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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세력 상대하기

열핵전쟁에 의한 인류 멸망의 위협에 직면한 시대에 이르러, 덜 극단적인 위험을 지고도 외교를 꾸려나갈 수 있었고, 전쟁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파국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러한 상황 하에서라면 평화의 달성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거나 평화의 달성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평화를 향한 책임을 상기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도 이상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의 달성이란 평화를 바라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가 누군가의 소원을 비틀어서 혹은 너무 철저하게 들어줌으로서 그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운명의 여신과 결부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돌이켜본다면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가장 평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즉 평화를 향한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평온함을 달성하는데 가장 효과가 적은 방법인 듯하다. 평화 - 전쟁의 회피로 표현될 수 있는 - 가 한 세력 혹은 일군의 세력의 일차적 목표가 될 때마다 국제체제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무자비한 일원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제질서가 평화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원칙들을 견지할 때는 적어도 힘의 균형에 기초한 안정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안정이란 즉 일반적으로 평화의 추구에서가 아니라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통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정통성”(legitimacy)을 정의(justice)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정통성이란 실현될 수 있는 협정의 성격, 허용 가능한 목표, 외교정책의 수단에 대한 국제적 합의 이상의 것은 아니다. 이는 모든 주요 강대국들이 국제질서의 틀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함축하며, 최소한 불만이 너무 큰 나머지 베르사이유 조약 후의 독일처럼 자국의 불만을 혁명적인 대외정책으로 표출할 나라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정통 질서(a legitimate order)는 분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분쟁의 범위를 제한한다. 전쟁도 벌어질 수 있지만, 당사국들은 기성 구조의 이름 아래 싸울 것이며, 전쟁 후에 찾아올 평화는 전반적인 합의 하에 “정통성”의 더 나은 표현 형태로서 정당화되게 된다. 협상을 통해 이견을 조절한다는 고전적인 감각의 외교는 오직 “정통적인” 국제 질서 하에서만 가능하다.

한 강대국이 국제질서나 국제질서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억압적이라고 간주하기 시작하면, 그 나라와 다른 강대국들 간의 관계는 혁명적인 것이 된다. 그러한 경우, 주어진 체제 내에서 이견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절충은 가능하지만 그러한 절충은 필연적으로 찾아들 결전을 대비해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술적 행동 또는 적대세력의 사기를 꺾기 위한 수단으로서 구상된 것이다.

물론 혁명적 세력의 동기는 방어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은 솔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적인 세력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그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점이 아니다. 그런 인식은 주권국가들로 이루어진 국제관계의 본질상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들에게는 오직 절대적인 안전 -적대세력의 무력화- 만이 충분한 보장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절대적 안전을 추구하는 한 세력의 욕망은 모든 다른 세력에게 절대적인 불안전을 뜻하게 된다.

힘의 행사를 절제하는 기술로서, 외교란 그러한 환경에서는 동작할 수 없다. “선의”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외교가 언제나 국제 분쟁을 타결지을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실수이다. 혁명적 국제 질서 하에서 각 세력들은 상대에게 정확히 그런 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외교관들은 여전히 서로 만날 수 있으나, 그들은 더 이상 동일한 언어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를 설득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이 정당한 요구를 구성하는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외교 회담은 자신의 기본 입장만 무의미하게 되풀이하고, 상대의 불성실함을 규탄하거나 상대의 “부당함”과 “타도”를 주장하는 자리로 변한다. 그런 회담은 대립하는 체제들 사이에서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교한 공연을 펼치는 무대가 된다.

