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 Ильича до Ильич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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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안전보장과 북한

1. 핵 안전보장의 역사[1]

1.1. 적극적 안전보장(PSA)

1968년, 핵확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국제질서로서 핵 비확산조약(NPT) 협상이 마무리되어 7월부터 출범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핵무기 비보유국들은 이 조약에 가입해 핵무장을 포기했을 때 대한 안전보장이 너무 빈약하다는 불만을 표명합니다.

당시 NPT의 주요 후원자였던 미국과 소련은 이 문제, 즉 NPT에 가입해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들에 대한 안전보장에 대해 각각 자신들의 입장을 밝힙니다. 우선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이들에게 'UN의 집단안보체제와 미국의 방위보호를 통해서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한편 소련의 코시긴 총리는 '그 영역 내에 핵무기가 없는 한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NPT에 삽입할 용의가 있다'는 견해를 밝힙니다.

당시 기성 핵무기보유국들은 자신들의 선언을 공식화하고 규범화하는 차원에서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55호[2](1968년 6월 18일)를 채택시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핵무기를 동원한 침략 또는 그런 위협이 있는 경우에는 UN헌장의 의무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 특히 핵보유 상임이사국 측에서 즉시 행동하여야 할 사태임을 인정한다.
(2) NPT 당사국인 비핵무기국이 핵위협 또는 침략의 대상이 되는 경우, UN헌장에 따라 이에 대한 원조나 지원을 하는 각국의 의사를 환영한다.
(3) UN 회원국이 군사공격을 받을 경우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UN헌장 51조에 입각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고유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재확인한다.

이는 결국 '핵무기에 의한 침략이나 위협이 있을 경우 NPT를 따르는 비핵무기국에 대해서는 UN헌장이 허용하는 바에 따라 원조 및 지원을 할 것'이라는 핵무기국(=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선언인 셈입니다. 이것을 대개 적극적 안전보장(Positive Security Assuarances; PSA)이라고 부릅니다.


1.2. 소극적 안전보장(NSA)

적극적 안전보장은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약속 이행의 신뢰성이 강하지 않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즉 어떤 비핵무기국이 핵공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그 상대는 핵무장국일텐데, 다른 강대국들이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문제의 침략국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워주겠냐는 점이 불확실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적극적 안전보장을 확실하게 받고 싶어하는 비핵무기국들은 안보리결의 255호 같은 PSA를 믿으면서 중립국으로 남는 대신 대개 어떤 핵무장국과 동맹을 맺고 전술핵무기를 국내에 반입하는 등의 방법을 계속 고수합니다. 즉 동맹은 PSA보다 신뢰성이 높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비핵무기국들은 핵무기국들을 향해 핵공격을 받았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보다는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비동맹 48개국 공동결의(1966), 비핵무기국회의 중 멕시코-파키스탄의 제안(1968), 제1차 NPT 재평가회의의 추가의정서(1975) 등은 그러한 요구사항을 잘 보여줍니다.

1977년 UN총회에서 미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가에 대하여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이어 "핵무기국과 동맹관계에 있거나 혹은 핵무기국과 결탁하여 미국과 그 영역, 군대 및 동맹국에 대하여 공격을 감행하거나 지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NPT 당사국이거나 이와 동등한 내용의 조약에 가입한 어떤 비핵무기국에 대하여도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식 발표를 합니다.

소련도 이듬해 UN 특별총회에서 "핵무기 제조 및 획득을 포기하고 그 영역 내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어 영국, 프랑스, 중국 등도 각자 대동소이한 선언을 하여 이 흐름에 동참합니다.

이런 것을 비핵무기국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arances; NSA)이라고 합니다. 다섯 핵무장국이 개별적인 선언을 했기 때문에 세부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소극적 안전보장을 받기 위한 조건을 종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핵무기를 보유하지 말 것
(2) 핵무기를 국내에 두지 말 것
(3) 핵동맹조약에 참여하지 말 것
(4) (핵무장국과 함께) 공격에 가담하지 않을 것

소극적 안전보장은 적극적 안전보장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핵공격이 실체화한 다음에야 UN안보리의 대응을 기대해야 하는 적극적 안전보장과는 달리, 비핵무기국이 자발적으로 핵부재를 증명함으로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을 통해 핵비확산이라는 국제적 대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소극적 안전보장도 동맹보다는 불확실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처럼 강력한 동맹을 가진 나라들은 여전히 동맹에 의존하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소극적 안전보장은 믿을만한 동맹국을 구할 수 없었던 불행한 나라 또는 비동맹/중립이라는 입장에 매력을 느꼈던 나라들을 위한 차선의 대안으로 남게 됩니다.


1.3. 핵무기부재지대(NWFZ)

소극적 안전보장을 위한 가장 유력한 실천방법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지역국가들이 뭉쳐 핵무기부재지대(Nuclear Weapon-Free Zone; NWFZ)를 형성[3]하는 것입니다. 이 방안은 기본적으로 NPT 제7조[4]가 추천하는 방법이며, 1975년 UN총회 결의 3472 B(XXX)[5]의 "모든 핵무기국은 우선 비핵지대를 존중하고 이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대하여는 핵사용 및 위협을 하지 않을 것을 법규화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법적 뒷받침을 받기도 좋습니다.

이 방안을 선구적으로 따른 것이 1967년에 성립된 남미비핵지대조약(Tlatelolco)으로 이 지역의 33개 남미/카리브 국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5대 핵무기국도 이를 보장하는 추가의정서(II)를 비준하여 법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4. 요약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핵무장국이 핵공격 위협을 느낀다고 할 때의 선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비동맹 상태에서 NPT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다음 적극적/소극적 안전보장을 받는데 만족함
2. 핵무기부재지대를 설립하고 비핵화를 입증해, 5대 핵무장국으로부터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음
3. 적극적/소극적 안전보장은 포기하고 5대 핵무장국 중 하나 이상과 동맹을 맺어 핵우산 보호를 받음

이상이 현 국제질서 아래서 가능한 세 가지 선택입니다. 이 세 가지 선택의 공통점은 해당국 스스로 비핵화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핵화가 입증되지 않으면 위의 세 가지 보장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선택에 속하지 않는 한 가지 유력한 대안이 남아 있습니다.

