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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본질』에 관한 짧은 해설, 그리고
앞선 글에서는 로널드 코스의 『기업의 본질』을 바탕으로 짧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 글에서 다룬 내용은 주류경제학의 범주 안에서 보면 대단한 논란거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특별히 튀는 이야길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발끈한 한 리버태리언(자유지상주의자)이 난입해서 이야기를 산으로 끌고가려고 시도해서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코스가 만년(1994)에 한 연설을 일부 인용해서 저자 본인의 입을 통해 그의 연구가 갖는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필요한 모든 조정이 시장에 의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면 경영이 필요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 본질을 꿰뚫어보면 똑같은 퍼즐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내 앞에 놓여 있었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발발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나 적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최초의 5개년 계획은 1928년에 가서야 채택되었다. 레닌은 공산주의 경제체제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일부 서구 경제학자들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서구 세계에도 공장들은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엄청나게 컸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경제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꾸려질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 경제학자들은 경제체제가 가격 메커니즘(혹은 시장)에 의해 조정된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시장을 이용하는 데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있었다. 시장의 사용 외의 다른 조정 수단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배제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른 조정 수단은 그 비용이 시장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이냐에 크게 좌우되었다. 이런 식의 접근은 중앙계획 경제에 대한 관점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장을 통해서도 조정이 가능하지만 생산 요소들을 적절히 고용함으로써 경영을 꾸려나가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Breit, William., Hirsch, Barry T.(Eds), Lives of the Laureates: Eighteen Nobel Economists (4th Ed.), MIT Press, 2004
(김민주 역, 『노벨 경제학 강의』, 미래의 창, 2008년, pp.318-320)

코스의 『기업의 본질』은 그간 주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모델에 잘 맞지 않아 암묵적으로 무시해오던 사각지대를 다룬 연구였다. 또한 그것은 처음부터 소련이 시도하려고 하고 있던 대안적 경제체제에 대한 함의를 의식한 연구이기도 했다. 그것은 기업의 내부가 비가격 메커니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류경제학이 상정하는 시장경제 모델보다는 계획경제 구상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다른 점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탐색한 논문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면 코스가 사용하듯이 가격메커니즘=시장을 통용해 쓰는 용법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류경제학계에서는 일상적인 것이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하이에크 추종자들이 "나의 시장님하는 그렇지 아나!!"라고 외치며 사방에 시비를 걸어본들 세상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하이에크가 설파하는 시장체제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 매우 다르며, 엄청나게 튀는 즉 어지간한 사람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만한 사회적 함의를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 안에는 사회정의의 추구는 '미신'이며 전제정치로 귀결된다 고로 사회정의의 추구와 맞서 싸워야 한다 같은 급진적인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건 그냥 지나가다 한 말이 아니라, 작심하고 책 한 권에서 이 주제만 다루었을 정도이다.) 이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하이에크가 영원한 비주류인 것은 그가 자초한 결과라고 하겠다. 어쨌든 이 글은 하이에크에 대한 것은 아니니까 주제가 엇나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에 대한 언급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 사실 내 글을 이해하는데 있어 하이에크는 전혀 몰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1991년에 노벨 경제학상이 나에게 주어졌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거론된 두 편의 논문은 50년도 더 전에 발표된 『기업의 본질』과 30년 전에 발표된 『사회비용의 문제』였다. 첫 번째 논문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무관심 그 자체였고, 두 번째 논문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그러나 얼른 보아서는 거래비용을 경제분석에 포함한 것이 왜 ‘독창적인’ 아이디어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 그 퍼즐을 푸는 방법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다른 경제학자들이 거래비용을 경제분석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명석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연구 활동에서 경제의 제도적 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퍼즐과 조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뎀세츠(Demsetz)가 설명한 것처럼, 아담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자들이 가격체계를 통해 경제체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스미스의 관점을 공식화하는 작업에 주로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극단적으로 분권화된 경제체계의 운영이었다. … 이런 사실은 특히 『기업의 본질』이 처음 선보였을 때 다른 사람의 관심을 거의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비용의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끈 것일까? … 처음 발표되었을 때 그 논문은 시카고대학의 막강한 경제학자들, 특히 조지 스티글러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었다. 거래비용이 제로인 체제에서 이뤄지는 자원의 배분은 책임(liability)에 관한 법적인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나의 주장은 스티글러에 의해 공식화되었고 그에 의해 ‘코스 정리(Coase Theorem)’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코스 정리’가 거래비용이 제로인 체제를 다뤘다는 사실 또한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경제학자들이 그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편안하게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런 체제가 현실과는 동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같은 책, pp.334-336

코스는 주류경제학의 패러다임에 잘 맞지 않는 『기업의 본질』이 발표 당시에는 철저하게 무시되었으며, 이 글의 가치가 인정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주요 논문인 『사회비용의 문제』(이것이 일반에게 잘 알려진 '코스 정리'에 해당한다)는 『기업의 본질』과는 달리 반응이 처음부터 좋았는데, 그 이유는 주류경제학자들의 패러다임을 거스르지 않아 편안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시장원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대개 주류경제학의 전통적인 모델을 과신해서 서툰 결론을 내놓는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세계화와 그 불만』,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의 「시장원리주의의 종말」등이 그렇고, 워싱턴 컨센서스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논평들도 대개 비슷한 표적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시장'원리주의에서 시장은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시장, 즉 주류경제학의 모델이 포착한 단순화된 시장이라는 것이다. 하이에크나 미제스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구축한 변방의 잊혀진 이론들 말고 말이다.