오랜 평온에 젖어든 채 재앙을 겪어보지 않은 세력들에게 있어, 이러한 교훈은 어지간해선 체득하기 힘든 것이다. 영원할 것만 같이 느껴졌던 안정의 시대에 마음을 놓은 나머지 그들은 기존의 틀을 때려 부수겠다는 혁명적 세력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혁명적 세력의 이의제기가 그저 전술적인 것인 양, 마치 혁명적 세력이 기성 질서의 정통성을 인정하지만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사안을 과장하는 양, 혁명적 세력이 제한적인 양보로 달랠 수 있는 특정한 불만거리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 양 혁명적 세력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을 적시에 경고하는 이는 공연히 인심을 흉흉하게 하는 사람으로 간주될 뿐이다. 반면 상황에 적응하기를 권하는 자는 균형감각을 갖춘 분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들 또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그럴듯한 “이유들”을 갖고 있다. 이들의 주장들은 기성 질서의 틀 아래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화정책”이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유화정책은 혁명적 세력의 무제한적인 목표를 파악할 수 없었던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하지만 자기 신념에 대한 용기와 자신들의 원칙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것이야말로 혁명적 세력의 본질이다. 그렇다보니 국제 질서의 정당성, 또는 적어도 그러한 질서가 돌아가기 위한 제약들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혁명적 세력이 다른 어떤 것을 달성할 수 있겠는가. 안정된 질서의 특징은 그 자연스러움에 있는 반면 혁명적 상황의 본질은 그 자의식 과잉에 있다. 정통성의 시기에 의무의 원칙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언급되는 법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시기는 후대에 천박하고 독선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혁명적 상황에서 원칙들은 너무나 핵심적이어서 그것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하지만 바로 그 노력의 무용함은 곧 그 모든 의미를 빼앗아가며 양 측이 동일한 용어로 정통성의 “본질”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호소하는 경우가 발견되는 것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혁명적 상황에서 체제에 대한 다툼은 서로의 이견을 조정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타도에 더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기에, 외교는 전쟁이나 군비 경쟁으로 대체된다.

Kissinger, Henry A.,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 of Peace 1812-22, Boston: Moughton Mifflin Co., 1957, pp.1-3 (번역은 필자)




해제

이 책은 키신저의 하버드 박사학위 논문(1954)을 수정 증보해 출간한 것으로 나폴레옹 몰락 후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와 영국 외무상 캐슬레이가 주도한 빈 체제의 성립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주제는 유럽 외교사에서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현실 참여 의욕이 강하던 젊은 연구자의 주제로서는 약간 고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키신저는 열핵전쟁을 걱정해야만 할 1950년대 후반의 현실정치에도 이 책은 중요한 통찰력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주장이 학계와 관계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빠르게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 왜 그랬는가?

이 책에서 키신저는 프랑스 혁명의 뒷처리를 다루고 있지만, 거기서 도출하려는 교훈은 미국은 소련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면서 그가 늘 염두에 든 것은 나치 독일의 발호와 뮌헨에서의 실패한 유화 정책이다. 키신저 스스로가 2차대전 직전인 1938년에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온 유태인 중학생 출신이었기에 이는 그 자신의 문제의식이기도 했다.

키신저의 생각은 상대가 나치나 소련처럼 혁명적 세력일 경우, 상대가 혁명적 세력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동료 시민들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안일하게 접근하면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케넌도 소련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을 보는 남한의 전통적인 관점이자, '햇볕정책'에서 커다란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혁명적 세력'은 꼭 외세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도 발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미국 국내정치 지형상 키신저와 반대편 끝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폴 크루그먼이다.

부시 정부 출범 후 처음 2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은, 급진적으로 보수적인 정부의 성향은 단시 일시적인 정략일 뿐이며, 기반을 다지고 나면 부시가 중도로 회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중은 미국의 지도급 정치인들이 정말 얼마나 급진적인지에 대해 여전히 별다른 감을 잡지 못했다.

나는 키신저가 쓴 이 책을 처음 세 쪽만 읽었는데도 등에 식은땀이 났다. 왜냐하면 이 책에 씌어 있는 내용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너무도 유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처음 몇 쪽에서 키신저는 이전까지 안정적이었던 외교 체제가 어떤 ‘혁명적 세력’(그 체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힘)에 직면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대해 묘사한다. 미국의 우익운동을 키신저가 말하는 혁명적 세력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분명해 보인다. 다시 말해, 그것은 그 지도자들이 미국 현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운동이다.

Krugman, Paul., The Great Unraveling: Losing Our Way in the New Century, W.W. Norton, 2003 (송철복 역, 『대폭로』, 세종연구원, 2003, p.4,6)


크루그먼은 부시와 네오콘 기타 떨거지들이 흔히 생각하는 '보수파'가 아니며 바로 '혁명적 세력', 급진 우익이라고 주장한다. 저놈들은 혁명적 세력인데도 안일하게 체제 내 세력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갖고 상대를 하니까 지금까지 맥없이 당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다음 짤방으로 잘 요약되는 듯 싶다.