4. 기존의 모든 국제적 질서를 어기고 국제사회의 부랑아(rogue state)가 되어 자체 핵무장에 나섬



2. 제1차 북핵위기 前史

2.1. 제1차 북핵위기의 시발

북한은 소련의 압력을 받고 1985년 12월 NPT에 가입합니다. NPT에 따르면 가맹국은 조약의 의무인 핵시설 사찰을 규정한 안전조치협정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18개월 내에 체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7년 동안이나 이를 미루다가 1992년 초에야 IAEA와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그간의 핵활동에 대한 자체보고서를 제출하고 1992년 5월부터 1993년 2월까지 6회의 임시사찰을 받습니다. IAEA는 북한이 신고한 16개 시설을 사찰하면서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와 실제 사찰결과에 "불일치"가 심각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 불일치란 무엇이었을까요.

북한은 영변 5MWe 원자로를 1986년부터 가동해 1989년에 파손된 연료봉 교체를 위해 단 한 차례 가동을 중지하고 1990년에 이를 재처리해 90g의 플루토늄을 얻었다고 신고하고 샘플을 제공했었습니다. 하지만 IAEA가 시료를 분석해 본 결과 이 샘플의 플루토늄 동위원소들 간의 구성비가 다른 것으로 보아 각각의 인출시기가 다르며, Am243 분석을 통해 89년 한 번이 아니라 90, 91, 92년에도 연료봉을 인출했음을 입증합니다. IAEA는 북한이 kg단위의 플루토늄 추출을 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치가 존재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추정치는 6~12kg입니다. 우리가 1차 북핵위기 당시 많이 들었던 원시적인 핵폭탄 1~2개 분량이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게다가 IAEA는 북한이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며 사찰을 거부한 2개 시설이 재처리 시설 혹은 핵폐기물저장소일 것이라는 강한 의혹을 품게 됩니다. 이에 따라 IAEA는 2월 9일 영변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합니다만, 북한은 이 시설의 공개를 거부하다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되자 3월 12일 돌연 NPT 탈퇴라는 강수를 둡니다. UN안전보장이사회는 이에 맞서 NPT 탈퇴를 철회하고 조약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IAEA 특별사찰을 받으라는 결의 825호를 14-0으로 통과[6]시킵니다. 이것이 1차 북핵위기의 시작입니다.

북한은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그거야 정확히 알 도리는 없지만 가장 유력한 추측은 북한이 IAEA의 기술적 사찰 능력을 과소평가하여 속여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했을 거라는 설입니다. 즉 일단 속임수를 쓰다가 걸리자 배째고 나갔다는 거지요.

북한이 1993년 3월 12일 NPT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의 명분도 흥미롭습니다. 북한은 UN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은 남한과 함께 조선을 위협하는 핵전쟁 연습인 팀 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국과 특정 회원국을 부추겨 … 우리의 군사기지를 개방토록 요구"함으로서 "나라의 최고 이익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선언[7]합니다.

그런데 팀스피리트 훈련은 전부터 정기적으로 하던 것이고 북한이 이에 대해 비난을 퍼부어 온 것도 늘상 있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갖고 갑자기 "나라의 최고 이익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이 조성되었다고 보긴 힘듭니다. 게다가 북의 NPT탈퇴선언 직전, 남한이 호의적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조건없이 북한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아, 남한이 북한의 돌발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핑계가 무엇이든 간에 IAEA 특별사찰을 받지 않고 정면돌파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지요.


2.2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

한편 시계를 조금 뒤로 돌려 보면, 남한과 미국은 북핵 문제가 점차 부상하던 90년대 초, 북한이 IAEA 사찰을 받기 전에 북한의 비핵화를 겨냥해 상당한 양보를 했습니다. 핵우산을 직접적으로 담보하고 있던 전술핵무기를 철수시키고, 평화적 핵이용을 위해 제공되는 권리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또한 포기합니다.

구체적으로 노태우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각 현재 우리나라 어디에도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핵무기 부재선언을 하고, 이어 남북한은 1991년 12월 31일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한반도를 비핵화하자는 합의를 합니다. 이 비핵화 공동선언은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 제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8]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이 공동선언은 앞서 설명했던 핵무기부재지대(NWFZ)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남북한에 핵무기가 없으면 자연히 핵전쟁이 날 이유도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순히 그런 것이라면 미국은 언제든 대륙간 탄도탄이나 스텔스 폭격기 같은 것을 동원해 북한을 두들겨댈 수 있겠지요.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핵무기 부재지대는 우선 상호핵사찰을 통해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다는 것을 입증한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기존 핵무장국들로 하여금 공식적 안전보장에 동참하게 만들어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방안입니다. 게다가 한반도 비핵지대화는 1980년 이래 북한이 '조선반도의 비핵·평화지대화'라는 제목하에 늘 요구해 오던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이것은 북한의 핵 안전보장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남한과 미국의 제도적 대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이라는 이름의 이 합의에 따라 남북한은 1992년 3월 19일 제1차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 회의를 시작으로 5월 27일 회담이 결렬될 때까지 5차례에 걸친 회담을 진행합니다. 이때 남한이 비핵화를 위한 사찰규정을 조속히 채택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주변 여건 확립(?)을 먼저 해야 한다며 자주성이니 핵위협 청산 같은 뜬구름잡는 잡는 이야길 꺼내어 물을 탑니다. 게다가 북한은 남북한이 서로 같은 수의 시설을 사찰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많은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북한의 불성실한 태도는 "녕변에 대응,모든 주한미군시설을 봐야겠다"[9]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남한의 제안은 우선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한 곳씩 지정해 상호 시범사찰을 한 후, 연간 20개의 군사시설을 포함한 총 56개의 범위 내에서 사찰을 수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10] 결국 남북한에 의한 상호 핵사찰은 북한의 전형적인 '총론 합의 후 각론에서 회담 결렬시키기'에 걸려 좌초되고 맙니다.



