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면서이 글은 일전에 썼던 서평
글로벌 불균형(Barry Eichengreen)의 보론에 해당하는 것인데, 거기 달린 코멘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세상 at 2009/01/05 14:24혹시 이책에 무역수지말고 자본수지 이야기도 나오나요? 이번 외환위기를 봤을때, 아시아 국가들이 열심히 외환보유고 쌓는것이 해외자본 투자금과 그 이익금에 대한 준비금 이상을 하는것 같지 않아보여서요. …
이머징 마켓에 투자되는 자본이 고수익을 누리고 외환 보유고는 저수익에 투자됐을때, 무역수지가 그 차이를 벌충해줘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Commented by sonnet at 2009/01/07 19:03
Salant의 만기전환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좀 나옵니다. … 본문에도 언급했었지만 인과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머징 마켓에 투자되는 자본이 고수익을 누리고 외환 보유고는 저수익에 투자됐을때, 무역수지가 그 차이를 벌충"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인과관계가 반대입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잘 와닿지가 않지요.
이 글에서는 위의 논의를 부연설명하면서 제 의견을 좀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문제의 배경두 나라 -편의상 미국과 중국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가 무역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화폐를 쓰지 않고 물물교환으로 무역을 한다면 중국은 수출을 한 다음 미국에 수출한 값어치에 상당하는 미국산 물자를 받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경상수지에 흑자니 적자니 할 것이 없이 늘 ±0으로 균형이 맞겠죠.
그런데 중국은 미국에 수출한 다음 그 대금을 미국 화폐인 달러로 받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럼 중국 입장에서는 그만큼 경상수지 흑자가 생긴 것이고, 이것이 늘어난 외환보유고로 잡힐 것입니다. 중국은 이렇게 축적된 달러를
나중에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사는 데 쓸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경상수지 흑자라는 것은 결국 무역 상대국에 대한
실현되지 않은 청구권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미국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면서 달러로 거액의 외환보유고를 쌓게 되는데, 이게 문제의 글로벌 불균형(
앞선 글 참조)입니다. 이때 중국이나 한국 같은 미국의 무역상대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로 얻은 달러를 안전하지만 이율이 낮은 미국 국채를 주로 보유하는 반면 미국은 이들 이머징 마켓을 상대로 공장을 짓는다든가, 주식이나 회사채를 매입하는 식으로 보다 고수익의 자본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외국에 투자하는 것 보다
외국이 미국에 투자하는 자본이 더 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국이 더 큰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앞서 논의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2. DKS와 '세계의 은행'브레튼우즈 체제(1944-73)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경제의 안정을 목표로 수립된 국제 통화 체제입니다. 이 체제는 당시 압도적인 경제력을 자랑하던 미국만 자국 화폐인 달러의 가치를 정해진 양의 금(금1온스=35달러)에 고정시키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 달러(기축통화)에 자국 화폐를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1960년대 들어 유럽과 일본 같은 나머지 나라들의 경제가 회복되며 미국 밖의 달러 보유고가 늘어나게 되자, 미국이 필요할 때 지금 해외에 축적된 달러를 제대로 금으로 교환해 줄 능력이 있겠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점차 불안정해질 징조를 보이게 되자, 이 체제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에 대해 각국 정부와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지요. 그 중
에밀 데프레,
찰스 킨들버거,
월터 샐런트(이하 DKS) 세 사람은 1966년 The Economist지 기고를 통해 이색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그 내용인즉,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주로
미국이 국제 금융의 중심지로서 금융중개자의 역할을 맡다 보니 벌어지는 일로, 알고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해석은
'유동성 선호도의 차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만 말하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으니까 풀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1960년대 유럽에는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보유한 주체들(정부 혹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제 이들은 이 달러를 굴려야 하는데, 가능한 안전하게 굴리기를 원하는지라, 안전하고 환금성이 높은 자산에 단기로 투자하기를 선호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에는 투자를 필요로 하는 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철도를 놓는다든가 공장을 짓는다든가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기를 원하는데, 그 성격상 한 번 투자하면 장기간 돈이 묶이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쪽에서는 원할 때 신속히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자산에 투자하기를 고집하는데 돈을 빌리려는 쪽에서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면,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건이 맞지 않아 돌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이런 조건 불일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금융 중개자(financial intermediary)의 역할입니다.
