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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 테러 전략의 변화(9.11 이전과 이후)


최근 파키스탄 영내에서 이루어진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에 대해 사법적인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들이 자꾸 나타나는 듯하다. 예를 들면 파키스탄 영내에서의 무장습격이 주권침해인가, 또는 생포해서 재판을 받게 하는 대신 사살한 것이 정당하냐 등등의 이야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접근은 국제테러조직 알카이다와 그 수장 오사마 빈 라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겪었던 경험을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서 머릿 속으로만 궁리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잘 해봐야 맥락에 둔감한 공허한 일반론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어떤 결론을 주지 않는다. 미국이 9.11 테러를 전후한 20년 사이에 겪은 상황을 간략히 소개하는 것까지가 이 글이 하는 일이고, 이 글이 제공하는 정보에 자신의 평소 생각을 더해 결론은 각자 내리면 된다. 혹시 위에서 소개된 이야기가 불충분하다거나, 더 나은 결론을 위해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을 느낀 사람은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이를 위한 참고자료 목록을 말미에 첨부하였다.)


우선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작은 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래 촘스키 같은 이의 정치평론을 읽는데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는데, 누가 리트윗을 해주는 통에 억지로 보게 되었다.

나는 이 주장을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이라크 요원들에 의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암살작전은 가상으로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1993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는 촘스키나 최재천이 이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에 이런 예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1993년이라는 시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의 표적은 아들이 아니고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도 그 얼마 전의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을 분쇄했었다는 점은 기억하자.)

다음날 아침, 내 책상에는 밀봉된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상황실에서 이메일로 보내기에는 메시지 내용이 너무 민감해 직접 문서로 전달한 것이었다. 쿠웨이트 주재 미국 대사가 보낸 메시지로 쿠웨이트 당국이 적발한 음모를 은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음모는 부시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계획이었고 거의 성공할 뻔했다. 서너명의 사람이 체포됐고 이라크 정보부가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나는 토니 레이크에게 전화를 했다. "사담이 부시를 암살하려 했습니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국가안보보좌관은 지시를 내렸다. "국무부가 쿠웨이트와 접촉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도록 하세요. 쿠웨이트 당국이 우리에게 숨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 그 후 크로커는 미국이 이 음모를 알고 있다고 하면서 쿠웨이트 정부에 다그치며 공식적으로 범인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용의자는 16명이었다. 두 명은 이라크 국적이었고 이라크 정보부가 바스라(Basra)에서 모집했고 정교한 폭탄이 설치된 도요타 자동차를 제공했다. 그들은 쿠웨이트시티 인근 대학에 차를 주차하고 부시 전 대통령과 쿠웨이트 국왕이 지나갈 때 원격 장치를 이용해 차량을 폭파시키려고 했다. 폭파됐다면 반경 400야드 이내의 모든 것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 차량이 사소한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쿠웨이트 경찰이 차량 속에 숨겨진 폭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라크의 암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쿠웨이트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했다. [Clarke,2004:136-137]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쿠웨이트 당국은 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했을까? 무엇보다도 귀찮고 곤란한 일에 말려들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는 바로 몇 년 전에 이라크의 침공에서 미국이 그들을 구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이것은 쿠웨이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자.

프리 [FBI] 국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나타나 코바르 소재 미군 막사 폭탄 공격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려 하자 [사우디 내무장관] 나이프는 제다 근처 홍해 연안의 자기 요트에서 나오지 않았다. 프리 국장은 사우디 국내 문제를 다루는 보안기관에 소속된 하급 관리 2명을 만났는데, 이들은 코바르 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이는 마치 워싱턴에 온 나이프를 프리 국장의 운전사가 상대한 것과 같은 것이다. [Baer,2003:62]

애덤 가펑클(Adam Garfinkle)은 2002년 봄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이렇게 썼다. “1997년 이마드 무그니야(Imad Mugniyah)가 비행기를 타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할 예정이었을 때 미국이 그를 체포하려고 시도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헤즈볼라 지도자를 체포하려는 미국에 협조하기보다는 그의 비행기를 다른 곳으로 회항시켰다.”[Clarke,2004:242]


카타르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카타르는 현재 지명 수배자 명단에 올라있는 알 카에다 테러범 10명을 초청했다. 카타르 정부가 알 카에다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인 칼리드 셰이크 무하마드를 숨겨 주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는 보고서를 접한 프리 국장은 카타르 외무장관에게 외교 문서를 보내 무하마드를 FBI에 넘겨 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 카타르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무하마드는 카타르 정부의 피고용인(역설적이지만 무하마드는 공공 수로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이었지만 카타르 정부는 그를 찾을 수 없다고 둘러댔다. 사실 그들은 무하마드를 국외로 몰래 빼돌렸다. 이 때문에 FBI 수사대는 도하에 있는 호텔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무하마드 자신은 시간을 벌어 9.11 테러를 총괄 지휘하기 시작한다. [Baer,2003:63-65]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는 외교 전문가이며 CSG 출신인 패트릭 데로스였다. 나는 데로스에게 국왕의 궁정 업무를 총괄하는 시종장관을 찾아가 국왕의 체포 허가를 받고 이 사실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가능할 것 같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CSG는 국왕의 허락을 받고 FBI 체포팀이 소수의 카타르 안보 관리와 함께 체포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극히 소수의 고위 관리에게만 우리 계획을 통보하겠다는 카타르의 약속에도 칼리드 셰이크 무하마드는 체포 작전을 미리 눈치채고 FBI 체포팀이 도착하기 전에 다른 나라로 도주했다. 물론 우리는 허술한 카타르의 안보의식에 격분했고 왕궁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생각했다. 한 보고에 따르면, 칼리드 셰이크 무하마드는 종교부 장관이 제공한 여권을 갖고 출국했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CSG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Clarke,2004:241]


이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초점을 옮겨 보자. 1990년대 중반에 오사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되어 수단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었다. 오사마의 존재를 둘러싸고 미국 등의 외교적 압력이 가해지자 수단은 그를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제안했다.

1996년 사우디 정부는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 주겠다는 수단의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리야드의 설명은 이렇다. 빈 라덴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너무 인기가 높다. 따라서 그를 체포하면 혁명을 자극할 것이다. 9.11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단 한 건의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고 쓸 만한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봉쇄가 얼마나 철저한지 FBI는 사우디 납치범 15명의 가족들을 포함해 어떤 용의자도 면담할 수 없었다.[Baer,2003:66]


해외에 숨어 있는 테러범을 체포하여 테러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국제법적으로 말끔한 방법이라면 테러범이 숨어 있는 나라의 사법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그들을 체포하게 하고 신병을 인도받아 재판에 회부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이상주의적인 접근이고 또 서두에 말했던 막연한 일반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국들이 협조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미국이 내놓는 곤란한 부탁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나라의 정부기관들이 테러범들에게 온정적이거나 그들과 협조관계에 있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의문을 일단 마음에 품어둔 채,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당시 왜 미국은 수단에게서 오사마의 신병을 인수하지 않았는가?

미국 고위 관리들은 회의석상에서 미국이 빈 라덴을 투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고 있는지를 가설적인 질문으로 토의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수단과 대화를 가질 무렵, 백악관의 [대테러 특보] 리처드 클라크와 아마도 CIA [국장] 도이치가 이 문제를 제기했다. 법무부는 그를 기소할 수 있을 것인가? 재판에 회부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백악관 관리들이 법무부에 기소 가능성을 문의했을 때, 현재 가진 증거를 갖고 기소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중간급 관리들로부터 돌아왔다고 한다.

그것이 백악관과 CIA가 법무부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전부였다. 당시 연방검사들은 비밀리에 빈 라덴의 테러리즘 후원에 대한 대배심 조사를 고려하고 있었고, 그 조사는 기소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법률은 법무부 검사나 그들과 협력중인 FBI 요원이 수사에 대한 내용을 정부 소속의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이 조사에 대해 알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증거를 엄격한 비밀로 취급했다.[Cole,2004:323]

그들은 법치국가에서 법을 준수하는 관료가 통상적인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거기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오사마를 투옥할 수 없다면 다른 나라가 그 일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고 있어서 미국보다 사법적 엄격성을 덜 따지는 나라라면?


빈 라덴을 구금할 수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를 보내기에 가장 논리적인 장소인 것처럼 보였다. 빈 라덴은 사우디 왕국에서 반정부 선동 혐의로 추방된 자였다. 빈 라덴으로부터 돈을 받은 폭력적 이슬람주의자의 공격을 받고 있는 다른 아랍 국가들 또한 이에 응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그의 신병을 인수할지도 몰랐다. 미국은 CIA 채널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요르단에게 빈 라덴의 신병을 인수해 감금해 두지 않겠느냐고 타진했다. 세 나라 정부는 모두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 미국 관리들은 수단에게 사우디아라비아가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빈 라덴의 신병을 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사우디 스스로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클린턴의 국가안보팀에게는 사우디 왕가가 빈 라덴을 투옥하거나 처형할 경우 반정부 활동을 불러일으킬 것을 우려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사우디는 “그 일이 너무 뜨거운 감자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클린턴은 회고했다.

