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뭐 좀 있어보이는 묘사. 하지만 실제로는 저렇게 뭐 있어보인다고 주장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위 덧글이 달린 글이나 그와 연관된 일련의 포스팅(예를 들면
이 글이나
이 글)에서 충분히 다룬 것 같다. 적어도 "57년부터 경제가 살아나…"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다.
여기서는 1956년에
부흥 5개년계획이 어떻게 작성되었나를 잠깐 소개해볼까 한다. 이 내용을 읽으면 동 시기의 계획 이름을 나열하는 것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부흥 5개년 계획은 덜레스J.F. Dulles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3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졸속으로 입안되었으며[3],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후
하루 동안의 수정[4]을 거쳐, 3월 17일 내한, 17시간 동안 국내에 체류한 덜레스 장관에게 제출되었다.[5] 국내에서는 “동 계획목표가 덜 장관의 내한을 계기로 하여 아무런 구체적인 기초 자료도 없이 한국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작성된 가공적인 수치에 불과하였던 것”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6] 미국 관리들은 계획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도 ‘
통합된 전략이라기보다는 많은 구매리스트’라고 혹평하였다.[7] 또한 덜레스에게 전달된 계획안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자마자 부흥부가 곧바로 외원의 양을 축소하여 수정된 계획안을 제출하였다는 점[8] 때문에 미국은
계획의 실질적 목적이 실시보다는 더 많은 원조 획득에 있다고 판단하였다.[9]
주[3] 『한국일보』 1956년 2월 29일자 기사에 의하면 부흥부 5개년 계획은 2월 26일부터 부흥부에서 작성에 들어가 “28일에 이르러 시안이 작성완료”라고 되어 있다.(「부흥부 5개년계획 성안」, 『한국일보』1956년 2월 29일자).
[4] 「부흥부 5개년계획 수정: 이 대통령 관계장관에 분부」, 『한국일보』1956년 3월 11일자.
[5] 「덜 장관 오늘 입경」, 1956년 3월 17일자; 「덜 장관 17시간 체류」, 1956년 3월 18일자(이상 『한국일보』)
[6] 「부흥 5개년계획의 재편」, 『경향신문』 1956년 6월 21일자.
[7] Donald Stone Macdonald, U.S.-Korean Relations from Liberation to Self-Reliance: The Twenty Year Record(San Francisco: Westview Press, 1992), pp.270-271.
[8] 처음에는 15억 달러를 사용하는 안으로 발표하였지만, 연간 3억 5천만 달러, 총 17억 달러를 사용하는 안으로 다시 수정되었다. 「15억불로 수정: 5개년 부흥계획안 재검토」, 『경향신문』 1956년 6월 18일자; 「연간 3억 5천만불 계상: 재편성될 5개년부흥계획」,『경향신문』1956년 6월 18일자.
[9] “Comments on the ROK Five-Year Plan," 895b.00-Five Year/3-756, Decimal File 1955-1959, NARA; "Revisions made in ROK 5-Year Plan Document," 895b.00-Five Year/3-2856, ibid. 한국의 장관들은 주한 미대사관의 직원들에게 계획을 수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며, 이 사실은 국무성에 그대로 보고되었다(”Quarterly Economic Summary, April-June 1956, Republic of Korea," 895b.00/10-1556, ibid).
박태균, 『
원형과 변용: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기원』,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p.300
이런 식의 계획이 남발되고 실제 집행으로 연결되지도 못하고 폐기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대개의 학자들은 이승만 정권 말기에 작성만 되고 실시는 못된 부흥부 산업개발위원회가 만든
3개년 계획이 유일하게 좀 계획같은 계획이며, 이 때 계획을 작성해본 경험이 정권이 바뀐 2공 이후에 어느 정도 계승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