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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먼 민스키의 금융위기론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재조명되는 인물들이 몇 있는데 누가 뭐래도 그중 No.1은 케인스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칼 폴라니를 밀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해외에서 재조명받는 인물 중 하나가 금융의 취약성을 강조했던 하이먼 민스키다. 민스키도 만년에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케인지언으로 간주되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먼은 최근 강연차 서울에 오면서 민스키의 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를 들고와서 읽었다(1, 2)고 한다. 내가 알기로 민스키의 단행본은 번역된 적이 없는데,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의 2장에 금융위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 요약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 옮겨 볼까 한다.


경기확장 국면에는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증폭되고, 이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투자에 대한 수익성 추정치를 상향 조정한다. 따라서 이들이 자금을 차입하려는 의욕이 늘어난다. 동시에 대여자들은 개별적인 투자에 대한 위험 평가를 낮추고, 이들의 위험 회피 성향도 줄어들어 자연히 돈을 빌려주려는 의욕이 증가하고, 이전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투자가 긍정적인 여신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도 생겨난다.

제반 경제 여건이 둔화될 때는 투자자들의 낙관론은 줄어들고 신중론이 고개를 든다. 동시에 대출손실이 늘어나게 되므로 대여자들은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다.

민스키는 이처럼 호경기 때 늘어나고 경제의 탄력이 약화될 때 줄어들면서 경기순환에 동조하는 신용 공급의 확대와 축소가 금융 질서의 취약성을 초래하고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고 믿었다.

이 모델은 신용 공급의 불안정성에 주목한 존 스튜어트 밀, 알프레드 마샬, 크누트 빅셀, 어빙 피셔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민스키는 피셔의 노선에 따라 과도한 채무를 진 차입자들, 특히 경기 확장기에 단기적인 자본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부동산이나 주식, 상품의 매수 자금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주목했다. 이들이 이런 거래를 하는 이유는 해당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매수 자금으로 조달한 차입금의 금리를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둔화하면 이들이 매수한 자산가격의 상승률이 차입금의 금리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이들 차입자 가운데 일부는 실망하게 되고, 이들 중 다수는 투매자로 돌변한다. (pp.58-59)


민스키는 이런 상황에서 차입자들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접근할 것을 권한다.

민스키는 개별 차입자들의 영업이익과 채무 원리금 상환 사이의 관계를 기준으로 세 가지 자금조달 유형을 구분했는데, 헤지금융, 투기금융, 폰지금융이다. 어느 기업의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와 채무 원금의 분할 상환액을 지불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할 경우, 이 기업은 헤지금융(hedge finance) 집단에 속한다.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하지만, 만기 시점까지 잔여 채무 원리금의 일부 혹은 전부를 상환하려면 신규 차입을 해야 하는 경우, 투기금융(speculative finance) 집단에 속한다. 예상 영업이익이 약정된 지급 일정에 따른 이자를 지불하기에도 부족할 개연성이 크다면 이 기업은 폰지금융(Ponzi finance) 집단에 속한다. 폰지금융 집단에 속하는 기업은(채무 원금은 차치하고) 이자 상환을 위한 현금을 마련하려면, 추가 차입으로 채무 원금을 늘리거나 아니면 보유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민스키의 가설은 경제가 둔화하면, 헤지금융으로 운영되던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이 그룹에서 탈락해 투기금융 집단으로 떨어지고, 이전에 투기금융으로 운영되던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폰지금융 집단으로 선로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다.(p.62)

이번 금융위기에서 민스키가 각광받은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이것은 주택대출을 끌어 쓴 차입자들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아주 간명한 틀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신용공급의 확대가 문제를 증폭시키는 측면도 적절히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을 요하는 점은 현대적 금융이 도입되기 전에도 이런 문제는 늘 있었다는 것이다.

민스키 모델에서 호황 국면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신용의 팽창이다. 은행 산업이 자리 잡기 이전인 17세기와 18세기에는 개인 신용과 판매자 금융이 투기적 확장 국면에 연료를 공급했다. 은행이 만들어지자 이들이 신용의 공급과 함께 그들 자신의 부채를 확대했다 … 민스키는 은행 여신의 성장이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띠며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자금 대여자로서 어떤 때는 무척이나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 없이 자금을 빌려주었다가,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뒀다. (pp.60-61)

이 같은 과정이 이어질 경우 나타나는 결과는 아담 스미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이 ‘과잉거래’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용어는 그 정확성이 다소 떨어져서, 자산가격이나 상품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투기적 판단, 장래수익의 과대 추정, 혹은 ‘과도한 차입금 의존(excessive leverage)’ 거래라는 의미를 포괄한다. (p.63)

