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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4)
다음은 1976년의 미국 돼지독감 사태에 대한 미 보건복지교육부 보고서인 『돼지 독감 사태: 허깨비 전염병에 대한 의사결정과정』, (Neustadt, Richard E., Fineberg Harvey V., The Swine Flu Affair: Decision-Making on a Slippery Disease, U.S. 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1978)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총 13장 약 100쪽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원서의 구성에 맞추어 총 1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여기 나오는 의학적/기술적 지식들은 30년 전인 1970년대 후반의 것으로 그 이후 벌어진 많은 발전과 발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번역자는 의학/미생물학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므로 번역의 신뢰성을 보증할 수 없다. 여기 등장한 기술적 사항들을 참조할 경우 반드시 최신의 학계 의견을 다시 확인하기 바란다.
이러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요약하게 된 것은 이 보고서가 주제의 특정 측면에 대해서는 그간 나온 다른 어떤 연구들보다도 상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료 정책 결정 과정(decision making) 측면이다. 이 사건에서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과 그들이 추천한 정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정치인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전형적으로 선의로 출발해 당혹스러운 결과로 끝난 사례였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보고서는 돼지독감이란 소재를 다루지만 사실은 미지의 위협에 맞서 싸웠던 조직과 조직원, 의사결정자,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사태를 보기 위해서는 당시 가용하던 지식의 관점에서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목차
  1. 신종 독감
  2. 센서의 결정
  3. 장관의 반응
  4. 쿠퍼의 지지 (이 글)
  5. 포드의 발표



4. 쿠퍼의 지지

(백악관 예산실장) 린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좀 들은 바가 있었다. 그의 부실장인 폴 오닐도 그랬다. 오닐은 존슨 대통령 시절 백악관 예산실에서 촉망받던 젊은이로 (보건 프로그램 조사관으로 출발해) 고속 출세를 거듭했던 인물이었다. 오닐은 백악관의 “부책임자(deputy) 클럽”의 동료이자, 곧 비서실장 리처드 체니의 부실장이 될 제임스 캐버너와 이 문제를 상담했다.

캐버너는 그때까지 국내정책위원회의 부실장을 맡고 있으면서, “일상업무”(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일들)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전에 이 위원회에서 보건담당을 맡고 있었고 직접 개입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후임자인 스펜서 존슨은 완전 신인이었다. 특출난 생존자인 캐버너는 (존슨 행정부의) 존 가드너 장관 시절에 보건복지교육부에 들어왔다. 그는 로버트 핀치 하에서 스태프로 계속 일했고, 보건담당 차관보 대행을 잠깐 맡은 후 국내정책위원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엘리옷 리처드슨이 존 에릭만에게 “빌려준” 인력이었다. 놀랍게도 거기서 캐버너는 살아남았고, 부통령 록펠러가 선택한 이 위원회의 실장 제임스 캐논이 장기적인 정책 문제에 집중하는 동안 포드 행정부 하에서 더 잘 나갔다.

캐버너는 좋든 싫든 이미 공을 받아든 상태였다. 쿠퍼는 출장을 떠나면서 그에게 사전 경고를 주었고, 딕슨은 센서 각서의 사본을 보내주었다. 캐버너는 그 사실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확인을 위해 그가 선택한 인물은 옛 상사인 찰스 에드워즈 박사였다. 그는 쿠퍼의 전임자로 현재는 정부를 떠나 있었다. 캐버너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캐버너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은 센서와 입장을 같이 하며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쿠퍼도 3월 21일에 돌아와 이를 단호하게 지지했다. 캐버너에게 있어 이정도면 충분했다. 보건복지교육부 내의 2,3선 실무진들을 탐색하는 임무는 존슨이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가 아는 사람들은 로크빌에 조금, 그리고 애틀란타에는 거의 없었다. 캐버너는 그를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신규지출이 관련된 일의 최종 결정을 맡고 있던 오닐은 자신의 보건 조사관들로부터 불평을 듣고 있었다. 이 부서의 과장이던 빅터 자프라는 2월 20일자 뉴욕타임스를 읽고는 그때부터 CDC가 파국을 외치며 들이닥칠 때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이게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지 깊이 의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우려사항 같은 것을 감지해내기에는(적어도 당시 가용했던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는), 그들이 공중보건총국 내부의 실무자들과 맺고 있던 관계가 너무 소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의구심을 추정비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고전적인 예산심의의 형태로 포장했다. 그들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보면 이랬다.

