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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주박呪縛’
다음은 1998년에 발표된 쿠니 아키라(久仁昌)의 「중국의 주박中國の‘呪縛’」을 초벌번역한 것이다. 이미 십 년이 넘은 글이지만 오늘날의 중북관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시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개혁개방을 권해본 중국도 참조.


중국의 ‘주박呪縛’

등소평을 격노시킨 김정일

근래의 중북관계는 1983년 6월 김정일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이래 김일성 시대의 중북간 「피로써 다져진 우호관계」 대신, 중국의 등소평과 김정일 사이의 상호 부정적인 원망과 불신, 근심 위에 구축되어 왔다. 우선 이 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83년 6월 1일부터 12일까지의 비밀 방중을 끝내고 귀국한 김정일은, 그 즉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7차 회의(6월 15일~17일)를 소집하여 많은 출석자들 앞에서 귀국보고를 하면서, “중국 공산당에는 이제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있는 것은 수정주의뿐이다. 중국이 국시로 삼고 있는 「4개 현대화」 노선도 「자본주의로의 길」, 즉 수정주의 노선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격렬한 비판과 비난을 전개하였다.

회의 참석자가 많았기 때문인지 이 이야기는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 측에도 전해졌고, 6월 하순에 이르러서는 중국 측이 그 내용을 모두 알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혁명 활동에 있어 김정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배로 수많은 업적을 가진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하필이면 「수정주의자」라고 꾸짖고 「4개 현대화」마저 「수정주의」 노선이라고 못 박은 것이다. 이에 등소평은 격노하여 측근에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인해 중국의 앞날이 위협받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군……”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 때 등소평은 김정일을 가리켜 ‘황취랑黃嘴郞’([아직도] 부리가 노란 녀석;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과연 「문자 쓰는 나라」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표현이라 하겠다. 아무튼 혁명가로서 확고한 실적을 갖고 있는 등소평에게 이름도 없는 일개 「풋내기」 김정일이 혁명가가 가장 싫어하는 「수정주의자」 딱지를 붙였을 뿐 아니라, 중국이 국시로 삼고 있는 「4개 현대화」 노선까지 「수정주의노선」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등소평의 전 인생과 중국의 혁명업적을 통째로 부정한 것임에 다름 아니었다.

등소평의 당혹과 분노는 어느 정도였을까. 그 김정일이 맹방 북한의 다음 권력자로서 등장하리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등소평이 가슴 속에 당혹스러움과 위구심을 느낀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김정일은 이렇게 북한의 차기주석후계자로서 첫 해외방문인 비밀 중국방문 단계에서 중국과의 사이에 기본적으로 미묘한 위구심과 걱정, 불신감을 잉태한 막을 열고 말았던 것이었다.

등소평은 1997년 2월 19일 천수를 누린 끝에 사망했지만, 김정일에 대한 그의 위구심과 염려, 불신감은 등소평 이후 세대로의 이행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등소평 유언」이라고 할 만한 역할로 한층 증폭되어 북한 사정에 어두운 남은 중국지도부 간부들 사이에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봉추도棒棰島의 중북 극비 수뇌회담

김정일의 비밀 방중을 둘러싼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심각한 토의를 거듭한 중국 지도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① 중국이 4개 현대화를 실현하기까지는 앞으로 수십 년이 소요된다.
② 그 동안 주변정세가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중국으로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정일이 지도자로 등극할 경우에는 한반도 및 동아시아 정세의 안정이 그림의 떡이 되어버릴 우려가 있다.
③ 이와 관련하여, 김정일을 아무리 설득해도 진정으로 이해와 협력을 얻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렇다고 하면 중북관계의 역사적 경과를 잘 알고, 인간적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김일성 주석과 잘 협의하여 한반도의 앞날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방향으로 조건지워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등소평이 주도권을 쥐고 김일성에게 「중북수뇌회담」의 조속한 개최 의사를 피력하게 되었다.

