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세 논의를 점화했다.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통일세가 언급된 부분은 길지 않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주요 언론들은 당장 이 통일세 제안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연설 이전에 통일세 이야기란 것을 사회에서 듣기 쉽지 않았던 만큼, 의제설정자로서 대통령의 막강한 힘이 다시 한 번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누가 꺼냈든 간에, 지난 10여 년 간 통일세를 적극 지지해 왔던 극소수의 일원으로서 매우 반가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
하지만 현재 온라인에 나도는 초기 논평들 중 적지 않은 것들은 그간의 감세정책이나 4대강 사업 등과 엮어 현 정부를 비꼬는 데 집중하려다 보니 초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사람들의 비판과는 정반대로 통일세를 신설하게 되면, 이명박 정부는 통일세로 걷어들인 돈의 오남용과 관련해 가장 깨끗한 정부로 남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2년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추상적으로 던진 화두를 구체화하여 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현 정부가 이 돈을 제대로 만져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일세는 걷어서 통일 기금을 비축하는데만 쓰일 뿐, 통일세로 걷어들인 돈을 쓰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그 성향상 이 돈을 꺼내 쓰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대북퍼주기'를 꺼리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통일세로 조성된 기금이 현재의 남북협력기금처럼 사용될 수 있으면, 한나라당이 이후 정권을 잃었을 때 '대북퍼주기'를 저지하기 어려워질 염려가 있다. 따라서 이들은
'통일 이후'라는 조건을 엄격히 설정함으로서, 김정일 정권 통치 하의 북한에 철도나 도로를 놓아준다든가 하는 일에 이 돈을 쓸 수 없도록 장벽을 설치하려 들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남북협력기금은 분단상황을 관리하는 기금이고, 통일세는 훗날 통일 이후에 쓸 돈"이라고 설명하고 있음을 기억해 두자.
그러니 통일세로 조성된 기금이 악용될 가능성은 오히려 기금운용과정 -예를 들어 연기금 증시투입 같은- 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앞서도 지적했듯이 이명박 정부는 실질적으로 통일기금을 제대로 만져볼 기회가 없을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명박이 멀리 미래를 내다보고 통일세를 만들었다는 '업적'만 챙기고, 실제로 세금을 걷어 생기는 국민들의 불만은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식으로 판을 짤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벌써부터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통일세는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다음 정부에서나 시작되는 것"(한나라당 나성린)
그러니 '그 돈'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볼 때 헛발질만 하는 격이란 게다.
--
국민대 교수로 있는 북한 연구자 안드레이 란코프는 현재 남한인들이 갖고 있는 통일에 대한 태도를 흥미로운 필치로 요약하였다. 우선 이 설명을 한 번 같이 읽은 다음, 사람들이 별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내가 통일세 문제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전략) 공식적으로 햇볕정책은 부드러운 접근이 북한으로 하여금 대규모 사회 경제적 개혁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중국과 베트남이 취한 것 같은- 을 추진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떠받치고 있는 가정의 중요한 측면은 그러한 개혁이 북한이라는 국가의 생존을 연장하고 남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사회 경제적 격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한국문제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가 말한 것처럼, "통일이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의] 당면 목표는 두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다. 두 국가를 유지하되 그들의 관계를 좋게 만들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햇볕' 정책은 무엇보다도, 양 측이 통일에 대해 "더 잘 준비될"
미래의 불특정시점까지 통일을 연기하자는 이야기다. 노무현은 자신의 최근 연설에서 이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방향전환은 완결되었다. 1950년대에 남한 정권은 통일에 대해 무척 진지했으며,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력을 사용할 의사도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후 수십 년에 걸쳐 통일의 열망과 의지는 점차 식어갔지만,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만큼은 포기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똑같이 달콤하게 들리는 통일 지지의 수사가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남한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유지(북한 사람들은 해당없음)하기 위해 분단을 유지하려는 목표를 가진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한층 더 깊은 변화가 한국사회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정치 활동을 하던 젊은이들(386세대)은 좌익이며 민족주의자이고 통일을 경제적 곤란과 연관시키지 않았기에 통일을 원했다. 다음 세대는 달랐다. 보다 젊은 한국인들은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보다 덜 민족주의적이고 그들은 옳던 그르던간에 통일이 경제적 재앙을 불러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들은 또 북한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북한은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결국 평균적인 한국 젊은이들이라면 평양보다도 파리나 시드니를 방문하는 것이 훨씬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점점 더 많은 남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이 통일이란 것을 우리가 필요로 하는가를 의심쩍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향은 여론조사에 잘 반영되고 있다. 1994년 91.6%의 남한 사람들이 통일을 필요한 것이라고 답했다. 2007년 서울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63.8%로 줄어들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을 상대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통일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통일에 대한 두려움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더 흔하다. 하지만 요즘은 나이든 사람들조차도 의문을 갖고 있다. 지금은 북한이 된 지역에서 태어나 사업상의 이유로 북한인들과 많은 접촉을 갖고 있는 60대 후반의 한국 사업가는 최근 통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설명했다. "글쎄, 그들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도 아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게 그렇게 좋다면 그들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게 내버려 두면 어떤가. 그런 동안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이든 다른 누구의 치하에서든 고통을 당하며 살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심지어는 육체적 외모까지도 달라졌다. 그들은 너무나 키가 작다! 그러니 우리가 통일을 늦게 할 수록 더 좋다. 한 백 년 후면 어떤가."
이런 견해가 일반적인 것은 아닐지 몰라도, 어쨌든 점점더 흔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 멀어져가고 있는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이 관찰된다.