“그가 미국인을 죽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당시에 그를 기소할 수 없었다. 그는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었다.” 이집트와 요르단에게 있어 이 문제는, 사우디 정보부와 사우디 왕가가 빈 라덴을 투옥하는데 따르는 정치적 위험을 지려 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 백악관의 대테러 담당 관리들은 빈 라덴을 사우디아라비아로 보내겠다는 수단의 제안을 꿍꿍이속이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수단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빈 라덴을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고 백악관 관리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수단의 제안을 하르툼 정부가 진짜 행동에 나서야 할 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벌인, 워싱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안전한 수작으로 해석했다.

모든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1996년 초에 빈 라덴을 투옥할 좋은 기회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압둘라 왕세제는 밀어붙이길 피했다. 사우디 왕가는 빈 라덴을 골칫거리라고는 생각했으나 그와 대결하지는 않았다.[Cole,2004:323-325]


결국 오사마는 수단 정부가 내준 전세기를 타고, 세 명의 부인을 포함한 일가족, 가재도구, 재산, 추종자들을 모두 아프가니스탄으로 안전하게 옮긴다. 너무 짐이 많은 나머지 전세기는 두 번이나 왕복해야 했다.[Cole,2004:325] 그리고 2년 후인 1998년, 오사마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와 탄자니아의 다르 에스 살람에 위치한 두 곳의 미국 대사관을 동시 폭파해 미국에 대한 공격의 포문을 열고, 2001년에는 9.11 테러를 감행한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그의 신병을 넘겨받아 투옥하고 관련자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했더라면, 오늘날의 알 카에다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미국이 사법적 측면에서 비판을 받지만, 당시 미국은 사법적 질서를 너무 잘 지키다보니 그를 투옥해 테러를 예방할 수 없었다, 다른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대로 다 자기들의 사정이 있었고, 굳이 더러운 일을 앞장서서 떠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꽁지에 불이 붙으면 제일 급한 놈이 하겠지! 시간이 흐르자 그 급한 놈은 결국 미국인 것으로 판명된다.


1998년의 대사관 폭파 사건 이래,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정부의 주요한 표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9.11 이전에도 미국은 오사마를 잡아보려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1999년, CIA는 파키스탄 첩보기관에서 차출한 60명의 특공대원들을 아프가니스탄에 침투시켜 빈 라덴을 생포하기 위한 은밀한 훈련을 개시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여 이 비밀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클린턴 정부의 안보책임자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열고 좀 더 과감하고 모험적인 방안들을 모색했다.

그 중 하나가 약 40명 정도 되는 미군 정예의 특수부대 소대를 선발해 헬리콥터를 이용한 비밀야간공격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공중급유가 불가피했다. 헬리콥터가 900마일이나 날아야 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 작전계획은 카터대통령 당시인 1980년 데저트 원 작전 실패와 1993년 두 대의 블랙호크 헬리콥터 격추 경험 때문에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데저트 원은 이란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었는데 비행기 여러 대가 문자 그대로 사막에 곤두박질치는 참사로 끝이 났으며, 소말리아에서의 블랙호크 격추는 미국인 열여덟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군은 빈 라덴 공격은 실패하거나 상당수의 미군 사상자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첩보보고를 봐도 빈 라덴은 최측근에게 가족들의 신변 경호를 맡기고 있었으며, 클린턴 또한 여성과 아동을 죽일 수 있는 작전에는 반대했다.

미군 특수부대 1개 소대와 순항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몇 척이 항상 대기 중이었으나, 그들은 적어도 여섯 시간 내지 열 시간 전에 빈 라덴의 다음 이동지역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야만 효용가치가 있었다.[Woodward,2002:22-23]

CIA에서 운용하는 30명의 아프간 요원들은 존재 자체가 극비에 속하는 사항이었다. 이들은 암호명이 「G-E 선임자들」로, 지난3년 간 아프가니스탄 부근에서 빈 라덴을 추적하기 위해 월 1만 달러에 고용된 용병들이었다. 이 조직은 함께 행동하기도 하고1개조에 다섯 명씩 편성돼 추적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CIA는 매일 이들 선임자와 도청이 되지 않는 안전한 방식으로 대화 통로를 유지해왔으며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사주었다. 그러나 빈 라덴을 추적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그는 수시로 이동했고 가끔씩은 밤에 갑자기 떠나기도 했다.

선임자들은 그의 행적을 놀라울 만큼 잘도 포착했으나 '이행 가능한' 정보 -즉 순항 미사일이 그들의 위치에 도달할 때까지 그가 그곳에 머물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 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CIA는 그들에게 이동계획을 귀띔해 줄 믿을만한 인적 스파이를 빈 라덴의 측근에 심는데 실패했다.

클린턴 당시의 백악관과 국가 안보기구에서는 선임자들에게 의혹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간혹 빈 라덴의 위치에 대해 상반되는 첩보를 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특히 첩보 제공자들이 매수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클린턴과 오늘날까지의 부시 누구도, 선임자들이나 돈으로 고용된 다른 CIA 첩보 제공자들에게 빈 라덴을 공개적으로 죽이거나 암살하도록 생사여탈권을 준 적이 없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재임 1974-1977년)이 처음 서명한 암살금지령은 지금까지도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땐가, 아프간 선임자들의 리더가 그들을 통제하고 자금을 제공하는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주재 CIA 지부장과 몇 번 만나 그들이 두 번에 걸쳐 정당방위 차원에서 빈 라덴의 호위대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정당방위는 용인되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적인 방식으로 호위대를 추적하기를 원했으며, 모든 것에 사격을 가하고 누구나 죽인 뒤 도주하는 방식의 매복작전을 제안했다.
그러자 지부장이 반복해 소리쳤다. "안돼, 그러면 안돼. 미국 법에 저촉된단 말야."

자금이 넉넉하고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자원과 분위기가 뒷받침됐을 경우, CIA는 알고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을 것이라고 테닛은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기존 법칙을 바꾸자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클린턴에게 선임자들의 매복작전을 허락하도록 제안하지도 않았다.

법무부나 백악관의 법률가들이 암살금지령을 위반하는 작전을 반대할 게 틀림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클린턴과 그의 보좌관들의 비둘기파 행태에 얽매여 있다고 느꼈다. 모든 게 "법만 따지다 끝나버렸다"고 자조할 정도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클린턴 밑에서 CIA 차장과 국장을 역임하며 이런 분위기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었다.

법규에 허락된 것은 CIA가 빈 라덴을 생포하여 사법당국에 넘기는 일로, 법적으로 "인계"라고 규정된 작전뿐이었다. 이를 위한 대규모 작전이 비밀행동 계획도에 그럴듯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테닛은 빈 라덴이 결코 생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작전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비록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의 몰락을 부를 것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CIA 작전지휘부의 모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빈 라덴 인계계획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만 희생하고 정작 빈 라덴은 빠져 있을 공산이 커 실행에 옮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테닛도 이들과 견해를 같이했다. 그 계획은 진척될 수 없었다. CIA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들을 만나러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빈 라덴의 어머니 짐 속에 자동추적장치를 설치하자는 사우디인들의 제안도 위험성만 크고 실현가능성은 낮아 거부했다.[Woodward,2002:23-25]

이런 식으로 준법성 여부에 대한 조심성과, 정치인 및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결합하면서 9.11 테러 이전에 오사마를 잡거나 죽이려는 계획이 몇 차례나 무산되었다. 9.11 이전에는 오사마가 누구인지 미국 국민들 대부분이 잘 몰랐기 때문애 이래도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9.11 테러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이후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국민은 왜 오사마 빈 라덴을 잡거나 테러공격을 막지 못했는지 답을 원했고 또 그렇게 해내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순수히 사법적 관점에서 무난한 수단만 채택해서는 좀처럼 오사마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고, 미국은 선택을 해야 했다.

현실의 선택은 선명한 흑백으로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의 편의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책선택의 원형이 있다고 치자.

1) 사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했다면,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하거나 알 카에다를 분쇄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2)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알 카에다를 분쇄해야 한다. 사법적으로 정당하면 좋으나 다소의 문제는 감수할 수 있다.

