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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루쉰은 잡문(雜文)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정치평론 장르를 개척해 당대 중원의 무수한 논객들과 키워질을 벌였는데, 거기에는 한 때의 친한 친구들(전현동, 임어당)이나 친동생(주작인)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나중에 가서 그는 소설 창작도 젖혀두고 집중적으로 잡문만 썼다. 루쉰이 활동하던 시기는 제국주의의 계속된 침략으로 중국이 망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해야 하던 시기였고, 또한 루쉰이 속한 좌익문단 입장에서 볼 때 국민당의 폭정 또한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 갔다. 그가 절박함을 느낀 것은 일리가 있었다.

한편 당시에는 프로(레타리아) 문학을 한다며 정치선전에 함몰되어 수준 이하의 작품을 내놓는 좌익작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루쉰은 이를 가소롭게 여겼다. 하지만 그도 혁명을 추구하는 작가였다. 혁명적 작가로서 그는 "모든 문예는 물론 선전이지만 모든 선전이 죄다 문예는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즉 그는 문예로 정치선전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그게 문예인 이상 "먼저 내용을 충실히 하고 기교를 높여야지 간판[구호] 내걸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하여간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간단히 봐줄 수 있단 말인가. 봐주지 말고 계속 몰아쳐야 한다'라는 주장을 선전하는 고전적인 예로 루쉰의 다음 글을 꼽고 싶다. 그것이 '조선일보'가 되었건 '북한'이 되었건 간에 마음 속의 표적을 올려놓고 읽으면 여전히 생생한 글이다.






‘페어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

1. 해제

『어사』 57호에서 임어당 선생은 ‘페어플레이’(Fair Play)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국에서는 이런 정신을 찾아보기가 가장 힘들므로 우리는 부득불 이것을 힘써 고취해야 한다고 했으며, ‘또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아야 ‘페어플레이’의 의의를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영어를 모르기에 이 단어의 함의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물에 빠진 개를 때리자’라고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은 너무 남의 눈에 띄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억지로 머리에 ‘의각(義角)’을 달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이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라고 해서 때리지 못한다는 법이 없으며 또는 그럴수록 더 때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 할 뿐이다.


2. ‘물에 빠진 개’는 세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은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

