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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의 고전적 개념
요즘 별로 컨텐츠를 만들지 못해서 예전에 해놨던 번역이라도 조금.

Alfred Vagts의 『군국주의의 역사』는 군국주의라든가 민군관계 같은 주제에 대한 고전(초판:1937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점이 다른 책이 따라올 수 없는 이 책만의 매력을 낳고 있다. 즉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같은 대표적인 군국주의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거 망해버린 이후가 아니라, 이들이 한참 잘나가며 기세를 올리던 시절에 쓰여졌던 만큼, 시체에 칼 꽃는 식의 비판이 아닌 당대의 통찰력이나 용기를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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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의 기본개념과 본질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군대, 모든 전쟁은 군사적 노선(military way)과 군국주의적 노선(militaristic way)을 따라 관리되고 치러졌다. 둘의 차이는 근본적이자 운명을 판가름하는 성격을 갖는다. 군사적 노선은 구체적인 권력의 목표를 최대의 효율성으로 쟁취하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집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최소의 인적 물적 희생으로 달성하고자 한다. 이는 적용 범위가 한정되고 임무도 단일하며 본질적으로 학술적인(scientific) 성격을 갖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군국주의(militarism)는 전쟁이나 군대와 관련된 광범위한 관습, 이해관계, 위신(prestige), 행동, 사고방식을 뜻하는 동시에, [좁은 의미의] 진정한 군사적 목표를 초월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군국주의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 관계로 군사적 노선이 추구하는 목적에 해를 끼치거나 패배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군국주의의 영향은 그 적용범위에 한계가 없다. 군국주의는 사회 모든 곳에 스며들고 모든 산업과 학문에 스며들 수도 있다. 군사적 노선의 학술적 특성을 거부하면서, 군국주의는 카스트, 컬트, 권위와 믿음의 특성들을 보여준다.


군국주의 노선과 군사적 노선의 구별

그러므로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군대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현대적 장비를 요구해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그들이 확보한 인력과 물자를 인도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 군대가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국가의 문민 권력에 의해 결정된 전쟁에 대비해 스스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그들이 스스로 염출된 자금의 용도를 정하고 권력과 명예를 누리며 평시에 병사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과거 전쟁의 규칙에 맞추어 훈련시키는 것 등을 영구적으로 행하려는 욕구를 삼갈 때, ‘허황된’ 내용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경제적 총체와 그것이 산출하는 물자가 갖는 전쟁 잠재력으로부터 추론된 진정한 미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경우 등은 군국주의라고 할 수 없다.

군사적 노선과 군국주의적 노선이 갖는 군대에 의한 인력과 물자의 사용 방법에 대한 두 가지 이질적인 관점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식된 것은 상당히 늦은 시점이었으며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프랑스 제2제국 시기, 정치투쟁 와중에 ‘군국주의’라는 단어와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은 동시대의 개념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 적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개념이 1864년 이후에는 영국으로, 그리고 1870년 이후에는 독일로 퍼져나가면서, 군국주의는 군인에 의한 민간인의 지배, 군사적 요구사항의 과도한 우월성, 국가생활에 있어서 군사적 고려사항, 정신, 이상, 가치척도에 대한 강조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군국주의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국민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고, 복지나 문화를 무시하며, 국가의 가장 우수한 인력을 비생산적인 군 복무에 낭비하는 것을 의미했다.

Vagts, Alfred. A History of Militarism: Civilian and Military. London : Hollis & carter, 2nd. Ed. 1959, pp.13-14
by sonnet | 2011/08/13 19:10 | 정치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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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luegazer at 2011/08/13 19:20
예전에 있었던 편익대첩이 생각나는군요 ㅋㅋ

우리나라의 상당수 좌파는 자신들의 정의롭고 건전한 사회상에서 군대 등의 폭력을 필요악이나 최후의 수단 정도도 아니고 그냥 무작정 배제하는 걸 미덕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3 20:09
그 오래된 일을 ^^
그런데 사실 성공한 좌파 혁명가들치고 군사력을 무시한 사람은 하나도 없죠. 아니 일단 군사력을 경시하면 혁명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죠. 혁명의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 좋아해야 하는 건지도요.
Commented by Bluegazer at 2011/08/13 22:08
그러게 말입니다. 어쩌면 권력과 물리적으로 맞서 싸워야 했던 혁명가 세대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보다는 사회문제에 촛점을 맞추던 사람들이 '비전공' 분야인 정치외교에까지 토를 달기 시작하면서 소위 '병크'가 터지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합니다.

