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체르노빌의 교훈
체르노빌의 교훈
필자: David E. Hoffman
날자: 2011년 3월 14일

일본에서 일어난 무시무시한 사건들의 전개 - 엄청난 지진, 그리고 해일 - 는 이번 핵위기를 1986년의 체르노빌 사건과 구별 짓는다. 체르노빌 사고는 자연재해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 일어났다. 그 원자로는 보호용기가 없게 설계되어 있었고, 일단 폭발하게 되자 방사능 잔해가 공기 중으로 흩뿌려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번 일본의 핵위기는 이 정도의 위험에 도달한 것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다른 이유에서, 여전히 체르노빌은 숙고해볼 가치가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이와 같은 순간에 완전한 투명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체르노빌은 혼란과 비밀로 점철된 소련의 총체적 체제에 대한 반면교사였다. 체르노빌은 소비에트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마음속에 글라스노스트(공개)의 가치를 굳게 만들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몇 달 동안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되물어야만 한다. 우리는 체르노빌에서 교훈을 얻었던가?

체르노빌은 1986년 4월 26일 오전 1:23에 폭발했다. 나는 내 책 “The Dead Hand"에서, 이 재앙을 만들어냈던 사건들과 그 여파를 상세히 다룬 바 있다.

이 폭발은 원자로 4호기의 지붕을 관통하는 구멍을 냈고, 뒤이어 화재가 발생했다. 몇몇 방사성 잔해는 현장 근처에 떨어졌지만, 방사성 물질들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흘러갔다. 초기 오염만 해도 하나의 악몽이었지만, 그 뒤를 이어 후속타가 밀려들었다. 흑연 노심에 불이 붙었고 10일 동안 쉬지 않고 타면서 더욱 위험한 물질들을 대기 중으로 뿜어냈다.

이 재난이 발생한 후 여러 시간 후, 흑연 노심이 여전히 불타는 동안, 에너지성 차관 알렉세이 마쿠킨으로부터 모스크바의 중앙위원회에 “긴급 보고”가 제출되었다. 그는 체르노빌이 처음 건설될 당시에 우크라이나 에너지성 장관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이 보고서는 4월 26일 오전 1시 21분 원자로 상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화재를 일으키고 지붕 일부를 파손시켰다고 언급했다. 그리고는 “3:30, 이 불은 꺼졌다.”,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 원자로의 활성구역을 냉각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으며 주민들의 철수령은 필요치 않다고 이 보고서는 말했다. 마쿠킨의 보고서 거의 모든 곳이 잘못되어 있었다. 원자로는 여전히 불타고 있었으며, 냉각은 되고 있지 않았고, 주민들은 당장 철수시켜야만 했다. 이 보고서가 말하지 않은 것은 더욱 나빴다. 방사능 탐지기가 고장났으며, 소방관과 다른 사람들은 적절한 보호 장비 없이 현장에 투입되었고, 관리들이 철수에 대해 논의를 하긴 했지만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고르바초프의 첫 반응은 느렸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가 결여된 원인은 소비에트 체제 그 자체에 있었다. 이 체제는 반사적으로 진실을 묻어버렸다. 각급 당국은 지휘체계를 따라 거짓말을 올려 보내고 또 내려 보냈다. 인민들은 무지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희생양들을 찾아냈다. 고르바초프는 이 노쇠해진 체제의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진실을 은폐하는 그런 관행을 당장 깨버리지 않은 데 있었다. 그는 느리게 반응했고, 이 정력적인 사나이로서는 놀랍게도 한동안 마비상태에 있었다. 그는 그가 진실을 필요로 할 때, 재난 현장이나 원자력 발전에 책임을 진 관리들로부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진실을 얻어낼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스웨덴이 방사능의 징후를 잡아냈고, 4월 28일 정오에 소련에게 이 문제를 들이댔다. 이때까지, 모스크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날 저녁 9시, 소련 언론들은 이 사태의 파국적인 본질을 전혀 전달하지 못할 정도로 간단명료한 크레믈린의 성명을 배포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해 원자로 1기에 손상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발생한 결과들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부상자는 치료를 받고 있다. 정부 [대책]위원회가 설립되었다.


