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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핵 위기를 돌아보며
북한 최고의 비밀병기(?) - 코발트 60 (crete)에 트랙백

위 글은 내 글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붕괴와 美-中-日 3각 협의체 문제에 대한 반론에 해당하는 글인데, 읽어본 결과 글의 상당부분은 내 글과 별 관련이 없고 한 가지 논점에 대해서만 답하면 될 것 같다. 그 논점이란 노무현 정부가 TCOG를 깨게 된 이유는 "부시 행정부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대북외교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논쟁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논쟁

우선 인수위 시절~노무현 정부 초기의 대미-대북 외교의 큰 가락을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부속 조직으로 ‘북한 핵 문제 특별팀’이 설치됐다. 이 특별팀에는 윤영관, 이종석, 서주석, 서동만 외에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포함됐다. 팀장은 윤영관, 사무국장은 위성락이 맡았다. … 윤영관은 외교통상부, 이종석은 통일부, 서주석은 국방부, 서동만은 국가정보원을 맡았고,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 핵 문제 특별팀과 연계해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입안해 나갔다.
네 사람 모두 한국의 대미 정책이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미 정책은 오랜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이 추진해 온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모든 외교 정책은 미국의 지시를 받아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미 의존 외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첫 회의 주제는 북한 핵 문제였다. 노무현 당선자가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북한 핵 문제는 평화적으로,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 이를 모든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기초로 삼는다” 노무현의 관심은 오로지 북한 핵 문제 하나에 맞춰졌다. “어떻게 해야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미국의 군사 행동을 막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마련해야 한다. 노무현은 이와 관련해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1]

이 그룹은 한나라당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외교정책을 구상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충되는 두 가지 구상이 존재했다.

그리고 노무현에게 있어 북한의 핵 보유를 막는 것미국의 군사행동을 막는 것은 대등한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미국의 대북공격을 반대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미국의 행동을 막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최우선적인 중요성을 부여한 대통령은 전례가 없었다. 이것이 그의 임기 동안 한미관계에 매우 큰 부담을 주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는 미국의 대응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겠다고 했다. 이종석이나 서주석은 “북한과 동북아시아의 환경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환경으로 바꾼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물리적 방법으로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물리적 방법까지 동원하지 않는다는 능동적인 자세다. 인수위(통일외교안보 분과)의 네 명은 목표와 원칙 면에서 거의 의견 일치를 봤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논의 결과 대략 두 가지 견해로 압축됐다. 두 가지 견해는 윤영관과 이종석의 시각차다.
윤영관은 미국과의 밀접한 정책 협의를 강조했다. 미국과 보다 깊은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영향력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을 보다 현실적으로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멀리 돌아가는 것 같지만 이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석은 윤영관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미국의 속내는 북한의 체제 전환이다. 그런 미국과의 정책 협의는 사실상 어렵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보다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펴는 것이다. 이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군사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모두 생각이 같았다. 이들은 미국이 1994년처럼 북한에 대한 강경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다.[2]

상충되는 두 가지 구상을 대표하는 인물은 윤영관과 이종석이었다. 윤영관은 미국과 더 깊게 얽혀들어감으로서 우리 생각을 미국에 반영시킬 기회를 늘리자고 주장했고, 이종석은 미국에 적극적으로 맞섬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노무현 당선자가 문정인을 포함한 다섯 명을 점심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도 윤영관, 문정인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이종석과 서동만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각각 주장했다. 윤영관과 문정인은 “미국과의 동맹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종석과 서동만은 “미국과의 동맹은 언제까지 이런 상태여야 하나. 미국에 더 강한 태도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반박했다. 윤영관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폈다.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하려 한다면 우리가 반대하든 말든 실행에 옮길 것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과 함께 작업함으로써 그 계획의 세부 사안에라도 우리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지막까지 군사 행동에 반대하고 미국이 군사 행동을 강행할 경우 동맹은 무너지고 한반도에는 군사 분쟁이 발생할 것이다.” “혹은 우리 반대 때문에 미국이 군사 행동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을 포기할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이 경우 북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결국 최선의 방법은 외교다. 미국과 공동 작업을 하는 외에 다른 방도는 없다.”
이종석과 서동만은 남북한의 민족적 접근성,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지역적 접근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처음부터 북한 핵 개발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유엔에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북한을 더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포용정책을 펼쳐야 한다.” 대신 한·중·일 3국의 협력 가능성에 더 중점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 그가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역할이었다.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을 안정시키고, 비핵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는 “미국과의 동맹에 얽매이지 말고 한국이 미국·일본·중국 등과 균형 잡힌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때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돌출 행동을 자제시키고, 미국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영관은 이런 이종석의 견해가 중국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적으로 중국에 기울면 미국이라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을 수 있다. 그러지 말고 탄탄한 한·미 동맹을 유지함으로써 한·미·일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보다 안정적인 안보 정책이라고 반박했다. 윤영관은 특히 TCOG에서 한·미·일 3국 정책 협조 체제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3]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정치외교학자들(윤영관, 문정인)과 북한학자들(이종석, 서동만) 사이에 단층선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외교학자들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을 강하게 의식한 반면, 북한학자들은 자주나 민족에 중점을 두면서 필요하면 미국과 맞설 수도 있다는 시각을 보였다.

이러한 갈등은 이종석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윤영관과 외교부가 끝없이 밀리는 형세를 보이다가 결국 2004년 1월에 외교부의 일대 숙청과 윤영관의 낙마로 끝이 난다. 그 이후 노무현 정부 내에서는 이종석이 확립한 정통적 견해에 더이상 도전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럼 이 논쟁에 있어 노무현의 입장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노무현은 오래 전부터 미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처음부터 이종석과 유사한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하던 표현대로 윤영관은 노무현과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종석이 보여준 필요하면 중국 등과 연대해서라도 미국의 앞을 가로막겠다는 생각은 혁명적인 데가 있었다. 이는 같은 당 출신이자 햇볕정책의 선구자인 김대중과 비교해 보아도 잘 드러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균형자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4대 강국 속에 끼인 작은 나라로 한·미 동맹 관계를 굳건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고, 4대 강대국과 협력·보완해 나가는 세 가지 틀 속에서 외교 관계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4]


