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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인가?
"다자이에서 배우자", 화궈펑, 개혁개방의 말미에서 간단히 언급했었던 중국과 북한의 비교에 관한 보론. 앞선 글이 중국의 사례를 설명하는 글이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북한을 중심으로 각 사례에 중국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의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은 가능하면 이 글을 보기 전에 앞의 글을 먼저 읽어주시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1. 비판과 수정 가능성

앞선 설명을 본 분이라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겠지만, 김정일이 주체사상과 기타 김일성 시대의 유산들을 다루는 방식은 덩샤오핑이 아니라 화궈펑이 마오쩌둥 사상을 다루는 방식과 흡사하다. 돌아가신 주석님이 말씀하신 것은 '뭐든 옳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무리 선의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김일성의 유산을 수정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즉각 대역죄로 몰릴 위험을 무릅써야만 하는 결과가 되었다. 현재 북한 사회나 제도에 김일성의 교시나 유산과 연관되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개혁안은 어떤 것이든 대역죄가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의 어록을 해석할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교황과도 같은 존재여서, 그가 직접 나선다면 어떤 부분에 대한 수정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일이 관심을 갖고 해당 분야를 직접 들여다 보기 전까지 개혁이 이루어지기란 아주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실무 조직이 회의 끝에 자신들이 담당한 사안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옛날 김일성의 교시를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 보자. 이들은 우선 이 결론을 김정일에게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만 한다. 그런데 만약 김정일이 이 결론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화를 낸다면, 이들은 모두 큰 재앙을 각오해야만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의 교시를 비난한 '반당음모'를 꾸민 '종파분자들'이 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실무 조직이 내린 결론에 불만을 갖거나 그 구성원 중 어떤 이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꼬투리를 잡기에 절호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김정일이 이들에 대해 받아 본 것은 정상적인 보고가 아니라, 신랄한 고발장과 그 '음모'의 증빙자료 뭉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족과 일신의 안위를 걱정한다면 어지간해선 이런 보고를 하느니 복지부동하게 살아가는 편이 훨씬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그럼 이제 이런 평가를 뒷받침할만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지내다 숙청되어 탈북한 이민복은 1980년대 중반의 '박철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85년 당시 과학원 지질학연구소 실장이었던 박철은 식량난 타개책으로서 ‘농장포전 개인책임관리제’라는 논문을 작성하여 중앙당에 제출하였다. 그 내용인 즉 간부를 포함한 전농장원의 개개인에게 논밭을 맡겨서 생산관리를 행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은 중앙당의 과학담당비서 김환, 농업담당비서 서관히, 정무원총리 강성산 등을 비롯하여 북한 지도부 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군급 이상 농업간부들의 토론에서도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박철의 제안으로 시작된 일련의 움직임은 김일성의 주체 농법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혹독한 비판을 받고 주요 관련인사가 처분되거나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어 사라진다. 이후 누구도 감히 자영농 지향의 농업개혁을 건의하지 못하였다.

박철 사건 직후 김일성은 본인 명의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여기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제도는 섰으나 사회주의건설이 완성되지 못하였으며 착취제도는 청산되었으나 자본주의 복구의 위험이 남아있는 그런 사회는 완전히 승리한 사회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한 처방으로 ‘협동적 소유의 전인민적 소유로의 전환’, ‘인민정권의 강화’, ‘사회주의 제도의 공고화’ 등의 방침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박철과 같은 제안을 봉쇄함과 동시에 당시 중국이나 소련의 농업개혁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었다.

김일성의 이 선언은 과거 마오쩌둥의 주장과 흡사한 구석이 많다. 사회주의화 이후의 자본주의의 귀환에 대한 경고는 마오쩌둥의 단골메뉴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협동적 소유의 전인민적 소유로의 전환'은 농업합작사에서 인민공사로의 전환, 즉 대약진운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약진운동이 대재앙으로 끝나고 그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류샤오치나 덩샤오핑, 천윈 등 실용주의자들은 '경제법칙'이나 '객관적 조건'을 강조하며 삼자일포(三自一包) 정책, 즉 농가의 텃밭(自留地), 농가부업, 자유시장을 확대해 농민들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활용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집단화된 토지를 재할당해 각 농가가 알아서 경작하게 하는 단간풍(單幹風) 등도 심하게 단속하지 않았다. 이를 부르주아 수정주의 노선, 즉 자본주의의 부활로 본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이들을 모두 숙청한다. 마오쩌둥 사후에 돌아온 덩샤오핑 등이 이 정책을 다시 추진했을 때는 천융구이 같은 화궈펑파들이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가기 위해서는 집단농업을 고수 강화해야 한다고 반대했던 것은 앞서 설명한 대로이다.

박철 사건이 이미 좀 오래된 사건이라고 느낄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2009년에 일어난 함흥화학공대 토질조사 연구소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연구소는 환경오염 문제를 조사하고 대책을 세울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기관이었다. 이들은 과거 이 대학에서 근무한 바 있는 최태복 노동당 교육과학 및 국제담당비서가 방문하자 그 동안의 연구조사 논문과 세포당원 명의의 편지를 직접 전달했다. 그 내용인 즉 '사실상 우리나라(북한)가 중국의 산업물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평양시 수돗물조차도 먹는 물로는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최태복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장군님께 직접 전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 편지를 전달받은 노동당 중앙위는 10여 일 후 '토질조사 연구소'를 해산하고 연구소 당세포에 대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검열을 진행했다. 편지를 올린 간부들과 주동자들은 함경남도 보위부에 체포되었다. 이들에게 씌워진 죄목은 종파행위였다.