물론 비주류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 마르크스주의처럼 주류와 오랫동안 경쟁한 비주류의 거두도 있고, 한때 주류를 장악했던 케인지언들을 집요한 공격으로 밀어내고 신주류를 탈환한 밀튼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 같은 시카고 학파도 있다. 사람마다 호오는 좀 갈릴지 모르지만 반대파들도 이들이 학계의 메이저들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그 밑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지금은 잊혀진 듣보잡마이너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예를 들면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가 장하준이 열심히 다시 소개해서 그나마 한국에 좀 알려지게 된 프리드리히 리스트 같은 인물은 전형적인 마이너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다음 주장의 요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제가 처음 쓴 댓글은 님이 이해한 바대로의 '조잡한 시장주의'란 없다는 것입니다. 시장주의를 비판하고 싶다면 그들의 '시장'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난 다음에나 쓸 수 있는 것이지요. (산마로)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가 평소에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될 정도로 의미있는 집단인가? 아마 아닐 것이며, 실제로도 대개 무시당한다. 그러니 자꾸 외치게 되는 것이다.

즉 다들 무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眞 眞 眞 시장(원리)주의라능!!




Commented by sonnet at 2008/10/27 20:32
귀 하가 헤매고 있는 것은 지금 여기서 설명하는 이야기의 전제(정책수단으로서의 시장)와 잘 맞지 않는 리버태리언 개념을 억지로 가져오려고 시도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Fed가 CDO를 reverse auction으로 구입하는게 더 나은가 아닌가 같은 논쟁을 위해 어떤 식의 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8/10/27 22:48
그 이야기의 전제가 틀렸거나 매우 자의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슨 동문서답입니까? 결론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은밀하게 선택한 전제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시장은 정책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개인 자유의 실현 장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Fed가 CDO를 reverse auction으로 구입하는게 더 나은가 아닌가 같은 논쟁은 내가 지적한 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시장"에 있어 지금 주류경제학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이다. 시카고 학파의 현 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게리 베커가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을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면 저 위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 같은 것이 바로 '사회정의의 추구와 맞서 싸우자' 같은 주장으로 가기 위한 아웃사이더들의 떡밥에 해당한다. (주류경제학은 저정도로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전제가 틀렸거나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누구에게 더 적합한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주류설의 범위 안에서 일반적인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쪽인가 아니면 그에 맞서 마이너 학파의 주장을 주류설을 능가하는 진정한 시장주의라고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인가?


2010년 8월 26일 추가
The_Nature_of_the_Firm.pdf 이렇게 짧은 글도 안 읽어보고 쓰거나 하지는 않으니 안심하시라.
by sonnet | 2009/05/01 10:48 | 경제 | 트랙백(2) | 덧글(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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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愚公移山 at 2009/05/01 11:48

제목 : 비주류는 주류를 지향해야 한다.
『기업의 본질』에 관한 짧은 해설, 그리고 '새로운 이론이 기성 학계에서 인정받는데 시간이 걸리며 때때로 냉대받는 것은 사회과학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주류에 합류, 혹은 주류로 격상되는 학설이 있고 영원히 겉도는 학설이 있는데, 영원히 겉도는 마이너들을 관찰하면 상당부분 그들이 자초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런 마이너 이론들도 어떤 작은 측면에서는 주류 이론을 능가하는 통찰......more

Tracked from 휴장 at 2009/05/01 23:58

제목 : 핵심 문장
『기업의 본질』에 관한 짧은 해설, 그리고시장을 정책수단으로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의 원리적인 문제는 정치철학의 쟁점에 속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기술적 문제로 도피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것이지요. 결국은 이 문장이 핵심 문장인것 같다.그런데...1. 시장을 정책수단으로 어느정도 신뢰하느냐에서, 시장이라는게 어떤 거냐에 대해서 산마로님이 제대로 정리하고 있지 않은건 자꾸 댓글만 다시다 보니까 그런듯 한데 정리해주셨으면 하고... 그걸 알아야 뭐 논......more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1 11:00
공산권에 대한 일부 좌파의 "진정한 맑스주의가 아니다"

기업의 본질에 대한 산마로님의 "진정한 시장주의가 아니다"

대체 그놈의 "진정한"은 뭔지..