미국은 이율은 낮지만 안전한 달러 표시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중시하는 유럽의 민간투자자나 중앙은행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달러를 여기 투자합니다. 미국 국채 시장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원할 때면 언제나 신속히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환금성도 높습니다. 이렇게 해외로 나갔던 달러가 일단 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 투자자들은 유럽 투자자들보다 더 적극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서 고수익을 위해서라면 장기투자에 나설 의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투자자들은 장기투자를 원하는 유럽 산업에 보다 높은 금리로 투자합니다. 여기에는 미국 은행이 유럽 기업에 시설자금 대출을 해 주거나 유럽 기업이 미국 금융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수도 있고, 미국 기업이 유럽에 직접 투자(FDI)를 하거나 유럽 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간편하게 유럽 기업이 미국 금융시장에서 달러 표시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해 보지요. 이들 기업은 조달된 자금 대부분을 곧 국내통화로 환전하게 됩니다. 왜냐면 조달된 자금 중 일부는 해외 결제 자금 등의 목적에서 달러로 보유하기를 원할 수도 있겠지만, 공장 부지를 사든 월급을 주든 간에 이들의 자금 수요는 대개 국내 통화로 지출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 기업이 속한 유럽 국가의 중앙은행에는 자연스럽게 자국 기업이 회사채로 조달한 달러가 쌓이게 되고, 이 달러는 다시 외환보유고의 전형적 형태인 미국 국채로 보유되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달러의 순환주기가 완성됩니다.
이런 거래에서는 유럽과 미국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이익을 얻습니다. 즉 유럽은 안전한 단기 자금 운용을 하고, 미국은 고수익 장기투자를 챙기는 거지요. 아이켄그린 같은 경우 “다른 나라는 (자신의 달러를) 미국의 유동 은행 예금이나 재무부 증권에 투자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유동성이 낮은 외국인 직접 투자를 받아들이는” 이런 현상을 (단기에서 장기로의)
만기 전환 서비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를 하는 금융중개자에게는 더 잘 알려진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예금자로부터 단기 자금을 차입한 다음에 기업에 장기로 대출해 주고 예금이율과 대출이율 사이의 차액을 수수료로 챙기는 기관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보통 이런 것을
은행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DKS의 주장은 미국이 세계 경제의 발전을 위해 각지에 위치한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해 주는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은행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당시 DKS는 이런 국제사회의 은행으로서 미국이 하고 있는 금융중개의 긍정적 역할을 무시하고 대외균형 회복을 위한 급진적인 개혁을 밀어붙일 경우, 미국과 유럽(및 나머지 세계)이 모두 다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즉 현재와 같은 미국을 금융중개자로 한 자금순환은
미국의 금융시장은 발달된 반면, 유럽의 금융중개능력은 열등하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인 만큼, 갑자기 이런 금융중개기능을 중단시키면 유럽 기업들에 자금경색이 오면서 유럽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그 여파는 미국에도 파급되면서 같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은 재미있는 예를 듭니다. 미국에서 금융중심지인 뉴욕만 따로 떼어내면 지금 유럽과 미국의 관계와 비슷하게 보일 것이라는 겁니다.
중앙은행들과 학계 경제학자들의 불안감은 그들이 적자를 정의한 방법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이자 그들이 거기 붙인 함의에 의한 것이다. 금융감독기관들이 뉴욕과 나머지 미국 본토의 국제 수지를 따로 따로 계산해 보면, 나머지 미국이 뉴욕에 대해 갖고 있는 단기 청구권이 매년 급등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충격적인 정도의 '적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감독기관들이 국제금융에 대해 가진 관점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들은 뉴욕이 나머지 미국에 대해 제공하는 은행 대출과 뉴욕이 매입하는 신규발행 채권과 주식도 규제해야 할것이다. (DKS, pp.45-46)
3. '세계의 은행'의 안정성DKS의 모델은 현실의 어떤 측면을 아주 잘 포착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의 은행' 모델이 무한정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보통 은행들은 평소 단기로 차입해서 장기로 대출해 주면서 고객들의 인출에 대응하기 위한 지불준비금을 부분적으로만 준비해두고 있기 때문에, 모종의 이유로 은행에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갑자기 몰려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예금인출 요구를 할 경우 뱅크런(bankrun)으로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이런 사태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국제금융체제의 경우에는 이런 안정자 역할을 맡을 주체가 나타날지조차 분명치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DKS의
'뉴욕 : 나머지 미국 = 미국 : 나머지 세계' 라는 비유를 쓸 때는 뉴욕이 흔들릴 경우엔 달려올 연방준비은행이 있지만, 미국이 무너질 경우에는 달려올 주체가 없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킨들버거는 국제경제체제가 불안정해질 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이를 안정시켜 줄 패권적 지도국이 필요하다는 패권안정론의 선구자입니다. 이 점은 DKS가 이 문제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들 나름의 해결방안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세계의 은행'은 중앙은행의 최후의 대부자 기능이 일반적이 되기 이전 시대의 은행들처럼 기본적으로 자체의 신용만 갖고 고객들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켄그린은 브레튼우즈 체제 시절 미국은 계속 해외 순 투자국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다면서 주의를 환기합니다.