이 사건은 북한이라는 사회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최고지도부에 건의를 한다는 행위가 여전히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임을 잘 보여준다. 그 건의가 선의의 뜻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었다. 박철 사건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북한의 이런 측면은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유산을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전 국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중간관리나 관련 전문가들 같은 광의의 지배층연합 내부에서만이라도 그런 길이 열려야 한다.

다시 중국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업적을 재평가해 공적이 70%, 과오가 30%이며, 전반 20년은 좋았으나 후반 20년은 과오가 많았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기준을 김일성에게 적용한다면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한 것에서부터 북한을 건국하고 1960년대 전반까지 빠른 전후복구와 경제성장을 보인 데까지를 업적으로 잡고 그 이후 북한의 몰락에 대한 책임 대부분은 과오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게 가능하겠는가?

중국에선 개혁개방 초기 단계에서 적어도 이정도 평가는 들을 수 있었다.
… 특히 마오쩌둥 동지를 비롯한 중앙과 당의 적지 않은 지도자들이 승리 앞에 오만해지고 우쭐해지고, 공을 서두르고 [인간의] 주관적 의지와 주관적 노력의 작용을 과대 평가하여, 진지한 조사연구와 시험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총노선이 제출되자 곧 경솔하게도 ‘대약진’운동과 농촌의 인민공사화 운동을 일으켰던 때문에 높은 지표, 마구잡이 지휘, 허풍, ‘공산풍’ 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좌경적 착오가 심각하게 팽배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묻겠는데 이게 가능하겠는가? 한 북한 연구자는 이렇게 논평한다.
통상적으로 정책의 변화는 새로운 통치권자의 독자성, 전임자와의 차별성을 강조할 때 나타나는 것인데 김정일은 줄곧 계승성을 주장해 왔을 뿐 한번도 차별성을 강조해본 적이 없다. 북한당국은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추대된 이후에도 김일성의 모든 정책노선을 수정함이 없이 승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여 왔다. 북한의 관영 평양방송은 1997년 10월 5일 <영광넘쳐라 조선노동당> 제하의 정론에서 “서방 언론들은 어버이 수령님 서거 후 김정일 장군이 선행노선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개혁과 개방의 정책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분하였지만 김정일동지의 정치는 김일성주석의 정치철학 그대로이며 노선 또한 김일성주석 시대의 그것과 0.001mm의 편차도 없는 수평선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정현수,1999:122]


2. 대중동원운동의 위상

공산주의 국가, 특히 중국과 북한에서 대중동원운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본적인 방법론이다. 그들은 위로부터의 제시되는 혁명적 목표를 쟁취할 수 있는지 여부가 사회구성원들의 혁명역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동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다룬 바 있는 '다자이(大寨)에서 배우자' 운동도 그렇고, 대약진운동이나 홍위병도 전형적인 대중동원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운동」의 목표는 매우 다양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이슈가 표적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약진운동은 경제발전을 목표로 한 운동이고, 신민가운동은 문예 창작을 목표로 한 운동, 문화대혁명은 당 관료들을 공격하는 운동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운동」이라 함은 많은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통하여 일정한 정책을 실시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운동에는 대체로 공격의 대상이 있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통제하는 것도 대상이 되고 권력구조나 자본주의사상 또는 태도도 대상이 된다. 이 후자의 경우 「군중운동」도 교육적인 효과를 갖고 때로는 반대자들을 숙청하는 효과도 갖는다. [안병준,1984:69-70]

이런 운동을 실시하려면 운동에 어울리는 간부가 필요하다. 운동의 지도이념을 깊이 학습하고, 상징과 조작, 선전선동에 능하며 대중을 조직해 운동의 지향점을 향해 다그치고 몰아가는 그런 적극분자들 말이다. 운동이 추진되고 힘을 받는 시기에는 이들이 득세한다. 중국에서는 이런 간부들을 「홍(紅)」이라고 부르며 실무지향적 관료집단인 「전(專)」과 구별했다.

문제는 경험적으로 볼 때 「홍」과 「전」은 상극이고, 개혁개방은 바로 「전」이 대표하는 노선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전이 홍을 철저하게 두들겨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도록 짓밟아 놓고 나서야 개혁개방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었다. 반대로 홍 노선이 강성하던 시절에는 아주 사소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힘들었고, 「전」 노선을 지지했던 개개인들을 종종 파멸로 몰아갔다.

북한 연구자들은 주체사상을 비롯한 김일성노선 전반에서 마오쩌둥을 모방한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간중심론", 즉 물질적인 조건이나 동기부여 대신 사상개조와 정신력을 강조하는 마오쩌둥식 군중노선과 북한의 대중운동은 판박이라는 것이다. 이는 「대약진운동」과 김일성의 「천리마 운동」간의 유사성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김일성은 늘 물질적 욕구가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생산의 진정한 자극제라고 주장해왔다. "영웅적인" 노동자들의 역량을 불신하는 "보수주의와 소극주의"에 의하여 대중의 "무진장한 창의력과 재능"이 억압되어 왔기 때문에 이것을 풀어놓기만 하면 "대중의 창의력과 열성과 재능"이 발휘되어 생산이 급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잠재력'을 동원해서 써먹겠다는 정책은 천리마운동 뿐 아니라 청산리정신, 속도전, 3대혁명 소조운동 등 북한의 각종 대중동원운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요소이다.



그럼 앞서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은 이미 죽은지 오래고 천리마운동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2000년대 들어서도 북한의 신년사에서 천리마운동 이야기가 계속 발견된다(예를 들어 2005년, 2009년)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겠다. 대중동원의 홍 노선은 여전히 북한의 주요노선으로 남아있다는 증거이다.