Commented by 愚公 at 2009/05/01 11:45
그놈의 '진정성(authenticity)'...

(저희 전공에서는 이걸 '진본성'으로 해석하는데 역시 '그놈의 진본성' 소릴 듣지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1 12:28
내 질문은 '조잡한 시장주의자는 어디 있느냐'였습니다만? 진정한 시장주의 운운한 적이 없으므로 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주시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전 수준 낮은 시장주의자든, 거장 수준의 시장주의자든 기업을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공격하는 사람이 현재 어디 있는지 뭉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내부에도 시장 원리를 일부 적용시켜야 할지 안할지는 구체적인 경제학적 조사로 정해질 문제이며, 기업 내부에도 시장 원리를 일부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기업 자체가 시장원리의 위반이란 비판과 같지는 않습니다.
Commented by 야채 at 2009/05/02 01:58
끝까지 딴소리만 하시는군요. "기업을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며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 시장원리에 따르지 않는 부분을 시장원리에 맡기면 대부분의 경우 더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거론하셔야 한다는 점을 몇 번 말씀드려야 알겠습니까?

'기업은 시장원리에 어긋나지 않는가' 라는 문제제기는
"시장원리주의자가 그렇게 주장한다"가 아니라
"시장원리주의의 전제를 적용하면 기업 조직도 문제가 되지 않는가" 라는, 즉 그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보이기 위한 반례이지 그 자체가 문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리죠. 기업 내부에 시장원리를 적용시켜야 할지 말지는 구체적인 경제학적 조사로 정해질 문제이지, "시장원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좋다" 등의 '원칙'을 갖다붙여서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할지 말지도 구체적인 경제학적인 조사로 정해질 문제이지, "시장원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명령원리보다 우월하다", "정부조직과 기업조직은 다르다" 와 같은 '원칙'을 갖다붙여서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점에서 "시장원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우월하다. 정부나 기타 조직의 '관리'하에 있는 것을 시장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1 11:04
다만 사실 진짜로 난감한 것은, "OK, 시장원리주의는 나빠. 그럼 대체 어느 만큼 어디다가 제도를 적용하면 되는거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도 '성공적 결과'를 도출하는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지요.

장하준이 열심히 자유주의적 방법론을 비판하였지만 막상 그가 주장하는 국가사회주의적 방법론 또한 이미 국가적인 수준까지 갈 것도 없이 국가의 일부 지역에서 특정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데 있어서조차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는 점으로 인해 의문시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11:31
거기서 조금만 돌파구를 열면 개발경제학에서 노벨상 나오는 거죠 뭐. 장하준이 한국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길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좀 더 크게 보면 동아시아)가 후진국 경제개발에 있어 최고의 성공사례 중 하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각종 이론이 그 공을 다투죠. 반면 사하라 이남은 이론의 무덤...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1 15:51
사하라 이남이 이론의 무덤이라는 것은 또 역으로 말하자면 정책 관료나 국제 기구 등이 짜낼 수 있는 '정책'의 힘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마치 '총,균,쇠'같은 결론이랄까요;;
Commented by Ciel at 2009/05/01 11:29
마지막 문단은 소네트님 답지 않게 좀 이상하군요. 사회과학에서는 주류가 항상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주류가 아니라고 폄하하시는듯한 뉘앙스가 느껴지고요...

하이에크는 시카고학파와는 달리 오스트리아학파로 아예 따로 분류된다는 점도 적어두시면,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로 엮어서 이해하는 문제도 없을거 같은데...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 대해 제 생각을 말하자면, '우리는 그것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지만, 모르고 살아도 별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 ㅋ_ㅋ'
개인적으로 하이에크는 꽤 좋아하지만 말이죠.(근데 화폐도 민간이 발행해야한다는 주장은 조금...)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11:42
새로운 이론이 기성 학계에서 인정받는데 시간이 걸리며 때때로 냉대받는 것은 사회과학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주류에 합류, 혹은 주류로 격상되는 학설이 있고 영원히 겉도는 학설이 있는데, 영원히 겉도는 마이너들을 관찰하면 상당부분 그들이 자초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마이너 이론들도 어떤 작은 측면에서는 주류 이론을 능가하는 통찰력을 보이곤 합니다. 그런 부분은 참작을 해야죠. 하지만 그 체제 전체를 변형없이 주류에 통채로 편입되기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영원한 비주류로 겉돌게되면 연구에 필요한 인력과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작았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거죠. 그럼 악순환이 반복될 뿐.
Commented by 少雪緣 at 2009/05/01 12:02
다른 이야기지만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대개 '구매자'의 입장에서 '이러이러 하면 더 나을것이다'라는 이야길 종종하는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구매자의 욕구-언제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생산자는 '어마어마한 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주-수주 시스템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팔릴지도 모르는 재고를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것은 시장에서 구매자의 수요가 시장 만능주의자들의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것을 의미합니다. 핸드폰을 구매하고자 하는사람은 시장에 참여하는 대부분이겠지만 핸드폰 부품 접착용 양면테이프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핸드폰 제조업자 뿐이니까요.

