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와 특권성(추유호) 에서 트랙백
0. 들어가면서이 글은
앞선 글에 달린 트랙백에 대한 답변을 겸한 글입니다. 자신이 쓴 글의 구조를 부연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만, 오해가 좀 있는 듯 싶어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0/1절은 글을 작성하게 된 경위와 앞선 논의의 간단한 배경을 소개한 도입입니다.
2절이 이 글의 핵심으로 DKS의 '금융중개자' 이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3절은 이 체제의 안정성 문제를 다룬 2절의 덜 중요한 부연인데, 최소한의 언급만 하고 넘어갔습니다.
4절은 2절을 부연하는 추가 데이터들인데 역시 핵심이라 할 만합니다.
마지막에 있는 5절은 사족인데 2,4절의 본론을 응용한 일종의 연습문제 풀이 같은 것입니다. 학계의 일련의 논의를 소개했으니까 가까운 사례에 적용해 보는 응용이 하나쯤 있는게 이해를 돕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 글은 "이머징 마켓에 투자되는 자본이 고수익을 누리고 외환 보유고는 저수익에 투자"되는 현상에 대해 덧글로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Salant의 만기전환 서비스"라는 이론이 있다라고만 언급했는데, 이게 생각해보니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 이론을 별도의 포스팅으로 소개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sonnet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은 다섯 번째 부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논점은 미국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즉,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실력차로 보느냐, 특권으로 보느냐의 견해차이 같습니다. (추유호)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제가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DKS의 금융중개자 설(
2절)입니다. 그리고 이 학설에 어떤 함의가 있다면 그것은 금융중개자와 그 상대방(즉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각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교환을 한다는 의미에서 모두 이익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 글의 5절이 본론이 아니더라도, 거기 언급된 내용에 대해 의견을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문제는 5절만 놓고 보더라도 논점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생각에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1. 발권력이 문제인가?논점은 미국이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즉,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을 실력차로 보느냐, 특권으로 보느냐의 견해차이 같습니다. 표현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의 견해는 꽤나 부정적입니다. 미국이 얻고 있는 이익을 리스크를 감수하고서 얻은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 글의 요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환경적 조건은 불공정한 경쟁의 상황보다 훨씬 까다로움을 간과하고 있다고 봅니다.
… 즉, 미국의 자본이 설령 어느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여 '실력차'를 가지고 이익을 냈다 하더라도 '기축통화'의 덕도 보았다면 이는 특권에 의한 불공정한 경쟁과 다름 아니라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요? 한 쪽은 달러를 벌어서 기업을 사야하고 한 쪽은 달러를 찍어서 사야 한다면 경쟁의 공정성을 주장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 미국 국채가 다른 투자에 비해 안정한 투자처가 된 이유 자체가 미국이 기축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추유호)
보시다시피 이 견해는 기축통화의 핵심은 곧 (필요한 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는 힘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견해가 대중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속적인 견해가 꼭 옳은 것은 아니지요. 저는 이 견해는 기축통화에 관련된
사안을 잘못 바라보게 만드는 잘못된 문제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한 쪽은 달러를 벌어서 기업을 사야하고 한 쪽은 달러를 찍어서 사야 하는" 상황은 그 자체로도 비현실적이거니와, 그런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안정된 투자처"는 커녕 투자를 지극히 위험하게 만드는 변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달러가 어떻게 기축통화로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이 문제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 달러는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나이하 논의의 편의를 위해 『금융공황과 외환 위기, 1870-2000』를 인용하고 거기 간단히 해설을 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를 해 나가겠습니다.
[새로 생긴 IMF] 회원국들은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으로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금 가격을 정해 놓고 민간이 원하는 대로 중앙은행이 금을 사고파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다른 통화와의 교환비율(환율)을 일정 수준에 묶어 놓는 것이었다.
만일 대부분 회원국들이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브레튼 우즈 체제는 고전적 금본위제도와 매우 유사한 체제가 될 것이었다. 만일 소수의 회원국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하고 다른 대부분 회원국들이 첫 번째 방법을 택한 나라 통화와의 환율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택하면 브레튼 우즈 체제는 금환본위제도가 될 것이었다.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 나라는 상당 규모의 금 스톡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국제 수지가 안정되어 있던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1온스 금=35 달러의 비율로 금 태환성을 회복시켰고,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달러에 대한 환율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달러 환율을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외환 시장 개입이 필요한데 미국 이외 나라들은 여기에 필요한 달러를 「준비 화폐reserve currency」로 보유했다. 이렇게 해서 브레튼 우즈 체제는 유일한 금태환 통화인 달러를 「기축 통화key currency」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로 출발했다. (pp.141-142)
우선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도 2차 세계대전 전의 주도적 체제인 금본위제로 가는 길은 열려있었다는 것입니다. 금본위제는 금이 기축통화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금의 자유거래와 이동에 의해 분권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죠. 그런데 이 때 다른 나라들이 (시장태환성을 허용하는) 금본위제로 가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그 나라들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서입니다.