9.11 이전에 미국의 대테러 정책은 1)에 가까운 형태였으나, 9.11 이후에는 2)에 훨씬 더 가까운 형태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2)라는 선택을 가능한 '합법적인 형태로' 수행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포장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나, 2)에 가까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대개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미국을 위해 오사마를 잡아주려다가 알 카에다와 적이 되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 나라들을 움직이려면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테닛은 알 카에다가 본부는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있으나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활동한다고 지적했다. "60개국이 문제입니다."
부시가 말했다. "한번에 하나씩 그들을 솎아냅시다."
어려운 문제를 가려내는 데는 뒤지지 않는 럼스펠드가 말했다. 문제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 뿐 아니라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다른 나라들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부시가 말했다.
회의가 폐회됐다. 국가안보에 관한 한 검증된 적이 없고 훈련도 되지 않은 대통령이 지도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채, 바야흐로 전쟁으로 가는 복잡하고 기나긴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Woodward,2002:58-59]

하지만 부시는 전쟁에 이기기 위한 미국의 결의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적을 물리칠 것이며 미래의 대통령들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 놓을 것이오. 2년 뒤에는 영국인들만 우리 편일 수도 있어요.”[Woodward,2002:154]


특별한 방법이란?

국무부는 ‘우리 편에 설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하라’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파키스탄과 탈레반에 전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파월이 말했다.
부시는 탈레반에 대한 요구사항을 명시하라고 지시했다. “빈 라덴을 넘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알 카에다의 전 조직을 넘겨주든지 추방시켜야 한다고 파월에게 말했다.

(…) 파키스탄 정보부를 이끄는 마모우드 아마드 장군이 마침 우연히도 워싱턴에 머무르고 있었다. 위엄있게 보이는 그는 CIA를 찾은 자리에서 테닛과 다른 간부들에게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는 종교적이며 인도주의적인 본능을 가진 사람이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며 아프간 군벌들 아래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 아미티지는 마모우드를 국무부로 초청했다.
그는 아직 미국이 파키스탄에 무엇을 요구할지는 분명치 않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요청은 깊은 자기성찰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파키스탄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인지 아닌지 냉엄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회색이 없는, 흑과 백의 선택입니다.”
마모우드는 과거에도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파키스탄은 큰 나라도 강한 나라도 아니라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중요한 나라입니다. 아미티지는 말을 잘랐다.
마모우드는 과거로 돌아갔다.
미래는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아미티지가 계속 했다. 파키스탄 대통령인 무샤라프 장군에게 선택을 분명히 하라고 말을 전해주시오. 우리와 함께 하든지, 우리와 반대로 행동하든지.
[Woodward,2002:70]

그 방법이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고전적인 수법, 즉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법적 규칙에만 집착하며, 미국의 결의는 흔들리는 갈대만큼이나 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간 미국의 행태를 봐오며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었다. 그래서 미국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며, 미국의 결의는 전례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다. 상대에게 믿음(!)을 줄 필요가 있었다.

오사마를 내놓지 않고 미국에게 이죽거린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은 공격해 정권을 붕괴시켰다. 파키스탄에게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냐 맞설 것이냐", "폭격을 받고 석기시대로 돌아갈지 말지 선택해라"고 윽박질렀고[Musharraf,2006:201], CIA 국장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가 섭정 압둘라 왕세제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놈들이 폐하를 죽이러 오고 있소"라고 내질렀다.[Suskind,2006:412]

탈리반 수장 물라 오마르야 무장투쟁으로 정권을 세운 자수성가형 인물이다보니, 다시 한번 게릴라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부잣집 자제로 충분한 호강을 누린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의 2-3세대 왕족들은 도저히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썩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협력을 선택하게 된다.

한편 작전 자체의 과감성에도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CBS의 '60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둘러싼 자신의 입장을 소상하게 밝혔다. 이 인터뷰에는 눈여겨볼 구석이 많지만, 그 중 한 귀절만 살펴보기로 하자.

그날이 지날 때까지도, 상황은 55:45였습니다. 제 말은, 우리는 빈 라덴이 거기 있다고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가 거기 없었다면 커다란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명백히 우리는 타국의 영토로 들어가, 헬리콥터를 착륙시키고 군사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거기엔 부유한, 그러니까, 그 건물에 살고 있던 게 두바이 왕자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특수부대를 투입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거지요. 이 결정을 내리는 데 얽힌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었습니다.[Obama,20110508]

오바마가 왜 갑자기 '두바이 왕자'를 들먹인 것일까? 이것이 그저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다. 이를 소재로 삼아 클린턴 시대와 오바마 시대의 관점을 대조함으로써 우리는 9.11 테러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가를 느껴볼 수 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유명해진, 1993년의 모가디슈 전투의 충격으로 인해 클린턴 행정부는 특수부대 작전과 아군 인명피해를 과민할 정도로 꺼리게 되었다. 그 결과 앞서 언급했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상대하기 위한 전술 또한 일찌감치 크루즈미사일을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 오사마의 거주 지역 몇백 km 안에 크루즈미사일 발사대를 배치해 놓았다가, 오사마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대로 미사일을 날린다는 계획이다. 무인유도의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이라면 우리 측 인명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적을 처치해 줄 수 있을 터였다. 오사마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였고, 기회는 몇 차례 오지 않았다. 당시 클린턴의 백악관에서 대테러정책 '짜르'를 맡고 있던 리처드 클라크는 이렇게 회고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공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세 번의 경우 모두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 두 번의 경우에, 조지 테닛은 각료 회의에서 이 정보가 그리 신뢰성 높지 않은 정보원이 제공했다고 밝혔다. 빈 라덴이 머물지 않는 건물을 공격할 위험이 있었다. 테닛은 공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여러분,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이 놈을 잡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100퍼센트, 적어도 90퍼센트 정도는 확실해야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공격은 안 됩니다. 이는 우리가 ‘단독 정보’라 부르는 단 한 사람이 제공한 정보이고 이를 보완할 다른 정보가 없습니다.” 세 번째 경우에서 테닛과 나는 CIA과 제안한 공격 목표의 위성사진을 주의 깊게 검토한 후 이 건물이 테러리스트의 은신처가 아닌 호화 이동 주택으로 보인다고 결정했다. 우리도 공격 목표가 빈 라덴이 머무는 곳이 아닌 아랍 우방국에서 매사냥을 하며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이 아닐까 걱정했다. 오히려 알 카에다가 우리 정보원을 이용해 미국과 아랍 동맹국의 이간질하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있었다. 테닛과 나는 공격에 반대했다. 예정된 공격은 취소되었다.
나중에 테닛이 뒤늦게 다른 정보를 취합해 다시 검토해 보니, 적어도 우리가 생각했던 한 목표물에 빈 라덴이 실제로 머물렀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빈 라덴이 머물던 집은 병원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크루즈 미사일 공격시 무고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CIA는 자신의 정보가 틀려 미국이 엉뚱한 목표를 공격해서 발생할 비난에 극도로 민감했다.[Clarke,2004:309]


빈 라덴이 아니라 "우방국에서 … 여가를 즐기러 온 사람"이라고?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인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당시 CIA 국장이던 조지 테닛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보자.

며칠 후 빈 라덴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셰이크들과 함께 남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수렵 캠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다시 한 번 알렉 스테이션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직원들을 포함해 ‘미국은 빈 라덴 제거를 위해 그곳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많은 아랍의 왕자들이 죽는다면 그들이 사귀고 있는 친구 탓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격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빈 라덴이 이동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처럼 간헐적으로 등장한 공격에 대한 논란 때문에 정책수립자들은 알 카에다 지도자에 대한 무력 사용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하게 되었다. 정책수립자들은 이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크루즈 미사일에 대한 대체방법을 검토하는 대신 두 가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들은 빈 라덴을 공격하기를 바랐지만 미군 병사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우리의 외교관계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Tenet,2007:165-166]


사연인즉 이렇다.[Cole,2004:445-450]

원래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걸프 아랍 지역의 명문가 사이에서는 대대로 매사냥이 귀족들의 스포츠로 각광을 받아 왔다. 돈이 넘쳐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한 이들 아랍 귀족들은 매년 겨울이면 파키스탄에 와서 원정 매사냥을 즐겼고, 파키스탄은 이들에게 특별 비자와 광대한 배타적 사냥터와 수렵 허가증을 내어 주며 이들을 환대했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아부다비의 왕세자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이라든가 두바이의 지배자 셰이크 마크툼 같은 거물들부터가 매사냥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UAE는 아예 파키스탄 공군과 밀약을 맺고 기지의 유지비는 UAE가 지불하는 조건으로 파키스탄 공군기지를 통채로 세내어 매사냥 전진기지로 썼을 정도였다. UAE는 본국에서 C-130 수송기를 띄워 왕자들을 위한 호화로운 아웃도어 장비와 사냥비품들을 실어날랐다.

그런데 최고의 겨울철 매 사냥터 중 몇몇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다. 그래서 파키스탄 정치인들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아랍 거물들을 그곳으로 모셨다. 파키스탄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혈맹 탈리반 지도자들을 아랍 거물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매사냥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친교를 맺도록 다리를 놓았다. 이렇게 친교를 쌓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랍 기부금이 탈리반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또한 사우디 재벌가의 아들로서 이런 문화에 익숙한 인물 중 하나였다.