다음날인 4월 29일, 고르바초프는 다음 정치국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은 외부세계에 뭐라고 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 있었다. 정치국은 새로운 성명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는데, 역사가 드미트리 볼코고노프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성명서는 “창고에서 일반적인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용되었을 법한 말투”로 되어 있었다.

이 성명은 사고가 원자로 건물의 일부와 원자로 그 자체를 손상시켰고, 일정량의 방사성 물질의 유출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두 명이 사망했으며, “현재, 발전소와 그 인근의 방사선 수준은 안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사회주의 형제국들에게 제공된 판본에는 한 문단이 추가되었는데, 소련 전문가들이 체르노빌로부터 서쪽, 북쪽 남쪽을 향해 방사능 물질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오염의 수준은 허용된 기준치보다 다소 높다, 그러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할 정도는 아니다.”


체르노빌의 소방관들과 다른 사람들이 현장에서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는 동안, 소련의 국가 지도자들은 어리둥절한 채 있었다. 인근 프리퍄트 시의 주민 소개는 폭발 발생 후 36시간이 지나서야 시작되었다. 최종적으로 116,000명이 소개된 더 넓은 지역에 대한 제2단계 철수는 5월 5일까지 개시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공산당은 바람이 자신들을 향해서 불어오는 데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에서 메이데이 퍼레이드가 평소처럼 진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크레믈린 문서고에서 블라디미르 구바레프라는 한 언론인의 놀라운 보고서를 찾아냈다. 그는 당 기관지인 프라우다의 과학면 편집자였다.

구바레프는 핵분야 간부들 사이에 좋은 연줄을 갖고 있었기에,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 직후 이 사고에 대해 듣고는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측근이자 신사고의 대표자였다. 하지만 야코블레프는 그에게 “그 일은 잊으시오. 쓸데없이 끼어들지 마시오.”라고 말했다고 구바레프는 회고했다. 야코블레프는 그 어떤 기자도 현장을 보지 못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구바레프는 끈질겼고, 매일같이 야코블레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코블레프는 결국 구바레프를 포함한 일군의 기자들이 체르노빌에 갈 수 있도록 허가했다. 구바레프는 물리학 학위를 갖고 있었으며 희곡과 책도 썼다. 그는 5월 4일에 도착했다가 5월 9일에 돌아왔다. 야코블레프에게 제출한 그의 개인적 보고서는 무질서와 혼란을 충실히 묘사했다. 폭발이 일어난 한 시간 후, 방사능이 퍼져 나오고 있음은 분명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어떤 비상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개인방호장비도 없이 병사들이 위험 지역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그런 걸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도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상식이 요구된다, 그릇된 용기 말고.”라고 그는 썼다. “전체 민방위 체제가 통째로 마비되었음이 판명되었다. 심지어는 동작하는 방사능 측정기도 없었다.” 구바레프는 말했다. “현지 관헌들의 굼뜬 대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을 위한 옷과 신발, 속옷 등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모스크바로부터의 지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키에프에서 정보의 결여는 공황을 일으켰다. 인민들은 외신 보도를 전해 들었지만 자기네 공화국 지도자들로부터는 단 한마디의 안심시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이러한 침묵은 며칠 후 당 지도자들의 자녀와 가족들이 도망쳤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 큰 공황을 만들어냈다.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구바레프는 자신이 쓴 보고서를 야코블레프에게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고르바초프에게 올라갔다.