3. 제네바 기본합의의 뒷처리

3.1. 제네바 기본합의 3조의 해석을 둘러싼 쟁점

자 이제 앞선 글에서 이어지는 제네바 기본합의의 3조 해석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지요.

그건 부시 행정부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대북외교정책 때문이 아닐까?

크린턴 행정부 시절 분명히 북미간에는 상당할 정도의 외교적 접근이 있었고 제네바 합의를 통해 미국이 더 이상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금지할 것을 공식적으로 확약했다. (The U.S. would provide formal assurances to the DPRK, against the threat or use of nuclear weapons by the U.S.)

그런데 부시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더불어 2002년 1월 국방부를 통해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발표했는데 유사시 핵무기 사용 국가에 기존의 러시아, 중국에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북한을 추가했다. 즉 명백한 제네바 합의 위반 사항이다.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금지한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


과연 그럴까요? 제네바 기본합의 3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III. 양 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1)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한다.
(2)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있게 취한다.
(3) 본 합의문이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대화에 착수한다.[11]

읽어본 분들은 누구나 아실 수 있겠지만, 미국의 의무(3조1항)와 북한의 의무(3조 2항)은 연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의무는 앞에서 제가 설명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의 전형입니다. 이 의무는 상대국이 핵의혹을 깨끗이 다 씻은 시점에 주어지는 것이지, 핵시설을 단순히 일시 동결했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네바 기본합의 3조를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것은 제네바 협상 수석대표였던 갈루치의 글로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에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주길 원했다. 물론 미국측은 그와 같은 보장을 할 용의가 있었다. 새로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구소련의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에 존재하는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그와 같은 보장을 제공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한국 및 일본과 상의해야 했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이들 국가에 대한 안보 공약의 약화로 비춰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12월 12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팀은 일본 외무성의 외교정책국 국장인 야나이 슌지(柳井俊二)를 만났는데 뜻밖에도 완강한 저항에 부딪쳤다. 야나이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일본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크게 우려했다. 그러면서 안전보장서에 북한이 NPT의 “정상적인 회원국”이어야 한다는 조건과 북한이 핵무장한 국가와 “함께 또는 동맹을 맺고” 다른 나라를 공격할 경우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구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계속해서 NPT를 우롱하거나, 러시아 또는 중국과 동맹하여 일본을 공격해도 미국의 핵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상황을 한 번도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미국측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갈루치는 미국이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단지 소극적 안전보장일 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12]

첫번째 강조는 동결이 아니라 북핵 '포기'와 소극적 안전보장 간의 교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두번째로 강조한 일본 외무성의 문제제기는 제가 앞에서 설명했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소극적 안전보장의 세부조건들을 재언급하면서 소극적 안전보장의 해석을 엄격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일본 당국자들도 이를 소극적 안전보장의 일종으로 보았다는 말이지요. 마지막 강조는 갈루치가 일본에게 이것이 (당신들도 잘 아는) 소극적 안전보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제가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이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우라늄 농축에 의한 비밀 핵개발을 추진하여 먼저 제3조2항을 위반했습니다. 제2차 북핵위기는 미국이 그 사실을 적발해 추궁하자 북한이 '그렇다 우리 HEU 있다 어쩔래'라며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면서 시작되었지요.

이런데도 3조 2항에 규정된 북한의 의무는 싹 입 씻고 3조 1항의 미국의 의무만 거론하며 미국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심각한 오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후에 소극적 안전보장을 미국이 약속했을 때 북한의 반응입니다.

200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에서 러시아 수석대표는 북한 대표단을 보며 지적했다. “미국인들은 진지하다니까.” “당신 이걸 봤소? 이건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거요. 우리도 냉전 내내 이런 걸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얻을 수 없었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남한 그리고 물론 북한도 포함된 저 유명한 ‘6자 회담’에서, 우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면서 2004년 이래 협상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당시의 쟁점은 방금 워싱턴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미국이 “핵이나 통상 무기로 북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는 구절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으로서는 커다란 결단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러시아 대표단 또한 그 점을 인정했다. 그것은 김정일이 끝내 안전보장 -그리고 그들이 주장하던 미국의 적대행위의 종식- 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북한 대표단은 후에 그 조항을 진정으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는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며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한 때 북한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 그 다음 순간에는 갑자기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표면적인] 요구사항과 [내면적인] 욕망은 크게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13]

이러한 반응은 제1차 북핵위기 당시 '팀스피리트 훈련'처럼, 제2차 북핵위기 때의 '핵태세보고서(NPR)' 또한 하나의 핑계거리에 불과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2003년 7월 고영구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은 평북 용덕동에서 97년 12월부터 2002년 9월까지 모두 70여차례의 핵고폭실험을 실시했다"[14]고 증언합니다. 이 시기는 제네바 합의가 유지되고 햇볕정책이 추구되던 시기지요. 이는 엄격히 말해 제네바 합의 자체를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북한이 여전히 핵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미국이 NPR에 북한을 거론할 만한 이유는 부시가 집권하기 전에도 충분했던 것입니다.