오늘의 논평가들은 흔히 ‘죽은 범을 때리는 것’과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을 동일시하면서 다 비겁성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나는 ‘죽은 범을 때리는 것’은 무서워하면서도 용감한 체하는 것이 자못 익살스러우며 비록 비겁하다는 감을 주기는 하지만 이런 비겁성에는 귀여운 점이 있다고 본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으로서 그 개가 어떤 개이며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물에 빠진 원인을 고찰하면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1) 개가 제 잘못으로 물에 빠진 것, (2) 남이 빠뜨려 넣은 것, (3) 자기가 스스로 빠진 것 등이다. 만일 앞 두 가지 부류인 경우에 덩달아 매질을 한다면 물론 그것은 너무도 무료한 일이며 혹은 비겁성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와 싸우다가 손수 물에 빠뜨려 넣었다면 장대를 쥐고 물에 빠진 것을 기껏 때려준다 해도 너무하다고 할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경우를 앞 두 가지 경우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듣건대 용감한 권술가는 이미 넘어진 적수를 절대 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실로 우리의 모범이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부언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적수도 역시 용감한 투사여서 패배한 후에는 참회를 느끼고 다시 덤벼들지 않거나 또는 정정당당하게 달려들어 복수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개에 대해서 이런 실례를 적용하여 대등한 적수로 간주할 수는 없다. 개는 아무리 미친 듯이 짖어대어도 기실 ‘도의(道義)’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개는 본래 헤엄을 칠 줄 아는지라 꼭 언덕에 기어오를 것이며, 주의하지 않으면 몸을 부르르 떨어 사람들의 얼굴과 몸에 물방울을 튀겨놓고는 꼬리를 치고 뺑소니쳐 버릴 것이다. 그러나 연후에도 본성은 의연히 변하지 않는다. 성실한 사람들은 그 놈이 물에 빠진 것을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잘못을 뉘우쳤을 것이니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은 대단한 오산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사람을 무는 개라면 그놈이 언덕 위에 있거나 물에 빠졌거나를 막론하고 다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3. 특히 발바리는 물에 빠뜨려 넣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발바리는 일명 땅개라고도 하며, 남방에서는 서양개라고 하지만 들어보니 오히려 중국의 특산으로서 만국 개 품평회에서 자주 금메달을 딴다고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오른 개의 사진에도 우리 중국의 발바리가 여러 마리 있다. 이것도 나라의 영광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개와 고양이는 원수라고 하지 않는가? 발바리는 개이지만 고양이와 흡사하게 생겼고, 절충, 공정, 조화, 단정한 것 같은 꼴이 참으로 신통하며 남들은 모두 과격하고 오직 자기만이 ‘중용지도(中庸之道)’를 깨달은 듯한 모습으로 유유자적한다. 그래서 세력가, 태감, 마님, 아씨들의 총애를 받으며 그 종자가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고 있다. 발바리의 일이란 영리해 보이는 외모 덕에 귀인들의 손에서 얻어먹으며 중국이나 외국의 아낙네들이 거리로 나갈 때 가는 쇠사슬에 목을 매여서 발꿈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이런 놈은 먼저 물에 넣고 때려야 하며 그 놈이 스스로 물에 빠졌다 하더라도 기실 더 때려도 무방하다. 만일 스스로 지나치게 어진 사람이 되겠다면 물론 때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불쌍히 여길 필요는 없다. 발바리를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다른 개는 더구나 때릴 필요가 없게 된다. 다른 개들은 비록 힘 있는 자에게 몹시 아첨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승냥이와 좀 비슷하여 야성을 띠고 있고 발바리처럼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상은 말이 나온 김에 한 이야기로, 본 제목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4.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남의 자제를 그르친다

요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릴 것인가 때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선 그 개가 언덕에 올라온 뒤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본성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만 년쯤 지나면 지금보다 달라질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을 놓고 하는 말이다. 가령 물에 빠졌다고 자못 불쌍히 여겨야 한다면 사람을 해치는 동물 중에는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콜레라균만 보더라도 그것이 비록 번식은 빠르지만 성미야 그렇다고 의사들은 그것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는다.
지금은 관료배들과 토박이 신사나 외국물을 먹은 신사들은 저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나 적화했다거나 공산당이라고 한다. 중과민국 원년 이전에는 좀 달랐다. 처음에는 강유위당(康有爲黨)이라고 했고 후에는 혁명당이라고 했는데 심한 경우에는 관청에 밀고까지 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존엄과 영예를 유지하기 위한 일면도 있었으나 당시 소위 ‘사람의 피로 모자꼭지를 붉게 물들인다’는 의미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은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거드름을 피우던 많은 신사들은 상갓집 개처럼 당황하여 머리채를 틀어 올렸다. 혁명당도 새 기풍 - 전날 신사들이 이를 갈며 증오하던 새 기풍을 가지고 제법 ‘문명’해졌으며 ‘다같이 유신하는’ 터라 우리는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니 제멋대로 기어 올라오게 내버려두라고 했다. 이리하여 그놈들은 기어 올라와서 중화민국 2년 하반기까지 엎드려 있다가 2차 혁명 때 불시에 뛰어나와서 원세개를 도와 혁명가들을 수없이 물어 죽였다. 하여 중국은 다시 날로 깊이 암흑 속에 빠졌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조의 늙은 유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유신까지 득실거리고 있다. 이것은 마음 착한 우리의 선열들이 요귀들에게 자비심을 베풀어 그것들을 번식케 한 탓이다. 이 때문에 그 후에 각성한 청년들이 암흑한 세력에 반항하기 위해서 더욱 많고 많은 기력과 생명을 소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추근 여사가 바로 밀고에 의해 죽었다. 혁명 후 한동안은 ‘여걸’이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사람들 입에 그다지 오르지 않는다. 혁명이 일어나자 그의 고향에 도독 - 지금 말하는 소위 독군(督軍)과 같다 - 이 하나 부임했는데 그가 바로 여사의 동지인 왕금발이었다. 그는 추근 여사의 원수를 갚아주려고 여사를 살해한 주모자를 체포하고 밀고서류를 조사·수집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 주모자를 석방해버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미 중화민국이 되었으니 다시 새삼스럽게 낡은 원한을 풀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차 혁명이 실패한 후 왕금발은 도리어 원세개의 앞잡이에게 총살당했다. 그를 죽이는 데 힘을 바친 자는 다름 아닌 왕금발이 석방한, 추근을 살해한 그 주모자였다.
지금 그 자는 이미 ‘천명을 마쳤다’. 그러나 그 지방에서 계속 살판나서 드나드는 것들은 의연히 변함없는 그 모양 그대로이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추호의 진전이 없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모범이 될 만한 이름 있는 도시에서 생장한 양음유 여사와 진서형 선생은 실로 홍복이 하늘같다고 할 수 있다.


