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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마디(Encyclopédie)

… 사람들은 광신도들이 저지르는 갖가지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른다. 그들을 부드럽게 다루면, 그들은 너희를 짓밟는다. 그들을 박해하면 그들은 봉기한다. 그들을 잠재우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여론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절대로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멸시와 조롱만이 그들의 신용을 떨어뜨려 약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 『백과전서』(Encyclopedie) 6권. ‘광신’ 항 -

by sonnet | 2009/01/29 17:15 | 한마디 | 트랙백(2) | 핑백(1) | 덧글(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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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노는 사람 Play In at 2009/01/30 01:07

제목 : '광신'
… 사람들은 광신도들이 저지르는 갖가지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른다. 그들을 부드럽게 다루면, 그들은 너희를 짓밟는다. 그들을 박해하면 그들은 봉기한다. 그들을 잠재우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여론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절대로 폭력을 사용해선 안 된다. 멸시와 조롱만이 그들의 신용을 떨어뜨려 약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백과전서』(Encyclopedie) 6권. ‘광신’ 항 (via)...more

Tracked from Astraea's Sa.. at 2009/01/30 23:01

제목 : today’s word - ‘..
오늘의 한마디(Encyclopédie) from. a quarantine station ‘fanatisme’ from. 『Encyclopédie』 via. ARTFL Project * original (French of 16C) On ne sait guere quel parti prendre avec un corps de fanatiques; ménagez-les, ils vous foulen......more

Linked at Astraea’s .. at 2009/01/30 23:01

... isme’. from. 『Encyclopédie』 Filed under: Thinkabout — astraea @ January 30, 2009 오늘의 한마디(Encyclopédie) from. a quarantine station ‘fanatisme’ from. 『Encyclopédie』 via. ARTFL Proje ... more

