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_이슬람_지능적_안티.jpg (사노)
『한겨레』의 가열찬 이슬람 디스. (들꽃향기)
한겨레의 이슬람 연작을 보면서....(사피윳딘)
이슬람과 현대 사회 (jeltz)
많은 분들이 논평했지만 '지능적 안티', '가열찬 디스', '어그로를 끈다' 등이 문제의 한겨레 기획기사(
1,
2)에 대한 공통된 평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좀 살펴보자.
기사는 파키스탄계 귀화 한국인인 남자 무슬림과 한국 여성의 사례를 소개한다. 여성의 부모는 사위를 '파키스탄 새끼'라고 부르면서 결혼식도 불참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모가 조금 심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그게 꼭 옳다곤 할 수 없어도 한국 사회에선 부모가 그럴 수도 있는 건 현실 아니냐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건 꼭 무슬림이라서가 문제가 아니고 통일교라든가 여호와의 증인 등 다소 논란이 있는 다른 종교들이 걸려 있어도 그럴 수 있는 것이 현재의 한국 사회다. 하지만 기사를 조금 더 읽으면 그런 생각은 완전히 달아난다. 남편 쪽은 제1부인이 있고, 여성은 호적에도 올릴 수 없는 제2부인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다 부모 편을 들 것이다. 어느 딸 가진 집 부모가 그런 결혼을 축복해줄 수 있겠느냐 말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국제결혼으로 인한 2세가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꾸란 공부만 챙기려 드는 파키스탄인 아버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파키스탄으로 유학보내서라도 종교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다는 야심찬 결의도 함께 소개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한국에서 무슬림이 종교 생활을 하기에 난점이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어서 소개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파키스탄에선 통할 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선 어림도 없다. 당연히 보통 한국 사람이라면 이를 기본적인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 하는 문제 부모라고 비판할 것이다. 의무교육도 제대로 못 시키는 주제에!
내 생각에는 기획이나 기사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었으면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귀화한 무슬림 국가 출신 한국인이나 귀화는 하지 않았어도 국제결혼으로 인한 한국 국적의 2세가
한국 사회에 순응하여 통합되려고 노력하지만 주류 사회의 무관심이나 차별, 경제적 환경이나 학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좌절을 겪는 이야기를 소개했다면 분명히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차별이나 어려움은 실제로 흔한 것이기에 이해받기도 쉽고, 양심적인 한국인이라면 미안함이나 안타까움 또는 도와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한겨레가 소개한 것은 법적으로는 이미 한국 사회에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자신이 온 고향의 풍습을 고집스럽게 고수함으로써
한국 사회와의 갈등을 자초하는 완고한 무슬림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도대체 누가 이 기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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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대한민국이 누구를 위한 나라로서 만들어졌는지를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간단히 말해서 한민족을 위한 나라를 세우려는 운동의 소산이었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그게 좌익이든 우익이든, 복고적인 유생이나 동학도의 것이든 간에, 별 차이 없이 우리의 땅(한반도) 일원에, 한민족에 의한, 한민족을 위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독립운동이 곧 민족국가건설운동이었다. 그게 그처럼 중요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중국의 한 성 혹은 일본과 통합된 연방국가가 아니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해방 이후 남북한의 치열한 경쟁 또한 이런 전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남의 대한민국과 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 자신이야말로 한민족을 위해 만들어진 '유일한' '진짜' 민족국가임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우리보다 한민족을 대표하는 민족국가로서 더 낫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자국의 존립근거가 흔들릴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더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한 건설적인 경쟁은 물론이요, 네거티브한 흠집내기도 서슴치 않았다. 서로 상대를 '가짜'라고, 괴뢰 즉 외세의 꼭둑각시라고 치열하게 비난해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우리는 미국처럼 '이민자들의 나라'도 아니다. 이민자들의 나라는 누가 먼저 와서 터줏대감 자리를 꿰어찼느냐 하는 그런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가 이민자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후발 이민자들을 수용할 때도 정체성의 혼란이 적다. 하지만 우리는 '토박이들을 위한 나라'로 출발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데 훨씬 큰 어려움이 있다. 우리의 많은 사회체제는 '토박이인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토대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굴러온 돌을 위해 박힌 돌을 뽑자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토박이들을 위한 나라'의 국적을 획득한 이민자들은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보다 동화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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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무슬림들이 외국인 근로자로 잠깐 와서 일만 하다 조용히 떠나는 것이라면야,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어차피 외국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귀화 등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아예 한국 국민이 되기로 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기성 공동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인지
