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는 로널드 코스의 『기업의 본질』을 바탕으로 짧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 글에서 다룬 내용은 주류경제학의 범주 안에서 보면 대단한 논란거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튀는 이야길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발끈한 한 리버태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 난입해서 이야기를 산으로 끌고가려고 시도해서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코스가 만년(1994)에 한 연설을 일부 인용해서 저자 본인의 입을 통해 그의 연구가 갖는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필요한 모든 조정이 시장에 의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면 경영이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 본질을 꿰뚫어보면 똑같은 퍼즐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나 적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최초의 5개년 계획은 1928년에 가서야 채택되었다.
레닌은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일부 서구 경제학자들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서구 세계에도 공장들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엄청나게 컸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경제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꾸려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 경제학자들은 경제체제가
가격 메커니즘(혹은 시장)에 의해 조정된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시장을 이용하는 데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었다.
시장의 사용 외의 다른 조정 수단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배제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른 조정 수단은 그 비용이 시장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이냐에 크게 좌우되었다. 이런 식의 접근은 중앙계획 경제에 대한 관점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장을 통해서도 조정이 가능하지만 생산 요소들을 적절히 고용함으로써 경영을 꾸려나가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Breit, William., Hirsch, Barry T.(Eds),
Lives of the Laureates: Eighteen Nobel Economists (4th Ed.), MIT Press, 2004
(김민주 역, 『
노벨 경제학 강의』, 미래의 창, 2008년, pp.318-320)
코스의 『기업의 본질』은 그간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모델에 잘 맞지 않아 암묵적으로 무시해오던 사각지대를 다룬 연구였다. 또한 그것은 처음부터 소련이 시도하려고 하고 있던 대안적 경제체제에 대한 함의를 의식한 연구이기도 했다. 그것은 기업의 내부가 비가격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류경제학이 상정하는 시장경제 모델보다는 계획경제 구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다른 점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탐색한 논문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면 코스가 사용하듯이 가격메커니즘=시장을 통용해 쓰는 용법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류경제학계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하이에크 추종자들이 "나의 시장님하는 그렇지 아나!!"라고 외치며 사방에 시비를 걸어본들 세상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하이에크가 설파하는 시장체제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매우 다르며, 엄청나게 튀는 즉 어지간한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만한 사회적 함의를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 안에는
사회정의의 추구는 '미신'이며 전제정치로 귀결된다 고로 사회정의의 추구와 맞서 싸워야 한다 같은 급진적인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건 그냥 지나가다 한 말이 아니라, 작심하고 책 한 권에서 이 주제만 다루었을 정도이다.) 이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하이에크가 영원한 비주류인 것은 그가 자초한 결과라고 하겠다. 어쨌든 이 글은 하이에크에 대한 것은 아니니까 주제가 엇나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 사실 내 글을 이해하는데 있어 하이에크는 전혀 몰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1991년에 노벨 경제학상이 나에게 주어졌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거론된 두 편의 논문은 50년도 더 전에 발표된 『기업의 본질』과 30년 전에 발표된 『사회비용의 문제』였다. 첫 번째 논문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무관심 그 자체였고, 두 번째 논문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얼른 보아서는 거래비용을 경제분석에 포함한 것이 왜 ‘독창적인’ 아이디어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 그 퍼즐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다른 경제학자들이 거래비용을 경제분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명석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연구 활동에서 경제의 제도적 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퍼즐과 조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뎀세츠(Demsetz)가 설명한 것처럼, 아담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자들이 가격체계를 통해 경제체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스미스의 관점을 공식화하는 작업에 주로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극단적으로 분권화된 경제체계의 운영이었다. … 이런 사실은 특히 『기업의 본질』이 처음 선보였을 때 다른 사람의 관심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비용의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끈 것일까? … 처음 발표되었을 때 그 논문은 시카고대학의 막강한 경제학자들, 특히 조지 스티글러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었다. 거래비용이 제로인 체제에서 이뤄지는 자원의 배분은 책임(liability)에 관한 법적인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나의 주장은 스티글러에 의해 공식화되었고 그에 의해 ‘코스 정리(Coase Theorem)’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코스 정리’가 거래비용이 제로인 체제를 다뤘다는 사실 또한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경제학자들이 그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편안하게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런 체제가 현실과는 동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같은 책, pp.334-336
코스는 주류경제학의 패러다임에 잘 맞지 않는 『기업의 본질』이 발표 당시에는 철저하게 무시되었으며, 이 글의 가치가 인정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주요 논문인 『사회비용의 문제』(이것이 일반에게 잘 알려진 '코스 정리'에 해당한다)는 『기업의 본질』과는 달리 반응이 처음부터 좋았는데, 그 이유는 주류경제학자들의 패러다임을 거스르지 않아 편안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대개 주류경제학의 전통적인 모델을 과신해서 서툰 결론을 내놓는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
세계화와 그 불만』,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의 「
시장원리주의의 종말」등이 그렇고, 워싱턴 컨센서스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논평들도 대개 비슷한 표적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시장'원리주의에서
시장은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시장, 즉 주류경제학의 모델이 포착한 단순화된 시장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나 미제스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구축한 변방의 잊혀진 이론들 말고 말이다.
물론 비주류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마르크스주의처럼 주류와 오랫동안 경쟁한 비주류의 거두도 있고, 한때 주류를 장악했던 케인지언들을 집요한 공격으로 밀어내고 신주류를 탈환한 밀튼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 같은 시카고 학파도 있다. 사람마다 호오는 좀 갈릴지 모르지만 반대파들도 이들이 학계의 메이저들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그 밑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지금은 잊혀진
듣보잡마이너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예를 들면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가 장하준이 열심히 다시 소개해서 그나마 한국에 좀 알려지게 된 프리드리히 리스트 같은 인물은 전형적인 마이너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다음 주장의 요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제가 처음 쓴 댓글은 님이 이해한 바대로의 '조잡한 시장주의'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주의를 비판하고 싶다면
그들의 '시장'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난 다음에나 쓸 수 있는 것이지요. (
산마로)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가 평소에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될 정도로 의미있는 집단인가? 아마 아닐 것이며, 실제로도 대개 무시당한다. 그러니 자꾸 외치게 되는 것이다.
즉 다들 무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眞 眞 眞 시장(원리)주의라능!!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7 20:32귀 하가 헤매고 있는 것은 지금 여기서 설명하는 이야기의 전제(정책수단으로서의 시장)와 잘 맞지 않는 리버태리언 개념을 억지로 가져오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Fed가 CDO를 reverse auction으로 구입하는게 더 나은가 아닌가 같은 논쟁을 위해 어떤 식의 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27 22:48
그 이야기의
전제가 틀렸거나 매우 자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동문서답입니까?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은밀하게 선택한 전제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시장은 정책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개인 자유의 실현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Fed가 CDO를 reverse auction으로 구입하는게 더 나은가 아닌가 같은 논쟁은 내가 지적한 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시장"에 있어 지금 주류경제학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시카고 학파의 현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게리 베커가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을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면 저 위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 같은 것이 바로
'사회정의의 추구와 맞서 싸우자' 같은 주장으로 가기 위한 아웃사이더들의 떡밥에 해당한다. (주류경제학은 저정도로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전제가 틀렸거나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누구에게 더 적합한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주류설의 범위 안에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쪽인가 아니면 그에 맞서 마이너 학파의 주장을 주류설을 능가하는 진정한 시장주의라고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