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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Upton Sinclair), 그리고 여러 마디

모든 예술은 선전이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선전이다.
때로는 무의식적이지만, 대개는 의도적인 선전이다.

All art is propaganda. It is universally and inescapably propaganda;
sometimes unconsciously, but often deliberately, propaganda.


- 『배금예술 Mammonart』, 싱클레어(Upton Sinclair) -


이 선언은 정작 저자의 모국인 미국에서는 거의 무시당했으나,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 와서는 혁명(좌익) 문예계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 결과 궈모뤄의 유성기론(문학은 혁명 이념을 전파하는 유성기가 되어야 한다) 같은 위험천만한 주장들이 대거 양산되면서, 거의 반 세기에 걸쳐 중국문예계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삼결합 창작론 등은 이런 사고방식이 극단화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지도자(=마오쩌둥)은 사상을 제시하고, 인민대중(=프롤레타리아)는 소재를 제공하고, 작가는 글쓰기 기교를 제공해 3자합작으로 창작을 하면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작가는 자기 사상을 작품에 표현할 수도,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삼을 수도 없게 되어 철저한 글쓰기 기계로 전락하게 된다.
이를 지키지 못한(설령 노력했더라도!) 작가들은 반동학술권위 등으로 지목되어 타도된 후, 시골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생활경험도 노동자·농민처럼 개조하고, 마오쩌둥사상 학습을 통해 머리 속도 개조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 걸 무자비하게 갈군다고 창작이 잘 될 리가 없지 않겠나.


여기에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입장이 있었다.
첫째는 공산당과 그 영도를 따르는 주류 좌익 문인들의 관점이다.


그대들의 부숴진 나팔을 불지 말라. 잠시 유성기가 되어야 한다.
유성기가 된다는 것 - 이는 문예청년들의 가장 좋은 신조다.


- 궈모뤄(郭沫若), 「영웅수英雄樹」 『창조월간創造月刊』 제1권 8기(1928년 1월) -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문학 예술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사업 전체의 일부분이며, 레닌이 말한 바와 같이 혁명이라는 기계 전체 속의 '톱니바퀴와 나사못'이다. 따라서 당의 문예 공작은 당의 혁명활동 전체에서 할당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당이 일정한 혁명시기에 규정한 혁명의 임무에 복종한다.

- 마오쩌둥(毛澤東), 『옌안 문예좌담회에서의 강연』(1942년 5월) -



두번째는 비주류 좌익 문인들의 관점이다.

나는 문예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면 - 예컨대 ‘선전’ - 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싱클레어는 모든 문예는 선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혁명적 문학가들은 그것을 보배처럼 여겨 큰 활자로 찍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엄숙한 비평가들은 또 그를 ‘천박한 사회주의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 역시 천박합니다 - 싱클레어의 말을 믿습니다. 일체의 문예는 오직 남에게 보이기만 하면 그것은 선전이 됩니다. 글을 쓰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개인주의적 작품이라 해도 써내기만 하면 선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혁명에 적용하여 일종의 도구로 삼는 것도 물론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내용을 충실히 하고 기교를 높여야지, 간판을 내걸기에 급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내가 보기에는 ‘황태후 신발 가게’가 ‘황후 신발 가게’의 손님보다 더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혁명적 문학가들은 ‘기교’란 말만 하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문예는 물론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죄다 문예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마치 모든 꽃은 다 색깔이 있지만(나는 흰 것도 색으로 칩니다) 모든 색깔이 다 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혁명이 구호, 표어, 포고문, 전보문, 교과서…를 제외하고도 문예를 이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문예이기 때문입니다.


- 루쉰(魯迅), 「문예와 혁명文藝與革命」『삼한집三閑集』 수록 -


먼저 ‘선전’이라는 커다란 글자의 제목이 있고 그 다음에야 논의를 전개하는 문학작품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직접적인 토로가 없이 부엉이처럼 교훈을 외워대는 문학은 문학이라 할 수 없다.

- 루쉰 -


예술이 비록 ‘최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최하’도 아니다. 예술을 정치적 유성기로 타락시키는 자들은 예술의 반역자이다. 예술가가 비록 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의 뒤나 따라다니는 발바리는 결코 아니다. 하찮은 이론으로 문학을 유린하는 것은 예술의 존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모독이다.