특히나 시장 전원이 구매를 희망하는 제품일 수록 이러한 공정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공정마다 구매자 수를 격감시키는 점등을 감안해 본다면 시장만능주의라는건 Buyer's market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란 생각도 듭니다.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1 12:20
sonnet// 여전히 조잡한 시장주의자가 누구인지 제기된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군요. 코스의 '기업의 본질' 논문이 발표된 건 1937년, 코스가 시카고 대학 교수가 된 게 1964년, 그 이전에 시카고 학파의 거두들과 교류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코스의 정리도 모르는 조잡한 시장주의자가 어디 있는지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본문에서 얘기한 대로 하이에크가 비주류이므로 하이에크 추종자들은 무시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가격메커니즘으로서의 시장 원리에 위배되므로 기업을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류 시장주의자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님의 글의 문제점은 분명히 정치철학적인 쟁점을 얘기하는 글이면서도 반론이 제기되면 정치철학적인 관점과 무관한 글이라며 도피하는 데에 있습니다. 'Fed가 CDO를 reverse auction으로 구입하는게 더 나은가 아닌가'같은 쟁점을 주제로 다루고 싶었다면 시장주의가 글의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시장을 정책수단으로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의 원리적인 문제는 정치철학의 쟁점에 속하는 것이며 구체적인 기술적 문제로 도피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것이지요. 내가 댓글을 단 님의 글은 둘 다 시장주의 일반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며, 기술적 쟁점으로 회피할 수 없는 정치사상적 목적의 글입니다. 일반적 합의를 얻지 못한 본인의 자의적 정치사상적 전제를 지적받았을 때, 문제에서 눈을 돌리고 도피하는 태도는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합니다.
Commented by 愛天 at 2009/05/01 12:42
경제학쪽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끼어들기 뭣하지만 위쪽 댓글의 논지에 대해서는 좀 이해가 안 가는군요. sonnet님은 '시장을 통하지 않고 조정되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어 시장을 사용하도록 바꿈으로서 사회적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비평하면서 이 주장을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이중잣대를 비판한다고 보는데요.
sonnet님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시장원리주의자가 기업을 해체하자는 주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정부를 보는 시선으로 기업을 보면 마찬가지로 비판할 내용이 있다는거죠.
그 시장원리주의자가 어디에 있냐면 요즘 이오공감에 있죠.. sonnet님은 진지한 학자를 대상으로 글을 쓴게 아닌 블로그스피어에서 나도는 담론에 대해서 전공잣대로 평하려고 글을 쓴거라 생각됩니다만...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1 12:48
愛天// 이오공감에 그런 글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특정한 개인의 구체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오류를 비판하면 될 일입니다. '시장주의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주제를 확대하면서 얘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9/05/01 13:40
눈팅족의 입장에서 산마로님은 블로그 하나 만드셔서 이글을 트랙백하신다음 비판을 하든 비난을 하든 하시는게 보기 좋을듯 합니다.
여기서 댓글만으로 계속해서 이러시는것은 여러모로 보기좋지 않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14:37
愛天/ 네, 잘 보셨습니다. 사실 산마로씨를 제외하면 오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산마로/ 1. 첫번째 의문은 코스 본인의 입을 빌려 답하도록 하지요. 본문에서 인용한 1994년 연설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1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까지도 그것을(혹은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p.320)

이것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경제학을 가르칠 때 쓰는 모델의 힘이 강력해서, 어설프게 배운 사람은 그것 밖에 몰라서, 숙달된 사람은 반대로 거기 숙달되었기 때문에 모델에 내포된 가정의 한계에 성찰적으로 반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알아도 틀리기 쉬운 종류의 문제인 것이지요. 이것이 끊임없이 어설픈 시장원리주의가 생산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스티글리츠도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비슷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2. "시장을 정책수단으로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는 주류경제학 내부에서 case by case로 활발히 토론되는 기술적이고 경험적인 주제이지, "원리적인 문제" 혹은 "정치철학의 쟁점"은 아니라는 아니라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즉 정책수단으로 시장=가격 메커니즘을 응용해서 성공한 사례가 늘어나면 신뢰도는 높아지고, 실패가 두드러지면 신뢰도가 떨어지겠지요.

(지금은 계획이 좀 다른 형태로 바뀌었는데) 예시가 되었던 부실자산을 역경매로 산다는 것(폴슨 계획)은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무조건 독박을 쓸 게 분명해 보이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IMF가 시킨 대로 한국에서 했듯이) 단순히 은행을 국유화하는 방법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돌아가는 길'을 택한 배후에 있지 않나 의심했습니다.