1930년대 중반에 미국은 전세계 금의 약 35%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 중 다른 나라들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해 전쟁을 치르다 보니 종전 시점에 이르러 미국은 전 세계 금의 약 70%를 보유하게 됩니다.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만한 상황인 셈이지요. 게다가 1차 세계대전 후의 전간기와 세계대공황의 경험은 상황이 안되는 나라들이 어거지로 금본위제로 돌아가려고 했던 시도가 파국에 일조했다는 공감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기축통화에 대한 욕심을 가진 나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 이전의 최강 경제국이던 영국은 대영"제국"의 자부심도 있고 해서 자국의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되돌려놓으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설령 달러에 뒤이은 2위라 하더라도 자기 똘마니들(내 생각에;;)인 영 연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뭉치면 양강 체제를 형성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요. 그리하여 영국은 …
미국으로부터 돈을 꿔서(!)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게임에 뛰어듭니다.
종전 직후의 이런 상황 속에서 영국이 1947년 파운드 화의 자유로운 시장거래 -시장 태환성market convertibility-를 허용해서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부활시켜 보려 했지만 이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영·미 차관 협정Anglo-American Loan Agreement을 통해 영국에 제공한 37억 5,000만 달러를 밑천으로 영국이 1947년 7월 파운드의 시장 거래를 허용하자 잉글랜드 은행의 달러 보유고는 급속히 감소해서 6주일 후에 바닥나버렸고 영국은 다시 외환 거래를 통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947년의 해프닝으로 유럽 나라들이 전쟁으로 파괴된 생산 능력을 복구하기 전에는 고정 환율 제도가 재건되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자 미국은 전후 유럽의 경제 회복을 돕기 위해 대규모 유럽 원조, 즉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p.144)
영국이 미국에게 빌린 돈은 IMF 창설 자본금의 40% 정도에 해당하므로 그리 적은 돈이 아닙니다만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 버리고, 전 세계는 역시 미국 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당시 케인즈는 영국 재무성의 동료들에게 이런 행동은
"외국 원조를 받아다 여전히 부잣집 마나님(Lady Bountiful) 행세를 하려는 꼴"이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1947년에 영국이 6주만에 거덜이 나 망신을 당한 사건은 20여년 뒤에 미국의 금태환이 붕괴되며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진 과정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점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지요.
환율 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던 또 하나의 문제는 영국의 「스털링 잔고Sterling balance」였다. 영국 식민지는 1930년대에 파운드화와 고정 환율을 유지하면서 보유금을 런던에 맡겨 놓고 있었는데, 파운드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고정 환율 블록을 「스털링 지역Sterling area」이라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은 스털링 지역으로부터 물자를 구입하면서 대금을 파운드화로 결제했고, 그 결과 상당한 규모의 파운드 잔고가 해외에 축적되게 되었는데 이를 「스털링 잔고」라 불렀다.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영국 정부에 대해 스털링 잔고를 금이나 달러로 태환해 달라는 요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영국 통화의 대외 가치가 장기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을 뿐 아니라 파운드를 지불해서 (전쟁으로 파괴된) 영국에서 수입할 물건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스털링 잔고는 위에서 설명한 1947년 파운드의 태환성 회복 시도를 실패로 몰고 간 한 원인이었다. 1947년 영국이 태환성 회복을 선언하자 파운드 잔고를 보유하고 있던 나라들은 파운드를 달러로 교환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영국의 달러 보유고가 급속히 감소한 것이다.
