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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Joel Wit)
Joel Wit(제네바 합의 이행에 깊게 관여한 전 국무부 관리임)는 북한의 2차핵실험이 있기 직전에 이런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나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데 동의한다. 게다가 나는 그 결정이 최근이 아니라 북한 관련 동료 연구자들 몇몇이 최근 말한 것처럼 북한 내부의 정치적 흐름에 의해서 2005-2006년 시점에 내려졌다고 믿는다. (그 결정이 최근에 이뤄졌다는 생각은) 어리석음의 소산이자 지난 3년 동안 북한이 떠들고 저질러 온 그 모든 일들에 대해 읽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앞선 글에서 정리용으로 그려둔 연표를 보면 Wit가 지적하는 2005~2006년 시점이 뭔지가 잘 드러나지 않나 한다.

by sonnet | 2010/05/26 19:37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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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5/26 19:48
개혁기에 핵무기 못 포기해! 라고 결론을 내렸다라.... 말 그대로 퇴행을 스스로 선택한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03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위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개혁파가 몰락한 것과 핵실험을 단행해 핵보유를 확고히 하자는 강경파의 입장이 승리한 것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흐름이라는 것인듯 합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10/05/26 19:59
그것보다 더 전인 2002년 북한의 HEU개발 시인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부시 이전부터 제네바 합의 해놓고 진행한 핵개발이 더 큰 문제같은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22
그도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그 때부터 북한의 보여주기가 점점 에스컬레이션 되어왔죠. 있다. 보여주겠다. 보여줬다. 미사일쏘고 핵실험 이런 식으로요. 다만 핵실험이 그 앞의 다른 카드들과는 분명히 다른 전환점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일정한 모호성을 유지했다면 그 뒤로는 대놓고 갖겠다라고 선언한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위트가 이 주제를 많이 연구한 전문가이긴 하지만, 북한 정권 내부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선 역시 best guess 중 하나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5/26 20:46
이제 북한이 더는 무슨 얘길 하건 믿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린 미국 등이 어떤 수단을 강구할 지가 관건이겠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04
그건 지켜봐야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전략적 관리에 치중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5/26 21:01
...할 수만 있다면, 김정일을 앞에다 세워놓고 쪼인트 100대 까고 설교 시작하고 싶습니다.
으어어, 열불터져서...!!!!!!
Commented by 無碍子 at 2010/05/26 21:13
장군님 쬬인트 까는 것을 게리선생이 그냥두고 보겠습니까?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5/26 22:00
바로 게리선생이 난입하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23
답답하죠.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5/26 22:17
이 핵무기는 내꺼야 하고 결정을 내렸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09
네, 전에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보여주며 휘두르기로 한 것이죠. 핵무기를 정치적으로 쓰려다 보면 역시 진짜 갖고 있는지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과시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해해성원짱 at 2010/05/26 23:47
북한은 이미 돌아올수 없는 스테이지를 지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막장이 되어가는 기형적인 형태의 저 국가가 몇 년이나 더 지속될지가 궁금할 뿐 이죠. 중국이 동북아시아 안정덕후라고 해도 참을 수 없는 선이 분명 있을겁니다-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28
사실 북한이 망한다는 이야긴 늘 많았지만, 아직까진 잘 버티고 있으니까요. 저는 '망할 거라는 기대'에 입각해서 뭔가 계획을 세우는 건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망할 수도 있다'는 늘 고려를 해야겠지만요. 숨통이 끊어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과연, 드디어 죽었군' 하는 느낌으로.
Commented by 섭동 at 2010/05/27 01:57
중국이 양빈을 체포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의주 특구가 잘 굴러갔을까요?

그나저나 양빈은 요즘 뭐합니까? 아직도 감옥에 있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06
관산이 쓴 양빈의 전기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데 한 번 읽어보시죠. 전적으로 양빈에게 유리하게 쓰여진 내용이지만, 그래도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http://www.ybpeace.com/korean/book.asp
Commented by 현기 at 2010/05/27 02:45
흠, 정세가 좀 무섭네요. 이러다 국지전이라도 일어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민방위이긴 한데 예비군인 친구들은 심각하게 걱정하는 녀석들도 있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38
사실 저는 언론이 좀 과도하게 떠들어서 그렇지, 북한과 남한 공식채널로는 모두 빠져나갈 구멍을 충분히 남긴 measured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10/05/27 15:11
대통령 담화 보면 그냥 현상유지 혹은 "원래 하려던 정책"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6:25
스피커 때문에 직사포탄이 좀 왔다갔다하는 경우는 있겠습니다만... 뭐 그것도 이미 90년대 후반에 한 번 정도 해봤던 일이기는 합니다....(서로 무반동총으로 포탄질을 해댔지요...)

