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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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Niels Bohr/Schiller)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몇 년 후 보어는 물리학에서 아주 동떨어진 문제와 관련해 [양자역학의] 상보성(complementar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번은 보어가 독일에서 진실(wahrheit)의 상보적인 속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 잠시 생각한 후 그는 명료함(klarheit)이라고 대답했다.

원문이 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Nur die Fülle führt zur Klarheit, Und im Abgrund wohnt die Wahrheit
모든 것이 명료함에 이르러, 진실은 심연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번역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여간.
그런데 다소 의심쩍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를 설명하는 문장으로서는 너무 애매하고 문학적인 표현에 가깝지 않은가? 보어는 위대한 물리학자긴 하지만 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려서 주변 사람들을 당혹케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인물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좀 더 찾아보니 이건 실러(Friedrich von Schiller)가 쓴 시의 마지막 구라고 한다. 제목은 무려 '공자님 말씀'(Sprüche des Konfuzius). 아, 이것이 독일어권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 간에 통용된다는 가보 문구 구사 스킬인 모양이다. 듣는 쪽도 교양이 후달린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그 구절이 무엇인지 정도는 바로 알아들어줘야 한다는.

Sprüche des Konfuzius

1.
Dreifach ist der Schritt der Zeit:
Zögernd kommt die Zukunft hergezogen,
Pfeilschnell ist das Jetzt entflogen,
Ewig still steht die Vergangenheit.

Keine Ungeduld beflügelt
Ihren Schritt, wenn sie verweilt.
Keine Furcht, kein Zweifeln zügelt
Ihre Lauf, wenn sie enteilt.
Keine Reu', kein Zaubersegen
Kann die Stehende bewegen.

Möchtest du beglückt und weise
Endigen des Lebens Reise?
Nimm die Zögernde zum Rat,
Nicht zum Werkzeug deiner Tat,
Wähle nicht die Fliehende zum Freund,
Nicht die Bleibende zum Feind.


2.
Dreifach ist des Raumes Maß.
Rastlos fort ohn' Unterlaß
Strebt die Länge fort in's Weite;
Endlos gießet sich die Breite;
Grundlos senkt die Tiefe sich.

Dir ein Bild sind sie gegeben.
Rastlos vorwärts mußt du streben,
Nie ermüdet stille stehn,
Willst du die Vollendung sehn;
Mußt in's Breite dich entfalten,
Soll sich dir die Welt gestalten;
In die Tiefe muß du steigen,
Soll sich dir das Wesen zeigen.

Nur Beharrung führt zum Ziel,
Nur die Fülle führt zur Klarheit,
Und im Abgrund wohnt die Wahrheit.

시 번역은 어느 나라 말이든 능력 밖이니 접어두고, 경구란 것은 종종 정해진 진리나 정답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듣는 이의 마음 속 화두를 자극해서 그 사람의 고민거리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식으로 작용할 때가 있는데, 이번이 좀 그런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저 문장이 현실에 대한 설명[, 해석, 이론]이 깔끔하게 완성된 것 같을 때, (설명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가정이나 잘 맞지 않아 버린 예외, 중요성이 낮아 보여 무시했던 잡다한 요소들 등등의 이유로) 총체적 진실에서 오히려 멀어질 수 있고, 깔끔한 설명을 과신하게 됨으로서 이를 깨닫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식으로 들렸다. 그게 아마 내가 찜찜해하던 문제라서 그렇게 들렸나 보다.
by sonnet | 2011/09/01 12:31 | 한마디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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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漁夫의 'Questo .. at 2011/09/10 20:07

제목 : 닐스 보어; 정확성과 간명함
오늘의 한마디(Niels Bohr/Schiller)(sonnet님)을 보고 생각이 난 것. Niels Bohr는 '진실과 명료함은 상보적이다'란 말을 이곳 저곳에서 하고 다닌 모양입니다. 그가 세계 평화를 위해 루즈벨트와 처칠에게 원폭의 등장으로 인한 정치 역학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처칠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 모양입니다만. ... ......more