아프간에서 빈 라덴을 감시하던 요원들로부터 아프간 서부 헤라트 인근의 사막에서 오사마를 포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정체불명의 아랍 호족들과 함께 사냥을 하고 있으며 한동안은 여기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는 정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높은 정보였으며 며칠간 머무른다면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문제는 오사마와 함께 있는 '아랍 호족들'이 누구냐였다. 백악관에 올라온 위성사진에는 캠프 인근의 활주로에 UAE 공군 위장 도색을 한 C-130 수송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CIA의 하층부에서는 이런 기회는 없다며 공격을 촉구했다. 빈 라덴과 어울려 노는 아랍 왕자는 테러자금의 공급원일 가능성이 크며 나쁜 친구를 둔 죄로 죽어도 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여자와 아이들'이 부수적 피해를 입고 죽어도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판인데, 공군 수송기를 동원해 사냥을 다니는 UAE왕족을 미사일로 때려 죽인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게다가 UAE는 작년에 F-16전투기를 80억 달러어치나 사기로 하지 않았던가?

사냥은 일주일이 넘게 계속되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백악관은 공격을 결정하지 않은 채 그들이 흩어질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알카에다를 추적하던 요원들의 실망감은 깊었고 상부에 이를 거칠게 항의한 한 간부는 좌천당했다.

돌이켜보면 90% 같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준을 고수하는 것 하며, 결정적 기회가 왔을 때 공격을 망설인 것 하며, 클린턴 행정부 당시 대테러공격에 대한 결의는 너무 약했다. 9.11의 충격이 오기 전까지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바마의 발언을 다시 곰씹어보면, 그는 그곳에 빈 라덴이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55:45의 확률에 배팅해, 우리편이 죽을 수도 있는 특수부대를 타국 영토 깊숙히 투입했으며, 설령 그곳을 친 결과 '두바이 왕자'(아니면 파키스탄 대통령의 사생아라도?)가 나올지라도 보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이다. 미국의 아랍 우방국 왕자들은 콕 찍어 말한 이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다보니 CIA의 빈 라덴 담당 팀장이었던 마이클 슈이어는 국제적으로 시도되는 사법적 접근법의 한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알카에다와의 싸움에서 미국은 우방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는 아랍에미리트 왕자들이 미군의 크루즈미사일에 맞아죽는다면 친구를 잘못 사귄 탓이니 자업자득일 뿐이라며 빈 라덴을 쳐 죽이자고 주장하다가 윗사람들 눈 밖에 나 좌천된 바로 그 사람이다.)

[법집행기관인] FBI의 활동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주재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CIA는 국내법은 준수하지만 해외에서는 정보 수집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활동 대상국의 법률 위반을 포함해)을 동원할 수 있다. 우리는 양과 늑대가 함께 사는 세상을 원하지만 아직 현실은 그렇지 않다. FBI의 해외 활동 방식은 양이 늑대에게 공손히 정보를 요구하는 모습과 같다. 이런 딜레마는, 지구상의 모든 사법 기관은 문화, 사법제도, 언어와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FBI의 유아적 신념 때문에 더욱 심화된다. 해외에서 알카에다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한 고위 FBI 관리의 말은 이런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외국의 동료 사법기관 종사자와 함께 일할 때 언어 장벽은 있을 수 있지만 목표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신뢰감이 생기고, 긍정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알카에다와의 싸움에서 미국은 우방이 많지 않다. 아무도 알카에다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미국 관리는 FBI가 해외에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방에 필수적인 정보는 해외 정보기관이나 경찰과의 교류를 통해서는 습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정보는 CIA가 상대국 내의 배반자를 통해 돈을 주고 사거나 빼내야 한다.

미국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사법적 수단으로 알카에다를 분쇄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1998년 말 뉴욕의 한 검사가 빈 라덴을 기소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중요한 발전이다. 이것은 어느 테러리스트도 우리 법률을 우롱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할 수 없다는 경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법무장관이 “이런 무자비하고 비겁한 행동을 저지른 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런 말은 FBI와 법무부가 국내 범죄자들을 다룰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미국 지도자들은 사법적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그래서 그것이 미국과 알카에다 전쟁의 전략적 균형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며 승리의 엔진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 빈 라덴의 말은 루스 웨지우드 교수의 조언에 무게를 더한다. “우리가 사법적 수단에만 집착한다면 빈 라덴에 대항해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다. 미국인들은 법의 힘을 굳건하게 믿고 있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는 법률적 낭만주의를 버려야 한다.” [Scheuer,2004:277-281]

국내적으로도 사법적 접근으로 테러를 상대하는데는 다소의 난점이 있다. 사법적 접근은 범죄가 일어난 뒤에 범인을 잡아 처벌하는 것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데(앞선 예에서 오사마를 기소할 수 있느냐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된 것처럼), 실제로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일이 터지고 나서 테러범을 잡는 것이라기 보다는 테러를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러가 시작되기 전에 막으려면 아직 테러경력이 없는 용의자를 감시하고, 체포하는 식의 활동이 필요한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타국의 영토에서 사법적 접근으로 테러를 상대하는 것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지난한 문제이다. 국제법은 기본적으로 각국의 주권을 보호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지, 테러나 범죄를 저지하는데 우선권을 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국제법을 엄격히 지킨다면, 다른 나라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한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모든 나라는 내정간섭을 꺼리기 때문에 상대국이 호의적이라도 그 폭은 매우 좁으며, 게다가 각 국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전면적 협조를 얻기란 하늘에 별따기와도 같다.

더 큰 문제는 점잖게 말로 협조를 구하면 상대는 [호구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거나 일단 등을 치고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앞서 수없이 소개했었지만, 최근의 오사마 사살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야길 하나 더 들어 보자.

아프간 정보국은 4년 전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아보타바드 인근 지역에 숨어 있을 것으로 믿어왔지만, 파키스탄 대통령이 이를 격렬히 부인한 이래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전 아프가니스탄 정보부장이 지적했다.

아마눌라 살리흐 전 정보부장에 따르면 2004년 무렵부터, 아프가니스탄 국가정보부(NDS)를 위해 일하는 요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린 인물[인 빈 라덴]이 부족자치지구가 아니라, 파키스탄 본토 내부에 있음에 틀림없다고 믿어 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들이 "수천통의 심문 보고서"와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험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갑부"인 오사마가 텐트에서 살 리가 없다는 점에 의거, 빈 라덴은 거기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는 2005년쯤부터는 그(오사마)가 파키스탄의 도시지역에 살고 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부족자치지역은 침투하기 쉬운 곳이었고, 우리는 거기 많은 정보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아랍인도 찾아낼 수 있었지만 빈 라덴은 없었습니다."

2007년 들어, 아프간 정보부가 [이번에 오사마가 사살된] 아보타바드 인근의 만셰라에서 알 카에다 안가 두 채를 찾아낸 후, 그가 그곳에 숨어있었을 거라고 추정하게 되면서, 아프간 측의 정보는 더욱 정확해졌다.

하지만 이 전직 정보국장에 따르면,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이던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은 빈 라덴이 자기 나라의 개발된 지역에 숨어있다는 지적을 듣고 격노했다고 한다.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의 회담 석상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고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외쳤다. "내가 바나나 공화국 대통령으로 보이나?" 그리고는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몸을 돌려 "이 판지셰르 계곡 놈을 데려와 나한테 첩보에 대해 가르치려는 저의가 뭐냐?"

무샤라프가 화를 내며 살리흐에게 달려들려고 했기 때문에 카르자이가 끼어들어 둘을 뜯어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Boone,20110505]

이런 식의 무작정 부인에 부딪치면 정보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직접 뛰어들어 해치우든지 포기하든지의 양자택일인 것이다.

자력구제, 즉 타국 영토 내에서의 일방적 작전 실행은 사안 별로 정책적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는 하다. 정보가 잘못되거나 작전에 실패할 위험은 늘 있으며, 상대국과의 관계 악화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력구제를 감행할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이 모두 있다는 것을 상대가 믿지 않는다면 업신여김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내가 배를 째면 어쩔 건데. 너는 능력이 혹은 배짱이 없잖아?