그 방법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한 후, 정체성은 파키스탄 무슬림이나 방글라데시 무슬림, 수단 무슬림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단지 대한민국 사회의 단물(주로 경제적 편의와 관련된)만 빼먹겠다는 궁리를 하는 것이 뻔히 보인다면, 그리고 자신의 2세나 3세 또한 그런 방식으로 키워 한국인과는 이질적인 다른 나라 사람의 정체성을 갖도록 키우겠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주류공동체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앞서 한국 국적의 무슬림들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대한민국의 기성사회가 그들을 위해 대신해 주기 힘든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비신자가 신자를 위해 교리해석이나 종교개혁을 대신 해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한국 국적의 무슬림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되려면,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가 스스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이슬람이라는 종교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한국에 토착화된 이슬람교 해석을 정립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길을 잘 보여주는 종교가 바로 불교이다.(참고로 이 글을 쓰는 필자는 불교 신도가 아니다) 불교는 오래 전에 한국에 전파된 외래 종교의 하나다. 그리고 초기 전파 과정에서 이런저런 박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당시의 한국인들과 제휴할 방법을 찾아냈다. 국가이데올로기로서 호국불교라는 형식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는 승병을 구성해 하며 칼을 들고 싸우기도 했다. 그런 종교를 우리의 일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그들은 그 종교를 축으로 한 국제적이고 능동적인 정치사회적 연대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불교는 이웃나라 불교와 학술적 교류를 하긴 했지만 불교 인터내셔널 같은 것을 추구하진 않았고, 대신 일국
사회주의 불교에 머물렀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가장 끝 부분에 새롭게 등장한, 대한민국 국적의 무슬림들은 조국에 충성스러운 국민인가? 아니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신참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답함에 있어 기존의 명성에 의존할 수 없고, 객관적으로 소수에 불과하니 그들의 노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를 바래서도 안 된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 이제부터라도 명성을 쌓는 것 이외에 별 다른 답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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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에도 등장하지만 무슬림이 테러리즘이라든가 원리주의와 관련지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또 어느 나라나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존재하는 외국인혐오 경향 같은 것도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문제를 지적하면 양식 있는 한국인이라면 부끄러워하고 또 고쳐야 할 점이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느끼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종교적 분노가 폭발적인 사회적 폭력으로 표출되는 그 특유의 방식이다.
1979년, 주하이만 알 우타이비가 이끄는 사우디의 급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수백 명이 중무장하고 몰려가 이슬람 성지 메카의 대사원을 점령하고 사우디 왕정 타도를 부르짖은 적이 있었다. 사우드 왕가는 돈에 눈이 멀어 외세와 결탁한 배교자 일당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준비는 대단해서 진압에 나선 사우디 경찰과 군을 몇 차례나 격퇴했을 정도였다. 결국 양측에서 수백 명이 죽고 다친 끝에, 대사원을 되찾았지만, 전세계 무슬림들의 충격은 컸다. 그간 '두 성지의 수호자'로 독실한 무슬림임을 자부하다가 망신을 당한 사우드 집안의 대응도 만만치 않아서 생포한 68명을 광장에 끌어내어 목을 베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사건은 메카에서 3,500km 떨어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유탄을 떨군다. 당황한 사우디 정부가 메카의 대사원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파키스탄에서는 메카의 대사원을 점령한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라는 유언비어가 유포된다. 분노한 수천 명의 군중들은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그대로 불을 질러버렸다. 파키스탄 군경은 시내에서 불타는 대사관을 보면서도 반나절 동안 도우러 오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 폭도들과 맞붙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방치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공격적인 행동, 특히 종교적 동기에 의해 점화되는 폭발적인 군중 운동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저런 뉴스가 주기적으로 우리 나라에 전해지는 한 파키스탄 무슬림이 우리나라에서 좋은 평을 듣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의 코란 분서사건도 비슷하다. 이 사건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위 사건과 비슷한 폭발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자신의 행동이 그런 파급효과를 가져올 줄 뻔히 알면서도 도발을 위해 그 짓을 한 미국의 목사 놈도 어지간히 싸이코지만, 항의의 뜻을 표현한답시고 여러 사람이 죽고 다치게 만드는 쪽도 정상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한국 주류사회의 시각이다.
