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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복지국가의 아버지
비스마르크는 종종 ‘근대 복지국가’의 진정한 ‘아버지’로 찬양받지만, 디즈레일리의 경우 그런 증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비스마르크는 단지 성가신 베벨Bebel 주도의 사회주의자들을 좌절시키고 약화시킬 목적으로 실업 및 질병 보험 법안을 제안했을 뿐이며, 결국 그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골수 보수주의자이며 프러시아의 융커 출신인 그는 자신의 법안에 대해 생각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방대한 회고록에서도 그 법안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비스마르크의 철학에 대한 그 법안들의 관계는 1909년 처칠의 일탈된 행동이 ‘그의’ 평생의 신념에 대해 가진 관계와 지극히 유사하다. 당시 처칠은 당을 탈당하여 로이드조지Lloyd George의 거의 혁명적인 예산을 지지한 바 있었다. 1909년 처칠은 실제로 상원의 권한 약화를 지지했고 심지어는 당시 의회에서 모종의 절주(節酒) 조치를 지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정부에 대한 그의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있어서의 실질적이고 영구적인 변화가 그 동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2차 대전 중 스탈린 및 소련과의 포옹[화해] -오히려 그가 그들을 포옹했다고 할 수도 있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전쟁이 가까스로 종결되자마자, 재선에 나선 초기 선거 유세에서 그가 “의심할 여지없이 사회주의는 전체주의 및 국가에 대한 저속한 숭배와 뗄 수 없는 관계다”라고 선언했을 때, 전시에 그와 동료 관계였던 사회주의자 애틀리Attlee 및 베빈Bevin과의 관계도 이미 종말을 맞이했다. 그가 영국에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면 그 정부가 즉각적으로 ‘게슈타포와 같은Gestapo-like’ 비밀경찰을 설치할 것이라는 그의 확신을 앞의 말에 덧붙였다. 이것이 본래의 처칠이고, 버크적인 처칠이며, 토지 재산, 귀족제, 군주제, 제국에 무한히 헌신적인 처칠의 진면모인 것이다.

Nisbet, Robert., Conservatism: Dream and Reality,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강정인,김상우 역,『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문학과지성사, 1997, pp.144-145)
by sonnet | 2011/06/10 09:13 | 정치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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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1/06/10 09:16
그러고 보니 처칠이나 비스마르크나 청년시절 한가닥 하는 왈가닥들이었는데, 비스마르크는 고친 거 같은데, 처칠은 왈가닥 버릇은 못 고친 듯 (...)
Commented by 에드워디안 at 2011/06/10 10:04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본래 다혈질에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철혈재상이었습죠.ㅋ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06/10 10:38
그리고 보니 둘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군요. 처칠이야 노벨문학상 수상자고, 비스마르크의 회고록도 매우 뛰어난 필력으로 유명하죠.
Commented by Madian at 2011/06/13 08:46
뛰어난 문학적 재능으로 전보의 짜깁기를 해낸다던가....
Commented by 에드워디안 at 2011/06/10 10:22
19세기에 활약한 앙시앵 레짐(18세기)형 정치가였던 비스마르크의 입장에서 산업화 시대에 민주주의가 갖는 정치-사회적 의미를 이해하기란 애시당초 불가능했을 겁니다. 사회주의는 더더욱 말할 필요조차 없고...

그나마 집권 말기에 갈수록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관심도 점차 식어버린 듯 하더군요.ㅋ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4 16:27
집권 말기에는 그 자신이 구세대취급받으며 한편 충성의 대상을 잃어버린 셈이라..

하지만, 그 자신이 나폴레옹 이후 세대기 때문에 복지정책이란 걸 시행할 생각이라도 했을 겁니다. 이런 걸 처음 시작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산물이면서도 그 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을 앞서가는 통찰력이나 실행의지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해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대공 at 2011/06/10 10:28
그 포스팅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일화 at 2011/06/10 10:42
이게 바로 저열한 동기에서 비롯된 가치있는 일의 예시인건가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1/06/10 10:52
호남 대지주 출신이었던 김성수 선생의 토지개혁에 대한 입장하고도 약간은 매칭이 되네요... 원래 토지개혁에 대해서 반대하다가 결국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가...

1. 버텨봤자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 안하면 좌파 애들한테 혁명의 빌미나 줄 판이고...
3. 덤으로 북쪽 애들의 토지개혁은 어차피 당이 다시 토지를 몰수할 구라개혁인 반면 남쪽의 토지개혁은 소유권까지 넘겨주는 진정한 토지개혁....

정도였던 것 같네요...

