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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정「토론만 하는 사람」(1954)

회의 때이면
반드시 토론하는 최부장
비판이며 맹세도 그럴듯하여
처음 그 토론 듣는 사람은
준비된 정도와 그 열정에
감탄한다!
놀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책상을 맞붙이고 일하는 나는
그의 토론을 믿지 않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토론만 하는 사람 ‘토론꾼’으로
그 이름 안지는 이미 오래다

그는 업무부장, 나는 그 부원
광산에서 가장 락후한 우리 부 사업이
회의 때는 의례 보고에 오른다.
부장의 자기 비판 맹세가 되풀이되나
날이 밝아지면 이야기는 다르다.

부장의 지각 조퇴는 사업 때문
배정된 물자는 실어오지 못하여
시장 물자에만 관심이 큰 …… 그
친구 친척이 그렇게 많을가.

가끔 부회가 있을 때이면
어데선가 ‘위신’이 갑자기 생기여
하부의 의견은 들은 척 만척
결론은 부원들의 과업뿐이다.

지배인 앞에 가면 머리는 못들고
련방 ‘네 네 알았습니다’
지배인 ‘사모님께’ 경의도 표해가며
애로 타령 간부 타령 하소연만 하는
‘능란한 일꾼’ ‘사람 좋은 친구’

회의 때 그의 ‘솔직’ 함이여!
공손한 접수며
‘눈물겨운’ 자기 비판
의례껀 뒤따르는 굳은 ‘맹세’가
사람도 달라진 듯……
레코드 판처럼 쏟아져 나온다.

하루는 또 한번 다짐해 보았다.
토론과 실천이 다를 수 있느냐고
대체 일은 언제 할 차비냐?고
허나 그의 대답은 판백이였다.

나는 부장이요
부장의 위신도 생각해 주어야지
보고에 근거해서 말만 하면 되는 것
토론을 잘 하였기 견디어 왔다면서
다음은 ‘에헴’ 소리가 나올 번 했다.

동무들 웃지 말라요
잠간 눈 감고 생각해 보시오
자비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으며
그리고 주위를 살펴 보아서
혹시야 토론꾼이 없는가를


박석정, 『박석정시선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28~33쪽
(역사문제연구소 편, 『1950년대 남북한의 선택과 굴절』. 역사비평사, 1998 pp.420-422 에서 재인용)
by sonnet | 2009/02/28 11:36 | 문화 | 트랙백 | 덧글(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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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28 11:39
남이나 북이나...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08
사실 저런 사람은 어디나 흔한 거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9/02/28 11:43
북이 50년대까지는 꽤나 비판세력도 살아있었다는데 정말 그렇군요. 저런 사회분위기만 유지됐어도 3대 세습이란 꼴은 안봤을 것을...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3/01 17:08
저 사례만을 가지고 비판세력 실존에 대한 바로미터로 보기는 힘들 듯 합니다...

사실 경성독재국가에서의 비판세력 수용에 대한 바로미터는 '직속상사'를 까는걸 어떻게 다루는 것인가보다는, '이것이 다 XXX때문이다!'라는 반정부적 비판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이 들어오는가를 봐야 하는 것인지라...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09
북한이 본질적으로 저런 분위기가 유지될 수 없는 종류의 나라인가 아닌가가 의견이 갈리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2/28 11:57
막장의 석탄을 '정치적 토론'으로 설득할 도리는 없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6:58
업무야 관리자 하기 따라서는 효율개선이 불가능한 건 아닌데 "정치적"만 갖고 되는 건 아니라는 거.
Commented by 이준님 at 2009/02/28 12:04
나중에 저런 작가들은 공화국에서 "묻히"지요 -_-;;;; 심지어는 문학사에서도 "그런 사람 누구야?"로 "잊혀"집니다.

ps: 갑제류나 반공유격대 영감류에서는 부인하지만 천리마 운동 "전"까지만 해도 상당할 수준의 비판세력이 살아 있었습니다. 천리마 운동+개인숭배 시대 크리로 멸종되버렸고 김일성 자신도 한탄할 정도로 "경직"된 사회가 되버렸지요(좀 친북? 성향의 학자들조차도 천리마 운동으로 북한내 혁명적 사고가 날라갔다라고 할 정도니까요)