그 결과 해당국에 대해 강력한 위협을 동반한 어르고 달래기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자력으로라도 해치운다는 식의 오늘날과 같은 미국의 정책이 도출되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언론
Boone, Jon. “Osama Bin Laden Death: Afghanistan ‘had Abbottabad Lead Four Years Ago’”. Guardian 2011년 5월 5일
Obama on bin Laden: The full "60 Minutes" interview, CBS, 2011년 5월 8일


단행본
Baer, Robert, Sleeping with the Devil : How Washington Sold Our Soul for Saudi Crude, Crown, 2003 (곽인찬 역, 『악마와의 동침』, 서울: 중심, 2004년)
Berntsen, Gary, and Ralph Pezzullo. Jawbreaker: The Attack on Bin Laden and Al Qaeda: A Personal Account by the CIA’s Key Field Commander. 1st ed. New York: Crown, 2005.
Clarke, Richard A., Against All Enermies: Inside the White House's War, Free Press, 2004
(황해선 역, 『모든 적들에 맞서 -이라크 전쟁의 숨겨진 진실- 』, 서울:휴먼앤북스, 2004)
Coll, Steve. Ghost Wars: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fghanistan, and Bin Laden, from the Soviet Invasion to September 10, 2001. 1st ed. Penguin Press HC, The, 2004.
Musharraf, Pervez. In The Line of Fire : A Memoir. 1st ed. London: Simon & Schuster, 2006.
Scheuer, Michael. Imperial Hubris: Why the West Is Losing the War on Terror. 1st ed. Potomac Books Inc., 2004. (황정일 역, 『제국의 오만』. 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4)
Suskind, Ron. The One Percent Doctrine: Deep Inside America’s Pursuit of Its Enemies Since 9/11. Simon & Schuster, 2006. (박범수 역. 『1퍼센트 독트린 :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세상』. 파주: 알마, 2007.)
Tenet, George. At the Center of the Storm: My Years at the CIA. 1st ed. HarperCollins, 2007.
(이남규 역. 『폭풍의 한복판에서』. 서울: 조갑제닷컴, 2009.)
Woodward, Bob. Bush at War. 1st ed. Simon & Schuster, 2002.
(김창영 역, 『부시는 전쟁중』. 서울: 따뜻한 손, 2003.)
by sonnet | 2011/05/10 22:00 | 정치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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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L氏의 망상공방 at 2011/05/10 23:34

제목 : 짤방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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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달리나음의 생각
만약 미국이 더 빨리 법률을 무시하고 테러리스트를 검거했다면? 아마 911은 없었을 지 모른다는 지적....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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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 테러 전략의 변화(9.11 이전과 ...</a> 3위: 소련(30회) | 소비에트의 기상 ... more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2 09:19
핵이 있는 파키스탄에서도 이런 작전을 하다니! 공화국에는 핵무기를 뛰어 넘는 초자력 병기가 필요해. (미래소뇬 코난 참조)
Commented by 킹오파 at 2011/05/11 01:41
근데 궁금한게 수넷님은 어디서 이런 자료들을 얻으시는지 궁금하네요. 대단하시다능..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23
이번 글은 출처를 상당히 꼼꼼하게 밝혀 쓴 것 같은데... 참고자료 목록을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그중 많은 책들이 번역서가 있습니다.
Commented by H-Modeler at 2011/05/11 02:10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은 법적 규칙에만 집착하며, 미국의 결의는 흔들리는 갈대만큼이나 굳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의 55:45 발언으로 그간의 전례를 크게 깨었다는 메시지가 되는데, 이런 사례들이 누적되어 가면서 저런 나라들의 태도변화가 주목할만할 듯?
물론 지금까지 발목잡아오던 법률적 낭만주의(+관료들의 보신주의-_-)의 저항과, 나쁜 친구랑 매사냥 하러 왔다가 싸잡아서 폭사당하는 아랍 어딘가의 왕자님[....] 등과 같은 '부수적(?!) 피해'를 몇번씩 감수하면서 이번 오사마 제거작전과 같은 행동을 계속 진행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의 가치관은 'Lawful 아니면 일단 Evil 둘중 하나여....' 라는 부류에 들긴 하지만, 오사마를 몇번씩 포착하고도 놓쳐온걸 보면 참, 들이댈데가 따로 있지 싶을 정도라 심란합니다.


어우, 정말 이번 포스팅으로 9.11 전후의 천조국의 삽질역사 총정리 공부 싹 다 하고 간 느낌인듯요......ㅠㅠ
Commented by ArchDuke at 2011/05/11 04:00
짤방이 예술이군요
그나저나 이 딜레마는 참;;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24
저도 처음 보고 감탄했습니다. JLA라니 인상적인 해석.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11/05/11 06:58
저 빨방은 요즘 4chan 필수요소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24
아. 그렇습니까. 그것까진.
Commented by dhunter at 2011/05/11 07:07
sonnet님 글중에 짤방만 보고 "어머 이건 댓글을 달아야 해" 라는 보기드문 글이 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00
하하, 사실 이번 레이드 자체가 브루스 웨인 식 해법이란 느낌이 있죠.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1 08:16
촘스키는 달을 가리키는데 sonnet님은 손가락 끝을 보시는군요. 촘스키의 의도는 "지금 미국이 한 짓이 테러리스트들과 뭐가 다르냐.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는 겁니다.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11/05/11 08:45
님은 그 손가락도 못보고 계시네요
Commented by ㅁㄴㅇㄹ at 2011/05/11 11:44
그렇게 안하면 잡을 수가 없다는 거지요.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11/05/11 11:49
열심히 달을 봤더니 9.11이 오시더라는 말이죠.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11/05/11 11:51
그리고 촘스키도 자신이 비판하는 소위 미제국주의의 달달한 윗국물만 배부르게 마시며 룰루랄라 하는 위선자 아닌가요. 촘스키의 말보다는 행동에 관심을 기울여 보시지요.
Commented by 개그 at 2011/05/11 12:12
허, 어떻게 읽으면 이렇게 읽히지... 누가 봐도 빈라덴이 달이잖습니까. 그 적법성 논란이 손가락이고요. 이미 적법한 수단들이 나가리되는 과정들을 밑의 실례를 통해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데 웬 달타령인지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이건 턱짓으로 달을 가리켜서 버릇없다고 시끄러운 상황 아닌가요. 알고보니 사실은 양손을 기부스한 거고요. 과연 누가 달을 못보고 손가락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2 07:15
아텐보로// 전 촘스키의 글을 보며 달을 보고 sonnet님의 글을 보며 손가락을 봤습니다.

ㅁㄴㅇㄹ//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알카이다도 911테러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겠죠.

바보이반// 또 다른 손가락을 얘기하시는군요.

개그// 알카이다도 적법한 수단들이 다 나가리되는 과정이 있었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8:16
RedPain/ 딱 한 부분만 재인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11/05/12 09:23
X막대기로 달을 찍으면 누가 달을 볼까요....
Commented by young026 at 2011/05/12 12:41
그런데 '실질 면에서' 그게 달라야 할 필요가 있긴 한가요.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2 13:24
sonnet// 아... 그렇군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만 읽어보신 원문이 Noam Chomsky: My Reaction to Osama bin Laden’s Death(http://www.commondreams.org/view/2011/05/07-5)가 맞나요?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2 13:28
바보이반// X가 뭘 의미하는지 심히 궁금하군요.

young026// 간단히 설명하자면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가 되느냐 마느냐와 같은 문제죠.
Commented by D. Liszt at 2011/05/14 17:10
"지금 미국이 한 짓"은 파키스탄 영내에서 벌인 군사작전을 뜻하는 것이겠죠?
그 작전이 논란이 된다는 것은(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상당한 분량의 본문에서 치밀하게 논의가 된 걸로 알고 있구요.

그런데 그 군사작전이 여객기를 하이재킹해서 건물에 꼬라박아 무고한 인명을 죽이고 지들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타종교 신자 소수종파 무신론자 성적 소수자 여권운동가들을 학살해온 알카에다 네트워크의 만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고 한 'anarchy가 세상을 구원하리라'교주님하의 평가에는 동의하고픈 마음이 0.00000000005퍼센트도 안 드는군요.

그리고 소장님께선 어느 쪽이 옳다고 가치판단을 내리신 적이 없답니다. 본문 다시 읽어보시길.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4 19:05
D. Liszt// '지금 미국이 한 짓'은 물론 빈 라덴 암살이지만 여기에 911 테러를 비교하면 안 되죠. 911테러를 비교하려면 아프간 + 이라크 전쟁을 갖다 붙여야죠.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물론 sonnet님의 글에는 사실만 존재할 뿐 가치판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촘스키의 "니들이 테러리스트보다 뭐가 나은 거냣!"이란 질문에 "적법하게 죽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고 대답하셨을 뿐이죠. 이것 저것 안 따지고 암살하면 테러리스트랑 뭐가 다를까요? 테러리스트는 왜 테러라는 방식을 택할까요? 정답: 적법하게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Commented by 개그 at 2011/05/15 01:27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테러리스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많은 분들이 얼마간은 이해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자기들한텐 성전이 되는 거고 대상국들한텐 테러가 되는 거죠.
당연히 미국은 적법하지 못했고 테러리스트와 동급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sonnet님이 적어주셨다시피 극단적으로 양자택일하면 적법하게 놓치거나 주권침해하고 잡거나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여기서 어떻게 '달'이라는 개념이 나오냐는 겁니다. 그럴려면 정의로운 미국을 최상위에 놓거나 적법한 수단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것인데, 전자야 그렇다치고 후자는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RedPain님은 달을 못보고 잇다고 단언하고 계십니다.
미국의 중동정책이 애초에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은 감수할 수 없고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비록 적법하지 못하더라도요. 이런 사람들에게 '애초에 테러리스트가 테러리스트가 되게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같은 '달'은 허탈하기만 할 뿐인 저 멀리 있는 것이지 지금은 좀 생뚱맞다고 생각되는군요.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과정을 탓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잡기 위한 노력에 관한 글은 너무 어울리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5 06:54
개그// 촘스키는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sonnet님은 촘스키를 비웃습니다. 그리고 sonnet님은 미국의 입장만을 씁니다.

