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by sonnet 2006 이글루스 TOP 100 2007 이글루스 TOP 100 2008 이글루스 TOP 100 2009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 100 2011 이글루스 TOP 100
rss

skin by 이글루스
동방정책의 배경
1950년대 서독 기민당의 핵정책 분위기는 앞서 소개한 바와 같습니다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에 맞선 서독 사민당의 핵정책에 대해서도 좀 소개해 볼까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냉전시대 내내 유럽의 안보정책은 핵전략이 핵심이었고, 1950년대 말~1960년대 전반에 일어난 사민당의 핵-안보 정책에 있어서의 일대 노선변화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방정책의 중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독 사민당(SPD)은 1950년대 내내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에 밀착해야 한다는 집권 우파 기민당(CDU)의 노선에 반대하면서 소련을 잘 달래 양 진영의 외국군을 모두 철수시키고 비핵 비무장 중립화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평화주의적 정책을 표방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민당은 서독의 핵무장이나 NATO의 핵방위정책에 대해 계속적인 반대를 주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편 것도 아니었지요. 사민당의 반대는 기본적으로 오스트리아식 중립통일을 인정받기 위해 소련의 비위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게 될 일은 하나도 하지 말면서 선처를 바라자는 읍소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1950년대 중반 서독연방군 재창설에 즈음해서 사민당은 프리츠 에를러의 주도 하에 징병반대운동을 합니다. 명분은 신설되는 독일군 12개 사단은 NATO의 원자탄 총알받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1958년 초 사민당은 반핵투쟁(Kampf dem Atomtod)을 승인하고, 독일전노련(DGB)이 여기에 조직적 지원을 제공해 세를 불립니다. 이들의 목표는 서독연방군의 핵무장을 막고, 서독에 주둔중인 연합군의 핵무기를 철수토록 하는 것이었지요. 이들은 1958년 4월 함부르크에서 15만 명을 동원한 반핵 데모를 주도했는데, 이 반핵시위에 15만이란 숫자는 전후 최대 규모로 이 기록은 그 이후 20여 년간 깨지지 않고 남을 정도로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민당은 자신들이 장악한 함부르크, 브레멘, 프랑크푸르트 등의 지방정부를 통해 해당 지역에 비핵지대를 설치하는 법안을 상정하기도 했습니다. 집권 기민당은 이는 외교/국방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정부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승리함으로서 사민당의 투쟁은 물 건너가게 됩니다.

이런 연이은 투쟁은 당시 사민당이 당시 냉전 상황 하에서 유권자들에게 안도감을 줄 안보정책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심지어는 당내 고위층으로부터도 이 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됩니다.

연방하원 부의장 카를로 슈미트(SPD)가 1957년 선거를 분석한 것을 보면, SPD의 고민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가 되고, SPD가 그 후 어떤 변모의 과정을 밟게 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선거 패배의 원인에 대해 당내에 서로 상반되는 의견들이 있다. 많은 분들이 아데나워가 파렴치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 탓이라고……
내 생각으로는 CDU가 SPD를 “무경험”(집단)으로 몬 선거운동 슬로건은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었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그동안 얻은 것이 별 것 아니라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일단 알고 있는데 반해, 진보적 개혁이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안심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절대 다수 유권자들이 콘라트 아데나워에게 정권을 맡긴 가장 깊은 이유이다. 그는 서독 유권자들이 실험대상이 되는 것으로부터, 또한, 미국의 지지를 받는 그의 “힘의 정책”을 통해, 동쪽의 붉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유권자들을 보호했다.
(Schmid, Erinnerungen, 619-20)

Bark, Dennis L., Gress, David R., A History of West Germany 2nd. Ed., Blackwell, 1993
(서지원 역, 『도이치 현대사 2: 변화와 모색』, 비봉출판사, 2004, pp.139-140)


하지만 소련/동독에 대한 유화정책을 주장하던 SPD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다름 아닌 소련이었습니다. 1958년부터 1961년 사이에 소련이 베를린 위기를 재연시키고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자 SPD는 아주 난감한 상황에 빠집니다.

