 마오쩌둥이다. 그가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이나 노동자 혁명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기성 당 간부들을 대체하려 시도한 것은 유명하다. 스탈린의 대숙청도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폭풍과도 같은 대대적인 발탁-이용-숙청 패턴을 반복하거나 끊없는 혁명적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또 지식과 경험, 인적자원의 손실이라는 점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초래되었다. 이런 실험을 해본 나라 사람들은 다시는 이런 짓을 하면 안되겠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동독은 나중에 결국 서독에 흡수통일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적 숙청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었다. 그 결과는.

구동독의 기능 엘리트, 즉 사회주의 지배층은 사회변동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동독에서의 이러한 환경변화는 사회관계의 전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층부는 상층부에, 하층부는 하층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다만 그들 간의 간격이 벌어질 뿐이다. … 독일 통일은 사회의 상층 영역에서 가장 잘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지배층은 사회주의 이후 사회의 현대적 상층부로 도약에 성공했다.(p.181)



Hofmann, Michael. “사회주의 지배층 : 상승과 전환 경험”. 『독일 통일과 동독 권력 엘리트』. 171-183.
Kloss, Oliver. “독일 통일과정에서 동독 권력 엘리트의 처신”. 같은 책. 15-56.
Wielgohs, Jan. “사법적 처벌-배제-사회적 통합 : 1990년 독일 통일 전후 동독 권력 엘리트의 생애주기 모델”. 같은 책. 87-133.
by sonnet | 2011/09/05 12:27 | 정치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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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sianote at 2011/09/05 13:24
하긴 그 어지러운 5호 16국 시기에도 호족이나 귀족동지들은 진짜 권력자 눈 밖에만 제대로 어긋나지 않는다면 잘 살아남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7
그런 처세의 달인이라면 역시 5왕조 8성씨 11천자를 섬겼다는 전설적인 재상 풍도를 꼽을 수 있겠죠. 풍도는 사람들이 연상하기 쉬운 음모와 귀계의 달인도 아니고, 뭐랄까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어느 왕조에도 무해한 인물이라는 게 더 재미있습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09/05 13:53
노멘클라투라..
사람사는 데는 뭐 어디든. 그래도 저긴 정석인 게 맘에 듭니다. 쥬신왕국을 만들어버린 웃동네는 대책없어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7
다만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나름의 재주가 있다고 보아야.
Commented by ttttt at 2011/09/06 10:06
예, 그렇죠. 근데, 걔들도 '진보'를 믿는 작자들일 텐데, 기껏 식민지에서 벗어나 공산주의까지 가놓고는 왜 왕정으로 도돌이표냔 말이죠. 쩝..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10:16
진짜 진보를 믿었는지는 잘 모르겠구요. 아니 젊었을 때는 믿었는데, 정권잡고 나이들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퇴색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만 그런 변화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호지세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정은 집권자가 언젠가는 물러나는 게 기본인 그런 체제인데, 왕정이나 공산정체는 대개 물러나는 것과 관련된 시스템이 잘 안갖추어져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하든가, 자기들끼리 후계자를 계속 정해서 계승하던가 그런 식이죠. 반대파에게 정권을 넘길 수가 없다는 게 대전제라면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무리수를 쓰게 되기가 쉽겠죠.
Commented by ttttt at 2011/09/07 00:47
네, 잘못 적었습니다. "작자들일 텐데" => "작자들이었을 텐데"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9/05 17:32
마지막으로 인용하신 문단은 소위 말하는 '포섭'에 가깝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10:04
결과적으론 포섭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이 서독의 인위적인 선택이라기 보다는, 구동독 엘리트들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서독의 주체적인 행동이라는 뉘앙스가 있는) 포섭보다는 좀 더 나은 단어를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11/09/05 19:17
마지막 문단을 보니 한반도 통일이란것은 머나먼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상층부에 대한 증오가 대단한데 이 탈북자들이 몇만명단위라 정치세력화할수도 있는 상황인데 북한의 상층부는 이것때문에 남한과의 통일을 두려워 한다고 하더군요. 중국이나 미국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은 괜찮아도 말입니다.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9/05 21:06
동구권에서 유학 도중에 한국으로 망명해온 북한 유학생들도 비슷한 지적을 하는 부분을 접한 적이 있었죠. 그간 당한 사람들에 의해 반드시 보복이 있을 거라면서요... 게다가 정치범 수용소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절대 논의에서 뺄 수 없는 문제인데 그 문제에서 자유로울 북한 권력자가 과연 몇이나 될 지...
Commented by net진보 at 2011/09/05 21:31
통일이후....남한태 북한관련 부역자 문건이 나오게되면 그것도 참....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7
아텐보로 / 음. 저것은 범 상류층에 가까운 것이구요. 김정일 일가에 해당하는 동독의 최고 중의 최고지도자들, 호네커 같은 정치국원들은 나이도 많고 통일 이후의 사회에서 물갈이가 되긴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김정일 일가와 소위 이너 서클 정도는 통일 이후에 승자로 남긴 힘들겠죠. 그 다음 단계들 예를 들면 중간관료들이나 공장지배인 같은 사람들은 사실 줄 서기 나름 아닐까요?

탈북자 집단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사실 정치세력으로 응집력이 있나를 저는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북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탈북자 집단이 북한에 들어가 귀국한 임시정부처럼 권력을 접수할 것 같지도 않고, 아니 그 이전에 그들이 한데 뭉칠지부터가 의문.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11/09/05 22:55
이래저래 상층부 포섭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8
그건 통일 당시의 상황이나, 남한측의 정책적 선택이라는 요소도 있으니까 단언할 수 없는 문제긴 한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전반적으로 현 북한 체제보다야 통일 이후 한동안이 계층이동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인위적인 숙청이 없다면 원래 강자가 이후에도 강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Commented by 핫케익 at 2011/09/05 23:51
남한 지배계층도 비슷하게 행동하죠.
대구가 옛날에는 공산주의 이론이 활발 했다고 들었는데,
50년 경상도 지배체제가 형성된 후에는,
보수적인 자본주의 지지자가 된 걸 보면 뭐.

