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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巴金)

열 살 때, 『악비전』을 읽었을 때부터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악비를 죽인] 진회는 어떻게 그런 큰 권력을 갖게 되었을까? 이번에 항저우에서 서호의 풍경을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해설자가 악비묘를 소개하면서 풍파옥의 죄인들을 언급할 때, 진회 앞에 송 고종의 이름을 덧붙였다.
이것이 바로 정확한 해답이다.

- 바진(巴金), 『수상록』 중 「86. 사고의 방향」-

by sonnet | 2010/04/16 12:45 | 한마디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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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10/04/16 12:49
뭔가 의미심장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6 14:53
影射라고 불리는 중화 5천년의 비기죠.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4/16 13:06
원균 앞에 선조의 이름을 덧붙였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6 14:54
하하, 적절.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10/04/16 13:47
그것, 참.... 든든한 뒷배경이 정답.... 이라는 걸까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6 14:57
진회=4인방, 송 고종=마오쩌둥 쯤 생각하시면 될 듯.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0/04/16 13:55
원래 세상은 돈 있고 빽 있는 놈이 해먹는 게 정답....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6 15:04
흐..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4/16 15:47
매우 적절한 지적이라고 봅니다. 사실 바진 본인의 통찰력 자체도 주목할 만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봤을때 정치적으로 진회를 키워준 것은 송 고종 본인 이외에는 달리 생각할 사람이...=_=;;
Commented by 스폰지 at 2010/04/16 16:03
'염라대왕하고는 친해도 염라대왕 부하들하고는 친할 수가 없다'라고들 하는데, 사실 염라대왕 부하들이 독해진 게 다 염라대왕 때문인 거죠. -.,-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9 12:35
으하하, 영업사원을 보면 영업부장의 풍격을 꺠닫게 되는 것이군요.
Commented by monsa at 2010/04/16 16:07
열살때부터 그런 고민을 하다니, 정치영재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9 12:34
하하하, 하지만 열 살때의 고민은 70대 떄의 고민과는 같은 인물에 대한 것이지만 전혀 달랐을 듯. 열 살의 고민이란 왜 아수라 남작은 한 번에 기계수를 한 대씩 갖고 가서 깨지고 오는 것일까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Commented by Kain君 at 2010/04/16 16:18
진회 = 원균
악비 = 이순신
Commented by oldman at 2010/04/16 21:06
그게 세상의 진리입죠...orz
Commented by 소시민 at 2010/04/16 22:54
차지철 앞에 박정희의 이름을 덧붙였다.

라도도 적용할수 있겠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9 12:31
하하. 그러고 보면 차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거의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4/16 23:17
댓글을 보니 대략적으로 상황파악이 되는군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4/17 00:01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진회도 명신 취급을 받으니...

...아하. '원균명장론'도 같은 맥락일까요? (오쉣)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10/04/17 06:48
원균이 명장이라니! 안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4/18 06:32
그런데, 진회=사인방, 송고종=모택동이라는 (음모론적인) 도식으로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저 순수하게 "진회의 뒷배로 송고종이 있었으니 진회가 그리 설쳤지"라는 감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도식으로 따지면 중국사는 물론이고 서양사에서도 걸려 넘어질 사람들이 부지기수 입니다.

"影射(그림자에다가 대고 쏘아대기)"라는 개념이 말장난의 수단으로서는 꽤 쓸만하긴 합니다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엉뚱한 곳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문장의 전후사정을 살펴서 적용을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집주인께서 인용하신 파금의 해당문장은 추가적으로 전후에 문혁시기의 행태를 바라보는 문장 혹은 편(篇)으로 연결되면 파금이 "진회=사인방, 송고종=모택동"으로 연상하고서 글을 썼다는 것이 확실하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8 15:47
저는 영사를 비교적 좁게 잡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우한의 해서파관이 마오쩌둥을 겨냥하고 펑더화이를 찬양했다는 이야기는 (마오와 그 측근들의) 악의적 해석이거나 (해외의) 과장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마오쩌둥을 빗댄 게 맞다고 봅니다.

영사는 그 특성상 정말 그런지를 명쾌하게 입증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수필집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문혁비판이라는 것은 저자의 서문에 잘 드러납니다.

붓을 잡고 나서 갖가지 제목들을 접하며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해 왈가왈부하였지만, 내 생각은 오히려 하나의 테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10년 대재난이라고 부르는 문화혁명이다. 그 단어를 언급만 해도 존경심에 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던 시절이 내겐 있었다. 8년간의 회고, 분석과 해부를 거쳐 나 자신을 바로 보게 되었고, 자신을 통해 주위 사람들과 주변의 일들에 대해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붓은 늘 나의 상처를 건드렸다. 처음 원고지에 붓 가는 대로 글을 적어 먼 곳에까지 원고를 부친 것도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 글들을 발표하면 내 자신의 정신적 부담을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훗날에서야 10년 동안 외양간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사람들을 넋 나가게 만들었던 그 대사기극을 폭로하여 후손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재난을 겪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합정본 신서문")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4/18 17:38
덧글로 말씀하신 내용, 잘 이해하였습니다. 9할 9푼까지는 납득하였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남은 1푼은 미련 혹은 아쉬움이니 이것 정도는 봐주시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4/19 12:29
처음 지적하신 취지는 지당한 것입니다. 특히 힘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영사의 흔적을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든가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든가 해서 큰 문제를 만든 적이 너무 많지요.
제 생각에 힘 있는 사람의 적절한 처신은 기본적으로 영사를 봐도 못 본 척 넘어가 주는 데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포용력 있는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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