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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육계로서의 자아비판: 정치산문 『수상록』의 전략

비루는 비루한 자의 통행증 卑鄙是卑鄙者的通行证
고상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 高尚是高尚者的墓志铭


- 베이다오(北島), 『회답』(1976) -

새가 죽음에 이르면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鳥之將死 其鳴也哀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선해진다 人之將死 其言也善


-『논어』 태백편 -



중국의 원로 작가 바진(巴金)은 문화대혁명이 끝난지 조금 후인 1978년 말부터 홍콩의 『대공보』에 ‘수상록隨想錄’이라는 칼럼을 연재한다. 1978년 12월 1일에 씌어진 제1편 「망향을 이야기한다談望鄕」부터 1986년 8월 20일에 집필한 「후펑을 그리며懷念胡風」까지, 8년에 걸쳐 발표한 총 150편의 수필을 묶어 다섯 권으로 간행한 것이 바진의 수필집 『수상록』이다.


『수상록』의 주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잘 밝혀 두었다.

붓을 잡고 나서 갖가지 제목들을 접하며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해 왈가왈부하였지만, 내 생각은 오히려 하나의 테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10년 대재난이라고 부르는 문화혁명이다. 그 단어를 언급만 해도 존경심에 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던 시절이 내겐 있었다. 8년간의 회고, 분석과 해부를 거쳐 나 자신을 바로 보게 되었고, 자신을 통해 주위 사람들과 주변의 일들에 대해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붓은 늘 나의 상처를 건드렸다. 처음 원고지에 붓 가는 대로 글을 적어 먼 곳에까지 원고를 부친 것도 우정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 글들을 발표하면 내 자신의 정신적 부담을 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훗날에서야 10년 동안 외양간에서 살았던 나에게는 사람들을 넋 나가게 만들었던 그 대사기극을 폭로하여 후손들에게는 절대로 그런 재난을 겪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었다. ("합정본 신서문")

이 자체는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으며 사실 꽤 진부한 동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뭔가 남다른 데가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소위 회고담이나 회고록 류를 읽어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이런 류의 책들은 백이면 백, 잘 된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기여를 강조하고, 또한 잘못된 일의 경우엔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그 때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상세하게 해명하는 자기합리화의 경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수상록』은 이 패턴을 뒤집음으로서 고도의 전략적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저자 자신이 문혁의 주요 피해자인 만큼, 평범한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수상록』 또한 나를 괴롭혔던 문혁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바진은 그런 진부한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건국 후 문혁 발발 이전까지의 17년 동안 끊임없이 벌어져 왔던 지식인 박해운동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끈기있게 반복해 자아비판한다. 자신은 덩퉈(鄧拓)나 후레이(傅雷), 텐자잉(田家英)처럼 거대한 불의에 직면해 결연히 자결해서 삶을 마감한 것도 아니고, 후펑(胡風)처럼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감옥에 갈 지언정 끝까지 버티는 대신, 다른 대부분의 지식인들처럼 문혁이 자신을 덮쳐 올 때까지는 기본적으로 정부(당)에서 내려오는 노선에 순종하며 따라갔다는 것이다.

공산 치하에서 자아비판은 흔한 형식이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주위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제 그는 강요 없이도 자발적으로 자아비판을 강행한다. 아니 말려도 한다. 왜인가?

그는 자신의 그러한 태도가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밝힌다.

한 친구는 유명한 잡문가인데 편지에 쓰길,'자신이 과거에 진리라고 여겼던 거짓말에 대해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네. 자네도 그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길 바라네 … 이후에 자기가 그런 류의 글을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 나는 그런 보증수표는 끊지 못하겠네."

나 역시. '당시에는 용기가 없었'지만, 이후에는 과연 용기가 생길런지? 그는 아주 솔직하게 '그런 보증수표는 끊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라고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진실을 말하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할 수 없다. 그도 역시 할 수 없을 것이다. (79. 세 번째 "진실을 말함")

바진은 자신이 기회주의적으로 '비루한 자의 통행증'을 끊고 당의 표적이 된 다른 지식인들을 비난하는데 동참하고, 속으로는 자신이 표적에서 벗어났음에 안도했던 많은 보통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를 털어놓고 반성하면서 그는 "나는 나 자신의 일을 이야기할 뿐이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찔리다 못해 편지를 보내어 그만 하면 어떠냐고 제안해 올 정도이니까.

'강아지 바오띠'는 이런 전략의 전형적인 예다. 잘 보면 이 이야기에서 홍위병들은 바진네 개를 죽이라고 한 적이 없다. 흉흉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어떻게든 재앙을 피하려고 바진 가족이 머리를 굴리는 과정에서 알아서 기느라고 자신을 잘 따랐던 개를 희생시킨 것일 뿐이다.

