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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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비즘과 사우디아라비아 건국기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밝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에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몹시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눈을 활짝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행동한다. - T.E. Lawrence -


1. 이븐 압둘와합, 큰 뜻을 품고 떨쳐 일어서다

무함마드 이븐 압둘와합(1703~1792)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수도인 리야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쯤 떨어진 우아이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과 조부도 이슬람 판관(Qadi)와 이슬람법 해설자(Mufti)를 지낸 바 있어 이븐 압둘와합은 가학을 전수받아 어린 나이부터 이 분야에 재능을 나타낸다. 좀 더 커서는 메디나, 바스라 등으로 가서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사사하고 또 논쟁하며 학문을 닦았다. 그의 학풍은 아흐마드 이븐 한발이나 이븐 타이미야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이윽고 일가를 이루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에 그는 큰 뜻을 펼치고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보니, 그가 보기에 상황은 개판이었다. 고향 사람들, 즉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믿는 이슬람은 고도로 토착화되어 있었다. 주발라 지역에는 자이드 이븐 알카탑(제2대 정통칼리프 우마르의 형제로 순교자임)의 무덤을 숭배했고, 다르리야 지역에서는 조상의 무덤에 사당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후바이라 계곡에 있는 다라르 이븐 아즈와르 사당은 성지가 되어 있었고, 발리다툴 피다 지역의 고목(古木)은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기도 장소로, 만푸하 지역의 한 종려나무는 결혼생활로 고민하는 이들이 찾아와 비는 곳이 되어 있었다.

이에 이븐 압둘와합은 크게 떨쳐 일어나 이런 온갖 이단을 일소하고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정력적인 설교자이자 선동가여서 곧 따르는 제자들이 늘어났다. 그는 제자들을 몰고 다니며 지역 주민들의 토속신앙의 중심지이던 고분이나 묘당을 이단으로 규정해 차례차례 파괴하는 한편, 이슬람법을 엄격히 적용해 간통을 저지른 남녀를 돌로 쳐 죽였다.

그러자 갑작스레 자신들의 생활을 개조당하게 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치솟았다. 또한 성인들의 묘당을 관리하면서 참배객들이 쓰는 돈을 수입원으로 삼아온 지역 유지들에게도 이들의 종교개혁운동은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이븐 압둘와합의 제자들 또한 기세등등했다. 자신들은 진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현지 통치자들은 이븐 압둘와합과 제자들 편을 들 것인지 아니면 현지 관습의 편을 들 것인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아이나의 통치자는 고민 끝에 결국 이븐 압둘와합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통고하게 된다.


2. 이븐 사우드, 복룡을 만나다

쫓겨난 이븐 압둘와합은 남서쪽으로 25km쯤 내려온 곳에 있는 다리아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곳의 통치자가 바로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로, 현 사우디아라비아 왕조의 직계 조상이다. 이븐 사우드는 형제들을 이끌고 압둘와합을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그는 미신이나 우상숭배 같은 온갖 이단을 격렬히 비난한 뒤 이슬람을 바로 세우려면 일위일체의 유일신 사상 엄수, 선행장려 악행퇴치, 성전(jihad)의 세 가지 방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이븐 사우드는 숙고 끝에 이븐 압둘와합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그가 펼치고 있는 꾸란의 가르침과 예언자의 언행과 전통에만 근거한 통치이념과 이슬람 사상에 입각해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협정(Bayat)을 맺는다. 1740년의 일이었다.

이리하여 사우드 가문의 유목부족 무력에 와하비파 이슬람부흥 이데올로기가 처음으로 결합된다. 사우드 가문 수장은 와하비즘을 수용하고 종교개혁가로부터 종교수장 '이맘'의 호칭을 인정받았고, 반대로 그는 종교개혁가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 혼인동맹을 맺음으로서 이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보강했다. 이들의 결합은 곧 놀랄만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난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와하비파 근본주의 이슬람 전파에 반대하는 주변 부족장과의 마찰이 심화되자, 이들은 지역을 방어하고 지지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성전(Jihad)를 선포한다. 그리고 주변의 오아시스와 마을들을 차례차례 정복하여 영토를 넓혀 나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속해 있던 나즈드 지방(아라비아 반도 중부)을 정복한 후, 이슬람의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위치한 히자즈 지역까지 점령해 판도를 한껏 넓힌다. 이것이 제1 사우디국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븐 압둘와합의 행보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즉 그릇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앞에 유일신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지도자가 나타나지만, 고향에서 박해를 받고 쫓겨나는데, 후에 세력을 키워 자신들을 쫓아낸 자들을 정복하고 가르침을 널리 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종교적 열정으로 동기부여된 아랍인들의 탁월한 정복 능력까지도.

다리아 지역의 작은 부족국가에서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지배하게 된 제1 사우디국

여기서 잠깐 이븐 압둘와합의 주요 가르침을 정리해 보자.
첫째, 예언자 무함마드를 통해서 계시된 꾸란을 일점일획도 수정되거나 변질되거나 보완되지 않은 원본대로 믿는 정통 이슬람이어야 한다.
둘째, 꾸란과 예언자의 전통을 통치이념으로 한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고 지구촌 방방곡곡에 이슬람을 전파한다.
셋째, 우상숭배와 미신과 다신론 생각에서 완전히 해방된 일위일체의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넷째, 무슬림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통을 답습하고(Ittibaa) 그분과 관련되지 않은 이단(Biddah)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다섯째, 이슬람의 네 개 법학(Fiqh)파의 학설을 모두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 그 중 한 법학파의 학설만을 맹목적으로 모방(Taqlid)해서는 아니 되며, 네 개 법학파의 학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검증된 정통 언행록의 가르침에 모순될 때는 어느 학파의 학설에 우선권을 두어서도 아니 된다.
여섯째, 무슬림 각 개인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슬람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일곱째, 점령이나 침략을 통해서 이슬람법을 적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꾸란의 가르침과 예언자의 전통에 따라 성전을 준비하는 것은 권장사항이다.