이런 청산 과정은 패닉으로 악화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이 같은 행태를 ‘급반전’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상품 또는 유가증권을 담보로 대출하는 은행의 조심스러움이 확연히 커진다. 19세기 초 이런 상황은 ‘신용경색’으로 일컬어졌다. ‘과잉거래’, ‘급반전’, ‘신용경색’이라는 용어들은 골동품 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투자자들의 낙관론이 퇴색하는 과정을 시각적 도표처럼 잘 전달해준다.(p.69)

"하이먼 민스키"로 웹 검색을 해보면 해외 언론들이 그를 재조명하는 것을 받아쓴 국내 언론 보도들이 여럿 보이긴 하는데, 그를 진지하게 재발굴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긴 적어도 그의(혹은 그를 소개하는) 책이 몇 권 나와야 독자들을 확보해 논의가 시작될 수 있긴 하겠다만...


記. 민스키는 1919년생으로 로버트 솔로우보다 다섯 살 위다. 그도 대공황을 경험한 세대인 셈.
by sonnet | 2009/06/05 08:47 | 경제 | 트랙백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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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9/06/05 09:32
처절한 체험의 산물이려나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5 13:52
저도 민스키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이로 볼 때,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민스키 이론을 채택한 킨들버거도 1910년생으로 대공황 세대이고 또 저명한 대공황 연구자였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6/05 09:34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고생도 해 본 사람이...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5 13:53
그러고 보면 안 먹어본 세대이지만 속칭 '대공황 매니아' 벤 버냉키가 미국 중앙은행장인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버냉키는 자기 입으로 '대공황은 거시경제학의 성배'라고 말하기도 햇을 정도죠.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6/05 10:02
공력탄성 발산... (Aerodynamic Divergence)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5 13:53
크크크.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9/06/05 10:27
케인즈 이론이 원래 거래가 잘 안돌아갈 때를 설명하는 이론이니 이럴 때 그 계파에서 쓸만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군요. 80 - 2000년대 중반까지 수세에 몰려있던 케인즈파가 다시 늘어나게 될지 흥미롭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5 13:55
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케인스 학파는 경제가 잘 안 돌아갈 때 빛을 발하죠.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6/05 13:25
아아 지옥의 문 폰지금융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5 13:48
거기까지 가면 뭐 더 말할 게...
Commented by 알츠마리 at 2009/06/05 17:56
아아... 폰지금융.(...) 우리집인가.OTL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6/05 15:59
역시 체험으로 터득한 교훈은 중요하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5
사람은 경험에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이니까요.
Commented by 마나™ at 2009/06/05 17:02
최근 방한도 했고 한국에 좋은 말(?)을 해 줬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루비니 교수 쪽이 더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6
루비니는 현역이니까 좀 다른 카테고리일 듯 합니다. 각광받는 건 분명하지만요. 제가 흥미롭게 보는 것은 일종의 '고전 되돌아보기' 운동 같은 것이 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이 고전에서 뭘 찾아냈는지, 그것은 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이나 현재 주어진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하는 것입니다.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05 18:14
시장만능주의자 거시경제학자들이 웃긴게, 시장이 완전(complete)하고 효율적이면 거시현상 자체가 안일어난단 말이죠? 애초에 돈은 아무 가치가 없을 거고 신용(credit) 시장도, 은행도 존재 안할거란 말입니다?

Theory하는 사람으로서 거시경제학을 우습게 보는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데, 거시경제학 할거면 차라리 케인즈나 민스키처럼 anecdotal storytelling하는게 정직하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2071 at 2009/06/06 10:23
Arrow-Lind의 논의는 신용시장에 대한 논의 아닌가요. 그 양반들도 완전하고 완비되어있이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완전한 조건부시장이 존재한다면 (예컨대 보험, 신용, 은행?) 시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이런 논의 아닌가요?

한편 완전하다고 해도 완비되지는 않아서 뉴메레르가 없다면 이 경우 화폐의 의미는 여전히 있지 않은가요? (사기꾼님이 불비를 말씀하시지는 않은 거 같아서...)
Commented by 2071 at 2009/06/06 20:21
음 질문이었는데 왠지 나중에 다시 보니 말투가 좀 공격적인 거 같네요 -_-;;; 이렇게 뒤에 부연만 붙이고 사라집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8
거시는 늘 이론적으로 빈약하지 않습니까.. 특히 미시적 기초로 연결하려는 시도들 대부분이 단편적이라는 게 현재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07 11:54
2071//일반적으로 완전하다는 얘기는 완전한 조건부 시장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확장해서 dynamically complete한 경우까지 포함한 얘기죠. 그보다도 더 나아가서 short-selling (만) 제한된 시장까지 complete하다고 보기도 합니다.