Linked at 호무호무하게 호무호무하는 중 .. at 2011/09/05 05:04

... 람도 있는데 그건 취향 그이상의 무엇은 아니잖슴요. 과벨이나 역벨 글들 보고 진지빤다고 뭐라 그럽니까? 배경지식 없으면 다 비비디바비디마인부우인데. 하지만...여튼 과학은 적어도 사기는 치기 힘들죠. ㅇㅇ. 역사도 좀 그런 경향이 있고...환빠만세다만 카슨상이 처음에 그냥 어렵게 이야기한다와 어려운 ... more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9/01 12:44
톨스토이의 어느 단편에서는 악마가 진실을 감추기 위해 그 위에 '말'을 잔뜩 얹어놓았다고 자랑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1 14:18
이게 보어는 쉴러의 표현을 빌려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딴 의미를 거기 실은 거라서 번역이 까다롭습니다. 독일어로만 문장이 같은거지 우리 입장에선 별 관계 없는 이야기다보니.
Commented by 응헗 at 2011/09/01 12:46
독일어는 모르지만... 제목이 압권이군요... 18세기 당시에도 서양에서 공자가 꽤 인지도가 있었나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1 14:26
네. 중국인들이 서양에 진짜 관심이 없었던 것과 반대로, 서양인들은 중국에 일찍부터 관심이 있었고, 또 연구나 소개를 훨씬 일찍 시작했죠.
Commented by capcold at 2011/09/01 13:59
!@#... 원래 공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쉴러의 독일어시만 보고 해석하면 "끈기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하며 ,전체를 파악하는 것만이 명료함으로 인도하며, 진실은 심연에 놓여있다" 군요. 끈기있게 전체를 보고 깊게 파라는 은근히 친숙한 내용;;
Commented by asianote at 2011/09/01 14:01
헉, 근성론의 시 버전입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1 14:24
저는 세 행의 관계를 어떻게 잡느냐가 좀 망설여지더군요. 목표로 다가가고, 명료함에 이르러도 진실은 여전히 저 밑에 짱박혀 있는 거라서요.
Commented by Luthien at 2011/09/01 14:30
육체는 단명하나 근성은 영원한 것. (...)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11/09/01 15:39
폭룡이 최고다
Commented by 輝明 at 2011/09/03 20:07
느낌상 끈기를 강조하는 것은 중용의 성(誠)을 강조하는 점에서 가져온 것 같군요...
Commented by capcold at 2011/09/01 15:53
!@#... sonnet님/ 아, 그건 바로 앞의 절과 대구를 이루고 있어서요: "결코 가만히 지쳐 서있지 말지어다 - 완성을 보고 싶다면. 당신을 광활함 속에 펼쳐라 - 세계가 펼쳐지도록 하려면. 깊음 속에 들어가라 - 존재를 발견하고 싶다면." ...써놓고 보니까 정말 폭룡의 시. OTL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09:42
김화뷁;;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09/01 17:26
공자님 말씀이라니.. 서양은 동양에 관심이 꽤 많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09:41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유생이 떠오르는) 공자님 말씀의 이미지는 아니겠죠. 먼 동양의 신비, 이런 느낌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긁적 at 2011/09/01 18:08
ㅋ 제가 좋아하는 주제군요.
명료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요. '이러저러한 것은 명료하게 드러났다.', '이러저러한 것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라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것'자체가 명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료하거나 명료하지 않을 수 있는, 그것이 "명료하게"지적(혹은 지시)되지 않는다면 그 대상의 상태(명료함/명료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없겠죠. 요컨데, 무엇이 명료하거나 명료하지 않다고 말할 때에는 명료함이 이미 전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명료하게 한다고 해도, '명료함'그 자체는 그다지 명료하지 않지요. 그런 건 그냥 명료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심연'은 이런 종류의 것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09:56
헉 ^^ 저는 단순무식한 종자여서 그렇게까지는.
저는 현실에 적용할 정도만 되면 approximation이면 또 어떠냐는 쪽인지라, 심연을 꼭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네요.
Commented by eigen at 2011/09/06 02:29
Most (I do not dare to say all) science theory are approx. Approx is valid only for part of the problem. When approx is not valid (for practice), we need more accurate, less approx theory. It happened many times in history.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09:56
eigen / 쇠를 담금질하면 효과가 있다는 practice는 수천 년의 역사가 있는 것인데 반해, 그것이 왜 그런지를 theory로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현대의 일입니다. 그러니 수천 년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많은 대장장이들은 그게 왜 그런지 모른 채 담금질을 해온 셈이죠. 이런 식으로 적지 않은 경우에 theory와 practice는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어떤 경우에는 그 이론이 적당한 응용을 찾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이론과 응용의 수준이 낮아서 적절히 연계되지 못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구요.

연구의 최첨단에 서서 이론의 완성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의 동기(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본문의 서두에서 잠깐 언급되는 와인버그 책에서 길게 다루어집니다)는 꼭 practice와 연계되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와는 또 대조적인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정도의 생각이구요.
Commented by eigen at 2011/09/10 15:28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more accurate theory is needed for practical usage. There are also many cases in which less approx theory is not (yet) needed for practice.
Commented by 긁적 at 2011/09/10 18:01
eigen //
1. 걍 모르시면 모른다고 하세요. 이 주제는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과학과 무관합니다. 제가 eigen님의 지적을 몰라서 저런 댓글을 달았겠습니까? 전 과학은 좋아하지만 과학주의자(내지 과학교도)는 싫어하고, 그런 사람들과 논쟁하는 건 시간낭비입니다.