(*) 사우드-와하비 동맹은 실제로는 정복사업에 매진해 왔고, 이를 통해 그들 식의 교리 해석을 강제하였다.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대변함에 틀림없다는, 와하비들의 종교적 열정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1802년, 타협을 모르는 와하비 전사들은 이라크 나자프에 있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무덤과 카르발라에 있는 후사인 이븐 알리 무덤을 습격해 파괴했다. 성인의 묘당 숭배 따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쉬아파의 세계관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진정한 후계자들이자 그들이 모시는 이맘들 중 첫 번째와 세 번째 이맘이었다. 그 덕에 이듬해에는, 원한을 품은 쉬아 암살자의 손에 제1 사우드국의 제2대 이맘 압둘아지즈가 척살되기도 한다.


3. 오스만 술탄은 크게 노하고, 무함마드 알리는 사우드 일족을 정벌하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사우드 가문이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한데 이르러 시대의 흐름은 역풍으로 바뀌게 된다. 원래 사우드 가문이 자리잡고 있던 나즈드 지방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복속되어 있기는 했지만, 단지 명목상으로만 그러했다. 나즈드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사막지역으로 소수의 오아시스와 집락에 의존해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세계였다. 이런 척박한 고장을 군대를 보내어 점령하고 직접 통치한다는 것은 투르크인들에 있어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따라서 오스만 술탄들은 나즈드의 유목민 부족장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지내는 정도는 어지간하면 내버려 두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히자즈까지, 특히 이슬람의 양대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하게 되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1517년 살림 1세가 맘루크조를 멸하고 이집트에 총독을 두어 다스린 이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전 무슬림 세계의 종주국이었고 역대 오스만 술탄은 칼리파로서 무슬림 세계의 정신적 수장이었다. 또한 이 이집트 정복을 통해 술탄 살림 1세는 종교적으로 귀중한 〈성스런 두 성지의 봉사자khadim al-haramayni as-sharifayni〉란 칭호(laqab)를 얻게 된다. 참고로 이는 현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공식 직함이기도 하다. 이 칭호의 가치를 느껴보기 위해 1980년대 중반 사우디의 파하드 왕이 이 칭호를 자신에게 붙이면서 했던 연설을 잠시 살펴보자.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알라 하나님의의 이름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왕으로 취임한 이래 왕이란 칭호 대신 줄곧 희망해 왔던 ‘두 신성한 사원의 수호자’라는 칭호로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이 명칭은 공식 칭호로 채택될 것이며 왕실회의에서 이 새로운 칭호사용에 관한 행정절차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전세계 무슬림의 중요 의무인 성지순례를 안전하게 보장한다는 것을 통해 해당 군주는 호교자로서 강력한 종교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스만 술탄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도전하는 신흥 세력으로서 사우드-와하비 동맹이 대두하게 된 것이다.

메카와 메디나를 점령한 와하비 전사들은 자기들 동네에서 해왔던 식으로 '이단'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또한 멀리서 성지순례차 찾아온, 그들과 다른 관습을 갖고 있는 무슬림들을 탄압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순수한 권선징악일 뿐이었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유사한 갈등, 즉 올바른 종교적 실천, 순례객과 관련된 경제적 이익, 해당 지역의 패권 등을 둘러싼 갈등이 분출되었다. 이는 〈성스런 두 성지의 수호자〉가 제 역할을 하는 이상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쇠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직접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는 대신 사실상 독립을 누리고 있던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를 시켜 이들을 치도록 했다. 이에 그는 아들들에게 군대를 주어 사우드 일족 정벌에 나선다. 이것이 오스만-사우드 전쟁(1811~1818)이다.

여러 해에 걸친 싸움 끝에 이집트 총독의 아들 이브라힘 파샤는 나즈드 지방의 거점들을 차례 차례 무너뜨리며 진격해 사우드 집안의 본거지 다리아를 포위한다. 다섯 달에 걸친 포위 끝에 결국 사우드 가문이 항복하자, 그들은 다리아를 파괴하고 지도층을 포로로 잡아갔다. 사우드의 마지막 군주 압둘라 빈 사우드와 여러 와하비 종교지도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로 이송된 끝에 처형된다.
나지드 정벌: 이브라힘 퍄사가 이끄는 이집트군의 진격로


4. 사우드 가문은 다시 일어나고, 라시드 가문이 사우드를 치다

이리하여 제1 사우드국은 멸망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우드 집안의 끝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은 19세기 내내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고, 나즈드 지방은 여전히 이익은 없고 지키기는 힘든 척박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제국은 큰 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이 지역을 대충 방치하면서 부족들간의 경합을 교묘히 부추겨 관리하는 옛 정책으로 회귀한다.

살아남은 사우드 일족과 이븐 압둘와합의 후손들(이제 알 쉐이크 가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됨)은 사우드-와하비 동맹을 재정비한 다음 왕국 부흥에 나선다. 이들은 파괴된 다리아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리야드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고, 이전과 동일하게 와하비 성직자들로부터 '이맘' 칭호를 제수받아 사용했다. 이것이 제2 사우드국(1824~1891)이다. 이들은 나즈드 지방의 상당부분을 회복하지만, 지난번 망국에서 아픈 교훈을 얻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능력부족이었는지는 몰라도 히자즈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공격하는 것은 삼간다.
전성기의 제2 사우드국


19세기 후반 들어 제2 사우드국은 형제간의 내분으로 심각하게 약화된다. 그리고 이 틈을 노려 경쟁 세력, 즉 나즈드 북부에 자리잡은 샴마르 부족알 라시드 가문이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1884년 알 사우드/알 셰이크 동맹은 알 라시드 가문에게 크게 패한다. 승자인 무함마드 이븐 라시드는 사우드 가문을 복속시키고 그들이 리야드의 통치자로 남아있게 허용했다. 1891년 사우드 가문의 압델 라흐만은 라시드 가문에 대항해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만, 참패하고 쿠웨이트로 탈출한다.

제2 사우드국과 경합한 알-라시드 군주국. 그들의 중심지는 보다 북서쪽의 하일이었다.



