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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깨기(미셸 푸코)
[인민적 정의에 관하여: 마오주의자와의 대화]
(p.33)
말하자면 형벌체계라는 형식의 이면에는 막강한 권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러한 언술체계의 그물망 안에서 각각의 개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 - 그리하여 인민적 저항에 방패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감옥이나 병원, 또는 노예선, 그리고 유배지로 쫓겨나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 - 즉, 개인이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두려움 - 은 당시엔 대단한 것이었고 혁명 이후에는 더 커져 19세기 내내 대중적 소요가 있을 때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형벌제도가 맡은 세 번째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계급을 주변적이고, 위험스러우며, 사회에 위협을 주는 존재이고, 대중의 찌꺼기이며, 쓰레기라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주아들이 맡은 역할이며, 이 때 동원한 방법이 바로 형벌제도와 감옥, 신문이나 문학작품이었으며, 이러한 매체를 통하여 사회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도덕체계를 구축하여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이념적 장벽을 만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문학과 잡지, 의학과 사회학, 또는 인류학에 동원되었던 범죄자들에 대한 묘사 - 우리는 특히 19세기와 20세기에 이러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는데 - 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형벌제도에 의해서 생겨난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간격, 즉 주로 비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부과되었던 모든 압력은, 부르주아 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에 대항하여 인민적 요소를 악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는 그들을 군인이나 경찰, 협박자나 자객으로 이용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고 감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비단 파시즘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사실들이 형벌제도가 폭동을 진압하는 체계,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체계로 작동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혁명은 사법제도를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가능한 것이며, 또한 형벌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재도입함으로써 은연중에 인민적 정의를 호도하는 구실을 만드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나는 사법제도의 가장 대표적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재판이라는 제도가 형벌제도의 이데올로기적 속성으로 하여금 인민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파고 들어오도록 만들어 주었던 교묘한 형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내 주장은 이러한 모델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pp.47-49)
푸코: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들이 모택동 사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기에 그것이 반드시 혁명적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당신은 프롤레타리아와 주변적인 계급이 이루어내는 새로운 연대를 조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기구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부르주아 국가기구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국가기구의 잔재가 과연 새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움직여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판결하는 사람과 판결 받는 사람 사이에서 법정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결국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법정이 갖는 투쟁적 성격을 얘기하고 있을 때조차도 우리의 논의는 어쩌면 이미 진정한 투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개별 사건마다에 어떠한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 벌써 공권력 - 이미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진 - 의 개입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 역으로 분쟁의 사건마다에 어느 쪽이 옳은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일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법정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일정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판결의 기준이 유형별로 나뉘어져 있고 분쟁 당사자는 이러한 판결에 복종해야 한다는 묵시적인 동의를 강요한다는 점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부르주아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관념이기도 하고요. 즉, 이러한 모든 메커니즘들이 사실은 부르주아가 권력을 사용하기 위해 동원해왔던 상투적인 수법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내가 인민재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특히 지식인이 재판을 맡게 되는 경우에 회의적인 입장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이야말로 그동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사회에 전파시키면서 부르주아의 이익을 대변해 온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발상 자체가 프롤레타리아들이 쳐부수어야 할 이념적 투쟁의 대상이라 하겠으며 새로운 국가기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혁명적 국가기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료제와 사법적 국가기구입니다. 그런데 관료제가 없다면 법정이라는 조직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법정이란 법을 판결하는 관료조직이니까요. 따라서 인민적 정의를 관료제화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인민적 정의를 실현하는 임무를 법정에게 떠맡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빅터: 그러나 인민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푸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지금 나로서는 할 수 없군요. 우리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 둡시다. 프롤레타리아건 아니건 대중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사법제도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형식과 내용 때문에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중세 이후로 그들은 줄곧 사법제도에 대항하여 투쟁해 왔던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러한 사법제도에 대한 투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혁명이 가장 먼저 제거해 버린 것이 바로 사법적 국가기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생긴 파리꼼뮨도 사실은 사법적 국가기구에 대항하기 위한 체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은 기왕에 존재하던 사법적 국가기구 없이도 적들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육이나 보복이라는 방법이 그것이겠죠. 물론 중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법정을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존재로 믿고 사법적 국가기구를 상대로 하는 싸움에 인민재판을 내세우려는 당신들의 의도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인민재판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분법적 도식 위에서 부르주아들이 만들어 놓은 조작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혁명기간 중에 이러한 인민재판이 위험한 이유는, 어차피 법정이라는 제도적 형식을 띄는 이상 그것이 과거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새로운 혁명적 국가기구가 들어선 이후에도 이러한 인민재판이 위험한 이유는, 사법절차라는 것이 은연중에 프롤레타리아와 비 프롤레타리아라는 식으로 계급 간에 간극을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pp.55-56)
사법제도에 대항하는 투쟁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첫째는 기존의 게임규칙에 따라 권력이 사용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존의 법률체계에 의존하여 경찰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부르주아의 정의를 실현한 것이지 인민적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사법체계를 상대로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경찰로부터 도망을 친다든지, 법정에 야유를 퍼붓고 재판관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반 사법적인 행동이라고 할지언정 부르주아의 정의에 대항한 〈대응 정의〉(counter justice)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르주아의 정의에 진정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동안 부르주아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을 잡아다가 법정에 세우고 기존의 법률에 근거하여 그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야 비로소 사법체계를 대신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렌스 지방에서 있었던 인민재판은 대안적 권력이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를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더욱이 정보를 공개하고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도 또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인민재판이 한 일이라고는 결국 정보의 독점을 막았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요. 말하자면 진리에 대한 권력의 횡포와 이러한 진리를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할 것을 막아온 권력을 깨뜨렸다는 의미부여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권력, 즉 재판을 하고 죄를 언도하는 판결권을 획득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렌스에서 있었던 인민재판의 형태는 결코 진정한 우리의 의도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권력과 그 권력이 행사되는 방법은 어느 특정한 경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지속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pp.58-59)
빅터: 그러나 도덕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응 권력(counter power)의 힘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푸코: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무엇이 질책받아야 할 범죄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법정과 같은 제도를 다시 채용하는 것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이러한 재판의 기능이 갖는 유용성이라는 것은, 결국 지금까지의 부르주아 재판이 하나의 허구였으며 그들이 진리라고 강요하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고 권력의 횡포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에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로서도 소위 법정에서의 게릴라 전법이나 인민적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민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은 법정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입니다.