누군가가 혁명적 세력(revolutionary)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각자 상대가 그럴 가능성에 충분한 대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노무현의 대북/대미 정책 혹은 이명박의 운하에 대한 집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설득하기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러 혁명적이라고 느꼈으니까, 다른 사람도 각자의 관점에 입각해 그런 점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by sonnet | 2009/04/19 10:09 | 정치 | 트랙백 | 핑백(5) | 덧글(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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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발끈! 버럭! 털썩! : 적은.. at 2009/04/24 19:09

... 출처: 혁명적 세력 상대하기 한국사에서도 출처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적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수양대군의 쿠데타 사건일 것이다. 당시 집권세력은 어린 단종을 보필하던 늙은 대신그룹으로 ... more

Linked at a quarantine sta.. at 2011/10/18 06:51

... roblem of Peace 1812-22, Boston: Moughton Mifflin Co., 1957, pp.1-3 (번역은 필자, 조금 더 상세한 버전은 여기) 키신저의 주장은 얼마간 다른 범주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전사와 상인'과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내가 말했던 1)모든 것은 합의가 가능 ... more

Linked at Adagio ma non ta.. at 2013/04/03 21:19

... -적대세력의 무력화- 만이 충분한 보장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절대적 안전을 추구하는 한 세력의 욕망은 모든 다른 세력에게 절대적인 불안전을 뜻하게 된다. 혁명적 세력 상대하기(sonnet) (강조는 필자) 북한이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난동을 부리지 않을 거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애 ... more

Linked at 일화의 블로그 : 러시아의 외.. at 2014/04/09 17:50

... 이 두 가지 이유에서 현 러시아와 2차대전 직전의 독일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유사성=혁명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http://sonnet.egloos.com/4118648 이 글을 참조하시고, 요약하면 체제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국가와 체제 자체를 엎으려는 혁명적인 국가는 ... more

Linked at 폐기물 처리장 : 새로운 나치.. at 2016/08/14 01:13

... 된다. P.S 참고로 이런 흐름에 대한 대응으로써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로는 키신저의 지적을 살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 포스팅(http://sonnet.egloos.com/4118648)을 참조. ... more

Commented by 少雪緣 at 2009/04/19 10:26
이...이것은 신인류! 새로운 인류진화의 과정! 아스트랄로 피테쿠스 피테쿠스!(야)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2
아스트랄로 아스트랄로 Go!
Commented by 로리 at 2009/04/19 10:31
아흑... 왠지 짤방에 눈물이...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3
50년 전의 키신저가 알았으면 삽화로 넣었을지도요 ^^;;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4/19 10:34
'혁명의 세기'는 지난것 같은데 오히려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되려 늘어나니 신기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1
"자기 신념에 대한 용기와 자신들의 원칙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진 것이야말로 혁명적 세력의 본질"이라잖습니까. 그런 의지와 열정이 아직 죽지 않았나 봅니다.
Commented by maxi at 2009/04/19 11:18
돌이켜본다면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가장 평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즉 평화를 향한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평온함을 달성하는데 가장 효과가 적은 방법인 듯하다. 라는 말을 몇몇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주인공 일당(떨거지) 들에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죠.

만화에 너무 많이 나와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안봤으면 좋겠지만...ㅠ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2
켈로그-브리앙 조약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없다고 할 수가 없지요.
Commented by 삼천포 at 2009/04/19 11:22
OOO 녀석 참 곤란하단 말이야..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2
하하. 곤란합니다 곤란해.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4/19 11:30
키신저가 바로 저런 사고방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불완전하지만 평화를 가져왔다고봅니다. 90년대(정확하게는 80년대 말부터이지만) 국내쪽에 많은 대중적인 현대사 책(나름 괜찮은 것부터 종이 낭비까지) 키신저를 악마사촌+재활용 불가로 그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구요

