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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Stalin)

(1935년, 프랑스의 새 외무장관) 라발은 러시아에 접근하는 데 있어 전임자 바르투처럼 단호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진 못했다.하지만 이때 프랑스에는 긴급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의 존망을 우려하던 사람들에게는 지난 3월에 근소한 다수로 통과된 2년 병역제에 관해 거국일치의 지지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오직 소련 정부만이 프랑스의 특정 정치세력에게 2년 병역제에 충성하도록 지시할 힘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1895년의 오래된 불러 동맹 ,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부활시키기를 바라는 광범위한 소망이 있었다. 5월 2일 프랑스 정부는 새 불소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향후 5년 간 침략에 대항해 상호원조를 약속한 모호한 문서였다.

프랑스 정계에서 확실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이번에는 라발이 모스크바를 3일간 방문하였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긴 회담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공표되지 않았던 그 일부를 여기 옮겨본다. 스탈린과 몰로토프가 무엇보다도 간절히 알고 싶어했던 것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군의 세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몇 개 사단이나 되는가? 복무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런 쪽 이야기가 충분히 논의된 다음 라발은 "저기 말인데, 귀 측에서 러시아에서 종교와 가톨릭을 돕기 위해 조치를 좀 취해줄 수 없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교황과 일하는데 참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스탈린은,

"오, 교황! 교황은 몇 개 사단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까?"
"Oho!" said Stalin. "The Pope! How many divisions has he got?"

라고 하는 것이었다. 라발이 뭐라고 답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라면 열병식에서 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은 아닌 여러 군단(legions)이 있다고 답했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라발에게는 소련이 늘상 요구하는 구체적인 (상호원조) 의무들 중 그 어떠한 것도 프랑스가 확약케 할 의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5월 15일 스탈린으로부터 프랑스 군이 일정 수준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가 시행해야 할 국방정책을 지지하는 공개성명을 끌어내었다. 이 지시가 내려오자 프랑스 공산당은 당장 태도를 표변해 이 국방정책과 2년 병역제에 대해 요란한 지지를 보냈다. 유럽 안보라는 측면에서, 독일의 침공 시에 양 측에 참전 의무를 지우고 있지 않은 이 불소 조약은 그저 약간의 가치밖에 없었다.

Churchill, Sir Winston. The Gathering Storm : The Second World War Vol.1. Houghton Mifflin, 1948(Houghton Mifflin Harcourt, 1986). p.121 (번역은 sonnet)
by sonnet | 2010/08/04 21:42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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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8/04 21:51
1.그런데 야사적으로는 바티칸에서 독일을 눈감아줬다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야사적으로.

2.라고 해야하나 바티칸에 군대가 있음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저게 스탈린의 조크..
인겁니까?

3.교전의무가 없었다면 정말 저 조약은 규모가 좀 큰 삽질이군요
Commented by Esperos at 2010/08/05 01:18
나치 기갑군대가 교황청을 포위하려 했기로, 추기경들이 제3국으로 교황청을 옮기자고 진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황 비오 12세 왈 "나는 로마 총대주교이니 로마에 있겠다"라고 하면서 생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추기경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남아 있었던 적이 있었지요. 한편 당시 독일에서는 바티칸의 손길이 독일 어디까지 미쳐있을지 모른다면서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는데요,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독일 정부의 과대평가였죠. 교황청은 늘 과대평가되기 십상이더군요. (덤으로, 저는 아마 이때 나치와 모종의 정치적 조율이 있지 않았나 해요....)

뭐, 스탈린의 조크라면 조크고, 비오 12세 말도 역시 농담이죠 하하.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8/05 22:45
하기사, 어딜 가겠습니까...
이탈리아 통일 당시에 교황령 홀라당 뺏길 적에도 변변한 저항도 못 해보고
고작해야 "나는 이탈리아의 포로이니라"라며 소심한 저항밖에 못 했으니...
Commented by 에드워디안 at 2010/08/06 15:12
Esperos//1935년의 교황이라면 비오 11세인데요? 비오 12세는 1939년에 즉위하였고...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10/08/04 22:06
그리고 역습의 1939년은 다가오고 말이죠...(몇 세기전이라면 교황도 '진짜' 몇개 사단을 이끌 수 있었겠지만... 세월이...orz...)
Commented by Quency at 2010/08/04 22:25
대체 프랑스의 그 '특정정치세력' 이라는 녀석들은 국적이 ....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8/04 23:16
그 유명한 말이 이런 상황 하에서 나온 거군요.
교황의 군대라.....교황을 대놓고 적으로 돌리는 순간 전세계 수억의 카톨릭 신자들이 그분의 군대가 되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火事場力™ at 2010/08/04 23:18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스토리가 현실화되는 건가요. 흠좀무입니다
Commented by ICBM공격 at 2010/08/05 01:13
헬싱...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10/08/05 09:30
중세 시절에도 주교들과 신자들이 교황을 무시하거나 적대하며 왕에게 충성한 경우가 종종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니파키우스 8세와 필리프 왕의 분쟁에서 삼부회가 만장일치로 왕을 지지했지요.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
Commented by 델카이저 at 2010/08/05 17:51
중세에서조차도 교황이 카톨릭의 정신적 지주로서 활동한 적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메스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나 그렇게 된 것이죠..-_-;;