이번에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김정일은 1961년에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이래 황태자답게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는데, 이때 그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의 핵심보직들을 타고 올라갔다. 김정일이 북한의 후계자로서 자리를 굳힌 1974년 경, 그는 당 중앙의 조직비서 겸 선전선동 비서였다.

김정일은 이제 경제분야에도 손을 뻗게 되는데, 이 때 자신이 당의 조직, 선전 부문을 장악하고 있었던 탓인지 '경제 선동'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김정일의 경제지도를 상징하는 「속도전」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이었다.

김정일이 속도전을 지휘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2월의 「70일 전투」였다. 『조선중앙연감』 75, 76년도판은 70일 전투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영광스러운 당 중앙'(김정일의 별칭)의 지도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김정일이 간행을 주도한 『조선전사』제33권에는 이를 김정일의 중요한 업적이라고 강조하였다.

70일 전투는 공업생산량을 70% 늘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많은 문제를 빚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공식문헌에서 한동안 '당 중앙'의 활동에 대한 서술이 사라진다. 2차 7개년 계획이 시작된 78년에 김정일은 다시 '경제선동' 분야에 복귀해 「1백일 전투」 「수송혁명 200일 전투」 등을 지휘한다. 이 운동들도 단기적인 성과는 올렸으나 설비 혹사, 원료나 자재 공급의 불균형 등 극심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이 100일 운동에 대해서는 김일성도 『김일성 저작집』 제 36권에서 비판을 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김정일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정무원의 경제 간부들을 비판하는 등 책임전가이긴 하지만 말이다.

82년 들어 김정일은 다시 김책제철소의 궐기모임을 시작으로 「80년대 속도 창조 운동」을 추진해 "천리마 대고조의 기세로 80년대 속도를 창조하자", "모두 다 80년대의 김혁·차광수가 되자"는 구호를 앞세워 경제발전을 위한 대중동원운동을 펼친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는 「공화국 창건 40돌을 맞으며 사회주의 건설에서 새로운 대고조를 일으킬 2백일 전투」를 벌이는데, 이때 북한 언론들은 이 2백일 전투 발기를 김정일의 지도에 의한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2백일 전투가 끝나자 이번에는 「전국영웅대회」를 개최하여 다시 한 번 2백일 전투를 강행할 것을 호소한다.

이런 게 잘 될 리가 없었다. XX일 전투는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단기간에 아주 높게 설정된 목표를 수행하도록 다그치는 운동이다. 필연적으로 운동이 끝난 후 참여자들은 탈진상태가 되고, 각종 후유증이 크게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100일도 아니고 200일 전투를 한 다음 200일 전투를 또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400일이면 1년도 넘는 긴 시간이다.

이제 시계를 최근으로 돌려 보자. 작년(2009년)에 북한은 150일 전투를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150일 전투가 끝나자 바로 이어서 100일 전투를 거듭 진행했다. 그리고 새해 들어서도 김정일의 「속도전」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김정일의 새해 첫 공개활동은 자강도의 희천발전소 건설장을 시찰하고 '희천속도'를 강조한 것이었다.
노동신문은 '희천속도는 오늘의 대고조 진군의 위력한 추동력'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설을 통해, 희천발전소 건설장에서 군인들이 창조했다는 '희천속도'는 "선군천리마를 타고 강성대국으로 비약해 나가는 오늘의 대고조 시대를 추동하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속도"라고 주장했다.

'희천속도'라는 말은 지난해 9월 김정일 위원장이 이 발전소를 시찰하면서 군인 건설자들의 공사 속도를 "선군정치의 기초인 혁명적 군인정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천리마속도, 희천속도"라고 평가한 데서 비롯됐다.

150일전투는 김정일판 「천리마운동」임을 잘 보여주는 포스터


이 외에도 김정일의 대중운동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다자이에서 배우자"의 천융구이나, "레이펑(雷鋒) 동지에게서 배우라"처럼 모범적 행동을 하는 숨은 영웅을 찾아내 이를 모방하자는 것으로는 정춘실 운동을 들 수 있다.

각급 정부와 사회조직에 청년 전위대를 투입해 조직을 장악하고 당 정책을 침투시킨다는 3대혁명소조운동은 또 다른 유형의 대중운동이다. 3대혁명소조운동은 김정일이 사회 요소요소에 김정일 친위대를 박으면서 권력세습의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운동이기 때문에, 앞으로 김정일이 3대 세습을 추진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모종의 운동을 벌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김정일 본인이 대중동원의 홍 노선과 깊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사회에서 대중동원노선을 비판한다는 것은 죽은 김일성을 비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살아있는 김정일을 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럼 이를 다시 중국과 비교해 보자. 덩샤오핑은 자신이 집권(11기 3중전회)하기 조금 전에, 벌써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보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 이익도 중시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소수의 선진[혁명] 분자들은 그뿐이겠지만 광범위한 군중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한동안은 그것으로 되겠지만 장기간은 통하지를 않는다. 혁명정신은 아주 귀중한 것이어서, 혁명정신이 없으면 혁명적 행동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혁명정신은 물질적 이익을 기초로하여 생겨나는 것이므로, 희생정신만을 강조하고 물질적 이익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념론이다.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우선 김정일이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펼쳐 전 사회에 보급해야만 한다. 김정일이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동시에 150일 전투를 다그칠 수 있을까?


3. 관찰가능성

조금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자. 혹시 이러한 변화들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인가? 즉 북한은 지독한 폐쇄사회이므로 북한 권력 핵심부는 이미 조용히 개혁개방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선례도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0년 7월부터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이나 혁명역사박물관에 있던 마오쩌둥의 거대한 초상들이 조용히 철거되고 천안문 위의 초상 한 장만이 의례상 남게 되었다. 전국 도처의 모택동 어록비니 각종 초상화들도 차츰 광고판으로 바뀌었다. 이는 만인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우상파괴였다.