SPD 지도자들은 소련의 요구를 거부하긴 했지만 소련과 협상의 문은 열어놓는 정책을 주장하면서, 일단 독일의 비무장지대화와 NATO의 핵방위전략 거부라는 구태의연한 자신들의 정강정책을 지켜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베를린 위기 기간 내내 소련과 동독에 대한 그 어떠한 양보도 안 된다고 격렬하게 외치며 친미-반소-반공 노선을 위해 투쟁한 사민당의 당내 우파 진영의 지도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빌리 브란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란트는 소련/동독에 포위되어 있는 서 베를린 시장이었던 것입니다. 서 베를린은 10년 전에 소련의 봉쇄를 겪어본 적이 있어서 소련에게 함부로 양보하는 날에는 자신들은 그대로 공산진영의 손에 떨어질 것임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지역입니다.

결국 사민당은 1950년대의 실패한 노선에서 탈피를 모색하게 됩니다. 그 시발이 된 것은 1959년의 고데스베르크 전당대회입니다. 여기서 “사회민주당은 자유와 민주적 질서의 방어 결의를 천명한다. 당은 조국의 방어를 승인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뉘앙스지요.

후에 수상이 되는 헬무트 슈미트 또한 이 때 쯤에는 “사민당은 전술핵 사용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재래식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당의 차세대 주자들이 동서 냉전의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다른 사민당 지도자 헤르베르트 베너 또한 1960년 6월 30일 연방하원 연설에서 사민당을 대변해 서방세계와의 결속과 NATO 가맹이 어떠한 동방정책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전제라고 선언합니다.

한편 1956년부터 1961년까지 SPD의 반핵노선에 동참했던 또 다른 야당 자민당(FDP) 또한 에리히 멘데의 주도 하에 노선을 뒤집어 이러한 추세를 강화합니다.

그 결과는 수 년 후 이렇게 나타납니다.

1964년 여름은 SPD 지도자들과 미국의 지도자들 사이에 협조가 최고조에 달한 때가 아닐까 싶다. SPD 내의 미국 지지자들은 브란트와 슈미트같이 떠오르는 스타들이었다. 그들은 끈질긴 당내 투쟁을 통해 NATO 안에 다국적군(MLF)을 두자는 미국 제안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 이 제안은 NATO 안에 후일 “유럽의 기둥(European Pillar)"으로 알려지게 되는 독-불-영이 지휘권과 통제권을 나누어 갖는 유럽 핵무장 군대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많은 SPD 당원들에게 있어 MLF 구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칼스루에(Karlsruhe)에서 1964년 11월에 열린 SPD 전당대회에서 프리츠 에를러는 서독의 MLF 참여를 공식 승인받음으로써 최대의 정치적 승리를 마지막으로 거둔다. 1960년까지만 하더라도 서독 군대의 핵무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버리던 정당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같은 책, p.292-293