5. 압델 아지즈는 세 번째 건국을 노리고, 와하비는 형제단을 결성하다

이리하여 제2 사우드국도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사우드 남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쿠웨이트에 망명간 압델 라흐만의 아들 중에 압델 아지즈란 소년이 있었다. 그는 쿠웨이트 군주 무바라크 알 사바의 보호 아래서 그의 노련한 통치술을 보고 배우며, 조상들의 땅을 되찾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다. 그가 현 제3제국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건국왕 압델 아지즈 빈 압델 라흐만 알 파이잘 알 사우드이다.

압델 아지즈는 청년이 되자, 형제 및 사촌들을 모아 유서 깊은 유목부족의 전통을 계승해, 마적단(raiders)을 꾸린다. 그리고 라시드 가문이 통치하고 있는 나지드 지역 이곳 저곳을 히트앤드런으로 털며 돈도 벌고 전투경험을 쌓는다. 경험이 좀 쌓이고 나자, 그는 아버지의 도읍이었던 리야드를 되찾기로 결심한다. 그는 대담하게도 40인의 도적추종자만 이끌고 리야드를 기습, 라시드 가문이 임명한 태수를 죽이고 그곳을 점령한다. 그리고는 이 지역에 흩어져 있는 사우드 가문의 옛 추종자들과 알 셰이크 가문의 와하비들에게 격문을 띄워 봉기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1902년의 일이었다.

이후 10여 년에 걸쳐 압델 아지즈가 이끄는 사우드 가문과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원을 받는 라시드 가문 사이에 치열한 부족 전쟁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이븐 사우드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부락과 부족들을 공격해 복속시키고는, 그곳에 와하비 포교사들을 보내어 부족민들에게 근본주의적 이슬람 신앙을 전파한다. 이를 통해 사상적 통일을 노린 것이다.

그 결과 와하비식 근본주의 이슬람 신앙에 눈뜬 청년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민병대가 만들어진다. 이름하여 형제단(Ikhwan)(**). 형제단은 대단히 독특한 집단이었다. 보통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들은 자기 부족에게만 충성을 바친다. 그래서 일시적이고 취약한 부족 동맹을 통해 세력을 형성하더라도 매수와 배신, 반란이 끊이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형제단은 달랐다. 형제단 대원들은 자기 부족 사람들보다도 같은 와하비식 신앙을 신봉하는 '형제'단원들 서로에게 더 큰 충성을 보였다. 그들은 이슬람의 정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한 난폭하고 결의에 찬 신앙 공동체였다.
(**) 이집트의 하산 알 반나가 설립한 '무슬림 형제단'과는 무관한 조직임

또한 아라비아의 유목민들에게 있어 습격은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은 낙타를 타고 몰려와서 돈될만한 것을 약탈하지만, 불필요한 파괴나 살육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에 형제단은 그런 행동양식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부정하다거나 경건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없이 죽이고 부쉈다. 술, 물담배, 수놓은 비단옷, 도박, 점복과 요술 등은 금지였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약탈이 아니라 정화를 추구했다.

근대적인 것들도 흔히 비난의 대상이었다. 전화, 라디오, 자동차 등. 형제단의 구역에 트럭이 처음 출현했을 때, 그들은 트럭을 불지르고 운전수를 걸어서 도망가도록 만들었다.

압델 아지즈에게 있어 형제단과 같은 부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남들에겐 없는 커다란 자산이었다. 베두인 유목민들의 세계에서 자기 피붙이들을 넘어 더 폭넓은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었고 용맹했으며 싸움마다 선봉을 섰다.

하지만 형제단은 그만큼 다루기도 힘들었다. 1913년, 압델 아지즈가 아라비아 반도 동부의 하사 지역을 공격했을 때, 형제단은 기뻐했다. 그곳은 쉬아파들이 많이 사는 곳이고, 형제단은 쉬아를 배교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델 아지즈가 하사를 점령한 후 현지 주민들에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의 신앙과 관습을 존중하겠다고 공약하자 그들은 압델 아지즈를 비난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시작되자. 영국은 사우드 가문과 협력관계를 맺고 자금과 라이플이며 기관총과 같은 현대적 무기들을 제공했다. 그들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후원을 받는 라시드 가문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나자 압델 아지즈는 라시드 가문의 본거지 하일을 공격해 그들을 완전히 평정한다. 라시드 가문은 아랍인들의 미움을 받던 오스만 제국과 제휴했었기에 인기가 없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의 패배로 외부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압델 아지즈는 1921년 하일을 정복한 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과 똑같이 라시드 가문의 딸을 취해 아내로 삼았다. 현 사우디아라비아 왕인 압둘라 빈 압델 아지즈의 어머니가 바로 이 정략결혼의 주인공이다. (후대의 일이지만 라쉬드 가문은 사우드 가문의 숙적이자 최후까지 저항했던 집단이기에, 압둘라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다른 왕비 소생의 왕자들로부터 상당한 견제를 받게 된다.)

한편 형제단은 이 전쟁을 종교적 대의에서 일탈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사우드 집안의 부차적인 정치적 목표를 위해 동원되는 대신, 하사의 쉬아파를 '처리'하거나,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정복하기 위해 히자즈로 진격하고 싶어했다. 형제단 간부 중 한 사람은 이렇게 회고했다. "1920년, 이맘[압델 아지즈]이 하일을 포위하는 것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형제단 지도자들은 1924년 히자즈를 공략할 때 압델 아지즈가 부과한 제약에도 반대했다. 전투 중에 형제단은 압델 아지즈의 조심스런 경고를 무시하고 메카와 메디나로 밀고 들어가서, 그들의 관점에서 신성모독이라고 생각되는 사당들을 파괴하고, 그들과 다른 관습을 가진 무슬림 성지순례자들을 탄압했다. 이쯤 되자 많은 사우드 일족과 왕의 측근들이 통제불능의 지하드 전사들을 진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왕은 형제단은 나의 아이들이고, 그들을 벌주는 대신 잘 포용하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지도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라고 답했다. 그들의 의도는 좋은 것이니, 언젠가는 그들도 개선될 것이라면서.

왕은 형제단의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두 세력의 갈등은 깊어만 갔다. 형제단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히자즈를 정복하는데 선봉에 섰음에도, 정복지의 통치에서 배제되는 데 불만을 품었다. 왕이 자기 일족들을 배치한 것은 정실주의 인사이자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성지 메카와 메디나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믿는 순수한 이슬람 방식으로 정화되어야 했다. 하지만 왕이 보기에 형제단 간부들을 히자즈 행정관으로 배치한다는 것은 불씨에 기름을 붓는 행위였다.