Commented by umberto at 2011/06/12 02:22
흐흐... 역시 사람 생각이란게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토지개혁에 대한 김성수의 태도가 생각 났습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11/06/12 17:17
위의 논리로 동료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다녔고 결국 토지개혁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사실 남쪽에서의 유상몰수/유상분배 체계였기 때문에 토지자본가들로서는 한 번 현찰을 쥐고 산업자본이나 상업자본으로 전환해 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딜이 될 만한 것이었고, 국가로서는 일종의 매매 중개의 역할에서 선을 그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덜했고, 농민들로서는 명확히 '구매'를 하는 셈이기 때문에 3자합의가 절충될 개연성이 컸더라는...
Commented by 암호 at 2011/06/30 16:22
예전 김립이 소련에게서 받은 자금이 김립이 죽은 후, 일부가 동아일보에 들어간 말이 있더군요. 그걸 보아서인지, 여운형과 조봉암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여서 그랬는지, 김성수가 이걸 추진한 원인이 이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추측을 하지요.
(김립을 개인적 감정으로 죽이면서, 돈도 못 챙겨서 운영능력이 그라운드 제로급인 모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가 완전히 그라운드 제로가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6/10 10:56
닉슨이 중국에 갔다고 해서 그의 패주적 속성[..]이 변하지는 않았던 것과 일맥상통할지도요. 물론 닉슨을 기점으로 미국과 친해진 중국 역시 남몰래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법한 행동을 지속해왔고;;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0 16:09
그런데, 처음 시작한 사람의 본래 의도와는 조금 다를 지라도 역사적으로 괜찮은 사례가 된 게 찾아보면 여럿 있쟎아요? 이런 사례는 다다익선인 것 같은데. :)
Commented by 학상 at 2011/06/10 17:05
사실 비스마르크 슨(승)상님의 일생과 관련된 저작들을 읽다보면 매번 확신하게 되는게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하는구나야~' (....)

군역 말기에 앵겔스 평전과 비스마르크 평전을 같이 보고 있었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도 결론은 '역시 여자를 잘 만나야...'
Commented by d/s at 2011/06/10 22:43
반면에 한국엔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행위더라도 상대 진영에서 나온 소리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무리에, 한술 더 떠서 이미 이뤄진거라도 몽땅 갈아없은 다음 다시 같은 일을 하는, 말 그대로 빵값이 오르는 것도 내리는 것도 아닌 나치가 정한 빵값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1 13:40
대통령 전용기 도입건을 생각하면 그 반대편도 만만챦죠. 결사반대해놓고는 정권바뀌니 바로 도입하자고 상정하는 킁...
Commented by 마즈 at 2011/06/12 06:54
뭐 대통령전용기건뿐인가여;;;;정치에있어서 좌우를 넘나드는 병신력보존의 법칙은 아직도 존재합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3 06:56
네, 정말.. 내가 할 일 남이 대신 수고해해줬으면 그냥 고맙게 받으면 다시 돌아올 자기 턴에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애들같아요.
Commented by 개그 at 2011/06/11 15:41
확실히 현실적인 면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시대의 요구나 필요성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동기야 어찌 됐건 그래도 악착같이 버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입니다. 뭐 이건 보수주의자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게도 마찬가지지만요.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3 06:53
장하준씨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보면 민주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주제는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걸맞지 않는 민주화 수준을 강요한다 운운하는 얘기입니다만 그거와는 별도로 사실관계만 읽으면 이런 게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재산유무에 상관없이 성인남녀가 평등하게 투표권을 갖는 선거를
선진국 자신들은 2차대전 뒤로 꽤 지나서 도입한 나라가 여럿인데
우리 나라는 첫 선거부터 그랬다고 하더군요.

요즘 아랍권의 여성 인권이나 여성 투표권 기사를 보다가 저걸 떠올렸는데,
만약 우리 나라도 남자만 투표하는 걸로 첫 선거를 시작했거나 재산정도가 투표권에 상관이 있었다면 그걸 개선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06/14 16:35
덧달면,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 이후 헌법을 만들었고 또 선거제도도 개선했습니다. 그는 그걸 통해 자유주의자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는 얘기도 있고, 또 신흥 노동계층에게 복지를 주고 표도 주면 사회주의/공산주의/카톨릭계열 정당으로 기울지 않고 정부에게 표를 던질 거라 생각했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래도 유권자들은 그 바람을 안 들어줬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메테르니히와 같이 놓을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라 생각하는데.. 비스마르크는 공산주의는 일관되게 탄압했지만, 원내 정당들과의 연합 성향은 집권 초기와 후기가 다른데, 자기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나쁘게 말하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이용해먹기) 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06/21 13:50
비스마르크는 영국보다 앞서서 모든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지만, 정작 이렇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는 별다른 권한이 없었기에(예산심의권이 유일한 권한이고, 영국과 달리 내각에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었지요. 내각은 황제가 임명하는 재상의 관할하에 있었고, 군부는 심지어 재상의 통제도 받지 않는 황제 직속 기관...) 민의를 반영할 수 없었지요.
Commented by ttttt at 2011/06/23 09:40
그랬죠. 하지만 당시 다른 나라는 더 나아서 bottom up방식으로 국가중대사를 결정했냐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선 별 효력이 있었나 싶지만 그게 전통이 되고 유효하게 됐기 때문에 평가해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른 얘기로, 이를테면 기대 수명이 오륙십살이던 시절, 사십대 이하가 아주 많던 인구가 젊은 시절에 사회보험이니 노후니 이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런 말 안 하죠). 우리 나라 박통시절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fatman at 2011/06/13 07:53
과거 도덕책에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악한 의도로 한 행동이 반드시 악한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해야 한다고 그야말로 도덕책스러운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생각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6/15 07:39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 함은 큰 힘이나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 그의 행동이 대개 자신과 가까운 좁은 범위에만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사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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