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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ime Change: 이라크전 전사(前史)

regime change(체제 교체)라는 말이 사용될 때는 거의 언제나 비정통적인 방법을 지칭합니다. 즉 정규전을 통해 목표국을 점령한 후 새 정부를 세우는 그런 것은 제외하고, 내부정변, 쿠데타, 시민봉기, 게릴라, 반군 같은 방법을 통해 정권교체를 달성한다는 것이지요. 부시행정부 들어 북한을 겨냥해 레짐체인지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언론에도 이 단어에 주목하게 됩니다.

제 기억에, 2004년 후반부터 부시 행정부 말에 이르기까지, 이종석을 포함한 당시 안보정책 결정자들의 뇌리를 장악했던 걱정은 북폭보다는 레짐체인지에 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밖에서는 이 둘을 잘 구분않고 사용했던 것에 비해, 안에서는 꽤 날카롭게 갈랐던 것 같고, 특히 펜타곤이 북폭파라면 체니 부통령실이 레짐체인지에 꽂혀있다는 식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ytekai)

저는 사실 북한의 레짐체인지 가능성은 거의 무시해도 좋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종석이 이걸 그렇게 걱정했다고 말씀하시니까 한 번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시 행정부 멤버들이 북한을 겨냥해 레짐체인지를 언급했다고 한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돌이켜봐야 할 것은 이라크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90년대에 야당 인사로 지내면서 이라크 레짐체인지 운동에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열심인 정도는 북한에 대한 단편적인 언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첫 번째 이라크 레짐체인지는 클린턴 행정부에 의해 시도되었다는 점입니다.

1993년 11월, 사담 후세인을 전복시키는 데 골몰하던 저항집단인 이라크 국민회의(Iraqi National Congress; INC)의 아흐마드 찰라비(Ahmad Chalabi) 의장은 ‘엔드 게임(End Game)’이라 명명한 네 단계 전쟁계획을 클린턴 행정부에 제시했다. 여기에는 그 전쟁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자금까지 다급하게 촉구하면서 찰라비는 “지금 당장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바야흐로 이라크에서 자생적 내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그 도화선만을 당겨준다면 내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사담 체제는 전복되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10년 동안 찰라비가 설득력 있게 거듭해서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런 메시지였다.

어쨌든 찰라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겨도 좋다는 허락을 클린턴 행정부에게서 받아냈고 자금 지원까지 받았다. 그리고 1994년 10월쯤에는 쿠르드족이 관할하는 이라크 북부의 한 지역에 CIA 파견대가 소규모로 설립되었다. 찰라비의 본부도 그 근처에 있었다. 찰라비의 계획은 이라크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로 불만을 억누르고 있던 시아파 교도(사담과 그 추종자들은 대부분 수니파)가 압도적으로 많은 바스라와 북부의 쿠르디시, 키르쿠크, 모술에서 동시에 폭동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럼 이라크 군대에서 대규모 탈영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당시 이곳을 담당하던 CIA요원 밥 바에르(Bob Baer)는 “우리는 이 작전을 찰라비의 쿠데타라고 불렀다”라고 말했다.
바에르는 당시 상황을 그의 회고록 『See No Evil』에서, “CIA는 이라크에 단 한 명의 정보원도 심어놓지 못한 실정이었다. … 이라크 내에 단 한 명의 정보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이란, 요르단,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국가에도 이라크에 대한 정보를 전해줄 정보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다른 정부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수집하는 기구라는 CIA조차 이라크에 관한 한 눈먼 장님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1995년 3월, 찰라비의 폭동이 닻을 올렸지만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바에르는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계획보다 사흘이나 늦게 독자적으로 행동한 쿠르드족의 한 지도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내게 말했다. 이라크 군부 내에서 첩자를 심어두려 했지만 찰라비는 대령이나 장성은 고사하고 위관급 장교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바에르는 “찰라비는 사담을 시험한 것이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바에르는 “찰라비는 허세를 부리며 엄포를 놓은 것이었다. 그는 허세를 부리면서 승리를 쟁취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수단도 없지 않았는가!”라며 “찰라비는 심리전이라고 생각했다. 클린턴이 ‘제군들, 이제 공격할 때가 되었어!’라고 말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면 사담을 전복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1996년 말, 이라크군은 북부지역에서 찰라비 추종세력을 거의 몰아냈다. 이때 130명의 이라크 국민회의 회원이 처형당했다.[1]

찰라비의 계획은 사담 후사인 정권이 사실 매우 취약해서 한 번 깃발만 들면 이탈자가 속출해 그대로 무너질 거라는 식의 비현실적인 희망에 입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한마디로 망상에 불과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면서 그들이 이라크 국내에 거의 지지자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찰라비는 클린턴 행정부 대신 공화당에 밀착해 재기합니다.