이렇게 보면 분명해 지는 것이지만,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사민당의 중대한 노선전환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서독 사민당은 집권 전 수 년에 걸쳐서 과거의 몽상적인 평화주의 중립 통일 방안을 내던지고 친서방 우경화의 길을 걷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파 기민당과 똑같아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은 당시의 냉전 상황을 반영할 수 있을 정도로는 현실적인 노선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해서 핵시대에 믿고 정권을 맡길 수 있는 정당임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유권자들은 처음엔 대연정을 통해서 사민당의 변화된 모습을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었고, 다음 번에는 사민당에게 정권을 맡기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민당은 집권 후에도 NATO로 대표되는 서방진영의 군사동맹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우파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핵전쟁 전략도 제시할 수 있었고, 1970년대 후반에는 동독은 물론, 동유럽 전역과 배후의 보스 소련까지 위협하는 신형 핵미사일(GLCM)을 국내에 배치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을 수 있는 사민당판 '힘의 정책'을 선보일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by sonnet | 2009/08/20 09:50 | 정치 | 트랙백 | 덧글(66)
트랙백 주소 : http://sonnet.egloos.com/tb/421534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8/20 10:01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역시 상대의 자비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꿈같은 이야기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1:07
네, 이게 그렇게 저자세가 된 것은 전후 동서독이 점령 하의 패전국으로 출발한 것과도 다소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SPD의 기본 전략은 패전국 신분일 때 세워져 그동안은 근본적인 수정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거든요.
Commented by 삐레 at 2009/08/20 10: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__)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48
네, 반드시 그래야지요.
Commented by LISF at 2009/08/20 10:33
21세기 K모국의 진보 계열 정당들도 미군철수 같은 헛소리 하지말고 SPD같은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텐데 말이죠... orz
Commented by maxi at 2009/08/20 10:51
한국판 CDU가 국방정책을 튼실히 하기 때문에 한국판 SPD가 "아 국방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집권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야만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요 (....)
Commented by IEATTA at 2009/08/20 13:24
한국판 SPD 는 지금 상황으로는 국방정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아마 뭐가 문제인지도 잘 모를꺼같아요... (크흠)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8/20 18:13
어? 한국에서는 CDU도 공산당 아닙니까?
Commented by vicious at 2009/08/20 20:50
그 쪽 분들 꿈에서 깨어나길 기대하는거 보다 남북 평화 통일이 더 현실적일 것 같네요.
국제 정세 자체를 이해못하시고 미국/북한 밖에 안보이시는 분들인대..

그런걸 바라는 건 너무 무리 아닐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52
민노당-진보신당 분당을 둘러싼 종북 논쟁을 보면 결국 외교안보 문제에 관해 저런 식의 조정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8/20 11:00
이상에만 안주하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우리나라 정당들은 언제쯤 저런 모습을 보여줄런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0
사실 SPD는 그 뿌리가 아주 깊은 정당이다보니 확실히 저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9/08/20 11:11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진성노빠 at 2009/08/20 11:29
동방 정책을 달리 말하면 동방프로젝트가 되겠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0
그쪽은 제가 잘 몰라서...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9/08/20 11:43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joyce at 2009/08/20 12:02
잘 읽었습니다.
역시 정당에는 정치력 있는 개인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7
역시 정치는 術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쿠라사다 at 2009/08/20 12:3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단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일정부분 노선의 수정을 취했다는 대목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0:51
저 노선수정은 통일에 대한 관점이 좀 변했다는 측면도 있는데, 그 이야긴 따로 간단히 써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Bluegazer at 2009/08/20 12:36
어지간히 주화입마한 사람들 눈에는 어떤 의미에서 저걸 '현실정치를 배워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일종의 '타락'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닐지 우려스러울 따름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21:01
늘 그런 이념적 순수성을 앞세우는 그룹이 있기 마련이지요. 사실 이 논쟁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한참 지난 1980년대 초에 다시 한 번 부활해 SPD를 분열시키게 됩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9/08/20 14:00
현재상황에서 한국 민주당이 햇볕정책에서 노선전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1. 민주당은 우리편: 독립-민족-민주-평화-통일-개혁 상대편: 친일-친미-독재-전쟁-반통일-수구 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햇볕정책은 민족-평화-통일로 연결되기에 햇볕정책을 포기하자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반민족(친미)-전쟁-반통일로 이어지는 상대편이 됩니다. 이 세계관은 민주당지지자의 전부이기 때문에 절대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2. 민주당은 표를 얻어 집권하려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을 선도하려는 이념정당이기에 정략의 수정은 있어도 정책의 수정은 없습니다.
고로 국민은 민주당을 망하게 해야 하고 제1야당의 역할은 자유선진당이 맡아야 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8/20 18:14
이상 오늘도 정진정명 민주당과 전라남북도, 광주광역시, 김대중, 노무현, 문근영 안티 teferi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8/20 18:52
여전히 완전평면 2차원적인 해석이 일품이시군요.
정당도 궁극적으로는 '이익집단'인데, 바뀌지 않을 거라 단언하시는 것하며
그 근거로 내놓으시는 의견들이 너무 단견적이군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09/08/20 22:47
이사람 댓글은 이제 무조건 삭제를 하던지 해야하지 않나요....-_-
Commented by teferi at 2009/08/21 08:23
paro1923/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자, 잠재적 민주당 지지자는 반공주의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무고하게 받은 피해도 있으나, 정말 북한을 지지하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8/21 08:55
테페리 씨 // 스스로 말씀하시고도 앞 문장과 뒷 문장의 문맥이 맞지 않다고는
생각 못하시는지...