3.2. 시한폭탄: 연기된 사찰

제2차 북핵위기를 보는 대중적 시각 중에는 크게 잘못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제네바 기본합의에 정해진 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주고 그 대가로 영변 원자로를 해체하면 북핵문제는 잘 끝날 일이었다는 시각입니다. 겉보기에는 남북정상회담이나, 올브라이트 방북, 조명록 방미처럼 뭔가 외형적으로 있어보이는 정치적 이벤트들을 통해 대중들의 눈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사안의 핵심인 북핵문제는 전혀 진전이 없이 타이머가 돌아가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2절에서 설명했듯이 제1차 북핵위기는 북한이 IAEA 사찰을 받다가 덜미가 잡히자 그대로 국제질서를 상대로 극한투쟁으로 돌입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그 전에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를 결렬시킨데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핵사찰을 제대로 받을 생각이 전연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것은 경수로 제공을 지렛대로 한 핵동결을 통해 1994년의 극한대결을 경수로 기초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잠시 연기해 놓은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영변 핵시설 동결을 감시하기 위해 IAEA 사찰관 2명이 있었을 뿐, 그 어떠한 사찰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제네바 합의 제4조 3항에 따르면 “경수로 사업의 상당부분이 완성되었을 때 그리고 핵심부품이 공급되기 전에" 북한은 IAEA의 전면적 핵사찰을 수용하도록 규정[15]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당부분 완성'은 건물이 완공되어 터빈 발전기가 들어오는 시점이고, '핵심부품'은 원자로, 스팀제네레이터 등 돔 내부에 배치될 주요 장비입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건설과정이 진행된다면 이 기간은 서너달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찰은 그 정도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지요.

미국은 원자로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사찰이 완료되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남김없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런 사찰을 하는데 적어도 3년쯤은 걸린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찰은 공정 진행상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북한의 입장은 "원자로가 도입되기 전에 사찰을 시작하면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으며 계속해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합니다. 북한은 미룰 수 있는 데까지는 사찰을 미루고 싶었던 게 분명하며, 영원히 사찰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001년 11월 들어 부시 대통령이 "북한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된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국무성 대변인도 이를 부연해 "사찰을 위해서는 3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에 맞추어 IAEA도 3단계 핵사찰 계획을 제시하는데, 여기에는 제네바 합의에 의해 동결된 시설은 물론 북한의 NPT 탈퇴 파동을 만들어낸 문제의 시설 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즉 미뤄두었던 사찰을 둘러싼 대결 2라운드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핵태세보고서(NPR) 명단에 북한과 같이 오른 후 미국이 요구한 대로 적극적으로 비핵화 입증 의무를 이행하고 혐의를 털어버린 리비아 같은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단순히 북한을 상대로 함정을 판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북한은 리비아가 아니었지요. 북한은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비밀핵개발이 덜미를 잡히자 다시 예의 대결 투쟁으로 돌아갑니다. 이 패턴은 1994년의 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문제 의식이나 요구 자체는 일리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과의 대결에 임해 플루토늄과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지 못했고, 강압적이기 보다는 상대를 방치했으며, 상대 행동에 대해 금지선(redline)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등의 점에서 전술적으로 서툴었다는 점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4. 북한의 안전보장 문제의 성격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북한이 겨우 소극적 안전보장(NSA)이나 받으려고 15년 이상 위험천만한 핵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실제로 매우 불만족스러운 안보 대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적극적 안보보장, 핵무기부재지대, 미국의 서면안보보장, 평화협정, 6자회담 참가국의 연대보증 등을 비롯해,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기존 국제질서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선택을 거의 다 제시해 본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끝없이 투쟁하는 것은 기존 국제질서가 제공하는 그 어떤 틀도 북한의 안보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 국제질서인 핵 비확산조약(NPT) 체제 및 동북아 세력균형과 북한의 관계는 키신저가 말하는 혁명적 세력과 기존질서의 관계의 판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꿈꾸는 만족스러운 세계[16] 또한 북한의 필요에 맞추어 국제질서를 대폭 새로 쓰지 않는 한 달성될 수 없는 성격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한 나라가 국제질서나 국제질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억압적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와 다른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혁명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경우, 주어진 체제 내에서 이견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절충은 가능하지만 그러한 절충은 필연적으로 찾아들 결전을 대비해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술적 행동 또는 적대세력의 사기를 꺾기 위한 수단으로서 구상된 것이다.

물론 혁명적 세력의 동기는 방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은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세력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점이 아니다. 그런 인식은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의 본질상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절대적인 안전 -적대세력의 무력화- 만이 충분한 보장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절대적 안전을 추구하는 한 세력의 욕망은 모든 다른 세력에게 절대적인 불안전을 뜻하게 된다.

힘의 행사를 절제하는 기술로서, 외교란 그러한 환경에서는 동작할 수 없다.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이다. 혁명적 국제 질서 하에서 각 세력들은 상대에게 정확히 그런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외교관들은 여전히 서로 만날 수 있으나, 그들은 더 이상 동일한 언어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설득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외교 회담은 자신의 기본 입장만 무의미하게 되풀이하고, 상대의 불성실함을 규탄하거나 상대의 “부당함”과 “타도”를 주장하는 자리로 변한다. 그런 회담은 대립하는 체제들 사이에서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교한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된다.