사실 '팔아먹고'도 대금을 못받은 안건들을 다시 회수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그래야 확실하게 댓가를 받고 팔 기회가 올 터이니...)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0:59
'폭정의 전초기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폭정의 막부'를 한낱 '전초기지'로 전락시킨 쌀여사의 무자비한 도발에 뽀글짜응이 열받았을지도.....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1:08
김정일이 "악의 축"소릴 듣고 악에 받쳐서 개혁을 시작했다도 그럴듯 한 거 같습니다 ^^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1:12
오옷... 그것도 그럴 듯 하군요....

발언 하나만으로 부카니스탄의 정책을 조종하는 미쿡짜응~

Commented by 콜트레인 at 2010/05/27 13:20
2000년 정상회담 전인 1999년 1차 연평해전 발생 그 이후 조용하다가 2000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나오자 바로 2000년 6월 2차 연평해전으로 한국 정부 테스트. 한국의 방어태세 탄탄한 상태에서 햇볕정책계속의지 확인 이후 한국에 대한 도발은 사라짐

**1 연평해전전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가 부상을 입고, 대한민국 장병 7명이 부상당한 반면 북한은 등 함정2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어, 최소 70여명~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남한의대승

**2차연평해전에서도 기관포를 주고 받는 치열한 격전 후 대한민국의 피해는 6명이 전사, 18명이 부상하고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였다. 한편 북한의 피해는 약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퇴각하였다.--남한의대승

그 이후 주로 미국 부시를 향한 시위가 중심.

2005년 1월 콘드라이스 폭정의 전초발언과 9월 BDA금융제재등으로 시작되는 대북강경정책 시작되자 잠시 9.19성명으로 복귀하는 듯 하더니 2006년 7월 북한 바로 대포동 미사일 발사(미국과 일본쪽을 향해) 그리고 나서 2006년 10월 또 1차 핵실험감행--사실 대포동 핵실험 바로 전에 개혁파 박봉주 실각되고 북한내 군부와 강경파 입지가 강해짐

이명박 집권이후 10.4선언 개무시하자 그동안 안보였던 역도발언 나옴.

그리고 나서 금강산피격사건발생(과거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지만 그때는 좋게 해결되었는데 이명박 집권후 남북관계가 약화되면서 바로 피격당해버림)

2차핵실험감행

대청해전

천안함사건발생--사실상 북한에 남한군대가 개쪽당한 사건

남북 모두 초강경모두 돌입(부시의 대북강경정책이 북한의 개혁파를 실각시켜버려 북한에 강경파가 득세한 가운데 남한도 이명박집권이후 초강경파가 득세하여 결국 남북한 강경파들끼리 대결모드상태에서 천안함은 결정적인 계기를 부여)

전쟁의 가능성이 조금씩 대두중(국지전 전면전 모두 가능상태)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7 13:31
위 연표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의 개혁 시도가 2차 북핵위기가 발발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부시 행정부 1기 시절에 시작되었고, 오히려 6자회담에서 합의가 나오기 시작한 4차 6자회담을 전후해서부터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곧 퇴행이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을 까기 위해 급조한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되죠.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3:36
'2000년' 1월에 부시가 악의 축 발언을 했던가요...

시간을 달리는 부시군요...

2차 연평해전도 시간을 2년 앞으로 달리고 있는 중이고.......

Commented by 콜트레인 at 2010/05/27 13:43
sonnet /

1차 6자회담시기와 박봉주임명시기는 서로 겹치는데요.

그리고 2000년 6.15선언이후 조용하다가 2002년이후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후 북한 내 강경파와 vs 개혁파간의 대립이 있었지만 1차 6자회담까지는 북한내 개혁파가 우세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게 역전된 것이 BDA규제등 부시의 대북강경정책이 본격한 된 이후 같은데요.

ya펭귄 / 2002년이죠. 실수네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6:16
에이, 설마...

연표에 대해서 논의를 하시고 계신 분께서 가장 이슈가 큰 년도 두 개(부시 재임년도, 서해교전 발발년도)를 동시에 틀리시다니...

설마....
Commented by 콜트레인 at 2010/05/27 16:26
ya펭귄 / 실수인 증거

2000년 정상회담 전인 1999년 1차 연평해전 발생 그 이후 조용하다가 2000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나오자 바로 2000년 6월 2차 연평해전으로 한국 정부 테스트 이거 보이시죠.

여기서 2000년 정상회담은 보통 6.15선언이라고 해서 6월인거 다 아는데 그 뒤 2차 연평해전에서 2000년 6월이 말이 안되져.

