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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ry's comment(14): 꿈보다 해몽

북이 2002년 7.1 경제 개선조치로 인센티브제를 실시하고 협동농장에서의 분조관리제로 7~8명 단위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일부 협동농장의 땅을 개인에게 빌려준 배경은 앞서 2천 년의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대외 여건이 유화적으로 개선되고 남의 지원을 받게 되어서일 겁니다. 헌법을 개정해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기도 헀습니다. 즉 체제 안정이 외부로 부터 지지되고 담보되는 상황 아래서라면 그 범위 내에서 개혁 개방을 할 의지가 그들에게 확실히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명박 들어서 대북 압박이 가중되는 와중에도 경기위축을 감수하고 화폐개혁을 실시해서 시장을 위축시키고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 것은, 아무리 큰 경제적 손실과 북의 하층 주민들의 굶주림을 감수하더라도 체제의 해체를 방관할 생각이 없다는 김정일과 북의 고위 당 간부들의 공포감과 의지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즉 바람은 행인의 외투를 더욱 여미게 만들고 따뜻한 햇살은 그 외투를 스스로 벗게 만든다는 햇볕의 통찰과 같이 북이 행동해 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Garry)



사실관계나 좀 확인을 하지요. 저 실험적인 농업개혁은 시범농장에서 2004년 한 해 시도된 것입니다.

박봉주는 2003년 11월 김정일에게 협동농장과 공장·기업소에 경영 재량권을대폭 위임하는 개혁안을 건의하였다. 우선, 2004년부터 농업부문에서는 집단영농방식을 더욱 완화하여, 종래의 분조단위 영농에서 가족단위(2-5가구)로 농사를 짓도록 하자는 가족단위 영농제, 즉 ‘포전 담당제’를 제안하였다. 동시에 잠업전문농장, 고치생산사업소, 과수전문농장들을 독립채산제로 전환하는 조치도 시행되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농민들에게 ‘나의 포전’이라는 인식을 강화하여 책임 영농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다. 2002년 7.1조치 당시 농업개혁에는 수매가 인상(82전→40원/쌀 1kg), 국가수매량 축소(70~80%→50~60%) 등 ‘분배 측면’의 개혁과 함께,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 중심 운영의 제도화, 사경지 확대(종래 텃밭 30평 + 뙈기밭 400평) 등 ‘생산측면’의 개혁이 병행되었으나 농가생산에 큰 변화가 없다는 판단에서, 박봉주 내각은 생산 자체를 개인 영농에 더욱 접근시키는 포전 담당제를 실시하여 영농의욕을 고취하려고 하였다.

김정일은 박봉주의 건의에 대해 ‘시범적으로 실시해 보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 3월부터 황해·함경도 일부지역에 30여개의 협동농장을 선정, 분조를 가족단위로 재편하여 농지를 할당해 주고, 토지사용료·생산비용 등으로 국가에 납부하는 몫을 제외한 수확량은 자율 처분을 허용해 주었다. 북한 당국은 1996년 3월에 분조인원을 절반으로 축소, 농경지와 노력·생산도구를 나누어 주고 연말에 결산 분배하는 분조관리제를 일부 도입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에서 요구하는 생산목표량이 높아 농민들이 초과생산을 통한 인센티브를 확보할 여력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증산 효과가 없어 보류한 적이 있다.

포전담당제는 자본주의식 경쟁 원리를 실험적으로 도입한 ‘가족청부제’라 할 수 있다. 그 해 가을, 시범단위의 알곡 생산량은 ‘전년대비 150~200% 증산’이라는 박봉주의 보고에 김정일이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실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다음 해에 전면 확대 실시되는 정황은 없다. 당의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이 별도로 조사한 결과, ‘증산’의 이면에는 해당 농촌경리지도기관에서 실적으로 내기 위해 영농자재 등 측면지원이 있었다고 하였다. 다음에서 거론되는 ‘기업 시범경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집단화와의 역행, 나아가 당의 영도 약화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한기범,2009:167-8]


박봉주는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실세 총리였고 그의 개혁 또한 북한 기준으로는 꽤 주목할 만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임기 5년을 채우지 못하고 3년 7개월만에 좌천되었으며, 실질적으로 경제개혁을 추진한 것은 2003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2년 9개월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로 한기범은 2005년부터 그는 당의 강력한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당의 견제는 박봉주가 추진했던 여러 개혁정책을 중단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앞에서 거론된 것처럼 2004년에 시범 도입하여 김정일로부터 긍정 평가받았던 포전담당제(가족 분조제)와 기업 개혁안(자율권 대폭 확대)은 2005년부터 시행되지 않았다. 포전담당제는 해당 시·군에서 ‘성공적 영농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비료 등 영농자재를 은밀히 지원했다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2005년 5월에는, 내각의 추가 개혁안은 논의가 중단되고 ‘내각 상무조’도 해체되었으며, 그 대신 당의 ‘5.4 그루빠’로 대체되었다.

