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박두: 자본주의 3.0(Coming soon - Capitalism 3.0)필자: Dani Rodrik
출처:
Project Syndicate일자: 2009년 2월 11일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는 자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유연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난 수십 년 새 가장 심각한 위기로 신음하고 있다. 심각한 경기후퇴와 전세계적 경제 혼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경제의 금융 부분을 덮친 사실상의 국유화의 물결은 시장과 국가 사이의 균형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새 균형점이 어디서 형성될지는 모두가 추측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 하나, 즉 자본주의는 자신을 재창조할 거의 무한정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유연성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주기적인 위기를 극복하며 칼 마르크스를 위시한 비판자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이유이다.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살아남는다-, 세계 지도자들이 현재의 곤경으로부터 떠오를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끄는 데 필요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집합적 경제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점에 있어서는 당할 자가 없다. 그것이 왜 모든 번영하는 사회는 넓은 뜻으로 보아 자본주의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들 사회는 사유재산권을 바탕으로 조직되고 자원을 할당하고 경제적 보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 시장에게 큰 역할을 맡긴다. 여기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재산권이나 시장은 그 자체로는 동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들을 뒷받침할 다른 사회적 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재산권은 법원과 법집행기관에 의존하고, 시장은 남용을 견제하고 시장실패를 바로잡을 규제자에 의존한다. 정치적 레벨에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산출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보상과 재분배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이번 위기가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는 최후의 대부자와 경기역행적 재정정책 같은 안정화 조치를 필요로 한다. 바꿔 말해서, 자본주의는 저절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저절로 굴러가지도 않으며, 저절로 규제되지도 않고, 저절로 안정화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런 교훈을 배우고 또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이상화된 시장 사회는 “야경꾼 국가”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부가 맡아서 할 일은 재산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약간의 세금을 걷어 제한된 범위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에 한정되었다.
20세기 전반까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데 필요한 공공장치들을 좁게 규정하는 관점에 따라 운영되었다. 실제로는 국가의 영역이 종종 이런 개념을 넘어서까지 뻗어나갔지만(예를 들어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노령연금을 보라), 그래도 각국 정부들은 자신의 경제적 역할을 제한된 범위로 인식했다.
이런 관점은 사회가 더욱 민주적이 되고 노조와 다른 집단들이 자본주의의 알려진 남용사례들에 맞서 일어나자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이 그 선봉에 섰다.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유용성은 세계대공황을 겪은 후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산업 국가들 사이에서 국민소득 중 공공지출의 비중은 19세기 말의 평균 10% 미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의 20%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2차대전의 물결이 밀려온 다음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공부문이 국민소득의 평균 40% 이상으로 확장된 정교한 사회복지 국가들을 건설했다.
이러한 “혼합경제” 모델은 20세기의 찬란한 성과였다. 이것이 구축한 국가와 시장 간의 새로운 균형은 19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선진 경제권의 전례 없는 사회적 결속, 안정과 번영의 시대를 위한 무대를 제공했다.
이 모델은 1980년대 이후 쇠약해지다가 이제 무너져 내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유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세계화 때문이다.
전후의 혼합 경제는 국민국가 레벨에서 구축되고 운영되게 되어 있었으며, 국제 경제를 꽉 눌러 둘 필요가 있었다. 브래튼우즈-GATT 체제는 국제적 자본 흐름 통제를 포함한 “얕은” 형태의 국제 경제 통합을 필요로 하였다. 케인스와 동시대인들은 이런 조건들을 국내 경제 관리를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했다. 국가들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분야들(농업, 직물, 서비스)을 위한 많은 예외들이 딸린 오직 제한된 무역자유화만을 감당하면 되었다. 이는 몇 가지 단순한 국제 규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자기 나라 특성에 맞춘 자본주의를 구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현재의 위기는 우리가 그러한 모델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금융 세계화, 특히 옛날 규칙을 갖고 금융 세계화를 운영한 것은 대혼란을 일으켰다. 중간에 안전밸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중국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가 만나자 폭발성 혼합물이 만들어졌다. 거기엔 글로벌 유동성 과잉이 자라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메커니즘 같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굉장한 주택 거품과 그 붕괴를 막지 못한 미국의 규제 실패와 결합해 버렸다. 물론 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그 전염병의 전파를 막을 국제적 도로차단물 같은 것도 없었다.