고로 2002년을 2000년으로 잘못 적은 것을 알 수 있음ㅋㅋㅋ

Commented by 본연자 at 2010/05/27 19:48
05년부터 07년까지 해군 근무를 했었습니다만... 진짜로 02년 이후 도발안했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니겠지요. 참수리 대원들이 일년에 몇번 훈련! 총원 전투준비가 아니라 실전! 총원 전투준비 들어가서 대치하는지 잘 모르시는군요.
Commented by 본연자 at 2010/05/27 19:53
1차 연평해전에서도 모 하사가(06년 당시 상사) 가 죽다가 살았고 325 침수상태로 물푸면서 입항했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데 햇볕 옹호해주시려고 자꾸 가져다쓰시면 좀 기분이 나쁠것 같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8 12:35
콜트레인/ 저기 연표에 제가 적어놓은 사건들 각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면 그렇게 말씀하시진 못할 겁니다. 하여간 그 이야기는 필요하게 되면 부연하기로 하고,

"1차 6자회담까지는 북한내 개혁파가 우세했던 것이 아닐까요? 그게 역전된 것이 BDA규제등 부시의 대북강경정책이 본격한 된 이후"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엔 개혁파는 몰락의 길을 걸어 돌아오지 못한 것인데, 그럼 귀하가 주장하듯이 주된 책임을 이명박에게 묻는 건 무리지요.
Commented by 콜트레인 at 2010/05/28 13:09
sonnet / 80년대 아직 소련이나 동구권이 붕괴되기 전의 상황을 너무 강조하시는 듯 합니다. 적어도 2000년대 사회주의의 운명이 판가름 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북한의 체제유지를 위한 핵개발과 개혁개방은 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구요.

2000년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최소한의 개혁개방의 시늉을 합니다. 그 중에 개혁은 상당히 미진했지만 개방은 그래도 상당히 진척되었습니다. 특히 남과의 개방은요.

그런데 그 미진한 개혁은 부시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북한에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남과의 개방은 이명박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될려고 하고 있죠.

그 결과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만 강력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누누히 말씀드렸구요.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5/27 15:57
이런 거 보면 의외로 북한은 1인독재가 아니라 노동당, 군부, 김정일의 삼각권력체제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ㅋ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7 16:43
삼각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정일이 아래에서 조직들이 각개약진으로 충성의 이어달리기를 하는 구도가 아닌가 하는..... (한쪽이 다른쪽보다 더 이쁨을 받아서 그 위세를 이용해 다른쪽을 처단....ㄷㄷㄷ)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5/27 17:01
ㄷㄷㄷ 마치 차지철과 김재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나던 그 모습 같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8 12:37
김정일이 최고의 권력이긴 하지만, 김정일도 말을 들을 부하가 있어야 통치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면 대빵도 부하들의 이익을 잊지 말고 챙겨줘야 하는 거고, 그런 건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비슷하겠지요.
Commented by 카군 at 2010/05/27 20:40
그저께 이언 커쇼 선생의 히틀러 평전을 일단 2권만(너무 비싼데다 1권은 그 때 강남교보 서가에 없던 터라 1권은 다음 월급날 노리는 중llorz) 사다 보는 중인데, 어째 30년대 히틀러 정책하고 겹쳐 보이는듯도 하는군요. 일단 잠깐동안은 후퇴할 수는 없어도 결론적으로는 때 봐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마무리...(주여!)
Commented by sonnet at 2010/05/28 12:39
하하. 비싸서 저도 아직 못 샀습니다. 어쨌든 히틀러가 장기적 타협이 불가능한 캐릭터라는 건 확실한 듯.
Commented by nayuta at 2010/05/28 15:37
엄한 이야기인데 이언 커쇼의 히틀러 평전 너무 크고 무거워서 들고 다니면서 짬나는 시간에 읽을 수가 없어요 한 400페이씩 5권 정도에 소프트 커버로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요즘 세상에 1000페이지 짜리 하드커버 2권 이라니 택배 받고 어처구니가 없었음 ...)
Commented by 카군 at 2010/05/28 19:03
대제님/ 권당 6만원이라니 너무 비싸죠 사실orz 여하간 나중에 히틀러 정권이랑 김정일 정권이랑 비교해보면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ps. '일단 잠깐동안은 후퇴할 수는 없어도'가 아니라 '일단 잠깐동안은 후퇴할 수는 있어도'인데 오타크리...llorz

nayuta님/ 저는 가방에 아예 넣고 다니는데, 조금만 오래 들고 있다 싶으면 바로 어깨에서 신호가 오더군요. 정말 이런 거나 e북으로 만들어주지(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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