1983년 8월 등소평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여름휴가로 해수욕 계획을 세우고, 중국 당정간부들의 휴양지인 북대하北戴河로 향했다. 여름에 북대하로 가는 것은 의례적인 것이었으므로, 예민한 외국의 중국관찰자들의 이목을 끌 일도 없을 터이다. 객가(客家) 출신의 등소평다운 신중한 태도가 여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8월 19일 갑자기 그가 대련大連시의 리조트 봉추도 호텔에 나타났다. 마침 이 호텔에 투숙해 있던 일본인 상사원이나 기타 투숙객들은 급히 체크아웃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이유를 묻는 과정에서 호텔 직원들에 대한 사전 준비가 미흡한 탓에 극비 회담 개최 사실이 탄로 나고 말았다.

물론 회담이 끝난 후, 호텔 측에서 등소평의 방문을 기념하여 등소평과 김일성이 서로 담소하고 있는 대형사진을 호텔 로비에 걸었기 때문에 더 이상 「비밀회담」은 비밀이 아니게 되었지만…….

같은 날, 즉 8월 19일 김일성도 극비리에 이 호텔에 도착하여 양측간의 수뇌회담이 실현되었다. 나중에 중국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그 정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즉 등소평은 같은 해 6월, 김정일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비우호적인 태도」, 특히 귀국 후 당중앙위원회에서의 중국에 대한 비판·비난에 관해 상세하고도 솔직하게 언급하고 「이것은 중국으로서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엄중히 지적함과 동시에 중국 지도부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정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양국의 역사적, 전통적 우호관계와 혁명적 우정에 호소해 양국 장래의 불안 요소를 해소하도록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또한 그 자리에서 북한 측이 중국의 「4개 현대화」노선을 지지하고 이에 동조해 북한 경제의 향상과 활성화에 힘써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아들 김정일의 평소 행동양식을 잘 알고 있는 김일성은, 중국 측의 지적에 반론의 여지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는, “김정일에게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고 조만간에 다시 방문하게 할 테니, 그때 잘 타일러 달라”고 간청하여 등소평의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사죄를 위한 중국 재방문은 김정일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설득에 대해 “중국이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다 해도, 그것은 중국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 마음인 것이다. 「주체사상에 의한 일색화」를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가 중국이 말하는 대로 할 필요는 없으며, 수정주의를 엄격하게 구별해서 그 침투를 단호히 배제해야만 한다.”고 항변하면서 중국 재방문을 반대했다고 한다. 이것이 후에 김정일 주변에서 구호가 된 「우리 식」의 출발점이지만, 그 상당 부분은 중국의 행보에 대한 반목과 반발, 반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이런 불효자 같으니라고!” 아버지 김일성의 일갈

하지만 사죄를 위한 중국 재방문 건은 김일성의 설득으로 성사되게 되었다. 김일성은 “애비인 나는 네가 잘 될 수 있도록 어떠한 수치도 견디고 있는데, 너는 그것도 모르느냐! 이런 불효자 같으니라고! 이제 와서 등소평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김정일의 중국 사죄방문은 1983년 9월에 이루어졌다. 이때 김정일은 지난번과는 달리 등소평이 자리를 권해도 자리에 앉지 않고 시종일관 선 채로 등소평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중국 측도 김정일을 설득하기 위해서 심천 경제특구를 시찰하게 하는 등 「4개 현대화」 이론과 실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였고, 김정일도 나름대로 언행을 삼가하였다. 그 결과, 중국 측은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서는 「적극적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고 평양에 통보함으로서 일단 김정일에 대한 승인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김일성을 안심시켰다.