이때 미시경제학 교과서 저자로 유명한 Hal Varian이 (만약 꼭 역경매를 해야겠다면) 손해를 덜보기 위해 정부는 거기에 랜덤의 요소를 섞어야 된다고 제안을 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묘한 아이디어라고 감탄을 했지요. 이런 것이 바로 기술적인 접근이고 주류경제학계가 본령을 발휘하는 부문입니다.

저는 그냥 국유화하는 게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역경매 제안 쪽에도 말이 되는 해결책을 도출하기위한 노력이 있는 이상 그 상세를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시장주의자라서 국유화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자라서 국유화에 찬성하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요. 실제로 은행 국유화 해법에 찬성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이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어느 고양이가 쥐를 잘 잡느냐 하는 것이지, 고양이가 희냐 검으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저는 앞선 글(http://sonnet.egloos.com/3957621 )에서 "시장이란 수단은 우리의 정책 도구 상자에서 가장 우수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 때문에 시장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반대되는 입장과 논쟁을 하기도 했지요. 이 정도면 주류경제학의 시각에서 볼때 충분히 시장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시장을 "주의"로 믿느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지만요.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1 22:33
sonnet//
1. 구체적으로 누구, 또는 어떤 집단을 지칭하는지는 여전히 피하는군요. 코스가 말했듯이 코스의 정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제학자가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가격 메카니즘에 입각해서 현재 기업조직을 해체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가 누가 있는지는 여전히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2. 주류경제학 일부의 그런 태도는 정치철학 분야에서 '조잡한 공리주의'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성공'의 기준 자체가 해석자의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롤스 정도는 아실테니 묻지요. 어떤 것을 '정책의 성공'이라고 봐야 하는지요? 효용 극대화? 파레토 개선? 최소극대화? 효용은 뭘로 측정합니까? 순전히 경제적 소득? 평등의 정도에 따른 주관적인 행복도? '시장주의'라는 일반론을 주제로 삼으면서 이런 쟁점에 침묵하고 자의적으로 선택된 가치관을 전제하는 것은 자기 성찰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주류경제학의 범위 내에서 기술적이고 경험적인 문제를 다루겠다면 일반론으로 그 문제를 확장시켜서는 안됩니다.

3. 그전에도 썼지만, 시장을 수단으로만 간주한다는 것은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가치관을 함의합니다. 그 정도로도 시장친화적이라고 자칭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으나 님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시장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다른 시장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님의 근본전제를 공유하지 않는 사상을 자기 입장의 정당화없이 비판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입니다.

덧글:
1. 하이에크에 대한 제 댓글은 아래 글 본문에 대한 댓글이 아니라 님의 복거일 관련 댓글에서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에 대한 무지를 지적한 것입니다. 하이에크가 비주류라는 반응이 전형적인 '권위에 대한 호소의 오류'임은 아시겠지요?

2.하이에크의 사회정의 비판은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적인 것입니다. 하이에크가 경제학자로서도 듣보잡 비주류만은 아니지만-그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정치철학자로서의 하이에크는 롤스를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자주 인용되는 저자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이에크의 비주류성을 보이기 위해서 사회정의 비판을 예로 들었다는 것은 님이 하이에크나 정치사상 관련 서적을 전혀 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시장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 중 하이에크를 우호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기가 힘든데, 한줌밖에 안되는 하이에크 추종자라는 언급은 님이 시장주의를 비판하면서 시장주의가 엄청난 세력을 지닌 듯 표현한 것과 모순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2 08:46
산마로/ 그건 주류경제학 일부의 태도가 아니라 주류경제학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경제논쟁을 실제로 지배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귀하가 중요시하는 '정치철학' 논쟁은 실제로는 무시되거나 생략됩니다. 밀튼 프리드먼이나 로버트 루카스가 옛 케인지언들을 논쟁에서 대파하고 학계에서 대량의 전향자들을 만들어냈을 때도 필립스곡선의 붕괴 같은 것을 예측하고 경험적 결과로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지 그런 '정치철학' 논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은 아니죠.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7 22:31
sonnet //
1. 77년 국부론 발간 200주년 기념사에서는 코스가 전혀 다른 얘기를 합니다. '최근에야 비로소 여러 경제학자들이 제도적 틀 선택을 체계 있게 연구할 논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듯 하다' (신제도이론,송현호에서 재인용) 그리고 신제도이론은 그후 꾸준히 발전했으며 현재 웬만한 경제학 교과서나 교양서에서는 코스의 정리를 소개하고 있지요. 코스의 정리를 모르는 시장주의자가 있다고 한다면 교과서도 제대로 공부 안한 사람일 것이고 그런 사람을 두고 조잡한 시장주의가 흔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허수아비 때리기일 뿐입니다.

