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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레이(傅雷) 부부 유서
연재목적으로 작성한 초고의 일부인데, 요즘 뭔가를 쓸 여력도 별로 없고 해서 잠정적으로 공개.


문혁으로 희생당한 문인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대부분은 소위 '원안'(寃案: 억울한 사건)으로 누명을 쓰게 되자 자살로서 항의한 인사들이 속출하였다. 앞서 상세히 살펴본 『옌산야화』와 『삼가촌찰기』의 덩퉈라든가 『낙타상자駱駝祥子』와 『찻집茶館』의 작가 라오서(老舍), 번역가 푸레이(傅雷) 등이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라오서는 문화대혁명이 막 시작되던 무렵인 1966년 8월 23일, 베이징시 문련에서 다른 작가들 십수 명과 함께 홍위병들에게 끌려가 조리돌림을 당했다. 목에는 '반혁명분자'의 나무팻말이 걸리고, 머리는 잡아뜯기며 강제로 무릎을 꿇린 채 구타와 모욕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간신히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라오서는 다음 날 집을 나선 후 타이핑 호수(太平湖)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에 아무 이유 없이 박해를 받은 끝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쉽게도 남긴 것이 없어 그의 마지막 심정은 오직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번역문학가 푸레이(傅雷) 부부가 처남에게 남긴 유서는 이들의 억울한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인상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푸레이는 『장 크리스토프』『고리오 영감』『샤베르 대령』『캉디드』 등 30여 편의 작품을 번역한 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프랑스어 번역가이다. 문화대혁명 발발 얼마 후인 1966년 8월 30일, 푸레이는 홍위병들의 가택습격을 받게 된다. 반당행위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수색 끝에, 홍위병은 그의 고모가 맡긴 짐 속에서 장제스(蔣介石)의 얼굴이 새겨진 거울 하나와 장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의 화보 한 장을 찾아낸다. 상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함구한 탓에 그는 우파분자로 몰려 홍위병에게 끌려다니며 혹독한 박해를 받는다.

인수(人秀):

소위 반당죄의 물증(작은 거울과 퇴색한 옛 화보 한 장)이 우리 집에서 발견되어, 입이 100개라도 변명할 길이 없으나, 우리는 죽어도 우리 물건이란 걸 인정할 수 없네(정말 맡긴 상자 안에서 발견된 것이네). 우리에게 다른 죄가 있다면 몰라도 지금껏 반당적 사상이 없었네. 우리도 발견된 물증 때문에 입이 있어도 변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영명한 공산당의 영도와 위대한 모(毛)주석의 영도 아래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은 결코 그것 때문에 중형을 판결하지는 않을 거라 믿네.

다만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사는 시간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힘드네. 하물며 반역자 부총(傅聰)을 길러낸 죄는 내가 죽더라도 국민들 앞에서 다 속죄할 수 없네! 게다가 우리처럼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흘러 들어온 찌꺼기들은 스스로 알아서 일찍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났어야 했네!

자네가 매복(梅馥)의 친오빠이니, 또 우리에게 별다른 혈육이 없으니, 뒤처리를 자네에게 맡겨야겠네. 자네 입장이 곤란해서 받아들이기 불편하면, 상급 부서나 법원의 지시에 따라 다시 처리해 주기 바라네.

부탁하는 몇 가지 일은 아래와 적었네.