덧. 저는 절대로 "적법하게 빈 라덴을 제거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Commented by D. Liszt at 2011/05/15 16:13
촘스키의 의도는 "지금 미국이 한 짓이 테러리스트들과 뭐가 다르냐.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는 겁니다.

---------------------------------
[1]님께서 쓴 문장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지금 미국이 한 짓"은 님께서도 동의하셨듯이 파키스탄 영내에서의 군사작전입니다. 빈라덴 사살과 테러리스트들의 행위가 최소한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죠. 2차이라크전이나 아프간전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2] 이 문제는 테러리즘은 정당한가라는 일반론적 접근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개별 테러행위의 정당성을 살펴야 할 문제입니다. '적법하게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테러전술을 사용한다'는 주장이 정당하다면 미국 역시 테러리스트를 제거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는 주장을 펼 수가 있는 것이죠. 헛돌고 있군요 논의가.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7:42
RedPain / 이 글이 미국만 다루는 것은, 최근의 오사마 은신처 급습작전을 보고 작성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에서 오사마는 수동적으로 숨어 있었고, 미국이 움직여 공격을 했었죠. 그러나 이 블로그에 다른 측면을 다루는 글이 이미 여러 개 공개되어 있으니 그 쪽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알 카이다 관점에서의 전술적 발전에 대한 글은 다음 글을 참조.
http://sonnet.egloos.com/2995987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기존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선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나.
http://sonnet.egloos.com/2953749

약소국의 '최후의' 생존전략으로서 테러
http://sonnet.egloos.com/3330142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8 06:02
D. Lisz//
그런데 그 군사작전이 여객기를 하이재킹해서 건물에 꼬라박아 무고한 인명을 죽이고

[1]님께서 쓰신 문장입니다. 911 테러는 끌어들여도 되고 이라크전이나 아프간전은 못 끌어들일 이유는 뭔가요.

[2]그러니까 미국 하는 짓이 테러리스트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테러를 없애겠다며 테러리스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였죠. 그리고 전 테러가 정당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8 07:01
sonnet// sonnet님은 이 글을 쓰게된 계기라며 촘스키의 글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은 미국의 입장만을 설명하죠. 완벽하게 사실만을 서술한 본문으로 촘스키를 서두에 오묘하게 집어넣어 까셨습니다. 더군다나 본문은 촘스키의 글에 대한 대답도 될 수 없고요. 만약, "이 글이 미국만 다루는 것은, 최근의 오사마 은신처 급습작전을 보고 작성한 글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글이 포스팅의 어디에라도 있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덧. 이 댓글(지금 달고 있는 바로 이 댓글)을 달까말까 고민을 좀 했었는데, 제 댓글들을 돌아 보니 sonnet님께서 답변하기 힘들게 제 댓글 또한 참 모호하게 써놨더군요. 이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꾸벅.

덧2. 저는 sonnet님의 왕팬입니다. 사실 전 sonnet님을 종종 sonnet대제님이라고 부를 정도죠. sonnet님께서 소개해주시지 않더라도 모든 글을 다 읽었습니다. 저에게 sonnet님은 "정치적 이상은 다르지만 존경이란 표현을 안 쓸 수 없는 분"입니다. 의도하신 건지 실수로 이런 글 구도가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글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깔 때는 명확하게" , "깔려면 까고 안 깔려면 아에 언급하지 말아주세요."
Commented by D. Liszt at 2011/05/18 21:06
소장님 댁에 더 이상 민폐를 끼칠 수도 없고 해서 동어반복 수준의 덧글을 뒷북으로 남깁니다.

[1] 선후관계를 살피시길. 케냐 탄자니아에서 미대사관에 자폭테러하고 9.11을 일으킨 결과가 2차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라크의 경우엔 명분이 없는 침공이라고 생각해 규탄하는 입장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빈라덴을 처벌할 근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파키스탄 영내에서의 군사작전의 문제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2차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을 끌어들이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라크전은 그것대로 비판하면 되는 것입니다.

[2] 제가 사례로 든 알카에다 네트워크의 만행을 옹호하기 위해 2차 이라크전과 아프간 침공을 제시한 것도 마찬가지의 오류입니다. 알카에다 네트워크가 살해한 타종교 신자, 소수종파 신자,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LGBT, 여권운동가들이 미국시민권자가 아닌 이상 알카에다 네트워크의 만행을 규탄하는 데 있어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행동을 끌어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님께서 제시해서 논의 중인 사례는 파키스탄 영내에서의 군사작전의 문제를 알카에다 네트워크가 벌여온 테러행위와 같은 비중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제기는 님께서 촉발하셨구요. -_-;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19 06:10
[1] 911테러는 원인, 아프간전은 결과라.. 그럼 911테러는 아무런 원인도 없는데 심심해서 목숨 걸고 테러가 행해졌나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건가요?

"처벌할 근거"는 확실히 충분한가요?

본문인용: 법무부는 그를 기소할 수 있을 것인가? 재판에 회부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백악관 관리들이 법무부에 기소 가능성을 문의했을 때, 현재 가진 증거를 갖고 기소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중간급 관리들로부터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게 처벌인가요? 암살이지.

[2] 알카에다가 벌인 "모든 나쁜 짓"과 미국은 단 한 번의 "나쁜 짓"을 비교해야 맞다는 말씀이시죠? :)
Commented by nayuta at 2011/05/19 15:09
기소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1996년 시점의 이야기 입니다 이때는 오사마가 미국시민을 공격하기 전이죠 - 참조하신 부분 조금 아래 보면 나옵니다.
Commented by D. Liszt at 2011/05/19 21:46
Red Pain// -_-; 911의 결과로 2차 이라크전이 발생했다는 것에도 동의를 못하십니까? 그래요. 그럼 목숨 걸고 행한 911 테러의 직접적인 원인이 뭔가요? 부시행정부가 오판 혹은 과욕에서 부당한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구요. '부시개객기' 따위는 얼마든지 외칠 수 있고 실현가능성과는 별개로 전범으로 기소하자는 주장에도 심정적으로 동조하구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빈라덴을 처벌할 근거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구요. 911이 그냥 잊고 말 성격의 사건도 아닌데다 부시=미국이 아니거든요.

결국 남은 건 이번 파키스탄 영내에서의 미국의 군사작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인데 (소넷님을 포함해서 이곳에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은) 군사작전이 갖는 문제의 정도를 어느 누군가는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고 한 거구요. 아무리 논란이 있는 작전이었다고 해도 그 동안 전세계에서 알카에다 네트워크가 벌인 테러행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겁니다. 양자를 비교하며 큰따옴표로 인용까지 한 분이 누구였죠? 제 비판의 촛점은 그 부분에 맞춰진 겁니다. 쓸데없이 2차 이라크전이나 아프간전 들고 나오셔야 소용이 없어요. 이건 뭐 벽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로 제 대응은 끝입니다.
Commented by D. Liszt at 2011/05/19 21:52
"그리고 이게 처벌인가요? 암살이지."

--제가 언제 그런 식의 군사작전이 정당하다고 했습니까? 근거 대보세요.

"알카에다가 벌인 "모든 나쁜 짓"과 미국은 단 한 번의 "나쁜 짓"을 비교해야 맞다는 말씀이시죠? :)"

--장난하세요? 알카에다의 테러행위와 미국의 이번 군사작전의 문젯점을 비교하면서 후자가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고 한 건 제가 아니라 님이예요. 그 점을 비판했는데 웬 엉뚱한 말씀입니까? 정말 대책이 없군요.

* 소장님, 죄송합니다. 이걸로 대응은 끝내겠습니다.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20 06:36
nayuta// 아.. 제 실수입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꾸벅.
Commented by RedPain at 2011/05/20 06:52
D. Liszt// 마지막 답변입니다. "지금 미국이 한 짓이 테러리스트들과 뭐가 다르냐.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로 촉발된 논쟁은 서로 머리 속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한 짓"이 달라서 평행선을 그어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빈라덴 암살 < 알카에다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나쁜 짓"이라고 주장하신다면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제 얘기는 도대체 왜 "알카에다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나쁜 짓"보다 "미국의 빈라덴 암살"이 작아야만 윗 문장이 참이 되냐는 것이죠. 그럼 제가 "미국의 빈라덴 암살은 테러리스트들이 한 짓 중 적어도 하나 이상보다는 나쁜 짓이다"라고 썼어야 됐나요?

덧. 이게 핵심이라 생각되어 나머지 파생된 문제는 모두 생략합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11 08:30
쿠웨이트를 시작해서 사우디까지 알 카에다와 엮이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하나죠 : 몸보신.