2. sonnet님이랑 토론을 하고 싶으시면 하셔도 좋으나, 제 덧글 아래에서는 하지 마세요.
Commented by 긁적 at 2011/09/10 18:02
eigen // 좀 강한 입장을 취하는 교수님은 'practical usage'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혐오하십니다. 제가 받아들이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 입장이 ㅂ시같은 건 아닙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11/09/01 18:09
아인슈타인 통일장 이론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09:49
그건 아무래도 닐스 보어에서 연상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evans at 2011/09/01 18:47
마지막의 Und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것 같군요. 확실히 순접으로 보기도 뭔가 껄끄럽게 해놓은 게 재밌네요. 이런 경우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진리는 심연 속에 깃들어 있나니' 식으로 애매하고 평이하게 옮겨 버리고 말지 않을까요.
원의가 어떻든 Bohr-sonnet 님의 해석으로 시가 무척 모던해지고 흥미로워졌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10:06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보기에 뉘앙스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보어가 그걸 상보성을 말할 때 끌어들이는 걸 보면 아주 순탄하게 들리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09/01 20:24
번역할 실력은 안 돼서 영역을 구글링해본 소감은
그렇게 해도 파고들 진리란 언제나 존재한다는 식.. 알프스 너머 알프스?처럼도 들리네요.
Commented by sunlight at 2011/09/02 01:23
이 귀절은 거의 이렇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충만함만이 명료에 이르고 진리는 심연 속에 숨어 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2 09:42
조언 감사합니다. 충만함'만'이가 좋군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1/09/02 11:22
철학 : 검은 방에서 검은고양이 잡기...

형이상학 : 검은 방에서 '있지도 않은' 검은고양이 잡기....

신학 : 검은 방에서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잡다가 마침내 이렇게 외친다.... "잡았다!" 고....

과학 : 검은 방에 불을 켠다.... 검은 고양이의 좌표를 획득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다음 방으로 간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10:11
총장: 각 학과별로 예산을 배분한다.
Commented by 비와일더 at 2011/09/03 00:40
원문이 독일어인가요? 뭐 독일어는 커녕 영어도 버벅대는 입장인지라
본문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은 저와는 무관한 일이겠네요.

근데, 명료함과 진실을 상보적 관계로 본 것에 대해서
닐스는 역시 양자역학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닐스가 진짜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명료함과 진실의 관계는 다분히 상보적 관계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거지요.
진실이 객관적 사실을 의미하고,
명료함이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객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식을 나타낸다면,

스스로 명료하다고 의식할수록 즉, 잘 알고 있다고 느낄수록
그는 객관적 사실에 무지하게 되는 것이고,
객관적 사실에 해박할수록,
그는 점차 잘 모르겠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일종의 소크라테스의 명제와 같은 의미 아닌가요?
아테네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가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고 주장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넷님의 결론도 거의 맞는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9/06 10:10
말씀하신 "다분히"가 마음에 와닿는데요. 꼭 엄밀하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더라도 종종 그렇기도 한다 쯤 되나요. 저도 "다분히 상보적"일 것 같다는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eigen at 2011/09/15 02:23
현실에 대한 설명[, 해석, 이론]이 깔끔하게 완성된 것 같을 때, (설명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가정이나 잘 맞지 않아 버린 예외, 중요성이 낮아 보여 무시했던 잡다한 요소들 등등의 이유로) 총체적 진실에서 오히려 멀어질 수 있고, 깔끔한 설명을 과신하게 됨으로서 이를 깨닫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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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seems that science pursues both clarity and accuracy. The problem is that both are conflicting targets in many cases. But both clarity and accuracy are both improved in long time scale. Although one is compromised for the other in short time scale.
Commented by f2sd3zsa at 2011/09/19 21:24
설명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깔아놓은 가정?
가정의 단순화와 명제의 명료함은 많이 다른 차원의 문제 같습니다만...
단순화된 모형이 필요한 것은 그것에서부터 비로소 탐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세상에 대한 완벽한 모형을 만들어봐야 그건 또다른 세상일뿐이고 그런 모형을 만들 실익은 미미합니다. 그러한 단순화는 인간이 피할수있는게 아닙니다.

사실 보어의 말을 제가 이해를 못하고 있기는 합니다..
명료성과 진리가 왜 근본적으로 양립불가인지도 모르겠고,
그럼에도 똑같이 진리에 대한 설명력을 갖는 것들이 상보적인 속성들일텐데 과연 그런 속성중에 진실성을 대입할수 있는건지 의문입니다.
마치 손거울을 들고 다른 거울을 비춰보는 느낌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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