1981년 1월 관영통신 『신화사』는 문혁 시기의 아비규환을 그리며 마오쩌둥 초상의 먼지를 털던 한 노동자가 초상의 목을 잡은 것이 '암살혐의'를 받아 '반혁명현행범'으로 투옥된 사례, 다섯 살 짜리 어린이가 마오쩌둥 배지를 강아지 목에 걸고 놀던 것이 목격되어 모자가 '혁명적' 처벌을 받은 사례, 마오 어록 글자 한 자를 틀린 식자공, 마오쩌둥 구호를 틀리게 부른 빈농, 마오쩌둥의 사진이 실린 낡은 신문지를 휴지통에 넣은 공무원 등 당에 대해 "악랄한 공격을 가한 … 계급의 적"으로 몰린 사례 등을 고발했다. 이 또한 전 국민이 보는 아래 진행된 명백한 우상파괴였다.

1980년대 초 중국 대중들이나 외국 관찰자들은 이런 현상을 통해 중국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좋은 예는 '진리표준논쟁' 같은 당 기관지와 관영언론을 통한 노선투쟁이나 신노선홍보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핵무기 개발 같은 것은 대중에게 숨겨서 몰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회내부의 변화를 추진하면서 일반대중들이 모르게 일을 벌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중이 지도부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어도 일단 알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노선전환 자체는 권력층 내부에서 비밀리에 정해졌더라도 일단 정해진 것은 관영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새 노선을 교육하고 그 방향으로 대중을 몰아가는 것이 공산국가들의 전형적인 운영방식이다. 공산권 연구의 기본이 관영언론 모니터링인 것도 그때문이다. 북한 또한 그간의 행태로 볼 때, 중요한 결정이 지도부에서 내려졌다면 이를 어떤 형태로든 선전할 것이다.



4. 끝으로

마지막으로 환기해 두고 싶은 점은 우리는 이미 김정일 통치를 충분히 오래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북한의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이후 아버지로부터 점진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아 1980년대 후반이 되면, 이미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북한 통치의 실무 대부분을 관장하고 있었다. 김일성이 사망(1994)한 뒤로만 세어도 17년, 그리고 그 이전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을 더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25년 이상 김정일 통치를 관찰해 온 것이다.

그러니 김정일이 그간의 추세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이 주장을 뒷받침할 아주 강력한 증거, 되돌리기 힘든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제개혁 노선 1단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치는 농업개혁이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에 대기근을 겪었고, 2000년 이후로도 거의 매년 기근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는 나라로서 농업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중국보다도 더 크다. 그리고 농업개혁, 즉 집단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공업부문의 개혁보다 상대적으로 쉬우며, 북한이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실천할 수 있는 조치이기도 하다. 자력으로 실천할 수 있는 조치는 미루면서 외부의 도움을 먼저 달라고 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개혁의지를 의심케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한 중국의 농업개혁은 대중동원의 홍(紅) 노선을 폐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니 북한이 농업개혁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이들이 과거의 유산을 버리고 개혁개방의 전(專) 노선으로 돌아섰는지를 판단할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사실 김정일과 북한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식 개혁개방은 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언해 왔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 혹은 이 글을 참조) 김정일은 80년대부터 중국을 여러 차례 시찰했고, 중국 또한 그에게 여러 차례 자신들의 경험을 전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김정일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하는 이유는 그가 중국식 개혁개방의 내용과 그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어서, 북한 사회의 근본적인 부분에 메스를 대는 그런 본격적인 개혁은 자신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이미 내렸기 때문인 것 같다.

참고문헌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수령경제·자력갱생·기근』. 서울: 시대정신, 2005.
정기환, 고재모, and 김운근. 『사회주의국가의 농업개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2.

서동만. “속도전에서 개혁개방까지, 김정일식 경제지도의 양면성.” 월간말 1997년 11월호, 128-133.
서진영. “중공의 농업정책 - 농촌경제정책과 노선투쟁, 1962~1978 -.” 아세아연구 25.2 (1982): 77-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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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t | 2010/01/23 07:06 | 정치 | 트랙백(1) | 핑백(6) | 덧글(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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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산왕의 건전성추구위원회 at 2010/01/23 14:10

제목 : 김일성의 마지막 유훈, 그리고.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인가? sonnet님 포스팅을 보고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본다. - 김일성은 죽기 직전 김정일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유훈인데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넘어가 주자)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라는 제목의 김일성의 유훈은 김정일이 달성해야 할 목표이자 지금껏 추진해오고 있지만 북한의 경제상황, 체제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06 07:02

... 지 않다. 이 공장은 1961년부터 1994년까지 정상가동됐던 기간에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하,2010] 6. 끝으로 일전에 다른 글에서 김정일은 2010년 들어서도 천리마 운동, 속도전 같은 대중동원운동을 주요 경제정책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담이지만 북한의 주요 공업시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10 23:29

... 없는 상태에서 단지 특구에만 매달리는 시도는 진지한 개혁을 회피하기 위한 술수일 가능성이 높다. 2. 책임전가: 모두 이명박 탓이다 앞선 일련의 논의에서는 천리마운동의 재림이라든가 비효율적 자력갱생의 상징인 비날론 공장의 대대적 선전 등을 통해 최근 북한이 노골적인 반개혁 행보, 과거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지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0/05/28 10:48