사석에서 사람들이 통일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할지언정, 통일 패러다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여전히 엄격한 금기로 남아 있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반 민족적"으로 비치길 원하지 않으며, 남한이 궁극적으로 북한과 합쳐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그 어떤 정치인도 단박에 그 정치생명이 끝장나고 말 것이다.
그러다보니 노무현이 생생하게 제시한 것처럼 연방제통일 담론이 편리한 핑계거리로, 특히 좌파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통일의 대의에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현 한국의 모든 주요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통일을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 우리는 남북한 정부간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길 강력히 희망한다고
돌려서 말한다.
좌파들은 연방제통일이 현재의 북한 정권과 협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가정(이런 생각이 노무현의 최근 연설의 핵심이다)하면서 연방제가 통일을 위한 한 단계가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번영하는 민주체제와 찢어지게 가난한 독재체제 사이의 지속가능한 "연방제 통일"이란 생각은 철저하게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려운 질문을 직시하길 원치 않는다. 또한 남한에서 서민을 위한 투사이자 독재에 항거한 이로서 자신들의 명성과 정치적 경력을 쌓아온 바로 그 사람들이 북한의 훨씬 더 잔혹한 독재정권의 편을 들면서 북한에서 벌어지는 모든 변화의 움직임을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것"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만약 사태가 극적으로 전개된다면, 그리고 북한이 급변사태에 빠져든다면(강력한 가능성이 있음), 남한 사람들은 결단을 내려야만 할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통일이란 수사에 수십 년간 노출되었던 점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심각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남한 사람들은 그들이 궁핍하고 교육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북한 사람들과 한 국가로 통일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감히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통일의 열망은 사그라들고 있으며, 대중의 마음속에서 벌어진 이 조용한 전환은 조만간 정치적 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Lankov, Andrei.,
The Facts and Fables of a Unified Korea, Policy Forum Online 08-079A, Nautilus Institute, October 16th, 2008
란코프의 견해는 통일 문제에 대해 내가 사석에서(혹은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들과 비슷하며, 나는 이것이 현재 우리 남한 사람들의 현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문제에 대해 일본인들의 관찰(*)도 란코프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준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우리 한국인들 자신의 통일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문제인만큼,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듯하다.
자 이제 내가 다루고자 하는 요점을 꺼내 보겠다.
지난 60여 년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통일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친다면 두 번 다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영원히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일의 기회가 왔다고 해서 덜컥 통일을 하는 것도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다. 통일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간에 일단 한번 통일이 시작되면 간단히 되돌릴 수도 없을 것이다. 통일은 한 마디로 말해 호랑이 등에 올라타 내달리는(騎虎之勢) 거나 다름없다.
내가 통일과 관련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우리 남한인들이 갖고 있는 통일 지지라는 대의명분과 실제 통일에 얼마까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가 하는 지불용의 사이의 괴리다. 통일이 막강한 명분이기 때문에 공적인 토론의 장에서 통일은 무조건 찬성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들 짐작하는 것처럼 실제로 통일의 부담을 질 마음의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에 통일세는, 통일 이전에 사람들이 대의명분을 내걸고 무슨 소리를 해왔건 간에, 통일이 닥쳤을 때 실제로 얼마까지 대가를 치를 용의가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최선의 정책이다.
통일세를 걷음으로서 국민들로서는 실제 통일이 벌어졌을 때 통일비용을 분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미리 체험할 기회를 갖고, 정부로서도 (당장 책임질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유지되는) 입발린 통일 지지가 아니라 국민들이 실제로 통일에 돈을 얼마나 낼 의지가 있는지를 가늠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통일 비용이란 측면에서
아무 준비운동 없이 찬 물에 그대로 뛰어들었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것 같은 상황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통일세를 좀 걷어 본 결과, '이런 돈 내고 통일하느니 그냥 분단을 택하겠다'는 여론이 비등한다면, 거기 맞춰 통일정책을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단기간의 통일세 실험이 다소의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통일로 인한 비용부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 뻔하다. 통일기금은 소비하지 않고 100% 적립하는 것이기에 행정비용 정도를 제하면 납세자에게 대부분 환급해줄 수 있다.
반대로 별 불만 없이 장기간에 걸쳐 통일기금을 순조롭게 적립하게 된다면 '통일 비용을 내게 되어도 뭐 견딜만하겠다'라든가 '이 정도나 모아두었으니 통일에 대해 꼭 겁먹을 필요는 없어'라는 식으로 그 시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통일을 추진해 볼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지금은 정확히 통일비용이 얼마나 들지는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상당히 큰 돈이 들거라는 예상이 널리 받아들여진 채로, 그간 통일비용으로 적립해둔 돈도 없고, 돈이 얼마나 들지, 돈을 걷었을 때 국민의 반응이 어떨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가 끝없이 계속되다보니
자연히 통일에 대해 수세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통일기금을 적립하게 되면 이런 함정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통일세는 보통 이야기되는 부가가치세보다는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실제로 통일비용을 얼마나 부담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도록 직접세 형태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매우 낮은 세율에서 출발해 세율을 미세 조정하면서 적정 세율을 탐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 關川夏央, 惠谷治, NK會 編. 『北朝鮮の延命戰爭 : 金正日·出口なき逃亡路を讀む』. 東京: ネスコ, 1998. (김종우, 박영호 역, 『김정일의 북한, 내일은 있는가 : 김정일, 비상시 탈출로를 읽는다』 서울: 청정원, 1999. p.258); 이는 이 책의 공동저자들에게 각각 설문조사한 부록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