김대중이 제시하는,
1순위: 한미동맹
2순위: 한미일 공조
3순위: 미일중러와의 협력

이란 전략적 틀의 서열은 명쾌한 데가 있다. 이런 시각은 북방정책으로 중러에 접근했던 노태우 이래 김대중까지 정권에 관계없이 다들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 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이 서열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어설프게 등장해 미국을 열받게 만들었던 2002년의 '중재자'니 2005년의 '동북아 균형자'등은 모두 김대중이 운명이라고까지 말하는 전략적 틀의 서열을 무시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프랑스를 공식방문 중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5일 오후(현지 시간) “북한의 체제 문제를 걸고 들어가는 한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 한국과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체제 교체)를 해야 된다고 하는 나라들과의 사이에 손발이 안 맞게 돼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파리 인터콘티넨털 르그랑 호텔에서 현지 교민 350여 명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미국과 일부 서구 국가들에서 북한의 체제가 결국 무너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더 불안해 하고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관련국 간에 손발이 안 맞을 경우) 북한 핵 문제가 안 풀린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언이 북한의 체제 문제를 놓고 한국,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는 것처럼 비치자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간담회 후 “노 대통령이 말한 ‘미국과 일부 서구 국가들’, ‘레짐 체인지를 해야 된다고 하는 나라들’이라는 표현은 그 나라의 정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국가 내부의 일부 사람들, 일부 목소리가 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이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내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5]

이 연설은 한국과 중국이 한 편이 되어 미국에 반대한다는 구도를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든 희석해 보려고 청와대 대변인은 그것을 일부세력(네오콘)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문제는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같은 기사에 등장하는 분석을 보자.

익명을 요구한 한 한미관계 전문가는 “노 대통령은 미국 내 네오콘과 미국 정부를 분리해 대응하려고 하지만 2기 부시 행정부에서는 네오콘이 미국 주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네오콘의 시각과 주장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제3의 논리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6]

이 말마따나 부시 재선 직후 시점에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네오콘과 미국정부를 분리해 네오콘만 때린다는 생각은 변명으로는 궁색하고, 제정신으로는 너무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미국이 '우리 편'으로서의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된 사건은 그 외에도 적지 않았다.

그는 지난 13일 새벽(이하 한국시각)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WAC) 주최 오찬 연설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많은 경우 북한의 말은 믿기 어렵지만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 머뭇거린 뒤 “지금 고쳐진 원고를 보고 처음했던 표현을 다시 찾으려 노력중인데 합리적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며 “내가 처음 준비했던 표현은 ‘이 문제에 관한 북의 주장은 여러 상황에 비추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 였던 것 같다”고 수정했다.[7]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핵무장의 정당성을 일부 인정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는 노무현 정부가 품고 있던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라는 인식이 잘 드러난다. 즉 한국이 미국에게는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고, 북한에게는 미국의 입장을 설명해 합의를 끌어내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유사시에 북한을 상대로 함께 싸운다는 개념의) 동맹국과 중재자는 공존하기 힘든 개념이었다. 미국 측 입장에서는 평소에도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나라가 전시에는 자신을 지켜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어이없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이처럼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군사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데 너무 집착한 나머지 거기 최우선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전례없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앞서 문제가 된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붕괴는 그 와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2.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유용성

하지만 TCOG는 미국과 일본이 한 패가 되어 한국을 압박하기만 하는 조직은 아니었다.

2002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 HEU 문제를 함께 질문하는 모양새가 나타났다.
켈리는 “북한은 장래 결코 경수로를 갖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가져서도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본 대표인 다나카 히토시와 한국 대표인 이태식이 그것을 비판했다. 특히 다나카는 격렬했다.
다나카는 미국의 HEU 정보의 타당성에 의문을 던졌다. 미국 측 참석자의 한 사람이 “한국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사태 해결을 위해 마이너스다. 너무 지나쳤다”고 느꼈을 정도다.[8]


6자회담 한국측 대표였던 이수혁도 이런 측면에서 TCOG란 틀이 미국을 설득하는 데 유익하다고 지적한다.

한·미·일 3자 공조는 계속되어야 한다. TCOG를 통한 공조 체제 유지가 필요한 것은 일본의 역할 때문이다. 나는 2004년 2월 해외 공관장 회의에서 일본을 등에 업고 가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6자회담 과정에서 우리가 미국과 이견을 보이는 문제에 대해 일본이 우리의 주장에 동조할 경우 미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사례들을 많이 경험했다.[9]

다만 공조라는 결과물을 내놓기 위한 이런 틀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은 우리 입장과 반대되는 흐름이 대세일 때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쪽도 어느 정도 따라가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흐름은 시간이 가면 바뀐다. 예를 들어 일본이 강경책을 계속 주장하는 중에 미국이 대북협상에 적극적으로 돌아서자 오히려 일본이 고립되는 모습도 관찰되기도 했다. 북한을 침공한다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실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시간이 흐르면 3국의 입장은 조금씩 바뀌기 마련이다. 기회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판을 깨는 것은 그야말로 단견이 아닐 수 없다.



3.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그렇다면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튀는 행동이 "부시 행정부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대북외교정책" 때문에 정당화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번 돌이켜 보기로 하자.

북한정책에 관한 한 새 부시 행정부에서 아무리 온건한 인사라도 민주당 행정부에 비하면 훨씬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당시, 이들을 포함한 어느 불카누스도 북한과 맺은 협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월포위츠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1994년 제네바 합의의 폐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단 한마디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는 새 행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대결정책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감세, 미사일 방어, 중동 평화 문제 등 새 행정부가 추진할 다른 목표들이 있다며, “우리는 (북한보다) 더 중요한 일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불카누스들의 새 독트린이 이라크와 달리 북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북한은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남한을 공격해 서울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가능한 국가가 아니었다. 북한은 또한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시범 프로젝트의 대상 국가가 될 수도 없었다. 일부 불카누스들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 이라크를 아랍의 정치문화와 중동 전체의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 모델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 이미 일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나머지들도 북한의 뒤를 따르지는 않을 국가들이었다. 이라크는 정세가 불안정한 지역의 중심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그것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라였지만, 북한은 급성장하는 지역의 한가운데 놓여 있지만 고립돼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불카누스들은 북한문제만 만나면 미봉책으로 대처해왔다. 이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현안들에 대해서는 대담한 접근법과 신속하고 항구적인 해결책을 추구하면서도,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심지어 위험한 핵무기 프로그램이 더욱 진전될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기다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가 결국 북한 지도자 김정일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압력을 넣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은 또 북한의 절망적인 경제문제가 북한을 더욱 타협적으로 나오게 만들 날이 오기를 갈망했다. 일부 불카누스들은 나아가 북한의 붕괴와 정권교체를 희망했다.