또 히자즈의 정복이 끝나자 형제단은 와하비파의 가르침을 이웃나라들로 더 퍼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도 영토를 더 넓히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형제단이 겨냥한 이웃 나라들 -트랜스요르단, 이라크, 쿠웨이트- 은 하나같이 대영제국의 보호 하에 있었고, 이들을 공격하다가는 신생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대영제국과의 전쟁에 빠져들 우려가 있었다. 왕은 습격을 금지했지만 형제단은 개의치 않았다. 이들은 낙타를 몰고 1922년과 24년에는 트랜스요르단을, 1927년에는 이라크를, 1928년에는 쿠웨이트를 습격했다.

왕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부족 병력을 끌어모으고, 울레마들로 하여금 외교정책은 왕의 고유권한임을 뒷받침하는 파트와(율법해석)을 발표하게 했다. 1929년 3월, 왕과 형제단은 서로의 군대를 집결시켜 사빌라에서 결전을 벌인다. 낙타 기병대로 돌격해 오는 형제단을 향해 왕은 영국제 기관총으로 응수했다. 형제단은 이 전투에서 괴멸당하고 만다.


6.건국 후:경건한 이들은 뿌리를 찾아나서고 높으신 분들은 달래려 힘쓰다

사빌라 전투를 통해 사우디 왕은 종교적 급진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하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와하비 사상은 그들의 건국이념이었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사우디 통치세력은 종교적 급진주의 세력을 조종하려고 하기도 하고, 탄압하기도 하고, 때로는 키워주기도 하면서 씨름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근본주의 이슬람의 도전을 받을 때마다 사우디 왕가가 보여온 반응이다. 외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종교적 가치에 대한 정권의 불충실함을 공격할 때마다, 정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능하면 근본주의 이슬람 편을 드는 경향이 있었다. 대결은 맞서 싸우는 것 외에 도저히 답이 없는 경우에만 일어났다.

형제단을 기관총으로 쓸어버린 다음 이븐 사우드 왕은 자신이 이븐 압둘와합의 경건한 원리주의를 잘 따른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선행증진 악행방지부'라는 이름의 종교경찰을 신설했다. 1979년 급진무장집단이 메카의 대 모스크를 점령하고 농성하다가 섬멸된 다음에는 파하드 왕이 거액의 돈을 풀어 전국의 모스크를 개보수하고, 성직교육을 강화했다. 그 결과는 와하비파의 가르침이 사회에 한층 더 넓고 더 깊게 보급된 것이었다.

물론 정권과 협력관계(사우드 가문이 종교부문에 뿌린 엄청난 자금의 혜택을 누가 보았겠는가?)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울라마, 즉 제도권 종교계는 기본적인 이븐 압둘와합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지만,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다소의 융통성을 발휘하곤 했다. 적어도 통치가 가능할 정도는. 하지만 그 가르침을 전수받은 신도들 중에는 언제나 일정 비율로 그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혹은 '가르쳐준 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성실한 무슬림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배운 대로 실천되지 않는 불의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달려나갔다.
근본주의를, 본색은 양처럼 순하고 절대적으로 착한 어떤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변질되었거나 위조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근본주의자란 성직에 몸담고 있는 관료들의 것과 똑같은 교의를 좀 더 철저하고 일관되게 따르는 사람들일 뿐이다. … 근본주의는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이다. - Hubert Schleichert -

사우디아라비아가 급진 이슬람 운동과 친화성이 있다는 것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근대 들어 지하드 운동으로 건국된 유일한 국가였다. 이 기록은 사우디 자신이 대대적으로 후원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반공지하드 후에 탈리반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반공 지하드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송출된 아랍계 지하드 전사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현지인들이 숭배하는 성자 묘당 등을 공격해 현지인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이것은 그들이 특별히 이상한 자들이여서 벌인 일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런 일들은 이븐 압둘와합 본인부터가 몸소 실천했던 일이고 그의 가르침을 전수받은 역대 와하비들도 꾸준히 계승해온 '이슬람의 정화'의 한 과정일 뿐이었다.

사우디 성직자들은 그들이 물려받은 핵심 가르침과 정면대결해 이를 폐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하면 문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권장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가르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성전을 벌이는 것은 안 될 말이오. 지하드는 해외에 가서 하시오.'

폭탄돌리기 게임을 계속할 경우 내 손에서 폭탄이 터질 때도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다 끌어안고 터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들은 나름 실용적이고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참고자료

박종평. “사우디아라비아 정치발전과 이슬람”. 『중동정치의 이해 2 :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지역의 정치발전과 이슬람』. 서울: 한울, 2005. 11-34.
손주영, 『이슬람 칼리파제사: 이슬람 정치사상과 역사』, 서울: 민음사, 1997.
최영길.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이슬람운동과 전망”. 『중동종교운동의 이해 2 :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지역의 종교운동 현황과 전망』. 서울: 한울, 2005. 13-57.
Bronson, Rachel. Thicker Than Oil: America’s Uneasy Partnership with Saudi Arabia.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06.
Coll, Steve. Ghost Wars: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fghanistan, and Bin Laden, from the Soviet Invasion to September 10, 2001. 1st ed. Penguin Press HC, The, 2004.
Lawrence, Thomas Edward. Seven Pillars of Wisdom. 1922
(최인자 역, 『지혜의 일곱 기둥』 서울: 웅진문학에디션 뿔, 2006.)