2. 주류경제학 안에서만 보니까 그렇게 생각되는 거지요. 케인스학파가 주류이던 시절에 시장주의를 견지하던 사람들이 프리드먼 이전에는 무슨 근거로 계속 시장주의 진영에 남아 있었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9 21:36
1. 코스의 그 이야기는 제가 하는 이야기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http://sonnet.egloos.com/4128775#12608687.04 의 1항, 그리고
http://sonnet.egloos.com/4129558#12616932.01 의 2항을 참조하세요.

2. 케인스학파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오늘날 '거시경제학'이라고 불린 분과학문을 만든 것입니다. 케인스 이전의 신고전파 경제학은 대부분 오늘날 '미시경제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었지요. 케인스학파가 각광받을 때 신고전파에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들은 계속 미시경제학을 실증적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리고 미시에서 출발해 거시로 진출하는 방법으로 반격을 했지요. 이 반격은 전혀 규범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규범은 입씨름은 할 수 있을지언정 결론이 나는 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자 이제 케인스 학파가 각광을 받을 때, 신고전파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답변이 되었나요?

답: 더 정교한 실증논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9/05/01 12:45
주장을 위한 전제로 이것저것을 깔아놓고, 무언가를 다루는 척도와 정의를 뒤틀어 가면서 논지를 전개하는 건 논설이라기 보다는 교리 강독이라고 해야 하겠죠. 크루그먼 옹의 키워질 기록들을 보다 보면 참 이런 케이스가 의외로 많다는데 새삼 놀라게 되죠.
Commented by 산마로 at 2009/05/01 12:50
sonnet님의 본문이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9/05/01 13:31
글쎄 그건 독자가 판단할 일이겠죠.
Commented by LISF at 2009/05/01 13:04
덕후 => "나의 아스카는 그렇지 않아!!"
라팔리언 => "나의 라팔은 그렇지 않아!!"
공산주의자 => "나의 노동자 계급/당은 그렇지 않아!!"
시장(원리)주의자 => "나의 시장은 그렇지 않아!!"

..로군요 [...]
Commented by 아텐보로 at 2009/05/01 13:41
광신도=> "나의 종교는 그렇지 않아!!"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5/01 13:50
아텐보로 님// "나의 전도사님은 그렇지 않아"일지도...
(보통 광신도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 페티쉬즘일 때가 많으니...)
Commented by 김증말 at 2009/05/08 02:50
ㅋㅋㅋ 여기서 이런 재미난 글을 보다니 색다르네요 ㅋㅋㅋ
Commented by at 2009/05/01 13:51
그러니깐 종교집단 자체에서 부패가 생기는 이유를 인간이 불완전해서 그렇지.

종교 자체는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무오류라고 주장하는 바와 같은거 아닐까요?


종교 무오류설?



Commented by at 2009/05/01 13:58
그런데,안간 자체가 오류 투성이이고 조잡한게 사실 아닙니까?

제대로 된 이론이라면 그점도 고려하에 운영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에게 오류가 없고 조잡성이 없어질수가 있긴 한건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21:21
네, 실행하는 인간 쪽도 그렇고... 약도에 모든 지형지물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듯이 이론은 필연적으로 단순화되기 마련이니까 현실에 적용할 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내 생각이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5/01 14:19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하나만 아는 사람을 설득하기는 어려운 법이죠. 그나저나 코스의 비하인드(?)스토리는 처음 알았네요. 지금은 노벨상 덕분인지 둘 다 주류로 인정되는 개념이어서 말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21:22
네, 완연한 주류죠. 표준적인 교과서에 늘 들어가고요.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1 23:59
모든 경제학원론에서 '코즈의 정리'는 빠지지 않습니다.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1 14:40
지난 포스팅에 이어 코즈를 비롯한 신제도학파가 여전히 heterodox의 범위에 있으면서도 '코즈의 정리'(거래비용의 문제) 등의 도식으로 주류경제학에 인용된다는 걸 말씀해주셨네요.

한 가지 눈길이 가는 건(산마로나 이글루의 정태분석가들 말고) 학문의 생존을 주류로의 입문 내지는 편입으로만 간주하신 듯한 부분입니다. 물론 하이에크와 미제스 등은 오스트리아 학파로서 heterodox로 불리긴 합니다만, 단순히 마이너 내지는 듣보잡일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건, 어느 정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1차대전 이전의 금본위제 시대와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시대의 종언-이 있었기 때문에 부침을 거듭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요컨대 학문의 생존은 얼마나 시대를 반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주류가 시대를 포함한 개념임은 분명하지만, 학문을 주류와 비주류로 단절하는 것은 학문 간의 위계서열을 조장하게 되지 않을까요.

한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부채담보부증권을 역경매하느냐 마느냐 라는 논점은 흥미롭네요. 정부가 금융시장에 직접 손을 대느냐 마느냐 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포함해, 가격에 의한 조정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미국의 정치경제체제에 미칠 영향, 미국민의 자본주의적·프론티어적 사고방식에 미칠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21:22
1. 아니 신제도학파도 주류의 일원이라고 해야지요. 케인즈파나 신고전파가 모두 주류이듯이.