부시 행정부는 긴급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시간을 끌었다. 국무장관 파월은 북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상투어가 돼버린 “위기가 아니다”는 말을 되뇌었다. 북한이 핵 원자로를 재가동했을 때도 관리들은 “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사찰단을 추방했을 때도, 핵무기 개발을 위해 다시 한 번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도 위기가 아니었다.

하나의 그룹으로서 불카누스들은 자신들의 경력 내내 군사력에 집착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라크 문제와는 달리 군사적 해법이 유용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였다. 부시 행정부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해결책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럼스펠드는 “북한은 위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종류의 위협이다. 적어도 지금은 외교를 통해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행동을 준비하고, 평양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 나갈 무렵인 2002년 말과 2003년 초, 미국의 불확실하고 임시방편적인 북한 정책은 럼스펠드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는 말로 요약됐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문제를 외교관들의 손에 맡겨 놓고 있었다.[10]

이처럼 미국은 북한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나라들을 많이 갖고 있어서 북한은 일단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 상대하겠다는 의도를 여러 모로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 측의 분위기는 두 번의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잘 드러난다.
2002년에 있었던 김대중-부시 정상회담을 보자.

김대중이 레이건 대통령의 이야기를 한 대목에서 부시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북한을 침략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 부시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이 미국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었다”며 레이건에 대해 언급한 사실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우리의 태세는 순수하게 방어적이다. 그 이유는 위협에 취약한 DMZ의 존재에 있다”고 덧붙였다. …

다음날 아침 한국의 언론은 일제히 “북한을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부시의 발언을 톱뉴스로 다뤘다. 그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부시는 “그런 게 뉴스가 되나”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11]


2003년의 노무현-부시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측의 반응은 비슷했다.

한국 측은 공동 성명에 군사 옵션을 넣지 않은 것이 외교적 승리라고 선전했으나 미국 측은 이런 반응에 의아해 했다.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당시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군사 옵션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노무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미국은 대북 군사 공격을 하려 한다’고 심각하게 믿고 있었다. 청와대 직원들이 노무현을 그렇게 세뇌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12]

물론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한 것은 분명하다. 원한다면 그 의도까지는 순수했다고 평가[13]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건 사실 워싱턴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설레발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설레발 때문에 한미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는 부시나 네오콘, 공화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민주당 측에서도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북폭에 대해서는 김영삼이나 김대중도 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미국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서 미국을 안심시키며 일했다. 적어도 해외에 가서 미국은 중국과 한국의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한다든가 하는 식은 아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무현은 윤영관을 내치고 이종석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과거의 한국 정부들과는 전혀 다른 한미관계를 선택했던 것이다.



4. 제네바 협약 붕괴의 책임

한편 반론에서 제시되는 부시 행정부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대북외교정책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크린턴 행정부 시절 분명히 북미간에는 상당할 정도의 외교적 접근이 있었고 제네바 합의를 통해 미국이 더 이상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과 위협을 금지할 것을 공식적으로 확약했다.

그런데 부시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더불어 2002년 1월 국방부를 통해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발표했는데 유사시 핵무기 사용 국가에 기존의 러시아, 중국에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북한을 추가했다.

즉 명백한 제네바 합의 위반 사항이다.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위협을 금지한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다. (crete)

그런데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인 것 같다. 한 번 비교를 해 보자.

클린턴 행정부 기간 동안, 핵문제를 풀기 위한 조미 협상의 결과로, 미국의 조선 정책은 적대 그 자체에서 부분적 포용으로 옮겨가는 듯 보였다. 얼마 동안 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의 가능성도 희미하게나마 존재했다. 흑연감속로와 사용후 연료봉의 동결, 그리고 중유와 경수로의 제공으로 말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양자 간 정치 대화를 중단하고, 우리를 ‘악의 축’이라고 선언하고, 선제 핵공격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핵 문제는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14]

이것은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인 리근의 보고서 중 일부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즉 위 주장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저기에는 북한의 위반사항은 쏙 빠져 있다.

제네바 합의가 깨진 데 기여한 원인들을 다채롭게 거론하자면 잡다한 것들을 많이 들 수 있겠지만, 합의를 침몰시키고 제2차 북핵위기를 일으킨 단일 사건을 꼽는다면 그건 누가 뭐래도 2002년의 10월의 켈리 차관보 방북시에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HEU) 비밀핵개발 의혹을 추궁하자 북한의 강석주가 이를 인정한 것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북한의 그 비밀핵개발은 부시가 당선되기 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칸 박사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에 원심분리기 본체와 부품 설계도를 제공했다고 인정[15]했으며, 1999년 3월 일본은 북한의 대성섬유 무역상사가 발주한 주파수 전환기 2기의 수출을 금지[16]했다.

파키스탄과 북한의 접근은 1993년 12월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한 뒤 이뤄졌다. 부토는 당시 방북 때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입수할 수 있었다”고 아사히 신문(2004년 7월 18일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북한 측도 그에 상응하는 기술을 입수했다. 우라늄 농축 기술이었다. 부토는 당시 방북에 칸을 동행시켰다. … 미국 정부 고위 관리는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 커넥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8~1999년에 파키스탄으로부터 북한에 P1과 P2, 두 가지 크기의 원심분리기가 20개 정도 도착했다. 두 가지 모두 시범용(견본)이었다. 클린턴 정권도 한참 지난 뒤 이 사실을 알게 됐다.”[17]


앞서 소개했듯이 부시는 2002년 2월 방한해 김대중의 요청에 따라 북한을 침공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시켜 준 바 있다. 부시는 이라크 전쟁 등 다른 선순위 사항이 많았고, 그 정도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에게 상충되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은 다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북한 또한 이를 받아들였다. 이는 북한이 중유 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동결을 계속 유지했던 것에서 잘 드러난다. 요약하자면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HEU개발 시인->KEDO의 중유지원 중단->북한의 핵시설 재가동이라는 과정을 거쳐 깨졌다. 그 책임은 기본적으로 북한 쪽에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 측이 '그래 나 HEU 있다 어쩔래'라고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자 미국은 당황했다. 미국은 처음에 이 사실을 비밀로 하려고 했으나 언론에 정보가 새어나감에 따라 공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워싱턴에 돌아간 켈리는 국무부의 상층부에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아미티지의 첫 반응은 “정말 그렇게 말했어?”였다. 파월도 “정말 갖고 있다고 말했단 말야?”라고 말끝을 급격하게 높였다. 파월은 그것을 부시에게 보고했다. 부시는 “에, 뭐라고? 인정했다고!”라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놀랍고 예상 밖이란 반응은 공통적이었다.
“부정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시인했으니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 곤혹스러웠다.”(미 정부 고위 관리)[18]