Wikipedia 각 항:
Abdul-Aziz bin Muhammad, Abdullah of Saudi Arabia, Al Rashid, Diriyah, First Saudi State, History of Saudi Arabia, Muhammad ibn Abd al-Wahhab, Muhammad bin Saud, Najd, Nejd Expedition, Ottoman–Saudi War, Second Saudi State, Siege of Diriyah, Sultan bin Najad, 'Uyayna, Unification of Saudi Arabia, Wahhabi


by sonnet | 2011/05/26 06:27 | 정치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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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11/05/26 08:47
인도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중남미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죠.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1/05/26 09:23
무슬림의 '침공'에 시달린다고 징징거리는 유럽에서조차 무슬림 인구는 백인 주류인구에 비하면 훨씬 소수이며, 인구 증가율을 감안해도 그들이 1세기 내로 주류파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보다도 그들 사이에서 극단적인 원리주의자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이겠죠.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5/26 10:12
엑스트라1님// 인구 비례로만 보면 그렇지만, 극단주의자들의 힘이 커져서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 칼의 힘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하게 되지요. 칼뱅파가 그랬고 본문 중의 와하비파가 그랬고 탈레반이 그러고 있고요. 안심해선 안됩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5/26 10:13
스카이호크님// 인도와 중남미는 핵을 포함한 무력으로 '분쇄' 해버리면 되지요.
Commented by gforce at 2011/05/26 10:58
망상은 일기장에.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11/05/26 13:05
네비아찌//'인구비례'가 안 받쳐주는데 '극단주의자'들이 '무슨 수'로 민주국가의 정권을 획득하나요? 그리고 불신자 국가를 핵으로 분쇄하면 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누구 핵으로?

염세적 사고도 논리가 닿는 범위 안에서 전개해 주세요.
Commented by Peuple at 2011/05/26 16:05
칼뱅주의가 전세계를 어지럽혔다는 비난은 차치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예상이 너무나 비약적입니다. 현재 추세 운운하는 건 항공계의 유명한
예측 하나로 반증할 수 있습니다.

"2100년의 항공기는 100% 전기로 이뤄져 있을 겁니다. 갈수록 전기, 전자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니까요."

이게 맞습니까?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슬람화(제정일치를 노리는)될
거라는 건 엇나간 예측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03:26
소수파이거나 민주국가라서 안전하다고 보기에는 미국의 예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이스라엘을 위한 숙주같은 행동을 하는 걸 보면.
Commented by MK-10 at 2011/05/27 09:48
특이성 // 하지만 그 미국도 외교에서 이스라엘 문제가 일어날 뿐이지, 국내의 문제에는 소수파인 '유대인'일 뿐입니다. 그런 유대인들도 젊은 유대 세대에서 정체성이 엷어진다고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1:13
특정 문제(외교,국방 등. 특정 문제라기엔 비중이 너무 크지만)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숙주가 되었습니다. 소수파가 특정 문제에서 압도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예가 되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3:14
네비아찌/ 1.사실 칼뱅은 Schleichert가 예시로 여러 번 거론하는 인물입니다. 흥미가 있으시면 그 책을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 두 번째 이야기는 제가 보기에도 과장된 평가인 것 같습니다. 급진 이슬람 운동이 국가를 장악할 가능성이 큰 곳은 원래부터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gforce at 2011/05/28 00:40
특이성/ 그런 식으로 말하면 미국은 일본의 숙주이고, 중국의 호구이며, 사우디의 꼭두각시입니다. 어? 최강대국 자리는 어디다 팔아먹었지?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30 21:10
미국이 자기 이익을 망치면서도 받쳐주는 나라가 이스라엘 말고 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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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 찍히면 정치생명 끝난다
강경우익 유대인 로비단체 미국 정치·언론 ‘주물럭’
이스라엘 비판 학자 ‘반유대주의자’ 낙인…협박도
http://blog.aladin.co.kr/balmas/926308

...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3월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의 대외정책>이라는 글에서 “미국이 다른 국가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자국과 동맹국들의 안보를 기꺼이 제쳐두는 상황은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며, 그 원인을 미국내 친이스라엘 유대인 로비에서 찾았다. 이 글로 두 교수는 2004년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들처럼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혔다. 또 이런 낙인을 둘러싸고 학문의 자유 논쟁도 거세게 일었다.
...
미국 의회에서 대표적인 기독교 시온주의자로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를 지낸 딕 아메이는 “나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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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로비 미국을 흔든다
[한겨레] 정의길 기자
등록 : 20060731 20:01 | 수정 : 20060731 23:55
뉴스 분석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45510.html

...
미국은 1982년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 채택을 막으려고 32회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른 안보리 국가들이 행사한 전체 거부권 수보다 많다.
...
부시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01년 9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며 팔레스타인 독립국 수립에 타협하도록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그러자 아리엘 샤론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를 희생시켜 아랍을 달래려 한다”고 부시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부시는 아라파트와의 만남을 취소해야 했고, 그해 11월 미국 상원의원 89명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편지를 부시에게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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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로비’에 포위된 오바마
[한겨레] 류재훈 기자
등록 : 20090112 19:10 | 수정 : 20090113 10:08
[가자침공 ‘도심 시가전’]
친유대계 인사들 측근 포진…로비단체 활동도 ‘극성’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332813.html

...
지난 8일과 9일 미 상원과 하원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하마스를 비난하는 비슷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민주당 지도부가 공화당에 선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빠르게 움직인 것이 과거와 다르다.
결의안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하마스 쪽에는 다양한 조처를 요구했다. 반면 이스라엘 쪽에는 안보와 생존, 복지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밝히면서도 요구사항이 전혀 없다. 이스라엘 홍보위원회의 초안과 차이가 없다.

지난 8일 이스라엘 군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초안 작성에 이례적으로 깊숙히 관여해 모처럼 미국의 찬성이 기대됐다. 그러나 표결 마지막 순간 백악관의 전화를 받은 라이스 장관은 “결의안의 내용과 목적은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이집트의 중재노력을 지켜보겠다”며 기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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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와 로비스트, 두 얼굴의 ‘유대계 미국인’
[한겨레] 정의길 기자
등록 : 20110529 18:09 | 수정 : 20110530 00:19
인구 2.2%…사회적 지위·자금 동원해 정계 주물러
보수적 소수 지도자가 로비 주도…중동정책 흔들어
70% 이상은 민주당 지지하는 진보…최근 우경화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480227.html

