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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기근과 국제 사회의 대응

1. 곡물을 주시오. 좀 많이…(1991년)

북한은 원래 김일성의 지도에 따른 주체농법이 세계최고의 농사기술이라고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회원국이 제출한 통계자료를 깊게 검사하지 않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같은 국제기구는 그러한 선전을 위한 좋은 무대였습니다.

79년에 북한은 쌀 면적당 수량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하였다. FAO는 북한이 79년부터 90년까지 진짜 세계 제일이라고 인정하여 세계의 주요 쌀 생산국인 일본, 한국이나 소규모이면서도 대단히 생산성이 높은 호주보다도 북한을 상위에 두었고, 태국보다 3배나 효율적이고 미국보다도 생산성이 훨씬 높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북한은 국민 1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80년대를 통하여 한국을 상회한다고 주장하였다. 91년에 FAO는 숫자를 수정하여 한국을 북한보다 약간 우위에 두었다. 그 직후 북한은 참혹한 기근에 직면하였는데 그런 통계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내던져져 버렸다.[1]

또한 북한은 1990년 공식적으로 1,000만 톤의 곡물(조선중앙연감 기준)을 생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북한이 이렇게 많은 곡물을 생산했다면 남아돌아야 정상이겠지요. 하여간 이 또한 FAO에서 별 논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북한 농업의 현실에 별 관심이 없던 국제사회는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1991년, 북한은 갑자기 세계식량계획(WFP)에 식량지원을 요청합니다. 구체적으로 식량난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발전계획을 지원해달라(?)는 좀 애매한 명목이었죠. 오늘날 우리는 이 해부터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당시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요청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죠.

곡물 1천만 톤을 지원해 달라


참고로 WFP는 2007년 전 세계를 상대로 총 330만 톤, 2008년에는 390만 톤의 식량을 지원[2]했습니다. 북한이 요구한 물량은 WFP의 3년치 사업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지요. 게다가 WFP의 사업 대부분은 긴급구호(EMOP)와 장기구호 및 복구(PRRO)에 할당되기 마련이고, 개발지원(DO)는 많아야 10%, 보통은 5% 이내라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식량원조는 잘 해야 30만 톤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는 2,300만 북한 인구 전체를 2년 먹일 수 있는 양인 동시에 남한이 2000년대 제공했던 식량원조(40~50만톤) 20년치, 1995년 이후 10년 동안 WFP가 북한에 제공한 것(13억 달러, 400만 톤 상당)의 2.5배에 상당합니다.


말이 되든 말이 안 되든 간에 WFP는 요청을 받았으니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WFP의 업무처리절차를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지요. WFP는 지원요청이 들어오면 우선 FAO와 협력해 현지에 평가팀을 파견합니다. 이들은 현지를 시찰하고 식량원조가 얼마나 필요하고 수혜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떻게 이들에게 식량을 분배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일단 계획이 수립되면 이 계획을 근거로 각 국 정부에 기부를 요청하고, 기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앞의 계획에 맞춰 식량을 수송해 배급하게 됩니다.

WFP는 자체 예산을 갖고 있지 않으며 각 사안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부에 의존해 활동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절차는 필수적입니다. 즉 기부국들은 원조받을 나라의 요청이 적절한지를 WFP라는 전문적인 대리인을 통해 평가하는 셈입니다.

하여간 지원의 첫 단계로 북한 땅을 밟은 WFP 조사팀은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91년 초 북한의 식량원조 요청에 따라, WFP는 4명의 기술관리와 FAO에서 파견된 3명의 보조관으로 구성된 팀을 북한에 즉각적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의 업무는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에 대한 평가조사이다. WFP에서 발간한 문서에 따르면, 조사단은 북한의 부족식량을 평가한 결과 특별하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북한에서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평가단은 식량이 부족하지도 않은 북한이 도대체 왜 식량 원조를 요청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굶는 사람도 없고 주민들이 영양결핍상태도 아닌데 북한당국은 1,000만톤이라는 엄청난 양을 요구하였다. 그 보고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 우리들은 식량 원조 시행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가 식량원조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식량원조를 해 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3]

북한은 WFP 조사단에게 식량이 부족하다거나, 북한 농업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혹은 기근으로 고통받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원조를 받을 수 있을 턱이 없지요.

북한은 그 뒤로도 수 년 동안 식량난이 있다는 것을 숨긴 채 식량생산량 9백만~1천만 톤을 계속 주장하면서 허세를 부리다가, 기근이 심화된 1995년 들어서야 국제사회에게 다시 손을 벌리게 됩니다. 1991년에 솔직한 자세로 자국의 문제를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북한 기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2. 북한 기근은 진짜인가? (1997년)

이제 6년 후인 1997년으로 넘어가 봅시다. 북한은 이미 1995년에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WFP에게 지원을 요청해 긴급구호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북한 상황은 여전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 당시 대형 국제구호 NGO인 월드비전에서 일했던 앤드류 나치오스의 회고를 같이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지요. 그는 미국 정부의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이런 문제를 여러 해 동안 다룬 바 있으며 부시 행정부 들어서(2001~2005) USAID 책임자로서 다시 한 번 북한 원조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됩니다.

북한에 정말 기아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혹들이 증폭되기 시작하자 나는 북한을 방문하여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에 비자를 신청할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북한에서 보내온 ‘나중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다”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 지가 염려되었다. 마침내 1997년 5월, 그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월드비전의 다른 직원들과 함께 북한으로부터 비자를 받았다.[4]

오늘날 우리는 북한 기근이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95년에는 북한 정부가 전세계를 상대로 공개적인 식량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려 2년 후까지도 북한에 기근이 발생했는지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답은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적시에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한 국제사회의 실수란 것입니다. 분명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복잡했습니다.


1997년 가을, UN은 NGO 기관들에게 어린이집에 더 이상 약품과 식량을 보내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미 1년 전부터 약품과 식량을 공급하였으나 어린이들의 상황이 호전된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구호품들을 어린이집에 공급하면서 동시에 영양결핍의 심각성에 따라 차별화되는 치료법도 직원들에게 교육되었다. 그러나 교육과 설비는 물론 구호품조차도 어린이들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중립국 보건담당 직원의 어린이집 상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 구호에 지친 NGO 요원들은 서구사회로부터 구호품을 계속 얻어내기 위해 북한당국이 영양결핍 상태의 어린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분개하였다. 그리고 지원된 구호품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하였다. 비관적인 실례지만, 마르크시스트 경제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종종 보잘것없는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서 시설물을 빼내, 자신의 모자라는 임금을 충당한다.[5]

구호물자가 적절히 사용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조를 계속 주어도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열의를 품고 제일 먼저 들어갔던 NGO 요원들은 환멸을 느끼고, UN이 원조 중단을 권고할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치오스는 북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랜 노력 끝에 어렵게 북한 국내를 시찰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북한에서 본 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메시지였습니다.

[황해북도 사리원의] 어린이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주최 측 사람이 조용히 방문을 닫는 것을 보았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문 가까운 쪽에서 그의 동작을 살펴보았다. 또한 그가 어린이들을 방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1살에서 3살에 이르는 어린이들로 갑자기 둘러싸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심한 영양결핍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특히, 모여 있는 아이들 절반 정도는 더욱 심각하였다. 어린이들은 울거나 웃지도 못할 정도로 동작이 둔감하고 멍한 상태였다. 소수의 어린이들은 부종으로 부어 있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머리털이 탈색되고 빠져 있었다. 어린이들은 비타민과 단백질 부족으로 나타나는 영양실조로 인해, 여윈 팔과 다리에는 부스럼이 심한 피부장애를 나타내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행을 빠져나와, 우리에게 공개되지 않은 다른 건물 쪽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재빠르게 문이 닫혀져 있는 3개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순간적으로 들여다본 것이기 때문에 방 안의 어린이 영양상태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접근이 제한된 3개의 방 중 어느 방에도 영양결핍상태 어린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각 방에는 약 10명의 어린이가 있었는데, 주최 측은 건강이 양호한 어린이들은 건물 뒤쪽에 남겨놓고 우리가 방문하고 있는 방에는 상태가 심각한 어린이만을 이동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실들에 대한 진실 여부에 대해, 그리고 북한의 의도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봐야 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이집 방문에 이어 우리 일행은 공식적인 스케줄에 따라 같은 지역 내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다. 마르크시스트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 군대식으로 정렬되어 있는 학생들은 양호한 건강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학생들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복장상태도 그 도시의 다른 어떤 계층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학생들은 짧은 팔의 셔츠와 반바지, 그리고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모두 함께 모여 있어 학생의 영양상태를 한 눈에 파악하기가 용이했다. 어림잡아 약 1,400명의 학생이 모여 있었는데 2~3명 정도만 영양부족 상태를 보였을 뿐이었다. 방금 어린이집에서 목격한 광경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우리 일행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고등학교에서 3블럭 정도 떨어져 있는 어린이집에서 우리는 수단이나 소말리아보다 더 측은하고 건강상태가 안 좋은 어린이들을 만나 보았고, 여기서는 오히려 남한과 일본의 학생들과 비교될 정도의 양호한 건강 상태의 학생들을 만난 것이었다. … 만약 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건강상태가 북한 기아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원조계획은 즉시 중단되고, 모든 구호요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이 목격한 어린이집이 바로 북한의 포템킨 마을인 것이다.[6]

