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을 한 자에게도 애도를 표해야 하는가?? (마키아벨리),
용산 철거민 사태에 대한 간단한 게임이론적 분석 2 (현재시제) 에 트랙백.
위 첫번째 글은 예전에 제가 썼던 글에서 밝힌 분석의 틀을 가져다 그대로 이용하고 있고, 두 번째 글은 그에 대한 반론 성격의 글입니다. 제 분석의 틀이나 제기된 반론 모두 게임이론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둘의 비교는 비교적 수월한 편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분석의 틀의 적실성에 대해서만 검토하기로 합니다.1. 치킨 게임과 용의자의 딜레마일단 기본적인 사항을 다시 한번 재점검해 두기로 하자. 치킨 게임의 설명은 앞선 내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용의자의 딜레마에 대한 것만 추가하였다. 이 두 문제에 익숙한 분은 이하의 설명을 뛰어넘어 2절로 넘어가도 무방하다.
1.1. 치킨 게임많은 구경꾼들이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텅 빈 고속도로 양 쪽에서 시속 100km로 내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를 향해 달려온다. 어느 한 쪽이 핸들을 꺾어 피하지 않는 한 충돌은 필연적이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게임에 지게 되며, 겁쟁이(chicken)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이와 같이 치킨 게임은 한 편에는 생존이, 반대편에는 명예가 달려 있는, 고전적인 가치 절충(value trade-off) 문제이다.
치킨 게임에서 두 경기자가 모두 분석 패러다임을 구사한다고 가정할 경우 최선의 전략은
명백히 되돌릴 수 없는 결의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핸들을 자물쇠로 잠그고 크루즈 컨트롤을 고정시킨 후, 자신은 아예 뒷좌석으로 물러나 몸을 묶어버리는 식으로 행동하고 그 사실을 최선을 다해 상대에게 알리는 게 이기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한 쪽이 먼저 이렇게 나와 버리면, 반대편에 아직 핸들을 잡고 있던 상대방은 경기를 계속하면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지금 물러나면 명예는 잃겠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어진다.
1.2. 용의자의 딜레마두 명의 사건 용의자가 체포되어 서로 다른 취조실에서 격리되어 심문을 받으며 서로간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이들은 자백여부에 따라 다음의 선택이 가능하다:
* 둘 중 하나가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즉시 풀어주고 다른 한 명이 10년을 복역해야 한다.
* 둘 모두 서로를 배신하여 죄를 자백하면 둘 모두 5년을 복역한다.
* 둘 모두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둘 모두 1년을 복역한다.
* 용의자 A의 선택 : 용의자 B가 침묵할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용의자 B가 자백할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에도 자백이 유리하다. 따라서 용의자 A는 용의자 B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백을 선택한다.
* 용의자 B의 선택 : 용의자 A와 동일한 상황이므로, 마찬가지로 용의자 A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백이 유리하다.
* 균형 : 용의자 A, B는 모두 자백을 선택하고 각각 5년씩 복역한다.
이 두 가지 상황의 보수행렬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2. 문제의 제기이제 제기된 반론을 살펴보자.
Commented by 현재시제 at 2009/02/17 19:38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 사례는 치킨 게임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payoff matrix를 그려서 따져 봤을 때 나오는 균형의 성격상 치킨게임은 누군가가 포기를 하는 상황이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균형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반적이긴 하지만 용의자의 딜레마(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보는 게 타당할 듯 합니다. 이 경우에는 개별적 최적화의 결과물로 발생하는 균형에서 사회후생이 가장 낮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 분의 의견은 위 글에 딸린 일련의 댓글과 다음 두 글을 참조하였다.
용산 철거민 사태에 대한 간단한 게임이론적 분석 (현재시제)
용산 철거민 사태에 대한 간단한 게임이론적 분석 2 (현재시제)
문제가 된 균형을 앞서 본 보수행렬에다가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여기가 균형인 이유는 상대의 행동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다음 화살표처럼 행동을 바꾸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의견은 결국 양 측이 모두 손해를 보는 lose-lose(右下)가 균형인 모델은 용의자의 딜레마이고 치킨 게임은 lose-lose(右下)에 균형이 없으므로 닮은 모델인 용의자의 딜레마 모델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분석지금까지 본 두 모델을 용산 사건에 대한 분석에 적용해 보기로 하자. 위의 보수행렬 숫자를 그대로 둔 채 A를 경찰, B를 철거민 측으로만 치환하면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보수행렬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철거민 측은 먼저 대결을 선택했으므로 다음 두 가지만이 남는다.