1) 9월분 집세 55.29원을 대신 납부하여 주게(현금이 있네).
2) 무강(武康)빌딩[회해로(淮海路) 끝] 606호에 사는 심중장(沈仲章)이 오메가 자동 남자 손목시계 하나를 수리하는데 맡겨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돌려주기 바라네.
3)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산 중 남은 것은 자네가 처리하게.
4) 녹슨 강철 회중시계 하나와 여자용 구식 손목시계는 보모인 주국제(周菊娣)에게 주게.
5) 600원이 예금된 저금통장도 주국제에게 줘서 어려울 때 생활비로 쓰라고 하게. 그녀는 평생 노동자로 고생하였네. 우리는 그녀가 무고하게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네.
6) 부의(傅儀)고모가 우리 집에 맡긴, 600원이 든 통장은 그녀에게 돌려주게.
7) 부의 고모가 맡긴 연의산(聯義山) 묘지의 영수증 한 장은, 이번 홍위병이 가택 수사를 한 뒤로 내가 찾지 못했네. 미안하다고 전해 주게.
8) 부의 고모가 우리 집에 맡긴 장신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 동시에 홍위병이 가져가 버렸네. 그래서 예금증서 3장(합계 370원)과 소액 저금통장 세 장으로 배상할 수밖에 없네.
9) 매복의 셋째 언니 주순(朱純)이 우리 집에 맡긴 장신구는 모두 헌납한 것으로 되었으니 대신 사과해 주기 바라네. 그리고 그녀가 맡긴 옷상자 두 개(3층)는 잠시 차압되었네. 관련 부서가 개봉하고 나면 자네가 대신 수령하게. 가구 몇 개가 남게 되면 주국제에게 물어봐서 처리하게.
10) 내가 쓰던 남자용 손목시계 두 개(오메가와 다른 하나는)는 원래 민(敏)과 xxx에게 주려고 하였지만,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 어렵게 될까 두려우니, 자네가 마음대로 처리하게.
11) 현금 53.30원은 우리의 화장 비용으로 써주게.
12) 위층에 송(宋)씨가 빌려쓰고 있는 가구는 진숙도(陳叔陶)가 회수하도록 하게.
13) 기타 가구는 자네가 처리하게. 책과 글씨, 그림은 관련 부서의 결정에 따라 처리하게.

자네에게 수고를 끼치게 되어 정말 마음이 편치 않지만 달리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이해해 주기 바라네!

1966년 9월 2일 밤
부 뢰(傅 雷)
주매복(朱梅馥)
by sonnet | 2010/03/05 14:17 | 문화 | 트랙백 | 덧글(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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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브공군 at 2010/03/05 14:21
광기의 시대를 보여주는 자료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33
네. 무서운 시대죠.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3/05 14:23
사실 '반당죄의 물증'도 저는 조작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홍위병들이 타깃으로 지정한 몇몇 가정에 그런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국민당의 특무'라면서 사람잡는 양상도 실제로 상당했다고 하니깐요...ㄷㄷ

엉뚱한 소리이지만, 가끔 보면 이런 문혁이 전 세계적인 저항운동(68혁명)과 비슷한 시기에 있었다고 해서, 그 저항의 흐름과 병렬적 서술을 하거나, 문혁에 대해서 '대중들의 운동'인 측면도 있다고 두둔하는 서구의 좌파 사학자들을 보면 제정신인가 싶기도 합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52
조작을 의심하는 건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입증할 방법도 마땅치 않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음... 그 서구의 좌파 사학자들의 견해가 중국에 역수입되어 반체제적 조류의 일부가 되어 있죠. 이런 아이러니가 참... 한편 중국 정부는 '역사결의'로 대표되는 관방의 역사해석에 절대 도전하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해석의 폭이 좁은데, 그게 중국 문화대혁명 연구의 큰 약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10/03/05 14:25
[영명한 공산당의 영도와 위대한 모(毛)주석의 영도 아래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은 결코 그것 때문에 중형을 판결하지는 않을 거라 믿네.]