정부 가이드가 끌고 다니면서 보여준 것인 만큼,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과 고등학교에서 본 광경은 둘 다 작위적으로 연출된 것이면서도 전적으로 상충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어 그는 북한 관리들과 가진 회의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북한 농업성 관리들과의 회의에서] 북한 관리들은 질병률과 사망률, 그리고 농작물 작황에 대해 다소 과장된 통계를 인용하였다. - 어린이 사망률은 미국과 유럽보다 다소 낮았다. 만약 북한이 제시한 수치가 정확하다면, 북한은 더 이상 위기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원조사회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은 다음 비행기로 북한을 떠나야 할 것이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기아원조도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나는 반박하였다. 북한 관리들은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정치가 통계 수치에 영향을 주었으며, 제시된 수치들은 다소 오래된 것이어서 현재 북한의 기아 상황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고 말하였다. 농업성 차관에게 식량증산을 위해 필요한 변화와 조치에 대해 논평해 줄 것을 요청했을 때, 식량증산에 필요한 어떠한 변화와 정책도 지금 상태로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고 관리는 분명히 대답하였다. 그리고 관리는 최근 기아상태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자연재해 때문이라는 말을 거듭 반복하였다.[7]

북한은 2년 전부터 국제사회에게 대규모 원조를 제공해 줄 것을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을 불러놓고는 북한은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사망률이 낮다는 체제선전용 엉터리 통계자료를 제시하면서,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훌륭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그 어떤 개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버팁니다. 그런 한편으로 원조는 달라는 것이지요. 그것도 많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내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기아상황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해,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나는 많은 혼란을 느꼈다. 북한 당국이 조심스럽게 연출한 광경, 조작된 통계수치, 그리고 의도적으로 계획된 관리들과의 대화는 내 자신이 목격한 사실에 대해 회의적인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거의 모든 측면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이면에 분명 숨겨진 진실들이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밝혀내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북한 당국은 기아구호를 지지해온 국제구호요원들에게 진정 북한에 긴급 상황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했으며, 결국에는 이들을 기아구호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바꾸어놓는 데 성공하였다. 실제로 모든 중립국 인도주의 지원국들은 북한에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의 논리를 전개하고 교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8]

북한 당국에 의해 의도된 프로그램과 계획된 접근만이 허용되었던 모든 중립국 구호요원과 외국대표단들, 그리고 기술고문단을 괴롭힌 중심의제는 다음과 같다. 작금의 북한상황이 기아상황이라면, 기아가 실제로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북한에 식량위기가 실제로 발생했다면 도처에 산재한 북한의 “만성적 구조결함”에서 기인된 식량부족사태는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다.[9]

나치오스는 북한 기근을 부정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워싱턴 포스트 지면[10] 등을 통해 북한 기근의 심각성을 경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의 눈에도 북한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점은 특기할만합니다.


앞서 1절에서 소개했던 1991년의 '곡물 1천만 톤 원조 요청' 건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나치오스의 경험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991년 당시 WFP 조사팀이 북한에서 식량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북한 농업의 실패,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북한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1991년 당시에 긴급구호 등을 피해 굳이 개발지원(DO) 명목을 원했던 것도, 1995년에 문제를 홍수 탓으로 돌리면서 원조를 요청한 것(WFP의 평가로는 홍수 피해는 문제의 15% 정도에 불과)도 모두 북한 농업 전반의 실패, 즉 집단농장체제와 주체농법의 실패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책임회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98년 UNDP가 주최한 북한 농업 복구에 관한 회의(AREP)에서 한 참석자가 '개혁'을 언급하자 북한 대표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것[11]은 이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식량 원조를 제공하려는 기관들은 기부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건(기근)이 벌어지고 있으며, 기부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없으면 기부를 계속 받을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세금으로 뒷받침되는 정부 원조의 경우에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그런 원조를 뒷받침하는 여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워낙 평판이 좋지 않은 나라고, 그간의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의 속임수를 우려할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기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자신 있게 근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원조를 끌어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WFP와 여러 NGO들은 북한 기근을 입증할 증거들을 입수하기 위해 기를 쓰게 됩니다. 특히 생생한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이 중요하게 됩니다. 반면 북한은 원조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깎아내릴 가능성이 있는 그런 증거를 노출시키는 일은 절대 피하려고 혈안이 됩니다. 북한이 주장한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말을 믿고 눈 감고 도와 달라'는 것인데, 서방 세계에서는 그런 조건을 내걸고는 지원을 모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북한은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습니다.

중립국 구호요원들이 도시와 지방에 구호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방문할 때, 지방당국은 기아로 보여지는 모든 증거들을 길거리에서 완전히 치워버린다. 거지들, 쇠약해진 사람들, 부랑아들, 쓰레기와 찌꺼기들, 그리고 죽어 나뒹구는 시체들까지도 길에서 완전히 제거된다. 한편, 입고 나갈 깨끗한 옷이 없는 주민은 집에 그냥 머물러 있도록 지시받는다. 한국어를 아는 한 구호요원은 NGO대표단들이 도착하기 바로 전, 거리에서 주민들에게 모두 집으로 들어가라는 방송을 하면서 마을을 지나는 트럭 한 대를 보았다고 한다. NGO기관에서 파견된 식량모니터 요원이 그 도시에 머무르는 동안, 당 간부들만이 유일하게 식량배급을 받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한 당국은 하나의 거대한 포템킨 마을을 창조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은 외면한 채 방문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위장된 그런 마을이었다. 중립국 요원들에게 기아를 위장한 지역의 방문을 획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왜 북한 당국이 소수의 NGO관계자들에게만 비자를 허용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이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1998년 5월 북한에 사는 친척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한 조선족은 고향을 방문하고 나서 목격했던 것을 이렇게 알려왔다.

길거리가 이상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예전에 이 거리에는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거리에 나와 있는 북한 관리는 호루라기를 불면서 건물 뒤로 숨으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리고 안전보위부는 강제로 주민들을 길에서 몰아내기에 분주하였다. 그들은 계속 “머리를 숙여라”고 외쳐댔다. 왜 거리가 이처럼 깨끗하고, 사람이 없고 한산한지를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적십자 표지를 단 중국과 남한정부의 자동차들이 내가 서 있는 길 앞을 바로 지나가고 있었다. 거리가 조용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차량들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의 옷차림으로 내가 북한주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안전보위부 요원은 나에게 길에서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12]

과거 소련과 중공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어쩌다 한 번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가는 외국 대표단들을 수없이 속여 넘겨 온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람들도 인정하는 이 분야의 세계 정상급 플레이어지요.

북한이 구호기관들의 시찰 요청을 피곤해 한 것은 분명합니다. 북한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모든 장면이 기획된 대로 연출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한 번 보자고 할 때마다 매번 이런 쇼를 펼치는 것이 그들의 방식입니다. 반면 시찰요원들이야 이런 북한의 연출 틈새로 살짝살짝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을 모아 조각맞추기를 시도하다 보니 더 많은 방문을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서로 피곤해질 수밖에 없지요.



3. 북한의 역습 (2005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북한의 완고한 저항은 여전했지만, WFP는 모니터링이 없으면 원조도 없다는 것을 무기로 북한으로부터 다소의 양보를 얻어냈습니다. 이 이야기도 하면 길지만 전에 다룬 적도 있고 하니 여기선 넘어가기로 하지요.

또한 어린이 영양상태 조사나, 농업생산량 예측을 위한 조사 등 북한 기근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기초조사들을 한 것도 중요한 소득입니다. 이런 것은 정상적이라면 북한이 마땅히 제공해야 되는 것이지만, 이미 보셨다시피 북한이 제공하는 자료는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기근이 진행중인 북한의 어린이 사망률은 미국/유럽보다 낮다!)에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경과를 한 번 살펴보지요. 다음 표[13]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UN을 경유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실적을 정리한 것입니다.

이 표를 그래프로 옮겨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국제원조실적(만 $)

이제 분명히 구분되는 세 시기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1) 북한의 홍수 구호 요청으로 시작해 상황파악에 어려움을 겪으며 소량의 원조가 제공(1995~96)
(2) 구호가 본격화되어 대량의 원조가 제공(1997~2004)
(3) 유엔합동호소(CAP) 프로세스가 종료되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급락(2005~현재)

최초에 왜 원조가 지연되었는지는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04년까지의 원조가 많았던 시기는 북한 기근을 중단시키는데 중요한 성과를 올렸던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입니다. 문제는 2005년 이후입니다. 북한은 2004년 가을부터 유엔의 대북 인도적 통합지원을 거부하고 WFP를 비롯한 국제원조 조직에게 북한 사무소를 폐쇄하고 떠나라고 요구합니다.

북한의 공식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
북한은 대북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유엔기구에 대해 2005년 말까지 현재의 사업을 종료하라는 뜻을 공식적으로 전달하였다.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금년 작황은 매우 좋다고 밝히면서 이제 북한 당국은 모든 주민에게 식량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은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14]

그러나 북한의 작황이 한 해 좀 좋아졌다고 외부의 지원이 필요 없을 만큼의 곡물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정말로 인도적 지원이 필요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우리가 여기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놓고 떠들 필요는 전혀 없겠지요.