문화대혁명 와중에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 식으로 친구나 동료, 스승이나 제자를 팔아치웠다. 야심가나 기회주의자여서 그런 경우도 적지 않지만, 양심적인 사람들도 많이들 동참했다. 내가 그를 팔지 않으면 나도 그의 일당으로 몰려 타도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준명문학' 편에서 바진은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서 《불야성》의 작가 커링(柯靈)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고 밝힌다.

이렇기 때문에 문혁에서 살아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강아지 바오띠'는 그냥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치부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자 아주 불편한 글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바진이 자신을 겨냥해 욕을 했더라면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변명이라도 해 볼텐데, 그런 것도 아니다. 반박은 더더욱 할 수가 없다. 바진은 겉으로는 철저하게 '내가 나쁜 놈이다, 나는 반성한다. 남의 일은 모르겠다. 나는 반성한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진은 전략적 글쓰기, 자신의 심신을 괴롭혀 남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육계로서의 자아비판'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루쉰의 잡문을 비롯해서 현대(당대) 중국 작가들에게는 현실에 개입하기 위해 정치성 짙은 산문을 써온 오랜 전통이 있는데, 바진의 『수상록』 또한 독창적인 전략을 구사한 정치산문의 한 형태인 셈이다.
by sonnet | 2010/03/25 12:17 |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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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512 at 2012/05/03 17:49

제목 : [책] 수상록 (Les Essais)
프랑스의 사상가. 인용의 달인 미셸 몽테뉴의 수상록.몽테뉴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저는 다른 언어보다 불어를 우선 공부했을 겁니다. 서로의 사상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죠. 독일에선 니체나 쇼펜하우어 같은 학자 타입의 철학자가 많이 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롭지만, 저와는 성향이 달라요. 물론 제가 몽테뉴와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1/03/09 17:24

... 통일세 단상 도서 (2회) | 고육계로서의 자아비판: 정치산문 『수상록』의... 역사 (2회) | 서해에 출현한 ... more

Commented by 보리차 at 2010/03/25 12:54
알기 쉽게 해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못하면 '강아지 바오띠'에 대해 오해하고 넘어갈 뻔했네요. 그건 그렇고, 굵은 글씨로 쓴 마지막 문장을 보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5 13:48
아니,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독후감에 불과하니까, 오해고 뭐고가... 원래 생각하셨던 게 맞을 가능성도 많이 있는 거지요.
Commented by nishi at 2010/03/25 13:11
자신을 치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론 타인을 치는 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5 13:53
음... 좀 부드럽게 해석하자면 자기반성 측면에서 솔선수범한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저자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같은 책에 실린 다른 글들에서는 ~해야 한다 는 직접적인 주장도 많이 있거든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3/25 13:45
이 글을 읽으니 '강아지 바오띠'의 의미가 보다 명확해지는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5 17:04
陳思和 이희경 등을 참고해서 제가 이런 식으로 이해한 것인데, 얼마나 쓸만한 것인지는 글쎄요 ^^;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3/25 16:47
뭔가 좀 이상한 연상이지만,
말다툼하다가 불리해지면 "그래, 내가 틀렸어, 내가 나쁜놈이야!" 하면서 자기 스스로 자기 뺨을 진짜로 세게 때리던 옛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결국 상대가 허겁지겁 그 친구의 자학 행동을 뜯어 말리고 사과하게 되더라는...
Commented by ㆍㅅㆍ at 2010/03/25 19:13
저는 원래 중국 문학에 전혀 연이 없었는데, '강아지 바오띠'를 보면서 조금 관심이 생겼었습니다. 그리고 이 감상을보니 당장이라도 보고 싶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7 19:39
제 독후감이 중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셨다니 무척 기쁩니다. 수상록에서는 '사오산을 그리며'가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아주 애절한 글인데 꼭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혁 당시에 고생하다 죽은 아내를 추억하는 글입니다.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3/25 23:27
시대의 반성을 요구하는 글로써 저만한 글쓰기법도 찾기 힘들거 같습니다

중국의 글에는 요재지이 이래로 읽어본적이없었는데 점점 친근감이 생기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7 19:49
문학이 정치선동에 휩쓸려서 찌라시 수준으로 떨어진 시대를 몸소 겪고 나서, 바진이란 사람은 문학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건 맞지만 뭔가 그런 조악한 방법을 피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핵심구호 중 "진실을 말하자"라는 것이 있는데 저는 이것도 꽤 전략적인 노림수가 있는 선택이라고 느낍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3/25 23:33
아악, 저도 오독했던 것이었군요...;;;;
태산이 높다 하되, 대설산같은 글에 데꿀멍...;;;;;;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7 19:39
아니, 오독이라고까지나. 독후감이라는 게 백 명이 읽으면 백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거죠. 문학작품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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