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핵전쟁에 의한 인류 멸망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이르러, 덜 극단적인 위험을 지고도 외교를 꾸려나갈 수 있었고, 전쟁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파국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 하에서라면 평화의 달성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거나 평화의 달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평화를 향한 책임을 상기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도 이상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의 달성이란 평화를 바라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가 누군가의 소원을 비틀어서 혹은 너무 철저하게 들어줌으로서 그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운명의 여신과 결부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돌이켜본다면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가장 평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즉 평화를 향한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평온함을 달성하는데 가장 효과가 적은 방법인 듯하다. 평화 - 전쟁의 회피로 표현될 수 있는 - 가 한 세력 혹은 일군의 세력의 일차적 목표가 될 때마다 국제체제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무자비한 일원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제질서가 평화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원칙들을 견지할 때는 적어도 힘의 균형에 기초한 안정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안정이란 즉 일반적으로 평화의 추구에서가 아니라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통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정통성”(legitimacy)을 정의(justice)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정통성이란 실현될 수 있는 협정의 성격, 허용 가능한 목표, 외교정책의 수단에 대한 국제적 합의 이상의 것은 아니다. 이는 모든 주요 강대국들이 국제질서의 틀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함축하며, 최소한 불만이 너무 큰 나머지 베르사이유 조약 후의 독일처럼 자국의 불만을 혁명적인 대외정책으로 표출할 나라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정통 질서(a legitimate order)는 분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분쟁의 범위를 제한한다. 전쟁도 벌어질 수 있지만, 당사국들은 기성 구조의 이름 아래 싸울 것이며, 전쟁 후에 찾아올 평화는 전반적인 합의 하에 “정통성”의 더 나은 표현 형태로서 정당화되게 된다. 협상을 통해 이견을 조절한다는 고전적인 감각의 외교는 오직 “정통적인” 국제 질서 하에서만 가능하다.
한 강대국이 국제질서나 국제질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억압적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와 다른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혁명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경우, 주어진 체제 내에서 이견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절충은 가능하지만 그러한 절충은 필연적으로 찾아들 결전을 대비해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술적 행동 또는 적대세력의 사기를 꺾기 위한 수단으로서 구상된 것이다.
물론 혁명적 세력의 동기는 방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은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세력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점이 아니다. 그런 인식은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의 본질상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절대적인 안전 -적대세력의 무력화- 만이 충분한 보장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절대적 안전을 추구하는 한 세력의 욕망은 모든 다른 세력에게 절대적인 불안전을 뜻하게 된다.
힘의 행사를 절제하는 기술로서, 외교란 그러한 환경에서는 동작할 수 없다.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이다. 혁명적 국제 질서 하에서 각 세력들은 상대에게 정확히 그런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외교관들은 여전히 서로 만날 수 있으나, 그들은 더 이상 동일한 언어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설득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외교 회담은 자신의 기본 입장만 무의미하게 되풀이하고, 상대의 불성실함을 규탄하거나 상대의 “부당함”과 “타도”를 주장하는 자리로 변한다. 그런 회담은 대립하는 체제들 사이에서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교한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된다.
오랜 평온에 젖어든 채 재앙을 겪어보지 않은 세력들에게 있어, 이러한 교훈은 어지간해선 체득하기 힘든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이 느껴졌던 안정의 시대에 마음을 놓은 나머지 그들은 기존의 틀을 때려 부수겠다는 혁명적 세력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혁명적 세력의 이의제기가 그저 전술적인 것인 양, 마치 혁명적 세력이 기성 질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만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사안을 과장하는 양, 혁명적 세력이 제한적인 양보로 달랠 수 있는 특정한 불만거리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 양 혁명적 세력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을 적시에 경고하는 이는 공연히 인심을 흉흉하게 하는 사람으로 간주될 뿐이다. 반면 상황에 적응하기를 권하는 자는 균형감각을 갖춘 분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들 또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갖고 있다. 이들의 주장들은 기성 질서의 틀 아래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화정책”이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유화정책은 혁명적 세력의 무제한적인 목표를 파악할 수 없었던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하지만 자기 신념에 대한 용기와 자신들의 원칙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것이야말로 혁명적 세력의 본질이다. 그렇다보니 국제 질서의 정당성, 또는 적어도 그러한 질서가 돌아가기 위한 제약들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혁명적 세력이 다른 어떤 것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안정된 질서의 특징은 그 자연스러움에 있는 반면 혁명적 상황의 본질은 그 자의식 과잉에 있다. 정통성의 시기에 의무의 원칙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되는 법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시기는 후대에 천박하고 독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혁명적 상황에서 원칙들은 너무나 핵심적이어서 그것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하지만 바로 그 노력의 무용함은 곧 그 모든 의미를 빼앗아가며 양 측이 동일한 용어로 정통성의 “본질”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호소하는 경우가 발견되는 것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혁명적 상황에서 체제에 대한 다툼은 서로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타도에 더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기에, 외교는 전쟁이나 군비 경쟁으로 대체된다.