여러 관찰자들은 북한이 중국이나 남한처럼 조건 없는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들의 지원을 믿고 모니터링 같은 껄끄러운 조건을 요구하는 WFP를 몰아내거나, 위협을 통해 WFP의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15] 실제로 북한이 UN기구들과 국제 NGO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나가달라고 하던 시기에, 북한은 남북 농업협력위원회를 통해서 남한에게는 비료와 쌀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16]해 옵니다. 또한 북한은 이제 인도적 원조를 중단하고 개발원조로 전환하자는 명분을 달고 있지만, 개발원조 성격의 지원을 제공하는 국제 NGO에 대해서도 나가달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발원조는 어디까지나 명분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은 아일랜드 NGO Concern에게 다 걷어치우고 나가든지, 외국인 직원을 모두 빼고 북한인 직원들로만 업무를 진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북한 같은 나라에서 북한인 직원은 북한 정부의 꼭두각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북한 농업 연구자 권태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북 지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이 왜 필요한지 국민의 동의를 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특히 정부의 대북 지원을 둘러싸고 국민 사이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 만일 우리나라의 대북 지원액이 급속히 증가함으로서 북한이 다른 국제사회의 지원을 중단코자 한다면 우리는 대북 지원 방식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와 공조하지 않고서 우리의 힘만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는 어렵다.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식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원방향을 모색하고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17]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WFP 채널로 북한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모니터링 등 요구조건에 있어서는 공동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조가 WFP를 대체하고 몰아내는데 쓰인다면, 그건 북한 대중은 돕지도 못하면서 우리 부담만 늘리는 꼴이니까요.


참고문헌

[1] (マコーマック, 2004:95-96) 정광민, 『북한기근의 정치경제학』, 시대정신, 2005, p.149에서 재인용
[2] WFP Annual Report 2009, p.8
[3] Natsios, Andrew S. The Great North Korean Famine: Famine, Politics, and Foreign Policy. Institute of Peace Press, 2002. (황재옥 역, 『북한의 기아』, 다할미디어, 2003, p.226)
[4] 같은 책, p.50
[5] 같은 책, pp.60-61
[6] 같은 책, pp.63-64
[7] 같은 책, p.65
[8] 같은 책, pp.65-66
[9] 같은 책, p.229
[10] 워싱턴포스트 1997년 2월 17일
[11]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Famine in North Korea: Markets, Aid, and Reform. 1st ed.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이형욱 역,『북한의 선택』, 매일경제신문사, 2007, p.66
[12] Natsios, 『북한의 기아』, pp.79-80
[13]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및 교류협력 동향," 『KREI 북한농업동향』 11권 2호, 농촌경제연구원, 2009년 7월, p.95
[14] 권태진. “대북 농업지원사업의 과제와 개선방향.” 『농촌경제』. 28.3 (2005), pp.18-19 (각주 4)
[15] Haggard, Stephan and Marcus Noland, Hungry for Human Rights, 워싱턴포스트, 2005년 9월 28일; 권태진, 앞의 글
[16] 권태진, 앞의 글, p.19
[17] 권태진, 앞의 글, p.31,34
by sonnet | 2009/10/31 21:11 | 정치 | 트랙백 | 핑백(3) | 덧글(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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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곡물 거래를 금지하고, 식량배급제 부활을 발표했으며, 농민에게서 곡물을 몰수했다.[1] 이에 맞선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는 앞선 글 북한 기근과 국제 사회의 대응(3절)에 좀 더 자세히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상대 지역에 파견하는 요원의 수가 적당한지는 대단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11/25 09:37

...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니 "많은 월급을 줘야 한다. 따라서 많은 행정비용이 소모"된다는 주장은 garry씨가 입증해야 하는 겁니다. 일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저는 한국이 꼭 WFP 채널을 이용해서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대등한 수준의 분배 모니터링을 WF ... more

Linked at 코리도라스는 실지렁이의 꿈을 .. at 2018/02/20 22:48

... 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저 분이 쓴 논문 찾아봤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Garry옹이었습니다. * sonnet님께서 과거에 작성하신 포스팅입니다. http://sonnet.egloos.com/4266509 북한이 상대를 뭘로 보는지 잘 알려주는 명포스팅이지요. 저런 자들에게도 인도주의적으로 불개입원칙을 고수하면서 무작정 퍼주면 결국 개심한다라. ... more

Commented by Bisu at 2009/11/03 09:29
Ga(rry)난한님. 그럼 안주면 되겠군요.

자존심 아니면 못살텐데 자존심 지키라고 하지요.
Ga(rry)난한님께서는 결국 충분히 주면 된다는 무한루프를 돌리시려고 하시는거
같은데 이미 Ga(rry)님이 충분히 돌려주시고 그 루프는 충분히 깨졌습니다.

그리고 소말리아 예는 에시당초 아프리카 국경이 서방세계의 편의로 막 그어진거라
주도적인 부족도 부족간의 협력도 답없는 상황에서 통제력을 상실해서 그런거지
부카니스탄은 어쩄건 민족적인 동일성에 고깟 식량원조 받는걸로 통제력을 상실할리는
없는 막강한 일인 왕국인뎁쇼? 소말리아 드립도 적당히 치시길.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09:51
Bisu // 그러게요. 그게 우리의 정답일 것 같군요.

"우리는 절대 북한을 믿지 못하겠으니까 쌀 한 톨도 주지 말자."

뭐, 이게 우리 옹졸한 인심인 거죠. 아니면 북한의 미련한 아집이던가.


그리고 38선도 서방세계의 편의로 막 그어진거죠. 소말리아에도 정권 잡은 양대 세력이 있었고, 부족간의 협력도 없는 것은 세계 어디를 보나 마찬가지죠. 대부분 이기적인 사람들 아닌가요?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말이죠. 식량원조 받다가 북한에도 김재규 같은 놈이 나타나서 그 일인을 쏴죽일지도 모르죠.
Commented by 편성국원 at 2009/11/03 11:32
소련이 서방세계라니 이건 좀 신선한 이론이군여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1:54
편성국원 // 서양세계의 오타입니다. 님도 오타 하나 있네'여'
Commented by 야채 at 2009/11/03 12:38
Ga난한/ 우리가 북한보다 더 심했다고 하다가, 기껏해야 사람들 좀 동원한 정도밖에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비자금 이야기로 말을 돌리는군요. 그게 김정일 개인 비자금하고 비교할 수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더구나 입 아프게 따질 것도 없이, 그건 애당초 아무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Ga난한님 스스로도 과거 대통령들의 비자금 등등을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옛날에 그랬던'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해 대면서, 대체 무슨 낯짝으로 "우리도 옛날에 그랬다"는 것을 가지고 북한의 태도를 긍정하려고 하는 겁니까?

구호 물자를 부패한 공무원들이 빼돌렸다. 예, 그런 일이 있었죠. 그럼 그 대책은 무엇이겠습니까? 공무원들이 물자를 빼돌리지 못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공무원들이 빼먹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물자를 보내라고 요구해야 할까요? 어느 쪽입니까?

Ga난한님은 문제 자체를 호도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옛날의 남한과 현재의 북한이 국제사회의 원조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소말리아 이야기는 그냥 황당할 뿐입니다. UN이 식량 원조를 모니터링했기 때문에 나라가 막장이 되었다? 어디, 구체적으로 문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한번 설명해 보시죠. 그냥 아무렇게나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대 봐야 사람들이 설득될 리도 없고, 제대로 설명하는 편이 사람들을 설득하는데도 유리할 텐데요? 자, 설명해 보세요.

더구나 (그게 실제로 중대한 위협인지는 둘째치고라도) 소말리아처럼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은 오히려 구호물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모니터링 없이 무조건 던져주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부패한 세력들이 물자를 거리낌없이 빼돌리게 만들어서 군벌들이 횡행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꼴이 됩니다. 현실적으로 모니터링만으로 그걸 막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그런 식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지 확인은 할 수 있습니다.

Ga난한님의 주장대로라면 오히려 모니터링 없이 무조건 식량을 주자는 것이 북한 주민을 대책없이 소말리아식 재앙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이 되는데, 그럼 이제 남에게만 억지로 갖다붙이던 학살자라는 말을 스스로 들을 준비는 되어 있으십니까?
Commented by ㅇㅇ at 2009/11/03 12:55
그냥 상대하지 마세요. 뭐라고 해도 저놈 결론은 무조건 무제한 지원이라 말해봐도 소용도 없어요. 문제는 딴사람들은 지원에 무게를 싣는데 저 놈은 무조건이 더 중요한지 뻘소리만 반복해대고 있어요.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3:38
야채 // 맞습니다. 소말리아 UN 식량 원조 모니터링을 '허술'하게 했기 때문에 나라가 막장이 되었죠. 제대로 책임감있 게 필요한 기간 동안 모니터링 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그렇게 못한 겁니다. 그래서 소말리아의 15개 파벌들은 손쉽게 지원식량을 빼돌려 세력을 키운거고요. 그래서 결국 소말리아 주민 기아는 해결 못하고 15개 파벌 세력만 커져서 내전이 심해져 다국적군이 개입한 겁니다. 그러나 그 개입도 실패했죠.