찰라비는 실패의 쓴 맛을 멋들어지게 이겨냈다. 이라크 북부에서 그를 버렸던 클린턴 행정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언론과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곧 INC는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재집결지로 부상했고, 첫 부시 대통령을 위해 걸프전에 관여했던 많은 전직 고위관리들도 INC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8년 2월, 캐스퍼 와인버거, 프랭크 칼루치, 도널드 럼스펠드 등 국방장관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들을 비롯해 40명의 저명인사가 서명한 공개편지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대량으로 비축하고 있어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경고하는 편지였다. 그들은 미국 정부에 이라크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민중봉기를 다시 한 번 계획하라고 촉구했다. 찰라비의 1993년 전쟁계획을 그대로 되풀이한 듯한 이 공개편지에서 … 그들은 INC를 이라크 임시정부로 인정하고, INC가 이라크 북부에 거점을 다시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클린턴 행정부에 걸프전 당시에 동결시킨 이라크 자산(약 15억 달러)을 해금시켜 임시정부를 지원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이라크 저항세력을 군사적으로 훈련시키고 군 장비를 지원하는 데 9천7백만 달러를 할당하기로 한 ‘이라크 해방법’에 서명했다.[2]


그리고 공개서한에 동참한 이들 중 다수가 다음 부시 행정부에서 주요 고위직에 취임합니다.

2000년 대통령 유세기간 동안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는 사담에 저항하는 반군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했다. 부시는 “사담을 축출하겠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사담이 대량살상무기를 계속 개발하는 경우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말이다. 선거가 끝난 후,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사견을 전제로 이라크가 새 정부의 우선적 해결 대상국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 하지만 부시 행정부 내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담 후세인과 그의 체제를 제거하는 것이 첫 걸프전 이후로 주된 관심사였다. 클린턴에게 이라크 반군 세력의 지원을 촉구한 1998년의 공개편지에 서명한 사람들 중 서넛이 부시 행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예컨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담당 국방차관이 그런 인물들이다.

1998년의 공개편지를 기초한 사람 중 하나는 리처드 펄이었다. 펄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에 국방차관보를 지냈고 … 부시 행정부에서 펄은 국방정책위원장에 임명되어, 펜타곤에 전략적 문제들을 조언했다. 찰라비는 부시 행정부 내의 다른 인물들, 예컨대 럼스펠드와 페이스, 그리고 딕 체니 부통령의 수석참모인 루이스 리비에게도 연줄이 닿았다. 오랫동안 찰라비는 미국기업연구소[네오콘계 싱크탱크]의 저명한 회원들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의 지원을 꾸준히 받고 있었다. 물론 CIA 국장을 역임한 제임스 울시처럼 민주당에도 그를 지원하는 유명인사들이 있었다.[3]

다들 잘 알려진 부시 행정부의 매파들이지요. 이 외에도 후에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가 될 인사로는 엘리엇 에이브럼스, 리처드 아미티지, 존 볼턴, 폴라 도브리안스키, 잘메이 칼릴자드, 피터 로드먼, 로버트 졸릭이 여기 서명하고, 윌리엄 크리스톨, 로버트 케이건,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네오콘 논객들도 동참합니다.[4]


여기서 찰라비 세력을 이용한 작전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지요.

찰라비의 한 보좌관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9·11테러 이전의 INC의 전쟁계획은 저항세력을 군사적으로 훈련시키고 사담 체제 내에서 변절자를 찾아내며, 미국이 이라크 남부의 비행금지구역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요컨대 2백 명의 교관을 선발해서 5천 명 가량의 저항세력군을 훈련시키고, 십중팔구 미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짜여질 용병부대를 구성해서 군사력을 강화시키자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또한 반군(叛軍)을 이라크 탱크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에서 강력한 공습으로 어떤 수송수단도 다닐 수 없는 지역을 확보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5]

이들의 작전은 기본적으로 망명 이라크인들을 훈련시켜 소수(~수천 명)의 경보병 부대를 만들어 싸움을 맡기고, 필요하다면 이들을 미 공군을 이용해 지원한다는 식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라는 것은 아주 오래된 레퍼토리 중 하나이긴 하지만 성공률은 낮은 편입니다.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쿠바 피그스만 침공이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전을 계속 기획하게 되는 것은 정규 육군 사단을 동원한 본격적인 전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는 9.11 이전의 국내정치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미군 장성들은 이런 작전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중부군 사령관을 지낸 진니 장군은 찰라비 세력을 이렇게 평합니다.

요즘 이라크 해방법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고, 실크 양복을 입고 롤렉스시계를 차고 런던에서 소일하는 INC를 앞세우고 싶어 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1천 명의 그런 전사들을 9천 7백만 달러에 상당하는 AK-47로 무장시켜 이라크에 침투시켜야 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무엇을 얻겠는가? 기껏해야 ‘염소만’(피그스만의 패러디)일 것이다. [6]

여담입니다만 찰라비는 훗날 미군의 침공으로 사담 정권이 무너진 후 귀국하지만 부시행정부 고위층의 각별한 비호를 등에 업고서도 국내 지지세력을 규합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맙니다. 결국 모로 가도 안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죠.

이런 문제점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결국 이라크 전면침공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9.11이 없었더라면 생각할 수도 없었던 길이었지요.


그런데 레짐체인지라는 것은 꼭 망명자 단체를 앞세울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CIA가 비밀공작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든가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그것 또한 이라크가 아주 좋은 참고가 됩니다.

[CIA 이라크 공작 책임자] 사울은 숙련된 비밀공작원들과 첩보국(DI) 출신 정보분석요원들을 불러모아 과거의 작전을 재검토시켰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12년 내지 15년간 이라크 문제를 다뤄 경험이 풍부했고, 나머지는 발칸반도에서 비밀프로그램을 수행해온 요원들이었다. 핵심문제는 '이라크에서의 비밀공작을 어떻게 보는가?'