5. 실각한 인물을 ‘물에 빠진 개’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건드려도 노하지 않는 것’은 관용의 도(道)이고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는 것’은 곧은 도이다. 그런데 중국에 가장 많은 것은 비뚤어진 도인지라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 되려 그 개한테 물린다. 그러나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저절로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다.
속담에 ‘무던한 것은 무용지물의 다른 말’이란 말이 있는데, 너무 야박한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많은 쓰라린 경력을 귀납하여 얻어낸 경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설은 대개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때릴 힘이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비를 잘못한 것이다.
전자는 접어두고, 후자를 보면 잘못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실각한 인물과 물에 빠진 개를 동일시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실각한 인물도 좋은 부류와 나쁜 부류가 있다는 점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동일시한 결과 도리어 나쁜 것을 조장하게 된다. 지금의 형편을 말하자면 정치형세가 불온하여 일어서고 거꾸러지는 것이 흡사 돌아가는 수레바퀴와 같다. 그래서 나쁜 사람은 얼음산에 의지하여 거리낌 없이 행패를 부리다가 일단 실각한 후에는 불시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그러면 남이 물리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자기가 물린 적이 있는 정직한 사람은 그것을 ‘물에 빠진 개’로 보고 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측은히 여기면서, 도리가 이미 이겼으니 이제는 의협심을 보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개들이 정말 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이미 소굴을 다 만들어놓았고 먹을 것까지 장만해두었으며, 또 그런 것을 모두 조계지에 두고 있다는 것을 정직한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들이 어떤 때에는 부상을 당한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절름발이 시늉을 해서 남의 동정을 얻음으로써 여유작작하게 피해 숨으려는 것이다. 그랬다가 훗날 다시 나오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우선 정직한 사람부터 물기 시작하며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부분적으로는 바로 정직한 사람들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야박하게 말하면 제가 파놓은 구덩이에 제가 빠진 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은 다 잘못이다.


