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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크렐 장치?

어린 시절 내게 큰 영향을 준 영화로 『금단의 행성 Forbidden Planet』(1956)이란 작품이 있다.

우주이민이 시작된 2200년대 초, 20년 전 이주해간 후 연락이 두절되어 버린 이민단을 찾아 행성연합 순양함 C-57D는 지구로부터 16광년 떨어진 알타이르 제4행성으로 향한다. 알타이르Ⅳ에는 이민단의 생존자인 모비우스 박사와 그 곳에서 태어난 딸 알티라 단 두 명만이 살고 있었다.

모비우스 박사는 알타이르Ⅳ에는 과거 위대한 문명을 일구었던 크렐 인이란 종족이 살았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날 돌연 멸망했으며, 이민단은 정체불명의 괴물의 습격을 받아 자신들 이외에는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 등을 전했다. 모비우스 박사는 크렐 인의 유적을 조사해 남아 있던 설비를 사용해 모비우스 자신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진시켰다는 점 그리고 아마도 C-57D도 괴물에 습격당하리라고 예고하고 빨리 이 별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실제로 괴물은 다시 나타나 C-57D를 습격해 승무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담스 함장은 알티라와 사랑에 빠진 탓도 있어 바로 떠나는 대신, 모비우스와 알티라를(혹은 알티라 만이라도) 지구로 데리고 돌아가려고 한다.

드디어 괴물이 맹위를 떨쳐 아담스, 모비우스, 알티라 등을 습격한다. 그 때 크렐 유적이 최대출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오스트로는 크렐 학습기를 통해 유적의 거대한 기계가 크렐 인들이 마음 속에 소망하는 것을 실체화하는 장치임을 알아내고 죽는다. 결국 아담스는 그 괴물의 정체가 모비우스 박사의 잠재의식이자 자아 그 자체, 「이드의 괴물」이라고 불림직한 존재라는 것을 간파한다. 이민단의 참극도 C-57D 승무원들의 희생도 실은 모비우스 박사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낸 소행이었던 것이다. 자기 의식의 암흑면을 직시하게 된 모비우스 박사는 그제서야 크렐 인들이 왜 하룻밤 사이에 멸망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고, 알티라를 아담스와 함께 이 별에서 탈출시킨 후 알타이르Ⅳ와 함께 최후를 맞는 것을 선택한다.


크렐 머신이 설치된 고대 유적

이드 몬스터를 저지해 보려고 싸우는 승무원들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 Tempest」를 SF로 각색한 이 작품은 금융 혁신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반동파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좋은 비유를 제공한다. 이들 반동파들은 규제자들이 현대적 금융 시장과 그 도구들의 혁신, 그리고 그에 따르는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들이 왜 그렇게 시장 참가자들의 탐욕을 끝없이 강조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은 본성이므로 없앨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금융 혁신과 진보가 또 다른 크렐 장치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탐욕을 참극으로 바꿔주는 enabler인 금융 혁신을 때려 잡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맞다면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알타이르Ⅳ와 크렐 장치를 파괴하고 지구로 귀환하듯이 우리도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발전한 금융 혁신의 물결과 결별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한, 우리 규제자의 능력으로도 관리가 가능한 구체제(Ancien Régime)로 복귀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맞다면.
by sonnet | 2009/04/16 21:28 | 경제 | 트랙백 | 덧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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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萬古獨龍 at 2009/04/16 21:35
진보와 반동은 뗄레야 뗄수없는 것이니까요오... 하지만 혁신이란 것이 구체제로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또한 인류는 증명해왔죠. 비록 그 혁신의 순간 또다른 모순을 창조하고 그것으로 또다시 둘로 나뉘어 투쟁한다는 점이 비극이라면 비극일까요...(머엉)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08
네, 인류의 역사는 그런 식이었죠. 다만 저쪽에서는 운이 좋았을 뿐, 즉 "인류는 아직 진정한 왕건이를 만나 크렐 인들처럼 단번에 끝장이 나지 않아서 그럴 뿐" 이라고 반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토르끼 at 2009/04/16 21:38
수공업하고 농사짓는 구체제 'ㅅ';
Commented by maxi at 2009/04/16 22:07
그런거 좋아하는 정치적 세력도 있지요. 한국이야 뭐 미미하지만..
Commented by .... at 2009/04/17 12:01
금융얘기니깐 그 전 단계인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단계까지는 가야죠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9/04/16 21:45
이러나 저러나 금융 혁신은 계속될 것이고 그에 따른 괴물은 끝없이 나올 것이며 관리 가능한 구체제로 돌아가지도 않을테니 증명할 길이 없군요. 반대로 무제한적인 주장도 가능하지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09:45
굳이 말하자면 크렐 인들처럼 배드엔딩을 보는 것이 궁극적인 증명이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일화 at 2009/04/16 22:08
저도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나는데, 이게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성한 것인지는 몰랐네요. 확실히 현재의 금융도구들이 위험성을 증폭시키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문명 자체를 위협할 수준인지는 아직 의문이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40
저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에 인류를 위협한 제1의 위험이라면 역시 전면핵전쟁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기술(폭탄 제조와 투발수단 양 면에서)이 놀랄만큼 빨리 발전하고 있었고 주요 강대국들이 책임감있게 핵무기를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너무나 컸으니까요. 1970년대 후반에 비축한 핵무기+투발수단을 갖고 1950년대 후반의 불확실성(쿠바 미사일 위기 때 드러난 것 같은)을 계속 끌고갔으면 악몽이었겠지요.