예를 들어 아프간 탈리반 정권이 바미얀을 점령하고 바미얀의 대불을 우상이라는 이유로 폭파했을 때, 한국인들은 종교에 별로 관계 없이 눈쌀을 찌푸렸다. 일부는 말이나 글로 그들을 욕했다. 하지만 한국의 불교 신도들은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으로 몰려가서 그곳을 불태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수준의 대응이 종교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상식적인 대응이고, 한국 사회는 그 정도를 기대한다.
또 다른 예로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들 수 있다. 그 시위에는 일정 정도 과장된 위험이나 유언비어의 요소도 있었다. 또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도 상당히 작용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시청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는 평화적인 형식을 준수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것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의 덕목이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그렇지 않다는 쪽의 주장도 일리가 있고, 또한 가끔씩 듣는 무슬림권 국가들의 뉴스를 보건대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한국 주류사회의 불안감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이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한국의 무슬림이란 존재가 '이슬람교를 믿는
보통의 한국 사람'이냐, 아니면 '한국 국적은 있지만
알맹이는 파키스탄 무슬림 그대로'냐 하는 것이다.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한국 무슬림을 전자처럼 받아들인다면 그들에 대한 경계는 대단치 않겠지만, 후자처럼 인식한다면 경계심을 풀 리가 없다. 그리고 문제의 한겨레 기사는 바로 사람들이 걱정하던 대로 그들이 후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건 안티 아니냐"라는 평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는 반드시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이슬람교를 믿긴 하지만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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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짚어온 문제들은 (한겨레 기사에서는 주로 파키스탄 인으로 등장하는) 한국에 온 외국 무슬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융화되지 못하고, 아니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이 한국 내에 떠나온 고국과 비슷한 자신들의 디아스포라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로버트 베어가 재미있는 경험담을 술회한 적이 있다.
1994년 말, 나는 비행기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요르단 암만에 가서 오후 늦게 호텔에 체크인하고, 재빨리 샤워를 한 다음, 밤에는 한 두 명의 이라크 망명객들과 사담 후사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정이 한참 지날 때까지도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다음 겨우 몇 시간 후에는 다시 일어나 비행기를 잡아타고 워싱턴으로 돌아와, 버지니아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의 내 자리로 복귀했다. 기나긴 하루였지만, 나는 똑같은 중동의 거리에서 일하며 20여 년을 보내면서 늘 그렇게 살아 왔다.
이렇게 셔틀 외교의 비밀공작 버전을 하는 와중에, 나는 때때로 런던에서 비행기에서 내려, 이 도시를 거닐며 숨을 돌리곤 했다. 나는 정해진 길로 다니기보다는 발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아랍과 중동 사람들이 모여사는 런던 중심의 한 지역인, 에지웨어 로드 지역에 이르렀다. 베일을 쓴 여성과 로브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남자들, 나는 중동을 떠나왔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작은 차이가 하나 있었다. 아랍어 서점이었다.
대부분의 중동 지역에서, 서점은 공개적으로 폭력을 옹호하는 급진 이슬람 소책자를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런던의 아랍어 서점에 가보면, 책장 가득히 그런 게 꽂혀 있었다. 슬쩍 제목만 훑어 보아도 그들이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미국에 대한 깊은 증오,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책자들을 저술하고 출간한 사람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슬람과 미국 사이에는 지하드, 다른 말로 하면 성스러운 전쟁은 그저 한 가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 전쟁은 이미 주어진 것이었고, 이미 진행 중에 있었다. 중동에서 그처럼 많은 시간을 지내 왔기에, 나는 그런 강렬하고 폭력적인 증오심은 비뚤어진(aberration) 이슬람 분파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보통사람들보다는 그러한 증오심이 벌일 수 있는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종종 나는 그런 책자를 한 권 뽑아들고 내용을 훑어보았다. 출판사나 편집자의 이름이 앞머리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출판사의 주소도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거기에는 유럽의, 대개 영국이나 독일의 우체국 사서함이 적혀 있었다. 악당들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우리의 전통적 동맹국인 유럽이 이슬람 근본주의의 온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노련한 정보기관이 필요 없었다.