2. 사회주의 계산 논쟁 같은 것도 있고, 그들도 경제학설사에 등장하는 어떤 역사적 집단으로서의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의 특성상 주류에 포섭이 안 되면 재생산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이 점은 별도의 글에서 다뤄 보도록 하지요.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1 22:22
1. <경제학사> 수업에서 신제도학파를 heterodox로 규정했고, heterodox는 경제와 사회와의 관계, 특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제도 및 이데올로기에 주목한 경제학설을 통틀었기에 그렇게 썼던 것입니다. 주류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를 순 있겠지만, sonnet 님의 관점과는 좀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2. 학문의 재생산이 어려워지는 한 예로, 김수행 교수가 나간 뒤의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 수 있겠지요.-_-;; 다만 맑스주의 경제학자를 포함해, 주류학문의 범주에서 이탈했다 해서 재생산이 어려워지긴 해도 명맥을 유지하면서 성장할 가능성-예컨대 4,50년대의 시카고 학파와 같이-을 온전히 배제하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별도의 글 기대해도 되는 것이겠지요?ㅎㅎ;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1 14:44
소넷 님의 댓글로 위 덧글 마지막 문단은 핀트에서 어긋나게 되었군요.ㅎㅎ; 문제는 간단히 국유화할 수가 없다는 점인데, 결국 미국민의 부채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니까요. 미국 경제가 끊임없이 수렁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전망은 계속 비관적이 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21:27
사실 지금처럼 PPIF를 해도 형태는 다를 지언정 비용부담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FDIC 대출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민자가 들어온다지만 7%밖에 안되는데, 사실 그 7%는 퍼센트 자체에 의미를 두기는 어렵죠.
Commented by leopord at 2009/05/01 22:26
부채자산을 매입하는 비용과 국유화 하는 비용이 비슷하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국유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라던가 정부에 의한 산업운영 경험이 여전히 낯선 상황이라 말이지요. 글로벌 경제위기는 정말 멀고도 먼 길인...-_-;;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1 16:05
뭐 여담이지만 은행 국유화 관련해서는 이런 견해도 있더군요.
http://blog.naver.com/oneidjack.do?Redirect=Log&logNo=30045292642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01 21:33
네, 읽어봤습니다. 본문에 제가 링크한 게리 베커의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PIF 방식으로 하면 투자자들이 보다 도박성이 높은 자산에 배팅하는데 강력한(너무 강력한)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러면 민간펀드를 끌어들여 선별을 맡긴 게 무슨 의미인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갈매기 at 2009/05/02 00:37
베커의 주장을 제대로 제가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영어가 짧습니다)
PPIF의 구조상 은행은 무조건 불량자산의 가치를 뻥튀기하려 들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정부가 자산가치를 함부로 깎아내자니 본래의 자본시장 정상화를 위한 자본 투입이란 목적이;;
제가 보기에도 일정량의 고위험 자산 배팅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국유화를 하자니 좀 골치아프기도 하고;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5/01 17:20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시장 무오류설 주의자 때문에 욕보십니다.^^;

그나저나 국내에서 하이에크 팬클럽 회장을 뽑으라면 누가 후보군에 들까요? 복모 작가와 글에서 인용하신분 외에 또 나올 사람이...
Commented by 오그드루 자하드 at 2009/05/02 00:58
http://www.freemarketschool.org/contents/bbs/bbs_content.html?bbs_cls_cd=001004
여기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임원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 하이에크 소사이어티가 있는데 팬클럽을 하나 더 만들어서 뭐 하겠습니까.
Commented by 미친고양이 at 2009/05/01 18:40
언제나 원리주의자와 싸울 줄 아시는 대제님, 대단하십니다.
Commented by xavier at 2009/05/02 02:47
Why bother....

"There is no philosophy without the art of ignoring objections.” - Joseph-Marie
Commented at 2009/05/15 14: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5/15 17:50
'듣보잡' 같은 표현이 과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영원히 비주류에서 맴돌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그 이유가 기본적으로 자초한 것(self-imposed)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면 말씀하신 그 공리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슘페터의 생각을 계승한 사람들 중에는 그런 식으로 쓸만한 것을 건져서 주류와 협력이 가능한 방법으로 경제학을 발전시키는데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꼭 정책결정에 도움이 되어야 하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Granger처럼 정책논쟁에는 거의 끼어들지 않았던 사람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오히려 1차적인 문제는 경제학자 공동체에게 참고가 되느냐 즉 학문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한번 질문을 던져보지요. 2000~2009년 사이에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나온 새 연구로 주류 혹은 마르크스주의 같은 다른 비주류 학파에게 의미있게 받아들여진 사례 혹은 반대로 다른 학파에게서 나온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발전시킨 사례가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해 경제학설사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한 학파로서 인정하는 것이라면 저도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를 중심으로 한 논의에서도 '예의상' 그들에게도 한 자리를 비워놓아야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Commented by 비로긴 at 2010/06/02 05:34
답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sonnet 님의 지적이 뼈아프네요. ^^