...
공화당 쪽은 유대계 지지를 받기 위해 조지 부시 정권 이후 더 노골적인 친유대인·이스라엘 정책을 펼치고 있다.
...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미국으로부터 1400억달러(2004년 물가 기준)를 지원받은 최대 수혜국가이다. 매해 직접원조로 30억달러를 받는다. 이는 미국 해외원조 예산의 5분의 1이며, 이스라엘 국민 1인당 500달러에 해당한다. 미국은 1982년 이후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32개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모든 거부권 행사보다 많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2006년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국 유대계와 이스라엘의 로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이스라엘 로비>라는 글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이 “자신의 안보와 다른 동맹국들의 안보를 기꺼이 제쳐두고 있는 것이며, 미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조차 2006년 <팔레스타인: 평화가 아닌 아파르트헤이트>를 출간해 로비에 좌우되는 미국의 중동정책을 강력히 고발했다.
...
Commented by 과객 at 2011/05/31 06:16
특이성/

이거야 원, 외눈박이 한겨레 기사말고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쓴 걸 인용해야지... 쩌비 (먼산)
Commented by 지혜 at 2011/05/26 08:28
공부 많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0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pic at 2011/05/26 08:50
지하드는 해외에 가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08
나름 묘안 아닙니까.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1/05/26 09:24
러시안 룰렛이 아닌 지하드 룰렛!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08
하하. 해외에 갔던 애들이 일부긴 해도 레벨업해서 돌아오니까 룰렛은 룰렛인 듯.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7:02
해외에서 레벨업해 돌아오는 지하드 전사에 대한 사우디의 대응은 뭔가요? 만렙 찍은 오사마도 사우디 출신이군요.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1/05/28 00:42
다시 해외로 내보내거나 재교육 캠프에 넣습니다.
Commented by 에드워디안 at 2011/05/26 09:24
유익한 포스팅, 잘 감상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09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ttttt at 2011/05/26 09:32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선행증진 악행방지부' 이거 참 잘 지었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09
일본에선 아예 권선징악위원회라고 번역하더군요. 사실 이것이 이븐 압둘와합이 강조했던 포인트이기도 하구요.
http://en.wikipedia.org/wiki/Committee_for_the_Propagation_of_Virtue_and_the_Prevention_of_Vice_%28Saudi_Arabia%29
http://ja.wikipedia.org/wiki/%E5%8B%A7%E5%96%84%E6%87%B2%E6%82%AA%E5%A7%94%E5%93%A1%E4%BC%9A
등 참조.
Commented by ttttt at 2011/05/31 20:16
와, 귀에 쏙 들어오네요. 일본사람들, 백오십 년 번역 노하우가 여전하군요.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11/05/26 09:47
근성의 알 사우디 왕가 남자들의 뜨거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어이)

그들 바로 머리 위에 쉬아파 국가들이 있으니 여간 고민이 많이 않을 수가 없겠군요...(뭐 그전에 근처에 있는 이스라엘이나 서방세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하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31
근성은 정말 근성입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왕 이븐 사우드가 그렇죠. 나중에 루즈벨트랑 정상회담했을 떄도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합니다. "나는 전사가 본업이고 왕은 부업이요."
Commented by 킹오파 at 2011/05/26 09:50
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슬람교가 지금 세계 유력 종교 가운데 제일 개판이고 막장인데 얘네들이 더더욱 세력을 확장하니 문제네요. 기독교나 불교 애들의 절반 수준만 되도 이렇게 공포스럽지 않을텐데..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40
그렇게까지 미리 위험분자로 낙인찍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무슬림은 대단한 저력을 갖춘 집단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걱정인 것은 우리가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가리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을 방법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죠.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5/26 10:21
사우디 왕정은 와하비스트들의 힘을 빌려 권력을 얻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샘이군요.(문제는 그들만 치르는게 아니라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32
출생의 비밀...
Commented by 허안 at 2011/05/26 10:22
땡초와 개독만 판치는 세상도 힘든데 무슬림은 제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3:07
미리 딱지를 붙일 필요까지는. 이 글에서 다룬 와하비 질럿들은 무슬림 일반을 대변한다고 말하긴 힘들죠.
Commented by ttttt at 2011/05/31 20:17
'질럿' 어울리는 별명이네요. ^^
사실, 이번 글을 읽으면서 저는 <킹덤>이란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Commented by 로리 at 2011/05/26 10:23
정말로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참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도 문제의 회피를 위해 만랩 회피술을 보이는 사우드 왕가에 만세를...(먼산)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58
사실 그 나라가 굉장히 잘 버티고 있는 겁니다. 1930년으로 돌아가서 중동에 있던 나라/정권들 중 지금도 버티는 데가 얼마나 되느냐를 생각해 보면 사우드 가문의 저력이 드러나죠.
Commented by 무르쉬드 at 2011/05/26 10:30
원리주의란.. 어느 교파나 문제라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32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1/05/26 11:10
역시나 훌륭하신 소넷님의 정리를 보니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네요. 국가의 문제는 태생시부터 존재한다는 원칙이 여기서도 발견되니 기분이 묘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0 12:32
대부분의 국가는 무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고 물려받은 기반 위에 집을 지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건국을 1932년으로 보면 왕국 역사는 80년인데, 사우드-와하비 동맹은 1740년이니까 그 3배도 넘는 270년의 역사인 셈.
Commented by Sage at 2011/05/26 11:11
늘 인상적이라고 생각이 들고 감탄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세요. 사우디말고도 요르단쪽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감사합니다. !شكرا جزيلا و الله أكبر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27
아, 요르단 역사도 완전 무협지 수준의 흥미진진함을 자랑하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7:04
무협지 수준의 요르단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Commented at 2011/05/26 11:4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3:03
사우드 가문와 와하비즘의 제휴의 역사가 250년 이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보다 거의 두 세기 앞서 있으니까 아무래도 ;-)
Commented by Allenait at 2011/05/26 11:48
'지하드는 해외' 라... 그거 무서운 말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3
당하는 쪽 입장에선 확실히.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05/26 12:31
한때는 영웅이었으나 지금은...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25
골칫거리가 되었죠. 그들의 장점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한다는 것인데, 단점은 자발적인 애들은 내 명령대로 움직이는 애들도 아니라는 거.
Commented by 스페쿨라트릭스 at 2011/05/26 12:53
"사우디 성직자들은 그들이 물려받은 핵심 가르침과 정면대결해 이를 폐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하면 문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권장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가르치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성전을 벌이는 것은 안 될 말이오. 지하드는 해외에 가서 하시오."