Foucault, Michel. 홍성민 역, 『권력과 지식: 미셸 푸코와의 만남』. Ed. Colin Gordon. 서울: 나남, 1991.


여기서 미셸 푸코와 (마오주의자) 빅터는 흔히 말하는 부르주아적 사법체제의 프레임을 깨고 인민정의를 실현하자는 주제를 놓고 대담을 합니다 두 사람은 기존의 형벌체제와 사법제도가 부르주아 권력을 떠받치는 비밀스런 기능을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대안을 놓고는 의견이 갈립니다. 빅터는 마오쩌둥의 선례를 따라 인민재판을 대안으로 제안하지만, 푸코는 인민재판조차도 부르주아가 짜놓은 틀을 그대로 따라가는 꼴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럼 푸코는 뭐라고 하느냐, 법정같은 형식 없고, 사법적 국가기구 없고, 관료제 없고, … 그럼 그 다음엔 어쩌자는 거냐 몇 번이나 빅터가 추궁을 하는데 약간의 힌트(교육이나 보복은 어떨까)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끝까지 답을 피합니다.

프랑스 재판을 중국식 인민재판으로 바꾸자는 빅터의 제안도 급진적이지만, 푸코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인민재판은 결과가 나쁠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결정만 나면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알거나 배워올 데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푸코의 입장은 폭넓게 뭐뭐뭐를 없애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그 자리에 뭐가 들어가야 할지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따라할래야 따라할 도리가 없죠.
by sonnet | 2011/07/21 08:54 | 정치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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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11/07/21 09:00
푸코의 발언은 왠지 '소거법'같기도 하고 아니면 소위 말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작성 같기도 하군요.
Commented by 켈리 at 2011/07/21 09:02
교육은 그렇다 치고 보복이라 하심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홉스와 로크 이후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군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07/21 09:12
교육이나 보복이라는데... 보복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군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1/07/21 09:13
지식인으로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이념에 기반한 비판적 언설은 하지만,

