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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반 타도를 위한 거래, 그 세 가지 층위(2001년 10월 말)

1. 회담

2001년 10월 31일,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 위치한 두샨베 국제공항에서 역사적인 회담이 열렸다. 아프간 침공을 준비하는 미군 최고지휘관인 미 중부군(CENTCOM) 사령관 프랭크스 대장과 아프가니스탄의 반 탈리반 무자헤딘 연합, 속칭 북부동맹의 지도자 모하마드 파힘 한이 대면한 것이다. 9.11 테러 이틀 전, 북부동맹의 전설적 지도자 마수드 장군이 기자로 위장한 알 카이다의 자살폭탄대원에 의해 암살되어 북부동맹은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모하마드 파힘이 그의 후계자로 추대되었지만 조직을 추스를 역량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해질녘에 일단의 우리 차량행렬이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국제공항의 타르막으로 몰려 들어갔다. CTC/■■(CIA 대테러센터 ■■단)의 책임자 행크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하미드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에서 우리를 싣고 날아온 아무 표식도 없는 항공기는 돌아갔다.
그곳에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의 사령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을 태우고 온 미 공군의 C-17 수송기가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 러시아제 제트 전투기 너머로 나는 낡은 메르세데스를 필두로 한 다른 차량 행렬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후계자이자 북부동맹의 새 군사지도자인 모하마드 파힘 한 장군 일행이 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크, 나, 하미드가 C-17을 향해 다가가자 아주 덩치 큰 사내가 나왔다. 우리는 그가 부르고 나서야 간신히 프랭크스 장군의 얼굴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오늘 비즈니스를 챙길 준비가 됐소, 행크?”
“예, 우린 준비가 됐습니다. 장군님.”
행크가 대답했다. 그는 그리고 나(게리)를 조브레이커 팀의 새 지휘관으로, 그리고 하미드를 오늘 회담의 통역으로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소, 게리, 하미드도 반갑소.”
프랭크스 장군은 이렇게 말하며 우리 손을 흔들었다. 그 때 네 대의 차량으로 이루어진 행렬이 다가오더니 검은 사륜구동차량에서 땅딸막하고 옹골찬 대머리인 파힘 장군과 그의 정보부장인 엔지니어 아레프가 내렸다.
나는 하미드의 어께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프랭크스 장군의 옆에 서서 시작하게.”
파힘 장군과 엔지니어 아레프는 둘 다 내게 파르시 어로 인사를 건냈고, 사방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고, 군인들이 1/3쯤 들어간 자리에 위치한 크고 널따란 회의장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았다. 프랭크스 장군, 행크와 내가 한 쪽에 앉고 파힘 장군, 엔지니어 아레프와 하미드가 우리를 마주보고 앉았다. 약 스물다섯 명 정도의 프랭크스 장군의 참모들이 우리 뒤에 배석했다.
프랭크스 장군의 C-17 수송기는 최고 수준의 통신 및 유도장비, 그리고 군 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파힘 장군과 엔지니어 아레프는 외경의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내가 공군의 신출내기로 미합중국 대통령의 공중 지휘소로 사용되던 보잉 747기를 둘러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프랭크스 장군의 항공기는 그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보다 정교한 물건일 것으로, 명백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내가 바로 미합중국 전투부대의 최고지휘관인 미 중부군(CENTCOM) 사령관이다. 나는 크고, 거칠고, 나한테 걸린 놈은 누구나 흠씬 패줄 거다.”
프랭크스 장군은 텍사스 사투리로 자신은 단순한 시골 사나이이자 군인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프랭크스 대장은 동성훈장 셋, 상이기장 셋, 국방수훈메달 셋, 공로훈장 넷을 받은 탁월한 4성 장군으로, 베트남과 데저트 스톰 작전에서 부대를 지휘했었다.

프랭크스는 미국이 알 카이다와 그들을 받아들인 탈리반에 대해 빠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두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프간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탈리반을 신속히 격파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탈리반을 산산조각 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파힘 장군은 약 1만5천 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들 다수는 장비가 열악했다. 최신정보보고에 따르면 탈리반은 수적으로 적어도 세 배 이상이었다. 적은 또한 수천의 중무장한 알 카이다 동맹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땅귀신(gnome) 같은 얼굴을 한 파힘 장군은 탈리반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북부동맹은 그들이 미워하는 탈리반 정권의 생존을 대가로 탈리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에게 넘겨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또한 그의 부하들이 식량, 연료, 무기, 제복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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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께: CIA는 북부동맹으로 제공될 지원내역에 대한 언급을 검열 삭제했다.]

그 점을 충분히 다룬 후, 프랭크스 장군은 전략에 대한 논의로 옮겨갔다. 그는 지리적인 조건과 임박한 겨울을 고려할 때, 아프간 북부의 주요도시 마자르-이 샤리프를 최대한 신속하게 탈취하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자르-이 샤리프를 점령하게 되면, 미국과 북부동맹군 사이에 지상보급로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며 뒤이어 탈로칸으로 진격할 발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북부지역을 제압한 이후 … 우리는 쇼말리 평원의 탈리반과 알 카이다를 격퇴하게 될 것이오.”라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얽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프랭크스 대장은 파힘 장군에게 크리스마스 전에 카불 외곽의 바그람 공군 기지에서 다시 만나 향후 전략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행크와 프랭크스 대장 그리고 프랭크스의 참모들이 수립한 이 전략에 대해 상세하게 브리핑을 받은 상태였다. 미 공군력의 지원 하에, 그 계획은 이 나라의 중/북부에 자리 잡은 도스툼 장군이 자신의 우즈벡족 부대를 이끌고 마자르-이 샤리프로 돌격하게 되어 있었다. 일단 그 도시를 점령하고 나면, 도스툼의 부대는 베릴라 한이 지휘하는 북부동맹의 타지크족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동쪽으로 진격해 총력을 다해 탈로칸을 공격할 것이었다. 파힘 장군의 부대는 그 후에 쇼말리 평원 너머로 진격해 퇴각하는 탈리반을 차단하고 그들을 커다란 격멸지역 안에 가두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하면 된다. 일단 포위되면 북부지역의 탈리반 군대는 항복하거나 압도적인 미국의 폭격에 학살당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파힘은 우선 프랭크스 대장에게 미군의 지원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는 왜 수도 카불을 제일 먼저 탈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은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고 권력 중심지인 카불을 다투는 경쟁 파벌들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일단 카불이 북부동맹의 손에 떨어지면, 이 나라의 나머지 지역은 자연히 제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파힘 장군이 이 나라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명백해 보였다. 반대로 우리는 탈리반을 패배시키고 알 카이다를 섬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프랭크스 장군은 일개 군벌 개인의 정치적 목표에 끌려 다니지 않았다. 그는 간결하게 선언했다.
“이게 우리가 일을 처리하게 될 방식이오. 마자르-이 샤리프 1번, 탈로칸 2번, 쇼말리 평원 3번.
그는 이것이 왜 군사적으로 타당한지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의 어조는 정중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미드가 통역을 하자, 엔지니어 아레프는 파힘 장군의 귀에 속삭였다.
‘만약 파힘 장군이 올바른 판단력이 있다면 … 그는 그냥 프랭크스 장군에게 감사하고 넘어가는 게 옳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쇼말리 평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주장했다.
프랭크스 장군은 그의 말을 끊었다. “장군, 우리는 마자르-이 샤리프로 갈 거요.”
파힘은 드디어 말뜻을 알아들었다. 프랭크스 장군은 이어 파힘 장군에게 그는 즉각 전 전선에 걸쳐 탈리반에 대한 지상전 공세를 개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파힘 장군의 대응은 우리의 숨을 막히게 했다. 그는 전투를 시작하려면 추가로 한 달에 ■■■■■■
■■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앞서 한 달에 ■■■■■■■■가 필요하다고 했던 것은 자기 부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었다. 공세작전을 벌이려면 거기에 덧붙여 한 달에 ■■■■■■■
■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페르시아 인이나 (페르시아 방언을 쓰는) 그들의 아프가니스탄 사촌들은 모두 양탄자 장수 근성이 뼛속 깊숙이 배어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의 문화에 따르면 이익의 탐색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끝없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텍사스인이자 미 육군대장인 프랭크스 장군은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사나이임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런 것은 동맹을 맺은 전사들끼리 벌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프랭크스 장군은 “개떡같은(bullshit)!”이란 말을 내뱉고는 벌떡 일어섰다. 우리가 옆에서 볼 때 그의 키가 3미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는 걸어 나가버렸다.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행크도 딱딱하게 굳은 채 앉아 있었고, 표정은 돌덩이처럼 차가왔다. 나는 테이블 건너편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Chaneh nazanid,” 파르시 어로 직역하면 “뺨을 때리지 말라”쯤 되는 이 말은 “이 따위로 협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미드는 북부동맹의 최고군사지도자를 가리키는 내 표현의 적대적 어감에 충격을 받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엔지니어 아레프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7~8분의 시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행크는 테이블 건너편을 노려보고는 준엄하게 말했다. “이런 식은 우리가 사업하는 방식이 아니외다.” 파힘 장군과 엔지니어 아레프는 눈에 띄게 초조해 보였다. 나는 프랭크스 장군이 비행기 밖에 가서 담배를 태웠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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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회담은 병참지원과 적 부대의 위치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제5특수단의 존 멀홀랜드 대령이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될 특수부대 팀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합류했다. 결론을 맺고 프랭크스 장군은 파힘 장군에게 자기 C-17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이 함께 나가자 행크는 내게 CENTCOM J-2(중부사령부 정보참모)인 키몬스 준장과 SOCOM(특수전사령부) 소속이자 유일한 예비역인 알버트 칼란드 제독을 소개시켜 주었다. 미 해군의 SEAL 선임장교였던 칼란드 제독은 행크 및 우리 팀과 함께 판지셰르 계곡으로 가서 전장을 살필 예정이라고 말해 주었다.