... , pp.15-16.[오진용,2004:111] 이 수령의 선언이 '합영법'을 만들고 1년 만에 나온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 일전에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인가?란 글에서 '박철 사건'이란 것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이 바로 이 때 벌어진 일이다.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1/10/18 06:51

... 이다. (북한이 개혁개방 분야에서 중국과 얼마나 대조적인지는 이 블로그에 공개된 두 편의 글, "다자이에서 배우자", 화궈펑, 개혁개방과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인가?을 참조) 북한을 이렇게 보는 분석가들은 많다. 예를 들어 척 다운스의 『북한의 협상전략』을 보자. 북한의 협상전략이 독특한 이유는 ... more

Linked at 漁夫의 'Questo e qu.. at 2012/04/29 19:24

... 0.htm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모르는 것은 기사 작성자인 듯. 개혁 개방을 했다간 통치자 자신이 작살날 텐데? http://sonnet.egloos.com/4324297에서 전례도 구경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북한의 위정자들이 '개혁 개방'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에 대해 구경해 왔다. 많은 새 ... more

Linked at 漁夫의 'Questo e qu.. at 2013/05/01 23:59

...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이 정말 그렇게 해 왔나? 자문해 볼 일이다. 漁夫 [1] http://sonnet.egloos.com/4324297. 김정은이 김정일 교시를 수정/부정한 건이 있다는 뉴스는 아직 본 적이 없다. [2] 한국의 GDP는 2012년 기준 1272조 ... more

Commented by ... at 2010/01/23 07:25
김정일 입장에서는 화궈펑 노선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김일성에게 무오류 절대선의 권위를 부여해야 김정일 체제도 안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류를 인정하는 순간 그 권위에 도전하려는 세력들이 생겨나고 결국 더 큰 피바람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일에게 북한은 자신의 권력을 대를 이어 계속 유지하기 위한 도구지 북한의 발전과 인민의 복리가 통치의 목적은 아닐테니까요. 아직도 이밥과 고깃국 타령하는 김정일의 인민에 대한 약간의 측은지심도 악어의 눈물은 아니겠지만 사우디 왕가가 자국민을 생각하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런 김정일과 덩샤오핑을 비교한다는건 사실 덩샤오핑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일입니다. 덩샤오핑은 위대한 정치가로 칭송받아 마땅할 중국의 국부라고 할 수 있지만 김일성, 김정일은...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09:50
김정일은 이미 통치기간이 길어서 단순히 김일성을 받든다기 보다도, 김일성 노선의 계승이 이미 김정일의 업적이자 유산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뒤집기도 더 힘들어졌다고 봐야겠지요.
Commented by dunkbear at 2010/01/23 08:42
sonnet님의 글을 읽으니 소름 쫙쫙 돋습니다.

저렇게 자력갱생의 의지가 없는 나라가 붕괴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으으... ㅜ.ㅜ;;;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09:55
쟤네들 용어로는 저게 자력갱생이죠.... "우리에게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1/23 12:41
(G~ 예방조치) 수백만의 굶주린 난민들이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휴전선을 통과하기 보다는 더 쉬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겠죠. 중국 패.
Commented by 6ㅓ56ㅓ56ㅓ at 2010/01/23 13:10
그럼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에 지뢰와 철조망을 깔거 같군요
Commented by 我幸行 at 2010/01/25 20:07
김성주 집단의 체제가 붕괴되지 않고 영원히 북한을 다스리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BeN_M at 2010/01/23 08:56
역시 수정과 비판의 중요성은 조직이나 체계, 사상의 건전성과 유연성을 위해서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근데 윗동네는 체제에 대해 일단 무슨 말만 하면 목이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는거군요;;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는대로 참 나라 꼴 잘되어 가고 있고...

이래저래 수정과 비판의 자유는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열어두면 뻘소리도 나올 것을 감안하더라도 언로 자체가 아예 막히면 저 꼴이 나는거니..;;

P.S. 근데 윗동네는 저렇게 인간의 의식으로 물적요건을 극복할 수 있다면서 어째 공산주의 국가라고 말하는건지 좀 신기해지는.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1/23 09:28
주체사상은 종교죠.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10/01/23 09:52
주체사상은 세계 10위 안에 드는 종교죠. -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09:53
네, 완전히 때려잡을 정도로 비판할 필요는 없지만(또 종종 해롭지만), 적어도 온건한 비판 정도는 체제의 유연성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인간의 의지력 중시로 나간 것이 소련과 중국이 서로 짝퉁 공산주의(수정주의)라고 삿대질을 하게 된 데 일조했지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10/01/23 09:28
"이게 다 김일성 때문이다" 소리가 나올 수 있어야 인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09:54
뭐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30%쯤은 인정을 해 주어야...
Commented by 네리아리 at 2010/01/23 09:52
그런데 이미 끝장 날대로 끝장 본 나라에서 뭘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잖지 않습니까..ㄱ-
http://pds15.egloos.com/pds/201001/23/20/d0034220_4b5a48472050d.jpg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09:56
미래는 역시 잘 모르는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북한이 과거와의 연속성이 강한 나라였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방향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Clockoon at 2010/01/23 09:59
좀 다른 얘기긴 합니다만, 세계 어디를 봐도 공돌이 눈치없는 것은 마찬가지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38
하하,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의도에서 지도자를 믿고 한 일일 텐데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1/23 10:05
덩사오핑은 마오쩌둥의 '혁명동지' 였지만 김정일은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 왕조시대부터 왕이 선왕의 정책에 조금만 변동을 가해도 신하들이 "열성조의 가르침을 어기지 마소서!"하고 들고 일어나던 전통도 있고.....
김씨왕조가 끝나지 않는 한 변동은 없을 겁니다.
p.s. 미국을 가장 미워하는 나라에서도 선동 포스터는 미국 것을 따라 쓰고 있는 현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0/01/23 11:37
그러고보니 중국은 최소한 '부자세습'은 면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40
혈연이란 건 결별을 선언했다고 주위에서 잘 믿어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더 어렵다고 봐야겠지요. 이건 3대 세습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aeon at 2010/01/23 10:08
"지도자 동무, 수돗물이 마시기엔 더럽다우..."