영화와 현대적 신화에서 묘사되는 CIA는 무엇이든할 수 있는 광신적 전사들로 채워진 곳이다. 그들은 불가능한 임무와 위험성을 갈구하는 사람들이다. 사울이 내린 결론은 판에 박힌 고정관념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요약한 사실은 "비밀공작으로는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수 없다."

CIA는 1979년부터 권력을 잡은 후세인이 자신을 보호하고 쿠데타를 막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경호체계를 완성했다는 현실을 직시했어야 한다. 이라크 특수보안기구가 그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고, 대통령경호실은 24시간 수행하고 있으며, 공화국특수수비대는 대통령궁과 수도에 있는 정부기관들을 방어하고 있다. 4개의 첩보기관들이 그들의 업무를 지원하였으며, 10여개의 육군 사단을 쿠데타를 분쇄하는데 동원할 수 있었다.

이라크 정부는 후세인의 생명을 지키고 권력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목표 아래 기능했다. 권력 내부에 대한 첩보활동·계획된 의혹·역할과 권한의 중첩·책임의 분산은 후세인을 이라크 국가 내 모든 것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만들었다. … 성공할 수 있는 길은 CIA가 군의 이라크 전면침공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것만이 성공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CIA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선두에 나섰지만, 이라크에서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임무는 너무 어렵고 목표물은 너무 크다. 후세인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뚫는 것은 군사작전과 침공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7]

2002년 1월 3일 사울은 테닛과 근동과 부과장 그리고 이라크 프로그램을 수행해온 두 명의 공작요원과 부통령에게 보고하러 갔다.

사울은 어조를 부드럽게 조절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비밀작전으로는 후세인을 제거할 수 없다'고 체니에게 말했다.

'CIA는 해법이 아닙니다. 독재정권이 조직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목표는 쿠데타를 막는 것입니다. 후세인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입니다. 그 '새끼'는 쿠데타를 억눌러 왔고, 쿠데타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부통령이 이라크 군대를 맡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쿠데타를 일으킬 탄환은 가지고 있지만 탱크를 움직일 기름은 없습니다. 부통령이 기름을 가지고 있다면 탄환을 주지 않습니다. 쿠데타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기간 만큼 한 자리에 오래 앉아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시도한다면 권부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후세인은 쿠데타를 기도할만한 사람들은 일찍이 격리시킵니다. 가능한 팔다리까지 따로 떼어놓으려고 할 사람이니까요. CIA가 측면지원하는 군사작전과 정면침공을 통해서만 후세인을 제거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CIA는 과거 이라크 비밀 공작에서 교훈을 얻기 위한 검토를 진행해봤습니다만, 솔직히 CIA는 때가 많이 탔습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심각한 신뢰도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쿠르드족과 시아파, 이라크의 예비역 장교들을 포함하여 CIA와 조율해본 사람들은 거의 다 자신들이 필요할 때면 "꼬리 자르고 도망간" CIA의 역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잠재적인 반 후세인 세력에게 전에 없이 결단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카드란 카드는 이미 다 써먹어서 이제 대규모 군사적 침공준비 이외에는 그러한 신호로 간주될 만한 것이 없었다. 사울은 UN에 가서는 협상과 봉쇄를 천명하면서 사우디와 요르단에게는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극비리에 축출할 것이라고 귓속말을 하는데서 파생되는 문제점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 또 다른 교훈은 CIA가 장기간 비밀공작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없다는점입니다. 후세인 정권은 우리가 새로 기용할 만한 정보원들을 색출하여 한직으로 전출시켜 버리기 때문에 재빨리 손을 쑬 수밖에 없습니다."

[CIA 국장] 테닛과 사울 일행은 그 뒤 대통령에게도 동일한 브리핑을 했다. 부시가 물었다.
"우리는 은밀한 방법으로 그것을 할 수 있소?"
"없습니다."
부시는 그때 "젠장(darn)!"이란 말이 얼핏 떠오르더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CIA는 '이라크 내에서 새로운 정보원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진지하게 임해야 되고 군대를 사용할 것이라는 언질을 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8]

이라크 내 CIA 비밀정보원은 정확히 네 명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외무부나 석유부 등 정부의 일반 부처에 있었던 관계로, 권력 핵심부를 뚫고 들어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따라서 CIA가 공화국수비대 또는 특수보안기구 같은 군 내부로 침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 이라크 내부에 심어 놓은 정보원은 비밀통신망을 이용했다. 바그다드에는 미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통신위성을 통해 컴퓨터로 단파 송신을 CIA 본부로 바로 날려 보내는 방식을 흔히 썼는데, 이 방식은 항시 머리끝이 쭈뼛해질 만큼 노출의 위험이 뒤따랐다. 사울은 테닛 앞에서 지난 번 내린 결론을 반복했다.