6. 지금은 아직 ‘페어’만 할 수 없다

어진 사람들은,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페어플레이’가 필요하지 않단 말이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당장, 물론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네, 독 안으로 들어가게’라고 하는 방법이다. 어진 사람들은 이 방법을 쓰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방법에 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토박이 신사들이나 외국물을 먹은 신사들은 늘 중국은 나라의 실정이 특수하기 때문에 외국의 평등이나 자유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이 ‘페어플레이’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당신에 대해 ‘페어’하지 않는데 당신이 그에 대해 ‘페어’했다가는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보게 되며 나중에는 ‘페어’하려 해도 할 수 없고 ‘페어’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페어’하려면 가장 좋은 것은 먼저 대상을 정확히 보아 만일 ‘페어’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면 조금도 사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상대방이 ‘페어’한 다음에 다시 그에게 ‘페어’를 해도 늦지 않다.
이것은 이중 도덕을 주장하는 것같이 보이기 쉬우나 역시 부득이한 일이다. 그것은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더 훌륭한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지금 이중 도덕이 적지 않은데 상전과 하인, 남자와 여자의 각기 부동한 도덕이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유독 ‘물에 빠진 개’와 ‘물에 빠진 사람’을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사 제씨들이 자유와 평등이 좋기는 하지만 중국에는 좀 시기상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로 너무 과격하고 너무 이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일반화하여 실시하려고 한다면 나는 적어도 ‘물에 빠진 개’들이 인간답게 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니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대방을 보아서 실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차별도 두어야 한다. 즉 ‘페어’는 상대방을 보아서 실시해야 하느냐, 어떻게 하여 물에 빠졌느냐 하는 것을 떠나 사람이라면 건져주어야 하고 개라면 내버려두어야 하며 나쁜 개라면 때려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당(同黨)을 돕고 이색(異色)을 토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시어미의 도리’가 가득 차 있으면서 입으로는 ‘공정한 도리’를 운운하는 신사들의 명언은 젖혀놓고 진실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공정한 도리라 할지라도 오늘의 중국에서는 아직 선량한 사람을 구할 수 없으며 도리어 나쁜 사람을 비호하게까지 된다. 나쁜 사람들이 득세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학대하고 있을 때 설령 그 누가 공정한 도리를 크게 부르짖는다 해도 나쁜 사람은 절대 듣지 않을 것이며, 부르짖음은 그저 부르짖음에 그치고 선량한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대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다가 선량한 사람들이 조금 머리를 들게 되면 나쁜 사람들은 으레 물에 빠져야 할 터인데 진심으로 공정한 도리를 논하는 자들은 또 ‘보복하지 말라’, ‘너그럽게 용서하라’, ‘악으로 악을 대항하지 말라’ …하고 떠들어댄다. 그러면 이것이 이번에는 헛소리가 되지 않고 효력을 발생한다. 즉 선량한 사람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쁜 사람들은 이로 인해 구원된다. 그러나 그 자들은 구원된 다음에 득을 보았다고 생각할 뿐 절대로 뉘우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자들은 교활한 토끼처럼 미리부터 굴을 셋씩이나 파놓은 데다가 잘 기어드는 재주까지 있는지라 얼마 가지 않아 여전히 혁혁한 명성을 떨치며 이전과 마찬가지로 못된 짓을 한다. 이럴 때면 공정한 도리를 논하는 자들은 으레 또 소리높이 외치겠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들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악을 너무 미워하고’ ‘너무 급히 고치려 하던’ 한나라 때의 청류(淸流)와 명나라 때의 동림(東林)은 도리어 이것 때문에 실패했고 그들을 평론하는 사람들도 항상 이렇게 비난했다. 그러나 그들을 박해한 쪽은 ‘선을 원수처럼 미워하지’ 않았던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만약 앞으로도 여전히 광명이 암흑면과 단호히 투쟁하지 않고 정직한 사람들이 악에 대한 방임을 너그러운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여 양보하는 태도만 취한다면 지금과 같은 혼탁한 상태는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7. ‘바로 그 사람의 도로써 그 사람의 몸을 다스려라’

