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게만 박히는 총알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udis) 에서 트랙백
1. 주화입마 방지북한이 별 것도 아닌 일에 괜한 호들갑을 떨면서 핵무기 보유를 정당화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남한, 미국)'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당연한 일이다.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역지사지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udis)
우리가 북한의 입장을 연구하는 것은 북한의 생각과 수를 꿰뚫어봄으로서 그들의 협상술에 말려들지 않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확보하며, 북한을 상대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키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역지사지랍시고 북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연습을 하다가 무의식적으로 거기 동조해 버리면 그건 그냥 이적행위입니다. 일본인들이 잘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미이라를 잡으러 갔다가 미이라가 되어버리는(ミイラとりがミイラになる) 꼴이 되는 거지요.
따라서 우리는 북한의 입장을 연구하는 것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런 주화입마는 북한 뿐 아니라 과거 비슷한 주제를 연구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합니다.
2. 국제질서에 대항하는 일탈자 북한두 번째 문제는 북한의 입장은 우리의 입장과 대등한 무게로 취급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입장에 우리 입장과 대등한 무게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지어는 제3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북한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은 대등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IAEA는 북한의 조약 위반을 17년 전에 고발한 바 있습니다. NPT는 189개국의 가맹국이 있지만 창립 이래 40여년 동안 자신의 위반이 적발되자 배째고 탈퇴해 버린 나라는 북한 단 하나 뿐입니다. 한반도 주변국을 망라한 6자회담 참가국 모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UN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에 대해서 잇따른 안보리 결의를 통해 국제법적 권위를 갖는 징계를 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통적인 북한의 텃밭 중 하나인 비동맹 진영 국가들 조차 34년 만에
북한의 주장을 담은 '한반도 조항'을 삭제하는 등, 거듭된 일탈행위로 인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습니다.
즉 북핵문제란 것은 북한의 입장이 있고 남한(또는 미국)의 입장이 있어서 둘의 입장에 대등한 무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북한 대 나머지 세계라는 구도인 것이지요.
제가 이 논의를 시작하면서
거듭 강조해온 것은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국제질서나 국제질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억압적이라고 간주해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체제 그 자체가 문제가 되며 나머지 세계와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북한이 기성 질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만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사안을 과장하는 양, 제한적인 양보로 달랠 수 있는 특정한 불만거리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 양 취급해서는 곤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지사지' 같은 안일한 접근법을 택하게 되면 암묵적으로 북한에게 나머지 전 세계와 맞먹는 중요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습니다.
북한이 하나 양보하면 전 세계도 북한을 위해 국제 규칙을 하나 고쳐야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북한과 통상적인 협상이 가능하려면 우선 북한이 기존 국제질서에 순응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3. 전쟁하자는 거냐? vs 힘을 동반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다음에 대해서도 간단히 논평을 해 두지요.
북미간의 핵대결은 현재진행형이다. … 지금처럼 북미대결이 험악하게 진행되면 결론은 전쟁 뿐이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나나 소넷님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블로그에 찾아와 검은 닉으로 틱틱 비아냥 던지던 인간들도 이제까지의 모든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만 하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아직까지 좌파에게만 박히는 총알이 발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소위 우파들은 김정일을 따끔하게 혼낼 수 있다면, 전쟁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자존심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것인지... (udis)
이에 대해서는 제네바 기본합의에 대한 제임스 베이커의 논평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때 갈루치의 상관이었던 [전 국무장관] 베이커는 전술적 식견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하였던 갈루치에게 제네바 합의를 옹호할 때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조언까지 했다. 그때까지 갈루치는 외교적 해결, 군사행동,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등 세 가지 대안을 열거하고 그 중 외교적 해결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옹호하는 방법을 썼다. 군사행동을 취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 경제제재를 취해봤자 북한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등. 베이커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이 틀렸다고 했다.
문제를 전쟁과 평화간의 양자택일로 만들수록 행정부는 협박에 굴복한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라고 했다.
대신 제네바 합의가 제재를 추진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등 강력한 행동을 취한 결과 얻어 낸 것이라고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좋은 조언이었다. 그리고
사실 맞는 말이었다.)
Witt, Joel S., Poneman, Daniel B., Gallucci, Robert 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서울, 모음북스, 2005, pp.409-410)
문제를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로 몰고 가는 udis씨 같은 접근법을 취하게 되면 협상타결이라는 결과는 북한의 협박에 굴복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제네바 합의의 붕괴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제네바 합의 앞에는 북폭 준비를 실제로 진행하는등 강력한 압박의 뒷받침이 있었습니다. 반면 제가 계속 지적하듯이 제2차 북핵위기 당시엔 제시된 금지선도 없었고 금지선을 넘지 못하게 북한을 꼼짝못하게 눌러둘 그런 신뢰성 있는 위협도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을 동반한 협상이나 정책을 우파의 전유물처럼 그리는 것은 전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에서 좌파가 집권했다고 해서 힘이나 핵무기를 앞세운 정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죠. 비핵국이던 서독 사민당도 집권하기 시작할 쯤에는
독자적인 핵전쟁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는 현실적이었습니다.
마오 쩌둥의 말을 빌려 마무리를 짓지요.
우리의 정책도 양면성을 갖고 있다. 즉 그들이 기본적으로 국공합작의 분열을 바라지 않는 측면에 대해서는 이것과 제휴한다는 정책이며, 그들이 우리 당과 인민에 대하여 고압정책을 취하거나 군사적 진공을 가해오는 측면에 대해서는 투쟁을 하거나 이것을 고립시키거나 하는 정책이다. - 「정책에 관하여」 -이 논리를 빌리자면 우리 대한민국의 정책도 양면성을 갖고 있어. 북한이 비핵화에 순응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그들과 협조한다는 정책이지만, 그들이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거나 우리를 위협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투쟁을 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거나 하는 정책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 나름 좌파스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