'비밀공작으로는 후세인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전면적인 군사적 침공만이, CIA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는 길입니다. 이라크 내부의 정보원들을 확실하게 포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미국이 전면전을 벌여 후세인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한다는 진정한 결의를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부시가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때마다 첩보활동은 위축됐다. 전쟁은 그들의 첫 번째 선택이어야 했다. 대이라크 비밀공작이 점점 더 깊이 진행됨에 따라 심지어 어떤 요원들에게는 전쟁만이 유일한 선택이 돼 있었다.
사울은 국장과 차장 등 핵심간부들이 일하는 7층에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의 한계는 2월 말까지입니다. 2월 말이 되면 사담 정권이 모든 걸 눈치 챌 것입니다. 만일 그보다 훨씬 늦춰진다면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그들이 엄청나게 방대한 비밀을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세인의 경호부대와 첩보원들이 도처에 깔려있었고, 배신자에 대한 응징은 처참하기로 악명 높았다. 정보 제공자들과 스파이들은 곧 임무를 중단해야 할 것 같았다. … 이라크에 있던 사울의 2개 준군사팀 역시 같은 기분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는 일어나는지, 일어난다면 그것은 언제인지, 기본적인 사항조차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막다른 상황에 몰려있는 것은 그들에게는 가장 절망적인 경험이었다.[9]

즉 요약하면 이라크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상대를 포섭하려면 일단 대외적으로도 최후통첩 수준의 압박은 해 줘야 배신자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밖에서 설렁설렁 반 년에 한 번씩 6자회담이나 하고 있어서는 쉽지가 않겠죠. 그리고 그렇게 포섭한 배신자도 오래 끌면 잡히게 되므로 단기간에 최대한 포섭한 후 바로 써먹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미 대사관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이것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CIA가 비밀공작으로 정권을 전복시키는데 성공한 적이 몇 번 있지만, 대부분 대사관을 거점으로 상당한 행동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경우였습니다. 대사관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공작의 성사 여부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가 1953년의 이란 쿠데타[10]입니다.

사실 미국이 북한 수준의 통제 사회[11]에서 쿠데타나 봉기를 조직하는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위의 이라크 사례에서 보듯이 몇 명의 정보원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판국에 무리한 이야기지요.

그것이 반군이건 쿠데타건 혹은 다른 방법이건 간에 미국이 북한 같은 사회를 침투하려고 생각한다면 우선 탈북자 공동체를 발판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의 공작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방어 목적에서 그런 공동체에 다수의 끄나풀들을 심어놓기 마련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재미를 본 나라로는 쿠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쿠바를 겨냥해 미국의 쿠바계 망명자 공동체를 발판으로 조직한 정보망이나 반군은 번번히 쿠바 정보부에게 침투되곤 했습니다. 특히 반군처럼 많은 숫자의 지원자를 모집해야 하는 경우 침투를 방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작전 거점도 문제입니다. 성공적인 작전이었던 80년대의 아프간 게릴라전 지원 공작의 경우 길고 통제되지 않은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에 거점을 두고 있었으며 주재국 정보기관과 협조 하에 일했습니다. 그런 것 없이 바다를 건너 침투시킨 쿠바 피그스만 침공의 경우엔 반격을 받자 그대로 전멸됩니다. 중국도 강력한 정보기관을 가진 나라로, 중북 국경 건너편에 레짐체인지 기지를 설치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2005년 초에 발표된 니콜라스 에버스타트의 컬럼[12]은 이들의 좌절감을 잘 보여줍니다. 에버스타트는 네오콘 씽크탱크이자 부시 행정부의 인재 풀로 유명한 AEI의 북한 연구자로 대표적인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이지요. 놀랍게도 그는 어떠한 본격적인 개혁에도 북한이 저항할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대안으로 보이는 선군정치를 버리고 (그들도 잘 아는) 평범한 스탈린주의("ordinary" Stalinism)로 복귀하도록 설득해 보자고 주장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미국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기획하는'[13] 레짐체인지라는 것이 전망이 밝지 않은 대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좋은 대안이 있을 때 곧 레짐체인지를 버리고 그 길을 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레짐체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한다는 것은 다른 더 좋은 대안(특히 직접무력사용)이 없다고 느낀다는 뜻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레짐체인지 시도가 적극적으로 진행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워싱턴이 탈북자들에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접근하는지, 또 반대로 미국을 끼고 도는 탈북자들의 비정상적으로 활발한 활동이 있는지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정도는 한국 정부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너무 늦기 전에 적절한 경고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국정원도 독자적인 대북정보능력이 있으니 그 지분을 갖고 레짐체인지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겠구요.



요약
1. 미국은 클린턴, 부시 할 것 없이 90년대부터 꾸준히 이라크의 레짐체인지를 기획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허황된 계획이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가 없었다.
2. 9.11 이후 바뀐 국내 정세로 인해 정규전 침공이 가능해지자, 부시 행정부는 곧 레짐체인지 계획을 버리고 정규전으로 말을 갈아탔다. 이는 그만큼 레짐체인지 계획이 불만족스러웠음을 반증한다.
3. 북한 같은 수준의 통제사회를 비밀공작으로 전복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4. 미국의 과거 레짐체인지 시도는 몇 가지 패턴에 국한되어 왔으며, 아마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5. 레짐체인지로의 관심의 전환은 역설적으로 다른 더 좋은 대안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1] Hersh, Seymour M., Chain of Command: The Road from 9/11 to Abu Ghraib, New York: HarperCollins, 2004,
(강주헌 역, 『지휘계통: 9.11테러에서 아부그라이브까지』, 세종연구원, 2004, pp.234-236)
[2] 같은 책, pp.237-238
[3] 같은 책. pp.238-240
[4] Open Letter to President Bill Clinton
[5] Hersh, p.238
[6] 같은 책, p.248
[7] Woodward, Bob., Plan of Attack, Simon & Schuster, 2004
(김창영 역, 『공격 시나리오』, 따뜻한손, 2004, pp.106-108)
[8] 같은 책, pp.108-111
[9] 같은 책, pp.153-155
[10] 1953년의 이란 쿠데타에 대한 개괄로는 Kinzer, Stephen., All the Shah's Men : An American Coup and the Roots of Middle East Terror, Wiley, 2003 을, CIA 대외공작사의 난맥을 개괄하는 책으로는 Weiner, Tim., Legacy of ashes : the history of the CIA, Doubleday, 2007 (이경식 역, 『잿더미의 유산』,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을 참조.
[11] 북한에 대한 기밀정보를 검토한 미 대통령 자문위원회조차도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어렵다(extreme case)는 것은 한 수 접어주는 분위기이다. Jehl Douglas., Schmitt, Eric., Data Lacking on Iran's Arms, U.S. Panel Says, New York Times, 2005년 3월 9일 참조.
[12] Eberstadt, Nicholas., Pyongyang's Option: "Ordinary" Stalinism, Far Eastern Economic Review, 2005년 3월 21일
[13] 미국이 조직 혹은 개입하지 않았는데도 북한 내부 사정으로 정변 등이 일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 바라는 방향이 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제외한다.
by sonnet | 2009/06/24 12:54 | 정치 | 트랙백 | 핑백(1) | 덧글(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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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6/26 11:20