행크와 나는 비행기 밖으로 나가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우리의 고어텍스 재킷의 지퍼를 끌어올렸다. 엔지니어 아레프가 다가왔을 때, 나는 참 잘못 끌어간 협상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그는 파르시 어로 번역 도중에 하미드가 좀 실수를 해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나는 그 언어를 여러 해 동안 구사해 왔으며 번역을 완벽히 확인하고 있었다. 번역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었다. 나는 엔지니어 아레프의 언급을 행크에게 번역해 주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행크는 대꾸했다. “그래, 스스로 개똥같은(crap) 소리를 해놓고 통역 탓을 한단 말이지?” 이 신중한 북부동맹의 정보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를 가는 것 밖에 없었다.

하미드는 프랭크스 장군의 마지막 말을 파힘 장군에게 번역했다.
“나는 12월 중순에 바그람에서 장군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오.”
그리고 행크, 하미드, 그리고 나는 SUV의 뒷좌석에 올라 떠났다. 하미드는 기진맥진한 듯이 보였다. 갓 배치 받은 초짜 공작관이면서 그는 역사적인 군사회담에서 중대한 역할을 치러낸 것이었다.
정문을 통과하자 그가 물었다. “제가 괜찮게 일을 한 겁니까?”
행크가 대답했다. “자네는 아주 일을 잘 했지. 하지만 그들은 파힘의 신통찮은 협상에 대해 자네를 비난했어.”
“저런, 안돼!” 그는 난감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내가 덧붙였다. “걱정 말게.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지면 전부 자네 잘못이 되는 거야.”
우리는 모두 배꼽이 빠지게 웃어 댔지만, 이 회담에 대한 심각한 회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파힘 장군은 다루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당장의 전투를 넘어 전후의 권력 향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나는 그를 비난할 수 없었다. 아프간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봐서 미국이 머무를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별로 없었다.

Berntsen, Gary, Jawbreaker: The Attack on Bin Laden and al-Qaeda. A Personal Account by The CIA's Key Field Commander, Crown, 2005, pp.88-94)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 자체로는 놀랍기까지 할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 이제부터 이 회담을 둘러싼 세 가지 층위 즉,
  1. 백악관-미국 내각
  2. 중부사령부-CIA 대테러센터
  3. 현지에 파견된 특수부대와 CIA 공작팀
의 견해를 병렬적으로 소개한 다음, 이들을 합쳐 볼 때 도출되는 당혹스러운 결론을 같이 따져나가 보기로 하겠다.

프랭크스가 관철시킨 미군 작전계획(붉은 색)와 파힘 한이 주장한 북부동맹 작전(푸른 색)




2. 중간층: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

이제 위 회담의 당사자였던 프랭크스 대장의 회고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위 글의 빈 자리를 메워줄 정보가 솔솔치 않게 실려 있어 둘을 대조해 보면 아주 재미있다.

(아프간 북부동맹 총사령관) 모하마드 파힘 한(Mohammed Fahim Khan)은 C-17 수송기의 echoing belly에 놓여진 접이식 테이블을 두고 나와 마주앉아 있었다. 파힘은 둥근 캐시미어 모자(pakol)를 쓰고, 수염도 단정하게 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피아 행동대원처럼 보였다.


때는 10월의 마지막 화요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의 어느 추운 밤이었다. 거대한 항공기가 민간 공항의 맨 끝에 있는 램프에 홀로 세워져 있었다. 파힘과 그의 “재무장관”이라고 소개된 한 사내가 낡은 메르세데스 세단을 타고 도착했다. 내가 「행크」라고만 부를 CIA 작전본부의 고참요원 하나가 이번 여정에 나와 동행해 내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내 왼쪽에는 나를 왜소하게 보이게 만들 정도로 덩치가 좋은 군인인 존 멀홀랜드 대령이 낡은 DCU(사막위장복) 소매를 테이블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는 지칠 줄 몰라보였다.
우리는 차 대신 진한 공군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이게 차를 마시며 하는 (아프간 식) 협상이었다.
북부동맹의 지도자로서 -그는 마수드가 암살된 후 지도자로 간주되고 있었다- 파힘은 협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제일 크고 잘 장비된 반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 특수부대와 끝없이 퍼부어지는 것 같은 정밀유도무기의 효과적인 조합을 눈으로 확인한 바 있었다.

그는 CIA의 통역을 통해 말을 꺼냈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고 당신도 나를 도울 수 있다면 … 우리는 모두 승리할 수 있소. 우리 애들은 여러 해 동안 테러리즘과 싸워 왔고 탈리반이 권력을 잡은 이후 특히 격렬했소. 우리 양 측의 힘을 합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요.”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여준 게 없지 않소.”
나는 영국식 억양을 구사하는 통역이 이 어감을 잘 살려주길 기대하며 대꾸했다.
그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파힘도 자기네 식 격언으로 대꾸해 왔다.
“우리는 모두를 존중해야 하며 모두 믿어야만 하오.”
“당신 목숨을 걸고서 나를 믿겠소?” 내가 물었다.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는 전사들이오. 우리 목숨은 모두 신의 손에 달린 거요.”

그는 말은 잘했다. 하지만 힘든 일이 닥칠 때 과연 열심히 싸워줄 것인가?
그가 자기 “재무장관”을 데려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존 멀홀랜드의 전술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당신의 작전계획은 어떤 것이오. 장군?”

그는 금색 샤프를 꺼내어 지도 위에 일련의 깔끔한 기호들을 그려 나갔다. 우선 그는 판지셰리 계곡 남부에서 카불 북부의 쇼말리 평원으로 진격하는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는 탈리반과 그들의 알 카이다 동맹군이 집결해 있는 북부의 도시 몇몇 -탈로칸, 쿤두즈, 마자르-이 샤리프- 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것들이 우리의 당면한 목표요. 당신네 공군은 우리 부대들이 이들 도시를 점령할 수 있도록 폭격을 집중해 주어야만 하오. 그럼 나는 남쪽으로 이동해 바그람으로 진격할 거요.”
그는 지도에 제트기 기호로 표시된 카불 북부에 위치한 옛 소련군의 공군기지를 가리켰다.

그의 작전계획은 좋은 전술 감각을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파힘이 실질적으로 모든 북부동맹 지휘관들의 충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북부지역에 집결한 적군을 분쇄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연결되는 핵심 도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통로가 뚫리면 유럽까지 연결되는 중앙아시아의 고속도로 시스템을 통해 반군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인도적 지원물자가 포위된 아프간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갈 수 있고 그 날이 오면 아프간 사람들이 우리 작전의 성공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그 물자들이 제공된다면 작전 4단계(재건)는 비할 데 없이 가속화될 터였다.

파힘은 자기 전술 계획의 세부를 이야기했다. 그는 탈로칸이 초기의 주요 목표인데, 여기를 점령해야 그의 부하들이 비행장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다음은 카불이오?” 내가 물었다.
파힘은 그의 움푹 들어간 눈으로 내 표정을 살폈다.
“당신이 허가할 때까지 우리는 카불에 들어가지 않을 거요.”
그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이었다. 그가 진심일까? 그것은 핵심적인 문제였다.

파키스탄에서, 나는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파슈툰 족 반군 지도자들을 만났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하미드 카르자이로 그는 세련되고 다국어를 구사하며, 부족 지도자, 외교관, 전사들과 대등하게 함께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카르자이는 탈리반이 압제를 시작하자 무슬림 극단주의 정권과 곧 손을 끊었다. 망명 와있는 사실상의 우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라 할 수 있는 이슬라마바드의 CIA 지국은 카르자이를 분열된 파슈툰 족을 단합시킬 수 있는 미래의 국가 지도자로서 밀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탈리반과 싸우기 위해 파슈툰 반군을 조직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군대를 건설할 올바른 파슈툰 지도자라고 믿었다. 만약 적의 저항이 갑자기 무너지고 타지크, 우즈벡, 하자라 족으로 구성된 북부동맹군이 카불의 권력진공상태로 밀고 들어가면 아프가니스탄은 다수파 파슈툰 족에 대항해 북부의 종족들이 난투를 벌이는 또 다른 내전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파힘의 대답으로 보건대, 그가 이 문제를 이해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하미드 카르자이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제는 양탄자 가격을 논의할 차례였다.
“우리가 더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 있소?”라고 나는 물었다.
나는 존 멀홀랜드가 파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흘낏 보았다. 우리 특수부대 팀들은 이미 북동부에 위치한 파힘의 더 큰 부대들보다 마자르 이 샤리프 남쪽에 있는 도스툼과 더 좋은 진전을 낳고 있었다.

파힘이 예상외의 인정을 했다.
“도스툼 장군이 우리보다 무기와 탄약을 더 필요로 하고 있소. 당신이 그를 지원한다면 그는 마자르-이 샤리프를 신속히 탈취할 수 있을 거요.”
“하지만 당신이 필요한 건 뭐요?”
내가 밀어붙였다.