Commented by Ha-1 at 2009/01/29 17:19
Dont Feed this...
Commented by ttttt at 2011/10/10 21:31
"트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또는 "즐(KIN)" 이군요.
Commented by organizer at 2009/01/29 17:23
그게... 실행하기가 참으로 힘든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Commented by Charlie at 2009/01/29 17:24
그래서 요즘 여론은 '강남 땅값 오른다?' 같은 특집 뉴스를 보내고 있는거로군요. :)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1/29 17:26
무관심이 최선이군요.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9/02/01 19:09
멸시와 조롱은 무관심과 엄청난 차이가 있을 텐데요.
아예 무시했다간 깨진 유리창 효과를 볼지도.
Commented by 김우측 at 2009/01/29 17:27
silence is gold.
Commented by 피그말리온 at 2009/01/29 17:33
동물을 기르는거 같은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암호 at 2009/01/29 17:39
어쩐지 고도의 전략 같은 기분이....
Commented by Ya펭귄 at 2009/01/29 17:40
대역포화재밍.....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1/29 17:52
"멸시와 조롱"은 키보드 워리어의 필수 연장 아니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_-;
Commented by sonnet at 2009/01/30 23:39
사실 당대의 조롱질 최고수가 볼테르인데 요즘으로 치면 키워의 황제라고나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 한국의 (언더그라운드인 인터넷 논객들 빼고) 주류 사회의 논객들 중에서는 진중권이 의도적으로 볼테르를 모방한 조롱 전술을 구사한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조각달 at 2009/01/29 17:56
...과연(...)
Commented by 후훗 at 2009/01/29 18:30
나찌나 스탈린 등, 독재적 권력을 가진 사람/집단이 광신도면 어쩌라고...
하긴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광신도를 주류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긴 하겠습니다만.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1/29 20:47
혁명 광신도였던 로베스피에르가 어떻게 제거됐는지를 떠올려보면...
Commented by 이네스 at 2009/01/29 18:47
하아아.. 난감합니다.
Commented by 동쪽나무 at 2009/01/29 18:59
아하 그래서 서생원이 쌩까고 있구나
Commented by 토르끼 at 2009/01/29 19:37
이거 좀 자극적인데요? ㅎㅎ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1/29 20:18
"토르끼군. 바로 자네와도 관련있는 이야기 같구만."
Commented by 토르끼 at 2009/01/30 09:43
님 하고 겠죠.
Commented by umberto at 2009/01/31 04:08
난 찌질한 낚시질이나 지역감정 전파는 안한다네. ^^
Commented by ssbn at 2009/01/29 20:05
광신도란 측면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이슬람의 어새신을 처리한 몽골식 대처법도 있던데요-_-;
Commented by sieg at 2009/01/29 20:30
궁금해서 여쭤봅니다만, 어떻게 했는지요??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9/01/29 20:43
씨를 말렸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1/29 20:45
'쓸어버리는' 거죠. 밑에서 말씀하신 '제노사이드'...
(하지만, 그 때의 아싸신은 '근거지만' 박멸된 거였고
실질적으로 버로우탄 건 마물루크 조에 와서야...)
Commented by 에르네스트 at 2009/01/29 22:16
그대처법은 확실한 효과내기가 너무힘들어서~ 강철같으신분이 부농(이라고 정의내린 농부들)때려잡는다고 제노사이드 시도했어도 살아남은 사례도 있고하니말입니다~
Commented by 일화 at 2009/01/29 20:18
제노사이드 외에는 저 방법밖에는 없죠. 사실 일정 이상 퍼진 다음에는 제노사이드도 답이 안된다는 것을 기독교가 증명하고 있다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1/29 20:43
자고로 '무플이 악플'. (...)
Commented by muse at 2009/01/29 21:11
주의: 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하지만 자기들끼리 장작을 던져가며 타오르는 경우는 어쩌지요?)
Commented by 쿠쿠 at 2009/01/29 22:02
위에 ssbn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100% 절멸시킬 수 있다면 그쪽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해법일테지요. 얼마 전에 본 영화 "폭력의 역사"가 생각나는군요. 왠지 요즘 유행한다는 단어 "정신승리"를 백과사전이 실천하고 있는 듯 한 느낌도 있습니다. --a
Commented by 루드라 at 2009/01/29 22:09
그래서 전 환빠를 상대하는 최고의 무기는 멸시와 조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액시움 at 2009/01/29 23:27
그런데 자기들한테 관심 안 줬다고 난동질을 부리면 캐난감. -_-;;
Commented by joyce at 2009/01/30 00:02
왠지 매스미디어의 등장으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린 듯.
Commented by 쿨짹 at 2009/01/30 01:59
역시 무관심... 음..
저도 언제나 무관심으로 대해요 ㅎㅎ
Commented by 한발 at 2009/01/30 03:16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문제군요. 부드럽게 다루거나 강하게 나가도 문제고 폭력을 안쓰려해도 저쪽해서 테러를 자행하니. 자동적으로 여론이 모여들고.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1/30 20:51
다른 나라 근본주의자들보다, 우리나라 '예수쟁이 근본주의자'들이 더 처치곤란합... (헙)

*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예수쟁이' 한정.
Commented by 시울음 at 2009/01/30 05:11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군요.
Commented by 지나가던이 at 2009/01/30 10:42
사람은 변한 적이 없군요.
Commented by xavier at 2009/02/01 01:57
멸시와 조롱도 일종의 사회적 박해로 받아들여서 봉기하지 않습니까?

(....쿠헬, 산넘어 산이로구먼)
Commented by 하이버니안 at 2009/02/01 19:12
'정치나 사회현상에서는 숫자가 큰 힘을 갖는다. 설령 내용이 전혀 진지하지 않아도,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은 누가 뭐래도 의미있는 사회현상이다. 이를 우습게 보고 마땅히 진지하게 대응해야만 할 일을 게을리하면 후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개론에 대해선 이런 포스트를 쓰셨는데요?
Commented by sonnet at 2009/02/01 22:04
그런데요?
Commented by paro1923 at 2009/02/01 22:30
빠가 안티를 낳고, 안티가 빠를 낳는 것이지요.
위 포스팅의 경우와 인용하신 문장의 경우는 같은 게 아닙니다.
어설프게 '까는' 것보다는 무관심과 멸시를 통해 그들을 '주목받지 못하게' 하는 게
상대가 세력을 확대시키지 못하게 하는 법이란 것이죠.
앞서의 '강자와 약자의 판 키우기 전략'에서 얘기했듯이...
Commented by vicious at 2009/02/01 22:55
무관심이 역시 최고라는.....