<--- 이런....
막말로 하자면 자기들이 싸놓은 걸 자기들이 치우기 싫어서 남의 집 안으로 던지는 꼴이네요. -_-;
...... 같은 이슬람에서도 저런 자들을 꽤나 골치 아파 할만도 하겠습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5
그렇죠. 산업폐기물 나오면 어두운 밤 바다로 나가 던지는 그런 마인드죠 ^^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26 13:00
잘 읽었습니다. 그 NOM의 추천 제한 때문에 추천도 못하네요.... ㅠ.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2
아니, 어쩐 일로?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27 13:22
추천을 누르면요... 아래와 같은 메세지가... ㅜ.ㅜ

죄송합니다. 이오공감의 다양성유지 정책에 따라,
추천자는 7일 안에 한 블로그의 글을 2번이상 추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다양한 글이 이오공감에 소개될 수 있도록 다른 글을 추천해주세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6
사실 제 글이 너무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끔 별 내용 없는 글이 추천되면 내리기도 하긴 합니다만, 좋은 뜻으로 해주시는 분들께 어떻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약간 애매한 부분입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31 08:22
너무 좋은 글을 자주 쓰시니까 그런 것이죠. ㅎㅎㅎ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11/05/26 13:22
종교로 시작해 정치로 끝나는군요. 그리고 남은 종교는 없애거나 다른 나라에 보내거나....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0
정치가 종종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 또 다시 불러내죠. 대표적인 게 1950-60년대 나세르의 세속 범아랍주의 공세가 사우디인들의 마음을 유혹했을 때 범이슬람주의로 맞선 사례구요.
Commented by 개그 at 2011/05/26 14:01
좋은 글 정말 잘 봤습니다.
"그 결과는 와하비파의 가르침이 사회에 한층 더 넓고 더 깊게 보급된 것이었다."
문제를 우회해서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것도 그렇지만 윗문장도 공포스럽네요. 어느 정도 정리하고 다시 수렁 파고... 결국 다른데로 돌릴 수밖에 없게 되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0
그게 결국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배경이 되지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엔 성직자들이 교육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이 자꾸 재생산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과감하게 쳐내려고 들면 일거에 들고 일어나 정권을 공격하겠죠. 함부로 손 대기도 어렵습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7:12
사우디 대학에서 공학 쪽 교수 뽑는 영어 공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국적이나 종교 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영어 공고니까, 특별히 사우디인만을 댜상으로 한 건 아니겠지요. 대학 수준, 월급이나 연구 조건 등에 대한 설명이 꽤 길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우디도 실용학문 교육에 신경을 쓰긴 하는 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6
특이성/ 예산이라든가, 전공별 졸업생의 수 같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문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외국인과 내국인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라서요.
Commented by Peuple at 2011/05/26 16:06
적절한 토사구팽과 폭탄 돌리기는 지도자의 필수스킬이죠.(먼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1
權術은 만국 공통인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1/05/26 16:27
본 논지하고 관련없는 얘기지만

[근본주의는 실용적으로 부드러워진 정통이 겪는 양심의 가책이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1
그러셨다면 제가 글을 쓴 보람이 있지요 ^^
Commented by 단멸교주 at 2011/05/26 17:01
형제단 대원들은 자기 부족 사람들보다도 같은 와하비식 신앙을 신봉하는 '형제'단원들 서로에게 더 큰 충성을 보였다. 그들은 이슬람의 정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한 난폭하고 결의에 찬 신앙 공동체였다.

---> 허, 왠지 파시즘이 생각나는 부분이군요...

그리고 이러한 종교운동이 물질문명으로 대변되는 서구사회와 마찰을 겪으면서 민족주의와도 연계가 되면서 더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구한말의 위정척사파와 비슷한 부분도 있겠네요...

ps: 한국의 경우 386과 진보좌파들의 '원래 이슬람'에 대한 낭만주의는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한때 인도의 라즈니쉬 같은 사람이 유행하면서 반서구, 반물질문명과 결부된 동양사상에 대한 낭만주의에 매몰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인도에만 그치지 않고 이슬람, 티벳 등등의 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제가 노무현을 위험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가 퇴임후 여유가 되면 어느 신부님과 티벳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어느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였는데요. 딱봐도 대한민국 386들과 진보좌파들의 그 반서구, 반물질문명 동양사상에 대한 낭만주의가 바탕에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반서구, 반물질문명이라는 낭만주의 역시 낮에 꿈을 꾸는 사람들을 양산하게 되고 결국 지난번 한겨레의 한국의 이슬람에 대한 보도 행태를 만들게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6
유비에 의존해서 어떤 문제를 다룰 경우 가능하면 한 단계 정도로 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고리를 이용해서 너무 멀리 가는 건 위험해서요.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5/26 19:33
잘 읽었습니다.

역시 문제는 남의 손에 폭탄을 돌리고 있는게 그나마 전세계를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구, 자원, 영향력 어느 것 하나 이슬람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족함이 없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지하드의 불길에 휩싸인다면 그건 이미 세계대전급이니까요.

그러는 와중에 돌리고 있는 폭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기세인데;;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1
그것도 문제입니다. 세계 에너지 공급의 스윙 플레이어니까. 전술적으로 시간을 버는 것은 분명히 유익한 선택인데, 그렇게 번 시간으로 장기적인 대책에 다시 투자를 하고 있는가는…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5/26 21:57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선가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나 싶어집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문제를 우회시킬 순 없다는 걸 그들도 모르는 건 아닐 테니 말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2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재가 불만족스러울지 몰라도 9.11 이후에 미국이 무섭게 압박하니까 그래도 좀 태도가 변한 것이죠. 그 전엔 정말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었죠. 그리고 제가 보기엔 그래도 사우디가 파키스탄보다는 국내 문제를 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셰이크 at 2011/05/26 23:26
남자들의 열혈스런 이야기...였지만 작금의 정세와 관련이 있으면 어두운 이야기로 변하고 마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2
이게 창업(건국)에는 확실히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수성에는 오히려 부정적 유산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스링 at 2011/05/27 01:33
.......... 여기에도 성인사이트 알바가 돌아다니는군요.