... 작된 것은 이듬해인 2003년 3월이지만, 2002년 내내 다음 표적이 이라크라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 고위층 다수가 1990년대 말에 이라크 레짐체인지 운동에 열의를 보였다는 점도 그런 판단에 힘을 실어 주었지요. 워싱턴 포스트의 보수적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우타머는 부시의 교서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읽고, 그것을 “놀라울 ... more

Commented by 少雪緣 at 2009/06/24 13:07
사실 미국 개입에 의한 친미 정부로의 전환...의 성공사례가 별로 없다는거에 제법 놀랐습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09/06/24 13:17
음.

성공사례는 주로 앞마당에 집중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31
少雪緣/ 그 과제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보니까요. 좀 더 쉬운 것, 친미 정부를 몰래 도와준다든가 이런 거는 상대적으로 쉽지요.

maxi/ 게다가 적진에서 벌어진 참혹한 실패사례들도 많이 "알려져" 있지요.
Commented by Empiric at 2009/06/24 13:39
프랑스 대혁명 이후 영국으로 쫓겨난 귀족들도 자기들이 돌아가기만 하면 영지민들이 환영해주리라는 망상 하에 피트를 귀찮게 굴어 약간의 돈과 병력을 얻어 상륙했으나, 농사짓던 아낙들까지 자기들을 죽이려 들었다는 훈훈한 미담이 있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34
정말 wishful thinking은 답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김일성개새끼 at 2016/02/20 19:21
박헌영도 남침만 하면 민중이 들고 일어난다고 김일성에게 말했다지요.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6/24 13:40
1.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개입에 의한 정권교체는 잘 알려진 "도시괴담"이니까요. 80년대말 모 잡지(박헌영은 사실은 간첩이 맞다,의 압박이 심한)에서는 팔리 보고서를 인용해서 "5.16도 미국의 작품--;;"이었다를 천연덕스럽게 주장했지만요.

2. 저런 논지는 크게는 한국전쟁때부터 작게는 김일성 사망후 북한에 대한 남한 일부 세력에서 제기된 바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당대 영감태기의 뻥 회고담내지는 4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입니다만. 1차 핵위기 이후의 월조나 그런 계통에서 "아아. 한국전때 북한은 망하기 직전이었는데 반공유격대의 봉기로 운운"류의 회고담을 싣거나 "올 몇월 연변에 북한 망명정부-김정일이 망명하는게 아니라 북한 반체제 인사들이 망명해서 세운다는- 구성한다"류의 이야기가 나온게 다 저런 전설을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나온거지요.

결론은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6/24 19:59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를 썼던 모씨가 생각나네요. ㅎㅎ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36
비밀공작에 관한 한 미국의 능력이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무르쉬드 at 2009/06/24 14:10
미국 개입에 의한 정권 교체는 도서 괴담일지 몰라도, 미국 정부가 이런 시도는 매우 열심히 정권이 바뀌어도 꽤나 자주 시도한다는 점에서 괴담이 진실로 되기 좋은 토양을 마련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견이지만 이런 시도가 실패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속성이 없거나 각 파트에서 얻은 경험이나 교훈이 다음 정권의 공작 파트에게 전달되지 않아 교훈이 적용되지 않은 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는 삽질이 이루어져 항상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적대국 체재 붕괴 기술의 아마추어라서 그런것이 아닌지.. 농담입니다.

찰라비의 반정부 조직능력은 몰라도 외교력은 가희 이승만을 연상케 하는군요. 클린턴에서 바로 부시에게 갈아타는 능력 하나는.. 능력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32
저는 이런 정권전복 공작은 본질적으로 확률이 낮은 유형의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표적국이 이런 공격에 대해 심각한 경계심을 품고 있을 경우엔 더더욱...

