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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과 종교적 체험
원래 하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과학이라는 학문의 인식적 틀이 바뀌어 본 적이 있는 자신의 준 종교적 체험을 해설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점은 쿤 스스로가 개종(*)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난다.

나는 1947년 여름에 물리학과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중 일부를 처음으로 읽었는데, 그 당시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과학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자연과학 수업에 이용하기 위해 역학의 발전에 대한 사례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이전에 읽었던 뉴턴 역학을 똑똑히 염두에 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접근했다. 내가 대답하고 싶었던 물음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 혁명 이후의) 역학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었으며, 갈릴레이나 뉴턴이 발견할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겨 두었나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공식을 갖고 접근하자마자, 나는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역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것들은 그 이후의 과학자들에게, 그 중 대부분은 16~17세기의 과학자들에게 남겨져 있었다. 이러한 결론은 표준적인 것이었고 원칙적으로는 옳을 수도 있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왜냐 하면 그의 저술을 읽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역학에 대해서 무지했을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물리학자였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운동에 대한 그의 기술은 그 논리나 관찰 모두에서 명백한 오류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결론은 그럴 듯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는 고전 논리를 정초한 사람으로 추앙받아 왔다. 그의 사후 거의 2천 년 동안 그의 저작은 유클리드(Euclid)의 교과서가 기하학에서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논리학에서 했다.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신이 자연에 관하여 비상할 정도로 날카로운 관찰자임을 자주 입증하였다. 특히 생물학에서 그의 기술(記述)은, 16~17세기에 이르러 근대적인 생물학 전통이 등장하기까지 중심적인 모형을 제공해 왔다. 어떻게 그의 남다른 능력이 운동과 역학에 대해서는 그토록 철저하게 내버려질 수가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만약 그가 역학 분야에서 그렇게 무능했다면, 물리학에 관련된 그의 저술이 사후에도 그토록 오랫동안 진지하게 평가된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분적으로 실수를 했다는 것은 몰라도 물리학의 영역에서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내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해 보았다. 아마도 그의 말들이 그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의미했던 바는 나와 현재의 사람들이 그 말들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달랐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원전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고 결국 나의 의심은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s』 원전을 앞에 펼쳐 놓고 색연필을 손에 쥔 채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내 방 창문 너머의 풍경을 막연하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내 머리 속의 단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분류되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이 빠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일순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로 대단히 훌륭한 물리학자라고 느껴졌고, 그것도 내가 여태껏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그러했다. 그제야 나는 왜 그가 자신의 저술에서 그렇게 말했는가와 그가 누려 왔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는 터무니없는 오류라고 여겨졌던 진술들이 이제는 강력하고 대개의 경우 성공적이었던 한 전통 내의 사소한 실수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경험 -조각들이 갑자기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되는- 은 내가 사례들을 더 잘 생각해 본 다음에 끄집어내려는 혁명적 변화의 특징들 중 첫 번째 것이다. 비록 과학 혁명이 단편적인 마무리 작업거리들을 많이 남겨 두기는 하지만, 중심적인 변화는 결코 한 번에 하나씩 단편적으로 경험될 수 없다. 그 대신, 혁명적 변화는 어느 정도 갑작스럽고 구조화되지 않은 변환을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단히 변화하는 경험의 어떤 부분은 그 스스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어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양식들을 드러낸다.

토마스 쿤, 「과학 혁명이란 무엇인가」, 조인래 편역 『쿤의 주제들:비평과 대응』, 이화여대 출판부, 1997, pp.190-192


이것이 소위 쿤의 '아하! 체험'이라는 것인데,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이 경험담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Physics』를 원전으로 읽고 또 읽으면서 뜻이 통할 때까지 반복하다가 잠깐 쉬면서 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보던 중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나는 석가불 같은 사람들도 이와 흡사한 전환(conversion)의 과정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다보니까 쿤의 책은 필연적으로 장황한 책이 된 것이 아닐까? 개종의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말로 개종의 순간을 설명하다보니까 전달이 잘 안되는 것이다. 쿤은 개종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말이 안통한다(incommensurable)고 하는데 일단 자기 책부터가 그렇다. 아마 『과학혁명의 구조』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어떤 전환의 경험을 해본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책이었으면 아주 쉽지 않았을까 싶다.