Kissinger, Henry A.,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 of Peace 1812-22, Boston: Moughton Mifflin Co., 1957, pp.1-3 (번역은 필자)
해제이 책은 키신저의 하버드 박사학위 논문(1954)을 수정 증보해 출간한 것으로 나폴레옹 몰락 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와 영국 외무상 캐슬레이가 주도한 빈 체제의 성립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주제는 유럽 외교사에서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현실 참여 의욕이 강하던 젊은 연구자의 주제로서는 약간 고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키신저는 열핵전쟁을 걱정해야만 할 1950년대 후반의 현실정치에도 이 책은 중요한 통찰력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주장이 학계와 관계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빠르게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왜 그랬는가?
이 책에서 키신저는 프랑스 혁명의 뒷처리를 다루고 있지만, 거기서 도출하려는 교훈은 미국은 소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면서 그가 늘 염두에 든 것은 나치 독일의 발호와 뮌헨에서의 실패한 유화 정책이다. 키신저 스스로가 2차대전 직전인 1938년에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온 유태인 중학생 출신이었기에 이는 그 자신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키신저의 생각은 상대가 나치나 소련처럼 혁명적 세력일 경우, 상대가 혁명적 세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동료 시민들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안일하게 접근하면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케넌도 소련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을 보는 남한의 전통적인 관점이자, '햇볕정책'에서 커다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혁명적 세력'은 꼭 외세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발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미국 국내정치 지형상 키신저와 반대편 끝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폴 크루그먼이다.
부시 정부 출범 후 처음 2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은, 급진적으로 보수적인 정부의 성향은 단시 일시적인 정략일 뿐이며, 기반을 다지고 나면 부시가 중도로 회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중은 미국의 지도급 정치인들이 정말 얼마나 급진적인지에 대해 여전히 별다른 감을 잡지 못했다.
…
나는 키신저가 쓴 이 책을 처음 세 쪽만 읽었는데도 등에 식은땀이 났다. 왜냐하면 이 책에 씌어 있는 내용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너무도 유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 몇 쪽에서 키신저는 이전까지 안정적이었던 외교 체제가 어떤 ‘혁명적 세력’(그 체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힘)에 직면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묘사한다. 미국의 우익운동을 키신저가 말하는 혁명적 세력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분명해 보인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 지도자들이 미국 현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운동이다.
Krugman, Paul.,
The Great Unraveling: Losing Our Way in the New Century, W.W. Norton, 2003 (송철복 역, 『
대폭로』, 세종연구원, 2003, p.4,6)
크루그먼은 부시와 네오콘 기타 떨거지들이 흔히 생각하는 '보수파'가 아니며 바로 '혁명적 세력', 급진 우익이라고 주장한다. 저놈들은 혁명적 세력인데도 안일하게 체제 내 세력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갖고 상대를 하니까 지금까지 맥없이 당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음 짤방으로 잘 요약되는 듯 싶다.
누군가가 혁명적 세력(revolutionary)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각자 상대가 그럴 가능성에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노무현의 대북/대미 정책 혹은 이명박의 운하에 대한 집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설득하기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러 혁명적이라고 느꼈으니까, 다른 사람도 각자의 관점에 입각해 그런 점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