...나의 XXX짱은 이러치 않아! 로군요. 이런 게 어쩌면 악을 굳이 위악으로 보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3/05 15:59
그런 구절을 안 썼다면 편지를 받은 처남도 같이 엮여들어가 혼이 나지 않았을까요.
하긴 반동의 처남으로 몰렸으니 편지를 받든 안받든 처남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33
마오주석이 직접 찍어서 22년간 감옥살이를 시킨 후펑도 마오가 죽고나서 출옥한 뒤에도 마오 욕은 대놓고 안 했다고 합니다. 설마 마오가 직접 그랬겠느냐는 믿음은 후펑 이후에 수많은 문인들에게서 발견되는데, 그 신격화의 깊이와 폭을 짐작케 합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10/03/05 14:25
문예의 마지막은 알아서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는 것.. 씁쓸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33
저런 사람일수록 잡아야 하는 것을...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3/05 14:55
참 씁쓸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29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3/05 15:45
G씨가 요새 안 온다 했더니 요즘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블로그에 서식하고 있더군요. 여전히 포스팅마다 "이명박 증오" 포스팅중입니다.
Commented by Matthias at 2010/03/06 00:09
오오, 이쪽으로 빨리 소환해야 검역소장님께서 양질의 반박 포스팅을 써주실텐데요(...)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3/06 01:13
Matthias님, 절대 안 올 겁니다.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10/03/06 10:27
대제님이 북한 관련 한국의 정책에 관한 포스팅을 다시 시작하신다면 다시 올 겁니다. 예전 포스팅 중 G씨가 댓글 안 단 건 북한 자체의 문제점에 관한 포스팅 뿐이었거든요. 북한에 대한 남한의 문제에 대한 포스팅에는 귀 싹 막고 녹음기 돌려댔으니까요.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3/06 11:06
내모선장님, 그러고 보니까 주성하 기자에 들르는 분들 중 일부가 화가 치밀이 G의 댓글들을 캡쳐해서 국정원에 신고했다는군요.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3/06 11:22
다시 확인해 보니 인천 지검이었네요.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10/03/06 13:04
에이브람스님 // 허걱, 그럼 잘하면 이인간 인천지법에 출두하는 겁니까? 아 이거 한 번 가야하는건가.(인천거주자임)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27
슈타인호프/ 제가 요즘 바빠서 어웨이 게임은 극구 사양하고 싶습니다 (웃음) 들여다봐도 뭐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 않고...

내모선장/ 그럼 북한 급변사태 대응계획 이야기 뭐 이런 거 포스팅하면 소환이 되겠군요.
Commented by 내모선장 at 2010/03/08 19:11
소넷님 // 그거 포스팅하면 진짜 바로 올 겁니다. 예전 적하효과 포스팅부터 계속 댓글 달다가 처음으로 댓글 안 단 포스팅이 아놀드 캔터 - 김용순 회담 건이었거든요. 거긴 우리나라 이야기가 없었으니까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10/03/05 15:49
"부의 고모가 우리 집에 맡긴 장신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 동시에 홍위병이
가져가 버렸네." -> 이 구절을 보니 홍위병이라는 것들도 사리사욕에 눈 떠서 문혁
의 미명 아래 자기 뱃속 채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흠.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10/03/05 15:59
그런 케이스는 한둘이 아닙니다. 중공 창립 직후부터 문제가 되던 사안이죠-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23
이제 와서 진상을 알아낼 도리는 없겠지만, 그 정도 난리통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Ciel at 2010/03/05 18:12
어째 죽은 경위보다는, 자살 유서에 저렇게 세세한 사항을 지시하는게 더 이채롭군요.
보통은 '세상 살기 힘듭니다.'라는 식으로 몇마디 적고서 죽기 마련인데...

고인은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8:41
네. 저도 그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미안한 일을 남기고 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명이랄까...
Commented by 계원필경 at 2010/03/05 18:45
정말 제정신이 아닌 시절이였군요...(먼산)
-> 저떄에는 진실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니...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20
마오쩌둥 부인 장칭이 비림비공 투쟁을 진행할 때 이런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역사연구는) 투쟁의 필요에서 출발해야 하고, 자료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받아서 4인방 수하의 집단창작조에서는
"실용을 위해 자료가 없으면 '합리적 상상'으로 족하다, 근거가 부족하면 진실 7에 거짓 3(七眞三假)으로 충분하고, 근거가 없으면 허구로 참을 만든다"
뭐 역사연구를 이렇게 하는데 반혁명분자 색출에 이르러서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3/08 19:09
실용에 상상이라면 이건 가카... -_-;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3/05 20:39
조리돌림?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3/06 01:12
메가 쇼킹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03
다구리 라고 하나요;;;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3/05 21:08
..씁쓸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03
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3/05 23:07
유서조차도 자신의 심정 토로보다 다른 사람까지 엮이지 않게 배려하는 게 더 중요한 시대...
어떻게 보면, 울분을 잔뜩 써내려간 내용보다 더 슬프게 보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03
네, 눈물이 찡해지는 구석이 적지 않죠.
Commented by 달동네 at 2010/03/05 23:19
이전 사회의 찌꺼기라니..;; 산 역사의 증인들을 부르는 방법은 여러가지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02
마오쩌둥이 끊임없이 그런 방향으로 지식인들을 핍박하다 보니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내몰린 것이지요. 마오쩌둥은 자기가 집권하기 전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전부 부르주아 학술/문화에 찌든 세력이라고 봐서, 소위 '신생사물'이라고 불리는 zero에서 출발해 새롭게 만들어진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된 문화(정의상 부르주아 문화보다 우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바로세우는) 대혁명으로 표출된 거지요.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3/06 01:11
제 개인적으로, 홍위병 같은 존재들을 보면 마르크스의 사상이 지닌 위험요인의 전형적인 예가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 홍위병 같은 존재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속으로 바라고 있으면서도 안 그런 척 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펄펄 뛰겠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8:58
저는 홍위병은 그렇게 흔한 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념적으로 마오이즘 같은 공산당 좌파노선의 어떤 이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있지요. 이 점은 언젠가 한 번 글로 다뤄 볼까 합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3/06 13:44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마오를 "진시황, 유방, 조조, 이세민... 등과는 달리 중국 역사상 최초로 인민을 위한 세웠다"로 묘사한 유시민의 글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더랬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8:55
그런 시각은 리영희에서 보다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에 문화대혁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은 데는 리영희의 일련의 중국 소개 저작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나는 마오나 저우언라이(周恩來)나 1세대들이 중국에서 이룩하고자 했던 그런 방향으로의 도덕주의, 순수한 인간주의적인 것에 매혹된 것이지, 좀 더 잘 먹고 하는 이런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중국의 혁명이 타락하기 시작하는 징조로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리영희/백영서·정민 대담 「리영희 선생 화갑기념문집」p.589