"반혁명분자, 종파주의자!"

어디 겁나서 일하겠습니까;;; 누구라도 대충 때우고 말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43
저런 사회는 지도자가 워낙 신격화되어 있다 보니까, 의외로 하급간부들 중엔 당에는 개떡같은 놈들이 많아도 '신'은 다르다, 몰라서 그럴 거야 같은 좀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나 봅니다. 문화대혁명 때 나타난 마오쩌둥 숭배는 당사자 홍위병들의 회고를 들어보아도 그땐 진심이었다는 식의 설명이 많더군요.
Commented by 玄武 at 2010/01/23 13:48
유교문화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황제폐하께선 공정하게 처리해주실거야... 마인드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愚公 at 2010/01/23 16:11
딱히 유교문화권이라기보다는 '전위당이론'에서 나타나는 현상 같습니다.

Commented by 음Q at 2010/01/23 11:12
아니 저 마지막 그림은! 미 제국주의 상징 엉클샘이 아닙니까!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1/23 12:55
얼굴은 김아저씨 -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44
I want you for U.S. Army!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10/01/23 11:30
본문에서 다루신대로, 김정일 스스로가 테크노크라트로서의 전(專)이라기보다는, 홍(紅)의 입장에서 '대중동원'과 '속도전'을 주도해온 축이었으니, '홍적인 노선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이 권력에 오르기까지의 경력과 지지기반을 모두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겠죠.

그런 면에서 최소한 북한의 지도부까진 아니더라도, 지도자가 바뀌기 전까진 북한의 개혁, 개방이란 '모델하우스'수준으로 운영하다가, 좀 이득이 생기면 확대를 고려하는 수준에 그칠 것 같습니다.

덧붙여 박철 사건을 다루시면서 '중앙당의 과학담당비서 김환, 농업담당비서 서관히, 정무원총리 강성산'이라는 항의 '서관히'는 오타같아서 부연합니다. ㄷㄷ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10/01/23 11:50
실제로 북한에서 '서관히'라고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서관히도 총살대의 이슬로 사라졌지요.... 북한에서는 사람 이름에 들어가는 '희'를 그냥 '히'로 쓰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1/23 12:39
"히야~ 날 좀 바라봐~" (어?)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33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근에 다시 속도전에 열을 올리는 걸 보면, 이걸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관히는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http://bit.ly/6AVoFy
Commented at 2010/01/23 11: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34
네, 원래는 하나의 글로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좀 길어지기도 하고, 또 중국 사안은 그 자체로 단독의 읽을거리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나은 것 같아서요.
Commented by 해색주 at 2010/01/23 12:26
네비아찌님 말씀대로 북한은 이미 왕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건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저 단명 왕조라고 설명을 할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3:37
문제는 그게 단명할지 아닐지도 가봐야 아는 문제라는거;;;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10/01/23 23:37
얼마 전 헌법에서 사회주의 운운도 삭제했다고 하더군요. 그것 하나만은 솔직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33
헌법에서 삭제된 것은 공산주의고 사회주의는 남아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두 단어를 병립할 경우 공산주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가 되어서 먼 미래의 목표 이상은 아닌 셈입니다.
Commented at 2010/01/23 12: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4:04
HP도 그렇고, 그런 사례는 다소 예외적이라서 인구에 회자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
Commented by 누렁별 at 2010/01/23 12:50
말이나 줘 놓고 말 타봤냐고 하든죠. "16년동안 천리마를 타 오신 승마의 달인 마권 혹부리 선생..."
그런데 수령 마인드가 회장님 마인드와 비슷한 듯 싶습니다. 혹부리 만큼 가카도 창의력 좋아하시고, 뽀글이 속도전을 보니 마이너스의 손 샘숭 이재롱씨가 떠오르네요.
세계 어디서나 '홍'이 사람 밟는 전문이고, '전'이야 자기 할 일만 하는 성향일텐데 그냥 앞길이 어둡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4:07
네, 재벌총수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죠.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사례 중에 큰 조직이 그렇게 운영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Commented by Allenait at 2010/01/23 12:51
진짜 부카니스탄은 왕조국가로군요.

누군가가 현실에 나타난 동물농장이라던데 딱인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newroman at 2010/01/23 13:34
중국이나 남한처럼 경제개발의 목표가 "남들만큼 잘 살기"가 아니고 "이밥에 고깃국'으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이 목표라면, 북한처럼 작은 경제규모에서는 굳이 개혁 개방의 필요성은 적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미 시작한 사업"인, 개성공단 같은 수족관 몇개로도 인민의 빵을 해결하는데는 충분하다고 보고 잇습니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는데는 연간 1~2억불이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물론 예전 글의 덧글에서 개성공단의 수익금이 수령경제로 빨려들어가는 징후가 적지 않다고 하셨지만 "수족관"좀 늘리고 수익금을 인민에게 잘 분배하도록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건 김일성의 유훈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겁니다.
특히 식량 배급 체계를 다시 활성화시키고 싶어하는건 북한 정권 자신이니까요. 배급체계에 대한 관리 감독 정도는......
김정일이나 그 이후 후계자에게 이정도는 기대할 수 없을지요?