박봉주에 대한 당의 조사는 2006년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집중적으로 있었다. 2005년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정한 해에 “800만 달러 상당의 비료 구입자금을 유류 구입자금으로 전용하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은 사전에 김정일에게 박봉주의 실정뿐 아니라 경제개혁 정책 전반의 문제점을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이에 대해 “내각이 머리에는 사회주의 모자를 쓰고 실제는 자본주의 척후병 노릇을 했다. 총리 부임이후 사람들이 돈 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주변에서 박봉주에게 개혁정책을 자문해 주었던 경제 전문가들은 부정부패 혐의로 지방으로 좌천되어 개혁정책의 정당성이 훼손되었다. 내각 간부들에 대한 당의 집중 검열도 2006년 내내 진행되었다. 주동일 전기석탄공업상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데 장군님 초대소에 공급되는 전기를 (공장이나 주택에) 돌려서 사용하는 방안”을 거론한 혐의로 숙청되었다. 2006년 1월부터 2007년 1월 사이에 해임된 내각 상(相)들은 당의 검열로 해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한기범,2009:109]


이런 흐름을 타임라인으로 한 번 그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y sonnet | 2010/05/25 18:06 | flame! | 트랙백 | 핑백(4)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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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26 19:37

... 다. (그 결정이 최근에 이뤄졌다는 생각은) 어리석음의 소산이자 지난 3년 동안 북한이 떠들고 저질러 온 그 모든 일들에 대해 읽지 않았음을 보여줄 뿐이다." 앞선 글에서 정리용으로 그려둔 연표를 보면 Wit가 지적하는 2005~2006년 시점이 뭔지가 잘 드러나지 않나 한다.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28 10:48

... 이 몇몇 협동농장에서 분조담당제를 실험한 것을 갖고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할 의지가 그들에게 확실히 있었다"며 "햇볕의 통찰과 같이 북이 행동해 오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것은 1980년대에 북한이 보여준 시도의 재탕이거나 그보다도 못한 사소한 제스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떡밥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현혹시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31 12:09

... 여 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외환경에 따라 어떤 파벌이 힘을 얻는가가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앞선 논의에서 우리는 2004-2005년 사이의 북한 박봉주 내각의 개혁 시도가, 미국 부시 행정부 1기에 터져나온 제2차 북핵위기나 중국관헌의 양빈 체포로 무산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8/13 12:51

... 는 자료를 읽어보니 담긴 내용이 정반대였던 양두구육의 희생자 수전 셔크,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시작된 북한 경제개혁의 후퇴를 명박의 탓으로 돌린 시간을 달리는 가카, 엉터리 해석으로 뉴욕타임스 기사 왜곡 등등... 그러니 오늘의 한마디로는, 사후적으로 … 자기 정당화를 시키고 있는 것이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 more

Commented at 2010/05/25 18: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0/05/25 18:08
게선생의 말을 듣다보면 가카를 찬양할 수밖에 없군요. 시간조차 축지법으로 넘나드시는 위대한 가카의 위엄!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10/05/25 18:10
전지전능한 가카는 서울시장 시절에도 이미 북한을 조종하는 숨은 흑막이었군요. ;;


언제나 그렇지만 Garry는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볼 수 있게 해주니 말이죠.
Commented by IEATTA at 2010/05/25 18:22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실제 가카의 꼭두각시였다!
실제 실세는 서울시장이었던 가카였던 거시어따!