북한은 아마도 외부 모니터링 강화하면 마지막엔 각 가정에 완전히 배급된 원조 식량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서 군량미, 비축미로 국가에 기부(?)할지도 모르죠. 이런 것까지 모니터링 하려면 비용이 더 들겠죠. 집집마다 조사를 해야하니... 그 비용은 천문학적일텐데 차라리 그 돈으로 쌀을 주지....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8:24
자존심이 상하는 세력이 당신이 욕하는 그 '박정희', '한국'이라는 국가, 집단, 특정 지도자를 드시는데, 북한 군부와 김정일은 괜찮고 남한과 박정희는 안된단게 말이 됩니까?

왜 배곪는 사람이 아니라 김정일 자존심을 우리가 생각해 줘야 합니까?
김정일이 배곪나요? 엉뚱한데다 가난하니 어쩌니 같다붙이지 마세요.


아니 계속 소말리아 식량문제를 드시는데.
자꾸 말씀드리지만 이미 반 내전상태에서 개입한 겁니다. 91년에 시아드 정권이 무너졌고, UN이 개입한게 그 이훕니다. UN 식량분배가 나라를 망쳤다구요? 제대로 개입도 안했는데 말이 되나요? 이미 91년 11월에 모가디슈에서 난리가 났었고 UN 식량개입은 92년 3월 이훕니다. 뭘좀 알고 쓰세요.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8:28
하나더,
UN구호가 실패한건 50~80%의 구호물자가 이미 판치던 군벌에
'약탈'당해서 그런겁니다. 빼돌린게 아니라.


근거를 대시고 싶으시다면 사실에 기반해서 쓰시죠.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8:34
시간이 지나서 내전이 격화되어서 그러니 어쩌니 하실까봐 한마디 더 붙이자면
92년에 가져다준 20만톤(매년 천만톤 요구하는 북쪽의 2%군요)에 대한 조사입니다.



출처는 93년도 1월판 정세연구 41호, 김상옥씨 글입니다.(pp. 77~85)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8:48
sanister //
그 자존심이 아니고요. 국가의 집권 통제력에 대한 은유임.

김정일도 박정희도 안 괜찮다는 말입니다.

김정일 정권 통제력 잃으면 군벌 세력간 난장판 되어 주민이 더 배곪게 된다는 뜻입니다.

계속 소말리아 식량문제를 드는 건, 그걸로 계속 반문을 하니까요.
또한 소말리아식 식량원조가 실패한 것을 김정일도 봤으므로...

소말리아 15개 세력이 본격 난장판을 만든 건, UN식량지원 이후지요. 님 주장대로 이미 난장판이었다면, 다국적군이 먼저 소탕을 해야 UN이 정상적으로 식량지원을 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았고 다국적군은 나중에 지원식량이 주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15개 세력에게 빼돌려져 세력이 키우며 내전을 하니 개입한 겁니다.

그 약탈 세력들이 그 군벌들입니다.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3 18:52
구호 모니터링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 다국적군은 정전 협정을 강제하는 한편 구호단체의 보호를 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지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나선게 아니죠. 정전 협정 모니터링이라면 모니터링이긴 합니다만.

이미 앞서서 중앙일보 기사 하나 가지고 자기 상상대로 말을 끌어다가 쓴 바가 있는데 이제는 아무 것도 없이 자기 망상대로 쓰는 구만요.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8:54
에드윈 피셔 // 중앙일보는 뭔가요? 금시초문입니다.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3 18:57
이제 와서 당신이 Garry인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암? -_-ㅋ

할 말이 없으니 딴 소리.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8:59
에드윈 피셔 // Garry가 뭔지(누군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Garry 아닙니다.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3 19:04
그래요?

그럼 명제 두개를 드리죠. 둘중 아무거나 하나만 멋지게 증명하시면 전 물러납니다.

[당신은 Garry가 아니다] [소말리아 내전의 격화는 국제 구호활동에 의한 것이다]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19:12
에드윈 피셔 //

[1] 금시초문인데, Garry가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하죠? ㅋㅋㅋ

[2] "UN 이 지원한 식량이 각 파벌의 수중에 들어가 군사용으로 쓰이자 같은 해 12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이 파견"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rts02s139 )
Commented by Bluegazer at 2009/11/03 19:22
그러니까 효과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식량지원일지라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거군요. 이유는 '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해준 선량한 사람이다'라는 알량한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게 실제로는 도리어 역효과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에는 별 관심없고, 일단 지원부터 하고보자. 왜? 난 착한 사람이니까! 딴소리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어쨌건 무조건 "우리는 절대 북한을 믿지 못하겠으니까 쌀 한 톨도 주지 말자."라는 옹졸하고 비정한 인간들! 그치만 난 도덕적인 인간이다! 선량한 인간이다! 원조 만세!

아 토쏠려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3 19:29
그 내용이 소말리아 내전의 격화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나저나 포탈 사이트 백과사전이라니 이건 또 신선하군요. 맞대응으로 엔사이버 백과를 가져와봅니다.

[이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모하메드(Ali Madi Mohamed)를 임시정부 수반으로 내세웠으나, 둘 사이에 권력다툼이 일어나면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로 돌입하였다. 이 때부터 소말리아는 크게 아이디드파(派), 마디 모하메드파, 아토(Osman Ato)파 등으로 3분되어 내전에 들어갔다. 같은 해 가뭄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해 수십만 명이 굶어 죽자, 1992년 4월 국제연합은 소말리아활동(UNOSMO)을 결의하고 1993년까지 2차에 걸쳐 3만 5300명의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군벌 사이의 무력투쟁이 격화되면서 평화유지군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자, 미국을 중심으로 편성된 다국적군도 군사작전에 들어갔다. 1994년 3월 분쟁 당사자 간에 정전 및 새 대통령 선거를 내용으로 하는 평화합의가 성립된 뒤, 국제연합은 소말리아활동을 실패로 규정하고, 1995년 3월 완전 철수하였다. 같은 해 5월 아이디드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으나, 1996년 8월 아이디드가 죽은 뒤에는 아이디드의 아들이 후계자로 추대되었다.]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3 19:36

가져오신 링크에서는 브리태니커 사전이라고 출처를 해놨는데, 실제 영문으로는 이렇게 됩니다.

[In Mogadishu the precipitate appointment of a USC interim government triggered a bitter feud between rival Hawiye clan factions. The forces of the two rival warlords, Gen. Maxamed Farax Caydiid (Muhammad Farah Aydid) of the Somali National Alliance (SNA) and Cali Mahdi Maxamed (Ali Mahdi Muhammad) of the Somali Salvation Alliance (SSA), tore the capital apart and battled with Siad’s regrouped clan militia, the Somali National Front, for control of the southern coast and hinterland. This brought war and devastation to the grain-producing region between the rivers, spreading famine throughout southern Somalia. Attempts to distribute relief food were undermined by systematic looting and rake-offs by militias. In December 1992 the United States led an intervention by a multinational force of more than 35,000 troops, which imposed an uneasy peace on the principal warring clans and pushed supplies into the famine-stricken areas. The military operation provided support for a unique effort at peacemaking by the United Nations.

In January and March 1993 representatives of 15 Somali factions signed peace and disarmament treaties in Addis Ababa, but by June the security situation had deteriorated. American and European forces, suffering an unacceptable number of casualties, were withdrawn by March 1994. The UN force was reduced to military units mainly from less-developed countries, and the clan-based tensions that had precipitated the civil war remained unresolved. The remaining UN troops were evacuated a year later. Over the next few years there were several failed attempts at peace as fighting persisted between the various clans; the SSA and the SNA continued to be two of the primary warring factions.]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9:37
뇌내망상 쩌네요. 그럴리 없다라뇨. 아주 역사왜곡을 하시지 말입니다?
모르면 사실을 공부하고 쓰라구요.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9:41
제시해 주신 daum 백과사전에 잘 적혀 있네요
"1991년 1월"
소말리아 반군 단체인 통일 소말리아 회의(Union of Somali Congress/USC)는 1969년 쿠데타 이후 일당독재와 족벌정치를 계속해 오던 소말리아 혁명사회민주주의당(SRSP)의 바레 정권을 축출했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한 USC 내에서 마흐디 대통령과 아이디드 의장 간에 대립이 격화되어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1992년 3월 정전협정에 조인했고"
, 소말리아에는 국제연합 소말리아 활동(UN Operation in Somalia/UNOSOM) 본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파벌간 대립으로 내전은 계속되었다."

누가 봐도 내전 이후 지원이 된거 아닙니까? 시간 순서가 눈에 잘 안보이시나봐요.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9:45
게다가 북한은 김정일 퇴진해도 소말리아처럼 나라가 조각조각 안납니다.

남한, 중국은 직접개입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고서 내부적으로 해결되도 쪼개지진 않아요.


소말리아는 부족간 대립이 15개 파벌의 주요한 원인인데, 북한엔 그럴게 없잖습니까.
제발 식량흐름보고=국가막장화라는 뇌내망상좀 깨시죠.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3 19:56
거기에
국가집권세력에 대한 은유?