파힘은 그의 재무장관과 상의했다.
“어떤 종류의 추가적 병참 … 과 재정 지원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까?”
그는 내 눈을 피해 행크를 쳐다보았다.

행크는 탄약, 통신장비, 의약품 등을 나열한 컴퓨터 출력물을 꺼내놓았다.
“나는 C-130이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큰 비행장이 필요하오.”
파힘은 예의바르게 미소지었다. “당신네 C-130은 아주 유명하다오. 대포가 달린 그놈들은 탈리반과 아랍 놈들의 혼쭐을 빼놓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 보급품들을 받게 되면…” 행크가 물었다.
“내가 탈로칸과 거기 딸린 비행장을 점령하면,”
그는 자기 자금책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말을 계속하기 전에 속삭임을 나누었다.
“나는 한 달에 미화 3백만 달러가 필요하오.”

“당신네가 공세를 시작해 마자르-이 샤리프를 점령하는데 3백만 달러가 필요하다구?”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행크와 나는 이 건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한 바 있었다. 그가 좋은 형사고 내가 나쁜 형사였다. 우리는 기다렸다.

“아, 아니오. 전체 작전 말이오.”
파힘이 덧붙였다.
“나는 한 달에 7백만 달러가 필요합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통역을 노려보았다.
이런 개떡 같은 소릴 봤나(This is bullshit). 야, 그렇게 통역해!
나는 수송기의 계단을 걸어 내려와 밖에서 소변을 보고는 타르막에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이는 우리가 리허설한 바 있는 연기였다.
그동안 화물칸의 밝은 조명 아래서 행크는 파힘에게 “프랭크스 대장이 매우 화가 났소.”라고 한참 훈계를 했다

나는 비행기로 돌아가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행크가 고개를 끄덕이고 파힘에게 통고했다.
합의된 거요. 북부지역 전체 작전에 5백만 달러로. 라마단 이전에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하고 카불 외곽까지 진격한 후, 우리가 진입해도 된다고 통고할 때까지 거기서 대기하는 거요.”
“그렇게 하겠소.” 파힘이 대답했다.
파힘과 그의 재무장관이 비행기를 떠나자, 나는 수백만 달러가 든 더플백들이 그의 메르세데스에 실리는 것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차 서스펜션이 튼튼하기를 바랬다. 수백 뭉치의 돈다발은 만만치 않은 짐일 테니까.

나는 우리가 말을 산건지 양탄자를 산건지 몰랐다. 하지만 나는 모하마드 파힘 한 장군과 그의 북부동맹 부대들이 우리와 함께 싸우게 될 거라는 점은 확신했다. 우리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이 차는 손을 좀 봐줘야 하지, 토미야. 하지만 이 녀석도 한두 달 정도는 잘 굴러간다고.”

Franks, Tommy., McConnell, Malcolm., American Soldier, New York: Reagan Books, 2004, pp.309-313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알 카이다의 암살작전으로 보스를 잃고 임시대행체제로 운영되는 북부동맹과 미국과의 권력관계에 대한 묘사이다. 그 외에도 전쟁 진행 방향에 대한 합의 내역이라든가, 탈레반 이후 시대의 지도자로 현 아프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를 밀었던 세력이 CIA 이슬라마바드(파키스탄) 지국이라는 등의 증언이 흥미롭다. (반면 북부동맹에 파견된 CIA분견대 JAWBREAKER는 이들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는 물가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다년간의 전투 경험을 가진 무자헤딘 1만5천 명을 거느린 아프간 최대계파 보스를 동원해 탈리반을 치게 만들고 그 정권을 붕괴시켰을 때, 작전대가로 치른 금액이 현찰박치기 5백만 달러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막대한 물자 지원 및 이와는 동맹체결 및 신뢰구축, 적장매수 등 다양한 명목으로 별도로 지급된 많은 부수적 비용은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중대성과 규모는 아프간 전쟁의 백미인 만큼, 단일 건수로 이보다 큰 금액이 오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여름 벌어졌던 한국 단기선교단 납치 사건 당시 인질의 몸값으로 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이 1백만에서 4천만 달러까지 다양한데,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지든 간에, 이 5백만 달러와 비교해서 감을 잡으면 좋을 거라고 본다.



3. 하위층: 북부동맹 본거지 판지셰르 계곡, CIA 분견대 JAWBREAKER팀

한편 앞서 북부동맹에 파견된 CIA분견대는 이와는 다른 입장이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달랐을까?

나는 적어도 그날(10월 31일) 오후가 될 때까지는 (프랭크스 대장과 파힘 장군의) 회담 결과에 대해서 두샨베로부터 전문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침 열시쯤 (부관) 릭과 나는 두샨베로부터 전화를 받고 행크와 접촉을 취할 수 있었다.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았으며 회담이 잘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의 가장 불만족스러운 점은 파힘 장군의 실적이었다. 그 회담은 프랭크스 대장의 개인 집무실로 개조된 커다란 미 공군 C-17 수송기 안에서 열렸다.
행크는 자기가 보기에 파힘은 회담 배치에 압도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랭크스 대장과 그의 고위 참모들(전부 장성급)과 칼란드 제독이 테이블 한 쪽을 채웠고, 반대편에는 파힘, 아레프, 그리고 젊은 아프간 통역이 앉았다.
프랭크스 대장은 파힘을 카불에 대한 그의 공격계획에 맞추도록 밀어붙였고, 공격이 시작될 시점에 대해 그에게 압박을 가했다. 이에 대해 파힘은 카불 전선에 대한 그의 현황을 설명하고 그가 직면한 탈리반 및 아랍 방어선의 강도를 지적했다. 그는 또한 특수부대의 배치가 유지되고 탈리반에 대한 강력한 폭격을 가해 줄 것을 약속받았었음을 지적했다. 그런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폭격은 계속 제한적인 강도와 효과로 제한되었다.
프랭크스 대장은 카불로 돌파해 나가기 위한 특정한 계획과 특정한 일정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동시에 탈로칸을 향한 타크하르 전선도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파힘은 자신이 자기 군대가 자력으로 탈리반과 아랍의 방어선을 돌파할 능력이 없음을 계속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스가 이렇게 나오는데 대해 꽤나 황당해한 것처럼 보였다. 만약 그가 그런 힘이 있었으면 벌써 공격을 시작했을 터였다. 그는 탈리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약속된 폭격이 필요했다. 만약 프랭크스가 그런 지원을 약속할 수 없다면 파힘은 자력으로라도 공격을 할 것이었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의 산꼭대기 방어진지에서 한 해 겨울을 버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행크는 프랭크스 대장은 그리고는 폭격작전을 카불 전선에 집중시키도록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파힘 장군이 자기 작전을 CIA와 판지셰르 계곡에 와 있는 H대령과 조율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회담이었다. 프랭크스 대장은 파힘 장군에게 그다지 큰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와 협력할 수는 있겠다고 느꼈다.
(후방 도시가 아니라 전선의) 탈리반에게로 폭격전략의 초점을 옮기겠다는 합의는 따라서 환영할만한 소식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폭격작전이 시작된 24일 전, 10월 7일부터 기다려왔던 것이었다. 만약 폭격이 전선으로 전환되고 우리가 3-4일 동안만 탈리반을 맹폭해 주면, 나는 북부동맹이 탈리반의 방어진지를 분쇄하고 카불 외곽까지 이틀이면 밀어붙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Schroen, Gary, First In: An Insider's Account of How the CIA Spearheaded the War on Terror in Afghanistan, Presidio Press, 2005, pp.304-305

여기서 전하는 이야기는 상당히 다르다. 북부동맹은 자력으로 탈리반을 공격할 능력은 없지만 미 공군이 제대로 폭격을 가해 주면 길어야 일주일이면 카불을 함락시킬 수 있으며, 그 준비(정밀폭격 유도를 위한 특수부대요원 배치)가 완비된 채로 한 달 가깝게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오래 기다린 끝에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파힘의 북부동맹 주력군은 순식간에 카불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한 가지 이유는 프랭크스의 회고록에서도 드러나지만, 미군 고위층 및 워싱턴 지도부 내에서 북부의 소수민족 연합군이 수도 카불에 입성해 패권을 장악해 버리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카불을 공격할 북부동맹 주력군이 가장 마지막에야 공군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순서를 짰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들은 북부동맹 멤버들과 오랫 동안 교류 협력해 온 터라, 북부동맹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9.11 테러 이후 현지에 제일 먼저 투입되어 보스를 잃고 풀죽은 북부동맹에게 장미빛 약속을 잔뜩 늘어놓아 기운을 북돋우며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본국에서 약속된 지원이 오지 않자 분통을 터트렸다.