라고 주장할 거 같습니다..... 킁
Commented by 개발부장 at 2010/05/25 21:12
그렇다면 잃어버린 10년의 주체는...!
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5/25 18:33
garry 선생이 '나 때문에 이런 (좋은) 글이 나왔다능! 그러니 수수료 달라능!' 이라는 말을 할 것 같아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5/25 18:38
그리고 이제 Garry 그분이 또 여기에 댓글을 달겠군요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5/25 18:40
G씨는 가카를 찬양받게 하려는 위장공작요원인지도 모릅니다. Ga라는 알파벳 자체가 가카에서 따온 것인 겁니다!!!
Commented by xavier at 2010/05/26 03:28
Garry - Gakka Allure Romantic Retrospective Yepper....정도 되나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5/25 18:41
박봉주를 중심으로한 경제노선의 부정은 2005년의 배급제 부활시도(7.1 경제조치로 인해 대폭 축소된)로 나타나고, 결국은 2007년의 배급제 부활로 가시화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이명박 정권 이전에 이루어진 일이니...결국 북한이 7.1 조치를 취한 것은 일종의 미봉책이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사회주의-집단주의 경제로의 회귀를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분조관리제 하에서의 잉여수취물 판매에 대해서는, 종합시장에서의 거래가 보장되는 것이 필수인데, 2007년에 시장 자체에 대한 단속과 그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분조관리제 하에서의 개인 잉여수취의 판매라는 것이야 허상이라는 점이 눈에 띄네요...=_=;;


각설하고 잘 읽고 갑니다. ^^ 분조관리제에 목을 메는 Garry씨의 떡밥은 이제 뭘로 변할지 흥미 진진하네요.
Commented by SKY樂 at 2010/05/25 18:41
노통은 이미 각하와 대연정중이었던거군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5/25 19:02
G씨는 이번에는 가카 탓이 아니라 콘디 라이스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탓을 할거 같네요.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5/25 19:05
아...저도 그 생각을....OYL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5/25 19:20
"이게 다 쌀아줌마 때문이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0/05/25 19:33
이것은 노명박론.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5/25 19:37
가카를 찬☆양해야 하는 걸까요... (...)
Commented by _tmp at 2010/05/25 19:37
G군의 query에 각종 자료가 튀어나오고 있으므로 그를 bot으로 인정합니다.

Garrybot 만세. (믿으면 정남)
Commented by sd1 at 2010/05/25 22:12
SQL서버에서 자료를 받아오려면 Standard Query Language를 배우면 되고

sonnet 님에게서 자료를 쿼리하려면......
Commented by 호반새 at 2010/05/25 19:58
다들 이해해 주십시다.
게리가슴에 삼천원 하나 없겠습니까.
봇 만드는 것도 다 노가다입니다.
(믿으면 정남2)
Commented by Eraser at 2010/05/25 20:23
가카가 뉴타입이었다니 OMG!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5/25 21:02
이해해 줘야죠....

G소좌가 임무에 실패하면 일단 백두산권총의 납탄 한 방일 터이니.....

아니, 납은 귀중한 외화획득원이니까 안쓰고 비닐봉지를 재활용 하려나....
Commented by 위장효과 at 2010/05/25 21:16
라최동무와 함께 사이좋게 석탄채굴...
Commented by sizzleyou at 2010/05/25 21:37
우홋, 소좌씩이나 됐습니까?
Commented by IEATTA at 2010/05/25 21:43
아오지가 기다리겠지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5/25 23:28
에이. 이제 전사 딱지 떼고 초급병사로 진급한 사람한테 소좌라니 농담이 심하시다는^^;
Commented by 섭동 at 2010/05/25 21:46
주동일 전기석탄공업상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데 장군님 초대소에 공급되는 전기를 (공장이나 주택에) 돌려서 사용하는 방안”을 거론한 혐의로 숙청되었다.
//

멋집니다.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연표는 직접 만드신 건가요?
Commented by at 2010/05/25 22:11
Garry & 라최 동무와 함께하는 수용소 입문기와 '시간을 달리는 리명박 수령 가카'

만 나오면 되겠군요..

Commented by 無碍子 at 2010/05/25 23:13
장군님 초대소에 공급되는 전기를 빼돌릴 생각을 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놈이군요.
Commented by ㅇㅇㄹ at 2010/05/25 23:29
이제 게리 고만 데리고 노세요 ㅠㅠㅜㅠ 얼라랑 놀아주는것도 하루이틀이지(....)
Commented at 2010/05/25 23: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Q at 2010/05/26 03:12
당과 정부가 이원적인 권력 집행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 같음.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5/26 14:23
시간을 달리는 가카(2)
Commented by 지나가던과객 at 2010/05/26 14:40
북한 정치권 내부에서 뭘 좀 해볼려고 해도 기득권들이 발을 거는군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5/26 15:27
악, 태그보고 쓰러질뻔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소드피시 at 2010/05/27 15:52
이거슨 진정 노명박론이군요. 이로써 게리의 알바설은 입증되었습..(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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