자꾸 말 돌리시는데
그 국가집권세력이 못먹냔 말입니다. 진짜 불쌍하게 못먹는 사람들 놔두고 엄한 사람들한테 가난하니 어쩌니 하지 말라구요.

하나만 대답해 보세요. 챙겨줄게 집권세력입니까? 아니면 북한 인민입니까?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3 22:10
Bluegazer // 아니요. 제가 보기에도 현실적으로 북한 식량지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런 인식이면... 북한에 대한 우리의 불신과 반발이 커서요. 그렇다고 그게 우리나 북한이나 잘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


에 드윈 피셔 // UN 지원식량이 각 파벌의 수중에 들어가 군사용으로 쓰이자 다국적군을 파견했는데, 그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지 약화되나? 님이 인용한 엔싸이버 백과에도 UN 소말리아 지원 활동 했어도 "군벌 사이의 무력투쟁이 격화되"었다고 나오네. 그리고 평화유지군 잇따라 공격 받자, 다국적군도 개입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제연합은 소말리아활동을 '실패'로 규정하고 완전 철수했고...


sainster // 그럴리? 무슨 그럴리? 제대로 명시해!

"소말리아에는 국제연합 소말리아 활동(UN Operation in Somalia/UNOSOM) 본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파벌간 대립으로 내전은 계속되었다."
누가 봐도 지원 이후 내전이 여러 파벌간 대립이 되었네. 눈에 잘 안보이시나봐요.

북한은 김정일 퇴진해도 소말리아처럼 나라가 조각조각 안난다고? 님 신임?
내부적으로 해결되도 쪼개지진 않아요? 님 예언자임?
북한엔 그럴게 없는게 아니고 군벌 세력들이 있잖소.
님이나 예언 뇌내망상 좀 깨시죠.

국가집권세력 아니고 국가 집권 통제력임. 보고도 못 따라 쓰남? 세력과 통제력은 다른 말임. 중앙의 명령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국가라면 대내외 자존심이 떨어져 군벌이 난장판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임. 말 돌리는 게 아니고 처음에 그런 의미로 썼다는 뜻.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00:15
글자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머릿속에서 문장의 자동 해석이 되는 모양인데. 본인은 Garry가 아니라지만, 세상에 저렇게 독해를 하는 사람이 두명씩이나 있다는 얘길 어떻게 믿으란 걸까...



첫 UNOSOM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게 UN이나 구호 활동이 사정을 악화시킨거라는 얘기가 됩니까? 전혀.

군사용으로 쓰여서 다국적군이 파견되었단 소리는 다음 백과서나 나오는 소리. 다음 백과에서 원문이라고 주장하는 브리태니커 사전의 해당 항목에 전혀 그런 대목이 없고, 그걸 일부러 눈에 띄도록 길게 긁어서 가져왔는데...도 확인을 못하시다니요. ㄲㄲ

다국적군 파병 대목만 재 갈무리하면,

[Attempts to distribute relief food were undermined by systematic looting and rake-offs by militias. In December 1992 the United States led an intervention by a multinational force of more than 35,000 troops, which imposed an uneasy peace on the principal warring clans and pushed supplies into the famine-stricken areas. The military operation provided support for a unique effort at peacemaking by the United Nations.]

소말리아 사정이 악화되어 식량이 탈취당하고 구호단의 신변이 위협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가뭄의 원인인 내전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정전을 강제하고 구호단과 구호품의 무장 보호를 위해 다국적군이 파견된 것이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 ㄲㄲㄲ

더군다나, 다음 백과서조차도 내전의 격화를 구호 활동 탓에 돌리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두 세력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파벌간 대립으로 내전은 계속되었다.]

[6월 다국적군은 파키스탄 병사가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아이디드파를 공격해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소말리아인들은 UN과 미국에 대한 반발로 다국적군에 대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4 00:45
진짜로 어떤 과정이 됐는지 찾아 보라구요. 추측해서 적어내지 말고. 진짜 미치겠네.
UN이 보고한건 50~80%가 약탈된건 누가 가져간겁니까? 제시자료 pdf라도 떠드리리?
과정을 모르면 말을 마시라구요.
91년에 이미 북쪽에서 이사크족이 독립선언 했고, 남쪽에선 부족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럴리 없다는 뇌내망상좀 버리시죠?

거기에 북한에 군벌이 있다구요?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군벌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무장세력을 갖춘 집단을 뜻합니다. 북한 군부 내 파벌이 있다고 하면 이해를 해도, 군벌이 있단건 정일이가 정신줄 놓았단 소리밖에 안되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김정일이 퇴진한다고 해서 함경도 무슨사단, 평양 무슨사단, 휴전선 근처 어느사단 이렇게 분리될 것 같습니까? 갈라질 요인이 없는데 예언자는 아니더라도 충분이 안 쪼개질수 있다는 예측은 못하나요?
엘빈 토플러는 무슨 신쯤 되나?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4 00:56
자그마치 "상상"을 사료적 "근거"로 쓰시는 분에게 경과 과정을 '그대로' 옮겨서 적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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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드 바레정권은 91년 1월 반군연합세력에게 축출되었고, 시아드 바레는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이러한 상태는 이디오피아도 마찬가지로서 하일레 맹기스투 정권 역시 부족반란군에 의해 축출됐다.
이후 소말리아는 급속히 무정부상태로 돌입하였다. 무정부상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 소말리아에 어떤 성격의 정부가 들어서는지 대해 관심을 갖는 어떠한 국제세력도 없어진데다가, 군사독재의 철권통치하에서 어떠한 대항정치세력도 국내에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부족간의 무정부적인 주도권 경쟁상태가 벌어졌다. 소말리족은 6개의 부족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부의 이사크족은 독립을 선언했고 중남부에서는 부족간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후 부족에 뿌리박은 무장세력들이 주도권을 잡기위한 내전이 벌어졌다. 내란상태하에서 수리시설 등 농업기반이 파괴되고 기근이 심화되었다. 91년 11월 이후 수도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내전이 격화되자 매일 1천명이 굶주림과, 질병, 전쟁으로 죽어갔다. 기근은 특히 내전이 극심한 서남부가 심하고 금세기 최악의 가뭄이 겹쳐져 92년에만 30만명이 사망했다. 굶주리는 사람은 전 인구의 1/3인 2백만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92년 3월 유엔 구호활동이 시작되어 20만톤의 구호물자를 제공했으나 50~80%가 전투세력에 약탈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거의 일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굶주림과 기아, 특히 어린이들의 기아로 인한 참상과 사망이 외신보도를 통해 전세계에 보도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태에서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소말리아에 대한 인도적 원조물자의 안전한 제공을 위한 유엔군 파견을 안보리에 제안하였고, 유엔 안보리는 12월 3일 만장일치로 군사개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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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모르면 찾아보고 지껄이든가. 역사적 사실이 뇌속에서 창조되나요?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4 01:24
처음에 하신
"저는 가난하게 자라봐서 그런지 북한의 한심함(?)이 나름 이해됩니다. 완전 나몰라라식 자포자기가 아니면, 그 상황에 닥치면 대게 그러게 됨" 중에서

여기 중앙집권이랑 군벌이 도데체 어디있나요? 이게 말돌리기란 겁니다.
소말리아의 예를 들어간 이후에 군벌로 쪼개져서 고통당한다 징징징 하시는데,

그 소말리아 예시가 틀렸다구요.


북한 핵보유국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군벌이 있다고 쳐도, 국제사회가 바로 개입될 수 밖에 없어요. 군벌로 쪼개져서 이리 저리 치일 일이 없단겁니다. 바로 타국군 들어와서 진주하지.
이건 당연합니다. 미국이 핵 때문에 바로 뛰어들려 할테고 중국은 미국에 대해 선제권 잡으려고 또 바로 뛰어들려고 하겠죠.

이 개입에서 한국이나 미국이 주도권을 잡으면 북한인민에게는 크게 다행일 것이고(최소한 먹기는 할테니까요), 중국이 가장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동시에 최악의 케이습니다. 중국도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최소한 북한인민을 먹이기는 하겠죠.

중국이 북한을 차지하더라도 남한이 있는데 자기들이 진주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이 케이스더라도 북한 인민 입장에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식량의 면에서는 상태가 호전되면 호전됐지 못하진 않을거란 말입니다.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4 01:36
그건 그렇고 단순한 생각에 신이나 예언자쯤으로 대해주시니 황송하기 그지없네요.
'군벌'이라는 망상이 안 탄생할 수 있단 의견이 조금 충격적이셨나보죠?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10:37
에드윈 피셔 //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는 증거를 대시오. ㅉㅉㅉ
도대체 님과 Garry와 무슨 일이... 정신과 병원에 가보시라능 ㅋㅋㅋ
"UN 이 지원한 식량이 각 파벌의 수중에 들어가 군사용으로 쓰이자 같은 해 12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이 파견"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rts02s139 ) 다음백과사전의 오류인가 보군요. 다음백과는 없는 소리를 지어 내고. 다음백과에 따지시라능ㅋㅋㅋ

sanister // 소말리아 예시가 북한에 딱 맞다고는 안했음. 북한도 소말리아에서 식량원조 실패하는 것을 봤겠다는 거죠.
예언 뇌내망상자님 ㅋㅋㅋ
Commented by 거참... at 2009/11/04 11:41
다음백과사전에 오류가 있는건 아니지요 '각 파벌의 수중에 들어가' 사이에 약탈이란 단어가 빠졌을 뿐인거죠.