4. 고위층: 워싱턴 백악관, 부시의 전쟁 내각

그럼 이 모든 것을 백악관에서 주도면밀히 콘트롤했는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건 또 전혀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10월 23일 화요일, 백악관 상황실
폭격이 시작된 후 14일째 되는 날이었다. 부시가 NSC 위원들을 소집했다.
특수부대 A팀이 탈레반 전선 반경 500미터 안까지 접근했다고 행크가 말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교활한 파힘은 아프가니스탄에 있지도 않았다. 북쪽의 타지키스탄을 방문하면서 그는 여전히 특수부대 팀이 탈레반 전선에 대한 맹폭을 유도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탈레반을 충분히 공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기들이 살아있습니다.” 행크는 남부 억양으로 말했다. “그래서 북부동맹이 사기가 저하되고 있습니다. 파힘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지? 도대체 파힘은 다른 나라에 가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라이스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끼어들지는 않았다.
수천에 달하는 파힘 군대에게 전달될 무기와 군수품이 운송되는 중이라고 행크는 말했다. CIA는 여전히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쏟아 붓고 있었다. 반면, 3대1로 수적 열세에 있던 도스툼은 인구 20만의 북부 도시인 마자르에샤리프를 향해 기병대를 이끌고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에 기병대라니? 부시와 위원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다고 평가합니까?” 라이스가 물었다.
“글쎄요.” 행크가 극비로 분류된 “아프가니스탄 영토통제 안내”라는 제목의 최신 컬러 암호지도를 보며 답했다. “전체가 노란색인데 북쪽까지 녹색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전체가 노란색이라는 것은 영토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폭격과 변절자들을 통해 상대 전력을 50퍼센트 약화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이스가 말했다. 군사 용어로 50퍼센트 전력약화란 한 부대가 무력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황을 말한다. 지도의 노란색은 전력 무력화에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맹군이 영토를 지배하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게 되느냐 둘 중의 하나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라이스가 말했다.
……
아프가니스탄 공습 개시 뒤 몇 주는 어둡고 혼란스런 시기였다고 파월은 생각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아프가니스탄 상황의 실체가 무엇인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전직 군 수뇌로서 자신의 길을 지키며 외교문제에 주력하고, 국방문제에 대한 간섭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파월은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폭격 이외의 다른 목표가 대체 무엇인지 의아스러웠다. 그는 육군 출신 특유의 공군력에 대한 불신이 강했으며, 하나의 목표물에 전 병력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신봉하고 있었다.
“한 곳을 집중공략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가 자기의 길을 벗어나 질문을 던졌다. “마자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곳을 차지하고 난 다음 다른 작전을 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마자르는 아닙니다.” 행크가 답변했다. “오히려 샤말리 평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수도인 카불 북쪽에 위치한 이곳에 북부동맹의 파힘은 가장 크고 조직화된 부대를 집중배치하고 있었다.
“둘 다 하는 건 어떻겠소?” 마이어스 장군이 끼어들었다.
“UBL(우사마 빈 라덴)과 그 지도부를 잡아야 합니다.” 부시가 말했다.
체니가 핵심 문제를 제기했다. “북부동맹군을 기다려 줘야 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직접 개입해야 합니까? 둘은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체니는 럼스펠드가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5만에서 5만에서 5만 5천의 미군 병력을 지상에 투입하는 계획을 비밀리에 성안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면 그러한 방법이라도 써야 했다. 미군이 지상전을 공개적으로 주도하는 것은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전쟁의 위험부담이 높았기 때문에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고려해 보아야 했다.
같은 날 장관회의에서는 이동하겠다는 약속만 하고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파힘에 대한 실망감이 피력됐다. 행크의 보고에 따르면 파힘의 반대 세력인 탈레반 군은 오히려 병력이 50퍼센트 정도 증강됐다고 했다. 위성 및 기타 정보만 봐도 6천에서 1만에 불과하던 전선의 탈레반 병력이 불과 몇 주만에 1만에서 1만 6천까지 늘어났다.
체니, 파월 그리고 그 밖의 참석자 몇 명은 1991년 결프 전쟁 당시 지상전에 앞서 공습을 통해 병력을 50퍼센트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병력을 무력화시키기는커녕 탈레반 병력은 50퍼센트나 증강됐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
“무슨 일인가?” 라이스가 조약실로 들어가자 부시가 물었다. 부시는 막 운동을 끝낸 터라 운동복 차림이었다. 어찌 보면 이런 대화를 하기에 딱 좋은 타이밍일 수도 있었다.
“남쪽은 상황이 어렵고 북쪽에선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공격할 수 있는 목표물은 다 공격했지만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고요.”
부시가 의자에 앉았다.
“안보장관들 사이의 분위기도 그리 좋지 않고 모두들 염려하고 있습니다.”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고 그녀는 전했다.
부시는 몸을 움찔했다. 불안감이라니? 그는 이런 말을 아주 싫어했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때는 더더욱 그랬다. 휴즈와 로브로부터 언론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지만 그 이상은 별로 들은 바가 없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라이스가 말했다.
“물론 걱정하고 있지!”
“다른 전략을 구상해 보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은 꿈에라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미군 병력을 추가 투입할 수도 있겠죠. 미국이 지상전을 주도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은 상당수의 지상군 - 5,6개 사단의 육군과 해병대 사단의 투입을 의미했다. 1개 사단 병력은 보통 1만 5천에서 2만 명에 달한다.
부시는 35,40년 전 바로 이 방, 아니면 옆방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후임 존슨 대통령이 유사한 문제데 부닥쳐 고민했을 것 같은 정경이 떠올랐다. 베트남은 좋은 선례였다.
“아직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잖나?”
“그렇죠.”
“잘 돼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라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린 훌륭한 계획을 갖고 있어. 확신하지?” 부시가 물었다.
“글쎄요.” 성과가 미미하다는 것은 라이스만큼이나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 대화가 오락가락했다.

Woodward, Bob, Bush at War, Simon & Schuster, 2002
(김창영 역, 『부시는 전쟁중』, 서울, 따뜻한 손, 2003, pp.346-353)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라이스 국가안전보좌관, 파월 국무장관, 마이어스 합참의장 등 장관급의 국가지도부는 모두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누구 하나 맞는 방향을 지적한 사람이 없다. 그러기는 커녕 상황파악이 되는 사람도 없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에 이르면 상황을 전혀 주도하지 못하는 데 대해 각료회의에서 히스테리를 부리다가 소동을 일으키는 상황을 벌인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들 모두는 왜 북부동맹의 실력자 파힘 장군이 뺀질거리면서 공격을 안하고 있을까를 일면 황당하게, 일면 열불나게 생각하면서 전쟁이 계속 꼬이고 있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번 겨울이 지날 때까지 도시 하나 점령 못하면 어떻게 하나, 미군을 직접 밀어넣어서 전쟁 구도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부시의 전쟁 내각이 현장 상황에 대해 거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은 11월 초까지 전혀 개선이 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갑자기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갑자기 왜 상황이 좋아지는 건지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대로 끝나 버린다. 한 번 날자별로 따라가 보자.

11월 1일 오후 5시
체니 부통령이 안보대책회의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겨울 전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럼스펠드는 특수부대 팀들이 목표물을 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하며, 더 많은 팀을 투입시키는 것의 문제점을 계속 그들에게 상기시켰다. 특수부대 팀들에게 화재도 발생했다.
파월은 겨울동안 북부동맹을 훈련시켜 재래식 전쟁을 치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그들 중 몇 명을 전방 항공관제병으로 훈련시킨다면 F-15 전투기를 스스로 불러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어요.” 체니가 이 말을 반복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다음 공격이 있은 뒤에는 인내심에 한계가 올 것입니다.” 그는 추가 테러가 발생할 경우, 그리고 미 행정부가 가능한 모든 조치를 하지 못할 경우, 미국에 정치적 폭발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이스는 절박함에 대해 프랭크스 장군과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월은 마자르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이스는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마자르를 점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체니는 마자르에 주력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해치우지 못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해치울 거요. 그는 이런 사람들은 더 많이 없애야 한다고 믿었다. 필요하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범들을 색출하여 사살하는 ”헌터킬러“ 팀들을 파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1월 2일
체니 부통령은 프랭크스 장군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더 많은 자원, 다른 스케줄, 더 많은병력과 더 속도가 빠른 작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프랭크스에게 현장에서 더 큰 위험 부담을 지는 문제에 대해 지침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대리인을 쓸 것인지, 좀 더 직접적인 미국의 역할이 필요한지가 이슈입니다.” 프랭크스가 답했다.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부통령께 계획을 한 가지 제출하겠습니다.”
프랭크스 장군과 합동참모본부는 미 지상군을 대거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5만명 내지 5만5천 명 선이 논의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군 역사로 볼 때 아시아에서는 이런 정도의 지상전은 피해야 했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부시는 이 정도 규모의 지상군 파병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뒤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5만5천 명의 병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파월은 반정부군의 능력은 어느 정도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그들을 훈련시켜야 합니까?” 군에 몸담고 있던 35년 동안 그는 훈련을 잘 받아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프랭크스 장군도 다른 누구도 파월의 질문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프랭크스는 반정부 세력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부동맹을 훈련시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유리한 상황이면서도 실제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파힘 때문에 낙담하고 있었다. … 반정부 세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크스는 현재의 전략을 계속 진행시킬 것이며 동시에 체니가 설명한 일을 할 필요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부시는 체니가 이런 문제점들을 제기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체니가 하는 질문들은 들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프랭크스가 그 질문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랬다. 부시가 물었다. “선택 방안을 언제 줄 수 있소? 부통령이 이야기 한 것과 함께 말이오.”
일주일 뒤 소수에게요.” 프랭크스가 대답했다.

11월 5일
“북부에서 적들의 힘은 어느 정도입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해온 정보원들의 보고는 불분명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테닛은 CIA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정보는 그야말로 어림짐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족들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맡기고 있는 것이오?” 부시가 말을 이었다. 북동부의 파힘 장군에게는 엄청난 강점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도스툼 장군은 움직이려고 애쓰고 있었으나 수적으로 열세였다.