여담이지만, 이 시기에 북한은 그간 취해온 「한국의 전두환정권은 남북 대화의 상대로 삼지 않는다」는 태도를 바꾸어, 1983년 10월 8일 중국 지도부에 대해 남북한 및 미국이 참여하는 「3자회담」 개최와 관련된 대미중재, 알선을 의뢰하였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비밀수뇌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 측의 끈질긴 정책 「각인刷り込み」 노력의 성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등소평과 김일성 사이에는 일정한 양해에 도달하였지만, 등소평·중국과 김정일 사이에는 여전히 무엇 하나 양해가 성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983년 6월의 비밀 방중으로부터 봉추도 극비수뇌회담을 거쳐 다시 「사과」방문에 이르는 일련의 경위와 결과라는 등소평의 ‘문중 어른’식의 간섭은 아버지 김일성에 대해 김정일이 품고 있는 열등의식을 더욱 자극하여 김정일에게 씻기 어려운 등소평·중국에 대한 반발, 반목을 고착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훗날 한중수교에 대한 반발(1992년), 중국을 배제한 대미접근정책, NPT 탈퇴선언(1993년) 및 준전시상태와 같은 정책으로 치닫게 되어, 그 결과 김일성과의 대립이 잦아져 김일성의 사망(1994년)을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등소평이 김정일에게 품고 있던 위구심과 우려는 금방 현실로 나타났다. 즉 김일성이 중국에 대해 「3자회담」의 대미중재를 의뢰한 다음 날인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의 수도 랑군(현 양곤)시 아웅산 묘지에서 바로 그 「3자회담」의 상대인 남한의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북한 특수공작부대 소속 군인 3명에 의한 폭탄테러사건이 자행되어, 참석해 있던 한국각료 4인을 포함한 16명이 폭사하고, 버마인을 포함한 다른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는 중개·알선역을 맡은 중국의 체면을 뭉개버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테러 후 자폭을 시도하다가 부상을 입고 체포된 범인 진모 소좌와 강명철 대위의 자백과 기타 증거로 볼 때, 김정일의 직접 지시에 의해 실행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강력히 이를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국에게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발휘해 사건의 진상을 얼버무리고 추궁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의적인 국제 테러사건으로, 중국이 바라는 주변정세의 안정화를 크게 위협한데다가, 중국으로 하여금 미얀마에 대한 압력문제를 놓고 국제테러리즘에 가담할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난감한 입장에 서게 만들었다. 중국은 결국 북한의 요구를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일련의 사건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을 가슴속 깊이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중국이 제시한 ‘대북한정책 6개항’

그 등소평이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김정일에게 주었다고 하는 「중국의 대북한정책 6개항」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북경 측이 급히 파견한 「중국 당·정부 조문대표단」(그 중 한 사람은 「등소평 판공실 주임」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인민해방군 총정치국 부주임인 왕서림王瑞林)이 평양으로 휴대하고 가서 조선노동당에 전달한 것이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경제발전과 국가건설이라는 김일성의 유지를 승계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
② 한반도의 「비핵화」를 희망한다.
③ 구실을 만들어 군사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반대한다.
④ 이러한 것들이 지켜진다면 중국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을 지지하고, 북한으로부터의 원조확대 요청에 응한다.
⑤ 김일성의 유지를 계승한다면 중국과 북한의 양당, 양국, 양인민의 우호발전을 다시 한번 표명할 용의가 있다.
⑥ (어느 한 편이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한 편의 자동참전조항을 포함한)중북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에 대해 중국은 양국의 전통적인 우호와 지역의 평화안정이라는 입장에서 수정 의견을 낼 용의가 있다.
(홍콩 『신보信報』1994년 7월 22일자)