ps: 하기야 메테르니히가 "복고 보수 반동의 상징"으로 교과서에 실리는거나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의외로 세계대전을 겪었던 후세 사람들에게는 차라리 메테르니히가 다시 짜서 불완전한 평화를 가진 유럽이 나았겠지만요. 마찬가지로 만에 하나 1970년대 핵전쟁이 벌어진뒤의 역사학자들이라면 키신저가 짠 불안한 평화를 그리는 분들이 분명히 나타났겠지요 ^^
Commented by Alias at 2009/04/19 12:08
직전의 기억이라는 건 의사 결정에서 상당히 중요한데도 모든 걸 현 시점에서 해석하면서 생기는 괴리일 겁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1920년대의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없었다면 대공황 당시 그렇게까지 심하게 유동성을 조으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있고, 이준님이 말씀하신 메테르니히의 경우에도 나폴레옹이 왕창 휘저어 놓은 직후 상황에서 일정 부분은 "질서회복"을 위해 취한 조치들을 "구시대 반동분자가 왕정귀족들과 결탁해서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려고 획책" 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참 뭣하죠...-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0:49
네 동감입니다. 제가 읽어본 느낌으로는 저 책이 키신저가 안보보좌관-국무장관을 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무를 때의 이론적 배경을 가감없이 잘 보여주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키신저는 냉전 구조를 정립하는 것이 legitimate order라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데탕트 추구 또한 그것이 legitimate order이기 위한 작업의 "일부"라는 점이 많이 간과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Ciel at 2009/04/19 11:46
왠지 모르게 급진적이라고 하면 항상 좌파만 떠오르게 된단 말이죠...
급진적인 보수를 극단적인 보수로 이해한다면, 제가 제대로 저 글을 이해한 것이 맞을까요?
Commented by Alias at 2009/04/19 12:02
사실은 보수라는 단어가 "기존체제의 인정" 을 전제하는 거라서 극단적 보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겁니다. 실제로는 이런 거죠.

극단적 보수 : 기존체제 변경 절대불가!
유연한 보수 : 기존체제를 인정하되 개량은 어느정도 해 가자.

반면 급진적인 우파는 이른바 우파의 가치 (감세, 국가개입 축소)를, 최대한 빨리 구현하기 위해서 제도화된 수단 이외의 것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합법일 수도 있고 불법일 수도 있지만) 개념이죠.
Commented by Ciel at 2009/04/19 12:43
보수와 우파가 다르다는건 Alias님의 댓글로 확실히 알았습니다만,
그럼 크루그먼의 글을 번역한 것에서 급진적인 보수의 의미는 급진 우파인가요 아니면 극단 보수인가요?...
Commented by shaind at 2009/04/19 13:14
급진 우파에 더 가깝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08
급진 우파라고 봐야지요. 참고로 영어판에서는 radical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아이스맨 at 2009/04/19 13:00
간단하게 [제눈에 선글라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08
하하. 말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의 차이기도 할 듯.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4/19 13:34
좌우 개념이 혼란스러운 한쿡인으로서 극단적 보수니 급진 우파니 하는 표현을 접해봤자 그저 안드로메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11
남이 쓴 글을 읽을 때는 어느 정도 감안은 해야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변화의 속도와 방법을 한 축으로 하고, 좌우를 다른 한 축으로 하는 2차원 배열을 선호하는 편이긴 합니다.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4/19 14:22
저 '대폭로' 인용문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은데요.
4년 뒤에는 조선시대 사화 수준의 일이 벌어질 듯 합니다. 실패한 정권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겠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14
사실 지금도 진행 중이 아닌가 싶은데...
4년 후의 일은 정권교체가 되느냐에 따라서 또 많이 달라질 듯 합니다.
Commented by 친한척 at 2009/04/19 14:25
아 이 논문이 바로 그 울포위츠가 '잘 쓰여졌으나 영웅은 메테르니히가 아니라 차르 알렉산데르 1세가 되어야 했다'라고 평했던 그 물건이군요.