오랜 평온에 젖어든 채 재앙을 겪어보지 않은 세력들에게 있어, 이러한 교훈은 어지간해선 체득하기 힘든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이 느껴졌던 안정의 시대에 마음을 놓은 나머지 그들은 기존의 틀을 때려 부수겠다는 혁명적 세력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혁명적 세력의 이의제기가 그저 전술적인 것인 양, 마치 혁명적 세력이 기성 질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만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사안을 과장하는 양, 혁명적 세력이 제한적인 양보로 달랠 수 있는 특정한 불만거리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 양 혁명적 세력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을 적시에 경고하는 이는 공연히 인심을 흉흉하게 하는 사람으로 간주될 뿐이다. 반면 상황에 적응하기를 권하는 자는 균형감각을 갖춘 분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들 또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갖고 있다. 이들의 주장들은 기성 질서의 틀 아래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화정책”이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유화정책은 혁명적 세력의 무제한적인 목표를 파악할 수 없었던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17]




[1] 1절의 설명은 황영채, NPT, 어떤 조약인가, 한울 아카데미, 1995의 7장을 주로 참고하였다.
[2] UN안보리 결의안 255호, 1968년 6월 19일 NR024836.pdf
[3] 전 세계적 핵무기부재지대의 현황에 대해서는 UN군축사무국의 설명을 참조.
[4] 본 조약의 어떠한 규정도 국가의 집단이 각자의 영역내에서 핵무기의 전면적 부재를 보장하기 위하여 지역적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에 영향을 주지 아니한다.(Each of the Parties to the Treaty undertakes to pursue negotiations in good faith on effective measures relating to cessation of the nuclear arms race at an early date and to nuclear disarmament, and on a treaty on general and complete disarmament under strict and effective international control.)
[5] UN총회 결의 3472 B(XXX), 1975년 12월 11일 UNAG30res3472i.pdf
[6] UN안보리 결의 825호, 1993년 5월 11일
[7] 북,탈퇴서한 안보리 제출, 연합뉴스, 1993년 3월 13일
[8]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 1992년 1월 20일
[9] 박정현, 핵사찰문제등 실질결실 못거둬/평양 6차 총리회담 결산, 서울신문, 1992년 2월 21일
[10] 황영채, 같은 책, pp.255-257
[11] 아메리카 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간의 합의틀 (통칭 "제네바 기본합의") 1994년 10월 21일
[12] Witt, Joel S., Poneman, Daniel B., Gallucci, Robert L.,
Going Critical: The First North Korean Nuclear Crisis, Brookings Institution, 2004
(김태현 역, 북핵위기의 전말: 벼랑 끝의 북미협상, 서울, 모음북스, 2005, p.353)
[13] Cha, Victor., Up Close and Personal, Here's What I Learned, Washington Post, 2009년 6월 14일
[14] 김용출, 高국정원장 "北 용덕동서 70여회 고폭실험", 세계일보, 2003년 7월 10일
[15] 경수로 사업의 상당 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부품의 인도 이전에, 북한은 북한 내 모든 핵물질에 관한 최초보고서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증하는 것과 관련하여 IAEA와의 협의를 거쳐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을 포함하여 IAEA 안전조치협정(INFCIRC/403)을 완전히 이행한다.
[16] 정치적/정책적 견해가 상당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 관해서 Victor Cha와 Robert Carlin/John W. Lewis는 의외의 일치를 보여준다.
Cha, Victor., Up Close and Personal, Here's What I Learned, Washington Post, 2009년 6월 14일
Carlin, Robert., and Lewis, John W., What North Korea Really Wants, Washington Post, 2007년 1월 27일
[17] Kissinger, Henry A.,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 of Peace 1812-22, Boston: Moughton Mifflin Co., 1957, pp.1-3
by sonnet | 2009/06/30 10:17 | 정치 | 트랙백(1) | 핑백(3) | 덧글(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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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rete의나라사랑_2.. at 2009/07/01 09:40

제목 : 북한을 위한 변명
북한을 위한 변명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양쪽의 불성실이 너무 컸습니다. 등록일 2006-11-23 얼마 전에 김정일을 위한 변명이라는 글과 의회 보고서를 통한 대북 정책......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7/13 02:08

... 앞선 글에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a>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물론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핵포기만 확실하다면 여기에 더해 경제원조, 외교관계,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이나 중국-러시아 등의 보증, 평화협정 체결 등 여러가지 선물을 덤으로 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키신저가 말하는 국가간 갈등의 구조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물론 혁명적 세력의 동기는 방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은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7/27 10:33

... 입장에 대등한 무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북한 대 나머지 세계라는 구도인 것이지요. 제가 이 논의를 시작하면서 거듭 강조해온 것은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국제 ... more

Linked at 날라리 무도인의 잡소리 : 무.. at 2009/07/27 12:17

... 입장에 대등한 무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북한 대 나머지 세계라는 구도인 것이지요.제가 이 논의를 시작하면서 거듭 강조해온 것은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국제 ... more

Commented by monsa at 2009/06/30 10:30
refernce 14번 같은 이야기는 꽤나 후덜덜하군요. 70번의 고폭이 사실이라면, 이미 소형화와 EMP 차폐에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를 못하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0
새 ADD소장은 핵탄두1기=2kg 설을 이야기하던데, 그럼 그건 선진국 수준이라는 이야기고 기존에 이야기하던 것(4~6kg)보다 핵탄두 보유량이 단번에 2배가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북한이 그정도로 앞서있는지는 회의적이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북한의 핵기술에 대한 평가가 상향조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Alias at 2009/06/30 15:45
사실 흔히 "핵선진국" 이라고 말하는 P5 국가들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플루토늄 사용량을 줄이지 않습니다. 몇 킬로그램에 목숨걸 필요가 없이 충분한 플루토늄이 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플루토늄 1킬로그램 갖고도 기폭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럴 경우, 반사재를 훨씬 두껍게 바르고, 고폭렌즈를 훨씬 더 강력하게 설계해서 높은 압축률을 내고 정확한 시점에 중성자샤워를 퍼부을 장치 등등 해서 오히려 경량 소형화에 방해가 됩니다....-_-; 그나마도 그런 걸 구현가능한 기술이 있는 경우에 말이지요.