1980년대 이후로 저희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에서도 새내기 학자들은 기존의 방법론을 보완하고자 실증적 방법론(수학 모델은 아니고 통계 쪽)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 모델은 현실적으로 워낙 부정확하기 때문에 - sonnet 님도 아시겠지만 온갖 가정과 전제와 근사치와 제약 조건을 달고도 모델의 정확성이 30% 넘기면 '굉장히 우수하고 정밀한 모델'이라 불립니다. -_-;; - 그쪽은 잘 모르겠네요.

90년대 후반에 예전보다 좀더 정교해진 '오스트리아식' 기업 이론이 만들어졌고 하이예크의 '자본 이론'을 나름대로 간단한 수학 모델로 재구성해 보고자 한 시도가 있었고, 그밖에도 여러가지로 기존의 이론을 실증적 방법론으로 입증하는 논문이 그나마 많이 쏟아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0-2009년 사이에 딱히 새로운 이론이 개발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알기로는, 리버테리안 정치철학에 세트로 끼워파는 - 조금 신랄한가요 ㅎㅎ - 경제학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적은 수로나마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으로 Mises Institute 같은 종합 웹사이트도 만들었고요. 60년대에 0.4%까지 꼴아박었던 '경제학 교수 중 오스트리아 학파 비율'이 진보신당 지지율(2% 미만)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까요..=)

학계 내에서 주류랑 싸워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데, 제가 한때 옆에서 조교 노릇한 교수님 말을 들어보면 밀튼 프리드먼이 케인즈와 싸울 때 쓴 루트를 밟으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우선 진지(시카고 대학)을 굳건하게 지키는 가운데 공통된 신념을 가진 핵심 세력을 중심으로 상대방의 이론을 실증적 근거로 무력화 시키고,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우리 세력을 늘리면서 주류로 하여금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만한 세력을 키우자. 이런 식으로요. 일단 오스트리아 경제학파틱한 논문은 주류 경제학 저널에서 채택해 주질 않거든요. 시카고 때도 마찬가지라서 초반에는 별볼일 없는 저널에 논문을 실고 책도 아무데서나 내고 막 그랬어요.

결과적으로 틀렸지만, 저는 신고전학파와 오스트리아 학파가 갈라질 때 수학 모델을 버린 것은 당시로서는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그 이후로 수학 모델로 얼마나 삽질을 해댔는지 살펴보면 제 견해가 그렇게 틀렸다고 보시지 않으리라 믿고요. 다만 케인즈의 통렬한 일격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경제학파가 사실상 괴멸당하지 않았다면 후발 주자들이 수학 모델과 통계를 받아들인 케인즈 학파 및 시카고 학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수학과 통계학의 발전에 발맞춰 실증적 방법론을 도입했을 거란 상상을 해봅니다. (물론 역사에 if란 없습니다만 ^^) 실제로 시기가 늦춰졌을 뿐 그 쪽으로 방향을 꺾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미세스를 존경하지만 그 분의 수학 모델에 대한 혐오만큼은 20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경제학파로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더군요.
Commented by enky at 2012/09/14 05:36
기업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기업가 정신에 대한 개념이 필요합니다.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잘 설명된 개념이 있지요. 즉 그것은 다른 사람의 에러를 수정하려는 창의력과 전문성입니다. 이윤은 바로 합리성의 추구에서 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에러를 잡는데서 부터 오는 것이죠.

이러한 개념은 파레토 균형으로 기업의 최적 이윤을 설명하기 보다는 행동경제학측면에서 진화론의 도입 배경이 됩니다. 하이예크와 미제스의 시장에 대한 평가를 너무 편협하게 보시는군요..
Commented by enky at 2012/09/14 05:45
신고전파의 한계는 그 체계가 뉴튼적 기계론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최적화 균형이론이 갖는 수리논리적 고찰은 그 체계내 명제에 모순이 없다는 걸 증명하겠지만, 결국 서로 다른 가정에 따른 무모순한 수많은 체계의 경제학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다시말해 평면에서 두 점을 잇는 직선은 단 하나라는 가정과는 달리 무한히 많다라는 가정으로도 수학적인 무모순한 공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이 불변이라는 가정'이 얼마나 현실적이냐는 문제가 대두되죠.
결국 우리는 지금이 균형상태라는 건지, 불균형상태라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균형이라는 것을 다른 개념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결국 파레토 최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범확장된 이론체계가 요구됨에 있죠. 그러한 측면에서 오스트리아학파의 포텐셜이 주목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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