고르바초프는 마침내 전국에 방영된 TV 연설을 통해 이 재난에 대해 직접 이야기했다. 5월 14일, 사건 발생 후 2주일하고도 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의 연설은 이 재난의 원인을 비켜갔다. 그리고 “우리가 신뢰할 만한 초기 보고를 받는 즉시” 인민들에게 경고를 전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고르바초프는 크레믈린이 정보를 틀어막고 있는 동안 수만 명에 달하는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초기보고 같은 황당한 비난이 서방으로부터 쏟아지는 데 대해 참을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또한 개혁가로서의 그의 진정성에 대한 비판을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체르노빌 사건 후 몇 달이 지나서, 고르바초프는 드디어 그가 초기에 취했던 타성적인 태도를 떨쳐버리기 시작했다. 7월 3일의 정치국 회의에서, 그는 핵분야 간부들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30년간 당신들은 우리에게 모든 게 안전하다고 말해왔소. 그리고 당신들은 우리가 그것을 하늘의 말씀인양 받아들이게 했소. 이것이 바로 우리 문제의 뿌리요. 각 성청과 연구소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고, 그들이 재앙을 이끌었소. 그리고 여태까지도 나는 당신들이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배웠다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소. … 모든 것이 중앙위원회에게 비밀로 숨겨지고 있소. 당 간부들은 이 분야를 들여다본 적이 없소. 원자력 발전소를 어디에 지을지에 대한 결정조차도 우리 당 지도부에 의해 정해진 적이 없소. 혹은 어떤 원자로를 채택할지에 대한 결정도 말이요. 이 체제는 맹동주의, 아첨꾼, 겉치레, …, 비판자 박해, 과장, 정실주의, 종파적 관리체제로 가득 차 있소. 체르노빌이 일어났는데, 그 누구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소. 민방위도 보건부서도, 심지어는 최소필요량의 방사능 측정기도 없었단 말이오. 소방대는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소! 이튿날, 인민들은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결혼식을 가졌소, 어린이들은 밖에서 뛰어놀고 말이오. 이 경보 체제는 좋지가 못해! 그 폭발 후에 구름이 생겼었소. 그게 어디로 움직였는지 관측한 사람 있었소?


이 책에서 내가 결론내린 것처럼,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난 후 고르바초프는 격노했지만 당이나 체제 자체에 비난의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원자로 운전요원들 같은 희생양을 찾았다. 그들은 후에 재판에 회부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체제의 정통성에 도전하지 않으면서도 이 체제의 무기력증을 털어버리고자 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진실은 체르노빌이 소비에트 연방이 어떻게 안에서부터 썩어들어 갔는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 재앙을 이끌어낸 실수들, 무관심, 잘못된 설계는 [소련의] 다른 많은 것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볼코고노프는 “제4 블록에서 불타는 거대한 크레이터는 이 나라의 깊은 상처를 드러냈다”고 썼다. 그는 체르노빌을 “소련 체제를 위해 울리는 조종”이라 묘사했다.

마침내 체르노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악하게 되면서, 글라스노스트, 또는 [정보의] 공개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강조는 무게를 더해갔다. 7월 3일의 정치국 회의에서, 그는 선언했다. “사고의 원인을 설명할 때나 실무적인 문제를 다룰 때를 막론하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인민들에게 진실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우리는 답을 회피할 수 없소. 사안을 비밀로 유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해치게 됩니다. 공개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이익이요.”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든지 간에, 그에 대해 [숨기지 않고] 공개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커다란 진전이다.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by sonnet | 2011/03/17 23:39 | 정치 | 트랙백 | 덧글(47)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455021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03/17 23:47
음 지금과 별 차이가 없는 듯; 기간만 스케일링 다운 된 거 같고...
Commented by sonnet at 2011/03/18 00:14
일본은 기본적으로 서방식 매뉴얼을 따르는 나라라서 정부가 정보공개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는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문부과학성이 수집 공개하는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능 측정량 사이트 http://bit.ly/fhysB6 이런 것도 있구요. 사실 원자로와 관련된 모니터링 정보는 사고 이전에도 공개된 게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진 않았지만.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03/18 00:16
그래도 충분하다고 할 수준은 아닌 것 같군요. 그나마 소련과 다른 건 메뉴얼이라도 있었다는 정도일런지...하지만 실제로 촉각을 다루는 중요한 내용들은 여전히 늦장이더군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1/03/18 01:27
음...