소말리아의 내전이 격화되면서 아사자나 국외로 탈출하는 난민이 급증하자 세계의 구호단체들이 구호활동을 펴지만 군벌들은 이들의 구호물품들에 대한 배분권을 주장하고 구호단체들의 활동을 통제하려 했으며 난민들을 돕고 싶으면 자기들에게 자금을 원조하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통해 구호단체들의 구호활동을 방해합니다.(누구의 행태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국제여론은 소말리아 내전종식과 구호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결국 92년 1월에 UN은 무기수출을 금지하는 733결의안 및 4월 휴전감시단 파견과 구호식량을 지원하는 751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하게 되는거죠.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11:54
거참... //
에디윈 피셔님의 "군사용으로 쓰여서 다국적군이 파견되었단 소리는 다음 백과서나 나오는 소리. 다음 백과에서 원문이라고 주장하는 브리태니커 사전의 해당 항목에 전혀 그런 대목이 없"다는 언급을 보고 하는 말임. 이말은 다음백과가 없는 말을 했다는 소리잖소.
Commented by sanister at 2009/11/04 13:41
자기가 쓴글은 기억이 잘 안나나보지? 그래도 자기가 뭐라고 지껄였는지 보고는 말해야지.
"북한이 소말리아를 봤으니 거기서 학습했으므로 북한은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거다"
란게 그쪽 핵심근거 아뇨?

그 근거가 틀렸다는 사실을 제시해 주니까,
이젠 언제 딱 맞냐는 소릴 했냐는 말을 하시네.
어이구 핵심근거까지 버리시려구? 장하네.


벌써 몇번쨰 말하는건진 모르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논거로 들고 싶으면 그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쓰란 말이다.
다음백과가 없는말을 했느니 어쩌니 헛소리 지르지 말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상상을 근거로 삼으니 망상자라고 하지. 딴게 망상잔가?
'예언자님 ㅋㅋㅋ'정도면 이제는 군벌이 안 생길거라는걸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벅찬 모양이네. 그냥 버로우 타시죠.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13:46
sanister // 예언 드립치는 님과 무슨 토론이 가능하겠소?
님은 예언이나 열씨미 하세요. 예언 뇌내망상자님. ㅋㅋㅋ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18:50
선생님, 뇌내망상이라는건


[국 제연합 소말리아 활동 본부가 설치된 후 기존 정권을 잡은 양대 세력이 약화되면서 15개 파벌이 생겼고 서로 UN 지원식량을 빼돌렸습니다.]

[그러나 소말리아에는 그냥 무조건 식량 지원한 게 아니라 UN이 분배과정을 통제하겠다고 나오면서 소말리아 기존 정권의 통제력이 상실된 거고요. 그러다 난장판 된 거죠.]

[UN 다국적군이 소말리아에 개입한 게, UN 지원식량을 빼돌려 파벌이 세력을 점점 키워서 내전을 격화시켰고 결국 주민에게는 제대로 식량지원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UN의 식량지원은 결과적으로 소말리아 주민의 기아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내전을 폭넓히고 연장시키도록 만든 꼴이죠.]


...따위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구요. '포탈 사이트 백과사전'의 내용으로는 충분한 수준인 다음 백과를 탓할게 아니라 그 내용을 자기 쓰고 싶은 대로 곡해하여 받아들이는 당신께서 모든 문제의 시초라고 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19:55
에드윈 피셔 //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는 증거를 대시오. ㅉㅉㅉ

도대체 님과 Garry와 무슨 일이... 정신과 병원에 가보시라능 ㅋㅋㅋ

"군사용으로 쓰여서 다국적군이 파견되었단 소리는 다음 백과서나 나오는 소리. 다음 백과에서 원문이라고 주장하는 브리태니커 사전의 해당 항목에 전혀 그런 대목이 없"다는 님은 다음백과에 따지시라능ㅋㅋㅋ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0:43
붙여놔줬으면 됬지 뭘 더 바래요? 다 가난한님이 쓴 댓글이며 가난한님이 인용한 백과사전 그리고 그 원전인데. 그쪽이야말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혼이 나가서 의미없이 복사 붙여넣기만 하나요?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21:04
에드윈 피셔 //

같은 말 반복하기 싫다는 뜻...

저거나 빨랑 해명해보시오. 하나씩 따져 볼까요?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는 증거를 정확히 대시오. ㅉㅉㅉ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1:16
뭘 더 하나 하나 따진다는 게지요?

[식량지원 받으며 정권의 통제력이 상실되자 15개 파벌이 UN 지원식량 각축전을 벌인 결과, 더욱 심각한 난장판이 됐습니다.]

[그러나 소말리아에는 그냥 무조건 식량 지원한 게 아니라 UN이 분배과정을 통제하겠다고 나오면서 소말리아 기존 정권의 통제력이 상실된 거고요.]

그리고

[UN 다국적군이 소말리아에 개입한 게, UN 지원식량을 빼돌려 파벌이 세력을 점점 키워서 내전을 격화시켰고 결국 주민에게는 제대로 식량지원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얘기 끝난 것 아닌가요?

지금 가난한님의 모든 원천 근거지인 다음 백과 스스로 원전이라고 주장하는 브리태니커 사전 내용을 갈무리해서 가져왔는데, 다음 백과는 믿고 브리태니커는 안 믿겠다는 거죠 ㄲㄲ 곡해가 안되니까 현실 부정.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21:21
에드윈 피셔 //

거기에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고 어디 나오나요?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1:26
[UN 다국적군이 소말리아에 개입한 게, UN 지원식량을 빼돌려 파벌이 세력을 점점 키워서 내전을 격화시켰고 결국 주민에게는 제대로 식량지원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주민에게 제대로 식량지원이 안되었기 때문에 직접 다국적군이 투입되었다는 설이지요.

지금 당장 본문에서 다루는 북한 문제하고 연결을 시켰을때, 당연히 당신이 모니터링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지요.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21:32
에드윈 피셔 //

내가 하지도 않은 말 만들어 내지 마시오.

거기에 정확히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고 어디 나오나요?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1:36
하지도 않은 말이라니, 자기가 달아놓은 댓글 자체가 그 소린데...

주민들에게 식량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국적군이 투입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문장을 정확하게 가져오라니, 그럼 당신이 달아놓은 댓글들, 가령

[님이 북한 지도자라면 국가가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소말리아 처럼 되는 뻔한 길을 택하겠소?]

등은 댓글은 무슨 뜻으로 달아놓은 내용이지요?

당신 스스로 다국적군의 개입을 모니터링과 동일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어냈다고 우기는 군요. 아니면 댓글 자체가 본문하고 관계없는 뻘플이었을 뿐이라고 우기시렵니까? ㄲㄲㄲ
Commented by Bisu at 2009/11/04 21:39
글 인용하는 폼새나 결국 말하고 싶은 이야기나 아무리봐도 가난한씨는 Ga(rry)난한씬데? 잘못된 정보 인용해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꼬라지도 너무 닮았군요. 다른사람인척 너무 애쓸필요 없습니다. 다 알걸랑요. 첫글 문장 사이사이 띄워봤자 그 다음부터 개리씨 냄새 다납니다. 아이피는 프록시 쓰셨나요?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1:54
아- 쿨타임이 길어졌어요 Ga난한 선수 동요하고 있어요

'주체'할 수 없는 쪽팔림을 미처 삭이지 못하고 모니터를 부여잡아 시일야방성대곡을 하시는 중이시라면 이해하겠습니다, 만 설마 DC 모씨처럼 한달 뒤에 댓글을 달아 논파 선언하시는 그런 분은 아니시겠지요...
Commented by 가난한 at 2009/11/04 22:11
sonnet // sonnet님께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이 포스트 제 덧글 밑에 달린 에드윈 피셔님의 덧글들만을 '모두' 지워주십시오.

왜냐하면, 에드윈 피셔님은 ...

1) 제가 하지 않은 말[1]을 자기 임의로 만들어서 제가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주장을 할때는 전개를 넓게 펼쳐가며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된 표현을 지적할때는 임의로 자기 좋을대로 만들어서 공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에드윈 피셔님은 범해 놓고 계속 제가 그런 말을 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말 할 생각도 없었는데, 다른 독자들에 오해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2) 제가 Garry가 아닌데, 저보고 Garry라고 맘대로 지명[2]하고 있습니다. 전 도대체 Garry가 뭔지, 누군지도 모르는데, 급기야 저한테 Garry가 아니라고 증명까지 하랍니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입니까?

3) 에드윈 피셔님은 명백한 거짓[3]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rts02s139 ) 분명 브리테니커에 "UN 이 지원한 식량이 각 파벌의 수중에 들어가 군사용으로 쓰이자 같은 해 12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이 파견되었"다고 나오는데 거짓[3]을 말했습니다.