괜히 알 카에다를 자극했다가 무슨 꼴을 당할 지 알겠습니까. 뭐, 귀차니즘도 있겠지만 말이죠. 저정도로 비협조적인 상황에서 목표물을 제거하려면 다른 방법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겠죠. 파키스탄이라면 특히 (자국의 체면까지 겹쳐서) 그럴 수 밖에는... 흠.

무샤라프... 쿠데타로 집권하고서도 빌빌거리는 걸 보면서 얼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무식하고 어리석은 인간이군요. '바나나 공화국 대통령'이라... ㅋㅋㅋ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5/11 09:06
무샤라프와 파키스탄 군부에게는 저런 이중플레이가 '합리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미국과 서방 입장에서야...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11 09:26
행인1님의 지적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만... 파키스탄은 너무도 모순투성이라는 것이죠.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얼마 전에 sonnet님께서 올리신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관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파키스탄은 탈레반 정권의 재창출이 자국에 득이 됩니다. 그러니 탈레반과 알 카에다 소탕에 미국보다 미온적이죠.

근데 그러면서도 정작 미국에게는 받을 건 다 받는다는 겁니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대테러전에는 미온적인 중동 국가들이야 미국과 주고받는 게 늘 있어왔고 앞으로 있을 것이니 문제가 아니겠지만, 파키스탄은 그게 아니거든요. 아프간 전만 끝나면 미국은 파키스탄과 굿바이 할 게 뻔합니다. 인도와 친하게 지내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낫죠.
Commented by shaind at 2011/05/11 11:08
근데 파키스탄더러 인도랑 친하게 지내라는 건 우리나라더러 일본이랑 친하게 지내라는 것과 동급 이상의 난제라서 말이죠...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5/11 12:37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는 그 어려움만으로 볼때 한국과 일본 관계를 넘어.. 대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혹은 한국과 북한의 관계에 근접한다고 생각됩니다. 실제 나오는 희생자로 따지면 의심가는 수치까지 합쳤을 경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수준이 되지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11/05/11 12:45
제가 말한 "인도와 친하게 지내는 게 여러모로 훨씬 낫죠."는 미국과 인도 사이를
뜻한 것이었습니다... ^^;;; (주어를 제대로 붙였어야 하는데 실수했다는... ㅋㅋㅋ)

파키스탄과 인도가 친하게 지낼 리가 없잖습니까... 그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이란
과 미국이 화해하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빠르겠죠. ㅡ.ㅡ;;;
Commented by 알츠마리 at 2011/05/11 14:27
라피에사쥬님의 말을 들으니, 작년에 있었던 임마누엘 윌러스틴의 대담 내용이 생각나네요. 그때 그 사람이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구 동서독 관계보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 가깝다고 평했었죠.
당시 거기 참가한 지난 정권 인사들은 그게 적절하지 않은 비유 같다고 했지만, 저로서는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학상 at 2011/05/11 08:39
그리고 한국에서 작전이라.... 이건 확실하게 의미심장하군요. 물론 한국이야 미국의 대표적인 '가급적 주는대로 주는'동맹국이지만, 한국 정보부및 행정부 및 군부의 수반이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도피한 미국의 주적을 제거하기 위해 (이유야 어쨌든) 즉각타격작전을 실행한다라.....

이거 사실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주권침해 군요!^^ 항상 '현실을 만만치 않잖아' 라고 생각하는 쿨시크 놀이를 즐겨하는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 도 있네요.

소넷님의 분석 및 정보전달 글은 항상 숙독하며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는데 항상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뱀발: 만약 9.11 테러가 미국이 아닌 다른 어떤 '임의의' 세계 초 강대국에게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비단 군사적, 경제적 역량 뿐만아니라 정치-문화-법적인 배경도 임의에 붙여서 말이죠.)
Commented by 뭬뭬 at 2011/05/11 11:01
여간해선 한국모르게 미국이 작전을 벌일 이유는 없죠
한국대통령이라도 잡아가는 작전이라면 모를까
Commented by 밀본 at 2011/05/12 00:16
어떤 종류를 '임의'라고 부르시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초강대국 후보를 생각해 보면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겠지요.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 같은 초강대국이고 그런 나라에서 9.11이 일어났다면, 부시의 행동 정도는 아주 신사적이고 온건하게 보일 만한 대응이 있었을 겁니다. 대충 체첸이나 티벳에서 보는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겠지요.

미국은 상당한 소프트파워를 가진 나라입니다. 많은 동맹국들이 미국은 (천사같은 선행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기대하고, 그 점은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부시는 그걸 상당히 날려먹었지만, 애당초 그런 거 없다로 행동하는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다른 '임의의' 초강대국이 미국보다 신사적으로 행동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6:49
러시아가 강력한 테러 공격을 많이 받는 편이니까, 그들의 대응이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학상 at 2011/05/11 10:11
저 또한 촘스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해서 어느정도 수긍하고, 그 고결한 '사회적'도덕주의에 상당부분 동의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소넷님의 글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쪽은 그것보다는 이것 같습니다.
'비록 미국이 적성조직에 대한 일종의 국지적 테러행위로 목표를 달성하긴 했으나, 내부적으로 어떤 '정의롭고 합법적인' 대안이 가능한지 끊임없이 고뇌해왔다. 결국 여러 부정의한 리스크들을 감수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아닐까요.
이 부분에 대한 가치판단이야 개개인마다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결국 테러리스트들의 (IRA류) 요인암살 테러랑 다를께 뭐야?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된거 아니냐고?' 라고 시크하게 넘어가기엔 몇가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같네요. 아마도 적성국가의 민간인(혹은 선의의 제3자)과 전략목표를 구분지을 것인가 아니면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두들기자의 차이가 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몇년전 백범선생과 의열단, 안중근의사의 테러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논쟁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매우 골치아프단 말이죠.(....그렇다면 이번 라데니 사살작전은 제 이슬람 과격테러단체들에 대한 미국의 테러일려나요!!)
Commented by ㅁㄴㅇㄹ at 2011/05/11 11:44
그보다 법적, 도덕적 굴래 안에서는 테러범을 국외에서 잡는건 어렵다는것 아닌가요.
Commented by Nairrti at 2011/05/11 16:32
저도 학상님의 생각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스맨 at 2011/05/11 11:38
판타지를 지향하고, 리얼에서 일한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39
하하.
Commented by mooni at 2011/05/11 12:32
이거보면, 나름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겠군요.
남이 날 도와줄리가 없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41
맞습니다. 남이 날 도와줄 때는 대개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오히려 9.11 이후엔 리비아, 시리아 같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들이 대테러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죠. 그들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이슬람 반체제 운동권들의 파일을 들고가서 미국에게 찔러주고...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1/05/11 12:43
저는 필요할 경우 파키스탄을 침공하는 옵션을 남겨놔야 된다고 보는 지독한 강경파이긴 한데, 이런 방법을 민주국가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키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사회적 가치와 일부 법적 경계를 넘어서는 일까지 해야한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모든 국민이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또 그것을 항상 옳다고 받아들여서도 안될 일이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51
동의합니다. 다만, 그걸 요구한 것은 정치가나 관료라기 보다도 국민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멀뚱멀뚱 있었을 때는, 9.11이전 방식의 솜방망이 휟르는 정책이 정치가나 관료의 선택이었다는 점에서요. 그러니 그들이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되지 않는지를 정치가나 관료에게 정해주어야 하겠죠.
http://sonnet.egloos.com/2953749 도 참조.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5/11 12:53
노암 촘스키... 그 사람의 위선적 행각만 접하는 것만으로도 정나미가 충분히 떨어질 판인데 아직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여러모로 신기합니다.
Commented by let go at 2011/05/11 15:14
그냥 "브랜드"로 소비하는거죠 뭐 ㅋ 지적차원의 루이비통이랄까?ㅋ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47
저는 단순히 글에서 배울 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시간낭비를 피하고자.
Commented by 응헗 at 2011/05/18 14:33
행동하는 지성 소리 듣는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비센테 우이도브로 같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기기만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1/05/11 12:54
확실히 9.11이 '전환점'인 것만은 분명한 듯 하네요. 진주만 때도 그렇듯이 미국은 딴건 몰라도 맞고는 못 참는 성격인데, 일견 만만해 보이는 평시 모습 때문에 종종 간과되는 듯 합니다.