말씀하신 "운동"이란 것도 수족관의 수익금을 인민에게 잘 배분되도록 관리 감독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구요.
외부의 물주(!)들 입장에서도 수족관의 수익금이 인민에게 잘 돌아간다면 물주들의 정치적 입장도 좀 편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4:24
마크 블레처의 책을 보면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드러난 노선 경향을 세 가지로 봅니다. 마오쩌둥의 좌파노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노선, 그리고 류샤오치의 개혁공산주의 노선. 말씀하신 것은 세 번째 노선으로 수수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개혁개방 하지 않고서도 제3의 길로 먹고사는 문제 쯤은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것인데, 음... 그것도 제2(수령)경제를 인민경제에 재통합한다든가 하는 정도의 내부개혁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한이 경제규모가 작다는 것은 사실 특구를 운영하는 데 약점입니다. 중국의 경우 중국의 인구나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들어간 외국자본이 적지 않았지만, 북한은 그런 면에서 중국같은 매력은 없거든요.
Commented by newroman at 2010/01/23 21:35
특구를 운영하는데 국가 규모가 작은 것은 분명 단점이지만 남한이라는 물주와 바로 이웃한 나라라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구에서 얻어야만 하는 수입이 그렇게 엄청난 수입이 필요한 것도 아니거든요...

왕조시대에도 인민의 기본적인 빵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이 정권 유지에는 악영향으로 작용했으므로 인민들에게 빵을 해결해 줘야 하는 동기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면, 김정일 또는 김정일과 유사한 노선을 걷는 김정일의 후계자도 특구로 빵 문제 해결이라는 옵션은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어서 질문을 올렸습니다.
Commented by BigTrain at 2010/01/23 14:01
단순히 지명만 받았던 화국봉도 모택동 노선을 추종해야 했는데, 세습받은 김정일에게 아버지의 노선을 바꿀 용기는 없을 것같습니다.

3대째가 되면 좀 달라질 수 있나 모르겠네요. 김정은이 폐제(廢帝)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이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3 14:12
화궈펑의 경우는 버겨운 경쟁자와 싸울 무기가 그 외에 마땅치 않았다는 문제가 있는데, 김정일은 적어도 권력 승계 자체는 도전자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건 개혁을 할 의지가 있었다면 장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Commented by sirius at 2010/01/23 14:22
그쪽 공산당은 이미 신뢰를 잃어서 ......... ㅋ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44
그런 것도 있지만 선군정치 이후 당의 위상이 많이 쪼그라들지 않았나 합니다. 덩샤오핑이 추진한 중요한 개혁 중에는 당의 재건과 시스템화, 그리고 젊은 피 수혈 등도 있지요.
Commented by .... at 2010/01/23 14:32
북한은 중국의 80년대가 아니라 60년대만도 못한 것 아닌지.

모택동 본인조차도 대약진 운동 실패 직후엔 책임을 지고 권력을 일부 내놓아야 했죠. 그가 재집권을 하기 위해 문화대혁명같은 무리수를 두었어야 했었다는 것 자체가 북한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50
중국 정치는 문혁기인 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까지가 60년대 초보다 훨씬 나빠졌으니까요. 즉 말씀하신 시대는 문혁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았던 시기인 셈입니다.
Commented by 瑞菜 at 2010/01/23 14:46
누군가 김일성과 김정일의 관계를 진시황과 호해의 관계라고 설명하더군요.
수령 동지는 그래도 나름 고생하며 인민의 호응을 얻어 공화국을 세웠기에
그래도 가능한 한 틈 날때 마다 인민을 돌아보려 애썼는데
(은근히 수령님의 야행기 에피소드가 좀 있잖아요)
김정일은 처음부터 지도자였어서 그런 관념이 적다고요.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1/23 17:13
'수령님'의 현지시찰/지도 문제가 북한의 '수령경제'와 깊이 연관되어 버리죠...

현지시찰 한 번에 수령님께서 친히 지도하신 '매우 긴급하고 우선순위가 큰 과업'이 하나씩 생겨버리니 물자배정 우선순위가 꼬여버리고, 그 결과 나온 물자생산-배정체계가 속칭 '수령경제'...