11월 6일
다음 날 정오, 국방부 기자회견석상.
럼스펠드는 기자들에게 탈레반과 알 카에다 문제가 여러 달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추측일 뿐입니다. 한 달, 두 달 또는 석 달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년 단위로 말하지 않고 달로 말한 것은 23달 정도로 길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기자들은 웃었다.
한 달이나 두 달에서 23개월까지 시간이 넉넉합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즉시 내 능력껏 대답했으며 그리고, 음, 장담하건대 몇 년이 아니라 몇 개월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죠.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나는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더 많은 웃음이 뒤따랐다.

11월 9일
점심을 마친지 한참 뒤, 정보 전문가이며 라이스의 실무부관인 토니 크로포드 육군 중령이 그녀의 웨스트 윙 사무실로 왔다.
“(앞서 라이스가 한 달 안에 점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던)마자르가 무너졌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라이스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마자르 중심부까지 들어갔단 말이야? 마자르가 무너졌다는 게 무슨 뜻이야?”
크로포드는 무슨 뜻인지 가서 정확히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돌아와서 도스툼 장군의 부대가 마자르 중심부에 있다고 보고했다.

11월 12일 NSC 회의 (모두를 놀라게 한 CIA작전책임자 행크의 브리핑)
행크는 지도를 가지고 지상에서의 움직임을 설명했다.
“북쪽에는 탈레반 군이 현재 콘두즈에 갖혀 있지만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러시아 인에게 충고했습니다. 그들은 타지키스탄 국경에 군대를 파견해 탈레반이 타지키스탄으로 들어가려고 할 경우 저지하고 나설 것입니다. 러시아 군 수만 명이 은밀히 지원하러 오고 있습니다.” 부시는 기뻤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다음날 미국을 방문할 것이었다.
“바미얀에서는 특수부대 합동 팀이 칼릴리와 함께 있습니다. 칼릴리는 바미얀을 점령했습니다. 그는 와르닥으로 이동 중이며 그 후 카불로 갈 것입니다. 이스마일 칸은 헤라트를 장악했습니다.” 행크의 계속된 보고였다.
정말 놀라운 것은 카불이었다. 1만 내지 1만2천 병력이 500명 단위로 수도를 향해 이동해가고 있었다. 저항은 약했다. “탈레반이 산등성이에서 남쪽으로 카불을 향해 폭격할 위험이 있습니다.” 행크가 말했다.
“미군이 공습하기에 좋은 목표물이군.” 부시는 그런 공격이 형세를 일변시킬 수도 있으며 지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사 4천 명을 가진 한 파슈툰 족 사령관이 북부동맹 지도자인 파힘에게 합세하여 카불로 향했다. “그는 남쪽으로 향할 것입니다. 그는 파슈툰 족 지휘관 몇 명을 뽑아서 카불의 남쪽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행크가 말했다. “이스마일 칸은 칸다하르의 순환도로를 탈 준비가 돼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남부에서 노력한 일이 있습니다. 카르자이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그는 일부 원로들과 함께 우루즈간 주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적은 수의 전사들을 거느린 개별적인 지휘관, 좀 더 큰 조직망, 심지어 칸다하르의 탈레반 거점 근처의 일부 부족들과도 협력했다고 행크가 설명했다.
북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 그들은 남부에서 접촉을 가속화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모든 분파들이 탈레반 이후의 정부에 참여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북부와 남부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북부동맹의 내무차관은 폭력 사태의 발발을 진압하기 위해 카불 내에 부하가 500명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심 전사들은 토라보라와 파키스탄 국경에 가까운 동부 지방에 있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나마 북부동맹과 충분한 숫자의 남부 지휘관들이 카불을 안정시키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전환이었다.
“마자르에서는 북부동맹군이 우정의 다리까지 장악했습니다.” 이번에는 럼스펠드가 보고했다. 그렇게 되면 육상에 재공급로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자 우즈베키스탄은 그 다리를 폐쇄하며 남쪽 지방이 안전해지기 전에는 다리를 개통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제 처음으로 우호적인 부족들이 다리의 남측까지 와있었다.
이로서 인도주의 원조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럼스펠드가 강조했다. 수백만 톤의 식량과 의료품, 의류, 그리고 다른 원조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북부동맹은 각기 28명으로 구성된 2개 팀이 차량 넉 대에 나누어 타고 칸다하르 남쪽 지방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체포, 저지하고 혼란을 막는 동시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들을 투입했다가 철수시킬 것입니다. 대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럼스펠드는 또 군 사령관은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과의 통과 지점들을 폐쇄하여 출입을 봉쇄해주기를 원한다는 말도 전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어서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시가 허락했다. 그는 상황변화에 대한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현황이 이렇게 변하다니 정말 놀랍소. 근사해요.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너무 좋아서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같은 날(11월 12일) 백악관 상황실
마이어스 장군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사흘 전에는 북부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의 15퍼센트도 차지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반 정도에 군을 배치해놓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반으로 나뉘어져 북쪽은 연합군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콘두즈, 헤라트와 바미얀이 함락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천 명의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카불을 포기하고 남쪽으로는 파키스탄 국경, 동으로는 토라보라 지역으로 퇴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라이스는 상황실에서 카불이 함락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인 첩보보고는 없었다. 부랴부랴 이 보도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부시가 답했다. “산발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아. 이건 단지 시작이야.”
그러나 곧 해방된 장면이 그려졌다. 여성들이 거리에 나와 지금까지 금지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스는 탈레반을 정복하면서 아프간 국민들의 억압된 열망을 과소평가해 왔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카불을 점령하고 북부동맹을 축출할 것인가, 라마단 기간 중 폭격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루기로 한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는 이 일로 의미가 완전히 퇴색했다. 동맹군과 다양한 파슈툰 부족들이 시내를 점령했다. 불안정한 균형상태가 유지됐으나 유혈사태는 없었다.

Woodward, 같은 책, pp.390-391, 396-397, 400, 401-402, 408- 409, 412-414, 424


요즘 들어 엄청나게 욕을 얻어먹고 있는 네오콘의 경우, 적어도 9.11 테러 이전부터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이라크를 공격해서 사담 후사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구상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라크 침공 자체도 그들이 원하고 집요하게 추구해서 만들어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2001년 아프간 침공 시 네오콘들 사이에서 통일된 의견이란 건 없었다. 그러기는 커녕 누구 하나 아프가니스탄을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야 할 지에 대해 분명한 구상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기는 커녕 지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다.

CIA의 빈 라덴 대책팀장을 오래 지냈던 마이클 슈이어의 촌평이 폐부를 찌른다.

밥 우드워드의 책 『Bush at War』 내용으로 보아 각료회의에서는 정보 요청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기관은 1930년대 주디 갈란드와 미키 루니가 출연했던 영화에서처럼 동네 아이들을 모아 대본을 나눠준 후 역할을 분담시켜 전문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것 같다.

자, 얘들아! 카불을 점령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지!

안타깝게도 즉흥적인 일처리는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다. 워싱턴 당국의 할리우드식 일처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완패했다. 랄프 피터스가 단정한 대로 “현지 상황을 모르고 개입하면 실패 가능성이 높고,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Scheuer, Michael., Imperial Hubris: Why the West is Losing the War on the Terror, Potomac Books, 2004
(황정일 역, 『제국의 오만』, 서울:랜덤하우스 중앙, 2004, pp.71-72)




5. 정리하며

아직 8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전쟁 자체도 현재진행형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역사적으로 평가하긴 아직 좀 이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단기간에 탈리반 정권을 무너트렸던 2001년 말의 아프간 침공은 미국이라는 거인의 머리, 허리, 다리가 서로 다른 부위가 뭘 하고 있는지 거의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움직이며 치러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거대한 관료조직은 분명히 머리가 하는 일을 손발이 모르고, 손발이 하는 일을 머리가 놓치게 될 때가 종종 있긴 하다. 그러나 이정도로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예를 들어 카불 함락후 CIA의 JAWBREAKER공작팀은 오사마 빈 라덴을 쫓아 토라보라 지역으로 간 후, 오사마를 포착했으니 레인저 1개 대대만 보내달라고 미친 듯이 보고를 올렸지만, 결국 병력을 받지 못해 놓치고야 만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대해선 CIA 공작팀장이었던 Gary Berntsen과 미군 중부사령부의 Franks 대장이나 그의 참모장의 이야기가 서로 엇갈린다. 한 쪽은 확실한 어조로 반복적으로 보고했다고 하고, 반대쪽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수준의 보고밖에 오지 않았다는 식이다. 그런데 오사마를 잡으러 시작한 전쟁 아니었던가???

이에 대해선 일부러 오사마를 잡지 않았다는 식의 음모론도 제기되는 듯 하지만, 내가 양 쪽의 주장을 모두 읽어보고 받은 인상으로는 오히려 왜 독일군이 덩케르크에서 궁지에 몰린 영국군을 포착 격멸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쟁에 가까운 것 같다.

이상하게 찾아온 승리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이미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빠르게 관심이 이동하고 있던 국가지도부(머리)와, 대규모 군조직과 협동하는 데 커뮤니케이션 내지 경험이 부족한 CIA(손발), 그리고 두 조직 사이에 끼어 관심도 없고 전혀 준비도 안된 CIA의 주도의 내키지 않는 전쟁에 불려나와 일하면서 국가지도부가 시키는 새 전쟁 준비를 요구받아 신경이 분산된 미군 중부사령부(허리) 사이의 심각한 부조화가 가져온 결과라는 쪽이 보다 설득력있어 보인다.