교훈은 자본주의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세계화가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될 새로운 세기를 위해 자본주의를 재창조(reinvent)하는 일이다. 과거 스미스의 최소개입 자본주의에서 케인스의 혼합경제로 전환된 것처럼, 우리는 국민국가 버전의 혼합경제에서 그 전세계적 버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시장과 시장을 떠받칠 장치들 사이의 더 나은 균형을 구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경우 이것은 그러한 장치들이 국민국가를 넘어서 세계 경제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다른 경우, 이는 국민국가 영역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장치들의 범위 밖으로 시장이 확장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적절한 방법론은 관계된 나라들의 상황과 세부 주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차세대 자본주의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 편이다. 다른 약점을 압도하는 자본주의의 덕목은 그 거의 무한한 유연성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이다.역자 주: 다 번역하고 나서 뒤늦게 알았는데, 한겨레가 이 컬럼을 이미 번역 게재한 적이 있다. 뭐 이런 노력의 낭비를 … 하다가 (날림 번역에 자신이 없기도 하고) 흥미가 일어서 비교해 본 결과, 한겨레의 번역은 축약해 번역하면서 뉘앙스가 변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원래의 글은 업데이트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자본주의의 편이란 어조인데, 이런 톤이 대폭 탈색되면서 자본주의는 수리가 필요하다는 식이 된 것이다. 원문 링크가 필요한 분은 이 곳을 참조.추가: 한겨레 게재본과의 대조(밑줄이 생략된 부분)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는 자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유연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지난 수십 년 새 가장 심각한 위기로 신음하고 있다. 심각한 경기후퇴와 전세계적 경제 혼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경제의 금융 부분을 덮친 사실상의 국유화의 물결은 시장과 국가 사이의 균형을 크게 요동치게 만들었다. 새 균형점이 어디서 형성될지는 모두가 추측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측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 하나, 즉 자본주의는 자신을 재창조할 거의 무한정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유연성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주기적인 위기를 극복하며 칼 마르크스를 위시한 비판자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이유이다.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살아남는다-, 세계 지도자들이 현재의 곤경으로부터 떠오를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끄는 데 필요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집합적 경제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점에 있어서는 당할 자가 없다. 그것이 왜 모든 번영하는 사회는 넓은 뜻으로 보아 자본주의적인지를 말해준다. 이들 사회는 사유재산권을 바탕으로 조직되고 자원을 할당하고 경제적 보상을 결정하는 데 있어 시장에게 큰 역할을 맡긴다. 여기서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재산권이나 시장은 그 자체로는 동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들을 뒷받침할 다른 사회적 장치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재산권은 법원과 법집행기관에 의존하고, 시장은 남용을 견제하고 시장실패를 바로잡을 규제자에 의존한다. 정치적 레벨에서,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산출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보상과 재분배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 이번 위기가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는 최후의 대부자와 경기역행적 재정정책 같은 안정화 조치를 필요로 한다. 바꿔 말해서, 자본주의는 저절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저절로 굴러가지도 않으며, 저절로 규제되지도 않고, 저절로 안정화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런 교훈을 배우고 또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이상화된 시장 사회는 “야경꾼 국가”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부가 맡아서 할 일은 재산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약간의 세금을 걷어 제한된 범위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에 한정되었다.
20세기 전반까지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떠받치는데 필요한 공공장치들을 좁게 규정하는 관점에 따라 운영되었다. 실제로는 국가의 영역이 종종 이런 개념을 넘어서까지 뻗어나갔지만(예를 들어 1889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도입한 노령연금을 보라), 그래도 각국 정부들은 자신의 경제적 역할을 제한된 범위로 인식했다.
이런 관점은 사회가 더욱 민주적이 되고 노조와 다른 집단들이 자본주의의 알려진 남용사례들에 맞서 일어나자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반독점법이 그 선봉에 섰다.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유용성은 세계대공황을 겪은 후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산업 국가들 사이에서 국민소득 중 공공지출의 비중은 19세기 말의 평균 10% 미만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의 20%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2차대전의 물결이 밀려온 다음 대부분의 나라들은 공공부문이 국민소득의 평균 40% 이상으로 확장된 정교한 사회복지 국가들을 건설했다.
이러한 “혼합경제” 모델은 20세기의 찬란한 성과였다. 이것이 구축한 국가와 시장 간의 새로운 균형은 197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선진 경제권의 전례 없는 사회적 결속, 안정과 번영의 시대를 위한 무대를 제공했다.
이 모델은 1980년대 이후 쇠약해지다가 이제 무너져 내린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유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세계화 때문이다.
전후의 혼합 경제는 국민국가 레벨에서 구축되고 운영되게 되어 있었으며, 국제 경제를 꽉 눌러 둘 필요가 있었다. 브래튼우즈-GATT 체제는 국제적 자본 흐름 통제를 포함한 “얕은” 형태의 국제 경제 통합을 필요로 하였다. 케인스와 동시대인들은 이런 조건들을 국내 경제 관리를 위해 긴요하다고 생각했다. 국가들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분야들(농업, 직물, 서비스)을 위한 많은 예외들이 딸린 오직 제한된 무역자유화만을 감당하면 되었다. 이는 몇 가지 단순한 국제 규칙을 지키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자기 나라 특성에 맞춘 자본주의를 구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현재의 위기는 우리가 그러한 모델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금융 세계화, 특히 옛날 규칙을 갖고 금융 세계화를 운영한 것은 대혼란을 일으켰다. 중간에 안전밸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중국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가 만나자 폭발성 혼합물이 만들어졌다. 거기엔 글로벌 유동성 과잉이 자라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메커니즘 같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굉장한 주택 거품과 그 붕괴를 막지 못한 미국의 규제 실패와 결합해 버렸다. 물론 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그 전염병의 전파를 막을 국제적 도로차단물 같은 것도 없었다.
교훈은 자본주의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세계화가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될 새로운 세기를 위해 자본주의를 재창조(reinvent)하는 일이다. 과거 스미스의 최소개입 자본주의에서 케인스의 혼합경제로 전환된 것처럼, 우리는 국민국가 버전의 혼합경제에서 그 전세계적 버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시장과 시장을 떠받칠 장치들 사이의 더 나은 균형을 구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경우 이것은 그러한 장치들이 국민국가를 넘어서 세계 경제 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다른 경우, 이는 국민국가 영역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장치들의 범위 밖으로 시장이 확장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적절한 방법론은 관계된 나라들의 상황과 세부 주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차세대 자본주의를 설계하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 편이다. 다른 약점을 압도하는 자본주의의 덕목은 그 거의 무한한 유연성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