에이치모델러 님 // 삭제는 너무 극단적일 뿐더러,
자칫 '정신승리'라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요. 어쨌거나, 나름 보는 맛도 쏠쏠하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2 23:27
민주당이 민족-평화-통일 같은 구도를 그간 사용해 왔다는 것은 별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표를 얻어 집권하려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을 선도하려는 이념정당" 같은 평가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주요정당들은 그것이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이념지향성이 그렇게 강하다거나 당 강령에 충실하다거나 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teferi씨처럼 외통수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문제는, 오히려 현 상황이 심각하며 그간 그들이 견지하던 입장을 갖고는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것을 민주당이 아직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 자체가 민주당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딱히 민주당을 지지해서 발생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채 과거 그들의 정책으로부터 방향전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며 동시에 그 전략을 통해 한나라당에 대한 그들의 상대적 차별성이나 장점을 어떻게 부각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SPD의 사례는 그런 까다로운 과제를 실제로 달성해낸 정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8/20 15:14
한국에는 SPD가 없다는 점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는군요....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8/20 18:15
CDU도 없는데요 뭘...
Commented by Burke at 2009/08/22 03:02
CDU가 있기를 바라는 겁니까? ㄱㅐ* 또는 *독이라고 그럴 때는 언제고...쯧쯧...
Commented by 편성국원 at 2009/08/22 11:21
행인1// 좌파는 우파가 없으면 발전하지도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2 23:36
우리나라 정당들이 정책개발 능력이 신통찮은 건 사실 부정할 수 없지요. 첫 술에 배 부르기는 힘들겠지만 조금씩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미연시의REAL at 2009/08/20 15:38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한다는걸 다시한번 독일의 사민당을 통해서 더 확실하게 알게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2 23:29
네, 사실 사민당도 입장을 바꾸는데 최소 4~5년 정도는 걸렸으니까 요구는 꾸준히 해야겠지만 우리나라의 정당들에게도 어느 정도 시간을 줘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5:58
1. 몇 해 앞서 대학교 유럽현대사 강좌 수업시간에 저만 이 논지를 주장했는데, 거의 또라이 취급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동방정책이 일단 아데나워의 서방통합을 인정하고서는 데탕트를 추구하는 정책이라는 사실을 대중 일반은 그다지 인정하지 않으려 하더군요. 설사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어도 제 주장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2. 국내에서 도이칠란트 '전문가들' 가운데 이 배경사실을 대중에게 뚜렷하게 지적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군요. 오히려 마륵스주의자인 한신대학교의 이해영이 이를 간파하고서는 빌리 브란트가 흡수통일을 획책했다고 그의 저서에서 10년 앞서 격렬히 비난한 적이 있었지요(1999년에). 나머지 도이칠란트 전공자들은 멍청한 건지 용기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이권이 걸려 있어서인지(동방정책과 태양정책을 무조건 동일시하는 접근이 그들에게 명성과 금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키기 때문에-가령 아태재단이나 통일부나 북한 관련 학술기관들에 도이칠란트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참여했음), 대개 침묵하더군요. 오히려 김대중 본인은 한미동맹의 기반을 전제조건으로 태양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때가 있습니다만, 그 추종자들이라든지 노무현 집단은 오히려 그로부터 이탈해나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3. 이건 국내 도이칠란트사 관련 지식전달구조의 문제라고도 보이는데, 가령 1959년 SPD의 바트 고데스베르크 신강령(1920년대 하이델베르크 강령을 공식 대체했던)이 내정에서 일으킨 변화는 강조하면서도 동일한 시기에 진행하고 있었던 대외정책상의 인식변화에는 그 '학자들' 이 대개 외면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국사적 역사교육과 연구의 한계랄까요? 쿠르트 슈마허의 전망이 마륵스주의적 자급자족과 대외영세중립을 결합시킨 것이었는데, 그런 전망의 불투명성이 불신의 대상이 되었음을 그 사람들이 아예 모를 리는 없을 터인데…