이는 미국이 북한에게 HEU를 추궁할 때, 제네바 합의를 적극적으로 깰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부시 행정부 1기 대북정책에서 나타난 주요한 문제는 강경한 위협과 대결을 택한 데 있지 않았다. 진정한 문제는 미국이 북한을 진지하게 상대 -그것이 전쟁이던 협상이던 간에-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태도는 엉거주춤한 것이 문제였지, 단호해서 문제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5. 정리: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있다"

길게 이야길 했으니 정리를 해보자.
2차 북핵위기 이후 대북협상에서 문제가 되었던 (군사력 옵션도 포함한)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표현을 둘러싼 논쟁은 북한을 칠까 말까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6자회담 대표를 지냈던 이수혁은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잘 요약하였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 최종 수단으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카드는 유효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도 이에 동조하는 강경 입장을 취하면 협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말했을 때 한국 국민이나 외국의 투자자들이 곧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동요이다. 북한은 더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은 무력 사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협상 전략에 부담이 되더라도 북한에 대해서 공격하면 안 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말하여 그 가능성을 부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입장은 실제로는 북한을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특정한 선택(옵션, option)을 배제한다고까지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논쟁은 어느 면에서는 논쟁을 위한 논쟁이었다. 국민들의 성숙한 판단력이 문제였다. 미국이 군사적 선택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여 군사력을 한반도에서 한국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는 행사하지 않을 것이며, 군사적 선택을 배제한다고 말했다고 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력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믿을 수도 없다.
국제정치는 현실적이다. 군사적 행동은 국익과 안보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행사되는 것이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작은 희생을 각오하는 판단력, 즉 합리성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심리적 요소가 문제라면, 군사력 불사용 천명이 북한과 협상에 미치는 영향과 군사력 사용 가능 천명이 한국의 정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하면 된다. 한국은 후자의 경우에 무게를 더 두었다.[19]

이는 전쟁이냐 아니냐라는 극단적인 성격이 아니라 협상술 선택에 따른 장단점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이런 강경 협상술의 가치를 이해하고 현명하게 동요하지 않는다면 한국도 더 자유롭게 강압적인 협상술을 이용해 성과를 거둘 여지가 있다는 말도 된다.

또한 한국측이 집요하게 요구할 경우 미국 측은 내키지 않지만 이 점에 대해 양보하기도 하였다. 이라크 침공의 경우처럼 미국이 단단히 결심한 경우엔 그런 것은 불가능했다. 이것은 앞서 내가 지적했던 것처럼 미국의 강경정책이라는 것이 대단한 실체가 없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002년의 '맞춤형 봉쇄'나 2004년의 '관리된 압박' 또한 돌이켜보면 별다른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002년 12월 29일 미국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부는 북한이 만약 핵무기 제조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해 경제적·정치적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한 포괄적인 새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을 인용하여 보도했다.
“행정부 관리들은 소위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라고 불리는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 야망을 꺾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맞춤형 봉쇄’라는 용어는 북한 문제가 이라크나 이란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주로 정치·경제적 압력과 다국 간의 최대한의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관리들은 설명했다. 새로운 정책에 따라 북한의 주변국들은 북한과의 경제교류 축소가 권고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경제제재로 압박을 가하며 미국은 북한의 돈줄을 끊기 위해 북한 미사일 선적 선박의 이동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
… 돌이켜 보면 언론의 입장에서는 ‘맞춤형(tailored)’이라는 용어를 잘 선택했다. 한국어 번역 ‘맞춤형’도 위기 인식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한 단어 선택이었다. 한국민에게 ‘맞춤형’이라는 단어는 양복감 위에 분필로 모형이 그려져 있고 재단사는 분필로 그려진 선을 따라 양복감을 막 베려고 뾰쪽한 가위 끝을 대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자. 봉쇄를 위해 분필로 그리기는커녕 분필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위기감을 고조시키기에 안성맞춤의 우리말번역이었다.

2004년 12월 6일 미 백악관 해들리 안보보좌관 내정자는 한국 국회 방미단에게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해 일종의 ‘관리된 압박(managed pressure)’이 필요하며, 6자회담 참여 5개국이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대화 테이블로 나오라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
그러던 차에 2004년 12월 방미하여 미 국무부 켈리 차관보에게 ‘관리된 압박’에 관한 미 행정부의 논의 동향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켈리는 이 용어를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담당 고위 관리가 들어보지 못했다는 말을 가지고 한국은 흥분했던 것이다. 어느 한 관리의 말이 꼭 정부의 통일된, 또는 정부 내에서 깊이 논의된 이야기가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 미국의 관리는 ‘관리된 압박’을 이야기했을 때 압박 자체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카드로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 북한 핵 문제로 북한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면 [뭐든] 관리되고 절제되고 통제된 압력일 것이다. tailored나 managed의 수식어가 별난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은 일부 관리들의 말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 결과였다.[20]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이라는 인상을 준 것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런 솜방망이에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던 한국 측의 섬약한 신경에 있다. 협상력을 키우려면 대북 강경책에 관한 한 한국인의 신경은 좀 더 굵어질 필요가 있다.




[1] 船橋洋一, 『ザ·ペニンシュラ·クエスチョン 朝鮮半島第二次核危機』, 朝日新聞社, 2006
(오영환 외 역, 『김정일 최후의 도박』, 서울: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7, pp.306-307)
[2] 같은 책, pp.308-309
[3] 같은 책, pp.310-312
[4] 같은 책, p.372
[5] 김정훈 부형권, 盧, 파리 교민 간담회: 부시-네오콘 분리대응…실효성 의문, 동아일보, 2004년 12월 6일
[6] 같은 기사
[7] 백기철, 노대통령 LA연설 '대북강경책 NO' 단호한 메세지, 한겨레, 2004년 11월 14일
[8] 船橋洋一, pp.197-198
[9], 이수혁, 전환적 사건: 북핵 문제 정밀 분석, 중앙북스, 2008, p.341
[10] Mann, James, Rise of the Vulcans, Penguin, 2004
(정인석 권택기 역, 『불칸집단의 패권형성사』, 박영률출판사, 2005, p.357-358, 446-447)
[11] 船橋洋一, p.174,176
[12] 같은 책, p.338
[13] 사실 이 문제를 어떤 경우에도 북한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대북 저자세의 결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4] Pritchard, Charles L., Failed Diplomacy: The Tragic Story of How North Korea Got the Bomb,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07
(김연철, 서보혁 역, 『실패한 외교: 부시, 네오콘 그리고 북핵위기』, 사계절, 2008, pp.31)
[15] Sanger, David E., Pakistan Leader Confirms Nuclear Exports, New York Times, 2005년 9월 13일
[16] 船橋洋一, p.127
[17] 같은 책, p.182
[18] 같은 책, p.161
[19] 이수혁, pp.77-78
[20] 같은 책, pp.213-218
by sonnet | 2009/06/21 07:27 | 정치 | 트랙백(3) | 핑백(6) | 덧글(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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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날라리 무도인의 잡소리 at 2009/06/21 10:23

