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러시아대사관 홈페이지에 갔다가 발굴(?)한 현 러시아 대사의 연설문.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 게 문화어로 읽어주면 딱 어울릴 듯. (모든 강조는 원문대로)읽어보시겠습니까?(클릭)
존경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5월 9일은 수십 년간 소련 국민과 현재로서는 러시아연방 국민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무자비하고 유혈의 전쟁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런 전쟁은 위대한 조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 당시 소련국민은 수많은 희생자를 냄으로써 일부 국민들이나 국가들에 위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위협해왔던 파쇼주의의 전파를 방지하였습니다. 위대한 조국 전쟁이란 이름을 지닌 소련과 파쇼독일 간의 대립은 파쇼주의를 짓부시고 극동지역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괴멸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수많은 점령된 국가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길을 열린 2차 대전의 기본 사건이 됐습니다.
파쇼주의에 대한 승리 65주년은 20 세기의 가장 대규모의 비극사태와 그의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2차 대전이 일어난 원인을 깊이 연구하기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승리자들의 전공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며, 반 히틀러 연맹 수천만 명의 병사들 과 장교들, 게릴라 부대 의병들, 반항투사들, 그리고 징벌자들의 행위나 폭탄으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파쇼수용소들에서 사상자가 된 일반 시민들, 또는 다양한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를 가지며 그 전쟁에서 자기 목숨을 바친 모든 영웅들의 명복을 빌 수 있는 더 하나의 기회가 되는 겁니다.
2차 대전은 유럽 국민들과 전세계에 대단한 고민과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그 전쟁이 일어난 국가에서는 모든 시민이 군사행동이나 점령이 가져온 후과로 인하여 많은 고생을 했었습니다. 세계는 나지즘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72개 국가가 참여한 전쟁으로 인하여 5천 5백만 명이 사망하였고 이 전쟁은 인류에 엄청 많은 물질적인 손해를 끼쳤으며 많은 붕괴를 가져왔었습니다. 사상자들의 5천 5백만 명 중에 2천 7백만 명은 소련 국민들이었습니다.
소련이 파쇼주의를 짓부시는뎨 결정정인 역할을 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그것을 확인해줍니다. 1944년에 소련-독일 전투 정면은 동맹국들이 싸웠던 전투 정면을 전부 합쳐서 4 배로 컸습니다. 그 당시 파쇼독일은 동쪽 전선에서는 자기 사단 201개를 전개하였고 미군이나 영군을 반대하여 싸웠던 독일 사단은 2개 내지 21개 밖에 안 됐습니다. 1944년 6월에 서양유럽에서 2차 전선이 열렸을 때 동맹국들의 병력은 백5십만 명이 이었고 독일병력은 5십6만 명이 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소련-독일 전투 정면에서 독일병력은 4백만 명이 이었고 소련병력은 6백5십만 명이 이었습니다. 히틀러군은 소련군을 반대한 전투에서 가장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병력은 70%, 군 장비는 75%를 일었습니다. 소련은 히틀러 대군으로부터 기본공격을 받았습니다. 독일 군대 4분의 3이 동쪽 전선에서 괴멸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전투적 능력과 경험이 제일 많은 부대들이었습니다. 소련 병사들 과 장교들의 수백만 명이 전투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반 히틀러 연맹 서양유럽에서의 소련 동맹국들도 파쇼독일을 괴멸하는데 소련의 결정적인 역할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총리 였던 위느스톤 처칠은 소련군이야말로 파쇼독일군의 배를 쨌다고 밝힌 바 있으며 미국의 처지 부시 전 대통령도 1944 년 6월 과 7 월에 노르만에서 동맹국 해병대의 성공적인 상륙은 1944 년 여름에 소련군 대규모의 공격으로 인하여 독일군 사령부가 동쪽 전선에서 서양유럽으로 군대와 군장비를 이동시키지 못 했으므로 되었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파쇼독일 파멸에 대한 동맹국들의 기여를 과소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반 히틀러 연맹의 모든 가입국이 2차 대전의 승리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는 이것은 우리의 공동 승리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런 승리를 거두기 위한 우리 국가와 국민의 높은 기여를 과소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또한 나지주의자들 과 그 응호자들의 범죄 규모를 과소하거나 영웅화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를 단순화하거나 과대할 아무 필요성이 없습니다. 반 히틀러 연맹의 모든 가입국은 개인 이해 관계도 있었고 개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공돈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 하여 공동 신뢰를 이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국들은 의견차이를 벗어났으며 승리를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 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나지 주의를 반대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그 시기의 선례 없는 정치적인 성과 이었습니다. 동맹국들은 악을 공동적으로 방지해야 하며 그것을 위하여 그 어떤 단독 합의를 이뤄지면 안 되 고 오히려 힘을 합쳐서 투쟁에 나가야 할 것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이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은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뉴르느베르그에서 국제군법회의 태두리 안에 진행된 나지 범인들에 대한 형사소송입니다. 소련은 이런 소송사건을 구축하기 위하여, 그리고 군사 범인들에게 형벌을 가하기 위하여, 또는 국민들의 운명이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일관한 외교적 대책을 취해왔습니다. 결국은 1946년 12월 11일 과 1947년 11월 27일에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에서 전 세계가 동의한 군법회의의 선고는 히틀러주의의 모험적이고 배신의 정책과 파쇼독일이 일으킨 침략적인 전쟁, 그리고 또 노예화돼 버린 국민들에게 대한 히틀러의 인간증오의 전략을 결정적으로 규탄했습니다. 이 선고는 파쇼주의와 나지주의적인 범죄 책임자들을 정했고 이와 같은 범죄가 그 어떤 형식으로 나 방복되거나 갱생되지 못하도록 법률적인 태도를 마련했습니다. 인간에 대하여 나지주의자들이 범한 죄는 시효기간이 없다는 것은 다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2차 대전이 가져온 후과는 범죄적인 무관심한 태도와 나지들과의 협조주의의 비극적인 결과물이고 역사가 인류에 보내는 괴로운 경고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되며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억해야 됩니다.