- "자유인" 후츄위엔(胡秋原), 「주구문예론阿狗文藝論」, 『문화평론』 1931년 제1기 -


작가를 유성기로 보지 말아야 한다. 좋은 음반(추상적 개념) 한 장을 그 위에 얹어야 책을 외우듯,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작가 역시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유성기로 만들지 말아야, 작가 대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해는 작가를 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가, 생명이 없는 공허한 외침 속에서 문학을 구해내어 혁명적 작가로 하여금 문예 작품 속의 사상이나 의식 형태란 싼 값에 자기 마음대로 빌려 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 후펑(胡風), 「고리끼 단편M.高爾基斷片」『밀운기의 풍습 소기密雲期風習小紀』-

이 중 루쉰은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하기 전에 죽었고, 후펑이나 펑쉬에펑 처럼 대륙에 남아 문예의 상대적 자율성을 주장한 문인들은 차례차례 숙청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마지막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살아남은 공산당 간부들과 문인들의 관점이다.

우리는 문예가 정치에 종속된다는 이러한 구호를 계속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구호는 문예를 간섭하는 이론의 근거가 되기 쉽고, 오랜 실천을 통해 문예의 발전에 이익보다는 해가 더 크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 덩샤오핑(鄧小平), 「당면한 상황과 임무目前的形勢和任務」(1980년) -


나는 문학에는 선전효과가 있지만 선전은 문학을 대신할 수 없으며, 문학에는 교육효과가 있지만 교육이 문학을 대신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감화를 일으키고 영혼을 정화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신을 썩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는 독자의 생활경험, 그들이 받은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바진(巴金), 「문학의 효과文学的作用」, 『수상록隨想錄』수록 -


당은 국민경제계획의 수립을 담당한다. 당은 농업정책을 이끌어야 하며 공업정책의 집행도 관철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이 밭에 씨를 어떻게 뿌리고, 걸상을 어떻게 만들며, 바지를 어떻게 마름질하고, 야채를 어떻게 볶을 지까지 영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글을 어떻게 쓰고, 배우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까지 일일이 영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문예, 그리고 문예가에게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만약 당이 문예의 너무 세세한 것까지 간섭하려 든다면 문예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끝장나고 말 것이다.

‘사인방’은 문예에 지독하게 간섭한 끝에 연기자가 몸에 걸친 허리띠 하나, 천 쪼가리 한 장까지 참견했다. 그 결과 8억 인민이 즐길 수 있는 문예라고는 겨우 8편의 혁명모범극이 남았을 뿐이다. 이런 꼴을 보고서도 우리들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단 말인가?


- 영화배우 자오단(趙丹)의 병상 유언, 「너무 구체적으로 지도하려 들면, 문예는 희망이 없다管得太具體, 文藝沒希望」, 『인민일보』 1980년 10월 8일 -

이처럼 문화대혁명이 끝난 다음, 죽도록 고생해 본 문예계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로하는 견해는 문학예술이 선전효과가 있긴 해도 엄연한 한계가 있으며, 너무 그 효과를 우려먹으려고 쥐어짜면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외양간에서 가축 취급을 받으며 10년 동안 같이 굴렀던 당 고참 간부들도 그 점에는 동감이었다. 이것은 결국 앞서 소개한 루쉰의 입장을 고통스럽고 "오랜 실천을 통해 … 증명"한 셈이라 하겠다.

혁명모범극 『沙家浜』 : 문화대혁명이 만들어내려고 했던 새로운 무산계급 문화의 '예시'.
옛문화를 무자비하게 때려부수긴 했지만, 그것을 대체할 새 문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예술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그랬다. 결국 몇 편의 '예시' 이상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by sonnet | 2010/04/24 12:16 | 한마디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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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jjjismy's me.. at 2010/05/04 03:36

제목 : 미루의 생각
나는 문예가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다른 면 - 예컨대 ‘선전’ - 에 적용하려고 한다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more

Linked at HOMA SOCIETO : 루쉰 at 2010/05/05 17:33

... , 교과서…를 제외하고도 문예를 이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문예이기 때문입니다.- 루쉰(魯迅), 「문예와 혁명文藝與革命」『삼한집三閑集』 수록 - * http://sonnet.egloos.com/4381755 에서 퍼왔습니다. ... more

Commented by 漁夫 at 2010/04/24 12:36
희생된 문인들에게 묵념....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1:33
......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4/24 12:39
싱클레어의 말에서 문학을 블로깅으로 바꿔도 잘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나저나 곽말약 선생은 문화혁명으로 자신의 주장이 지상에 실현되는 걸 보면서 웃었을까요 울었을까요....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4/24 20:32
김용옥의 발언에 따르면 곽말약도 문혁기간 중에 홍위병들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02
문혁을 다 겪은 뒤의 바진 같은 사람도 그런 효과가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으니까, 문제는 효과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그 효과를 얼마나 추구하느냐인 것 같습니다. 부수적으로 그런 효과도 있을 수 있다와 그 효과가 모든 것이다의 차이.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0/04/24 12:43
All art is rifle[..]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03
그러고보니 요즘 북한은 gun barrel이란 단어를 쓰던데 한층 심오한 느낌을 주더군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10/04/24 12:57
문예가 혁명사업에 종속된다면 결국 혁명이 끝나면 문예도 끝난다는 얘기죠.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문예라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1:29
결국 끝없이 혁명을 계속하는 영구혁명론으로 흘러버리니까 그건 괜찮습니다(음?)
"계급투쟁은 앞으로 1만년간 계속한다" "이런 문화혁명을 몇 년 걸러 한 번씩 서너 번 정도 하면 문화혁명의 기초적인 단계는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막 이래버리니깐요.
Commented by Lucid at 2010/04/24 12:57
중국의 역대 지도부를 비롯한 정치엘리트들은 문예를 선전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국가적인 슬로건의 하나로 내세우거나, 중요한 정책의 기조로 인용하거나 하는 측면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비림비공이나 수호지비판운동 같은 것이야 극좌 문필집단의 소행(!)이었으니 당연하다 치더라도, 중국 외교관들의 언사에서도 동서양의 고전문구들이 자주 인용되곤 하더군요.