이 6개항은 중국이나 북한 모두 공식적인 확인을 피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중에 「김일성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것과 같이 큰 이견이 없는 항목도 있지만, ②의 「한반도의 비핵화」라든가 ③의 「군사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반대」 같은 김정일이 추진하는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항목도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6개 항」에 포함된 중국의 북한경제지원도, 「김일성의 유지」를 계승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만큼, 말하자면 김일성이 죽고 드디어 김정일이 「등극」(즉위)하는 정세 속에서 「등극을 위한 통과의례」이며, 김정일이 북한의 실권자로서 아시아 정치마당에 등장하는데 있어 일종의 「수갑, 족쇄」를 채우기 위해 중국 측이 부과한 “주박呪縛”(주술로 꼼짝 못하게 함)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현재 등소평이 평생의 꿈으로서 추진해 온 홍콩의 반환을 1997년 7월 1일에 실현하고 아시아 「신흥공업국NIES」의 모범생인 홍콩 경제의 역동성을 중국경제에 끌어안은 여세를 몰아 아시아 전역에 걸친 지도권을 확립하고 세계경제, 정치사회에 파고들어 장래 세계의 중심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등소평의 꿈은 1997년 9월의 제15기 당대회를 거쳐 새롭게 편성된 총서기 강택민(국가주석), 이붕(수상), 주용기, 이서환, 정관근, 호금도 등 신지도부진용에도 정확히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 정권을 원만히 발족시키기 위해서는 평양의 내부사정과 더불어 중국과의 사이에 쌓이고 쌓인 정책의 괴리를 전면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중국의 “주박”은 「김일성의 유지의 준수」를 명분으로 삼고 있는 만큼 「유훈통치」를 외치고 있는 김정일 정권에게 있어 저항하기 어려운 무게를 갖고 있다.