다만 만약 '누가 전체상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일것'이라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글 중간중간에 나오는 CIA 대테러센터의 간부인 행크라는 사람이다. 그는 CIA 본부에서 아프간 작전을 통제하는 자리에 있었고, 일선CIA공작팀의 관리에서, 대통령에 대한 직접 브리핑까지 모두 담당했기 때문에 만약 전체를 파악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알았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나는 그의 입장이 궁금해서 그가 본명으로 쓴 아프간 침공의 성공요인에 관한 도 구해 보았지만, 거기에도 침공의 전술적 성공요인만 나열돼 있을 뿐 그 자신의 전쟁에 대한 입장은 전혀 나와 있지 않아 답답함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어쨌든 행크는 어떤 의미로 보더라도 중간급 간부에 불과해서 전쟁의 전체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전쟁을 자기가 원하는 식으로 좌지우지하기는 매우 힘든 위치의 인물이었다. 수많은 장관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아무때나 그와 다른 생각을 내놓으면 그걸로 일이 잘못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Henry "Hank" Crumpton
by sonnet | 2009/02/24 11:24 | 정치 | 트랙백(3) | 핑백(2) | 덧글(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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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행인1 at 2009/02/24 11:36
이쯤되면 2001년 안에 카불 입성에 성공한게 더 미스테리군요. 과연 새 행정부는 머리랑 허리랑 손발이 잘 맞을지...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2
큰 조직은 원래 어느 정도 돌아가게 만드는 데도 적재적소에 유능한 관리자가 필요한 법이긴 하지요. 새 행정부도 지켜 보는 수 밖에요.
Commented by 萬古獨龍 at 2009/02/24 11:38
으음...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아프간 전쟁이 지금껏 수렁에 빠져있는것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네요. 그나저나 저렇게 따로노는데도 전쟁초반에 탈레반을 축출했다는게 신기할 정도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3
저 초반은 뭐랄까, 다른 집단들이 어리버리하는 사이에 중요한 일은 다 CIA가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였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워낙 창졸지간에 진행되어서 딴 조직들은 현지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워한 눈치가 역력한 듯.
Commented by 로리 at 2009/02/24 11:41
읽다보니 참.... 저게 그냥 웃을 수 도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에서도 잘 일어나는 일이다보니 말입니다.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4
그렇죠. 저런 일은 바로 우리 곁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봐야죠.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9/02/24 11:51
뭐~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다만 그 규모와 파급 효과를 생각해보면...-.-a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09:56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참 안된 이야기지만, 조직이란 데가 크던 작던 저런 문제가 있기 마련이죠.
Commented by 계원필경&Zalmi at 2009/02/24 12:01
조직이 따로 논다면 정말 답이 없죠...(랄까나 탈리반의 반격에 제대로 대처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7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저 때와는 반대로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CIA가 모두 현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의견이 있다고 봐야죠. 그럼 뭐 치열한 내부투쟁이 있는 건 당연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Luthien at 2009/02/24 12:15
아직 8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에서 뿜었습니다. 생각난 게 있어 트랙뷁.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0
코퍼 블랙과 푸틴의 선임보좌관이 나누었다는 대화가 생각나는!
Commented by gforce at 2009/02/24 12:43
이번 황상께서는 일단 면밀히 행동원칙과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기초해 안정적으로 행동과 정책의 기조를 유지해나가는 대신 돌발사태에 대한 대응은 그다지 민첩하지 못한 인상을 자주 보여주는데, 이 성향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는 어떻게 먹혀들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근데 경제정책 관련해서는 점점 불안한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5
네, 저도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경제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FDR이 해놓은 뉴딜이란 걸 볼 때, 이정도 사태에는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호오가 갈려도 FDR을 평균 이하의 정치가로 볼 수는 없잖습니까.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2/24 13:02
파힘과 프랭크스의 회담 내용에 대해서 첫번째 인용문(CIA 요원)과 두번째 인용문(프랭크스 장군)사이에 세부사항에서 많은 차이가 보이네요. 8년 전의 일에 대한 회고에서도 이렇게 참석자마다 세부사항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데, 하물며 수십년 전의 일에 대한 회고록들은 어떠할지....회고록을 읽을 때는 항상 명심해야겟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2
네, 말씀하신 대로 같은 자리에 참석한 두 사람인데도 상당한 차이가 있지요. 게다가 회고록이란 건 "그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는 거다 보니 윤색 가능성도 그만큼 높고, 읽는 사람이 충분히 감안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계란소년 at 2009/02/24 13:03
1. 알 카에다와 완전히 결별하고 2. 파키스탄을 불안정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협상은 대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현재로선 군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싸울 수 밖에 없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9
네에, 싸우는 것 자체가 협상의 배경이기도 하구요.
Commented by Empiric at 2009/02/24 14:10
비슷한 행운이 이라크에서도 일어나리라 믿은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9
원래 한 번 성공하면 다음번엔 기대치가 높아지잖습니까. 이라크도 좀 그런 측면이 있죠.
Commented by 바보이반 at 2009/02/24 14:32
밥 우즈워드 선생께서 MB in Shoveling을 쓰시면 이장면 들을 뛰어넘는 희대의 명장면들이 가득할듯 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18
저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흐흐.
Commented by joyce at 2009/02/24 14:41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인용하신 책들 중 번역된 것들이라도 읽고 싶어지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5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02/24 14:42
무슨 전쟁을 이렇게 치룬답니까... 아프간이 헬게이트가 된 게 이해가 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7
사실 많은 전쟁은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고전적인 사례로는 반 크레벨트의 "command in war"에서 大몰트케의 전역을 분석한 것을 읽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Commented by 김우측 at 2009/02/24 16:47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허리하고 손발하고는 일해봤어도, 머리쪽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는 짐작하기 힘들었는데, 정말 잘 읽었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8
사실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이글루스에서 활동할 만한 사람 대부분은 머리와는 못 놀아봤다고 해야겠지요. 저도 물론 예외는 아니구요.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4 17:01
길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몇 개 질문들을 드립니다:

echoing belly와 타르막: 무엇들인지 궁금합니다.

러시아가 당시에 아프가니스탄 침공전에 협력해서 기대하던 이익은 무엇이었는지요? 이미 MD 문제로 갈등이 벌어진 상태였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엔지니어 아레프: 자금책과 동일인 같은데, 왜 엔지니어라고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기들이→그들이?

발문하면서→방문하면서?

콘두즈→쿤두즈(Kunduz)?

가른 원조→다른 원조들?

모하마드 파힘 한→모하마드 파힘 칸? 물론 Kh 발음 표기는 한국어로 불완전하겠지만요.

무자헤딘-무자히딘/마자르에샤리프-마자르-이-샤리프/탈레반-탈리반: 어떤 언어들 사이의 이칭들일까요?
Commented by 곤충 at 2009/02/25 08:05
제가 알고있기로는....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이유가 이슬람 권에서는 기술자에 해당하는 낱말인 (مهندس)이 우리의 '공돌이'개념과는 달리 박사나 학자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편에 속하는 지라 영어로 번역시 저렇게 명함등에 E.(인명) 혹은 م.(인명) 하는 방식으로 새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kh발음을 한국어로 표기할 경우 'ㅎ'
한국어로 발음할 경우'ㅋ'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몇년간 이슬람쪽을 다룬 책등에서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문제들 때문에 논란이 많은 듯 싶더군요. 그 때문에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인데도 발음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고요.

그리고 말씀하신 [무자헤딘-무자히딘/마자르에샤리프-마자르-이-샤리프/탈레반-탈리반]은 푸스하(표준어)-암미야(지역 방언)의 차이입니다.

1. 무자헤딘(مجهد)은 '지하드를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의미가 더 넓게 쓰여서 종교적수행부터 생존투쟁까지 붙이는 대로 통하는(...)그런 감이 없지 않습니다.

2. [샤리프에 속한 마자르] 라는 인명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정확한 해석은 그 당사자의 이름을 직접 읽어야 알 수 있을 듯 싶습니다만...

3.탈레반(طالب) 본래 뜻은 학생, 추구자 정도 됩니다. 으음.... 뭔가를 '공부하는 자'라면 어감이 비슷할 까요. 개인적으로 푸스하를 그대로 표기시 [똴립]이라고 읽는걸 선호합니다.

제가 아직 학부생인지라 잘못 답변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08:28
곤충/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09:38
곤충/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ghistory/
echoing belly와 타르막:
echoing belly는 저도 뭔지 잘 모르겠고, 타르막(tarmac)은 '포장된 곳'쯤 되는 표현인데 이 문맥에서 비행기를 세워놓는 ramp를 말합니다. http://www.wisegeek.com/what-is-a-tarmac.htm 참조.

기들이→그들이?
: 번역서의 저 표현은 "기가 살아있다"란 뜻입니다. 원문에는 "The lack of air attack on Taliban is emboldening the Taliban"라고 되어 있습니다.

러시아가 당시에 아프가니스탄 침공전에 협력해서 기대하던 이익은 무엇이었는지요?
: 이건 좀 길어지는 이야기니 따로 다루기로 하지요.