우남은 망명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도 국내 기반을 만들어 집권하는 걸 보면 정말 만만치 않은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찰라비도 워싱턴 로비 하나는 1류인 듯.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9/06/24 14:26
계획처럼 잘돌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1:52
세상 일이 그렇게만 된다면 ^^;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24 14:39
그나저나 북한을 "평범한" 스탈린주의 국가로 돌아가게 하자는 어느 분의 주장은 이 뭔가 개그스러운 데가...
Commented by H-Modeler at 2009/06/24 15:52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편이 지금보다는 더 합리적으로 딜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겠습니까.
저 제안이 얼핏 보면 개그스럽지만, 도저히 개그로 받아들일수 없는게 북한이니까요......;;;
이념에 민족 개념이 지나치게 깊이 박힌다는건 그 하나만으로도 문제덩어리가 되는 듯.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06/24 16:05
평범한 스탈린 국가가 되는 순간부터 '카리스마'를 잃겠죠. 정권 유지가 안될듯. ㄲㄲㄲ.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1:54
그럴 위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틀림없이 거액의 해외원조와 엿바꿔서 할테니까 이익분배에 따라서는 또 나름의 길이 있을지도요.
Commented by 我行行 at 2009/06/24 16:59
외부의 개입으로 통제 사회에서 쿠데타나 봉기를 조직하는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면요.
내부에서 저절로 쿠데타나 봉기가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면 됩니다. 이를테면 419 같은 수준의 봉기가 북한에서 일어나리라 생각 합니다.
러시아 혁명 또 대한민국의 419혁명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절망상태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민중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필발선 눈을 부릅뜨고 손에 낫과 괭이를 들고 강력한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나 경찰을 물리치고 독재 정부를 뒤집은 경우입니다.

시민의식이 성숙해서 일어나는 혁명(대한민국의 6월 혁명 같은 경우가 되겠습니다.)은 일어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419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충성스런 군대와 경찰의 철통같은 옹위를 받는 국부 리승만 박사, 자유세계의 성웅 리승만 박사가 시민 혁명으로 물러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알게 되는 날이 올겁니다. 그날 그들이 ‘너희들은 우리가 김일성-김정일의 철권통치아래 시달리고 있을 때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쌀 퍼줬다고, 돈 퍼줬다고, 비료 퍼 줬다고 대답합니까?

Commented by 삐레 at 2009/06/24 17:05
전 그 날에 받을 그 질문이 제일 무섭습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6/24 17:14
그건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그런 날이 와도 그들이 우리한테 그런 질문을 할 이유도 없다고 보는데요. 남의 일에 쓸데없이 관심이 많군요.
Commented by 삐레 at 2009/06/24 17:17
누렁별님//
전 탈북자분께 그런 질문을 받아봤기 때문에 님처럼 '남 일'로 치부하지는 못하겠습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6/24 17:27
한국인들이 자기들보다 키는 한 뼘이나 작고 오십 배는 못사는 사람들하고 사이좋게 같은 동네에서 사는 날이 과연 올 지 모르겠군요. 지금 한국인들이 전라도 출신, 연변 동포, 동남아인에게 하는 대접을 보면 답이 뻔합니다만. 저한테는 그저 남의 일일 뿐입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9/06/24 17:58
"북조선 놈들도 게가 먹고 싶으면 혁명 일으키면 되잖아. 대체 뭐하고 있는 놈들이야."
- 가네시로 가즈키, GO, 211쪽.

지들 손으로 못 바꾸는 걸 왜 남에게 따진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삐레 at 2009/06/24 18:17
누렁별님과 하이버니안님의 대답이 참 재밌네요. 두분 말씀이 너무 명쾌해서
더 이상 제가 뭐라고 대답해봤자 혼잣말 하는 일이 될 듯 싶어 관두겠습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
Commented by ㅇ_ㅇ at 2009/06/24 19:01
내가 지금 1999년에 살고 있는 것인가요? 이런 리플을 보다니.
10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죠.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6/24 20:02
안됐습니다만, 아이디 그대로 '아햏햏' 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저절로 쿠데타나 봉기라...... 중국이 완전히 지원을 끊어버린다면 혹시 모르겠습니다만 북한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전혀 없으신 분 같습니다.
Commented by 我行行 at 2009/06/24 20:19
북한인민이 영원히 김씨왕조의 노예로 살아야 합니까?

언제가 그들북한의 주체인민 즉 주권을 되 찾은 주인이 되는 날이 옵니다.
인민혁명으로 김씨왕조를 타도하고 김일성을 부관참시하는 날이 옵니다.

그날 우리는 북한인민들을 무슨낯으로 봅니까?

Commented by young026 at 2009/06/25 01:32
군대는 별로 충성스럽진 않았죠. 이종찬이나 이용문의 예처럼.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26
천수답 마냥 그것만 보고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런 경우를 위한 시나리오를 연구해 비상계획을 세우고 훈련하는 것은 가치가 있을 겁니다.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25 17:46
러시아 혁명 또 대한민국의 419혁명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절망상태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민중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필발선 눈을 부릅뜨고 손에 낫과 괭이를 들고 강력한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나 경찰을 물리치고 독재 정부를 뒤집은 경우입니다.//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둘 다 구심이 되는 저항세력이 주도하는 와중에 내외적인 지원이 있어서 성공했죠.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그렇다 치고 4.19때 군대는 개입하지 않았죠? 경찰도 총검으로 시민들을 죽여대지 않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알게 되는 날이 올겁니다. //지금 중국인들 조차 별 관심이 없어보입니다만..