특히 군 관련 전반에 대해 무의식적인 혐오(EBS 강사 사건 당시 '소녀적 혐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ㅋ)나 터부를 갖고 있는 여성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감성적이고 나이브한 반전주의가 그 쪽 대세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상적 깊이나 출발선 자체가 완전히 다른 이런 사람들에게 SPD 수준의 현실주의를 바라기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사람들은 현실주의 수용을 무슨 타락 정도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jane at 2011/08/13 19:21
국가의 가장 우수한 인력을 비생산적인 군 복무에 낭비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건 다 제외하더라도 저건 가슴 깊이 남을 명문장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3 20:11
군대도 일종의 보험 같은거니까 사고가 안 터지면 보험금 날아가는 것이죠. 결국 불필요하게 큰 보험을 든다든가, 별 필요없는 보험을 든다든가 이런 것을 피하기 위해 판단을 잘해야겠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8/13 19:46
1937년에 이런 해석을 내놓다니 탁월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3 20:13
이 책 실제로 읽어보면 간명하게 쓰여져 있고 내용도 재미있습니다. 너무 오래된 책이어서 구하기 좀 힘들어서 그렇지, 볼 기회만 있다면 추천할만합니다.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08/13 21:23
저도 예전의 모 대첩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봐도 국내 상당수 좌파는 군사력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 지상 과제인양 행동하는 것 같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군사력이 없으면 혁명이고 뭐고 없을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8/13 22:07
어찌보면 그만큼 실천적 혁명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혁명에는 피가 따르는 법인데 말이죠;;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8/13 22:34
독일, 일본 적군파의 쇠락을 보면서 나름 학습을 한 걸지도요?

그리고 무기를 진짜 드는 날엔 한국전 때와는 저리가라 할 수준의 반격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도 그들의 심리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spic at 2011/08/16 09:35
반혁명(?) 세력의 군사력이 없어야 혁명이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11/08/13 23:17
‘허황된’ 내용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경제적 총체와 그것이 산출하는 물자가 갖는 전쟁 잠재력으로부터 추론된 진정한 미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경우 등은 군국주의라고 할 수 없다.

헤에. 그렇다면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은 군국주의적이지만 냉전시기의 미국과 소련은 군국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게 되는 걸까요.
Commented by Bluegazer at 2011/08/14 15:49
체제의 유지와 방어에 군사력이 부역하는 게 아니라, 군사력을 위해 체제가 부역하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비로소 군국주의다라는 의미로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소는 서로 상대방의 위협을 과대평가했을지언정 꼬리가 개를 흔드는("wag the dog")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 이상으로 정치/문화적 헤게모니 싸움에 열중했으니.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11/08/14 16:52
해석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6 11:23
저자가 서두에서 military way와 militaristic way를 구분하고 들어가려는 이유는 아무래도 국가가 생존과 안전보장을 위해 적절한 군사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군국주의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닌가 합니다.