제가 계속 항의를 해도 스스로는 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sonnet님 블로그이지만 저를 Garry라고 부르[2]고 거짓[3]을 말하고 억지[1]를 쓰는 덧글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1] 에디윈 피셔님 제가 "모니터링이나 하잔답시고 다국적군이 파견됬다"라고 했다고 함.
[2] "이제 와서 당신이 Garry인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암? -_-ㅋ "이라고 함.
[3] "군사용으로 쓰여서 다국적군이 파견되었단 소리는 다음 백과서나 나오는 소리. 다음 백과에서 원문이라고 주장하는 브리태니커 사전의 해당 항목에 전혀 그런 대목이 없"다고 함.
Commented by 에드윈 피셔 at 2009/11/04 22:17
영문에는 그런 대목 없다니까요. 직접 퍼다 줬잖아요? 링크가 필요해요?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553877/Somalia/37757/Civil-war

이제는 날 피하고 sonnet님께 말을 돌리려고 애쓰는군요. 내 말에나 대답하시죠.
Commented by 궁극사악 at 2009/11/01 19:18
허세의_극의.txt 인가요-_-;;
Commented by afsd at 2009/11/01 19:32
미친놈에겐 불도저가 답이죠. 그런 점에서 이명박 각하랑 김정일은 상극일지도...
Commented by 少雪緣 at 2009/11/01 19:39
갑자기 생각나는게 2+2는 6이아니라 5라는 공산수학이...(먼산)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11/01 21:00
저러다가 언젠가 "말로 하면 안들으니 주먹 맛을 보이는 수밖에 없지. 우리 쌀들을 이제 찾으러 갈 때다." 하면서 폭풍호 땅크들이 임진강을 건너는 날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11/01 21:12
겁도 없이 강 건너 서리 온 아색히들은 아저씨의 워커 발길질에 모두 고 to the 자
Commented by umberto at 2009/11/01 21:52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일단 군수공장들의 가동도 쉽지 않고 심지어 기름도 모자라고 배고픈 장교와 사병들이 군용기름까지 팔아먹고 있기 때문이죠. 하다못해 일반 보병의 기동조차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병의 행군도 최소한 식량과 군화는 지급이 되야 가능한데 북한은 이것도 안됩니다.

미사일이나 대포 정도나 예외죠.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11/01 21:12
뭐 최근에는 농장엔 쌀이 넘실대는데 아무도 추수할 생각을 안 해서 로동신문에서 추수전투 독려 기사를 잔뜩 싣고 있다고 하니.... 휴우....

김정일 입장에선 데리고 있어봐야 국력은커녕 뭔 짓을 저지를지 도통 믿음이 안 가는, 짐밖에 안 되는 인민이니 끝까지 개허세 플레이가 가능한걸지도 모르지요. 쩝.
Commented by (sic) at 2009/11/02 13:24
사실 인민은 대부분 데코레이션이고 대포동과 탄두가 본체..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5:36
농민들은 자기 것인 텃밭에만 노력을 기울이고, 김정일은 군대를 보내서 곡식 빼돌리기를 막으려고 하고, 협동농장 체제를 손봐야 근본적인 구조가 개선될텐데 이건 또 손댈 생각이 없고 그런 식이죠.
Commented by 모던뽀이 at 2009/11/01 22:27
국내에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다 저가로 팔면 적은 돈이라도 수익이 있고,
북한도 무조건적인 지원에 기대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렇게 안하려나?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11/01 22:38
국내 쌀가격이 국제시장에 비해서 한 6배 정도 차이라고 하지요...

국내쌀을 저가로 구매할만한 구매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식량위기 같은게 없었을 겁니다.... 그냥 국제시장에서 구입하면 끝나거든요.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9/11/01 22:41
젠장 우리 보고 대체 어쩌라는거죠?
Commented by 돈키호테 at 2009/11/01 22:51
이럴 땐 과감하게 부카니스탄이 무기 팔아먹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어떨까 합니다.
물론 아프간에 가 있는 다국적군(=미군)은 죽을 맛이겠지만요.

한 십 년 지나면 장사정포는 있는데 포탄은 없고 AK소총은 있는데 총알은 없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요. 기름도 팔아먹는데 총 팔아먹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5:39
두 번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제재로 북한의 무기수출 대부분이 금지품목이 되었습니다. (UN안보리 결의 1718/1887) 이건 핵문제와 바로 결부되어 있어서 북핵문제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이상은 손댈 수가 없죠. 사실 안보리 결의에는 게 정권에는 중요하면서, 인민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걸 겨냥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11/02 00:14
잘못된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니 문제가 안 생길 리가 없잖아...;;;
역시 저 위의 "나에게의 그 어떤 변화를 바라지 말라" 짤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5:45
네, 사실 급한 상황을 넘기자 주민통제를 다시 강화하려는 분위기도 있고, 김정일이 선결조건이 갖추어지면 본격적인 개혁에 나설거라는 주장은 솔직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Commented by 저련 at 2009/11/02 00:57
국제원조실적은 연속 계열이 아니므로 막대그래프 표시가 나을 듯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드는군요. 원조곡물을 고기용 가축 사료로 전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친구들이 평양측일 듯 한데, 그에 대한 추정은 없는 것입니까? 부패한 하급 관리들 말고, 체제 차원에서. 육류를 체제 중심층에게 충분히 공급하는 것은 체제 유지의 필수 조건이기도 할테니 말이죠. 말 그대로 인간 사냥을 일삼은 아스떽과 같은 역사적 사례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료로 전용된다면 곡물은 얼마든지, 사람이 그냥 먹는 것의 10배 이상 대량으로 소모될 수 있겠고 말이죠. 고견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11/02 08:41
소비에트의 경우 수입 곡물은 식용으로 하고 자국산 곡물을 사료용으로 돌린 전례가 있습니다. 단, 그래도 얘들은 어쨌거나 "수입"이었지 "원조"는 아니었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3:46
* 그래프는 말씀하신 대로 고쳐 봤습니다.

* 제가 본 중에서는 축산물 생산에 곡물이 너무 많이 사용되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문헌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농촌경제연구원 김운근의 『북한의 곡물생산량 추정: 1993년 작황을 중심으로』를 보면 북한의 (1) 북한발표 육류생산량을 기초로 사료소요량을 역산, (2) 대충 비슷한 식생활 수준이었다고 생각되는 1960년대 남한의 육류소비량을 참고해 북한발표 육류생산량(의 과장분)을 조정 같은 방법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후에 농촌경제연구원 쪽에서 나온 추정치(http://pds16.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f621747e.png )를 보면 사료용곡물 수요가 더 줄었던데,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북한의 축산업 규모가 90년대보다도 더 줄었다고 판단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p.s. 트랙백 보내 주신 것은 잘 봤습니다. 북한 기근 이야기만 대충 정리되면 이어 답글을 올리겠습니다.
Commented by SKY樂 at 2009/11/02 04:42
국제원조실적 그래프를 보는 시각에 따라 한쪽은 북한의 이중적인 원조요청과 실적에 대한 국제사회의 환멸로 받아들여질수도, 또 다른 한쪽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명박정권의 악의적인 북한 고립정책으로 받아들여질수도 있겠네요.
Commented by ... at 2009/11/02 05:29
지들이 자초한 일이니...
Commented by Bisu at 2009/11/02 12:20
급락 기간중 무슨일이 있었나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죠 뭐. 미사일 발사에 핵실험에...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3:34
미국과 일본의 원조가 두 번째 시기에 이루어진 저 국제원조의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 번째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합니다. 굶겨죽일 거면 처음부터 주질 않아야겠죠.
Commented by ... at 2009/11/02 05:29
더 이상 뽀그리 쌀셔틀 노릇하는건 때려쳐야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3:44
저는 기본적으로 식량원조를 하는 것은 찬성입니다. 다만 '묻지마 원조'로는 원조를 뒷받침할 정치적 지지를 계속 유지하는 게 어렵다고 보는 정도죠.
Commented by CAL50 at 2009/11/02 11:24
....트랙백에는 어째서인지 일본 횟집광고가....
(누가 일본까지 가서 문어회를 먹을까... 그 전에 왜 여기?)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2:38
이런, 삭제했습니다.
Commented by sinis at 2009/11/02 11:40
잘읽었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혹시 북한이 한해 필요로 하는 곡물의 양(추정치)과, 한국과 중국이 주는 원조에 대한 데이터가 있으면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두가지를 비교해보면 한국과 중국의 원조가 "WFP를 몰아내거나, 위협을 통해 WFP의 굴복을 강요"하는데 쓰이고 있는지를 알수 있을거 같아서 그럽니다.

필요곡물의 양 가운데 한국과 중국의 원조량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 WFP에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적어 위협을 가할수 있을 것입니다만, 적다면 위협할 거리가 안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국의 원조와 한국의 원조를 비교해봐야 하는 것이, 이것이 훗날 북한 붕괴시 중국의 북한영유권 주장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항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ed by Bisu at 2009/11/02 12:19
굳이 비교 안해도 WFP에게 곡물좀 주십셔 하다가 표준지표가 아무것도 나아진게 없는 상태임에도 갑자기 필요없어! 하고 나선거고 그 기간중 변인은 한국과 중국의 원조뿐인데 얼마나 퍼줬나 데이터가 필요하나요? 이건 상식적인거고...