제목 : sonnet님의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에 대한..
2차 북핵 위기를 돌아보며sonnet님이 쓴 긴 글을 요약하자면 결국 2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도를 지니지 않았으나, 노무현 정부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미국과의 관계를 틀어버렸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3.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그렇다면 이러한 노무현 정부......more

Tracked from Taidentity at 2009/06/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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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kidstea)... 02년도 말에난 정보계통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집안 사정은 최악이었고, 게다가 내가 군대간 사이에 부모님은 일본에 영주권;을 얻어 나가버리셨다. 지금과 달리 전공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면서 학업에 복귀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꽉 차 있었다. 내가 일병때부터 우리 부대장님께서는 말뚝...more

Tracked from 휴장 at 2009/06/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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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핵 위기를 돌아보며뻘 제목이기는 한데...아는 형이 여자친구와 깨진 스토리가 재미있다.그 형이 여자친구랑 같이 있을때, 전화가 왔는데, 아마 직장 동료였는지 회사였는지... 어쨌든 저쪽의 잘못으로 크게 말다툼이 생겨서 전화로 목소리를 꽤 높였다.그리고 여친이랑 깨졌다.-_-;;; 아니 여친에게 소리 높인 것도 아닌데 왜?여친 말로는 '이 사람에게 언젠가 내가 잘못했을때 나에게도 이렇게 대할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more

Linked at Kind of Blue, an.. at 2009/06/21 22:23

...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노무현의 대미외교 관련 논쟁을 보면서,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어서 써본다. 이 논쟁을 접하지 못하셨던 분들은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 와 "sonnet님의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에 대한 단상를 먼저 읽고 나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1. sonnet님은 불카누스라는 그룹 ... more

Linked at 휴장 : 죽어라 MB!! at 2009/06/22 23:10

... 쟁에 끼는듯.부시와 네오콘들이 '북한을 쳐 부수자!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고, 간간히 그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로 뱉는 아마추어적인 짓을 남발 하더라도, 그들의 실제 발화는 그러지 아니하였으며, 적어도 우리 입장에서도 사후적으로 볼때 그것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또한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시에도 어느정도 알 수는 있었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09/06/30 10:19

... 일종으로 보았다는 말이지요. 마지막 강조는 갈루치가 일본에게 이것이 (당신들도 잘 아는) 소극적 안전보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제가 앞선 글에서 지적했듯이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우라늄 농축에 의한 비밀 핵개발을 추진하여 먼저 제3조2항을 위반했습니다. 제2차 북핵위기는 미국이 그 사실을 적발해 ... more

Linked at in Baltimore : M.. at 2009/12/04 21:43

... 북한 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 사이에 체결 되었던 제네바 합의가 부시 행정부에서 어떻게 깨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차 핵위기는 이런 의견처럼 북한이 제네바 협약을 무시하고 비밀리에 우라늄을 고농축(HEU)하여 핵개발을 시도 했고, 그걸 부시 행정부가 발견했으며, 북한이 그것을 인정하여 시작된 것으 ... more

Linked at . : [펌]2차 북핵.. at 2011/04/04 12:47

... 원전 사고도 있고 최근 역사(?)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무엇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이 시점에서;;; 여러 글들을 찾아보다가 좋은 내용인 것 같아 담아왔다.http://sonnet.egloos.com/4170604 ... more

Linked at 不慍한 회색인의 쓰레기하치장 .. at 2013/02/15 11:29

... 는데 우리는 더한 것도 있을 수 있다"였다고 주장한다.(시사저널 - “핵개발 시인은 미국의 과장” 2002.11.18.) <주3> sonnet 님, 2차 북핵위기를 돌아보며(2009.06.21.) [sonnet 님의 글은 제 주장과 결을 달리하는 오래된 글이지만 좋은 글이라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듯...] <주4&g ... more

Commented by 김우측 at 2009/06/21 07:4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북핵정책은 이렇게 보니 아쉬운점이 크군요. 오히려 노무현 정권이 북한의 우려를 대신해서 미국에 전달해줬다는 느낌마저 강하게 들 정도입니다... 중재자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미국의 우려를 북한에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더군다나 동맹국이 그런 역활이라니.. (한숨)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1:23
사실 제 생각은 윤장관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여러 모로 아쉬웠습니다.
Commented by 윤민혁 at 2009/06/21 08:04
어떤 의미에서 오바마 행정부 수립 이후 북한이 설레발을 친 것도 저때의 경험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1 23:42
그런데 좀 애매한 것이 제가 보기엔 북한은 오바마에게 거의 기회를 준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의 북한은 미국의 행동과 별 관계없이 자기 길을 간다는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deokbusin at 2009/06/21 08:19
1.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다"는 경험법칙이 전 정권을 구성한 주요인사들의 국제정치관, 미국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일방적으로 미국이 놀랄 정도로 의심을 한답니까?

미국에 대한 저런 반응의 원인이 전 정권의 핵심인사들의 사고방식에 자라잡은 것들 중에서 광주의 추억이 문제였던 건지, 북한의 선전에 놀아난 건지 궁금해질 지경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1:32
2. 반대로 의외로 북한은 말로 하면 통한다 같은 시각도 있잖습니까.
Commented by sprinter at 2009/06/21 09:3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전반적으로 미국과의 연계를 적어도 과거에 비해서는 최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민족주의적 경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94년 이미 '북폭'이 현실화 단계까지 - 그것도 무려 클린턴의 민주당 정부에서 - 왔던 경험이 있는게 남한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남한의 정권들이 북한에 대해서 미국이 비록 '말로만'이라도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그것을 '저건 말로만 일거야'라면서 '굵은 신경'으로 견딜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견뎌야 한다'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견디지 못했다'의 경우 입을 피해도 작다고 할 수는 없지요.