근대 이후에 국가의 전쟁동원능력이 놀랍게 발전해 총력전이란 형태로 나타났고 양차 세계대전에서 그 위력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는 점. 또 신무기와 신전술의 조합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다들 똑똑히 보았구요. 이런 상황에서 군비경쟁에 나선다거나, 총력전에 대비한 동원"준비"태세를 갖추었다는 이유만 갖고 어떤 나라를 군국주의라고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정도는 따져보면 각국이 직면한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요.

militaristic way의 좀 다른 예로는 평시의 사회가 전시체제 비슷하게 운영된다거나, 불필요하게 민간생활의 모범을 군대나 전쟁경험에서 집중적으로 찾으려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북한의 "항일 유격대 식으로!"라든가 "150일 전투" 같은 거국적 돌격노동, 중국의 "혁명모범극" 같은 류들이 좋은 예지요.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1/08/14 01:20
잘풀어서 설명한 글이군요
Commented by ewg2f4r at 2011/08/14 08:02
본문을 읽고 댓글들을 읽다보니 제가 제대로 읽은 건지 의심스러워지네요.

"군국주의는 군인에 의한 민간인의 지배, 군사적 요구사항의 과도한 우월성, 국가생활에 있어서 군사적 고려사항, 정신, 이상, 가치척도에 대한 강조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또한 군국주의는 군사적 목적을 위해 국민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고, 복지나 문화를 무시하며, 국가의 가장 우수한 인력을 비생산적인 군 복무에 낭비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부분 말입니다. 군국주의를 이렇게 인식하는것을, 작자는 세상의 잘못된 통념으로 보는 겁니까? 아니면 상황에 따라 맞을수도(허황된 추론에 따라 정착된 경우) 틀릴수도(진정한 필요가 있는 경우) 있는 별개의 차원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는 겁니까? 이도저도 아니면 맞는 소리라고 보는 겁니까?

저는 별개의 차원이라고 새겼습니다만, 댓글들을 보다보니 뭔가 오독한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Bluegazer at 2011/08/14 15:43
아뇨, 저 부분은 군국주의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 저자가 먼저 용어의 범주를 규정한 내용이고, 현재까지도 일반적으로 별 이의없이 통용되는 군국주의의 의미와 잘 부합합니다.

다만 저나 다른 분들 리플은 군국주의의 의미를 저것과 달리 터무니없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sonnet님과 논쟁을 벌이던 어느 분이 생각나서 하는 얘기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6 12:40
제가 예전에 해놨던 초벌번역을 대충 짤라다 붙여서 그런데, 그 문단은 역사적으로 그 단어의 개념 형성과정을 설명이 시작되는 첫 단락이라서 저자가 꼭 지지하는 의견은 아닙니다. 혼란을 일으켜 미안합니다.
Commented by 이네스 at 2011/08/14 08:18
1937년에 이런책이 나오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11/08/14 11:03
내가 보기에 좋지 않으면 군국주의이다 라는 외날개 괴수퇴치 주문.
Commented by 마치래빗 at 2011/08/14 19:25
탁월합니다. 링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6 11:24
네, 반갑습니다.
Commented at 2011/08/14 23: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6 10:04
한 권만 본다면 아무래도 나중에 나온 것이 낫겠죠? 저는 2판을 보고, 초판은 뭐가 바뀌었는지만 주마간산 격으로 넘겨가며 비교해본 정도입니다.
Commented by eigen at 2011/08/18 09:18
박정희 한국?
Commented by 5인치양용포 at 2011/08/18 09:43
박정희가 군사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잡기는 했지만 '군사적 목적을 위해 국민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웠다'고 보기는 힘드니까 군국주의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박정희 시절 군 예산의 비중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게 국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바로 위에 적성국가가 존재하는 상황이니 '미래 전쟁을 준비'하는 범주 내에 충분히 포함된다고 봅니다. 반공을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시민의 복지 등을 무시했던 건 딱히 군국주의가 아니더라도 안전장치 없는 성장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짧은 소견이지만 박정희 정권은 굳이 군국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 없이 그냥 독재 정권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 까 합니다.
물론 정책적으로 군인의 가치척도 등을 적극적으로 민간에 강요했다면 군국주의라고 해도 지장이 없겠지만, 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TendoZinZz at 2011/08/18 12:16
언제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글을 잘 풀어나가시는게 너무나도 부럽네요. 존경합니다 ㅎㅎㅎ
Commented by sonnet at 2011/08/19 09:34
좋게 봐 주시니 제가 감사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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