실용 탄두의 경우 플루토늄 4킬로그램이 거의 하한선입니다. 이것도 폭발력 또는 불발율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죠. 거의 확실하게 터뜨리고 싶으면 역시 가장 신뢰도 높은 나가사키형으로 가야 합니다. (6킬로그램 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21
네, 해설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보기에도 그가 2kg을 뒷받침할 무슨 특별한 정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슈타인호프 at 2009/06/30 10:44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놈의 동네는 정말 언제나 할 말을 잃게 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2
보고 있으면 갑갑하긴 하죠. 그들도 그렇겠지만.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9/06/30 10:44
마지막에 인용하신 키신저의 견해 부분은 비록 책의 소재가 비인 체제의 구축 관련이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관련되어 도출된 결론이라는 느낌입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도 그때와 은근히 비슷한 데가 있다는 생각인데... 여러 가지로 답답함만 남는 일입니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처지라니.
Commented by shaind at 2009/06/30 12:08
저 "혁명적 세력"과 "유화정책"을 보면 일단 딱 뮌헨 회담이 떠오르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1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독일을 떠나 온 10대 유대인 소년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할 듯.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1:33
제가 예전에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이 어디에 있냐고 질문했을 때는 다른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서야 올바른 말씀을 하시는군요. http://sonnet.egloos.com/3030707
이제는 어째서 제네바 합의 파기 책임이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북한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주사파와 햇볕정책지지자의 주장을 격퇴하고 그들의 주장이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30 11:44
오늘도 이글루스 자유의 촛불 teferi님께서 전라남북도, 광주광역시, 김대중, 노무현, 문근영,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 참여연대, 여성민우회, 인권운동사랑방, 엠네스티, 국가인권위원회, 민주노총, 현대차노조, 금속노조,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등에 맞어 우주를 지키고 계십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09/06/30 11:56
처녀는 잘 구하셨는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3:56
피식. 햇볕정책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대북예방전쟁론보다는 훨씬 나아요. 키신저의 데탕트처럼 햇볕정책에는 재활용의 소지가 상당히 있죠.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4:13
행인1/블로그에 가서 보니까 멀쩡히 글을 쓰는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를 칭찬하려는 의도라면 님의 글은 저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멈춰주기를 부탁드리며, 저를 조롱하려는 의도라면 님의 글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멈추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타인의 블로그에서 제 3자를 공격하는 것은 블로그 주인에게도 블로그 방문객에도 불편한 것입니다. 행인님의 글을 보는 사람은 행인님의 편이 되거나, 제 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인 sonnet님은 자신이 시작하지도 않은 싸움을 블로그에서 보게 되어 불편하실 것이며, 방문객분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하라고 말씀은 못하겠지만 그만하는 것이 행인님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maxi/제가 처녀에 대해 한 포스팅에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 블로그로 와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댓글에 관계도 없는 댓글을 달면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겠습니까.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주세요.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4:38
sonnet/님이 지금까지 밝힌 견해로 판단한다면 님이 생각하는 대북정책의 순위는 냉전정책>햇볕정책>대북예방전쟁론 이겠군요.

대북예방전쟁론과 냉전정책의 차이는 북한의 핵보유상태를 용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것이며,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벌어지는 북한의 핵협박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느냐, 아니냐일 것입니다.

저는 북한이 그 불안정한 상태로 인해 설득력이 있는 핵협박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협박이 아닐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핵전력이 완전하지 않은 시점에서 대북예방전쟁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반면에 sonnet님은 북한이 완성된 핵전력을 이용해서 핵협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미국의 핵우산 등으로 핵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협박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고, 협박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판단을 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의문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협박에 굴복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sonnet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6/30 15:46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만 해야겠죠.

윌리엄 태컴셔 셔먼 왈 ""전쟁의 영광이란 건 완전히 헛소리다. 그딴 소리는 총 한번 쏴보지도 않고 피와 복수와 파괴를 큰소리로 울부짖는 부상병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인간들이나 하는 소리이다. 전쟁은 지옥이다."라고...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30 16:34
teferi/ 느닷없이 이 블로그 주인장님께 '사상검증 쇼'를 들이대셨던 분이 그런 말씀을 하기면 가카급 개그가 됩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6:41
저는 sonnet님이 제가 댓글을 다는 것을 중지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대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행인1님이 sonnet님의 블로그에서 sonnet님이 의도하지 않은 분란을 벌이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6/30 16:49
먼저 자신의 논거를 제시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쌍방의 확실한 파괴를 담보로 하는 핵의 비사용은 오랜시간 검증된 내용인 이상, 북한이 이제까지의 핵보유국과 본질적으로 달라서 자살에 가까운 선제핵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셔야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7:23
일화/기존의 핵보유국은 외부의 압력에 취약하지 않은 국가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점진적 개방으로 체제를 강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생존을 위해 대한민국을 공격해 멸망시킬 동기가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괴상한 사상으로 세뇌당한 상태이며, 그 세뇌로 인해 자신의 객관적인 역량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내적으로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핵미사일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굴복하는 것이라는 선전논리에 의사결정자 자신도 속아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핵미사일이 한 기라도 있으면 미국은 한국이 핵으로 타격당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하고 핵을 날려서 최후의 도박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39
teferi/ 그 가능성은 얼마나 높으며, 또 얼마나 임박한 사건인가요?
예방전쟁(preventive war)와 선제전쟁(preemptive war)을 가르는 기준이 거기 있습니다.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30 17:55
현재 북한은 미국본토를 향해 투발할 수 있는 미사일의 개발이 아직 되어있지 않고, 몇몇 곳이 핵공격이나 통상공격을 받아 파괴되어도 한 기 이상 살아남아서 미국에 대한 보복공격에 나설만한 충분한 수의 미사일과 지하사일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미국에 대한 보복공격용과 한국공격용으로 쓸 충분한 수의 핵탄두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격이 임박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충분한 수의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 지하 사일로를 확보한다면 오판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체제가 벼랑끝으로 몰렸을 때 그러한 군사적 모험의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6:44
오랜 시간을 들여 그런 체계적인 준비를 갖출 만큼은 계획적인 국가이면서 "오판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저도 오판의 가능성은 늘 있다고 보지만, 그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면 억제력에 기대하면서 작은 가능성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매우 값비싼 대가를 필요로 하는 선택인데, 예방전쟁은 불필요할 수도 있는 전쟁을 확실히 일어나게 만들기 때문에 대개 좋지 못한 선택입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30 11:42
뭐랄까 문제는 참 많이 악화되었는데 답은 없는 듯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9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적응해야죠. 예전에 썼던 글을 재활용하자면,