엔지니어 아레프:
이 사람은 북부동맹 정보부장입니다. 이 표현에 제일 가까운 한국어 표현은 이(승만) "박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자헤딘 지도자들 중에는 랍바니 "교수"니 압둘라 "박사" 같은 호칭으로 통용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발문하면서→방문하면서?
가른 원조→다른 원조들?
:수정했습니다

콘두즈→쿤두즈(Kunduz)?
: 인용문 박스 안의 표현은 기본적으로 [sic]입니다. 그런데 아랍어에 대한 로마자 전사 자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서 문헌에서 konduz와 kunduz는 섞여서 등장하는 것 같더군요. 본문에 지도를 한 장 추가했는데 그 지도의 지명 표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지도는 Gary Schroen의 First In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모하마드 파힘 한→모하마드 파힘 칸?
:2001년 연말의 아프간 전쟁 직후에 신문사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던지 국립국어원에서 현지 정치인들 이름 몇십 개를 표준화했습니다. 저는 현지 언어인 파슈토나 다리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해서 그냥 여기 있는 대로 갖다 쓰고 있습니다.
http://www.korean.go.kr/nkview/foreign/gpfor044.html 참조.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09:52
sonnet/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Luthien at 2009/02/25 11:07
echoing belly 는 어디(오산)서 캐빈 하부 수납 어쩌고로 들었던 적이...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11:12
Luthien/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2/24 17:46
여러가지 의미에서 역시 미국! 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대 조직 내의 커뮤니케이션 만큼 해결이 곤란한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49
참 골칫거리이지요.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2/24 18:39
손발과 허리에서 올라가는 신경과 혈관이 목에서 딱 끊기는 모습을 보고 있는 기분이군요. 덕분에 머리는 혼자 딴 세계로 갈 뻔하는 꼴이랄까... -_-;;

전쟁을 두 곳에서나 하고 있으면서 그에 관한 정보나 대응이 저런 정도까지 따로 놀고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저 때의 모습이 지금도 어디선가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면 정말 좌절이겠군요.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52
저런 요소는 조직인 이상 어느 정도는 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도를 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게 관건이겠죠. 학교도 사실 마찬가지 아닐까요? 거기도 장관급까지 올라가는 긴 트리가 있어보이는데... (웃음)
Commented by 하늘이 at 2009/02/25 12:02
지당하신 지적입니다.(웃음) 우리나라의 학교야 뭐...옥상옥이지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9/02/24 20:08
잘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5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9/02/24 20:18
북부지역 작전 전체에 5백만 달러 딜은 언제 들어도 참 트라우마를 남기는 일화였죠. 미군 보병 1개중대를 아프간에서 1달만 유지해도 5백만 달러쯤은 가볍게 다 써버릴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그로테스크한 전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54
그렇게 보면 또 정말 싸죠. 미국이 하도 돈다발로 일을 해결하려 들자 판지세르 계곡에 인플레이션이 났다잖습니까. "모두 100달러 지폐를 들고다녀서 환전이 안된다. 소액권도 보내달라" "100달러 뭉치도 요원들이 지고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게 말이 되냐?" 라는...
Commented by vermin at 2009/02/24 23:16
기본적으로 해건에 관련되었던 CIA의 인사들이 저런 비판을 하고 있다면 뭐라 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한 가지 놓치시면 곤란한 점은 밥 우드워드의 경우 1991년 걸프전 당시를 서술한 책에서 거의 '소설적 상상력'으로 大부시와 NSC 그리고 군 상층부의 '부융'을 '창작'해내기도 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본당자의 언술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콜린 파월의 회고록 내용처럼, 파월이나 일부 합참내 그룹이 "머뭇거리는 장군들"이었다는 밥 우드워드의 '썰'이 대체로 부정되고 있으니까요. 밥 우드워드의 저 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그냥.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09:58
해건과 부융이란 무엇들인지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38
이건 commanders 이야기로군요. 저도 그 책을 읽어 보았고, 그 책에 등장한 조역 중 한 명에게 이 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e-mail로 의견을 청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때 받은 답은 (자기와 관련된 한에서) quote는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해도 되고, 맥락은 그것보다는 주관이 들어가기 쉬운 것이니까 알아서 생각해라 정도였습니다. 하여간 저는 더 뒤에 나온 James Mann의 Rise Of The Vulcans이 취하는 관점 정도면 두 입장을 어느 정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봅니다.

어쨌든 말씀하신 대로 충분한 사료가 공개되기 전에 언론인들의 넌픽션과 당사자들의 회고록에 의해 사건을 정리하는 데는 분명한 약점이 있습니다. 그건 현안문제들을 다루게 될 때 피할 수 없는 한계지요.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9/02/26 09:10
Commanders의 그 조역이라면 역시 L모 대령이신가요? 제가 그 이름을 처음 본 것도 그 책에서였는 데 그런 인물과 교류하시는 분이라는 게 ㄷㄷㄷ 합니다.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2/24 23:25
아무리 미'제(帝)'라지만,
무슨 공룡 신경들마냥 특정 부위에서 분화해서 따로 노는 듯한 느낌...;;;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08
사실... 이런 관료제의 병폐(?)에 대한 실례들을 몇 개 갖고 있으면 어지간한 음모론은 물리칠 수 있지요. 큰 조직이나 멀리서 벌어진 사건은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든데 음모론은 대개 전지적 관점 하에서만 동작하잖습니까.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2/25 00:40
저 행크라는 중간간부 저렇게 사진이 공개되도 괜찮은 건가요? --;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09:42
CIA에 있을 때는 안 되죠. 저 사진은 CIA에서 물러나 국무부로 옮긴 다음에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문에 인용한 First In을 봐도 요원들 단체사진이 있는데, 저자(은퇴요원)을 빼고 나머지는 얼굴을 모두 지웠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09:44
국무부가 CIA 출신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는 거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04
군출신들이 CIA로 오고 CIA에서 국무부나 NSC, 의회 스텝 등으로 가는 경우는 상당히 흔한 관행입니다. 사실 역대 주한 미 대사들부터가 CIA출신들이 버글거리죠.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2/25 10:11
그렇군요.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9/02/26 09:05
좀 더 보충을 드리자면 행크는 CIA 에서 물러난 다음 국무성 테러대책조정관으로 옮겨갔습니다. 참고로 행크의 전임 테러대책 조정관은 코퍼 블랙이었는 데 그 역시 CIA 출신으로 전임 CIA CTC(테러 대책 센터) 소장으로 바로 9.11 과 아프간 전 당시 행크의 직속상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테러 전의 성격상 실무 경력이 있는 이들을 기용하는 성향이 있었지 않았나 봅니다.
Commented by sschh at 2009/02/25 07:35
중부사령부는 전쟁의 달인들이지만 정치나 현지사정에는 까막눈이고. CIA는 현지사정이랑 뒷공작에는 닳고 닳았지만 군대 일은 모르고, 워싱턴 DC의 조지 W.부쉬 패거리는 나름 똑똑하단 사람들이 모였지만 뭉쳐놓으니 바보집단이 됬고(...).

그래도 어찌어찌 서로 협력해서 일을 잘 굴리긴 하는군요. 서로가 잘 하는 일을 알아서 해결하다보니깐 되는듯. 아프간까지는 초반에 이렇게 잘 굴러갔는대, 이라크는 럼스펠트 혼자 작품이라서 지금까지 죽쑤는 걸까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10:03
이 작전(탈리반 정권을 전복시키고 주요 도시들을 비롯한 전국을 해방하는 데까지)만 놓고 보면 두말할 나위 없는 대성공이죠. 제가 보기에 CIA의 현지 담당자들은 9.11 이전에도 이 지역의 기본구도에 대해 어느 정도 구상(이랄까 개념), "만약 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지" 정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정부 시절에도 이미 빈 라덴 제거계획의 일환으로 북부동맹에 일정한 지원과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http://sonnet.egloos.com/2281486 참조.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2/25 16:57
사실 월남에서도 저랬는데 케네디와 손발이 안 맞아서 아웅다웅 하다가 한쪽이 작살났고, 카터 때에는 반대로 작살이 났고...
Commented by BigTrain at 2009/02/25 09:10
최고정책결정집단에서의 관심이 애초 이라크로 쏠려 있던 건 익히 알려져있던 사실이지만, 중부사령부 급의 결정단계에서도 아프간과 빈 라덴은 두 달만에 부차적 관심사로 전락해 버렸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5 09:44
하나의 사령부가 두 개의 전혀 다른 전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들은 당시 업무부담이 엄청났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대개 조직이란 건 저런 상태에서는 윗사람이 쪼는 쪽을 열심히 하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腦香怪年 at 2009/02/26 09:44
북부동맹과 프랭크스 사이의 회담을 각기 당사자들의 각자의 입장에서 기술한 측면이 재미있군요. 게리 팀장의 회고의 경우 아무래도 자신과 접촉이 있는 북부동맹 측 인사들을 포함하여 회담의 배경과 양상을 조망하듯이 보여주고 있다면 프랭크스의 경우 회담에서 아무래도 회담에서의 자신의 입장과 북부 동맹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같군요. 아무래도 프랭크스가 파힘 이하 북부동맹 구성원에 대한 사전지식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같았을 것 같지 않습니다.