1996년 가을 이후, 중국 측으로부터 몇 차례나 「수뇌회담」 제안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피해왔다고 하는데, 회담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중국과의 정책조정 -결국은 중국이 요구하는 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김정일 체제 그 자체를 흔들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참고: 다음 단행본을 저본으로 이용하였으며, 한국어 번역판을 참조하되 가능한 직역에 가깝게 옮겼다.
關川夏央, 惠谷治, NK會 編. 『北朝鮮の延命戰爭 : 金正日·出口なき逃亡路を讀む』. 東京: ネスコ, 1998. pp.176-184
(김종우, 박영호 역, 『김정일의 북한, 내일은 있는가 : 김정일, 비상시 탈출로를 읽는다』 서울: 청정원, 1999. pp.184-191)
by sonnet | 2010/07/12 09:14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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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리아가 되어버리니 결국 현재의 체제을 일단은 인정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 놈들이 솔직히 당근 한 두개에 꼬리 흔들면 좋겠는데, 중국의 ‘주박呪縛’ (소넷님 블로그) 형님이 말해도 안듣는 놈들이라, 솔직히 싸우고 헤어진 쌍둥이(?)형제가 말한다고 들을 놈이 아니라는 게, 솔직히 더 X같은 일이다. 소 ... more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7/12 09:23
중국-북한 관계도 꽤나 미묘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2:50
물론입니다. 앞으로도 기회있을 때마다 그 미묘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gazer at 2010/07/12 09:27
이건 뭐 소중화주의도 아니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2:49
3년상 치르고 등극하는 것을 보면 효심이 ㅋ.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10/07/12 09:29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결국 북한은 중국이 추구하는 동북아 안정에
반하는 [핵무장 추진]과 [군사충돌]을 일으킨 셈인데 이에 대한 제재는 기대보다는
약한 수준이네요. 과연 중국이 언제까지 참고 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2:48
중국도 가끔 제재를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우는 놈 떡하나 더 주기' 식으로 반응할 때가 더 많습니다.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기본 방식은 대략적인 범위를 정해 놓고, 북한이 그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그런 식입니다. 위의 '6개항'도 결국 ①②③이라는 범위를 지키면 ④⑤를 해주겠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nishi at 2010/07/12 09:57
언제나 저런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해왔으며 대남화해와 자본주의를 포용한
경제발전은 훼이크일 뿐이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4 14:14
100% 맞다고는 장담 못하겠지만, 용돈 걸고 배팅하라면 그 쪽에 걸겠습니다.
Commented by 少雪緣 at 2010/07/12 09:59
과연, 태종 직함을 달려면 불효 속성은 기본옵션...;;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5 10:35
하지만 효심의 3년상, 흐흐.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7/12 10:16
...진짜 중국이 언제까지 참고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5 10:34
적어도 한동안은 그렇게 갈 것 같습니다. 김정일 사후 북한에 큰 변화가 진행된다면 또 어떨런지 모르죠.
Commented by 일화 at 2010/07/12 10:52
확실히 북한(김정일)이라는 돌아이 정권은 중국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정세 안정이라는 목표때문에 북한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딜레마일 듯 하네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10/07/12 11:18
흐루시초프를 대차게 깠던 모택동 생각이 나네요.
Commented by 아빠A at 2010/07/12 11:41
이러한 삐그덕 거림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중국이나 북한이나 서로를 버릴 수 없다는 것, 그러한 지정학적 현실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압도하는거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4 14:14
그렇습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10/07/12 11:54
중국도 참 피곤한 신세네요... ㅡ.ㅡ;;;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5 10:51
그렇습니다. 옆에서 뻘짓을 하고 있으니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지요.
Commented by dd at 2010/07/12 12:48
김정일 죽고 김정은이 후계가 된다면 더 안좋아질지도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5 10:53
이석이 거기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략 비유하자면 억압적 통치에 필요한 reputation이 김정일에겐 있지만 김정은에겐 아직 없기 때문에, 김정일이 눈으로 째려보기만 해도 될 일은 김정은은 실제로 주먹을 휘둘러서 자신의 명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겁니다.
Commented at 2010/07/12 12: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공손연 at 2010/07/12 14:12
본문이 결코 그런 뉘앙스를 가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오해가 있을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저는 솔직히 김정일을 김일성에 비해서 인간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악질로 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김일성과 다른 상황에 따른 입장일뿐이지 폐해나 똘끼짓은 오히려 김일성때부터 시작된것이 많으며 그 자체도 아들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김일성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보지않고 배우지않은것을 남한테 잠깐 듣고 해본것과 김정일은 김일성이 해온것을 정당화하고 절대화하는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온것의 차이겠지요...간단히 비유하자면 손오반이 손오공보다 강한 이유와 같은 것?
Commented by 瑞菜 at 2010/07/12 17:05
아직 여물지 않은 풋사과 주제에 문혁도 견뎌낸 대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에게 거역하다니!
모택동 시절이면 무사하지 못했을텐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3:01
그 애비도 백만 중공군이 자기 삽질을 몸으로 때워주느라 죽어가는 동안에도 무정이나 박일우 같은 연안계 동지들을 숙청한 만만치 않은 근성의 사내죠. 그러고도 무사했었다는;;;
Commented by 밀파크 at 2010/07/12 19:22
다만 중국과 북한이 설령 이념적으로 오와 월의 관계라 할지라도 현 정국은 오월동주 그 자체인 상태이므로 어쩔 수 없겠지요.
뭐 결국 남한과 북한은 중국과 미국의 꼭두각시로서 대리전을(그것이 열전이든 냉전이든)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상황이고, 이는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지속될 것 같은데... 아니면 북한이 내부모순으로 깔끔하게 망하든가. 그런데 전자는 아마 거의 불가능할거고 후자가 된다 한들 한참 뒤겠지요.
음, 안습하다 우리나라.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3:00
북한이 중국의 꼭두각시라면 "주는 거 먹고 떨어져서 찌그러져 있어!"라는 요구 한 번으로 끝나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wag the dog) 상황이 종종 일어나고 이번도, 혹은 이 앞의 핵실험 같은 것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결국 오월이 같은 배를 타고 있더라도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배의 주도권을 놓고 다툴 때가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이 유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중북 관계는 근본적인 신뢰의 결여 때문에 갈등이 심한 동주관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응해 한미관계를 갈등이 적은 동반관계로 관리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정세를 조성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한단인 at 2010/07/12 20:12
허허허... 이건 뭐...
Commented by SKY樂 at 2010/07/12 21:25
제 방식대로 보자면, 박정희 정권을 상대해야했던 케네디(+카터)정부의 고민과 비슷하다고 보입니다. 다만 다른점은 이쪽은 주한미군과 연합사가 완충역할을 해주는데 반해, 저쪽은 북한이 저지르면 중국은 뒷처리하는 형태를 가진다는 점...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서 전작권 이양 연기결정이나, 서해해상훈련같은 중국을 자극하는 미국의 근저엔 그점을 은근히 꼬집는 부분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중국이 아시아의 지도적 위치를 누리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북한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보여줘야겠지요.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10/07/13 01:31
저 조항들 부인은 하고 있다는데.. 지금까지의 사태의 추이를 보면.. 전혀 부정될만한 사항들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할 정도로의 모습을 보이는군요. 식량지원이나 경제지원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김씨 일가 세습체제 인정만해도요. 다만 북한이 자신들은 보유하고 있다는 그 핵문제 관련해서의 문제는 핵무기가 진짜 있는지 여부에서 중국이 통제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하는건지..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3:10
네, 그냥 확인만 안해주고 있을 뿐이지 그 이후의 중국 정책과 판박이죠.