* 쿤은 스스로 패러다임 쉬프트를 게슈탈트 전환(gestalt switch) 또는 개종(conversion)에 비유한 바 있다. 개종은 반영구적 변화인 반면 게슈탈트 전환은 그렇지 않아서, 게슈탈트 전환 비유는 즉각 공격을 받게 되고 쿤은 '아 그럼 그게 아니고' 식의 좀 구차해 보이는 해명을 늘어놓게 된다. 반면 개종은 과학을 종교처럼 다뤘다는 인상을 주어서 이건 이거대로 대차게 까일 소지를 제공하는데...
by sonnet | 2009/05/04 08:00 | 과학기술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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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4 08:18
돈오(頓悟)로군요.^^ 서구적 맥락으로 본다면 신비주의적 체험이겠지만, 환상의 현시를 유일신과 직결시키는 기독교적인 체험이라기보단, 스스로 깨달음과 지(知)를 추구하는 불가에 더 가까운 경험이 아닌가 싶은 느낌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41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책이 나올 때까지 15년이 걸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돈오 이후에 점수도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09/05/04 08:32
읽고 읽고 뜻이 통할 때까지 반복하다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니, 그야말로 '독서 백편 의자현' 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39
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5/04 08:53
'단속적'인 그의 개념은 ...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군요. (쿤의 책은 딱 한 권만 봤습니다.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43
사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이 전혀 아니었는데, 모 대학 입시에 나오고 나서 갑자기 대중적인(?) 책이 되었죠. 한국에서 입시의 힘은 정말 위대합니다.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5/04 09:27
저런 깨달음은 남한테 설명하기가 힘들지요. ㅡㅡ;;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39
거의 힘들다고 봐야죠. 한 명 알아들으면 한 20명 오해하고...
Commented by 일화 at 2009/05/04 10:09
불립문자에 염화시중인 겁니까... 확실히 과학의 세계에서는 까이기 쉬운 개념이긴 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49
하하, 쿤이 이래저래 다른 사람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던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폭풍우를 몰고 다녔다고 해야 할 듯.
Commented by 새매 at 2009/05/04 10:33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삼십갑자의 내공을 쌓은 쿤은 자신의 무공을 시험하기 위해 도장깨기를 하고 다니는데...
Commented by Ciel at 2009/05/04 11:06
그리고 무림에서 사파의 거두로 불리우게 되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45
쿤은 사실 그렇게 전투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가 익힌 무공이 자신의 상극임을 알게 된 무림의 여러 명숙들이....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5/04 11:39
인용문의 빨간 글씨들은 석가모니와 공자와 예수와 마호멧과 맑스와 하이에크...의 제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듯 한데요. "내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닌가" "나와 현재의 사람들이 그 말들을 이해하는 방식과는 달랐을 수가 있는 것"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4 12:46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다는 건 이해는 되는데...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5/04 12:23
나무관세음보살…….
Commented by nishi at 2009/05/04 13:01
논증... 이 아니라 깨달음인 겁니까.

to know가 아니라 to be란 말이야!...;
Commented by 저련 at 2009/05/04 13:21
저 경험 이후에 Wittgenstein의 <철학적 탐구>를 보면서 수련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슈탈트전환은 1부 46절인가에 있는 것이니 그걸 보고 예를 든 것이죠. 비트겐슈타인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일상언어였다면, 쿤의 공헌은 W의 관점을 과학의 규칙에 적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phisica>는 물리학으로 옮기지 않고 자연학으로 옮깁니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의 2/3를 차지하는 각종 자연현상에 대한 논고의 첫 부분 및 그 연작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며, 벡커쪽수 184~261까지의 책만 해도 기본 주제가 원인, 변화, 시간, 공간, 연속성 등 매우 메타적인 개념들이기에 오늘날 실험학까지 결합되어 있는 분과 학문인 물리학으로 옮기기엔 무리가 큽니다. 구지 나누자면 이론물리학에 가까운데, 원인 논의가 인과율 논의의 첫 장을 여는 포괄적인 주제라서 그럼 안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6 07:36
지적 감사합니다. 본문은 수정해 놓겠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5/04 17:11
뭔가 다른 의미로의 "유레카~"군요.
Commented by 김우측 at 2009/05/04 17:31
유레카 모먼트군요. 저도 아주 작은 스케일의 쪼끄만 학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분은 참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6 07:46
아주 멋진 경험을 하셨군요.
Commented by Alias at 2009/05/04 18:04
저는 사실 저런 것 때문이 쿤이 과학사와 과학교육쪽을 상당부분 망쳐놨다고 보는 입장입니다...-_-;

혁명적 사고전환이라는 "매력적인 아이템" 때문에 그런 관점이 과학부문의 주요 위인전에 무분별하게 적용되고, 그러다 보니 아리스토텔레스-뉴턴-아인슈타인 중간중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무시되는 경향이 있고, 더욱더 나쁜 건, 그런 "메시아의 등장으로 문제를 해결" 하는 게 사실인 양 묘사되면서 물리는 천재 아니면 못한다는 식의 이상한 관념이 생겼죠...-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6 07:45
저는 쿤의 책을 읽으면 방점이 정상과학 쪽에 찍혀 있는 것 같던데, 그 반대로 느끼는 사람들이 더 대중적이니 이것도 참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Commented by 漁夫 at 2009/05/06 10:28
예상과 실험 결과가 일치했을 때 그 즐거움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죠. 저도 다행히 한 번...
Commented by 123 at 2013/06/27 11:29
그렇다고 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심각하게 틀렸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데 말이죠. 아니면 모두들 아리스토텔레스를 오해하고 있는거 일수도 있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결국 그런 깨달음이 꼭 진리와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거 같습니다. 따라서 종교경험도 마찬가지로 종교의 신빙성에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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