뉴메레르로서의 화폐는 현실의 화폐의 역할의 극히 일부일 뿐이죠. 환폐가 단지 잣대로 쓰이나요? 교환의 도구로 쓰이지. complete 한 시장에서 'fiat money' 는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뭐 overlapping generation이니 search theory of money, trading post theory 같은 것들 다 불완전 시장을 가정하죠.

Commented by 사기꾼 at 2009/06/07 11:56
sonnet// 분명한 한계죠. 조금만 복잡해도 안풀리니까;;

단 그렇다면 솔직하게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을 봤을 때 이러이러할 것 같다'라고 할 것이지 소설에 불과한 얘기들을 일반균형이론으로 정당화는 왜 한답니까.
Commented by 서생 at 2016/07/10 06:14
이 댓글을 보실 확률은 거의 0으로 수렴 하겠지만 지나가는 김에 단문 남깁니다.

시장이 완전해도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the first-best가 얻어지지 않을 수도 있죠. 가장 쉽고 대표적인 예는 외부성이 존재하여 어떤 가치가 단조적으로 떨어지거나 증가하지 않아서 균형이 여러가지인 경우 (multiple equilibria)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시장이 완전하고 모둔 경제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well-behaved economy에서도 발견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론하신 "시장만는주의자 거시경제학자들"이 어떤 경제학자들을 지칭하시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RBC를 따르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RBC를 따르면서도 multiple equilibria라는 측면에서 시장의 비효율성을 설명하는 거시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Washington Univ.의 Azariadis, NYU의 Benhabib 그리고 UCLA의 Farmer 등이 있습니다.
Commented by 서생 at 2016/07/10 06:20
좀 불명확하게 서술한 부분이 있어서 첨언하면,

제가 언급한 외부성은 시장이 완전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초급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외부성, 즉 시장이 불완전하여 존재하는 외부성이 아니라는 말이죠.

가장 쉬운 예는 어떤 정책 (예를 들어 조세)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완전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합리적"이어도 외부성이 제어되지 않아 여러개의 균형이 생길 수 있으며 모든 거시지표 역시 여러개의 균형을 갖게 되죠.
Commented by 일화 at 2009/06/05 21:26
고전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군요. 뭐 요즘 경제학이 이번 위기의 가까운 원인이니 당연한 현상이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8
그게 dead cat bounce인지 실제로 뭐가 있는지는 더 두고 봐야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2071 at 2009/06/06 10:21
서브노트에 이 사람 논의는 대충 정리는 해두긴 했지만 아무래도 채점자 교수님들이 달가워하실 거 같지는 아니하여 답안지에 쓸 거 같지는 않은 그 분이군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8
학교에서 살아남는 기술과 사회에서 살아남는 기술은 차이가 있지요 ^^;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6/07 00:53
대공황의 경험 : 케인스, 폴라니, 민스키, 솔로 등의 공통점이죠. 순환적 역사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대공황 이후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경제에 대한 연구가 그만큼 없었기에 계속 거론된다는 점은 동감합니다.

이에 대해 경제학과 모 교수님은 학자들이 공부가 부족하니까 자꾸 과거의 학자를 들먹일 수 밖에 없다고 비판(및 한탄)하셨지만... 동시에 1920,30년대의 경험이 그만큼 강렬했고, 당대 지성인들 간의 지적 교류와 연구가 치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자칫 시대를 탓하거나 혹은 시대의 덕이라고 말하는 수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1920,30년대는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대였고 또 그만큼 많은 자극과 천재들이 존재했던 시대가 아니었는가 싶습니다. 케인스와 폴라니 등은 이 맥락에서 등장한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6/07 07:39
사실 연구주제를 정하는데 개인적인 동기부여나 현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문제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 지난 번 위기가 너무 멀리 있었다면 그 주제가 덜 주목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자로서 새로운 결과를 내놓기 전에 이 주제에 대한 기존 연구결과(의 역사)를 숙지하고 있고, 이를 통해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들의 업적을 가로채지 않고, 나의 새로운 기여가 기존 연구성과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업계인의 기본적인 소양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것과 별로 관계없이 옛 사람들의 저작에 대단한 해답이 들어있다는 막연한 주장들도 있는데, 이런 주장의 일부는 또 다른 뱀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쓸만한 것과 뱀기름을 구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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