그 주제가 가진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대책은 내놓지 않음으로서,

나중에 발생할 지도 모를 대책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제안자로서의 정치적/도덕적 책임추궁을 피하는 처세술로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jeltz at 2011/07/21 09:26
welcome to yemen!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7/21 09:59
저도 deokbusin 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튼 미셸 푸코 저양반은 정말 호감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네요.
푸코 저양반이 정신의학에 대해 퍼부은 비난 덕분에 정신의학이 입은 피해를 생각해 봐도 그렇구요...
Commented by Merkyzedek at 2011/07/21 10:35
정신의학이 하지않아도 될 비난으로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뜻인가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7/22 00:50
푸코 선생의 '광기의 역사' 등 주장 덕분에 정신질환이란 존재하지 않고 정신질환자는 단지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억압받는 피박해자라는 인식이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 널리 퍼지는 바람에 정신의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나빠지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피해를 주었지요.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1/07/26 14:13
푸코 선생만 그런게 아니라
훌륭한 사회학자라고 통칭되는 사람들은 최소 한 분야에서 유사과학스러운 주장을 펼치다가 욕먹는게 보통이죠... -_-;;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7/21 10:46
푸코 참 생각해보면...
Commented by 일화 at 2011/07/21 12:09
저도 deokbusin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2)
저러니 소위 지식인이 입만 살았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Commented by WALLㆍⓚ at 2011/07/21 12:50
푸코가 쓸만한 해결책/대안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푸코의 근대 사회/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분석, 그리고 글쓰기와 사유 방식이 평가절하되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현실참여와 발언이 과대평가된 면이 있긴 하지만, 푸코는 단순히 특정 이데올로기로 현실을 재단한 지식인은 아니었죠.
Commented by Graphite at 2011/07/21 13:22
"해답은 독자제위들의 실력향상을 위한 연습문제로 남겨놓기로 하겠다"
※ 솔루션 별도 구매요망
Commented by R모 at 2011/07/21 15:12
제게는 푸코가 '혁명을 한다는 네놈들도 다 똑같은 놈'이라고 까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7/21 15:34
까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그 분야에서 푸코만큼 잘하는 사람도 드물지요.

다만 아무래도 우리가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살다보니 그 문제의 제기와 비판을 넘어서 대안제시를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높은 평가를 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보리차 at 2011/07/21 15:43
푸코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만, 푸코가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는 걸 보고 아 이 사람은 거시적인 관점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너무 거대한 담론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죠. 아무래도 언설이란 게 범위를 넓힐수록 애매해지는 것이니...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7/21 15:53
이쯤되면 푸코가 '진정한 인민정의의 실현'이라는 논제를 처음부터 빅터와는 다른 시점으로 받아들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인민정의의 실현은 현실적으로는 가능한 방법이 없다'고 단정짓고 논의를 진행한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빅터의 대안이 인민재판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든간에 상관없이 계속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빅터만 불쌍하네요[..]
Commented by ttttt at 2011/07/22 00:36
"나도 지금 사법제도 별론데, 인민재판은 답이 아니라고 봐" 이런 얘기가 되나요.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탓할 수는 없군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7/22 09:59
제 생각은 푸코가 '대안 없음'을 단정짓고 논의에 나선거라면 처음부터 거의 쓸모가 없는 논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푸코가 빅터의 대안을 비판하거나 반대할 목적으로 논의를 진행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럴 목적이 있었다면 위와 같은 긴 대화를 진행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냥 결론이 대안 없음일 뿐이지;;
Commented by ttttt at 2011/07/22 11:27
그러니까 푸코는 한담하고 있고 빅터는 푸코를 설득하려고 열내고 있고...인가요? ^^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7/22 12:47
한마디로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매스드라이버 at 2011/07/21 15:53
...독단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억압적이라고 단정짓고는, 아예 시스템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황당한 주장이군요. 무책임하기로 푸코 같은 지식인을 따를 사람이 드물겠죠. 지식인은 그저 뭐든지 입만 놀리면 되고, 인민대중은 잠자코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식이니까요.
Commented by 긁적 at 2011/07/21 18:40
ㅋㅋㅋ 본시 훌륭한 철학자는 끝내주는 관점을 제시하고, 그 관점의 세부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지요. 그래야그보다 덜 훌륭한(....이라고 말하면 혼나겠지만) 철학자들에게 할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08/12 13:30
모든 제도는 필연적으로 억압적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도 없이는 사회가 존속할 수 없다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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