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북한의 곡물필요량이 연간 500만 톤이라고 하고 올해 곡물생산량이 400만 톤으로 예상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500 - 400 = 100 이라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100만톤의 원조가 필요하다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은 허점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 식량이 자급되지 않는 나라들은 모두 원조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 나라들 대부분은 국제시장에서 식량을 수입해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습니다. 즉 한 나라의 식량확보능력은
자체생산량 + 상업적 수입능력으로 평가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최저수요선에 미달할 경우에는 원조가 필요해지겠지요.
그러나 북한의 식량도입 패턴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북한 기근이 발생하기 전(1990~93)의 수입량이 기근(1994~97) 때보다도 많고, 원조가 늘어나자 수입량은 더더욱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한의 식량 총 도입량에서 원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됩니다.
"총 식량공급량 중 수입을 기정사실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 [북한] 정부는 교역을 통한 수입을 계속 유지하는 한편, 인도주의적 원조는 이를 보충하는 형태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원조 받은 식량으로 수입을 대체해 버렸다." (Haggard & Noland, pp.82-83)
이는 선의로 주어진 식량원조가 김정일 정권에 나쁜 인센티브로 작용했음을 의미합니다. 김정일 정권은 외부에서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자
자국민을 먹여살릴 의무를 방기하고 기존에 자신들이 하던 몫까지 해외에 떠넘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절약된 외환은 북한 정권의 다른 높은 우선순위를 가진 사업, 핵개발이나 군비지출, 엘리트 층을 위한 특혜 등에 돌려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정권 차원의 전용 문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줍니다. 북한 정권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원조받은 식량을 직접 해외에 매각하지 않고도 더 쉽고 표나지 않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수가 있다는 거지요.
이런 인센티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으로는 매칭펀드, 즉 북한이 자국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자기 돈으로 수입하는 곡물의 양과 원조의 양을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량이 100만톤이 부족할 경우, 북한이 해외에서 식량 50만톤을 수입하면 원조국들도 50만톤을 무상 원조하고, 북한이 그걸 30만톤만 수입하면 자구책에 더 힘쓸 것을 촉구하면서 30만톤만 지원하는 그런 식으로 원조를 조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가능성이 남습니다. 북한이 정말로 돈이 없어서, 속된 말로 "거덜이 나서" 식량 수입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면 그건 불가항력으로 인정해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랬을까요?
이 그래프는 전체 수입 중 식량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줍니다. 북한은 전체 수입 중 식량의 비중이 대략 10%를 조금 넘는 선에 도달했던 게 고작이고, 그나마도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비중이 계속 낮아집니다. 물론 석유라든가 산업원자재 같은 다른 대체할 도리가 없는 필수 수입품들도 있을 수 있기에 북한이 모든 수입을 식량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봐도 북한의 식량 수입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외환의 배정 순위가 그만큼 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쿠바와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납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쿠바도 소련/동구권과의 무역에 절대적으로 의존(80%)하고 있던 국가여서 90년대 초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쿠바는 1989~90년과 1995~95년 사이에 총수출입액이 70% 이상 감소(같은 기간 동안 북한은 약 50% 감소)합니다. 하지만 쿠바는 식량수입을 총수입의 2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북한 같은 기근을 겪지도 않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기근의 초반(1994~95)에 북한의 식량 수입이 크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에버스타트, 정광민, 해거드&놀랜드 등 많은 연구자들은 북한은 기근을 맞이해 (자신들의 비상금을 계속 풀기보다는)
'원조극대화 전략'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자기 나라에는 절대 기근이 없으며 외부의 기근 가능성 추측은 모두 "공화국에 대한 음해"라고 주장하며 버티던 1990년대 초반 3년간, 북한은 평균 140만 톤의 식량을 수입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의 경제상황이 더 나쁘지 않다고 한다면, 북한은 그 정도까지는 자기 지갑에서 지출할 능력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부실화된 회사에 사재 출연을 요구당한 총수만큼이나 위대한 지도자의 마음도 쓰리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