- 남의 국가 안전으로써는 자기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 침략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집단안전이며 사회적 단합이고 상호공조 입니다.
- 세계와 세계적 안보는 불가분의 것들입니다
- 2차 대전 종식 후 설립된 유엔은 국제적 안전을 유지하고 보장하며 다극적인 국제협력을 발전하는데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나지사상 과 그의 옹호자들은 합법화되면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 2차 대전과 그의 결과를 비롯한 역사수정은 세계의 새로운 분열, 분쟁, 또는 상호의 규탄을 가져오는 위험하고 해롭고 허용하기 안 되는 것들입니다.
- 전쟁과 그의 수백만 명 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신성불가침입니다.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해야 하며 그 어떤 비방으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 우리 공동 승리 65 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지 말고 통일 시켜야 합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은 5월 9 일에 소련에게 있어서는2차 대전이 끝나지 안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승리의 예포가 한발도 쏘지 않았고 괴멸된 파쇼독일의 깃발도 크레믈린 벽 밑으로 던지지도 안았으나 소련군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짓 부시기 위하여, 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로써 노예화된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극동지역에 갔었습니다. 소련, 미국, 영국 지도자들께서 얄타에서 이뤄지며 보트스담에서 확충된 합의에 따라 소련은 파쇼독일이 괴멸된 3개월 후, 일본군국주의자들에 대한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 동맹국들 앞에 져야 하는 의무에 따라 소련은 1945 년 8월 8일에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고 중국의 동북쪽과 한반도에서 대규모의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군의 극동지역 작전 목적은 만주와 한반도에 주둔돼있던 수백만 명의 관동군을 괴멸하고 중국의 동북쪽과 한반도국민들을 수많은 년 간 지속된 일본식민지로부터 해방시킨다는데 이었습니다. 결국은 많은 희생자를 내어 승리를 거뒀습니다. 극동지역작전에서 소련군은 병사들과 장교들 3만 명을 일었고 그들 중에 4천 5백 명이 한반도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리하여 소련군은 1945년 8월에 관동군을 짓 부시고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수많은 년 간 용감하게 싸웠으나 일본으로부터 자주적으로 해방하지 못한 한국국민들에게 원조의 손을 내밀었다고 하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향후의 역사적 사태와 국내정책의 특성으로 인하여 한반도는 2개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그 결과 러시아와 한국은 40년 간 관계를 정상적으로 발전해 나가지 못했습니다.
1990년 9월 우리 두 나라는 냉정시대의 편견을 넘어갔으며 외교관계를 성공적으로 설정했고 러-한 협력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렸습니다. 금년에 들어와서는 양국은 러-한 수교 20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자랑스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21세기와 더불어 양국은 평화, 동반자관계, 공동 번영의 길을 선택했으며 이런 길로는 손을 잡고 자신있게 가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양국은 126 년 전에 한국이 처음으로 러시아 와 우호적인 파트너의 관계를 맺은 때의 협력기초를 계속 강화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연설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련/러시아의 국가적 기억은 다른 나라와는 상당히 다르다. 세부사항의 옳고 그름은 둘째치고, 전반적인 느낌으로 보면 '우주적인 규모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켜낸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SovComic)라고 하면 비슷하려나. 이런 인식이 결국 푸틴이 말하는 거스름돈론에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