Baer, Robert. See No Evil: The True Story of a Ground Soldier in the CIA’s War on Terrorism. 1st ed. Crown, 2002. pp.xv-xvi
이처럼 정작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서유럽의 자유주의 국가인 영국에는 폭넓게 허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에서 망명나온 급진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이 그 시민 자유를 악용해 런던에다가 근거지를 차려 놓고 세력을 키웠던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서유럽문명권인 프랑스나 벨기에, 미국 등도 이 문제에 대해 짜증을 느껴
런더니스탄(londonista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다. 결국 영국은 2005년 7월 7일에 벌어진
런던 지하철 자살 폭탄 테러(사망 56, 부상 700)로 이런 안일한 대응에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사건의 범인인
모하마드 시디크 칸이나
셰자드 탄위르는 파키스탄계 영국인 2세들이었고, 파키스탄을 드나들며 테러의 꿈을 키웠었다. 이 사건 관련 보도들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라면 파키스탄계 아버지가 2세들을 아버지의 모국인 파키스탄에 보내 종교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다고 다짐했다는 한겨레 기사를 읽고 분명히 나처럼 뒷골이 땡기는 느낌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는 분명히 규모가 작고 역사가 일천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은 보다 역사가 길고 잘 발달된 이슬람 교리와 이론, 교육과정을 완비한 나라에 유학생을 보내거나 교사를 초빙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이슬람과 현대 사회(jeltz)란 글이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슬람은 1,400년의 역사, 전 세계에 흩어진 10억이 믿는 종교인 만큼 그 안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뭉뚱그려 폭력적이라든가 원리주의적이라거나 일부다처를 지지하는 봉건적인 종교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이슬람의 많은 분파 중에는
실제로 그런 특성이 강한 집단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비주류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그렇기에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는 한국의 입장에 서서 주체적으로 교리나 종교 교육의 도입선을 면밀하게 선별해야 하며, 좋지 못하거나 위험한 교리, 혹은 세속적인 한국 사회와 조화되기 힘든 가르침이 무분별하게 도입되는 것을 자체적으로 걸러내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해서 무비판적으로 넙죽넙죽 받아오면 안 된다. 그들이 하고 많은 이슬람 분파들 중에서 특히 이상하고 공격적인 집단에서 이론을 수입할 경우 진짜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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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에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보통 언급되지 않지만, 상대주의적인 관점 즉 세속주의적인 우리의 관점 대신 무슬림에게는 이슬람 세계에서 통용되는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할 경우 가능한 해법 한 가지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짓고자 한다.(이 방법은 우리 체제의 변형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간단히 선택할 수 없는 옵션임은 분명하다)
앞서 아랍어 서점 이야길 하면서, 정작 중동 무슬림 국가들에선 단속으로 금지되어 있는 출판물들이 런던에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사례를 언급했었다. 그런 출판물들을 단속하는 것은 중동 무슬림 국가가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취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많은 중동 무슬림 국가들은 이슬람 신앙과 관련해 이런 지엽적인 방법보다 더 강력한 제어수단을 갖고 있다. 그것은
국가(혹은 통치자)와 종교지도층이 모종의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제도권 종교지도자들이 정권과 협상하고 타협한 결과 등장한
관변 이슬람이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국가이익과 종교이익이 제휴한
국가 이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터키의 예를 참고하라)
이것은 민주정치는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수호자(종교지도자)들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란의 준-신정체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 세계의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즉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이나 사우드 왕가, 혹은 예멘의 자이드 이맘이나 요르단의 하심 집안, 심지어는 몇몇 아랍 사회주의 '공화국'의 통치자들까지도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사실 이것은 꼭 이슬람만의 방식은 아니며 크리스트교 세계에서도 중세 유럽의 교황과 힘있는 왕들은 방대한 영지를 관리하는 수도원장이나 주교, 추기경의 임명과 활동을 둘러싸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또 항쟁하는 끈끈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은 누가 뭐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은 확고한 정교분리의 체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