우선 치킨게임 가설은 다수 사망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경찰이 물러섬으로써 철거민이 승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가설은 틀렸다.
다음에는 용의자의 딜레마 가설을 검토해 보자. 이 가설은 경찰이 대결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맞았다. 그러니까 이 가설이 옳다는 것이 앞서 제기된 반론의 결론이다. 자 이렇게 하여 검토 끝!
… 이 아니라 좀 더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이 가설의 약점인 보수행렬을 살펴보자. 용의자의 딜레마 가설에서 경찰이 대결을 선택하는 이유는
철거민승리(-10점) 보다 다수사망(-5점)이 더 유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 것 같은가? 작전은 실패로 끝나 여러 사람이 죽고, 사회적 논란 끝에 경찰 총수 목이 날아가는 결과가 대결을 회피하는 것보다 정말로 더 유리한 결과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결과를 예측하고서도 "까짓거 몇 명(자기 부하와 자기 목 포함) 죽는 것 쯤. 쓸어버려!!"라고 명령했을까? 상식적으로 이런 주장은 지지받기 힘들다. 훨씬 그럴듯한 주장은
경찰도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게다가 치킨 게임이건 용의자의 딜레마건 간에 이 두 가지 모델은 모두 양 편에 대해 대칭적이다. 철거민에게 승리를 내주느니 다수사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 경찰의 합리적 의사결정이라면, 경찰에게 승리를 내 주느니 차라리
정말로 다같이 죽는게 낫다는 것은 철거민의 합리적 의사결정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 설득력 있는가?
1절에서 다루었던 치킨 게임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감하겠지만, 이 게임은
실제로는 객기나 오판, 실수 따위의 이유로 대참사가 벌어지기 쉬운 종류의 대결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검토해 보자.
앞서는 대결이라는
철거민들이 고른 선택을 경찰도 완전히 받아들였다는 암묵적 가정을 했었다. 그럼 이 가정을 제거해 보자. 예를 들어 경찰은 진짜로 진압을 밀어붙이면 상대가 겁쟁이(chicken)라서 다 같이 타죽을 때까지 저항하진 않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진압작전 도중 경찰이 철거민 측의 저항을 제압해 상대의 대결 선택을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을 거라는 자기 측에게 낙관적인 가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가설은 다수사망이 최악의 결과이면서도 선택된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다. 자신의 행동에 의한 결과 혹은 상대의 반응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하는 이런
제한된 합리성 하의 치킨 게임이 내가 지지하는 분석의 틀이다.
용의자의 딜레마보다 치킨 게임이 보다 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먼저 행동에 나선 철거민 측의 행동이다. 용의자의 딜레마 가설에서 최선의 전략은 상대에게 협조할 것처럼 굴어 상대를 속인 후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는 것이다. 치킨 게임 가설에서 최선의 전략은 남보다 먼저 돌이킬 수 없는 대결의지를 과시하는 것이다. 철거민 측의 행동은 치킨 게임 가설 쪽에 가까웠지 않았던가?
4. 두 가지 상반된 가정: 완전 합리성과 제한된 합리성제기된 반론이 완전합리성에 기초한 분석임은 다음 글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용산에서는 우리 모두가 보았듯이 철거민 중 일부는 목숨을 잃었고 일부는 구속되었으며는, 정부는 경관 한명의 목숨을 잃고 정책의 방향성을 상실할 위기에 빠졌다. 이는 게임이론에서 상정하는 균형도 아니고,
따라서 합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게임이론은 경기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한다. 즉, 치킨게임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 중 둘 다 강경전략을 채택하여 나오는 결과물은 사실 치킨게임의 함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다.(
현재시제)
하지만 치킨게임의 함의는 서로가 완전한 정보와 합리성이 갖춰졌을 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뒤집어서 그 어려운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참극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치킨 게임의 다른 중요한 함의이다. 그리고 완전합리적인 쌍방이 용의자의 딜레마 가설을 따라 다수 사망이라는 결과를 냈다는 접근은 쌍방이 모두 의도적으로 상대를 죽일 결정을 했다는 함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것은 현실성도 없으면서 뒤끝도 좋지 않은 결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