한국 최고의 중국학 권위자 중 한 명인 정재호 선생은 수업시간에 전통적인 중화세계관과 마오쩌둥의 독특한 생각이었던 선전적 인문주의(!), 공산주의의 프로파간다 중시 성격이 합쳐져 이러한 현상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대체로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08
네, 그런 측면을 역사적 사례를 중심으로 한 번 정리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해 보면 저도 저 나름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Commented by 오시라요 at 2010/04/24 13:02
문예가 혁명 분만 아니라... 더 넓게 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올 것 같은데요.
예술에 이념이 너무 간섭을 하다가는... (...)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13
네, 어느 정도 느슨하게 내버려둬야 잘 자랄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sunlight at 2010/04/24 13:15
문예는 선전이고 이는 2000년대 한국의 문단에도 작용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14
하하. 교훈도 현재형이겠군요.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10/04/24 14:54
보면 볼 수록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 그것도 길고 고통스러운 실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실험기록 만큼은 인류에게 자산이 되겠지요. 모든 실패한 과학실험처럼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1:24
네, 그러려면 그런 실험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고 거기서 최대한 교훈을 뽑아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4/25 11:26
그 교훈중 하나는 사회는 실험실이 아니므로 인간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벌여서는 안된다는 것이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47
파파라치/ 물론입니다. 꼭 필요하다면 실험은 가능한 작은 규모로, 국민들의 숙고와 동의를 거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약진이나 문혁처럼 8억의 인민을 한 방의 도박에 걸어서는 정말 곤란하겠죠.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4/24 16:29
"너는 하루하루 글쓰는 기계일 뿐" 유-성기론 이라니 참 zot같은 이론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1:26
유성기론 같은 게 처음에는 항일구국운동을 열심히 하자는 좀 그런 위기대응용 극약처방으로 출발한 것인데, 곧 극약처방을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시대가 와버리는 거죠.
Commented at 2010/04/24 17:1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1:23
http://www.56.com/u90/v_MjMyNTM5MDM.html 56분 지점부터 한 5분 정도 보시구랴. 의외로 화려한 액션을 겸비해 재미있다니까.
여기 보면 반면인물(악의 편)은 칙칙한 색, 정면인물(정의의 편)은 화사한 색의 옷과 분장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것도 모두 지켜야 할 창작의 규칙들 중 일부임. 중국어믈 몰라도 때깔만 봐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선악구도를 확 대비시키라는 게 그들의 취향이지.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4/24 23:16
커, 커헉...;;;;;
이런 게 '예시'라니... 문외한이 봐도 당대의 '모순'이 모조리 응축된 게 보이는군요.
Commented by Ciel at 2010/04/24 19:02
혁명 당시의 중국에는 야설이 없었을거 같아서 조금 우울해졌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10
연애소설 정도로도 재자가인을 노래한다고 박살이 나는 시대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이 출판을 장악하고 있으니 일단 찍을 도리가...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4/24 20:23
'주객전도'의 극단적인 예랄까,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블랙홀'을 만들어버린 마오쩌둥은 여러가지 의미로 '위인'이긴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27
『고별혁명』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 옮겨 봅니다.