지금 상황에서의 정보흐름이 구 소련 수준이었으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자체가 '아직도' 안 알려졌을 겁니다... 아직 다른 나라에서 방사선의 이상 증가를 캐치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03/18 02:17
일본이 구소련급 정보은폐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걸요. 저도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Commented by 로리 at 2011/03/17 23:50
진짜 지금과 차이가.. ^^;;
Commented by KittyHawk at 2011/03/17 23:57
정말 교훈이 따로 없군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제대로 각인되고 실천되고 있는지는...
Commented by 타누키 at 2011/03/17 23:59
체르노빌 이름만 많이 들었는데 잘봤습니다~
첫 문단처럼 체르노빌과는 현재까지 전혀 다른 상황이니만큼
바로 대입해 상상하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바라는 처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국내 반응이 호들갑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1/03/18 00:01
가라질을 한 놈이 잘못인가, 가라질을 할 수밖에 없게 한 놈이 잘못인가.
Commented by 명림어수 at 2011/03/18 00:04
발표까지의 시간적 간격이 줄어들고,
원자로가 제대로 방호용기에 들어있는 것 등은
중요한 차이점들인데
무슨 이유로 별 차이가 없다는 건지요?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11/03/18 00:08
사건이 차이 없다는 게 아니라 태도가 차이 없다는 뜻입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11/03/18 00:16
동경전력 2ch 라는 검색어로 구글 검색하시면 다소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Commented by 불곰™ at 2011/03/18 07:24
와우할 때 마법 쓰는 쿨타임이 줄면 그 마법이 a란 이름에서 b로 바뀌는 거여? 'ㅅ';;;;
Commented by 큐베 at 2011/03/18 00:22
체르노빌의 영웅이 순식간에 범죄자로 되어버렸군요.
Commented by 한뫼 at 2011/03/18 01:16
대응 방식이 별 차이 없게 느껴지는 것은 제 착각인가요?
Commented by 재규어 at 2011/03/18 03:18
현재 외신들도 빡쳤더군요..
Commented by 나인테일 at 2011/03/18 03:51
방금 NYT를 읽어보니 그 쪽에서도 일본의 정보 공개에 대해서 굉장히 우려하는 칼럼을 올렸더군요..;;
Commented by 근성공돌 at 2011/03/18 06:42
기술은 진보해도 결정권자는 삽질을 합니다...
Commented by Nine One at 2011/03/18 07:14
진실이야말로 최고의 방어다.

이 말이 아주 실감나는군요.
Commented by unknownone at 2011/03/18 09:04
도쿄전력일나 회사 자체가 뭔가 문제가 있었고 (다수의 축소 은폐 경력), 그 장단에 맞춰준 일본 정부도 영.... 이번에도 분명히 뭔가 숨기는게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요.
Commented by 듀란달 at 2011/03/18 09:22
어제 TV에서 도쿄 거주하는 외국인이 그러더군요.
"일본 언론은 조용하지만 해외 언론은 모두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도쿄를 떠나기로 했다."

정보공개 문제를 포함해 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Commented by 목이 at 2011/03/18 09:40
몇 십년이 지났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봅니다.