저 평만 보아도 크루그먼의 네오콘에 대한 인식에는 저 역시 깊이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14
네, 바로 그 책입니다.
Commented by reske at 2009/04/19 15:21
크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회복된 세계'로군요. 박사학위로 저런 논문을 쓸 정도면 ㄷㄷㄷ

현실주의나 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명문이로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19
저게 뭐랄까 키신저가 집대성한 냉전의 배경 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에 키신저는 데탕트의 챔피언이 되었지만, 키신저가 추구한 데탕트는 기본적으로 냉전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방법인 것이지 탈냉전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4/19 17:48
뭔가, 키신저와 크루그먼이 키보도(...)를 벌이는 장면이 연상되는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20
하하;;; 키신저는 살아 있는데 저 책에 대해 어떻게 논평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Commented by dhunter at 2009/04/19 19:41
크루그먼의 대폭로는 얼마 전 읽었습니다만 크루그먼 글 중에서는 읽기 쉬운 편인데다 천조국 황제가 주어가 없는 분과 엮여서 좀 곤란했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23
아무래도 신문 컬럼 모음집이라서 체계적이진 않죠.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9/04/19 19:48
키신저나 크루그먼이 보는 '혁명세력'에 대한 인식은 같은데 어째 그 대상은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 키신저는 네오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31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키신저가 공직에 있던 시절에는 네오콘들이 태클을 많이 걸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키신저 본인은 권력지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현직 대통령인 부시와는 친밀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있습니다. 반면 키신저의 protege였던 스코우크로프트는 대놓고 대립각을 세워서 american tory라고도 불리는 공화당 보수파의 입장을 분명히 했지요.
이런 면에서 보면 키신저는 네오콘과 의견이 잘 맞는 쪽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부시 대통령 혹은 공화당 정권과 척을 질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요.
Commented by TSUNAMI at 2009/04/20 00:08
네오콘의 또 다른 문제는 세상을 선,악,흑,백 이분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또 정책목표와 전술이 100퍼센트 일치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키신저는 "네오컨들은 전술적 문제를 싫어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네오콘들은 미국의 완벽한 승리만 승리라고 생각할 뿐 80점짜리나 90점짜리 승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네오콘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문제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어떤 저작권을 갖고 있는 양 행세한다. 키신저는 이 점에 대해 "사상전향의 경험을 갖고 있는 네오콘들은 냉전승리에 매달렸다"고 말한다.

(p.229)

미국 보수파들의 계율은 대체로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교리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그런데 이와 같은 보수파 계율의 핵심내용은 냉전종식 이후 네오콘이 득세하면서 쓰레기통에 쳐박혔다. 특히 신세대 네오콘들은 윌슨식 이상주의와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을 외치면서 거추장스런 보수파의 교리를 내다버렸다. (p.236)

- 로버트 메리,<<모래의 제국>>최원기 역,김영사,2005

전 세기의 칼 슈미트나 에른스트 윙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고 혁명적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그 자체도 21세기의 미국판 - 이 부류들은 나머지 세계도 자기들처럼 만들고 싶어했으므로 - 확장형 '보수혁명론' 이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39
Blut und Boden 뭐 이런 겁니까;;
별로 그렇게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한 번 검토해볼 필요는 있겠네요. 첫인상으로 말하자면 독일의 그 그룹은 뭐랄까 반 물질문명적이고 슈펭글러 풍의 칙칙한 세계관이 특징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점은 네오콘들과는 대조적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4/20 05:15
짤방에 눈물이. ㅠ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1 07:48
흐흐.
Commented by 일화 at 2009/04/20 19:23
글과 짤방의 적절한 조화가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군요. 현 대통령의 운하에 대한 집착은 특유의 소심함 때문인지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지 않으니 현 정권이 혁명적인지 여부는 좀더 두고봐야 할 듯 싶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1 07:50
사실 현 대통령을 혁명적 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를 '신자유주의의 화신'이라고 규정하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까지 확고한 이념이 있는 것 같진 않다는 게 제 생각이지만요.
Commented by 마음 at 2009/04/24 11:10
이 글의 핵심은 아닌 것 같지만 의문이 들어서 질문합니다.


'돌이켜본다면 가장 평화스러웠던 시대는 가장 평화를 추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라는 구절에서 이 시절을 '냉전'시대를 말하는 건가요?

그리고 이 문장에서 가르키는 이 '시절'을 냉전시대라고 하더라도 또 다른 예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4 11:38
이 글이 쓰여진 것은 냉전시대 초반이니까 냉전시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해 나갈 우리 시대(즉 냉전 시대)는 그 바로 앞 시대, 즉 오랜 안정의 시대에 고양되어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전쟁'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과 제1차 세계대전 후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다음 전쟁의 길을 열었던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자 생각에 그런 모델이 될 만한 시기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인 「유럽협조체제」concert of europe의 시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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