"우리측 연합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북핵불용'이란 대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목표일 뿐이며, 한동안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것이 확실시 된다. 실질적으로는 짧아도 5년 이상, 길면 한 세대 이상의 기간 동안 반동분자들이 인민을 위협하기 위해 사용하는 종이호랑이를 머리맡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긴 시간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원칙과는 별도로, 20세기의 베스트셀러 怪愛博士之育兒全書를 다시 펼쳐들 필요가 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6/30 11:56
한줄요약 : 암덩이와의 협상....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9
지금 자꾸 관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측면이 있죠.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6/30 13:51
하여튼 북한같은 이웃이 우리 위에 있다는 게 참...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4:06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요소가 아닐까요 ^^
Commented by 솔솔이 at 2009/06/30 14:28
impossible is nothing이군요. 차라리 가랑잎으로 대동강을 건넌다는 소리가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6:54
쟤네가 포기하면 좋은데, 적어도 쉽게는 포기하지 않을 분위기다보니까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06/30 15:04
하지만 저 마지막 인용은 거스름돈 처지인 국가들 입장에선 별로 수용이 안되겠죠. 결국 저 체제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거스름돈 처지인 국가들에게 뭘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고대 중국을 제외하면 이게 '수세기'동안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시스템화가 된건 없는듯 합니다만... 그나마 중국도 사실 한반도를 제외하면 저걸 수세기 씩이나 안정적으로 굴렸다고 보기에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6:56
거스름돈인 처지의 국가란 게 '혁명적 세력'인 북한인가요, 아니면 옆에서 시달리는 남한같은 다른 나라들인가요? 거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06/30 17:04
옙. 그렇기는 하네요. 북한과 남한은 또 다르겠죠. 거스름돈중의 일부는 5천원권일거고, 일부는 10원 동전 일텐데, 5천원권과 10원 동전의 입장은 다를수 밖에 없겠죠. 물론 저 이야기는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거스름돈 국가들이 생각나서 한 이야기입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13
사실 NPT라는게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지위를 영속화하는 보기드문 불평등조약이다보니까 불만이 생기는 것도 피할 수 없기는 합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6/30 15:15
북한과의 대결에 임해 플루토늄과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지 못했고, 강압적이기 보다는 상대를 방치했으며, 상대 행동에 대해 금지선(redline)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는 등의 점에서 전술적으로 서툴었다 => 일부 분들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부시정부가 과도한 요구사항을 했다고 주장하시는데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단호한 자세로 긴 시간 동안 계속될 관리에 임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 소넷님의 결론인 듯 합니다. 확실히 현 핵정세 하에서 아무리 재래식 전력을 감축한다고 해도(그럴리도 없겠지만) 핵 부랑아에게 따스한 대접을 해준다는 것은 무리로 보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10
네, 요구사항 자체는 별 문제가 없고 사실 나름의 정당성도 있는데, 문제는 그걸 성공적으로 다룰 전술이 겸비되지 않으면 긁어부스럼이 되기 쉬운 것이겠지요.
Commented by 개멍 at 2009/06/30 15:23
이 동네는 애초에 NWFZ 가 지정학상으로 불가능하군요...
남한이 취할 수 있는 대안들에 대한 해설 (맘대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07
학자들 사이에서는 동아시아 비핵지대론 뭐 이런 걸 제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로 볼 때 NWFZ는 지역적 긴장이 원래 높던 동네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여간 우리로서는 북한에 기회를 줬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남한의 대안은... 음...
Commented by vicious at 2009/06/30 16:13
아.. 답이 안보이니 암울하네요.

몽둥이가 약이긴 한대, 함부로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두기도 뭐하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6:59
네, 어려운 문제죠.
Commented by 해해성원짱 at 2009/06/30 17:11
자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의 재편을 북한이 노린다라.....

웬지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끝나지 않을 일인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30 17:17
그럴 수도 있지만, 평화적 해결책을 최대한 모색해 봐야지요.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6/30 17:27
진짜 견적이 아니나오니 정말 난감하겠습니다.

현실은 듣보잡인데 망상은 우리가 킹왕짱이니. ㅡㅡa

미쿡입장에선 꼬맹이가 깝죽대는데 때리자니 좋은거 하나없고 잘못하면 Doomsday이니.




대안은 뽀글이 수령동무가 축지법으로 미쿡을 쳐부셔야! [야!]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27
하하, 간단히 협상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30 18:42
다들 너무 비관적이신듯? 북한 사태의 핵심은 지금 동아시아에 미국이 host하는 인류 역사에 손꼽힐만한 최고의 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데, 북한만 초대못받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중동과 다르게 이쪽은 status quo만 유지해도 관련국가 전원-미국,일본,한국,중국-은 다 좋은 거라구요?

북한이 아무리 막나가봤자 중국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사고를 칠 수는 없는데, 중국은 (앞으로 30,40년간은) 파티가 파토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큰일은 절대 벌어질 수가 없죠.