이야기를 금융으로 돌리면, 금융혁신의 내용(이나 규모, 영향력 등)에 대해서 사람들이 사실 잘 몰랐는데, 이번 금융위기로 보통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는 게 그런 논란이 표면화된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깜짝 놀란 인상 정도로 올바른 결론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든 노릇이지만요.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4/16 22:25
저도 어릴 때 텔레비전 - 주말의 명화였던가요- 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50년대 영화 치고는 정교한 특수효과와 나름의 교훈이 꽤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의미심장하군요. -ㅅ-;
Commented by 흐음 at 2009/04/17 02:36
kbs 명화극장이었습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41
네, 이래저래 기회가 있을 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길 해 보면 저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4/16 22:59
단정짓지 않는 끝맺음이, 오히려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글이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32
반동파의 주장은 옳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지목하는 문제가 크렐 장치같은 성격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정교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지금껏 그런 설명을 본 적이 없습니다.

Commented by charlie024 at 2009/04/16 22:59
영화의 기본적인 이야기..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괴물이라는 것은 영황"sphere"에서 나온것이랑 비슷하네요. 전 이 영화가 처음으로 이런 잠재의식에서 나오는 괴물을 첨으로 소개한 영화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51
음... 금단의 행성 이전에 다른 작품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너무 평범해진 설정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4/17 00:28
문제는 맞는놈이 없다는 거지요. ㅡㅡa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50
이건 뭐랄까 입장의 문제이니까요. 새로운 것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기 마련인데 새로운 것의 속성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몇 가지로 입장이 갈리는 거죠. 진보, 보수, 반동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Commented by 로리 at 2009/04/17 00:56
크렐은 오디오 메이커인데...(...)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4/17 01:04
파워가 강하다는 이유로 저 영화에서 따온 이름이죠.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52
아닌게 아니라 예전에 다고스티노 인터뷰를 보니까 저 영화에서 따 왔다고 이야길 하더군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4/17 01:05
주연이 레슬리 닐슨이라는 것도 중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33
아, 그러고보니 ^^
Commented by 효우도 at 2009/04/17 07:40
그러면 모비우스 박사는 마음속으로 '딸을 범하고 싶다' 라고 생각한 것인건가요? 햄릿처럼 말이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54
글쎄요. 그정도까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냥 딸을 잘 모르는 놈에게 주고 싶지 않은 독점욕 같은 정도가 아닐까요. 딸을 시집보내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이야길 하잖습니까.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4/18 11:59
"난 이 결혼 반댈세!"를 장대하게 표현한 것...?
Commented by foog at 2009/04/17 09:10
걸작이죠. 저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역시 sonnet님 다우시군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0:53
네, 저에게 enabler의 특별한 역할에 대해 가르쳐 준 영화라고나 할까요.
Commented by vicious at 2009/04/17 09:48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영화군요...

구체제라... 물물교환이라도 해야 하나?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2:53
그정도는 아니겠지만,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을 때 반응을 보면 문제가 된 것은 나쁜 것이라는 식의 단순한 평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하얀까마귀 at 2009/04/17 10:02
탐욕의 포텐셜을 극대화시켜서 찬란한 번영을 이룩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선 그것이 폭주해서 번영이 붕괴했을 때...

멸망을 눈앞에 둔 마지막 크렐인들은 시스템을 비난했을까요 아니면 탐욕을 절제하지 못한 크렐인들의 악덕을 비난했을까요?

아, 탐욕이 아니라 잠재의식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59
있기야 둘 다 있지 않았겠습니까 ^^;
둘이 싸워서 승자가 나올 틈이 없는게 아쉬울 뿐.
Commented by marlowe at 2009/04/17 11:26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영화예요.
저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지능을 끌어 올려주는 기계장치가 가장 인상적이였습니다.
저라면 목숨의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사용해보고 싶어요.
제 인식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57
네, 정말 궁금하지요. 그런데 저는 나이가 들수록 목숨이 점점 더 아까와지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monsa at 2009/04/17 11:40
트릴레마중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이야기하시는건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47
그런 것도 될 수 있겠고, 파생상품에 대한 거의 전방위적인 비판도 해당되겠죠. 대중적인 비판들을 읽고 있노라면 catch-all한 규제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좀처럼 달성될 수 없을 듯한 주장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09/04/17 12:44
이러한 입론은, 넓은 의미에서 체제이행상 보수주의의 전략적 우월함을 갈파하시던 소넷님의 기존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 아닐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42
http://pds9.egloos.com/pds/200802/25/40/b0009940_47c21b29a2bca.png 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가 제 입장이고, 본문에서 제시되는 것은 다섯 번째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reske at 2009/04/17 12:47
윽 별 다섯개 추천 드립니다.

근데 어쩌면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효용성과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저런데 끌리는건지도 모르죠.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7 21:43
하하, 그럴 수도 있죠. 그렇다면 말을 시켜 봐야죠. 무슨 소리가 나오나 보게.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4/17 13:48
환갑 지난 할매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금융 상품 따위는 사라지는 게 맞는 길일지도 모르죠. 남는 건 우체국 예금 뿐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18 12:52
그러고보니 스티븐 레빗의 freaknomics 블로그를 보니까 금융 상품 설명을 더 잘 해주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길 설득력있게 해 놨더군요.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4/18 18:17
멋진 말씀입니다. ㅡㅡ;;
Commented by fatman at 2009/04/18 15:11
개인적으로 연 인플레이션율을 5%이내로 억제하면서, 정기예금금리는 10% 이상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제라면 언제라도 적극 환영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43
하하. 저도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Commented by 3월의토끼 at 2009/04/18 15:52
어릴 때 한번보고 잊을 수 없는 영화였는데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지 이상한 기분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4/20 01:43
네, 저도 저 영화가 아주 인상적이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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