우리도 유신이 오래 지속됬으면 그짝 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중요한 ps: 제가 전에 모시던 팀장이 딱 저런 인간이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6:57
유신이 오래 지속됐으면 충분히 그럼직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2/28 14:14
비슷한 수준끼리 서로 아웅 다웅하는 ...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5
하하, 그런 겁니까.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2/28 17:58
출처가 반전(?)이라고나 할까요. 역시 남과북은 한 민족인건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4
사실 본문 중의 표현에서 북한이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긴 한데, 내용이 생각외로 낡지 않았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Commented by 한빈翰彬 at 2009/02/28 18:05
박석정이란 시인은 처음 들어보는데... 했다가 출처보고 놀랐습니다. ㅎㅎ

역시 문학의 보편성이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16
네, 지금 읽어도 별로 위화감이 없긴 합니다.
Commented by raluca at 2009/02/28 20:18
오, 이런걸 어디서 찾으십니까. 놀라운 능력의 소넷님.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17
출처는 말미에 밝힌 그대로입니다.
Commented by raluca at 2009/03/03 00:18
아, 출처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감탄의 문장이었습니다.
Commented by Kain君 at 2009/02/28 20:21
'말만 잘 하는 사람' 이라 제목을 바꿔도 어색하지 안네용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5
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2/28 20:30
남이나 북이나, 관료제 사회는 역시나... (아니, 저건 '역시나'의 수준이 아닌데...)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9
크크, 전통 사회라고 저런 사람이 없었겠습니까마는, 관료적이긴 하죠.
Commented by reske at 2009/02/28 21:15
남한의 어느 기업 풍경인줄 알고 봤다가 끝의 작가 이력에서... -_-;;; 역시 관료제 사회는 어딜가나;;;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28 23:16
'락후'와 '련방' 이 포인트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8:10
하하, 그렇게나 위화감이 없어 보이십니까. 연배에 걸맞지 않게 세상 경험이 풍부하신 것 아닙니까? 흐흐.
Commented by reske at 2009/03/01 19:46
그러고보니 학교를 통해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하하..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9/02/28 21:16
역시 우리는 하나!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6
^^;;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2/28 22:33
오늘의 한마디와 더불어 이번 인용하신 시가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 같군요;;;;; 크흐~

힘내십시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7
아니 그런 건 아니구요. 빈 말이 아니고 '모종의 특별한 일' 같은 건 없습니다.;;
Commented by 산왕 at 2009/02/28 23:30
보편적 이야기였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7:37
하하, 세상은 어디나 저런 일이 있나 봅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9/03/01 17:45
북한의 '수령' 김일성이 죽고 그 세습 후계자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으로 스스로를 격하한 데에는 나름 세습에 대한 내부적인 반발우려로 한단계 물러서면서, 동시에 군부를 직접 통솔하려는 속셈도 있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1 18:26
본문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만...
전에 수령은 유일무이한 것이어서 세습할 수 없는 존재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 설명이 맞다면 김정일이 2대 수령이 될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설명에 따르자면 김정일이 지금 하는 행동은 죽은 아버지를 유일신으로 만든 후 자기가 신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이 된 셈인데, 유훈통치라는 측면을 설명하는 재미있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3/01 22:00
제갈량 사후의 촉의 정국에 대해 비슷하게 얘기하는 분들도 봤습니다.
선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으면 후대가 어떤 식으로든 고생하는 듯...
Commented by 일화 at 2009/03/01 19:15
전에 소넷님이 올리셨던 모 책의 서평이 생각나네요. 역시 베버의 이데올로기가 살아 있는 곳은 어디든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4 09:20
저는 "나는 부장이요 부장의 위신도 생각해 주어야지"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
Commented by categoriae at 2009/03/03 00:24
저도 S모 그룹 대리급 총 백일장(?) 장려상 쯤 되는 작품인 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3/04 09:16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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