그리고 원조 해줬다고 땅덩이 먹어봐야 골치거리만 늘지 도움이 되진 않습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꽁으로 원조 주는게 아니라 빛 처리 하고 있다고 하던데.
Commented by JJJ at 2009/11/02 12:41
변인이 어째서 한국과 중국의 원조뿐입니까?
WFP의 원조를 좌우하는 요인은 한국과 중국의 원조 말고도 아주 많습니다.
WFP의 원조를 몰아내는데 한국과 중국의 원조가 쓰이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치적인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일단 Sonnet님이 제시하신 데이터로는 앞으로는 원조를 할때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는 등 WFP와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WFP를 몰아내는 데 이용될수 있다고 주장을 할수는 있지만 2005년 이후 WFP의 원조가 줄어든 것이 한국과 중국의 원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Sonnet님이 주장하시는 것도 전자쪽인것 같구요.)
Commented by sinis at 2009/11/02 13:28
bisu / 변인은 한국과 중국의 원조 외에도, 북한의 식량생산 증가(그럴리는 없지만...), 혹은 인구 감소(아사로 인한 인구감소로 먹는 입도 감소...) 등도 있을수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곡물의 양(추정치)를 통해 부족분을 확인코자 한 것입니다.
그 부족분과 비교하여 한국과 중국의 원조량이 많은 부분(등수가 아니라 %로)을 차지하고 있다면 소넷님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보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원인때문에 강경한 자세를 보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4:57
세 가지 모두 어떻게 추정하느냐와 관련되어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는데, 단순히 참고용으로만 한다는 정도라면,
원조의 구성: http://pds16.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73bd77578.jpg
'북한이 한해 필요로 하는 곡물의 양(추정치)' http://pds16.egloos.com/pds/200911/02/40/b0009940_4aee5f621747e.png
한국이 준 원조는 2000년대 들어서 한 해 비료 30~40만톤, 곡물 40~50만톤 정도를 주었다고 보면 됩니다. 비료는 다음 해 북한이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국내산 곡물의 증산으로 변환되는 자원이죠.

끝으로 저는 영유권 문제와 원조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보고, 또 그런 접근 자체가 인도적 원조의 취지와도 잘 맞지 않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inis at 2009/11/02 15:45
소넷 / 음...분명히 한국만 저정도 수치이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량까지 있다면, WFP에 큰소리칠수 있는 수준이 될듯 합니다.

저는 북한의 요구량(천만톤!!!!)을 기준으로 생각해서 부족분이 대략 그 부근이라면, 우리나라가 100만톤이 훨씬 안되게 지원해줄텐데...하는 막연한 생각에서 전체의 1/10도 안되는 분량을 가지고 WFP에 강경해질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으로도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날 것이고, 중국까지 더하면 WFP는 플러스 알파로 전락할수 있겠군요....

PS : 그렇게 생각해보니, 북한은 절대 남침을 못하겠군요....
전격적으로 한국을 점령하더라도, 당장 이듬해부터 식량란에 허덕일테니....^^;;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11/02 15:52
sinis// 점령지_남한을_수탈하여_부카니스탄을_먹여살리는.txt

Commented by 에이브람스 at 2009/11/02 14:14
한국, 중국의 모니터링을 딱히 요구하지 않는 식량 제공 행태와 북한 특유의 허세, 외부인의 북한내 활동에 대한 권력층의 반감이 아우러진 복합적인 결과물이라고 여겨도 된다고 봅니다. 김정일과 그의 권력을 뒷받침 하는 자들의 대민 의식이 어떤 형태인지를 감안하면 말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2 14:20
쉽게 말해서 북한은 WFP나 NGO 요원 모두를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이전에는 가이드가 붙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숙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하니까요. 맨투맨 마크로 통제하는 거죠.
Commented by 아드바크 at 2009/11/02 15:25
이건 좀 극단적인 추정입니다만, 북한이 대외 원조 식량을 이용해 주민들에 대한 의무를 방기한 후 그로 인해 생기는 금전적 여유를 핵, 미사일과 같은 시위적 수단에 투자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핵, 미사일 문제가 본격화 되면서 국제사회가 그 문제를 느끼고 북한에 대한 원조가 도리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결론 하에 원조를 끊거나 줄이는 거라고 봅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원조 제공국들이 그네들의 조공(?) 요구에 응하지 않으니 확실한 거래를 원하는 중국, 일단 갖다주면 해결된다는 순진(?)하기 그지 없었던 김대중, 노무현 행정부 시기의 한국으로부터 식량을 받아다 썼던 거겠지만 말이지요. 이래저래 말많고 탈이 있었을지라도 거래의 원칙이 지켜졌던 동독과 서독의 관계가 부러울 뿐입니다. 게다가 동독의 경우엔 이산가족들을 도를 넘을 정도로 비열하게 이용해먹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하니 한국의 이산가족들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더군요.
Commented by JJJ at 2009/11/02 21:43
찾아보니 2005년에 중국의 북한 원조가 일시적으로 크게 늘었더군요.
http://photo.donga.com/usr/photopro/phnview.php?cgubun=200306130006&cpage=15&photo_idxno=133323
이것도 연관이 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4 01:36
그렇다고 봐야죠. 다만 중국이 어떤 동기나 계산으로 저렇게 변화를 주었는지는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으니까 그런 걸 자신있게 이야기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 그래프는 북한이 국제사회를 도발하거나 마찰이 있을 때, 원조가 줄어든다(혹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luesoup at 2009/11/03 00:24
지도층의 허세부리기에 인민은 죽어나는군요ㅠㅠ 햇볕정책은 꾸준히 지지했습니다만 그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나 하는 자책이 들 정도의 막장이로군요; 김정일이 돌지 않는 한 전면전은 없겠지만 저러다 언젠가 와르르 무너질 때의 파장이 너무 클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여튼 배곯아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식량을 안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상황은 참 답이 안 나오고 유니세프에 기부는 하고 있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 닿기는 할런지 답답하고ㅠㅠ 그러네요ㅠㅠ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11/03 17:00
저정도의 막장은 보통 '무너지는 독재국가'들에게서는 매우 자주 보이는 것이고, 아직 소말리아등에 비하면 나은거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우울한건 사실인데, 사실 그 우울한 정도에 있어서도 급수가 있죠. 아프리카보다는 나으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_-;;;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09/11/03 21:48
저정도로 막장스런 그래프를 보이는 '무너지는 독재국가'는 보통 언제 망할지 대략적으로 감이 잡히는데 저건 언제 망할지 감도 안온다는게 문제...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11/03 22:02
엑스트라1 / 꼭 망하는 것도 아니니까요.-_-;;;

북한보다 더한 막장으로 꼽히는 짐바브웨라든지...

이제는 원조에 완전히 길들여져서 최악을 달리는 에티오피아라든지...

꼭 망해야 할 이유는 없죠. OTL;;;
Commented by 비복 at 2009/11/03 23:23
그러니깐요
저를 포함한 국내 우파들이 정말 답답하게 생각해왔던 것이 이겁니다



'도대체 왜 김적 집단을 상식이 통할 집단으로 상정하고 정책을 짜는거지?'
Commented by Empiric at 2009/11/04 00:45
'상식'의 정의가 다른것 같은데,
부칸 정권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리라 기대하는 집단은 없습니다. 좌파 내에서도 일부 주사파를 제외한다면. 그러나 뽀글이라도 자기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 들지요. 그게 인민을 희생해서라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막장이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4 01:29
bluesoup/ 북한 정권이 상당히 약은 존재여서 좋은 의도로 시작해도 헛점을 보이면 여지없이 악용하려 들곤 하니까요. 북한 대중을 도우면서도 북한 정권에게 악용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깐깐히 확인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printer/ 북한은 소말리아처럼 정부와 공권력이 치안을 장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아프리카형 기근보다는, 소련, 중공 등 정권의 장악력이 여전한 아래서 발생하는 사회주의형 기근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Commented at 2009/11/03 21: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04 01:14
네티즌 수사대 이런 거 하고 싶지 않은데... 두 분의 IP는 별 관계 없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ip란건.. at 2009/11/04 18:39
유동ip나 피시방에서 하면 다른지라

동일한 ctrl+c,v 반복이라면

동일인물이라고 보는게 좋을듯합니다.
Commented by 한만훈 at 2009/11/25 22:05
전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부르고 싶진 않지만
저 북한 아이들이 나중에 나와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 총뿌리를 겨누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식량원조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11/25 23:02
굳이 그럴지도 모르니까 미리 손을 쓰겠다는 건 좀 과하지 않나 합니다. 쳐들어오면 물론 힘껏 싸워 물리쳐야겠지만요.
Commented by 한만훈 at 2009/11/25 22:10
그나마 비슷한 독일도 20여년이넘은 지금도 아직 균형을 못맞추고 있는 판에
북한하고통일이요? 웃기는 소리 입니다. 북한이 멸망하지 않는한 대한민국에게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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