4. 사실 노무현 사망 직전인 2009년 5월 중순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국내 도이칠란트 '전문가들' 상당수가 참여한 가운데(김대중도 일부 세션들에 참석) 다시 한번 빌리 브란트와 김대중의 유사점들만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학술행사를 개최했는데, 내세울 만한 간판이 없는지라 특정 경향 일변도 위주로 흐르는 듯한 평가들에 불만이 있었지만 구경하면서도 입만 다물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다지 즐겁거나 공감하기는 힘들었습니다.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9/08/20 16:02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다고 욕먹지 않습니까. 알아도 함부로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특정한 지위에 있는 분들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하게 보이더군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6:17
길 잃은 어린양/ 창도자보다는 추종자들의 열등함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6:13
5. 제가 판단하기로는 SPD가 1959년에 노선을 전환하지 않았다면 일본사회당과 유사한 운명을 경험했으리라고 평가합니다.

6. 아데나워의 유명한 신조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실험하지 않는다' 였지요.

7.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중립국으로서의 독립유지와 관련해서도 과도한 환상이 퍼져 있습니다. 사실 이런 환상은 매우 뿌리가 깊은 것이어서 이승만 몰락 직후에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중립화통일론 담론들이 유행했는데, 재미있게도 그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박정희 탄압의 영향 때문인지 북한 체제로 차차 기울어가더군요. 내셔널리즘적 열정만 지니고 있을 뿐 국제정치의 권력정치적 속성에는 무지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8. 사실 오스트리아나 핀란드가 중립과 독립을 유지하고 소비에트화를 모면한 건 내부 역량보다도 우연한 상황적 조건들이 작용한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오스트리아의 중립은 소련 영향권 가운데 가장 일찍 선거를 실시해서 공산당이 참패하여 주변화해버린 기정사실을 소련이 어쩔 수 없이 승인할 수밖에 없었고, 오스트리아를 분할하기보다 중립화시키면 이탈리아와 서도이칠란트를 직접연결을 차단시켜 NATO의 수송망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음을 소련이 주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핀란드의 중립도 체코슬로바키아 쿠데타의 영향으로 애초 소련이 소비에트화 계획을 포기한 덕분이 큽니다.
Commented by TSUNAMI at 2009/08/20 17:05
8번 오스트리아의 경우, 1945년말 선거에서 공산당이 나치 전력자나 과거 지지자들을 거부하고 배제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자신들의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해 줄 수도 있지만, 700만도 안 되는 인구에서 53만명이상이 나치당원이었고 전시 독일군 복무자가 100만명 이상이었던 나라에서 그 사람들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선거제도의 현실에서는 자살이죠. 이게 차후 동유럽국가들, 특히 동독에 영향을 미쳐서 통사당이 반파시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도 그다지 이름이 없던 중간급 나치 전력자들의 기록을 삭제하고 체제내에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는 건 토니 주트 교수의 저작에서도 논급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7:11
TSUNAMI/

1. 타당한 지적입니다만 공식적 반나치 주장은 다른 기성정당들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