상당 규모의 파운드 잔고를 보유하고 있는 영국 연방 나라들이 파운드 평가절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파운드가 평가절하되면 이들 나라가 보유하는 자산의 실질 가치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영국 정부가 파운드를 평가절하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파운드 투매가 일어날 것이고, 따라서 파운드 가치가 폭락해서 파운드의 시장 태환성 회복이 불가능해지고 국제적 지위에 커다란 금이 갈 것이었다. 따라서 영국은 파운드 평가절하 결정을 앞에 놓고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고, 평가절하를 요구하는 IMF와 미국의 외교적 압력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과대평가된 환율 때문에 영국의 외환 보유고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으므로 결국 1949년 영국 정부는 파운드 평가절하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가절하의 유일한 대안은 (1920년대식의) 재정지출 감소와 디플레이션이었는데, 이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이 더욱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운드가 평가절하되자 뒤를 이어 유럽의 24개국 통화가 평가절하되었다. 이들 유럽 대륙 나라는 이미 영국처럼 심각한 국제수지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파운드 평가절하는 다른 유럽나라들의 가격 경쟁력을 낮추어 국제수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었기 때문이다. 1949년에 결정된 환율 체계는 이후 약 20년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pp.146-147)
우선 1947년에 파운드를 달러로 바꿔두려고 달려든 시장의 행동은 1968년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고 달려든 행동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한 번 평가절하 전망이 힘을 얻자 이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든 것은 두 경우 모두 해외에 거액의 파운드/달러 잔고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도 여러가지 꽁수를 쓰며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텨 보다가 손을 든 것도 두 나라가 비슷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1947년의 사건을 끝으로 기축통화 경쟁에서 완전히 탈락해 버리지만, 미국은 금태환 정지 이후, 그리고 변동환율제로 옮겨간 후에도 계속 기축통화 자리를 유지합니다. 이 차이는 결국
그 시점에 더 유력한 대안이 있느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글로벌 불균형에서 아이켄그린이 향후 유로의 존재를 변수로 지적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한편 파운드가 평가절하되자 유럽 24개국이 따라 평가절하를 했다는 것은 결국 이들도 기축통화에 도전해 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반면 평가절하하지 않고 혼자 금태환을 고수(즉 실질적으로 평가절상)한 미국은 이들 중 다수에게 마셜플랜으로 대규모 경제원조를 제공하지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1950년대 전반에 걸쳐 유럽과 일본 같은 미국 외 세계는 달러 부족(dollar gap)에 시달립니다. 이는 전쟁 중 억눌렸던 소비의 분출과 막대한 재건 수요에 비해, 피폐해진 이들 지역의 생산 능력은 이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이 부족한 생산을 미국이 채우다 보니 유럽 등은 미국에게 수입하는 것은 상당한데 수출할 것이 없어서, 가만히 두면 달러가 점차 고갈되어 가는 것이지요. 미국은 유무상원조와 상업차관, 무역신용 등을 공급해 이 문제를 완화해 줍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시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실력의 차이에 따른 자명한 귀결이라고밖에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3. 논점의 재검토이제 발권력과 관련된 논점들을 하나씩 검토해 보기로 하지요.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시점에서 그리고 그 뒤로도 20년 이상, 달러는 '35달러=금1온스'로 교환해 주는 세계 유일의 금태환 화폐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달러는
무한정 찍기 힘든 화폐일 수밖에 없었지요. 이는 기축통화를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달러의 금 태환성이 무너지게 되는 1968년이 되어서 보면, (투기꾼들의 공격을 받긴 했지만) 미국은 국내외에 풀려 있는 달러를 태환해 줄 만큼 충분한 금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집니다. 그럼 이것은 미국이 발권력을 한 번에 왕창 구사하진 않았어도 야금야금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챙겨온 증거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경제 규모에 맞추어 화폐 수요도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후는 고성장의 시기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화폐는 달러에, 달러는 다시 금에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화폐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금의 공급이 늘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금은 찍을 수가 없고 현물을 캐낸 만큼만 공급될 수 있는 것인지라 실제로 금의 공급은 그만큼 충분히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모든 나라가 금본위의 규칙을 철저히 지켜 금이 허용하는 만큼만 화폐를 공급하게 되면 화폐의 공급부족으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럼 전 세계의 경제 성장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미국은 실제로는 금이 허용하는 것 보다 달러의 공급량을 늘립니다. 일차적으로는 자국을 위한 것이지만,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혜택을 볼 수 있었지요. 사실 유럽이나 일본 같은 다른 나라들은 추격하는 입장인지라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빨랐고 따라서 화폐 수요도 더 빨리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1950년대 전반에 걸쳐 미국에게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쳐 달러를 더 공급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앞서 언급한 달러 부족 현상이 여기에 겹쳐져 미국 밖 세계의 달러에 대한 갈증은 더 심했지요. 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했기 때문에 이에 가능하면 제동을 걸려는 쪽이었습니다.