우리는 대체 뭘 배운 걸까요...
Commented by BEasIwish at 2011/03/18 10:14
좋은 내용입니다. 당시 주 피폭피해자들이 소방관들이었다고 하더군요. 단순 화재로 알려서 투입했기 때문에. 희생양을 찾는 것은 여론을 달래는 쉬운 방법이고 사실 시스템을 바꾸어야 했었는데 안타깝네요. 피해-희생양-피해-희생양..늘 시스템은 그대로입니다.
Commented by 꿀꿀이 at 2011/03/18 10:33
원전 폭발은 인재지만 쓰나미는 자연재해니까 공개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정부나 윗쪽 책임자들은 책임에 대단히 민감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 상황이 그때보다 더 잘 대처하고 있다고 비교하기에는 아직 이르죠... 부디 원전 사태 최악의 상황을 막아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1/03/18 11:12
체르노빌의 진정한 교훈이로군요. 물론 늘 배우기 어려운 교훈이지만.
Commented by intherain at 2011/03/18 11:53
교훈은 교훈인데 배우기 힘든 교훈...아흑 ㅜㅜ
Commented by Bory at 2011/03/18 12:21
유례없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세계 이목이 이미 잔뜩 집중되어 있던 상태에서, 세계미디어의 눈앞에서 터졌으니 숨길래야 숨길수도 없심... 그럼에도 일본 정부의 정보공개 수준은 상당히 지지부진 하고 있음..
이런 모습이니 만일 인재나 놀랄 것 없는(일본 기준에서) 지진으로 문제가 생겼다면, 일본 관료주의라고 소련과 많이 다를까 생각함다. 소련은 체제가 문제가 되었지만 일본은 돈이 걸려있으니까.. 원자로 수출대국인데..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1/03/18 14:13
그래도 고르바초프만큼 대응하는 지도자도 실제로 얼마 없을걸요. 브레주네프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고르비는 대인배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Commented by shift at 2011/03/18 18:51
그냥 고르바 이전이라면 그냥 묻혔을듯..... 책임자들 처형당하고
Commented by 7iukjb at 2011/03/18 14:37
'원전'이니까 진실을 말하라고 닥달하는 것이고..

'원전'이니까 진실을 숨기려고 아둥바둥 하는 것이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1/03/18 18:40
"이 체제는 반사적으로 진실을 묻어버렸다."라는 지적이 와닿는군요. 결국 권위주의 체제가 효율적이라는 통념과 다르게 권위주의체제가 관료주의와 비밀주의와 맞물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적절한 지적인 것 같습니다. ㄷㄷ
Commented by shift at 2011/03/18 18:55
EBS에서 한 대재앙 시리즈에서 잘나타나더군요. 비밀주의의 폐해...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1/03/18 19:45
제일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건 어떤의미론 공포군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11/03/19 01:47
아무래도 직접 문제를 다이렉트하게 이야기하길 꺼리는 문화 경향 자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살짝 돌려말하는 느낌?[.....]
소련이랑 일본이 비슷한 밈을 공유하는거라면 관료주의인데, 도쿄전력에 비난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묘하게 비슷합니다 이거....-_-




................캐나다에 날아오면 앙대.......ㅠㅠ
Commented by 이네스 at 2011/03/19 10:02
묻고 묻고 또 묻어버리고... 진짜 이게 총체적 막장이군요.