기득권이 형성되면 보수적이 되는건 동서고금의 진리.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9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게 보통 사람들의 심리이듯이, 계층 재생산 경향 자체는 꼭 자본주의나 현실사회주의에만 국한되는게 아니고 봉건사회라든가…, 말씀하신대로 동서고금에 발견되는 흔한 현상일 겁니다.

다만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 이것이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던 이유는 좀 다른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에 따라 이 문제를 끝장내겠다고 공언하면서 집권했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회공학적 처방(부르주아 대숙청, 산업국유화와 농업집단화 등)을 내놓았기 때문이지요.

그 실험이 실패했다는 게 뚜렷해졌을 때, 동독이나 브레주네프 이후의 소련 같은 나라들은 안정을 택해 자신들이 대체했던 구체제와 비슷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고, 마오쩌둥같은 사람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걸 엎어버리고 바닥부터 새로 만드는 제2의 대실험을 위해 달려간 것이구요.
Commented by 일화 at 2011/09/06 13:57
이상주의의 말로가 다 비슷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가 부족해서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프랑스 (부르조아) 혁명이 좌절된 것도 혁명으로 사회적 지위가 상승한 계층이 안정을 추구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기억나네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9/06 16:44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계층이동둔화의 문제, 특히 공산권 국가에서 지도층이 제때 물갈이가 안되는 현상에 관심이 많은데 마오의 시대 이후의 중국이 지도층 교체에 대해서만큼은 비교적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계층 재생산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1/09/07 00:53
역사를 보면 물을 잘타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더군요 그런의미에서

꺼삐딴리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1/09/08 21:19
구동독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간극을 볼려니,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심정이 뭔지 짐작됩니다.

서방 및 소련을 따라잡기엔 한참 모자란 시간인데, 그걸 따라잡으려고 시작한 대약진입네 삼선운동입네 뭐네 하면서 보니까 관료조직에서 벌어지는 트러블들이 혁명세력의 기득권화로 보였을테니......

하지만, 혁명의 총수가 자기 기반인 당까지 확 뒤집어 엎어가며 기득권을 청소하고 혁명의 순수성을 증명해준(?) 덕분에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에 가까운 개혁을 하면서도 지금껏 안정적으로 중원과 강남을 다스리는 토대가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바람에 1990년대 내내 러시아가 죽을 쑤는 동안 중국은 착실하게 발전했군요.

그러고보니 90년대의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 대폭락이 중국이 수출촉진을 위해서 자국통화를 아시아국가들의 그것보다 아주 낮게 가치매김한 것부터 출발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군요.
Commented by intrad2 at 2011/09/10 08:38
1. 문혁이 과연 다수의 중국 인민들에게 "혁명의 순수성"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성공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후 개혁의 성공에 유의미한 기여가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문혁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으니(예: 인적 자원의 손실, 사회적 신뢰관계의 파괴 등), 그것이 개혁개방에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 여부는 조심스럽게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 문혁기의 폭력적 난동으로 중상해를 입거나 그것이 직접 원인이 되어 사망한 사람들만 해도 엄청난 숫자일 것 같은데(아마도 수백만 명 단위?), 설령 문혁이 추후의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가정"(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함)하더라도 과연 그러한 인적 희생에 값하는 것이었지는 또 하나의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批金批共 at 2011/09/09 18:08
이북의 상층부 지배계급을 백두산,낙동강,용남산 줄기라고 한다면 이 애들은 어떤 식으로든 청소하고 가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친일파 청산에 실패해서 무려 광복후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치적 공격의 무기로 작용하고 심지어는 전라좌익(!) 이순신이라고 하거나 특정지역 주민을 무려 임진왜란 까지 소급해서 반쪽발이니 비국민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단순히 통합의 편의를 위해 어영부영 넘기다가는 영구 악제로 남겨질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어떤식으로 통일이 되느냐에 따라 서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 피청산대상에 대한 배려를 해야하는 상황이 오는지는 달라질 수는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상층부가 미꾸라지 처럼 줄타기는 잘 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보아온 것으로는 능력은 쓰레기에 인격은 막장인지라 통일 후 방귀 꽤나 뀐다고 돌아다니면 저라도 테러하고 싶을 듯 합니다. 종파투쟁할 때 그나마 쓸만한 공산주의자도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방안은 남한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인들 스스로 청소해 주는건데... 이건 혁명상황인지라 가능해 보이지는 않군요.
Commented by mokuren at 2011/09/10 00:29
설립단계 세대. 예컨대 1925~1940년 사이에 태어난 하층계급 출신의 사람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에 대한 감사함에 의해 확고했다.

이는 제가 일본에서 보았던, 청년층의 어떤 불만... - 노인네들 너무 오래 쥐고있는데다가 일본은 세계제일장수국이야. 우린 안될거야.. - 과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고, 머지않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입에서도 나올 듯 한 이야기라. 씁쓸하네요.

전쟁후 베이비붐 세대가 정말 행복한 젊은시대와 보람있는 노후시대를 "만국공통" 으로 보내고 있다는 점을 보면, 그들이 여러가지 의미에서 부럽습니다.

"주체" 만 바꾸어 서술해도 맞는 여러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내일에 대한 욕망은 공통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작 동독의 격언은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처한 위험에 대해 국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지도요...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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