사실 중국의 제안을 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습니다. "① 경제발전과 국가건설이라는 김일성의 유지를 승계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하는데, 김일성의 유지는 사실 굉장히 많거든요. 예를 들면 (적화)통일 같은 것도 김일성의 유지가 될 수 있지요. 그런데 중국은 김일성의 유지 중 어떤 특정한 것을 자기 입맛에 맞게 선별해서 최우선적인 목표인 것처럼 김정일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가려뽑은 건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중국이 김일성에게 끈질기게 요구해서 대답을 얻어낸 것들이라는 거;;;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7/13 03:06
중국 입장에선 저놈을 두들겨 팰수도 없고
패면 놔두자니 열받는 에매한 상황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7/13 13:11
그렇죠. 오죽하면 '등에 난 종기를 만지는 심정'이겠습니까.
Commented by at 2010/07/13 08:36
저렇게 중국 체면을 짓밟는 북조선을 언젠가는 대차게 밟겠다고 나서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7/13 19:31
지금 상황대로 가면 뇌관을 해제하기가 더 어려운 지경이 될 수 있는데 그때 중국이 제안할 해결책이 무엇일지 궁금하군요. 러시아만 해도 난민 수용 훈련을 실시한다는데 어떻게 될 지 걱정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7/13 22:59
뭔가 김정일에 대한 일말의 찜찜함이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저렇게까지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가 결여되어 있었다니;;;
하기사, 김일성도 중국이 조련하는 데에 적지 않은 수고를 들였으니...
요즘 상황 보면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 조교를 마치지도 못한 채
김정은 체제로 넘어갈 것 같은데, 중국으로선 이 또한 힘 빠지는 일이겠습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7/13 23:02
세자로 책봉이 되기 위해서는 천조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건 조선시대와 똑같은데,
세자가 직접 천조국에 가서 천자를 배알해야 한다는 것이 다르군요.
그나저나 김정일이 중국에 대해 저런 굴절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Commented by 만슈타인 at 2010/07/22 12:22
참... 진짜 꼴통이군요 김정일... 진짜 너무 심하네요 --
Commented by 눈팅 at 2010/10/20 11:06
등의 유언 6번 항목이 조금 애매모호하네요..
중국의 국익에 저해된다고 중국이 생각함ㄴ 조약 폐기도 불사 하겠다는 얘기인건지..
그럼 주문의 최종 관문이겠군요..
저런 주문은 유사시 중국 정부의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at 2012/10/16 10:37
코튼 아저씨, 잘 지내고 계십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12/11/05 00:48
엉, 반갑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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