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굉장히 조잡한 형태의 시장원리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들의 생각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면 시장을 이용한 조정이 다른 형태의 조정 방법보다 훨씬 우월한 방법이기 때문에, 현재
시장을 통하지 않고 조정되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어 시장을 사용하도록 바꿈으로서 사회적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편의상 이것을 '시장개혁론'이라고 부르자.
이들이 시장을 우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주로 자유시장경제가 과거 등장했던 다른 조정 형태, 특히 중앙계획경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진지하게 주장하게 되면 금방 골치아픈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 문제란 정작 시장경제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부문인
기업이야말로 시장을 통해 조정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주체라는 것이다.
아니 기업은 신규인력을 채용하거나 원료를 구입하고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시장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기업은 외부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시장을 이용한다. 하지만 기업은 내부적인 조정을 위해서는 시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제조부문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판촉하기 위해 LG전자의 마케팅 부문과 삼성전자의 마케팅 부문에게 경쟁입찰을 붙여 외주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LG전자의 마케팅 부문을 이용한다. '시장개혁론'을 따르자면 LG전자는 마케팅 부문을 분사한 후 시장을 통해 거래함으로 효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반복해 나가다 보면 기업들은 잘게 쪼개져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무수한 개인들이 시장을 통해 모든 조정을 달성하는 원자화된 세계로까지 내려갈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와는 반대로 움직여 왔다. 기업이 없이 개인들끼리 상호작용하던 원시적 사회에서, 크고 작은 기업들이 무수히 조직된 현대 사회로 발전해 온 것이다.
경영의 한 가지 정의는 '한 기업에서 사용되는 생산요소들을 조정하는 것'인데, 이런 조정을 행하는 경영상의 의사결정은 기본적으로 경영자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회사 안에서 어떤 직원이 A부서에서 B부서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A부서와 B부서가 그 직원에게 제시한 보수의 상대가격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발령을 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널드 코스가 「기업의 본질」(The Nature of the Firm)에서 제기한 의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논문은 2차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인 1937년에 발표되었는데, 저자는 반세기도 더 지난 1991년이 되어서야 이를 기반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상을 받을 확률을 높이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코스는 이 문제의 답을 거래비용에서 찾는다. 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나름의 비용이 드는 일이다. 따라서 시장을 이용하는 것보다 경영자의 명령(경영)으로 조정을 이루는 것이 더 싸고 효율적일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런 경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 수 많은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공공부문은 둘째 치고 민간부문에서조차
시장 외의 방법으로 조정을 이루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의 비중은 시장원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시장원리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예(자유시장경제)와 신고전파 경제학 이론에서 도출된다.
덧붙이자면 코스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 경영개선을 위해 특정 부서를 회사 내부에 갖고 있을지, 아니면 이를 분사시키고 시장을 통해 외주거래로 처리할지는 두 경우의 거래비용을 비교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매우 어렵다.
어떤 기업이 새로운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불릴 경우, 거의 언제나 그 결정에 대해 많은 논란이 뒤따른다. 그리고 실제로 인수합병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는 두 경우의 거래비용을 비교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고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일임을 잘 보여준다.
반대로 성공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덩치가 커지기 마련이다. 어떤 기업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는 한 마디로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시장개혁론'을 따라 조직을 키우는 대신 모든 일을 외주로 돌리는 처방을 쓰면 실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