초창기 교황들은 세속권력에 치이는 존재였고, 나중에는 이탈리아 지역 군주인데 외교적으로는 좀 특이한 입장에 있는 군주처럼 되버리죠..(로마 교황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인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죠..ㅡ.ㅡ;;)

세속군주들 중에는 대놓고 로마 교황을 납치해다가 끌고간 일도 적지 않고..(아비뇽 유수 말고도 이런 케이스가 꽤 많습니다;;;) 애초에 로미 시절에 교황과 총대주교부터가 황제에게 충성서약은 했었다고 합니다. 즉 교황은 신의 첫번째 종복이지만 동시에 황제의 신하이기도 했던 거죠..
Commented by 암호 at 2010/08/06 17:16
만일에 자체적으로 카톨릭 파르티잔이 생성될 수 있는 제 0순위 국가는 대한민국이 가장 유력합니다. 그것도 무신 무교론자인 제가 장담하는 지경이라면야.....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8/04 23:43
저것도 나름 유명한 발언인데 저런 상황에서 나왔군요. 그나저나 저때 프랑스군이 몇개 사단이었더라...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8/04 23:52
아무리 신학교도 때려쳤다지만, 그나마도 러시아 정교라지만, 우째...
과연 비범하신 강철의 대원'쑤'. (...)
Commented by 프란츠 at 2010/08/05 00:26
스탈린에게 놀아나는 불란서 공산당이라니ㅜㅜ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10/08/05 00:57
그러나 막상 2차대전이 터졌을때 프랑스 공산당 놈들의 태도는 180도 바뀐 국가이적행위를 막대하게 했다능..
Commented by Esperos at 2010/08/05 01:15
당시 교황 비오 12세가 저 소리를 듣고, "스탈린이 죽고 나면 그제서야 내 군단을 볼 것이다"라고 대꾸했다는 이야기도 여담으로 전하지요.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8/05 02:51
으잌ㅋㅋ 죽고 나면ㅋㅋㅋ
Commented by SM6 at 2010/08/05 07:54
스딸린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0/08/05 08:55
"우리의 군단은 이 땅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라고 점잖게 대꾸하셨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끙

(하긴 그 시대 교황청이야 똘끼충만한 인간 여럿 다루느라 스트레스 만빵이었을테니...)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8/05 10:00
죽고 나면.....웬지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10/08/05 10:18
위장효과님 말의 살짝 다른버전으로는
그는 나의 군대를 저 위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8/05 11:17
아 그말 저도 들어본 적 있습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10/08/05 09:19
중세 시절에도 로마의 토호세력들에게 암살당하고, 프랑스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에게 납치당하고 폐위당한게 교황입죠. 교황이 군주들 위에 서서 권력을 자랑하던 시기는 도합 100년이 될까 말까한데... 어째 그 반짝했던 시기가 중세 전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8/05 12:48
저래놓고도 오늘날 좌파들은 구 소련은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곤 하죠...
Commented by spic at 2010/08/05 18:22
마르크스 입김이 닿아 있는 조직은 상부의 지령에 정말 절대적이군요. 강제력도 얼마 없는 바티칸에 있는 분보다, 스탈린이야말로 교황이 아니었나 싶네요. ㅇㅅㅇ..
Commented by 밀파크 at 2010/08/05 20:43
지금도 북한 교황은 김정일이듯이?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8/05 22:42
아니, 비잔틴 정교의 적통을 이은(?) 러시아정교라서
강철 대원'쑤'야말로 교황이자 '황제'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8/06 14:48
이 이야기를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에 대한 이야기로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소프트파워 중 하나인 '공산주의 이념'을 틀어쥐고 있던 총수 스탈린은 자신의 소프트파워와 바꾸어 프랑스의 하드파워를 획득하기를 갈망하고 있었고, 또 그의 관심은 전적으로 프랑스의 하드파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 최고의 역사를 가진 강력한 소프트파워 중 하나인 가톨릭 교회의 수장 교황은 하드파워가 없다는 이유로 스탈린에게 단칼에 무시를 당하지요.
스탈린은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 자신도 거대한 소프트파워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Commented by spic at 2010/08/06 16:04
소프트파워는 서로 섞이기 힘들기 때문도 아닐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8/07 14:02
그런 측면도 다소는 작용했겠지만, 음... 스탈린은 영프의 자본주의 제국들과도 동맹을 추구했고, 그 가망성이 희박해지자 결국은 히틀러와 독소불가침협정을 맺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의견을 이야기하자면 교황이 중화기로 무장한 20개 사단을 갖고 있었다면 스탈린은 눈을 반짝이며 교황과 관심사를 절충하기 위한 시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아프락사스 at 2010/08/30 05:18
스탈린이야 이미 러시아 정교회를 박살낸 전적이 있었으니까요.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공개적으로 스탈린에게 충성 서약을 한게 1927년... 교황이라고 다르게 보였을리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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