진짜 대가리는 세월이 지나도 돌대가리라는 격언이 적절한듯합니다.
Commented by 死海文書 at 2011/03/19 13:33
톡 까놓고 말한다는 게 정말 중요하군요.
Commented by 마무리불패신화 at 2011/03/20 11:51
지금이랑 별 차이가...
Commented by ttttt at 2011/05/10 06:45
아, 간 총리.. ;; 그때 골바초프와 비슷하게 불쾌하고 답답할 듯. 그래도 몇 달이 아니라 한 달 안에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으니 다행입니다.
누군가는 몸으로 때워야 하니 작업자 한계치 상향은 불가피한 면이 있었습니다(그리고 거주민 기준치 상향도 살아야 하니까 뭐.. 근데 생각없이 그걸 우리 기준치인 양 참고자료로 보도하는 국내 언론은 좀 맞아야..).
그런데, 그 보도를 보면서, 그리고 기사로 보건대 피폭배지도 없는 작업자가 있다는 얘길 보면서 든 생각은 영화 <K-19> 였습니다. 제대로 된 방호복이 없지만 누군가는 원자로 안에 들어가야 했기에 함장과 의사가 거짓말하죠. 단순 화학복을 입혀놓곤 방사선 보호가 된다고 하곤 밀어넣는 장면.
Commented by -_- at 2011/06/22 07:16
아무리봐도 일본쪽이 더 막장이네요.
Commented by nayuta at 2011/06/22 09:59
최근에 방송된 NHK Special을 보면 일본은 상층부보다 현장의 인력이 더 문제인듯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약간의 피해라도 가지 않게 하려다가 일을 키웠으니...
Commented by 밀본 at 2011/06/22 20:54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하다가 일을 키웠다니, 그 말씀은 전혀 동의할 수 없겠는데요.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정도에서 벗어난 대응을 한 사례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알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nayuta at 2011/06/22 21:22
NHK Special에 방송된 내용인데 연료의 멜트다운이나 수소폭발의 위험을 근거로 정부에서 압력로 내부의 가스를 배출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그래야 압력로 내에 냉각수를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발전소측에서 주변 마을의 피해를 걱정해서 우물쭈물하다 피해를 더 키운걸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결국 연료의 멜트다운과 수소폭발이 다 일어낮죠)
Commented by 밀본 at 2011/06/23 11:45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니 놀랍군요. 하지만 이미 부실공사에, 점검도 무시하고 운행 강행에, 준비도 엉터리로 해서 비상 전원도 연결 못했고, 직원은 하청에 하청을 거듭해서 원자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 운영하다가 사고 나니까 어쩔 줄을 몰랐고, 돈이 아까워서 바닷물 투입을 늦추다가 피해가 급격히 확산된 정황 등등이 속속 드러나는 마당인데 그걸 전부 무시하고 "주변 마을의 피해를 걱정해서 피해를 더 키운 것"이라는, 그것도 '의심'에 불과한 것이 하나쯤 나온다고 해서 과히 평가가 달라질 부분은 없습니다. 연료 멜트다운도 이미 사고 몇시간만에 일어난 것으로 의심받는 마당인데 '주변 마을의 피해를 걱정해서' 일을 키웠다는 건 별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소금물에 농지가 피해를 입을까봐 바닷물 투입을 늦췄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 거고요.
Commented by nayuta at 2011/06/23 13:18
부실공사이야기는 나온게 없지 않나요? 건설시의 내진 기준이나 쓰나미에 대한 기준이 약했던건 맞는데 이건 부실공사와는 좀 다른듯 하고요 (기준에는 맞게 지었으니), 비상전원건은 역시 같은 프로에 나온건데 초기에 문제가 있었던 건 맞지만 수시간 안에 문제 해결하고 결국 연결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지진+쓰나미의 영향으로 전원 연결 후에도 냉각수 순환 관련 시스템이 작동을 안했던게 문제인거고 이 상황에서 원자로 내부를 냉각시키기 위해서 압력로 내부의 가스를 배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이 시점에서 적어도 정부는 돈이 아까워서 어쩌구 하는 생각은 없는거죠)

저의 주장을 정리를 좀 해보면
1. 일본 정부는 큰 틀로 봤을때 원전 관련 피해가 최소한의 방향이 되는 방향으로 지시를 했다 (물론 IAEA한테는 잔소리가 심하다는 평을 듣기는 했지만)
2. 동경전력은 여러가지 의미로 삽질한게 맞다
3. 동경전력의 삽질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를 체르노빌과 비교하는것은 말이 안된다
a. 운영 매뉴얼을 싹 무시하고 안내는 것이 당연한 사고를 낸 체르노빌과 비교해 후쿠시마의 경우 매뉴얼에 상정된 최악의 사태보다 더 큰 자연재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있다.
b. 사고이후 나오는 정보의 양이나 나올때 까지의 지연시간이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은 비교가 안된다. 이게 비슷하다고 하면 남한과 북한은 삶의 질이 비슷하다는 말도 통할거다.
정도가 될 듯 합니다.
Commented by nayuta at 2011/06/22 10:00
그리고 뭘 어떻게 읽으면 러시아보다 일본이 더 막장이라고 독해가 되는 사람들이 나오는지 이해 불능...
Commented by 밀본 at 2011/06/22 20:56
저 글을 읽고 일본이 더 막장이라고 독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스스로의 판단으로 일본이 더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오로지 저 글만 읽고 저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닙니다.
Commented by nayuta at 2011/06/22 21:13
다른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한다고 해도 이해 불능인것은 여전 합니다. 물론 판단은 개개인의 자유겠지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