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북핵 위기 이후 이어진 북한 관련 회담들을 정리해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세력 판도라든가 이해관계가 잘 드러난다. 보다 적은 참가자로 이루어진 회담에 들어간 국가는 더 강하고 영향력이 큰 나라이거나, 더 큰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이다.
이제 각각의 회담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북한-미국의 양자회담이 있는데,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AF)가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이는 북한이 가장 희망하는 형태이기도 하다.
남한과 중국을 배제한 미국과 직거래야말로 북한의 오랜 꿈이다.
다음은 제2차 북핵위기 이후에 벌어진 3자회담이 있다. 이는 북한과 미국의 회담을 중국이 주선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이 회담을 한 번 해보고
이럴 바에야 6자회담이 낫겠다고 했으며, 미국 또한 중국이 다리만 놓는
양자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맞서 이 회담은 이후 6자회담으로 변모하게 된다.
4자회담은 90년대 후반에 열렸으며 한국전쟁 휴전협정 조인국인 미국, 중국, 북한에 비조인 당사국인 남한을 더한 것이다. 이 형태는 휴전회담의 기본 형식에서 잘 드러나듯이
남한과 그 후견국인 미국이 북한과 그 후견국인 중국을 상대하는 2:2 형태이다.
5자회담은 6자회담의 초안 단계에서 일본이 제안한 것으로
일본까지는 들어가되 러시아는 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자회담의 구상 단계에서 미국의 파월 장관이 제안한 10자 회담이 있다. 이는 UN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남북한, 일본, 호주, 유럽연합을 합친 것인데, 참가국이 너무 많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너무 멀고 별 관계도 없는 유럽(영국, 프랑스, 유럽연합)과 호주를 제외하게 되면서 6자회담으로 수렴된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정착된 6자회담의 구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대로 북한은 미국과의 직거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세계최강국이긴 하나 단독으로는 북한에게 사용할 지렛대가 별로 없어서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양자회담을 피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의 주변국들을 끌어모아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세울 궁리를 하게 되고, 따라서 우선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제일 큰 중국을 브로커로 끌어들이는 것이 긴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중국이 주선한 3자회담이 별 성과 없이 끝나게 되자 회담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미국은 자기편인 남한과 일본이 꼭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도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큰 것에 반발했다. 그러자 중국은 수정안을 내 놓았다. 3자 +α가 필요할 경우 한국을 참여시키며, 하나 더 참가시킨다면 (일본 대신) 러시아를 참가시키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국의 관심사가
일본을 배제하는 것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결국 이런 줄다리기 끝에 6자회담은 한반도의 남북한과 이를 둘러싼 강대국인 미일중러가 모두 들어가는 체제로 정리된다. 이 6개국 체제가 그간 계속되어 왔으며 새로운 참가자에 대한 요구도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6개국 체제는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그럭저럭 잘 포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협의체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견해가 종종 제기되는데 이러한 제안들 또한 현재의 6개국 체제가 적절하다는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다양한 회담 포맷은 이 지역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아닐 수 없다.
p.s. 아 러시아의 입장이 빠졌군. 러시아는 이 지역 회담에 우리가 빠지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며 어디나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나라는 러시아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많은 관찰자들은 러시아의 진정한 목표는
참가국이 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