5~60년대의 북한 경제 발전의 요인중 하나로 그때 당시 아직까지 수령유일체제가 정립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중간관료층이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많았다는 부분을 들 정도입니다... 물론 수령유일체제가 확립된 후부터는 Zot to the 망~....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40
김정일이 호해보다는 똑똑하지 않을런지,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서 똑똑하고 임기응변에 강하다 뭐 이런 거로는 김정일은 꽤 우수한 편이 아닐까 합니다.
Commented by sanister at 2010/01/23 16:59
아이러니하게도 남북 지도자 대부분이 전보다는 홍에 가까운 스타일처럼 보이네요.
남한에서의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상당히 독특한 것이죠.
김일성의 야행록이라든지, 박정희의 독일방문 등은 "좋은 임금"이라는 신화상에 합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MB께옵서는 똑같이 "처묵처묵"신공을 펼치고 계시지만 이쪽의 결과는 좀..;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10/01/23 23:36
저는 현실정치에 있어서 구성원들의 집단적 기억을 꽤 중요시하는 편인데, 동아시아의 성군상같은 것도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문화적인 배경이 작용하는 것 아닐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39
박은 남한에서는 드물게 전국적인 대중동원운동도 했잖습니까. 새마을운동이라고.
Commented by 한뫼 at 2010/01/23 17:36
과연 신성주체제국, 2009년에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에서 강조하던 정신력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29
정신력 "만" 강조하는 경우 치고 제대로 된 경우가 드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10/01/23 18:50
확실히 김정일체제하에서 홍에서 전으로의 전환은 어려워보이는군요.
그나저나 중국 최고지도부 중에서는 이공계비율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도 '전'의 득세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Commented by 고어핀드 at 2010/01/23 23:39
개인적으로는 북한은 워낙 권력 집중이 심해서 중국처럼 "홍과 전의 갈등" 같은 사태가 설정될수 없는 쪽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배경도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워낙에 복잡한 문제인 만큼, 몇 가지 부가적인 원인이 있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31
김정일에게 있어 홍은 단순히 경제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을 교육하고 동원해 독재권력을 떠받쳐주는 사상전의 핵심자산이니까 쉽게 버리기 힘들겠죠.
Commented by blue ribbon at 2010/01/23 19:21
중국은 경제체제가 자본주의고
정치체제가 사회주의인 국가입니다.
북한같이 전체주의국가는 중국을 따라할수가 없죠.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27
그건 요즘 이야기고, 마오쩌둥이 죽을 때까지는 농업 집단화와 생산수단의 집단소유가 완료된 전형적인 현실사회주의국가로 최고지도자 개인숭배의 수준도 김일성 버금가는 수준이었습니다. 덩샤오핑이 집권하고 나서 모두 바꾼 것이죠. 본문에서 말하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김정일이 따라할 수 있느냐는 주제는 바로, 덩샤오핑처럼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10/01/23 21:29
당대의 북한도 문제지만, 저 정도로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그 후계자의 정책노선 결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 더 위험이 크군요.
이거.... 잘못하면 김정일 후계자가 혹여 등소평식 노선으로 전환하려 해도
거기에 반발한 세력들이 '반정'을 일으키거나, 또는 후계자가 그걸 두려워해
역시 소극적으로 임하다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등의 사태도 각오해야 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28
사실 김정일이 개혁에 소극적이어서 계속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인데, 후계자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딜레마를 안는다고 봐야겠죠. 그가 김정일의 아들이라면 더더욱.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10/01/24 00:02
수령님이 살아생전에 쓸데없이 말이 많았다는 점은 정말 오늘날 북한의 인민들에게 최고의 재앙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지랖 넓게 제대로 아는 것은 없으면서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교시를 남기셨으니 말입니다.

만약 김정일이 개혁개방에 관심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먼저 아버지가 싸지른 X부터 정리해야 할 겁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10/01/24 00:46
자폭하는 게 좀 더 간단하긴 하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37
동감입니다. 현지지도 다니면서 시시콜콜한 소리를 왜 그리도 많이 했는지;;;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10/01/24 00:46
중국은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지도자의 방침이 잘못되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그 반동도 강력했다는 느낌입니다. 그 반동이 등소평의 집권의 원동력이 된 것이겠죠.

그에 비해 북한은 반동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컨트롤하는데 성공한 게 아닐까요.
나라가 작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김일성과 모택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개인적인 느낌은 김일성이 모택동보다 그릇이 큰 결과인 것 같구요.
20세기에 저정도로 완벽한 세습왕조를 만들어 낸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
그 때문에 인민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속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만... -_-;;;;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09:35
마오쩌둥은 만년에 후계자 선정을 놓고 류샤오치, 린뱌오, 왕훙원, 화궈펑 이런 식으로 갈팡질팡하는데, 그에 비해 김일성은 확실한 선택을 한 것 같기는 합니다. 김일성 격하를 막고 기존 방침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는 최상의 선택이 아닐지요.
Commented by 동쪽나무 at 2010/01/24 15:59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요컨데 북한이 개혁을 한다는 것은 최상층 수뇌부가 종교개혁 수준의 의식전환을 하거나
상부구조의 구성원들의 전면교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4 18:21
예.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면 그런 변화가 일어날 경우, 주민들을 새로운 개혁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질적인 종류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사회적 변화와 선전 캠페인 같은 것을 외부에서도 목격할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Commented by 삼천포 at 2010/01/25 03:07
변화는 좋은것이죠

이 세상에 변화하는 모든것들은 순수성은 없어도 살아남으니깐요

사상이든 생물이든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6 09:57
각각의 변화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지만, 변화를 저렇게까지 틀어막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죠. 필요한 변화도 수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vicious at 2010/01/25 16:49
태조 일성께서 새로운 조선 왕조를 열고, 태자 정일이 그 왕위를 물려 받았는대, 어찌 선왕의 뜻과 종묘사직에 반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개혁이니 개방이니.. 너무 우리 편하게 생각하는건 아닐런지..
그나저나 G님은 역시 이런 글에는 관심이 없다는...(퍽!!)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1/26 00:40
관심이 없다기보단, 드디어 정타를 먹고는 찍소리도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피식]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6 09:55
김정일 입장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겠죠. 김일성이 그러라고 김정일에게 물려 준 것이고.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10/01/25 19:07
북한의 그간 행태를 보고서도 주화입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이 북과 대치하는 이 남쪽에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H-Modeler at 2010/01/26 00:38
요즘 그 대표주자로 떠오르는 게선생이라거나, 게선생이라던가, 혹은 게선생이라던가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6 09:55
뭐 이미 별나라로 가신 분들은 어쩔 수 없고, 시의적절한 반론을 제기함으로서 전염을 차단하는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Chameleon at 2010/01/26 17:38
대체 이런 주옥같은 포스터들은 어떻게 구하시는겁니까!! ㅋㅋㅋ
매번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적절한 삽화들이 함께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28 10:06
음, 그건 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건 아닌데요. 대충 어떤 게 있는지는 머릿 속에 기억되어 있으니까, 필요할 때 구글 이미지검색으로 찾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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