중국인은 중의(中醫)를 믿는 사람도 있고 양의(洋醫)를 믿는 사람도 있다. 지금 비교적 큰 도시들에는 이 두 가지 의사가 다 있어서 그들은 소원대로 병을 보이고 있다. 나는 이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방법을 더 널리 보급시킨다면 원성이 훨씬 적어질 것이며 세상이 평안해질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중화민국의 보통 예법은 허리를 굽혀 경례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만은 절을 시킬 것이다. 중화민국의 법률에는 태형이 없지만 체형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그에게만은 볼기를 칠 것이다. 식기와 밥, 반찬 등은 지금의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수인씨 이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날고기를 먹일 것이며, 또 초가집을 몇천 간 지어놓고 고대광실에서 요순(堯舜)을 앙모하는 높은 선비들을 끌어내어 그 초가집에서 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물질문명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물론 구태여 싫다는 자동차를 타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한다면 문자 그대로 ‘제 소원을 이루어주었는데 무슨 원한이 있으랴.’ 우리의 귀도 훨씬 덜 시끄러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려 하지 않고 기어이 자기 주장으로 남을 다스리려 하기 때문에 세상에 말썽이 많아지는 것이다. 더욱이 ‘페어플레이’는 폐단이 많으며, 심지어 약점이 되어 악의 세력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예를 들면 유백소가 여자사범대학 학생들을 때리며 끌어낼 때에는 『현대평론』에서 방귀도 뀌지 않던 것이, 여자사범대학이 다시 회복되고 진서형이 여대생들에게 학교 건물을 점령하라고 선동하자 도리어 “만약 그들이 버티고 나가지 않으면 어쩔 셈인가? 당신들은 어쨌든 강제로 그들의 짐을 들어내기는 미안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학생들을 때리며 끌어내고 짐을 들어낸 유백소의 선례가 있는데 어째서 유독 이번만은 ‘미안’하겠는가? 이것은 바로 『현대평론』이 여자사범대학 측에 ‘페어’의 냄새가 조금 있는 것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페어’는 도리어 약점이 되어 장사소(章士釗)의 ‘유택(遺澤)’을 보호해주는 데에 이용되었다.


8. 결말

혹자는 상술한 나의 주장이 새 것과 낡은 것 혹은 그 무슨 두 당파간의 싸움을 일으켜 악감을 더 깊게 하거나 대립을 더 격화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개혁자에 대한 반개혁자의 독해는 예로부터 늦춘 적이 없었으며 그 수단의 악렬함도 이미 최고봉에 달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오직 개혁자들만이 지금까지 잠을 자고 있고 늘 손해를 보고 있으며 따라서 중국도 그냥 개혁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는 마땅히 태도와 방법을 고쳐야 한다. (1925년 12월 29일)
by sonnet | 2010/03/10 10:33 | 문화 | 트랙백 | 핑백(2)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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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3/10 12:06

... 했다. 강도는 이 말을 듣고 풀숲 속에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양털 옷과 돈을 챙겼을 뿐 아니라, 풀숲 속에 있던 친구의 옷마저도 빼앗아갔다. 루쉰의 잡문도 그렇고 여기 소개하는 펑쉬에펑의 우언도 그런데, 20세기 전반에 중국의 좌익문인들은 펜을 무기로 삼은 계몽 내지는 정치선전 활동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1/10/14 08:18

... 것없고 증오의 대상이 될지라도 나는 기어코 날아다니며 앵앵거리려 한다. 적들의 세상에 작은 결함을 남겨 주기 위해서. 글은 비수와 투창이어야 하고, 페어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던 문학의 전사다운 토로라 하겠다. ... more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3/10 10:40
일단, 노신과 임어당이 한때나마 친구였다는 게 놀랍습니다.
이 글에서 나온 것처럼 두 사람의 사고방식이 워낙 반대였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수인씨 이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날고기를 먹일 것이며, 또 초가집을 몇천 간 지어놓고 고대광실에서 요순(堯舜)을 앙모하는 높은 선비들을 끌어내어 그 초가집에서 살게 할 것이다." 이 대목은 정말 실천시켜 드리고픈 사람들이 많다는...^^;
그런데 노신이 장수했다면 필경 노신 본인도 '물에 빠진 개' 가 되어 홍위병에게 두들겨 맞고 한대 더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11 09:22
두 사람의 교분은 꽤 오래된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되는 잡지 '어사' 동인이기도 하고, 하문대학에 교편 잡으러 갔던 일도 그렇고, 다양한 사건으로 연관되어 있죠. 제 생각에 그 둘은 처음엔 잘 맞았는데, 1차 국공합작이 깨진 후에 문단의 좌우갈등이 급격해지면서 노신은 한층 혁명적으로 되고, 임어당은 보수적이 되어 문학이 정치와 거리를 두기를 바라게 되면서 결국 잘 안맞게 된 것 같습니다.
루쉰이 인민공화국 시대를 살았으면 어려웠을 거라는 건 저도 동감합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10/03/10 10:45
"The only Verdict is Vengeance; A Vendetta, held as a Votive, not in Vain......"