과거의 두 사례와 현재 상황 간에는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현재 상황은 세계의 은행 역할을 하는 나라의 지속적인 대규모 경상 수지 적자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 1914년 영국이나 1971년 이전의 미국과 달리 지금 우리는 순 자본금이 마이너스인 은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ichengreen, p.204,208)
이야기하면 길게 됩니다만 이런 가능성은
앞선 글의 중심 주제였으니까, 여기서는 이 정도로 주의를 환기하는 선에서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4. '세계의 은행'에서 '세계의 벤처자본'으로DKS의 분석은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브레튼우즈 체제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오래된 감이 있습니다. 그 후 40년이 흘렀고, 금환본위제가 무너졌으며, 환율은 변동환율로 바뀌었고, 세계화에 따라 금융이나 투자 관행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 후에 일어난 변화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Gourinchas & Rey 2005]가 다각도의 조사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에 이 연구를 간략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들은 브레튼우즈 시절 이래 미국의 대외자산 구성은 장기 대출에서 직접투자(FDI)와 주식투자로 꾸준히 옮겨간 반면, 미국의 대외채무는 여전히 은행대출, 무역신용, 채권 등 저수익 안전자산의 비중이 높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미국의 대차대조표를 볼 것 같으면 자산 항목이 고수익 위험자산으로 채워진 벤처자본과 비슷하다"(p.13), 즉
'세계의 은행'이 어느 새 '세계의 벤처자본'으로 둔갑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미국의 총 대외 자산(GDP 대비), 1952~2004
미국의 총 대외 부채(GDP 대비), 1952~2004
※ Other 항목의 주종은 은행 대출임.
이를 좀 더 보기 쉽게 바꾼 것이 다음 표입니다.
총 자산 중 위험자산의 비중/총 부채 중 유동부채의 비율, 1952~2004
이 표를 보면 미국의 총 대외부채 중 유동부채(
푸른 선)은 전반적으로 높고 잘 떨어지지 않는 반면, 미국의 총 대외자산 중 위험자산(
붉은 선)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앞서 살펴본 DKS의 논지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미국의 순해외자산의 배당률(푸른 선)과 총수익률(붉은 선), 1952~2004
여기서는 총수익률이 엄청나게 변하며 심심치않게 마이너스로도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자산가격과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이득/손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특히 70년대 중반 이후에 변동폭이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이는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총 대외자산(푸른 색)과 총 대외부채(붉은 색)의 연간 실질 총수익률, 1952~2004
연구대상 기간 전체에 걸친 미국의 총 대외자산의 평균 실질 총수익률은 5,72%인 반면, 미국의 총 대외부채의 평균 실질 총수익률은 3.61%입니다. 이 둘의 차이인 2.11%가 세계의 은행(혹은 벤처자본)의 예대마진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예대마진이 브레튼우즈 시절에는 0.26%에 불과했는데, 브레튼우즈 이후 시기에는 3.32%에 달합니다. 이는 미국이 점점 더 해외의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댄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5. '미국의 특권(?)'을 보는 시각(주의: 이 절은 제가 한국 사회에서 받은 인상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0절에서 언급했던 논의를 겨냥한 것은 아닙니다.)마지막으로 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제를 건드려 보기로 하지요. 현재 한국에는 미국이 '금융 패권' 혹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혹은 불공정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시각이 상당히 널리 유포되어 있습니다. 이 견해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이 '세계의 은행'인 듯이 한편으로는 저수익 재무 증권을 해외에 매각해 안전지향적인 세계의 단기자금을 끌어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수익의 해외투자를 늘려 해외에 장기자금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장기투자에 따르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데 따르는 보상(risk premium)이기 때문에 이 자체로는 부당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경상수지 흑자로 축적된 달러를 갖고 단순히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대신, 더 큰 위험이 따르는 장기투자에 투입함으로서 마찬가지로 리스크 프리미엄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최근 이런 길에 도전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 SWF)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국부펀드는 아부다비 투자청이나 싱가포르 투자청 등이 유명하며, 한국도 2005년에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해 비슷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꼭 국부 펀드가 아니더라도 미국처럼 민간 혹은 공기업의 해외 투자를 통해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제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에 대한 산업은행의 인수 시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생각해 보지요. 여기에는 일리있는 생각과 쓸데없는 생각이 섞여 있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합니다.