결국 북한은 실속없이 긴장만 고조시키고, 나머지 국가들은 자국민 무마용으로 압박하는 시늉만 하다가(UN은 이럴때 정말로 유용), 적당히 미봉책으로 부스러기나 던져주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가겠죠 뭐.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32
너무 비관적인 반응도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것도 유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이지만, 세상이 꼭 그렇게 합리적으로 돌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1차대전 직전에도 유럽 강대국들의 경제적 상호이익이 전쟁을 막아줄거라는 아주 유력한 주장이 유행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런 방향이 유력하긴 하지만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는 시나리오에 너무 몰입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한뫼 at 2009/06/30 19:18
답이 없네요. 역시 미친 놈(뇌내망상 환자)은 상대하기 어렵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32
북한이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지요. 그건 누구나 동의할 듯.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06/30 21:07
사소하지만 팀스피리트 훈련은 남북대화를 조건으로 1992년에 일시 중단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33
예. 조건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IAEA 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하고 사찰을 받는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아버지) 부시가 처음에 그렇게 요구햇었지요.
Commented by nishi at 2009/06/30 22:43
怪愛博士之育兒全書

이게 뭔가요?
Commented by 스카이호크 at 2009/06/30 23:16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얘기입니다.
Commented by shaind at 2009/07/01 10:00
방사능이 닿지 않고 핵발전기로 전력공급을 받는 깊은 광산갱도에 남자 한명당 여자 10명을 붙여서 인구를 증가시키면 12년만에 현재의 GNP수준으로 복귀가능하다던가 하는 그런 이야기가 포함된...... -_-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7/01 08:56
미칠려면 '곱게' 미쳐야 하거늘...이랄까, 이래저래 갑갑하군요.
하여튼, 시간 '죽이기'에는 도가 튼 친구들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27
저쪽은 곱게 죽어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Crete at 2009/07/01 09:42
소넷님께서 본문에 언급하신 저에 대한 내용을 해명하는 부분이 담겨 있고, 또한 소넷님이 북한과 미국간의 핵문제를 보시는 시각과 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저의 예전 글을 올립니다. 꼭 반론이라기 보다는 소넷님의 방점과 제 방점이 조금 다르다는 말씀을 드리는 걸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북한을 위한 변명
http://crete.pe.kr/341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6:11
2차 NPR이 북한에게 도발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사정이지 우리가 거기 동조해 줘야 하는 건 아니죠. 게다가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3조 의무의 불이행은 더더욱 아니구요.
Commented by H-Modeler at 2009/07/01 12:18
대제폐하의 최근 북핵 포스팅들을 모조리 머릿속에서 뭉뚱그려서 곱씹어 보고 있었는데......
북한 핵 문제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결' 이라는 방향으로 접근할 길이 애초에 막혀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당사자가 그 어떤 협상이건 합의건 간에 별 상관없는 얘기 내지는 시간벌기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야.....-_-
이렇게 되면 이제 '북핵문제 해결'의 단계를 지나서 '핵보유국 북한'을 상대로 어떻게 어르고 달래느냐 하는, 그야말로 권총 한자루 손에 넣더니 그걸 심야의 편의점 점원한테 들이대는 애새퀴[...]를 어찌 상대해야 하냐는 문제를 슬슬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현재 당면한 문제는 저걸 시간을 더 들여서 우려내는[...] 것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 하는 것 정도, 그리고 어느쪽이 그나마 지푸라기가 더 굵직하냐 정도겠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현재의 북한과 같은 케이스는 역사에 전무한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건 간에 앞으로 국제정치 교과서에 길이길이 남을 케이스가 될 것 같습니다.-_-


p.s:
반쯤 농담삼아서 트라이던트니 전면핵공격이니 했는데, 오황상이 발등에 불을 대충 진화하고 나면 더이상 농담으로 말할 정도가 아니게 될듯도.....-_-

p.s2:
......반이 농담이면 나머지 반은?![...]
Commented by Alias at 2009/07/01 15:56
님이 리플에 쓴 주기도문을 간단히 번역해서 트랙백 걸어놓았습니다...-_-;

그런데 흔히 아는 주기도문의 맨 마지막 문장이 빠져 있더군요...성당(천주교)은 그런가요? 제가 잘 몰라서...

그리고 이라크에서 내년중순까지 철군한다고 하죠... 조낸 실전경험 많은 미 육군이 십수만단위로 "예비병력"으로 돌려집니다....ㅎㄷㄷ
Commented by H-Modeler at 2009/07/01 21:53
아, 그부분은 성당에선 영광송으로 주기도문 후에 따로 합니당.

이라크 끝나도 뭐, 일단 아프간에 쏟아붓느라 바쁘긴 하겠지만.....;;
그후엔 정말 저게 농담이 아니게 될수도.....ㅡ.ㅡ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48
북한은 협상에 나가서 챙길 건 또 챙기고 싶어하니까요. 결국 그들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협상으로 챙길 것은 챙기고, 그러면서도 핵도 또한 갖는 것이겠지요. 주변 5개국의 대응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다른 것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게 사실 북한이 "그래 그럼 핵을 갖겠다"고 나왔을 때는 신통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엑스트라 1 at 2009/07/02 12:54
전임 행정부에 비해 유화적이라고 평가받는 오바마 황상은 이 '혁명적 세력'이 보여주려는 '혁명적 본때'를 어떻게 다룰지 참 궁금하군요. 아무래도 미국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려하는 것 같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43
오바마는 이미 부시(수사 말고 실제로 했던 것)과 비슷한 정도로는 강경한 입장인 듯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북한이 연속해서 도발을 걸어온 이상 미국도 함부로 양보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되구요.
Commented at 2009/07/02 13: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7/02 15:40
네, 개인적인 보관 용도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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