2. 오스트리아사회민주당이 원래 제2차세계대전 이전에도 당 내부의 절묘한 통합을 유지해서 전간기에 별도의 공산주의 정당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1945년에 갓 창당한 오스트리아공산당은 허약했습니다. 사실 동유럽 전체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외하면 공산당들의 사회적 기반은 그다지 굳건하지 않았지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7:13
TSUNAMI/ 그나저나 여기서 토니 주트의 저서를 애독하시는 분을 만나다니 놀랍습니다. 다만 한국어 번역판은 오역이 상당하고 윤문도 지나치기는 합니다만…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8/20 18:16
일전에 말씀하신 독일 사민당 사례의 포스팅일로군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CDU도, 아데나워도 없으니 SPD를 바라는게 뭔가...
Commented by maxi at 2009/08/20 18:51
일단 CDU가 없음을 한탄하기 이전에 The People of Freedom 이 생기는 것을 걱정해야...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9:01
Il Popolo della Libertà(PdL/自由之人民)!
Commented by ... at 2009/08/26 16:56
우리에겐 SPD도, 빌리 브란트도 없으니 CDU를 바라는 게 뭔가...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8/20 18:39
도이치사회민주당→정식명칭의 한국어 직역은 '도이칠란트 사회민주당' 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44
수정해 놓겠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8/20 18:56
으음, 역시 정치는 소신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보여주는군요.
하긴, 우리 사회는 '소신'과 '외곯수를 동일시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으니...
Commented by 책벌레 at 2009/08/21 00:00
독일역사의 한 쪽을 잘 배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23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abrams at 2009/08/21 12:18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환상+상대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태도 버리기 등이 갖춰져야만 하는 거로군요. 하지만 이 나라에선 그걸 받아들일 정치가와 시민이 얼마나 될 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38
이때쯤 되면, 즉각적인 통일이란 어렵다는 게 분명해지는데, 우파든 좌파든 다들 그 점을 인정하기 어려워해서 좀 빌빌거린 느낌도 있습니다. 어쨌든 저렇게 당내 노선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abrams at 2009/08/21 12:29
여담입니다만, 어릴 적에 보았던 학습만화세계사 등의 책을 보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그 자체만을 거론하지 사민당의 노선 전환의 배경 등에 관해선 거의 하질 않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1 19:22
사실 그런 아동서에서 다루기는 많이 난해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을 듯.
Commented by 병사마 at 2009/08/22 00:59
보았던 학습만화세계사 등의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8/22 13: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8/22 23:37
네 맞는 말씀입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09/12/31 07:06
“유럽의 대들보(European Pillar)"
//

Pillar를 대들보라고 옮기는 건 잘못입니다. 기둥이라고 해야합니다.
주제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만.

Pillar
http://en.wikipedia.org/wiki/Pillar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01 22:36
수정했습니다.
Commented by 섭동 at 2010/01/02 03:22
“유럽의 기둥(European Pillar)"로
->
“유럽의 기둥(European Pillar)"으로

조사도 함께 바꾸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0/01/02 11:47
수정했습니다. 여담인데, 인용문 내부의 표현을 원래 번역자가 쓴 대로 그냥 놔둘 것인지, 인용임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수정할 것인지는 다소 생각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면 인용문으로 제시한 내용은 독자가 출처를 찾아보면 정확히 똑같은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오류가 있을 경우에는 인용자가 sic.(원문대로)라는 표시만 추가하곤 하지요.
Commented by 섭동 at 2010/01/05 04:52
인용하신 번역이 원래 저렇군요.

전문(?)용어 번역이 문제입니다. pillar 정도면 전문 건축용어 수준도 아닐텐데, 완전히 엉뚱한 번역을 했습니다. 아무리 자기 분야가 아니라지만.
혹시나해서 한국 온라인 사전 몇군데에서 pillar를 찾아봤는데, 모두 '기둥'이라고 나옵니다. 대체 '대들보'라는 번역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http://dic.naver.com/search.nhn?target=dic&query=pillar&x=0&y=0&ie=utf8&query_utf=
http://alldic.nate.com/search/alldic.html?search_select2=on&category=&cm=c&q=pillar
http://alldic.daum.net/dic/search_result_total.do?eq=&LAYOUT_URL_PREFIX=&type=all&q=pillar

:         :

:

비공개 덧글

<< 이전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