이는 최근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남한의 사람들이 더이상 '북한과의 전쟁은 없을거야'라고 믿지는 않는것과 분명히 비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의 효과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라고 말씀하시면 할 말은 없겠습니다만 ^^;;;;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오래 가서 정권에 좋을게 없는것도 사실이죠.
Commented by maxi at 2009/06/21 11:12

구국의 영웅 민족의 지도자 기명사미 (전직대통령으로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님이
"한반도의 전쟁은 내가 클린턴한테 전화걸어서 막았어! 클린턴이 내 기에 죽더만?"


......(생략)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1:53
제 생각은 공동선언 등에 등장하는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실제의 전쟁이나 북폭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라는 점 정도는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너무 모든 위험을 피하려 들면 북한에게 과도하게 휘둘리게 된다는 건 분명하거든요. 물론 제 생각이 틀려서 국민들이 그런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 불이익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6/21 10:34
갑자기 '북한학자'라는 사람들의 신뢰도가 뚝 떨어지네요. ㅡㅜ

틈나는데로 지면에 실리는 이란, 이라크, 아프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뉴스에 비해, 북한 소식은 크게 사고치지 않는 이상 기사가 그렇게 실리지도 않지요. 그만큼 관심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긴데...

가끔씩은 "미국이 북한에 큰 이해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한국만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Alias at 2009/06/21 10:56
북한학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기본적으로 "독재정권의 행태를 예측"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까먹은 채 그냥 내 연구가 옳아 이딴 식으로 흘러가는 케이스가 많은 게 함정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리비아가 그렇게 전격적으로 WMD를 포기할 것을 바깥에서 예측한 사람 별로 없쟎습니까.... 막후협상 참여자들도 반신반의했을 거 같은데...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6/21 13:09
북한학의 역사를 생각해 주시길. 4년제 종합대학 학부에 북한학과가 설치된 지 이제 고작 13년이 지났을 뿐이고, 그나마도 10개나 설치되었던 게 지금 3개(그 중 하나는 내년에 통폐합)로 줄어든 판국입니다. 애초에 기본 토양이 부실한 상황에서 거의 독학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왔으니 정치외교학에 비하면 판 자체가 무지막지하게 좁을 수밖에 없지요. ㅈㄱ.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1 23:30
북한 연구가 우리에게 꼭 필요하긴 한데, 대북정책에 다른 대외정책들을 몽땅 종속시키는 식으로 흐르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6/21 11:24
제가 보는 이종석의 실수는 :

1) 북한이 (참여정권 인수위 당시는 아니었을 지 몰라도)
예전처럼 중국을 신뢰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는 점.
2)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신한 점.
3) 자주, 민족의 개념에 기댄 점.
4) 미국을 지나치게 호전적으로 해석한 점.

등이 아닌가 봅니다. 특히 2, 3번은 심각한 실수가 아닌가 봅니다. 단기간 북핵
문제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겠지만 장기간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중국이 과연 어떻게 얼마나 기여할 지는 의문이 있는데다 이미 한번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과거가 있는 북한에 민족을 앞세운 것은 냉정함을
잃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무튼 참여정부의 외교라인은 둘째치고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대미외교가
얼마나 취약 하고 어설픈지 다시 한번 일께워주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1 23:33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협상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너무 과신했다고 생각합니다. 늘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을 평가절하하는데 바쁘던 중국 분석가들도 이제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 시작한 판이니까요.
제 생각에 좋던 싫던 장기간 북한의 실질적 핵보유와 동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9/06/21 11:59
[미국의 속내는 북한의 체제 전환이다.]

...뭐, 미국을 이라크 정복 1년, 시리아 정복 1년, 이란 정복 1년 + 듣보잡들 합쳐 4년에 중동평정이 가능한 킹왕짱 아말감하고도 투명드래곤한 올마이티로 보았다면 북한 공격할까 겁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겠지만;
(옙. 제가 옛날에 그랬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1 23:37
체제 전환이 되었으면 하고 막연히 바란 건 사실이지요. 그런데 마땅한 수단도, 또 적극적인 행동도 결국 없었구요.
Commented by 自重自愛 at 2009/06/21 12:20
[피스메이커](중앙books, 2008) 654쪽을 보니 2002년 5월 초에 존 볼튼 당시 국제안보담당차관이 연설을 통해 "악의 축 세 나라 중 첫 번째 군사공격목표가 이라크요, 그 다음은 북한, 세 번째가 이란"이라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존 볼튼의 발언은 순전히 엄포용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임동원 전 장관의 회고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까?
Commented by maxi at 2009/06/21 13:17
"수많은 미국 관리들의 발언 중 하나" 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0:46
저도 그 책이 있어서 꺼내 봤는데, 따로 주석이 달려 있질 않네요. 옛날 뉴스를 한 번 검색해 보겠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14:25
Commented by 계원필경theNatural at 2009/06/21 12:20
사실 "할 수 없다"는 걸 "할 수도 있다"라고 이해한 참여정부의 외교통들과 이런 동맹에 실망감을 가진 미국이 서로 맞대고 해결하기에는 좀 어려운 감이 없지 않을 수 밖에 없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1:54
이젠 지나간 일이니까 가능한 조용히 문제가 되었던 점을 고치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삐레 at 2009/06/21 13: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몇몇은 '수많은 미국 관리들이 대가리가 하나인 괴물이라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줄 모른다'라는 가정을 깔고 얘기하더군요. 참으로 흠좀무입니다.

이럴때 일 수록 sonnet님께서 더더욱 냉철한 분석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0:42
이론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정부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해야겠지만, 그렇게는 되질 않지요.
Commented by 섬백 at 2009/06/21 13:38
흠... 부시 행정부가 Hawkish 하다는 인식은 저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성향도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단 얘기네요. 하기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을 동일시 해서야 안될 일이겠지만서도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2:13
악의 축 연설을 작성할 때도, 원래는 이라크 한 나라였다가 나머지 두 나라가 들어갔다고 하니까요. 졸지에 앙숙인 이란과 이라크가 주축국(axis)로 묶여버리는 황당한 사태가...
Commented by teferi at 2009/06/21 14:23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이 대북강경책에도 굵은 신경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이나 국내정치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북한에 대해 철저한 저자세로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햇볕정책이라는 그 명칭에서 드러나는 특징때문입니다. 햇볕정책은 북한을 지원해서 개방을 유도한다는 정책인데, 북한 지원이외의 방법으로 개방을 유도하지는 않습니다. 고로 대북강경책을 써서 북한이 굴복한다 해도 그건 햇볕정책의 성과가 되지 않는다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햇볕정책지지자들은 햇볕정책이 맞다는 것을 입증할 때까지 북한에 지원할 수밖에 없으며, 북한에 지원하는 이외의 정책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햇볕정책지지자들은 예전 북한을 추종했던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반공주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햇볕정책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친북주의-반전주의-이상주의와 연계되는 정책이고, 대북강경책은 반공주의-찬전주의-현실주의와 연계되는 정책입니다. 대북강경책이 효과가 있다고 해도 그들은 반공주의-찬전주의-현실주의적 정치세력이 힘을 얻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대북강경책을 쓰지 않습니다.