우선 쓸데없는 생각부터 살펴보자면, 이 사건에 대한 널리 퍼져 있지만 신통찮은 대중적 견해 한 가지는 "파산할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자고 했다"(예를 들어
진중권 등) 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베어스턴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인수를 하게 되면 파산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오히려
Diamond & Kashyap처럼 "리먼의 대부분을 운영함으로서 얻어지는 존속가치가 금요일의 주당 3.6달러보다는 훨씬 더 높을 것이 틀림없었"다고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 쪽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영국 바클레이즈가 핵심자산 인수를 단행한 것으로도 확인됩니다.
이번엔 일리 있는 생각 쪽을 보겠습니다. 경영난에 직면한 은행(기업)에 투자해 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자본만 밀어넣으면 되는 일이 아니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집행하는 것을 포함해 상당한 경영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산업은행이 리먼 브러더스 같은 해외의 대형 투자은행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집행할 만한 경영능력이 있느냐는 확실히 미지수입니다.
자 이제 반대의 사례를 보지요. 제일(뉴브리지), 한미(칼라일-시티), 외환(론스타) 등 외국계 자본의 국내 은행 인수는 헐값에 국부를 팔아넘긴 사례라고 종종 주장되어 왔습니다. 산업은행이 곤경에 빠진 외국 투자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지만, 외국 자본이 마찬가지로 곤경에 빠진 국내 은행을 인수하는 것은 성공적인 투자라고 주장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일관성있게 해석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외국 자본은 한국 자본보다 곤경에 빠진 은행을 정상화하는 능력, 즉 경영능력 면에서 앞서 있다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면 안되지만, 그들은 해도 된다. 왜냐, 그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나니까."
고위험을 통해 고수익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려면 투자대상의 선별이나 관리 능력이 매우 중요해집니다.(예를 들어
다음 글의 4절 참조) 그런데 미국 자본이 한국 자본보다 이런 해외 투자대상의 선별이나 관리 능력에 있어 일반적으로 더 뛰어나다면, 해외에 투자되는 미국 자본이 미국(국채)에 투자되는 한국 자본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것은
특권이 아니고 실력차에 따른 당연한 결과가 됩니다. 이것은 결국 '미국이 금융중개를 맡는 이유는 유럽의 자본시장이 그만큼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DKS의 견해와 동일한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태도, 즉 미국 자본이 개도국들을 상대로 고수익을 거두는 것에 대해서는 불공정한 특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우리 측의 보다 공격적인 자산운용, 즉 국부펀드라든가 해외 기업 인수 등에도 부정적인 모순된 태도를 설명할 방법이 필요해 집니다.
저는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고수익과 위험부담을 연관지어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경우로, 이 둘이 서로 상충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얻는 만큼 다른 쪽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직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다소 비합리적이지만 충분히 있음직한 유형, 즉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용기는 없지만, 남이 직접투자로 고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면 배는 아프다는 식의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참고자료Despres, Emile., Kindleberger, Charles P., and Salant, Walter S., "The Dollar and World Liquidity: A Minority View, " The Economist, February 5 1966; 축약된 부분을 되살려 Kindleberger, Charles P.(ed.),
International Money: A Collection of Essays, George Allen & Unwin, 1981(Routledge, 2005), pp.42-52 에 재수록.
Eichengreen, Barry.,
Global Imbalances and the Lessons of Bretton Woods, MIT Press, 2006
(박복영 역, 『
글로벌 불균형: 세계 경제 위기와 브레튼우즈의 교훈』, 미지북스, 2008)
Gourinchas, Pierre-Olivier and Rey, Helene, "From World Banker to World Venture Capitalist: US External Adjustment and the Exorbitant Privilege," NBER Working Paper No. W11563, August 2005.
exorb_privilege_080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