- V -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10/03/10 10:56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루쉰선생의 말은 격한 표현인데도 무게감이 있는데, 저 말을 루쉰의 동지들이 귀담아들은게 아니라 모주석께서 귀담아들으신 것 같다는게 문제라면 문제...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3/10 11:11
'페어플레이'는 상대를 봐가면서 하자는 주장은 왠지 모르게 어디서 많이 본듯하군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3/10 11:35
..진짜 마음속의 적을 생각하면서 읽기 딱 좋은 글이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3/10 11:59
도끼만행 사건 때 박통께서 "미친 개한테는 몽둥이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정리.
Commented by Ciel at 2010/03/10 12:04
요즘 쓰시는 글들이 날이 서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11 08:50
? 왜 그렇게 느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바빠서 내용이 별로 없는 포스팅이 거의 한 달쯤 계속되고 있긴 한데, 그것 외엔 잘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10/03/10 12:13
그런 이유로,
임어당 선생은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는 미국으로 가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잘 됐군요 잘 됐어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11 08:53
임어당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젠틀맨이라고 칭찬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젠틀맨이라고 욕하는 거로 봐서 누가 봐도 신사였던 것 같습니다. 난세의 중국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Commented by 01410 at 2010/03/10 12:53
모택동의 '싸우다 죽자' 론에 대해서 '생각하다 죽자' 라고 맞받아친 노신답군요.
Commented by 액시움 at 2010/03/10 13:26
6번은 팃포탯인가요.. 개란 모름지기 복날 개 패듯이 패야 제 맛이지요. ㄲㄲ
Commented by 하이얼레인 at 2010/03/10 16:51
그래서 전선의 종류를 어떻게 규정하고 ROE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중요하지 ㄲㄲㄲ "이상적(?!?!!?!)인 정치적 상황" 즉 상대방을 전멸시키면 만사OK인 상황에서야 그냥 다 죽이면 되지만, 세상사 그리 심플하면 오죽이나 좋게( - -); 때려야 할지 안때려야 할지 때리면 뭘로 얼마나 아프게 몇 차례나 어느 시간동안 때려야 할지 때리고 난 다음엔 뭘 해야 할지 어디를 때려야 할지 사실은 때려도 별로 안아픈 곳을 때리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때리면 바로 죽을 곳을 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등등등. ㅋㅋㅋ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3/10 18:32
'더불어 사는 사회'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3/10 21:59
우와.... 금언이네요. 키워도 이 정도면 '올마이티'...;;;;
Commented by 키즈 at 2010/03/11 09:59
좋은 글 링크하겠습니다. 매우 그럴듯합니다 ^^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10/03/12 16:55
일련의 싱황을 보면 적이라고 규정한 존재가 그 들 자신이 공존할 수 있는 대상, 혹은 상대와의 공존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을 까 합니다.

결국 일시적으로 힘을 잃엇던 이들이 한동안 숨직이고 있다가 다시 득세하자 이 전의 움츠렸던 시절까지 보상하듯 한 층 가열차게 부활하면서 칼을 휘두른다든 지..

요즘 상황을 보면 희미하게나마 그런 광경이 오버랩되는 것 같기도 해서..
사실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특정 세력이나 기관들에 대하여 그러한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더군요

신사적으로 대한다고 해도 알아먹지 못할 이들인 데..., 이 정도 했으면 저들도 이만큼은 알아주겠지 라고 한 게 오산이었다고 하는 그런 견해들이 좀 나오고 있던 것같더군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3/14 18:32
개를 왜 팹니까. 먹으면 몰라도. (어?)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14 20:03
개인적으로 이 글의 백미는 3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말 다 해 놓고 "이상은 말이 나온 김에 한 이야기로, 본 제목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풍자감각도 예리한 것이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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