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일련의 글을 통해 석유 거래시 가격을 매기는 단위(계산단위)로
달러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 자체는 거의 의미가 있기 힘들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그런 대단치 않은 것을 강요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주장들은 전연 믿을 수 없음 또한 당연하다.
이제 이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1970년대 중반에 일어난 실질적인 변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동 산유국들의 대미 석유금수와 감산으로 일대 혼란을 겪은 후, 미국 정부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산유국들의 공갈협박에 위협을 받는 일이 없도록 예방책을 강구해야겠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유가상승으로 산유국에 쌓인 거액의 외환을 미국에 투자하게 설득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런 투자가 뿌리내리게 되면, 석유공급을 갖고 장난을 쳐 미국 경제를 망쳐 놓을 경우, 이들의 투자도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기 마련이다. 당시 실세인 키신저는 이를 "산유국들이 국제 경제의 책임감있는 참여자가 되게 하는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표현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아랍 산유국들 입장에서도 이는 나쁜 장사가 아니었다. 우선 이들은 성장 초기단계의 개도국들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쏟아진 거액의 외환을 국내 투자로 소화해 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 해외에서 돈을 안전하게 굴릴 방도가 필요했다. 또한 이러려면 거액의 투자를 넣거나 빼더라도 시장이 출렁이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금융시장이 필요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 금융시장은 그런 투자를 하기에 최선의 "채널"이었다. 이렇게 중동 산유국은 석유로 달러를 벌고, 미국과 서유럽의 선진금융시장에서 굴리기 위해 그렇게 쌓은 달러를 되돌려 보내며 자금이 순환되는 과정을 보통
오일달러 순환(petrodollar recycling)이라고 부른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예로 들면 1974년 사우디는 260억 달러의 석유 수입 중 5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했다. 1976년에는 이 투자액이 600억 달러로 뛰어올랐고 1979년에 이르면 사우디는 이미 미국 국채의 최대 보유자로 등극하게 된다.
미국-사우디아라비아 국제수지(단위 백만$)
또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제적 측면 외에 안보적 측면에도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대량의 최신 무기를 팔고 군대를 훈련시켜 주었으며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궁극적인 보장을 제공했다. 미국-사우디 간 사이의 무기판매를 보면, 1972년에는 3억 달러이던 FMS(foreign military sales) 거래가 1975년이 되면 이미 50억 달러로 뛰어오른 것을 볼 수 있다. 1980년대 전반이 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F-15 전투기와 E-3 AWACS를 굴리는 나라가 된다.(이는 무려 이스라엘의 반대 로비를 뚫고 실현된 것임을 기억하자) 소련과 냉전을 벌이고 있던 미국과 무신론자 공산당(godless communist)들을 혐오하던 이슬람주의 사우디는 반공이라는 측면에서도 죽이 잘 맞았다. 1980년대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공의 성전을 벌이는 대규모 조인트 벤처를 운영하였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은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협하던 이라크를 박살내 놓음으로서 미국의 안전보장은 믿을만함을 입증해 보였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나라가 미국 금융기관을 통해 굴리던 돈을 왕창 뽑아서 미국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긴다면 나름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무슨 상관인가? 이란은 석유수출로 달러를 쌓든 유로를 쌓든 간에 그 돈을 미국에 새로 투자할 리도 없거니와 현재 굴리고 있는 돈도 없다. 그러니 그걸 갖고는 뭐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고Bronson, Rachel.,
Thicker than Oil: America's Uneasy Partnership with Saudi Arabia,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의 6장을 주로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