관심 자꾸 던져주면 버릇 나빠진다는...
Commented by bvc at 2011/10/08 17:20
'정치나 사회현상에서는 숫자가 큰 힘을 갖는다. 설령 내용이 전혀 진지하지 않아도,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은 누가 뭐래도 의미있는 사회현상이다. 이를 우습게 보고 마땅히 진지하게 대응해야만 할 일을 게을리하면 후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뭔가 이 글과 반대되는 글 같은데...
Commented by sonnet at 2011/10/08 20:13
저 계몽사상가들이 한 일은 '게을리' 한 것이 아닙니다. 목표에 맞는 특정한 전술을 고른 후 아주 진지하게 공을 많이 들어서 치열하게 조롱을 했죠. 지금도 널리 읽히는 볼테르의 『깡디드』『미크로메가스』같은게 그런 용도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깡디드는 다섯페이지면 할 말을 소설책 한 권에 걸쳐 한 이야기거든요.
Commented by 갈천 at 2012/04/27 10:56
문제는 멸시와 조롱이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현 한국사회에서는 그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진중권이 바로 그렇지요.

[태평로] 아무나 조롱하는 사회.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 2011.12.12

대통령, 종교인, 학자, 소설가, 판사, 기자,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아무도 누구를 향해 존경의 말을 쓰지 않는다. 마지막 보루 같았던 성직자도 대통령을 향해 서슴없이 "쥐 같다"는 표현을 쓴다. 판사도 '뼛속까지 친미(親美)' '각하에게 엿먹인다' 같은 표현으로 비웃는다.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을 막으려 했던 마지노선(線)이 허망하게 뚫렸듯이 한 나라의 정신문화는 언어의 마지노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다. 17세기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萬人)의 만인에 대한 싸움'처럼 우리는 만인 대(對) 만인의 조롱사회에 들어섰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냥 묻혀 버린다. 오래전 시인 신경림은 우리에게 절규가 사라졌다고 했다. 조롱이 가장 인기있는 삶의 방식이 됐다.

조롱의 목소리는 비아냥대기를 판매전략으로 내세운 비주류 언론의 전유물로만 알았다. 그들은 제도권의 정상에 오른 기득권 세력을 조롱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제 이름을 알렸다. 고발자 역할도 하고 반격도 피해가려면 비유적 요소를 많이 섞은 조롱이 효과적이었다. 10년 전쯤 그들은 사회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감시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 조롱꾼들은 없어서는 안 될 간잽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내 어리석음이 하늘 끝에 닿았다. 그들은 비주류에 머물지 않았다. 조롱을 능수능란하게 써먹을 줄 아는 세력들은 이제 세상을 농단(壟斷)하고 있다.

조롱은 원래 광대의 몫이었다. 왕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귀족과 종교인과 학자들을 비웃고 싶었다. 그러나 왕이 직접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일을 대신한 사람이 광대다. 광대는 왕이 지켜보는 연회장에서 귀족과 종교인과 학자를 비웃었다. 기원전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물려준 전통대로 상말을 쓰거나 성(性)과 돈과 정치를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광대 역할을 떠맡고 있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종교인·학자·판사가 마치 광대처럼 조롱을 일삼고 있다. 세상 일에는 일단 꼼수가 숨어 있다고 보고 딴죽을 건다. 조롱꾼은 변방의 비주류가 아니라 중앙의 대세(大勢)가 됐다. 기자뿐만 아니라 교수·소설가까지 합세하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선은 희미해졌다.

조롱을 생활방식으로 삼으면서 엄격한 찬반 논쟁은 퇴색했다. 사람들은 드잡이 싸움을 벌이려 두 패로 나뉘었다. 길거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길거리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몽둥이와 주먹질과 방패와 투구와 물대포가 뒤섞인 어지러운 모습은 계속됐다.

토론과 표결이 사라지면서 민주주의의 전당은 황폐화됐다. 오로지 조롱산업만 크게 번창했다. 지난 한 해 무상급식, 선별복지와 보편복지, 한·미 FTA, 4대강 보 같은 이슈를 놓고 선전전(宣傳戰)과 포퓰리즘이 만연했고, 유권자들은 흥행몰이에 취약했다. 말싸움은 바탕에 조롱을 깔았다. 비웃고, 비웃고, 또 비웃었다.