류짜이푸: 항상 혁명을 앞세우다 보니 민족 전체의 생명에너지가 혁명에 완전히 소진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중국 민족은 이제 몹시 피곤하고 지친 민족이 되고 말았지요. 지식인들은 더 피곤합니다. 모두가 혁명운동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쳤지요.(p.140)
Commented by 瑞菜 at 2010/04/24 20:38
유성기가 된다는 것 - 이는 문예청년들의 가장 좋은 신조다.
인간 녹음기화로군요. 오로지 당의 견해를 방송하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16
문혁파는 정말로 그런 사람들을 대거 길러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0/04/25 06:13
Garry?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4/24 20:55
결국 문예를 반쯤 죽인 셈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19
저 시대엔 기존의 학술지와 문예지를 몽땅 정간시킨지라 4인방의 승인 없이 작품을 발표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4인방은 대신 '사마달 프로'나 '박봉성 프로'에 해당하는 집단창작조를 만들어 (…)
Commented by 일화 at 2010/04/24 21:04
마오쩌둥 집권기는 참 여러가지 면에서 거대한 삽질의 연속이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X인지 된장인지 일일이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건가...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4 22:24
뭔가 일관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근성도.
실패로 드러나도 좀 쉬었다가 다시 하고, 또 다시 하고...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10/04/24 23:11
원조인 싱클레어의 말하고 중국이 공산주의 이념만 선전하라고 한 건 느낌이 좀 다르네요. 예술이 선전일 수는 있는데 꼭 특정한 것만 선전하라는 말은 없으니까요. 반식민 침탈이후 극약처방을 원하던 중국의 현실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고 생각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42
하하, 오렌지가 태평양을 건너서 탱자가 되었나 봅니다. 다만 저 구호는 악용되기 쉬운 성격이었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펑나이차오가 주목한 것도 그 점 때문인 것 같구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4/25 00:12
[정글]의 저자가 저런 말도 했었다니...(사실 본인의 작품활동이 저런 측면이 좀 있었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43
저는 사실 저 이야기를 빼면 싱클레어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Commented by 동쪽나무 at 2010/04/25 01:56
어떻게 보면 뻔한 결론을 온몸으로 딩굴러서 체득하였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34
그런 셈입니다.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4/26 06:51
왠지 아시아권에서는 꽤 흔한 현상이 되어버린 듯도 싶습니다....-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43
근대화에 뒤졌다는 강박관념이 엄청나다보니...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4/27 22:22
거기다가 중국과 그 주변, 특히 동아시아는 공자 이래 문치와 문예의 전통이 매우 유구하다 보니, 혁명 좋아하는 사상[...]을 받아들일 경우에 더욱 그런 경향이 드러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둥.


.......아, 그리고 저 드디어 직장인으로 전직했어용~ 우헤헤헤헤~~~~~
촉수괴인이 유기화학 랩을 직장으로 잡았으니 이 무슨 나이스보트스런 시츄에이션....[콰앙]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8 10:37
축하합니다!
Commented at 2010/04/26 09:4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6 09:48
건져올리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10/04/26 12:40
조금 다른 얘기지만 구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생각이 나네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아주 충실한 곡들을 작곡했는데 듣다보면 독재자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뭔가 묘하게 숨겨져 있죠. 겉으로는 스탈린 동지 만만세~ 분위기인데 잘 뜯어보면 스탈린 넌 안끼워줘... 이런게 숨어 있죠. 어쨌든 쇼스타코비치 정도 되는 거장이나 이런게 가능했지 일반 예술가들이야...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8 10:11
네, 소련도 문예에 대한 많은 규제와 탄압이 있었지요. 거기도 한 번 다뤄볼만한 이야기이긴 한데...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4/26 19:59
저도 정치적 문학을 혐오하는편입니다.
문학의 한계는 이렇게 해라는 가이드 라인의 제시가 아닌
문제의식의 제기 까지라고 생각하거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8 09:55
네, 루쉰이나 바진도 이야기하듯이 문학에도 실질적인 한계는 있기 마련이지요. 문학가들도 너무 자기 밥그릇을 과대평가해서 철퇴를 부르는 어리석음은 피해야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4/27 22:25
시대상황에 휘말려서 문학과 예술이 어느정도 정치성을 띌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저건 참 아무리 다시 봐도.....-_-
서양 사회주의와 동양의 문치주의(?)의 안좋은 부분만 어찌 저리 나이스하게 조합을 시켰는지 참......정신줄을 Dichloromethane 50밀리리터와 함께 분별깔때끼에 넣고 30분동안 열심히 흔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8 09:57
전형적인 반면사례인 듯.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0/04/28 01:16
정조대의 문체반정같은걸 생각해보면 정치가=문필가라는 동양의 유구한 전통이 근대문예의 싹을 짓밟았다는 느낌이... 이 동네는 순수하게 예술하겠다! 란 얘기가 먹혀들기 힘든 동네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xavier at 2010/04/28 06:50
완전 삼천포로 나가서...

정조대 = 정조가 통치하던 시대
정조대 = 정조를 지키기 위한 그 거시기한 뭣뭣.

두번째로 생각하고 글을 읽다가 심히 헷갈렸사옵니다. ㅋ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28 09:50
文以載道 같은 유가의 오랜 관념이 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실제로 중국 쪽 평가에서 그걸 원인으로 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7/03/06 22:12
옛 글들을 보다 문득 작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이 생각나 글을 안 달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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