PS. 촘스키 따위의 글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던 소넷님께 잠시 동정을... (박노자와 더불어 종이와 잉크가 아까운 글만 쓴다는 게 제 감상입니다)
Commented by asdf at 2011/05/11 13:59
촘스키는 자기 전공 분야인 언어학에서 모든 재능을 다 쓰느라 다른 분야에서 바보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11
네, 아주 큰 전환점이죠.
Commented by asdf at 2011/05/11 13:53
미국이 파키스탄을 포기하면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들이 탈레반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미국은 좋든 싫든 파키스탄을 포기하면 안되고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참 복잡할 것 같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37
구체적인 증거는 없습니다만, 저는 핵안전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 파키스탄이 모종의 밀약 하에서 협력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PAL같은 것을 주었을지도.
Commented by //asdf at 2011/05/11 14:30
아아...그래서 미국이 파키스탄 포기 못하는 거군요

전에 인도 지지 파키포기 의견 냈었던 유동닉인데, 거 참...그 점 간과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글에 대한 한줄 요약

(평소 - 부시 가문 등 몇몇 제외) 착한 짱이 제대로 빡쳐서 다소 욕 먹을거 각오하고 약은 놈 한대 후려침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6:00
이런 일에는 착하게 보이는 게 꼭 유리하지 않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Commented by -_- at 2011/05/11 18:34
항상 소넷님의 블로그에서 큰 지식을 얻어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1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1/05/11 21:49
1. 부시 주니어의 무식한 접근법이 상황에 따라서는 유용한 것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봅니다.

2. 이론상 미국과 이라크, 또는 북한은 '동등한 주권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미국에게 들이대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이라크나 북한에 들이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말그대로 이론에 불과한 소리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07
W.의 이미지가 9.11 이전(약간 어벙한 듯 하면서도 친근감있는)에서 9.11 이후(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마초)로 크게 바뀌는데, 저는 그게 W.측의 이미지메이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을 펼치는데도 유의미한 것이었던 거죠.

Commented by 해해성원짱 at 2011/05/12 00:02
미국도 많은 고민을 거친 후에야 사법장치를 통하지 않는 직접적인 제거를 선택했군요. 그래도 사법적인 해결방법을 여러번 모색해봤다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만약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저런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의지가 미국 정치권에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고 봐야되는 걸까요. 아님 저런 결단을 내린건 이미 늦은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2 01:02
외부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해결하라는 압력이 들어오니까 반응하는 거지, 국민이 멀뚱멀뚱한 입장이라면, 정치인이나 관료들 입장에서야 규정대로만 하고 끝내는게 더 편한 일일 수도 있죠.
Commented by d/s at 2011/05/12 08:39
미국의 선택은..뭐어, 이해는 합니다. 이해는. 또한 미국이 대다수 제3세계 반미지도자들에 비하면 훨씬 신사적이며, 인도적이라 봅니다. 그러나 미국의 선택에 동조하진 못하겠군요. 이런 점에서는 약소국의 소시민이 편하긴 합니다. 대다수의 국제문제로부터 한발짝은 물러나있으니까요. 완전히 속편하게 구경만 하기엔, 다음에는 우리가 주권침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 힘듭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55
네. 꼭 동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그냥 분석상의 필요에 의해 보고 있을 뿐.
약소국은 말씀하신 것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작고 약해서 자동적으로 stealthy하지요. 더러운 일에 꼭 앞장설 필요도 없고. 그냥 조용히 있으면 살살 피해갈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

주권침해 문제는 작년에 서해에서 해군훈련하려다가 중국과 충돌한 게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죠. 이런 때도 작은 나라는 자기의 것만 잘 챙기는 정도가 최선인 듯 합니다. 묵자의 제자들처럼 어려운 작은 나라들을 돕기 위해 이나라 저나라 편을 들며 떠돌아다니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11/05/12 12:29
항상 감사드립니다. 시간흘러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네요.

촘스키는 자기 영역에서 아무리 본좌급이라도 상관없는 데서 끼어들다간 본전도 못 챙긴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 같군요. 근데 국내에서 그가 얻은 유명세는 언어학자로서가 아닌 좌파 지식인으로 얻은 거니..

아마도 빈 라덴의 죽음을 보면서 리처드 클라크는 정말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적들에 맞서'를 보면서 참 절절히 느껴지더군요. "으아니~ 왜 막지를 못해! 왜! 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6:02
클라크의 이야기 중에서 제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클린턴은 언제나 공격적인 작전집행에 찬성이었다. 정치적 위험을 질 의지가 있었다...라고 평가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클라크는 클린턴의 대테러책임자니까, 그걸 인정해버리면 그게 바로 본인의 잘못이라고나;;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22 09:27
자기 영역에서 아무리 본좌급이라도 상관없는 데서 끼어들다간 본전도 못 챙긴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로는 그 밖에도 마이클 조단(농구->야구), 조갑제(기자->시민운동) 등이 있지요.
Commented by 오그드루 자하드 at 2011/05/12 19:59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무샤라프 옹의 사자후 ("이 판지셰르 계곡 놈을 데려와 나한테 첩보에 대해 가르치려는 저의가 뭐냐?") 를 들으니 북부동맹에 대한 파키스탄의 입장에 대해 좀 알 것 같습니다 ㅎㄷㄷㄷ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49
하하, '무'총통의 대사자후! 사실 저 살리흐는 요즘 '탈리반과의 협상에 반대! 탈리반에게 죽음을!!"이라는 가두시위를 하고 있더만요. 둘의 관계는 그만큼 깔린 게 많죠.
Commented by ttttt at 2011/05/13 09:12
그래서 "관타나모"군요..
Commented by 해해성원짱 at 2011/05/13 10:55
폐쇄되어도 어딘가에 비슷한게 꼭 생길겁니다. 정치에 지식은 없지만 그건 확신할 수있군요.
Commented by ttttt at 2011/05/13 15:31
제 얘기는 저런 꼴을 당했으니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곳에 직접 통제가능한 수용소를 두는 게 감정적으로 납득이 됐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올바르냐는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으로.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48
감성적으로 보면야, 강간범 풀어주니 또 강간... 이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건이 한 번 보도되면 한국도 끓어오르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핫케익 at 2011/05/13 09:16
흠.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실제로 발사했다는 기사를 당시에 본적이 있는데...미국애들이 대사관 폭발 후에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44
네, 클린턴기의 정책 특징 중 하나였죠. 뭔 일만 생기면 크루즈미사일 공격. 하지만 대부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상대가 공격을 준비할 때, 이미 공격을 한 후엔 잠수탈 준비를 하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핫케익 at 2011/05/13 14:48
소넷님이 시간 되시면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에 대한 발제 좀 부탁드립니다. 현재 언론 보도를 보니 해군/공군 쪽에서 대체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는데, 이게 집단 이기주의인지 아닌지 당췌 분간이 안됩니다. 언론 보도를 꾸준히 훑어 봤지만... 이것참. 판단을 못하겠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45
이런 것은 이글루스 이웃의 maxi선생이 더 잘 하시지 않을까...
Commented by 일급비밀 at 2011/05/13 20:23
긴 글을 한자한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39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암호 at 2011/05/14 13:46
짤방에서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39
하하.
Commented by 지나가던과객 at 2011/05/16 12:24
그동안 말과 법을 지켜가면서 잡을려고 했는데, 그때는 말을 안듣더니 왜 지금와서 지랄이냐 이거군요.
힘이 있어도 말로 하면 호구로 취급하니.....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39
그렇게밖에 일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깝긴 하지요.
Commented at 2011/05/16 20:0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1/05/17 05:43
좋은 현상입니다. 저는 저 정도 조건이라면 다른 나라들이 WFP 채널로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몇 년 전에 공격적인 자세로 외국 원조자들을 쫓아내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또 사정이 조금 호전되면 똑같은 도전을 해오지 않을까 걱정은 됩니다만.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5/19 11:15
미사일 대신 특수 보대를 보낸 건, 오사마'만'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아닐까요? 미사일 쐈더니 옆에 있던 아랍 왕자가 함께 죽는다거나(난감), 아랍 왕자만 죽으면(좆망) 문제가 생기겠지요.

촘스키가 모르고 한 말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촘스키는 그래도 언어학에서는 신 소리 듣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아주 머리가 좋을 것이고, 아빠 부시 암살 시도와 클린턴이 복수한답시고 이라크 때려잡은 것도 다 기억할 겁니다.
Commented by ... at 2011/05/24 15:41
너무 촘선생에 대해 환상을 가지지마세요 zmug를 찬찬히 구독하셨다면 이 양반도 좀 바보틱하다는 걸 아실겁니다
Commented by 특이성 at 2011/06/12 19:31
이 글을 신동아에도 기고하신 걸 봤습니다. 글이 중간 중간 조금씩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느낌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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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빈 라덴 20년 추적기
아프간 용병과 순항미사일, 회유와 협박 총동원된 희대의 ‘인간 사냥’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1/05/18/201105180500005/201105180500005_1.html


워싱턴은 왜 타국에서의 군사작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빈 라덴을 사살했을까. 파키스탄에 대한 협조 요청이나 재판 회부 같은 다른 방식은 과연 불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간 국제 테러활동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경험한 일련의 사례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9·11 테러를 계기로 급선회한 미국의 대(對)테러 정책 변화가 그 핵심에 놓여 있다. 전직 미 고위관료들의 회고록을 통해 속속들이 들여다본 미국과 빈 라덴의 20년 전쟁사(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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