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is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수정)(나이샷)에 트랙백
우선 예로 드신 한반도평화연구원 포럼의 발표자료들에서 어떤 컨센서스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제가 평소 주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같은 포럼에서 발표된 최명해의 다음 글이 충분한 대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북·중 관계 60년 역사 동안,
역량의 비대칭성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북한이 중국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전략 옵션이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북한은 ‘편승’, ‘기회주의’, ‘자력갱생’ 등의 수단을 선택했으나, 어느 것 하나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오직 북한은 ‘모험주의적 돌출행동’ 등을 통해 자국의 지정학적 위상(status)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나 핵무장과 같은 ‘자구책’으로 동맹에 대한 의존을 낮추는 선택 외에는 다른 대안이 별반 없었다.
북한에 가장 이상적인 동북아 국제정치 구도는 미·중의 세력균형적 대립 양상이다. 북한으로서는 미·중의 전략적 간극을 이용할 수 있을 때, 자국의 전략적 위상이 제고될 수 있는 것이다. …
현실은 북한이 기대하는 구도로 전개돼오지 않았다. 이미 중국은 1970년대 대미 화해(rapprochement)를 추구하면서부터 미국과 모종의 전략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것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가 양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현상의 안정적 ‘관리’에 양국 이익의 균형점(balancing of interest)을 찾았던 것이다.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중국은 1971~73년 남북관계 개선, 1983년 ‘남·북·미 3자회담’ 베이징 개최안, 1996년 ‘4자회담’ 수용의 대북 설득, 2000년대 ‘6자회담’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북한에게 미·중의 이익균형이란 강대국에 의한 대북 관리 체제의 등장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북한편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모험주의’를 통해 미·중의 이익균형의 판을 깬 것이다. 1974년 대남 무력 도발을 통해 대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였고, 1983년 아웅산 테러로 ‘3자회담’의 실현 자체를 좌절시켰으며,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4자회담’ 기제를 무용화하고 미국과의 양자협상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2번의 핵실험으로 ‘6자회담’ 기제를 형해화시켰다. 북한으로서는 향후 한반도 상황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동북아 국제정치 구도 변화에서 자국의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려면 강대국 ‘관리’ 체제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
최명해,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입장 및 대응, 한반도평화연구원 15회포럼 발표자료, 2009년 6월 12일
이것은 제가 그간 소개했던 로버트 칼린이나 빅터 차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북한이 안전보장과 맞바꾸어 핵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 아니면 그들이 핵무기를 그들의 궁극적인 안전보장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논쟁해 왔다. 하지만 그런 논쟁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내가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하고 또 북한 외교관들과 협상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게 된 바에 따르면
북한의 목표는 그것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Victor Cha,
Up Close and Personal, Here's What I Learned, 워싱턴포스트, 2009년 6월 14일
쉽게 말해서 북한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더 크고 장기적인 세력균형 게임에서 그들이 미국에게 유용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중국은 그 점을 알고 있고 사석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북한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6자회담 -곧 또 열리겠지만- 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적 상황의 축소판이라는 것이다. 세 전략적 적수 -중국, 일본, 러시아- 가 판결에 참여해 압력을 가하며 (북한이 보기에)
북한은 영원히 취약한 나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Robert Carlin, John W. Lewis,
What North Korea Really Wants, 워싱턴포스트, 2007년 1월 27일
자 이런 시각을 기반으로 다음 주장을 검토해 보지요.
서프 국제방이나 김명철(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의 글을 보며 느낀건 이들이 전제하는 북한이 대북 강경론자들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협상이나 체제보장에 만족하지 않고 핵 보유와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는 국가 말이다.
차이는 "태도"뿐이다. 전자가 그런 강성대국 북한을 찬양한다면 후자는 증오하고 비난한다. (
나이샷)
태도보다는 전제가 되는
힘의 평가가 다른 겁니다. 로버트 칼린, 빅터 차, 최명해, 그리고 저의 공통적인 전제는
'북한이 약하다'는 겁니다. 김명철 같은 사람의 주장은 보통 인식되고 있는 것보다
'북한은 훨씬 강하다'는 데서 출발하지요. 제가 볼 때 태도는 별 문제가 안됩니다. 예를 들어 로버트 칼린이 북한을 증오하고 비난한다고 보십니까?
북한 외무성의 김계관은 핵문제에 있어 북한은 [비공식 핵무장국인] 인도 같은 대우를 원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주변국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지요. 물론 동북아에서 북한이 인도와 맞먹는 인구와 영토, 시장,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막강한 국가라면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주변국의 원조에 생존을 의존해야하는 북한의 후달리는 국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지만 2년도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국제사회는 중국과 거래하기 위해 줄을 서는 분위기가 됩니다. 1998년 핵실험 이후의 인도도 비슷한 대접을 받습니다. 중국이나 인도의 힘은 이런 데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은 핵을 빼면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모을 방법이 묘연한 원래 별볼일 없는 국가이니까요.
이어서 협상무용론(?)에 대해서도 간단히 논평해 두겠습니다.
"외교 회담은 자신의 기본 입장만 무의미하게 되풀이하고, 상대의 불성실함을 규탄하거나 상대의 “부당함”과 “타도”를 주장하는 자리로 변한다. 그런 회담은 대립하는 체제들 사이에서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교한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된다."라는 키신저의 지적은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대북협상들은 물론 6자회담의 상당 부분을 묘사하는데 잘 들어맞습니다.
이미 고전이 된 조이 제독의 『how communists negotiate』부터 시작해 이런 측면이 있으니 북한과의 협상을 낙관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경험담(*)은 수없이 많습니다. 게다가 2차 북핵실험 이후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 훨씬 더 힘을 얻은 상황입니다. 그만큼 북핵협상의 전망이 나빠진 것이지요.
그러니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라는 키신저의 지적은 북핵문제가 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100% 간주하지는 않는 입장일 뿐인 전형적인 현실주의적 시각입니다. 제가 볼 때 이런 평범한 주장까지도 협상무용론에 힘을 실어준다고 받아들인다면 그 반대편에는 협상이 늘 성공할 거라는 매우 비현실적인 입장밖에 남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분쟁을 타결지을 수 없다 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 = 협상무용 이란 도식은 더욱 약화됩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1. 협상은 긴장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2. 궁극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더라도 제네바 기본합의처럼 (일시적 핵동결 같은) 잠정적인 대책을 얻는 것은 그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3. 노력했는데도 협상에 실패했다는 결과는 다른 대안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강화시켜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으로부터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최선을 다해 협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협상의 "전술적" 용도라고 부르면 적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종목적 달성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나름 기능적인 유용성이 있으니까요.
(*) 예를 들어 송종환, 『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개정판) , 오름, 200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