1960년이 되자 미국 밖 달러 잔고가 미국이 가진 금 재고를 초과했고 달러의 금 태환성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씩 머리를 들기 시작합니다. 이 해 트리핀(Robert Triffin)은 미국 국제수지 적자와 달러 유출은 기본적으로 미국 이외 지역의 경제 성장의 결과 증가하는 유동성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미국 밖의 달러 축적은 달러의 금 태환성을 위협해 체제의 기초를 흔들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이 '트리핀의 딜레마'라는 것입니다.
1960년대 말이 되면 베트남전의 격화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에 따른 사회복지 지출의 급증으로 '미국의 필요에 따른' 달러 공급이 늘어나게 되지만, 어쨌든 1968년의 금태환 중지에 이르게 된 요인은 주로 앞서 설명한 달러의 수요 측면입니다. 이렇게 보면 (완만한) 달러 증발조차도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 실현이라기 보다는 상호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은 베트남전 전비도 '자유 세계' 방위를 자신이 떠맡다 보니 지출되는 것인 만큼, 미국의 군사적 보호 하에 있는 서유럽과 일본이 골드풀 등의 형태로 모종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만, 서유럽과 일본은 이에 대해 미온적으로만 반응합니다. 이들은 미국과 시각이 같을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무임승차를 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달러의 태환 중지에 따른 손익은 어떨까요? 달러의 태환 중지는 끝까지 달러를 지지하기 위해 금을 팔았던 나라들에게는 손해였지만, 카르텔을 먼저 탈퇴해 달러를 금으로 바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차익 실현의 기회였습니다. 미국은 이 둘의 사이에 속하지만 대량의 금을 잃고 나서야 태환을 중지했다는 점에서 꽤 손해를 본 쪽에 속합니다.
이처럼 브레튼우즈 체제 시절을 돌이켜 볼 것 같으면 발권력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통속적 견해는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 태환성이라는 황금족쇄가 풀린 후는 어떨까요.
아무튼 미래시점에서의 시장에서 정말로 청산되는지 의문입니다. 만일 어떤 국가가 미국 국채를 샀다고 가정한다면, 미국은 달러의 발행을 늘려서 국채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 결과로 미국이 국채를 발행하면서 얻었던 소비의 효용을 온전히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되는게 아닐런지요? (추유호)
새 돈을 찍어 국채 상환을 한다는 생각은 무적의 해결책 같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국채는 외국인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내국인도 투자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렇게 찍어낸 돈이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자국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길은 함부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1970년대 말 이후 미국은 인플레이션의 하향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결국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은 낮은 인플레이션의 시대라고 널리 인정되고 있지요. 이 말은 통화 증발을 통해 의도적으로 국채 가치 희석을 시도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국채 시장은 실제로 인플레이션에 아주 민감합니다. 그런식의 노골적인 인플레이션이 예상된다면 시장은 TIPS처럼 인플레이션을 보상하는 증권, 또는 1920년대 독일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으로 나왔던 명시적인 금 담보가 붙은 채권 따위가 아니면 인수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축통화국의 기득권은 아주 신속하게 파괴될 수 있습니다.
4. 그리고… 바로 지금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축통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서 실제로 일방적인 이익을 챙기게 되지도 않거니와, 기축통화를 유지한다는 일은 그 자체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섣부른 시도는 기축통화를 떠받치는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기축통화가 주는 이익을 최대화하려면 주어진 이점을 가늘고 길게 이용할 필요가 있는데, 그 방향은 결국 상호이익을 보장하는 선의의 관리자처럼 행동하는 길로 수렴합니다.
이와 관련해 앞선 글에서 소개했던 DKS 중 한 명인 킨들버거는 경제적 패권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세계 경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 19세기에서 1913년까지 영국이 그렇게 하였듯이 어떤 나라가 안정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29년에는 영국은 그럴 능력이 없었고 미국은 그럴 의사가 없었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개별적인 국익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을 때, 세계 전체의 이익은 고갈되었고, 그와 한께 각국의 개별적 이익도 사라져 버렸다.
리더십이란 말이 추종자를 착취하거나 사적 이익으로서의 위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긍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세계 경제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지도력이 약해지고 유럽이 강해질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결과로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세 가지와 불안정한 세 가지가 있다. 안정적 결과를 얻는 방법으로서, 첫째는 미국의 지도력을 … 존속 또는 부활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유럽이 지도력을 주장하고 세계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책임을 인수하는 것이다. 셋째는 세계 중앙은행 … 같은 국제 제도에 각국이 경제 주권을 실제로 양도하는 것이다. 세 번째 방법은 가장 매력적이지만,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가능성은 가장 적다.