고로 햇볕정책지지자에게 강경책도 견딜 수 있는 굵은 신경을 지니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햇볕정책지지자의 집권을 막고 햇볕정책이 정책으로 채택되는 것을 막느냐를 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심바 at 2009/06/21 17:18
그런면에서 이번 임기에는 북핵문제에 대해 실용적이고 북한에 대해 비추종적인 성과가 반드시 나오겠군요.
Commented by 은기리메 at 2009/06/21 18:29
심바//햇볕정책 지지자들은 최악의 선택이니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 햇볕정책이 아니면 무조건 성과난다는 논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Commented by 피셔 at 2009/06/21 19:08
은기리메//teferi 님을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근자에 teferi님께서 활동을 재개하신 듯 한데 곧 두고보시면 심바님의 댓글을 이해하실수 있으실겁니다.
Commented by 심바 at 2009/06/21 20:59
은기리메/ 윗글에 써 있잖습니까? 그리고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이유는 타당한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요?
Commented by gforce at 2009/06/21 14:30
잘 읽었습니다. 북한학쪽 관료들은 주화입마의 실례를 보여주는군요! 그나저나...

이번 황상은 기본적으로 스타일 자체가 어떤 이슈에서 최대한 많은 actor들을 모아놓고, 실질적인 부분에서 타협이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모아놓고 사진부터 찍어놓고 보는 그런 스타일으로 보이는데... 세부적인 디테일 자체는 직접 지휘 안 하고 여러 actor들에게 타협의 여지를 보이는데 비해(그만큼 원래 목표했던 디테일은 타협할 수밖에 없지만 일단 기본적인 목표는 확실히 달성하는) 기본적인 목적에선 그 협력적인 제스쳐에 비해 초연할 정도로 절대로 끌려다니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한국이 그것만 잘 파악--협력적인 제스쳐만 보지 않고, 타협할 의지가 있는 디테일과 타협할 수 없는 기본적인 목적을 파악해서 적절히 대처--하면 적어도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사진찍고 나중에 버려지지는 않는" 포지션을 점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흐...
Commented by 푸른매 at 2009/06/21 15:57
북한학자 출신 관료들의 인식은 정말 쇼킹하군요. 개인적으로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2:10
당혹스럽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친한척 at 2009/06/21 16:02
개인적으로는 한 학기 국제정치학을 배웠던 윤 전 장관이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정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 제가 그 분을 통해 국제정치학에 대한 시각을 키워나가기 시작해서 그런지 북한학자들의 소견이 좁아보이는군요. 게다가 내부협의가 되지 않으면서 이래저래 손발이 안 맞거나 대내외적으로도 사인이 어긋나는 모습이 보이고.... 윤영관 전 장관 쪽의 의견대로 흘러갔더라면 북한 문제가 어떤 흐름을 탔을지 심히 궁금해집니다.

아, 그리고 수업 중에 언뜻 나온 얘기에 따르면; 노통은 당선자 시절에 윤 교수님의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을 읽었다고 합니다. 뭐 꼭 그 책 때문에만 합류하신 건 아니겠지만 노통이 윤 전 장관에게 국제정치경제 쪽의 통찰도 바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기엔 동북아가 너무 하드파워 중심의 지역이었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1 23:56
네, 저도 당시에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윤 장관이나 카운터파트인 파월 장관 모두 대통령의 충분한 신임을 확보하지 못해 고생만 잔뜩 하고 결과가 별로였던 게 아닐까 합니다.
Commented by 친한척 at 2009/06/21 23:58
그러고보니 파월 역시 그런 기가 있었네요.
Commented by bearstone at 2009/06/21 17:39
좌우를 떠나서 경험도 부족하면서 자신들만의 도그마에 빠진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리속에 이미 그려진 이미지에 맞추는 경향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함량미달의 인사들이 정권의 핵심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 정부도 방향만 틀리지 수준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해서 걱정입니다.
Commented at 2009/06/21 18: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0:19
사실 역풍인 측면도 있지요.
Commented by 어린잎 at 2009/06/21 19:18
07~08년도에 외교부에서 잠깐 근무하면서 이종석씨에 관한 일화를 몇개 들었을 때는 그분의 사고방식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었었는데, 이런 멋진 글을 통해 그런 사고방식의 배경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외교부 서기관님들, 심지어 공익분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공감대가 있었던 탓에 07년 말에는 외교를 위해서라도 MB가 되어야 한다는 농;이 성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외교부의 대외 위상은 올라갔을지라도 "공직자 노비론"으로 대표되는 공무원 기강잡기때문에 관가 분위기는 07년보다 훨씬;; 안좋아지긴 했습니다만... 뭐 지금은 말할 것도 없구요.
Commented by maxi at 2009/06/21 19:25
노무현 정부 당시 외교부와 통일부의 싸움은 정말 심했죠. 그런데 이X석씨 가 NSC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가면 갈수록흘러나오는 원성이...(먼산)

이제 외교부 출신 총리(-_-) 가 나왔으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면 외교부의 반란으로 볼 수도 있지요. (한미 공조가 통일부가 막장짓 하던 때보다 못하다는 점이 과연 엽기정부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0:59
네, 저도 그런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6/21 20:25
이런 점에서는 '아마추어' 소릴 들어도 쌌군요.
역시, 무지보다 무서운 건 편견이랄까, 저렇게 '쏠리게' 만들기도 힘들지 않나 싶기도...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21 20:27
이렇게 놓고보니 김대중은 외교에서도 꽤 높고 멀리 볼 줄 알았던듯 싶습니다. 하기사 한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못본다면 좀 많이 곤란하겠지만.
Commented by 마키아벨리 at 2009/06/21 22:28
노...무현씨도 대통령이었다는^^
Commented by gg at 2009/06/21 23:28
그냥 궁금해서 질문을...