‘너희들은 우리가 김일성-김정일의 철권통치아래 시달리고 있을 때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으면 뭐라 대답해야 합니까? //북한보다 몇백배는 깨어있는 이란인들의 투쟁은 언론에 사실상 아예 다뤄지지도 않는 한국 현실인데 뭐..
Commented by 야채 at 2016/02/21 00:16
누렁별/ 북한 문제는 북한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면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쓸데없는 일에 돈을 낭비할 이유도 없겠지요. 그리고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했니 어쩌니 하는 비난을 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9/06/24 18:09
그레나다와 파나마의 사례는 비정통적인 방법입니까, 아니면 regime change가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거의 언제나'에 해당되지 않는 소수의 사례입니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18:40
그 나라들은 소국이라서 규모가 작긴 했지만 정규군 침공이었잖습니까? 북한을 표적으로 그 방식을 택하면 수십만의 병력이 필요한 그냥 전면전이죠.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6/24 19:05
영국은 중동 쪽에서 상당히 고위직에까지 자기 사람을 심는데 성공한 일이 많다고 하는데, 역시 HUMINT 측면에서는 미국은 영국 따라가려면 한참 먼거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24
언어나 문화적 장벽도 크고, 그런 면은 역시 우리가 같은 민족이니까 절대적인 강점을 갖고 있지요.
Commented at 2009/06/24 19: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02
outpost of tyranny도 그렇고 부시 행정부에서 나온 용어 중에는 스트라우시언 특유의 것들이 많긴 하지요. 저도 말씀하신 개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왜 현실에서 그 말이 그렇게 사용되는가 하면, 제 생각에는 정치권에서 그냥 확 쳐들어가서 입맛대로 몽땅 엎을 수 있을 경우에는 그렇게 군불을 때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그냥 가서 해치우기 때문에 오히려 그 말을 잘 못듣게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regime change 대신 regime transformaton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건 분명히 현 체제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뉘앙스지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6/24 19:41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전지전능한 미국'이란 허상의 덫에 걸린 결과일까요...
당시 정부 인사든, 미국이든 말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23
미국이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힘과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좀 피상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기 쉽겠지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9/06/24 20:11
잘 배우고 갑니다.
사람들이 체제에 불만이 많다는 것과, 그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은 전혀 다르죠.

저는 재소자 십여명이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교도관 한 두명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봐서 그런지 이해가 잘되는데, 어떤 분들은 쉽게 이해를 못하시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22
네 동감입니다.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6/24 20:42
저도 북한정보에 좀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본 적이 있습니다. 소넷님께서는 <오늘의 북한소식>이나 잡지 <임진강>, '데일리엔케이'의 북한 내부소식통 관련 기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부정보가 외부로 나가는 것에 광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는 김정일정권 입장에서는 그런 내부소식통들 하나하나가 다 간첩이겠죠. 실제로 북한에서는 <오늘의 북한소식>이 안기부의 정보로 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더군요. ㅋㅎ 대체로 익명의 북한 내부소식통을 보면 비교적 젊고 중국식 개혁개방에 관심이 있는(즉 체제에 불만이 있는) 관료집단, 무역회사 직원들이 다수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일개 구호단체나 언론사도 나름의 네트워크가 있고 북한 내부사정을 조사하는데, 하물며 국정원이나 정보사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체제수호 의지가 강하고 개혁개방에 훨씬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군부나 보위부에 대한 포섭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 같습니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책을 보니 국정원이 휴민트를 통해서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거래에 관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부분이 나오던데,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15
네, 그 정보의 첫 단서는 원래 한국이 먼저 제공한 것인데, 나중에 그게 일이 커져서 돌아오자 당황하게 되는 것도 한국이지요.

실제로 RFE/RL이 CIA 지원 하에서 운영되었으니까,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일 것 같습니다. 꼭 나쁜 방법도 아니구요. 다만 저는 동유럽 망명자들의 경험으로 볼 때 탈북자나 북한 내부 소식통에서 나오는 정보들 중에는 제지공장(paper mill)에 속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개방사회를 공개정보로 분석하는 것에 비해 훨씬 까다로운 점 중 하나지요.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서 '오늘의 북한소식'이나 '데일리엔케이'의 정보는 단일 출처로는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전업연구자가 같은 방향으로 credit을 주면 훨씬 자신있게 쓸 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nathan at 2009/06/24 21:07
그러고 보니 10.26에서 12.12까지가 미국에 의한 레짐 체인지였다는 얘기도 나름 인기 있는(?) 레파토리 중 하나지요.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그런 상태지만서도...
뭐,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 주한미군 빼버릴 거야!"라고 나왔던 전무후무한 시기였으니 그런 얘기가 먹히는 것이겠지요. 그 시절에 비하면 노통때 대미정책은 끽해야 츤데레 정도 밖에 안 될 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21
이승만 제거계획(eveready)은 기획 수준이지만 물증도 있잖습니까. 저는 언제나 노통 지지자들이 노통을 지금까지 없던 자주적 지도자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 하곤 했습니다.
Commented by nathan at 2009/06/24 22:49
저는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는 쪽에서 "노무현은 친미 사대주의자다! 우리는 속은 거야!"라고 하는 거 보고 노무현 찍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부 진보 쪽에서는 한나라당이 탄핵 얘기하기 한참 전에 노무현 탄핵론 얘기가 솔솔 나왔었지요.)
박통 떠받드는 사람들이 노통보고 반미정권 운운하는 것도 비슷한 수준으로 우습고 말이지요. 성조기 흔들고 집회하면서 박정희 추앙하는 사람들은 미국에 의한 박정희 제거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04
그들이 박을 친미적이라고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도 정신나간 짓일 겁니다.
Commented by 섬백 at 2009/06/24 22:01
음 딴 소리지만 이런 식의 첩보 (...)에 대한 글을 보니 과연 지금 이란에서는 어느 정도로 미국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참 궁금하네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이에 관한 책들이 하나 둘씩 나오면 참 재밌을 듯;;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4 22:18
네, 저도 무척 궁금합니다. 이건 여담인데 이란은 CIA연구에 굉장히 중요한 전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했을 때 털어낸 CIA 문서들을 복원한 espionage den 시리즈라는 것이 있지요. 많은 연구자들이 이 시리즈를 믿을만한 것으로 보는 듯 하더군요.
Commented by 살찐그리피스 at 2009/06/24 22:22
where is my vote라는 구호를 매우 많이 쓰던데 그걸 보고 개인적으로 약간 의혹이 생기던데요. 거기도 우리정도로 영어공부를 하는건가요??