리영희가 열심히 중국 소개를 하던 시기에는 마오쩌둥의 중국이 품고 있는 내부적 문제들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성공적인 정보통제와 대외선전술 탓에), 좋게 봐 주기로 하면 리영희는 중공에게 속았다고 봐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3/06 19:06
그랬군요. 지식인들은 흔히 고매한 도덕적 이상에 매혹된 나머지, 인민의 경험적 의사가 과연 그런 정책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인민들은 격동의 시기에는 놀라운 자기 희생 정신을 발휘하다가도, 일단 그런 시기가 지나면 좀 더 잘 먹고 하는 문제에 천착할 수 밖에 없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06 19:22
중국 쪽에서 그런 깨달음의 집대성은 아무래도 『고별혁명』인 것 같습니다. 번역본이 국내에 있으니 기회 되시면 한 번 보시는 것도 재미있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Commented by 파파라치 at 2010/03/06 20:29
추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10/03/07 08:25
1. 유서에서 우아하고도 꼼꼼한 정신을 읽었습니다. 저도 저런 유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을 키워야 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이를 한참 먹어버렸으니...

2. <고별혁명>에서 "도난방지"에 얽힌 일본인(도둑질을 막고, 하지도 말자!)과 중국인(도둑을 막는 건 어렵다. 그러니 도둑질을 열심히 하자!)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다니.
Commented by 사처포 at 2010/03/18 20:35
<마오쩌둥은 자기가 집권하기 전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전부 부르주아 학술/문화에 찌든 세력이라고 봐서,
소위 '신생사물'이라고 불리는 zero에서 출발해 새롭게 만들어진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된 문화(정의상 부르주아 문화보다 우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게 바로 '프롤레타리아 문화'(를 바로세우는) 대혁명으로 표출된 거지요>...sonnet

마오를 그렇게 본다면...
폴 폿의 크메르 루즈가 킬링필드로 새세상을 만들려고 한 것과...방법상의 차이일 뿐이군요.... 마오는 "문화혁명"이라는 대중운동으로... 폴폿은 "물리적 거세"라는 방식으로...구세대를 처리했다는...
Commented by young026 at 2010/03/20 13:05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대혁명과도 연결되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7 19:33
네, 비슷합니다.
Commented by 미쓰 Moon at 2010/03/26 11:52
지금 푸레이와 그의 아들인 푸총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가 이렇게 우연히 푸레이의 글을 읽게 되니 새롭네요. 부탁하는 각 항목을 읽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오네요. 억울하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담담한 기분으로 쓴 듯한 느낌이 글 가득 묻어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3/27 19:33
저런 유서를 남길만한 사람이라면 일평생 곧고 바르게 살았을 거라는 느낌이 물씬 들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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