책임 있는 시민이라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 중 어느 것이라도 만족해야 할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서 동전을 던져서라도 둘 중 하나를 결정하면 된다.
불안정성을 초래하기 때문에 피해야 할 결과는, 첫째 미국과 EEC가 세계 경제의 지도권을 둘러싸고 싸우는 것이다. 둘째는 1929년부터 1933년 사이에 보았듯이, 한 쪽은 능력이 없고 다른 한 쪽은 능력은 있지만 의사가 없는 경우이다. 셋째는 각국이 적극적인 자체 계획을 확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세계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한 계획에 대한 거부권을 쥐고 있는 경우이다. …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우와 같이 두 개의 대 세력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는 막다른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경제 분야의 경우 그에 상응하는 것은 경기 침체 및 공황이다.
『대공황의 세계』, pp.368-369, 388-390
결국 킨들버거가 하고 싶었던 말은 책임을 질 만한 실력을 가진 세력이 있고 국제경제의 헤게몬 자리를 노리고 덤벼들어 판을 깰 위험이 있다면
차라리 줘 버리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있는 자세란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이익을 나 혼자 독식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것이라면 이런 시각은 성립할 수 없겠지요. 그 자리가 겉보기만큼 일방적으로 좋은 게 아니기에 이런 조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80년 만에 맞는 초대형 경제위기에 직면해, 국제 사회는
상호 이익을 보장하는 공공재로서의 선의의 패권국에 의한 리더십을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시기라면 세계적 디플레이션의 수렁과 싸우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도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에 충분히 부합합니다.
하지만 기축통화의 특권에 대한 과장된 인식과 경계심은 이런 시기에 너죽고 나죽는 식의 거부권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어떤 일이든 일을 되게 하는 것 보다 망치는 것이 훨씬 쉽지요.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국제경제는 중간 규모 국가 서넛의 교란으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보론. "부당(혹은 불공정)한"을 따지는 기준에 관해그러나 이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환경적 조건은 불공정한 경쟁의 상황보다 훨씬 까다로움을 간과하고 있다고 봅니다. 비유를 하자면 대학입학을 지원하는 학생을 선벌하기 위해 오직 성적만을 100% 반영하는 것을 '공정하다'라고 정의한다면, 신장의 순서대로 입학 시키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위를 매기는 데 있어 성적을 50% 반영하고 키도 50% 반영한다면 이러한 입학절차를 가리켜 절반쯤 공정하다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불공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추유호)
우선 "돈을 더 많이 가진"을 경제규모에 대한 이야기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경제규모가 작으면 그 나라가 아무리 건전한 재정정책으로 명성이 높아도 기축통화국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축통화에는 국제거래와 외환보유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규모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세계 국가들 대부분은 기축통화국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하긴 나홀로 금본위제 같은 일종의 자청한 아웃사이더가 될 수는 있겠지요.)
모든 국가들은 영토, 인구, 부존자원 등 다양한 환경을 갖고 있는데, 이는 모두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입니다. 이런 변수들이 평준화되어야 한다면 '공정한' 혹은 '정당한' 경쟁이란 영원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식의 기준은 그 기준 안에 이미 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후의 논의들을 보면 "돈을 더 많이 가진" 것이 발권력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어보이는데, 그 문제는 과장된 것이며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반면 DKS나 저는 이 문제를 협력에 의한 상호이익의 실현이라고 봅니다. 참여자들은 각자의 자원이나 역할, 선호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전체에서 다양한 조각들을 가져가게 됩니다만, 어쨌든 모든 플레이어는 협력이 깨졌을 때에 비해 더 많은 몫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아주 좋지요.
다만 여기서 각자 가져가는 조각이 다르기 때문에
남의 떡이 커보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저의 의견은 위험을 더 지겠다고 결심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각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떡이 싫으면 바꾸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의 기축통화국이 그 자리를 내놓지 않는 걸 보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선 킨들버거의 의견이 답이 될 것입니다. (판이 깨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런 건
동전을 던져 결정하면 될 문제에 불과하며, 진짜 문제는
싸우다 판이 깨져서 모두의 이익이 날아갈 위험에 있다는 거지요.
참고자료차명수, 『
금융공황과 외환 위기, 1870-2000』, 아카넷, 2000
Eichengreen, Barry.,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MIT Press, 2006
(박복영 역, 『
글로벌 불균형: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미지북스, 2008)
Kindleberger, Charles P.,
The World in Depression 1929-1939,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3(Revised Ed. 1986)
(박명섭 역, 『
대공황의 세계』, 부키,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