공중보건총국은 조정가능기금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 우리는 1억 3천4백만 달러라는 추정액이 탄탄한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 우리는 대안적인 가정을 사용하고 연방과 주 정부 그리고 민간 부문이 책임을 나눠 맡음으로서 이 수치가 상당히 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센서가 제기한 긴급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대응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오닐과 린은 이 보고서를 보았고, 그들 또한 이를 -특히 센서를- 미심쩍어 했지만, 그 점을 추궁하는 것은 삼갔다. 그들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새 입법이 필요한지 여부를 물었다. 쿠퍼의 보좌관들과 예산심의관들은 아니라고 답했다(대답 치고는 너무 딱 부러진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받아들여졌다). 예산 이외에는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고 한다면 반대는 점차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캐버너는 다른 논점들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중에는 백신 생산은 즉각 진행하지만 그 배포에 관해서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다소 기다려 보는 방안이 있었다. 그는 그 생각을 “보건복지교육부의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았는데 “폭발적 확산(jet spread)”을 이유로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는 반론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그 주위의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기되었었다. 결정이 내려지기 전 주의 어떤 시점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회의 후나 뭐 그런 때였을 겁니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록펠러 부통령은 누가 펜타곤에 가서 병참 장교를 데려다가 “폭발적 확산(jet spread)”을 꺾기 위해 2~4주 사이에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예방접종을 완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세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제시된 시간제한이었고, 그 시간은 전 국민 예방접종을 관리하기엔 너무 빡빡하다는 말도 들어왔었지요. 록펠러의 태도는 “보건복지교육부는 그걸 어떻게 해낼지 모를 거야, 하지만 내 생각엔 군대는 해낼 수 있을 지도 몰라.”라는 것이었지요. 그 생각은 후속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포드 행정부 내에서 록펠러 같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캐버너가 백신 생산과 예방접종을 분리하는 데 대해 진지했다 치더라도, 그는 그 사안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우리가 인터뷰해 본 바에 따르면 포드 주위의 다른 사람들 중에는 그 이야길 들어본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낸 사람도 없었으며, 그런 생각을 해냈다손 치더라도 좋아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들이었다. 오닐은 이렇게 증언했다.

보건복지교육부가 논점을 제기한 것처럼 이 문제는 시간이 핵심이었다. 백신 생산 -계란 수급- 뿐만 아니라 겨울이 오기 전에 대중에게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랬다. 11월까지 전 국민에게 말이다. 그게 바로 센서가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두 번 결정을 해야 하는가? 지금 결정을 내리고 그대로 하자. 그가 내린 결정을 재확인하기 위해 백악관이 가외의 의사결정을 할 시간이 없다. 그렇게 주장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센서는 자기 안건을 밀어붙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 계획의 일부를 보류했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보였겠는가? 구두쇠? 돈 때문에 생명을 맞바꾸는? 우유부단한? 결심도 못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 사안은 이제 단순히 센서의 안건이 아니었다. 쿠퍼는 해외에서 돌아와 독자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쿠퍼는 센서가 의심을 받던 측면 -“장난질을 치는 게 아닌가”(manipulative)- 에 있어 신뢰를 받고 있었으며, 적어도 국내 위원회와 백악관에서는 그러하였다. 쿠퍼는 그의 부하들이 보고해오던 것과 마찬가지로 빈번히 센서를 신용하지 않았다. 센서는 8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자기 자신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해 나가는데 필요한 수단도 갖고 있었다. 이는 강력한 차관이라면 불화를 일으키게 만들 만한 족보였다. 쿠퍼는 확실히 그럴 의지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종 불화가 있었다. 변덕스러운 사내인 그는 가끔씩 화를 터트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스스로 센서의 명분을 향해 일시적인 전향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이 둘이 이 순간 이 안건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은 흥미로우며 또한 중요하기도 하다. 그런 답은 알기 어려우며, 우리는 그 내막을 제대로 캐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낸 바는 간단했다. 첫째, 쿠퍼는 센서의 전문적인 판단을 존중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공분야(심장외과) 이외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둘째, 쿠퍼는 센서의 제안과 잘 합치되는 개인적인 의제를 갖고 있었다. 보건 분야를 책임진 연방 기관의 지도자이자 그 책임의 수탁자(이는 우리 생각에 쿠퍼가 자기 자신을 보는 시각이었다)로서, 쿠퍼는 면역 사업과 다른 수단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데 있어 민간인들 -부모들이나 의사들로 구성된 자발적 기관들- 의 의식을 고양할 방안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 이미 많은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 존재하며, 앞으로는 아마도 신경질환에 대해서, 그리고 끝내는 암에 대해서도 예방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한 관련자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쿠퍼는 자발적 조직들과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에 대비해 그들을 변화시키고 개선시킬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발적 단체들과 부모들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며, 예측할 수 없는 정부정책의 우선권 변화의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해, 다음 발판을 향해 나가기를 원했다. 그는 예방의학의 수비범위를 확대하는데 열심이었고, 정부의 오락가락이며 … 닉슨의 경제정책 드라이브로부터 그것이 지켜질 수 있도록 민간 부문에서 그에 대한 지지가 나오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셋째, 의사였던 쿠퍼의 부친은 그에게 1918년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그의 부차관보이던 딕슨의 아버지 또한 의사로 이 사건에 대한 음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준 바 있었고, 그와 딕슨은 그 사건에 대한 이런저런 일화들을 주고받았다. 보건담당 차관보의 마음속에 “최악의 사태”의 가능성은 생생하기 짝이 없었다.