오래전부터 프랑스의 가판대에는 '수요일에 나타나는 풍자'라고 부제(副題)를 붙인 주간신문 '카나르 앙셰네'(사슬에 묶인 오리)가 인기였다. 뉴스를 포착하여 철저하게 냉소적인 사회비평을 퍼부었다. 100여년 역사 속에 풍자와 조롱은 구별됐고 독자는 그것을 알아봤다. 노신(魯迅)은 "풍자의 생명은 진실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을 아랑곳하지 않는 현대의 조롱꾼은 혼자 있을 때 비겁하고 떼거리로 있을 때 위험해졌다.
Commented by 갈천 at 2012/04/27 11:12
또 하나 광신자들을 조롱하는 계몽사상가들의 문제는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공리공담이 많았다는 것일 겁니다. 결국 남을 조롱하면서도 자신도 조동당하지 않는 완벽한 전지전능자는 없는 셈입니다.
디드로의 사례를 조갑제 닷컴에서 퍼왔습니다.

개혁을 종이 위에 하는 학자와 인간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의 차이
프랑스 사상가 디드로에게 러시아의 캐서린 大帝가 던진 一針.
趙甲濟

러시아 女帝 캐서린 2세(러시아어로는 예까째리나)는 위대한 開明군주였다. 독일태생인 그녀는 장교들이 정신병자인 남편을 축출한(며칠 뒤 암살) 궁정 쿠데타에 의하여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1762년부터 1796년까지 통치했다.

캐서린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 특히 프랑스를 모델로 하여 개혁하려고 했다. 그녀는 또 폴란드를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와 함께 분할하고 터키와 전쟁을 거듭하면서 영토를 넓혀갔다.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개혁사상가 볼테르, 백과사전파 디드로 같은 철학자들을 존경하여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고, 농민반란을 진압하면서 귀족들을 견제하여 권력기반을 강화했다. 캐서린 大帝는 너그러우면서도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양이 대단했고, 고통받는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슴속에 묻고 있었다.

1773년 가을 캐서린 대제는 프랑스의 백과사전파 사상가 데니스 디드로를 상트 페테스부르그로 초청했다. 캐서린 대제는 디드로에게 매일 두 시간씩 시간을 내주어 그로부터 강연을 들었다. 디드로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캐서린 대제를 마치 아줌마 취급하듯이 했다. 이야기하다가 흥이 나면 디드로는 캐서린 대제의 허벅지와 팔을 때리곤 하여 멍이 들 정도였다. 캐서린 대제는 불평을 하지 않고 그와 그녀 사이에 책상을 놓아 [이상한 체벌]을 피했다고 한다.

캐서린 대제는 디드로의 탁상공론까지도 열심히 들어주었다. 선진국 출신인 디드로는 캐서린 대제에게 國政을 이렇게 하라, 개혁을 저렇게 하라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었다. 캐서린 대제는 학생 노릇에 지친 나머지 어느날 디드로에게 점잖게 말했다.

"디드로씨, 당신의 천재성이 촉발시킨 좋은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거창한 교리들은 좋은 책을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실천에 옮기는 순간 서글픈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개혁 프로그램을 쓸 때 나와 당신이 처한 입장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어요. 당신은 종이 위에서 일하는데 당신의 像想이나 당신의 펜 앞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으니 다 잘되지요. 그러나 나는 불쌍한 황제가 되어서 짜증을 부리고 변덕이 심한 인간을 상대로 일을 한답니다."

그 뒤 디드로는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문학을 소재로 캐서린 대제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캐서린 대제의 위의 논평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런 식으로 정리되었다.

"당신은 종이 위에 개혁이란 글을 쓰지만 나는 인간의 피부 위에다가 개혁이란 글을 써야 하는데 인간은 원래 변덕과 짜증이 심하단 말입니다."

인간을 상대로 해야 하는 정치가와 관념의 유희에 빠져드는 지식인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예화이다. 개혁을 말과 글로써 해치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강제력보다는 설득을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金泳三 대통령 이후 민간 대통령들은 근사한 연설과 발표로 개혁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말이 만든 관념의 포로가 되어 개혁이란 신기루에 갇혀 놀다가 보면 그가 말한 개혁은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정한 개혁은 개혁의 어려움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 2012-04-26, 1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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