이 포스팅 자체에 대한 반박글을 떠나서, 노무현정부의 외교정책과 한미동맹간의 관계를 가지고, 노무현이 한미동맹을 오히려 강화한 대통령이란 주장을 하는데 마이클 그린의 중앙일보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인용하던데,

이걸 립서비스라고 봐야할지, 다른 관점에서의 발언이나 정보가 있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대상국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발언하는게 당연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2 00:17
사실 그린 빼고 그렇게까지 좋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그린 바로 밑에서 일했던 빅터 차만 해도 완전 딴판이던데...

그린과 차의 APEC 정상회담 분석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881343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9/12/2007091201282.html


사실 저는 그린의 말에서는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아시아 전문가가 아닌 미국의 고위급 전략가들이 미국과 일본·호주 간의 동맹을 강조하면서 가끔 한국을 빠뜨리는 경우를 보면서 더욱 강해진다. 대다수 인사들은 한·미 동맹이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적 발언에서 자주 한국이 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3296072
Commented by gg at 2009/06/22 08:21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6/21 23:47
제가 만나본 어떤 사람들은 노무현 주변의 고위인사들이 주체사상은 포기했을지언정 내셔널리즘 일변도 정서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심스러워하더군요. 글 내용과 직접적 거리는 멀지만, 동일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이는 그 때 들은 일화들입니다.

1.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한 DVD들이 '취화선' 하고 '대장금' 이었는데, 둘 다 '한국적 전통' 을 강조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깊숙이 반영한 작품들이지요.

2. 프랑스 고위인사들이 방문했을 때 일부 인사들이 영화 '올드보이' 상영을 제안했더니 청와대 다수 측근들이 그건 일본만화 원작이라 안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해서 부채춤과 김덕수 사물놀이로 대체. 프랑스인들은 따분해했다고 합니다. 왜놈들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서 순수한 민족문화가 아니라 이거죠. 민족문화의 정수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랄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3 11:27
말씀 잘 들었습니다. 나름 이런 부분에서도 예민하게 선택을 했군요.
Commented by 길 잃은 어린양 at 2009/06/23 12:36
쇼킹하군요.

그러고 보면 부채춤도 순수 민족문화는 아니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스타라쿠 at 2009/06/22 03:33
그래서 나온 대안책이 MB정권이라니...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합리적 대안을 위해 비합리적 도구를 사용하다니...모두 미쳤어.

합리적 이란게 대체 무엇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Commented by at 2009/06/22 06:34
제일 큰 문제는 인간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붕어 at 2009/06/22 18:54
현재 선택이 차선책이라 볼수있지만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 볼수있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전적으로 실패했을때 과거 성공했던 것을 다시 가져오는 건
비합리적이라 볼수 없습니다. 도리어 확고히 실패한 시도에 매달려 파멸하는
것보다야 양호하지요. 물론 과거의 불편도 돌아오지만...
Commented by 스타라쿠 at 2009/06/23 16:21
새로운 시도가 전적으로 실패했을때 과거 성공했던 것을 다시 가져오는 건
비합리적이라 볼수 없습니다.

......-_-? 어라? 뭔가 이상한데? 역시 인간은 비합리적?
Commented by 붕어 at 2009/06/25 00:08
부정의 부정은 무엇이 될까요?

그리고 과거 윈도우me의 사용자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삼^^
Commented by 스타라쿠 at 2009/06/25 18:16
부정의 부정이 긍정은 아니죠. 역시 인간이란 비합리적인게 맞군요.
Commented by 3의물결 at 2009/06/22 09:18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많은 것을 배워 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3 11:11
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젝리 at 2009/06/23 01:58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서 제2차 걸프전을 일으킨 조지부시였기 때문에 미국의 행동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시의 적절했습니다.

클린턴 시절이면 이런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겟죠. 미국이 말도 안되는 (물론 이 말을 위해 걸린 시간은 무려 60년이 필요했다) 소위 '윈윈전략'이라는 개념을 부시가 실천하려고 했으니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3 11:10
미국이 제2차 이라크전을 일으키자 한국의 대응은 거기 한국군을 파병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참여에 의한 영향력 행사'를 노리고 한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한뫼 at 2009/06/23 15:0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북한학자 출신 관료들의 인식이 참.... 인터넷 용어로 후덜덜 하네요.
Commented by 일화 at 2009/06/24 22:32
잘 읽었습니다. 저도 크레테님의 글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소넷님이 정리해주시니 한결 정리가 잘 되네요.
Commented by 잇힝 at 2009/06/26 12:54
북한학자 출신 관료들의 인식
- 미국의 속내는 북한의 체제 전환이다. 그런 미국과의 정책 협의는 사실상 어렵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보다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펴는 것이다. 이때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그는 "우리로서는 발등의 불이니까 중국이 북한을 잘 설득해 핵을 절대 못 가지게 하고 대신 김정일 체제를 인정하고 서방이 지원하는 식으로 타결되도록 우리가 대중국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며 "한미관계도 강화해야 하지만 한중관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이렇게 비슷하게 들리는지.....^^;

http://media.daum.net/foreign/asia/view.html?cateid=1042&newsid=20090625235904346&p=pressian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27 00:53
사실 중국이 움직여 주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해결책인데요. 문제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지요.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부시의 6자회담 구상부터가 어떻게든 중국을 움직이게 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과거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의지를 평가절하하면서 북한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 북한도 핵을 포기할거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 2차 핵실험 이후에는 옌쉐퉁 같은 중국 분석가들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럼 이제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요? 향후 한 반 년 정도가 중국의 진정한 입장을 확인할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Commented by 별마 at 2010/01/12 22:26
부시 행정부의 반응이 재미있네요.
북한은 오히려 이러한 반응을 노렸던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부시 행정부가 이도 저도 못할 때 저들은 다 하겠다는 심보라고 보면 너무 비판적일까요.
Commented by ㅇㅇ at 2019/03/24 09:19
이 글에서 보이는 문정인 교수의 태도와 언론 등 다른 지면에서 보이는 그의 태도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선 한미동맹을 전제로 한 북핵협상이라는 윤영관과 유사한 시각을 보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보면 동북아균형자론의 설계자라거나 참여정부 외교라인 내부의 자주파 vs 동맹파 대립에서 자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는 말들이 주로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 계속 회자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간극의 원인에 대해 sonnet 님이 혹시 고찰하시고 계신 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19/03/26 12:44
지적하신 부분은 일리있다고 생각하며,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별 도움이 못되어 죄송합니다.
Commented by ㅇㅇ at 2019/03/26 19:12
아무래도 이것저것 찾아봐야겠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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