딕슨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했다.

쿠퍼는 진정으로 1918년을 우려하고 있었다. 펜실베니아 허쉬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쿠퍼의 마음에 뿌리박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죽어간 탓에, 그들은 군대를 동원해서 사망자들을 한데 파묻어야 했다.


따라서 쿠퍼는 “과학 공동체”, 즉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로 뒷받침된다는 조건 하에, 센서가 그에게 처음 이야길 꺼냈던 2월부터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CDC로부터 제기되는 모든 사안이 ACIP에 의해 검토되고, NIAID, BoB 및 그들의 자문역들로부터 지지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모든 일을 남들에게만 맡겨 놓는 대신, 쿠퍼는 직접 (백신의 권위자인) 알버트 세이빈 박사의 견해를 물어보기도 했다. 세이빈의 소아마비 생백신(이는 미국에서 조나스 소크 박사의 죽은 바이러스 백신을 대체하였다)은 두 철에 걸쳐 1억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최근의 전국적인 대규모 면역사업에서 사용된 바 있었다. 이는 센서가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비해 “두 번에 걸쳐 절반의 규모”였다. 센서가 ACIP 회의가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보고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쿠퍼는 이미 세이빈도 이 사업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쿠퍼는 센서가 갖고 온 안건을 자신이 지지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품은 채 카이로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대통령을 찾아갔다.

by sonnet | 2009/05/14 12:42 | 정치 | 트랙백 | 핑백(5)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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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에 맞서』, 서울, 휴먼앤북스, 2004. p.227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저런 식의 관료적 저항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널리 쓰이는 수법이 바로 예산을 놓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수법은 절충이 쉽습니다. 예산이 할당되지 못하면 그것을 이유로 행동을 거부할 명분이 되는 것이고, 저항에 실패하더라도 증가된 ... more

Commented by 일화 at 2009/05/14 15:08
점점 사태가 진행되고 있군요. 아직까지는 관련자들 대부분이 1918년의 공포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인상이네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5/14 18:26
뭔가... 과거 경험이 실제를 넘어선 '허깨비'를 형성해가는 듯한 느낌이...;;;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5/14 18:56
점점 줄거리(?)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14 22:30
이번 편에서는 처음으로 힘있는 자리에서 조직적인 의구심을 표명한 집단(백악관 예산실)이 나오는데, 이들도 예방의학 그 자체에 대해서 정면승부를 걸 만한 자신이 없으니까, 결국 이에 대해 유의미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또 한편으로 견제세력이 될 수 있었던 이들의 레이더에는 알렉산더 박사 같은 의학계 비주류의 우려가 걸려들지 않는데, 그게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내가 예방의학계의 일원인데, 예산부처가 CDC의 뒤를 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불확실성이 아주 큰 상태에서- CDC에게 불리한 이야길 잘 하게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Commented by band at 2009/05/15 13:16
예전 일할때 자주오던 수의사가 전직 ###였었죠. 뭐....충남 모지역에서는 알아주는 돌파리로 더 알려져 있었지만요... 그사람 보고 느낀점은 지연, 학연, 방탄철갑면피만 있으면 외제승용차타고다닐수 있구나....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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