게리의 회고에서 엔지니어 아레프가 기술된 부분 대신 프랭크스에서는 파힘과 재무장관의 묘사에만중점이 맞춰진 걸 보니 아레프 와 "재무장관"이 동일인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게리의 회고에서 보면 그 다른 25명의 북부동맹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재무장관"이 있고 프랭크스가 이 부분만 집중적으로 기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혹은 프랭크스는 아레프를 "재무장관"으로 잘못알았을 수도 있지만요) 프랭크스 내용에서는 CIA측도 행크만 제외하고 게리의 참석에 대해선 언급이 없는 걸 보니 디테일은 생략하고 딱 자기만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만 말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프랭크스와 행크의 굿 캅 배드 캅은 저 시점 이후 시작된 유랑극단 <조지 테닛과 그의 동료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프간 전 당시 NSC를 비롯한 정책결정자, 국방성, CIa의 실무진 들의 견해라든지 정세 파악 각자의 계산이 맞지 않은 점에는 정보의 부족 및 전달의 착오나 판단관점의 차이같은 문제가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게리2의 전임자인 게리 쉬렌이 본부에 수 차례 알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았다고 한 점이라든지 - UAV로 자기 팀들을 저격할 뻔한 건- 같은 점들이 단적인 실례가 아닐 까 합니다.
또 한 각자의 입장에서의 판단관점의 차이, 계산의 주안점 문제도 작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아무래도 현지팀에서여 군사적 전술적 관점에 주목해야 카불 북부 쪽을 폭격하고 쇼말리 평원으로 바로 들어가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NSC나 다른 정책 결정부를 보면 군사적 관점 뿐 아니라 향후 정국이나 특히 전후 문제까지를 염두에 둔 측면이 있으니까요. 이러한 면은 비단 정책지도부나 실무진 사이에서 뿐 만 아니라 CIA내에서도 아프간 현지 파견팀과 파키스탄을 좀 더 고려하여 북부동맹의 카불 진격을 연기시키려 한 이슬라마바드 지국 사이의 견해 차에도 드러나기도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행크가 본부에서 전선지휘관으로써 워싱턴 본국 상황과 현지 파견팀 움직임을 모두 조망하는 입장이었다는 점은 확실히 탁견이십니다. 물론 행크의 상관인 코퍼 블랙이나 더 올라가서 조지 테닛 같은 인물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상층부에는 아프간 전쟁 외에 다른 고려사항, 관심사들이나 할 일들이 있으니 전념하기에는 어려웠겠고 아프간 문제에 전념해서 전황을 폭넓게 볼 수 있었던 인물은 행크 정도군요. 어떯게 보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지 알면서도 위에서 치이고 아래의 불만을 들어주는 중간관리자의 비애랄까나요.그러한 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만은.

다만 정책지도부가 명확한 관점이나 전략적 방향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는 실무진들의 판단이나 견해가 비록 정책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 점은 있지 않을 까 합니다. 아프간 전이 주로 CIA의 플랜에 의거한 돌아간 면이 큰 점이라든지 혹은 카르자이가 아프간 지도자로 대두된 배경을 보면 아무래도 그런 인상이 남더군요.

그리고 몇 마디 사족을 붙이자면

위에 복자로 표기된 CTC/■■라는 표현은 CTC/SO(Special Operations) 일 가능성이 큽니다. 행크 즉 헨리 크럼프턴이 코퍼 블랙의 후임으로 국무성 대테러 조정관에 임명된 후 나온 그의 공식이력에는 "Mr. Crumpton currently serves as Chief of the National Resources Division of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He previously served as Chief of the Counterterrorism Center/Special Operations at the CIA." 라고 해서 CTc에서 특수공작 부서의 책임자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한 조지 테닛의 회고를 보면 9.11 이후 아프간 전을 위하여 CTC내부에 Special Operations Department/ Group(양 쪽 표기를 혼용하고 있음)이라는 부서를 신설해서 아프간 전을 지휘케 했다는 기술이 나오는 데 여기서 크럼프턴을 책임자로 임명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여기서도 크럼프턴은 9.11 발발 당시 모 해외 지국장으로 막 부임한 상황이었는 데 바로 짐싸고 귀국해야 이 임무를 맡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치 모와트 라센이나 게리 쉬렌 역시 갑작스런 부름을 받았던 것 같이요)

--> 한 쪽에서는 보안검열에서 삭제된 내용을 한 편으로는 공식적으로 공표하고,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셈이니 여기서도 손발이 안 맞는다고나 할까나요( 사실 gary 책 같은 경우는 본보기로 난도질을 당한 측면도 있고 저 그 때 그떄 상황이나 인물의 위치 그리고 해당 시기 방침 문제도 있을 것같습니다)

그리고 번역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이지면

이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

이 부분은 원문에서는 Nothing could have been further from the truth라고 되어 있는 데 이 건 이보다 진실에서 더 동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문맥상으로 봐도 앞 문장은 프랭크스가 난 촌뜨기고 단순한 일개 군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어감인 반면 뒤의 문장은 그가 화려한 무공을 자랑하는 4성 장군이라는 내용이니 앞 뒤가 서로 상충되는 듯한 느낌이니까요.

그들이 함께 나가자 행크는 내게 CENTCOM J-2(중부사령부 정보참모)인 키몬스 준장과 SOCOM(특수전사령부) 소속이자 유일한 예비역인 알버트 칼란드 제독을 소개시켜 주었다. -->

이 부분에서 캘란드에 대한 수식한 the only officer out of uniform은 유일하게 평복 차림의 장교 라는 뜻이 아닐 까 합니다. 캘랜드는 저 당시 중부사령부의 특수작전 사령관이었고 그 후 해군 특수전사령관으로 SEAL팀을 지휘하게 되는 데 그의 계속적인 승진과 보직을 보면 현역으로 계속 복무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 해군 공식이력 참조http://www.navy.mil/navydata/bios/navybio.asp?bioID=65) 원문에서 캘런트를 지칭할 때 Vice admiral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데 이 건 당시 직책이 아니라 그가 CIA 부국장이 되었을 당시의 계급을 지칭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리2가 퇴직할 당시 캘런트가 맥롤린의 후임으로 CIA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는 걸 보면 그 시점에서 그 회담을 회고하면서 저렇게 기술한 것이 아닐 까 합니다.)

끝으로 이 전에 게리2가 9.11 당시 중남미의 모 국가에서 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그의 CTc 자원을 반대한 작전본부의 중남미 국장(Chief od Latin America Division)이 전 NCS 부장이었던 호세 로드리게스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 데 이 건 잘못된 지적이더군요. 그가 현직에서 물러난 히우 물거진 테러용의자 고문 테이프 파기 사건 보도로 들추어진 경력을 보면 그가 중남미 국장으로 재직했던 시기는 90년대 중반이었고 그 이후 부당직권 남용 문제로 보직에서 물러났었다고 합니다.
Commented by vicious at 2009/02/26 13:52
황상국이라 해도 역시 조직은...

정말 위로 올라갈 수록 아래 정보와는 동떨어진 그들 만의 세계에 있다는.. 쿨럭.
회사나 국가나.. 조직은 어쩔 수 없군요.

정말 나폴레옹 말 처럼 어리석음 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걸 음모론으로 설명하면 안되겠죠.

아 그리고. 정말 모두 Urgent 한 일이 널려 있어도, 위에서 더 쪼는 쪽을 먼저 처리하는게 맞는 거죠.

뭐 그 이유야 ㅋㅋ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7 18:15
말씀하신 대로 조직의 생리라는 건 어디나 다 비슷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겔라예프 at 2009/02/26 23:45
그냥 간단히 말해서 911 테러는 미국 수뇌부에게 오랫동안 벼르던 이라크 문제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고 어떻게든 분위기타서 이라크를 침공할까...가 핵심이었지 막상 테러 당사자들인 탈레반과 알카에다 쪽에는 그닥 신경도 안쓰였다고 봐야될 듯 싶네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27 18:22
이라크도 같이 치자고 자꾸 채근하던 럼스펠드 등에게 afghanistan first라는 명료한 지침을 주어 일선을 그은 것은 부시라고 하니까 그런 점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다만 수도에서 상대 정권이 무너지면 그걸로 게임 끝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을 찾아나선 건 변명의 여지가 없겠지요.
Commented by reske at 2009/02/28 21:46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군사쪽은 잘 모르기는 하지만, 군사작전의 의사결정과정이 흥미롭군요.. 역사책을 읽거나 언론보도를 접하거나 하면, 전쟁을 할때 지도부와 중간 관리층, 현지의 군인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는 것처럼 서술하는데, 그런 서술은 복잡한 진실을 말살해버린 오해에 가까울듯 하군요. 아마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군대에서도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었겠죠? 가끔씩 전쟁사에서 볼 수 있는 황당한 실수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조금은 짐작이 갑니다.

그나저나 아프간의 미군도 왠지 100년전의 영국군의 전철을 밟는듯하여 안습이네요.. 정권 바뀌고 아프간 재파병도 요청할 분위기인데, 아프간 사정이 갈수록 막장으로 치닫는듯하여 걱정입니다. 요즘들어서는 북부의 타지크인, 우즈벡인 통치지역도 탈레반으로부터 안전하지도 않은 듯하더군요..
Commented by d/s at 2010/08/15 16:40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건이 헷갈려서 제가 위에서 읽은 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게 맞나하고 몇번이나 왔다갔다를 했습니다.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설명을 듣다가 뭔가 서로 인식이 꼬인듯하다고 느낀적이야 많지만 저정도 조직에서..후우.
Commented by sonnet at 2010/08/15 17:01
저 조직(미국 정부)이 더럽게 크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조직(회사)생활에서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심한 형태로 나타나는 경향이...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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