누가 누구 보라고 그런 영어 구호를 가지고 시위를 하는것인지 그게 현지 이란인이 즉각적인 해독이 가능한 문장인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6/24 23:11
역시 요약은 언제나 도움이 되는 군요. 미국 킹왕짱과 핏줄이 최고라는 망상을 가진 분들이 하루 빨리 눈을 뜨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군디츠마라 at 2009/06/24 23:57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약소국이거나 이라크처럼 미국이 대놓고 침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레짐 체인지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부분 동감합니다. 그런데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06/22/3404276.html?cloc=olink|article|default

이 글을 쓰신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님께서는 "미국 정부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레짐 체인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쓰셨고(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6/24/200906240503.asp

이 신문기사에서 한-미 관리들이 북한 급변사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밀 회담을 갖는 걸 보니 김정일의 건강 악화가 미국이 원하는 레짐 체인지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과 통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겠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23
북한의 급변사태는 결국 저쪽에서 자생적으로 뭐가 생긴 다음에, 우리가 그에 맞춰 대응하는 식이니까 인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책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별로 내키지 않는다고 김정일의 건강이나 후계자를 우리가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날씨가 바뀌면 따라간다에 가깝지 않은지.
Commented by MK at 2009/06/25 08:41
살찐그리피스// 이란인 친구의 견해를 빌어 말씀드리면, 국제적 지지를 얻고자 함이 큽니다. 내부 지지와 해외에서의 지지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란인 전부가 영어를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교육을 받은 계층에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현재 이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모든 혼란의 시작은 현 대통령인 아흐메디네자드를 사람들이 좌파-사회주의자로 '착각'했다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호메니이가 종교주의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했던 사람이었는데, 그 뒤를 이은 하메니이는 원리주의+근본주의라는 조합이라고 하더군요. 문제는 처음에 아흐메디네자드가 확연한 배경없이 선거에 나왔고, 사람들이 호메니이와 같은 정치상으로 인식하고 표를 받아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당선 직후 뽑아준 사람들을 비웃듯이 하메니이에게 가서 이란식의 '난 당신의 종'이라는 인사를 하면서 모두들 경악했다고 하더군요. 결론은 뒤에서 조종하는 '하메니이'와 대외적으로 대통령을 하고있는 '아흐메디네자드'가 결합하여, 이란을 소위 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국가로 변신시키려 한다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Curtis at 2009/06/25 11:12
첫 댓글이 질문이라 죄송합니다만, '다만 저는 동유럽 망명자들의 경험으로 볼 때 탈북자나 북한 내부 소식통에서 나오는 정보들 중에는 제지공장(paper mill)에 속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개방사회를 공개정보로 분석하는 것에 비해 훨씬 까다로운 점 중 하나지요.'에서 제지공장은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제지공장을 뜻하는 건 아닐 것 같고, 앞뒤 문맥으로 유추해 보면 일부러 흘리는 거짓 정보. 뭐 그런 걸 뜻하는 것 같은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5 12:13
제지공장은 원래 논문대필을 가리키는 은어인데요, 이 경우에는 망명자들이 밥벌이를 위해 가짜 정보를 만들어 파는 현상을 말합니다. 좀 더 약한 형태로는 물어보는 기자에게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잘 아는 것처럼 과장해서 말하는 식이 될 수도 있구요. 그런 지식이 일종의 자기 몸값이니까요.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25 17:36
이라크에서의 레짐 체인지는 아버지 부시가 시작한 것 아닌가요? 사실 걸프 전쟁때 그냥 위로 밀고 올라갔으면 되었을 것을 대신 사담 군사력을 제한하고 고립시켜서 저절로 무너지길 기다리는 전략으로 바꾼 것 아닙니까? 그것때문에 애꿎은 쿠르드, 시아 반대세력만 숙청당하고..
Commented by 玄武 at 2009/06/25 18:11
http://sonnet.egloos.com/2518052
왜 안올라갔는지 예전에 밝힌적이 있군요
Commented by 한뫼 at 2009/06/25 17:46
잘 읽고 갑니다. 일정한 쳬계가 잡혀 작동중인 체제, 그것도 북한같은 꽊막힌..체제를 외부"공작"으로 뒤엎는 것은 역시 힘든 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7 12:24
네, 상대가 너무나 큰 경계심을 갖고 미리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승산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at 2009/06/27 12:1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7 12:23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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