검역소 덕에 좋은 지식 하나 알아갑니다. 성인 알바 삭제부탁드립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27 12:12
삭제했습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11/05/27 16:31
왠지 명나라와 백련교의 관계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7:13
명나라는 백련교를 아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이 글을 보면, 사우디는 그렇게 못 하고 있나 봅니다. 새삼 주원장이 대단해 보입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7 19:56
백련교가 원에 맺선 것은 순수한 종교라기 보다는 종교+민족주의 쯤 아니었나요?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1/05/28 00:44
현재의 이슬람 또한 순수한 종교라기 보단 19c~20c에 걸쳐 축적된 역사적 감정과 민족주의의 잡탕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7
그러고 보면 중국엔 황건당이며 백련교, 태평천국처럼 종교와 결합된 신왕조 건설운동이 여러 건 있긴 하군요.
Commented by Tretyakov at 2011/05/27 17:54
늘상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글과 네비아찌님의 글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확실히 네비아찌님의 생각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붕괴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세력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소련이 있었을 때는 중앙아시아나 체첸에는 이슬람이 발을 못 붙였고, 아프간이나 이란도 세속주의 대 와하비즘 구도였죠?)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혹은 거기에 낀 테러리스트들이 자유롭게 이동하지요. 그런 걸 보면 먹을 게 없는 남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먹을 게 있는 미국이나 서구에서 이슬람 세력이 증가하거나, 지배 세력은 아닐지언정 주류의 일부라도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후에 이슬람의 영향력이 극도로 커질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에게는 이슬람교의 종교적 권리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러시아와 중국(혹은 인도?)등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위험(?)에서는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역으로 중세 시절부터 이슬람에 노출된 이들 국가들이 이슬람교에 대해 취하는 정책을 보면....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5/27 18:53
제 걱정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일기장에 끄적일 망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 많군요...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1/05/28 00:46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이 왕성하긴 하지만 그들이 명백한 비무슬림국가의 주류(의 일부)로 발돋움하여 정책결정에 영향을 끼치려면 극단주의에 의존해선 어림도 없습니다. 이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라서 극단주의적 이미지가 이슬람에게 덧씌워질수록 사회적인 편견과 배척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11/05/28 21:13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얘기나 와하비즘이 전 세계를 뒤덮는다는 얘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무슬림들이 모두 근본주의자들은 아니며, 동남아 국가나 터키, 이집트 같이 속세에 물들어 사는 나라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울러 서구 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어느 정도 현지화를 거치지 않고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이슬람 세력이 더 커져갈 테니 어떤 대책이 좋겠다 정도로만 얘기했어도 모두들 끄덕끄덕했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8
국내정치에서 그 세력들은 단지 숫자만 불어나면 되는 게 아니고, 계속 다른 집단들로부터 견제를 받게 됩니다. 기존 집단에게 유리한 glass ceiling 같은 것도 늘 있구요. 결국 그건 스스로만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고 다른 그룹들과의 상대평가의 결과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가서 미국 국내정치의 경우 흑인과 라틴계 같이 훨씬 크고 유력한 집단들이 있는데, 그들이 주류에 편입되었느냐 혹은 거기 얼마나 가까이 갔느냐를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물론 유대인처럼 (숫자에 비해서는) 매우 강력한 소수집단도 있긴 한데, 저는 쉽게 복제되기 어려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5/29 00:31
그런데 터키에서 이슬람 성향의 정당이 세를 넓히고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이 탄압을 받고 있다

는 소식을 보면 현재 세속적 성향의 국가들이 과연 앞으로도 그러한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상당히

회의감이 들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31 06:48
사실 저는 AK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 지역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환자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터키는 이집트보다 더 견고한 국가기구(와 군부)가 확립된 나라라서 허술한 국가기구를 갖고 정변이 그대로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닫는 리비아나 예멘같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dreaming at 2011/05/29 16:21
제 블로그로 옮겨갈께요..
Commented by 마무리불패신화 at 2011/05/30 20:20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30 20:53
'우리나라에서 성전을 벌이는 것은 안 될 말이오. 지하드는 해외에 가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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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에서야 해외=외국 입니다만. 사우디에선 아닙니다. 땅으로 이어진 나라들에서 지하드를 벌이고 있으니, 더더욱 안 맞습니다. 외국으로 바꾸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프간, 이라크 등) (여행을 막는 김에) 해외선교를 막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우디와는 반대 정책입니다. 이렇게 정책이 달라지게 된 과정도 알아보면 재미있을 듯 합니다.
Commented by 음냐 at 2011/05/31 21:02
아마도 근본주의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속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 근본주의의 힘을 이용하는 새로운 실용파들이 득세할 것이니...결국 근본주의는 비주류 혹은 주류를 위한 광대들(!)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6/01 18:14
'우리나라에서 성전을 벌이는 것은 안 될 말이오. 지하드는 해외에 가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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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수출 대상국에서 불만이 넘치겠습니다. 지하드 시장(?) 국가들에서 사우디에 난리를 칠 겁니다. 이래도 수출을 계속할 수 있는 겁니까?
Commented by 크르크르 at 2011/06/01 18:30
수출국은 보통 행정부가 박살난 나라들이죠. 아프간, 체첸...
그리고 사우디는 기본적으로 성전나간 친구들은 자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지라..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6/01 21:17
멕시코,콜럼비아 등도 마약 조직은 자국민 취급을 안 하겠지만 미국에서 쪼아댑니다. 아프간 수출은 미국에서 난리칠테고, 체첸은 러시아 성질을 건드립니다.

(아프간, 체첸... 은 수입국 아닌가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9/05/04 02:50
쟤들이 멋대로 나갔다고 둘러댈 뿐입니다. 인샬라~ (쿨럭...)
Commented by ㅇㅇㅇ at 2015/11/19 08:03
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6호선 더비 at 2019/05/02 11:31
"텐트 밖에서 안으로 오줌을 누게 하는 것보다 안에서 밖으로 누게 하는 게 낫다"

존슨이 후버를 일컬어 한 말이라던데 이 또한 비슷한 이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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